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어린 시절 이웃이나 동무 가운데 가끔 불상사를 당하는 것을 보고 들은 적이 있다. 중학 1학년 같은 반의 한 동무는 여름 방학이 끝난 뒤 나타나지 않았는데 멱감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고향 마을에서 산 넘어가면 걔네가 살던 곳 근처 저수지를 멀리서 볼 때면 동무가 거기서 죽지는 않았을까 근거 없는 추측을 한 적이 더러 있다. 더 어린 시절 아랫동네의 한 청년이 물에 빠져 목숨을 잃었을 때는 그를 위한 굿이 열리기도 했다. 당시 구경 가서 누군가가 울면서 흰 천을 가르고 나아가는 것을 본 기억이 아직 남아 있다. 그런 의식을 천도굿으로 부른다는 것은 커서 알게 되었다.

그 무렵 자살하는 사람이 간혹 있었는데 대개 여성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1960년대 초 이전 전근대 농촌에서 여성이 죽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였던 것 같다. 하나는 나무에 목매달아 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물에 빠져 죽는 것이다. 누가 스스로 죽고 나면, 무슨 산의 어느 골짜기 소나무에서 광목천으로 목을 매달았다느니, 누구네 논 웅덩이에서 죽었다느니 하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리고 여성이 죽기 전에 꼭 하는 일이 있었는데 바로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는 것이다. 어릴 적 논 웅덩이를 지날 때면 고무신이 있는지 버릇처럼 살피곤 했다.

고향마을에는 ‘정신 나간’ 여성도 두엇 있었다. 그들이 시집오기 전 이미 광기를 드러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증상이 발현된 곳이 고향마을이었다는 것은 그들의 질환에 내 고향의 무엇인가가 한몫했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그러고 보니 전근대 농촌의 자살자와 정신질환자가 대체로 여성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듯싶다. 고향의 경우 맨 아랫마을에는 신체 부자유, 가운데 마을에는 언어 장애, 맨 위 마을에는 정신질환을 보이는 사람이 자주 나온다는 말이 있었는데 돌이켜 보면 그런 점도 우연이었던 것 같지 않다. 내 기억으로 신체 부자유와 언어 장애를 지닌 사람은 대부분 남성이었고 정신질환을 보인 사람은 자살자와 더불어 대부분 여성이었다. 질병의 사회학 견지에서 보면 그런 상이한 증상들은 전근대 한국 사회의 성역할 구분, 남녀불평등 구조 등과 관련이 깊을 것으로 여겨진다.

과거에 농촌으로 시집온 여성은 대개 엄청난 억압과 착취로 고통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 가운데 누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꼭 고무신 벗었던 것도 그런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의 전통 생활 습관에서 신발을 벗는 행위는 어느 한 공간에서 다른 한 공간으로 들어갈 때 일어난다. 세상을 하직하는 여성이 고무신을 벗은 것은 생전에 당했던 수모와 억압, 고통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고 믿었기 때문 아닐까 싶다.

자살을 포함한 죽음은 사회적 성격을 띤다. 이전의 농촌에서는 자살하는 일이 사실 많지 않았다. 살인은 말할 것도 없다. 오늘날은 어떤가? 2000년대 이후 한국은 세계에서 자살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되었다. 1990년대까지 한국의 자살률은 매우 낮았던 편이다. 자살률이 갑자기 높아진 이유는 무엇보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가 엄청난 사회적 위기를 겪은 데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자살률은 2020년대에 들어와서 약간 낮아졌으나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남녀자살률에서도 반전이 생겼다.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 자살하는 사람은 남성이 훨씬 더 많다. 2022년을 기준으로 하면 남성 자살률(35.3명)은 여성(15.1명)의 2.3배에 달한다. 이것은 한국 사회가 자본주의화한 결과 남성이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커졌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인 여성 차별, 성 불평등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자살의 풍속도도 많이 달라졌다. 옛날에 자기 목숨 끊던 여성들이 남긴 것이 오직 고무신 한 짝이었다면,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1990년대 이후라고 여겨진다. 일가가 자동차를 탄 채 저수지 등에 빠져 죽는 경우가 간혹 보도되곤 했다. 자살할 때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죽는 경우가 생긴 것도 새로운 현상에 속한다. 그리고 최근으로 올수록 자살의 이유로 경제적 원인이 언급되는 비율이 높아졌다. 이전에는 굶어서 죽는다는 말은 있어도 가난해서 자살한다는 말은 없었는데, 오늘날은 가난이 자살의 중요한 이유가 된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이 자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빚일 가능성이 크다. 그 점을 말해주는 것이 자살률은 부채의 증가에 비례해서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자살률이 급증한 2000년대 이후 가계부채도 급증한다. IMF 위기가 닥친 1997년 한국의 가계신용은 GDP 542.0조 원의 39.0%인 211.2조 원으로 높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2009년에 776조 원으로 GDP(1,255.3조)의 61.8%로 커지고, 2010년대 이후 더 급속하게 늘어나서 2015년 1,203.1조로 GDP(1,740.8조)의 69.1%, 2020년 1,726.1조로 GDP(2,058.5조)의 83.9%, 2023년 1,885.5조로 GDP(2,401.2조)의 78.5%가 된다. 부채의 이런 증가와 자살률의 증가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작용하는지 명확하게 규명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두 지표가 동시적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두 현상 간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충분한 정황 증거로 여겨진다.

