오늘은 한남동 매봉산을 걷기로 한다. 매봉산은 응봉산이다. 매는 우리말이고 응()은 매를 가리키는 한자어일 뿐이다. 본디 남산, 그러니까 목멱산 동쪽에 이리저리 넘실거리는 구릉들 전체가 응봉산이었다. 한남동 매봉산은 물론 금호산, 대현산, 무학봉, 응봉산으로 불리는 응봉산을 다 아우른다. 대부분 도시가 된 중구 동쪽, 성동구 서쪽 지역 상당 부분이 모두 응봉산이었다.

 

응봉산은 조선 초기 태종이나 성종이 매사냥을 나온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 실용뿐만 아니라 풍광이 뛰어나 평양 모란봉과 비슷하다 하여 경기 모란봉으로도 불리었다. 세종도 한강을 품은 이 풍광을 동호(東湖)라 하고 독서당을 지어 선비들 공부를 장려했다. 오늘날 지명에 동호나 독서당이 남아 있는 까닭이다. 그 가운데 여기 한남동 매봉산에 가장 높은 조망지점이 있다.

 

내가 한남동 매봉산을 걷기로 한 까닭은 서남 자락에 김명신과 윤석열이 도사린 대통령 관저가 있어서다. 다 아는 대로 본디 외교부장관공관을 김명신이 강탈하고 불법 증축까지 해가며 제 아방궁으로 써먹는 중이다. 혹시 산책로를 막아 놓거나 입구부터 검문하고 통과시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렇지는 않다. 군데군데 간이 초소와 군인을 배치해 두어 신경 쓰이게 하기는 한다.


명신궁 철조망

 

내가 스마트폰 지도를 보며 가는 모습을 보고 젊은 군인이 길 안내를 자청하기도 한다. 국회의장 공관 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걷다가 주민을 만난다. 짐짓 물어본다. “저는 초행입니다, 저기 철조망 너머에 뭐가 있습니까?” 아연 엄숙한 대답이 돌아온다. “청와대요!” 김명신이 사이비 무속인 말을 듣고 살기 위해 도망친 곳인데 정작 마을 사람은 청와대라 부른다. 아브라카다브라!

 

나는 준비해 간 정화수를 꺼내 청와대향해 세 번 따른 뒤 8자 진언을 올린다. 철조망이 끝날 때까지 걷는 동안 8자 진언을 멈추지 않고 올린다. 한남오거리로 내려와 간단히 점심을 먹고 대사관로 따라 걸어 출발 지점인 한강진역으로 되돌아간다. 이로써 내란 수괴 영성 포위를 마친다. 포위해 놨으니, 누군가 포박해 가겠지. 나는 깊이 호흡한 뒤 가족에게 가는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 안에서 생각한다. 이제부터 내게 한남동 매봉산은 한남동 백악산이다. 청운동 백악산 아래 청와대는 비었으니 여기 와서 발원함이 마땅하다. 갑진년이 다 가기 전에 오만방자한 쥐 두 마리 처단하도록 빌어 온 부() 영검을 이루려면 말이다. 여의도나 광화문처럼 한남동에서도 나는 혼자가 아니다. 여기서는 숲이 우군이며 동지다. 나는 인간, 그 너머 반제 반식민 전사다.


갑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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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보다 더 한의원이 괴괴하다. 큰일이다. 큰일이지만 당최 대책이 없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래서 광화문으로 간다. 복잡하기는 하지만 광화문역 무정차는 아니다. 역무원 안내를 따라 돌아 나온다. 지랄발광 집회에서는 윤상현이가 되지도 않는 소릴 지껄이며 턱도 없이 용을 써댄다. 악악대는 전광훈 종자들, 그래 봐야 한 줌이다. 동십자각 집회와는 규모, 활력, 내용, 모든 면에서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나는 SNS를 통해 소식을 전하면서 율곡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 안국동 네거리에서 우정국로로 방향을 튼다. 인사동9길 입구 음식점에서 530분 습관을 따라 저녁을 먹는다. 행진이 시작된다. 나는 서둘러 일어나 행진에 합류한다. 종각역을 거쳐 남대문로를 따라 명동으로 향한다. 명동 입구를 조금 지날 무렵인가. 누가 나를 톡톡 건드린다. 돌아보니 앳된 소녀가 해맑게 웃으면서 뭔가를 쏙 내민다. 단백질 바다!


 

, 이런! 아이가 또 이렇게 어른을 부끄럽게 하는구나. 내 깊은 부끄러움을 알고 짐짓 모르는 체하기라도 하듯 소녀는 내게서 눈길을 거둬들이며 정면을 향해 구호를 외친다. “윤석열 파면!” 나도 얼른 부끄러움을 수습하고 살짝 비틀어 외친다. “김명신 파멸!” 어느새 소녀는 눈길에서 저만치 멀어져간다; 내 부끄러움을 뒤로 하고 희망이 저만치 전진해 간다. 나는 이 단백질 바를 결코 내 입속에 넣지 못할 듯하다.

 

우리 행진이 전 차도를 다 점거하진 않아서 통제된 상태에서 차량 통행은 가능하다. 어느 순간 눈길이 멈춘 곳은 광역버스 안. 행진하는 우리를 향해 스마트폰 문자로 고마움을 표하는 한 젊은 여성 모습이다. 내가 크게 손을 흔들어 주자 그도 알아차리고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우리는 이렇게도 소통한다. 단백질 바 아이도 스마트폰 문자 젊은이도 나도 서로를 잊을 테지만 그날만큼은 잊지 못하리라.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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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 무인지경이다. 미치광이 한 놈을 대통령으로 뽑은 후과가 경천동지 지경이다. 경제 손실이 천조에 이른다는 사실보다 나는 정적에 깃든 한의원 보며 나라가 망해간다는 사실을 살갗으로 느낀다. 그러나 세계 모든 사태는 비대칭 대칭 사건이다. 이런 혼란 덕에 대한민국 지배층 치부가 남김없이 드러나서 그들을 어찌 처단해야 하는지 삼척동자도 알게 된 일은 가히 단군 이래 최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저들이 왜놈과 양키 제국에 적극 능동 부역한 특권층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폭로되어 속이 다 시원하다. 이참에 제국과 식민지 현실 담론을 본격 전개했으면 좋겠다. 정치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 똬리 튼 제국주의 이념과 식민주의 양식을 섬세하고도 광범위하게 파헤치기를 기원한다. 이른바 과학 방법론도 동원해야 하지만 나는 범주 인류학을 시도해 보려고 한다.

 

내란 정권이 사이비 무속에 휘말린 저급 권력이라는 사실은 이미 놀랄 일조차 아니다. 일일이 거론할 가치도 없지만 김명신 배후에 최아영-한덕수 처- 무속이 있다는 뒷말은 참으로 어처구니도 없고 으스스하기도 하다. 이런 인류학적 풍경은 비단 이 정권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제국주의 똥물 세례를 받은 모든 국가 지배층이 다 이런 미혹에 올라타 통치를 구가하고 있다. 제국과 식민국이 지닌 본성이다.

 

무속 그 자체로, 통째로 비난받을 대상이 아님은 물론이다. 고대 제정일치 사회에서 무속은 왕이었다. 공동체 안녕을 위해 공포·불안과 탐욕과 무지를 해소 또는 해결하는 유일한 방편이었으며, 당대 과학이었다. 오늘날 서구 과학이 패권을 차지하기 전까지 모든 인류는 오로지 여기에 기대어 생존해 왔음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서구 과학을 발명한 주체도 엄밀하게는 여기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사이비다. 사이비는 가짜라는 말이 아니다; 공동체 안녕을 위해 존재하는 본성을 저버리고 사악한 지배자 개인 앞에 무릎 꿇는다는 뜻이다. 저들이 구사하는 주술이 설혹 하다 해도 악하기 때문에 신벌을 받는다. 저들을 벌하는 신은 누군가. 팡이실이, 공생 네트워킹을 일으키는 피지배자다. 피지배자 공생체는 물리 권력으로 저들을 벌하지 않는다; 선하고 재미있는 주술로써 즐겁게 엄벌한다.

 

윤석열 손바닥에 써넣은 자 사이비 주술을 소녀 손에 손에 든 응원봉 찐 주술이 질탕하고도 성스럽게 처단한다. 서구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마르크스 사상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범주 인류학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 공포·불안과 탐욕과 무지가 있는 한 인간에게 무속과 주술은 없어지지 않는다. 과학과 이성으로 사이비 무속과 주술을 이기지 못한다. 팡이실이, 저 참 주술만이 사이비 주술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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