자동차를 일가 자살의 도구로 삼거나 아파트에서 떨어져 목숨을 끊는 일은 나무에 목매달거나 웅덩이에 빠져 세상을 하직하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사람들이 목숨을 끊는 것은 세상 살기가 어렵기 때문일 테지만 그 어려움의 시대적 차이가 커 보인다. 옛날에 사는 것이 어려워 죽는 사람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세상 하직할 때 남길 수 있는 재물은 매우 미미했다고 할 수 있다. 목매달거나 웅덩이에 빠져 목숨 버리던 여성들이 고무신 한 짝 달랑 남겼을 뿐이었던 것도 그런 점을 말해준다.

오늘날은? 저수지에 자동차 타고 들어간 일가,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의 경우 상당한 자산을 남겼을 공산이 크다. 자동차가 있으면 거주하는 주택이 있을 것이고 그 안에 가재도구며 가전제품, 전자기기 등 상당한 재물이 있을 것이다. 아파트 건물에서 몸을 던진 사람은 아파트가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런 점은 오늘날 가난한 사람은 이전의 가난한 사람과는 사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말해준다. 과거에는 가난하면 자산이 아예 없는 경우가 많았으나 오늘날은 가난해도 자산이 많을 수 있다. 아파트와 자동차, 그리고 다른 여러 물품은 모두 자산에 속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으니 바로 자산의 구성이다. 자산은 자기자본 더하기 부채로 이루어진다. 빌라나 아파트, 자동차, 냉장고·세탁기·텔레비전 등의 가전제품, 스마트폰·PC 등의 통신기기 등 다양한 상품들을 생활수단으로 신용 구매하며 지게 된 부채가 자신의 순수입보다 더 많으면 자산이 아무리 많아도 빚밖에 없다는 말, 살기가 팍팍하다는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 노동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부채를 짊어지게 된 것은 이전에는 없었던 일로, 역사적으로 최근의 현상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사회를 지배해온 지난 수백 년 노동자가 빚을 지는 일은 드물었다.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사람에게는 누구도 신용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노동자들은 대부분 빚진 상태가 된다. 한국에서 금융화는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으나 1990년대 말의 외환위기로 인해 IMF 구제금융을 받으며 긴축경제가 실시되는 등 신자유주의의 사회 지배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더욱 심화했다. 이전에는 문턱이 높아 접근하기 어렵던 은행이 그때부터 일반 개인과 가계를 상대로 대출을 늘린다. 일각에서 ‘금융의 민주화’로 부르는 그런 조치로 지금 수많은 개인과 가계가 부채로 허덕이고 있고,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자산 효과’라는 말이 있다. 보유한 자산의 가치 또는 가격이 오르면 사람들이 스스로 부자가 되었다고 여기고 소비를 더 많이 하는 현상을 가리킬 때 쓴다. 빚이 많아도 자산은 증가하기 때문에 크게 빚진 사람도 자산 효과를 누리는 경향이 있다.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면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하고, 상층의 극소수는 부유해지는 데 반해서 하층 대다수는 가난해진다. 그런데도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이 부자인 양 행동하며 여간해서는 소비를 줄이지 않거나 줄일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삶의 모습이다.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가 지난 11월 4일 국회에서 그동안 자당이 제안해온 금융투자소득세법을 폐지하려는 정부 여당의 방침에 동의하겠다고 말했다. 1,500만이나 되는 주식투자자의 어려움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그가 제시한 이유라고 한다. 1,500만 명이면 2024년 6월 기준 경제활동인구 2,976만 명의 절반보다 많다. 사람들이 주식에만 투자하는 것도 아니다. 부동산, 펀드, 채권, 외환, 가상화폐 등의 금융자산에 투자하는 사람까지 합치면 1,500만 명을 훨씬 넘어설 것이다. 투자자가 운용하는 자산의 많은 부분은 부채라고 봐야 한다. 2023년 국민대차대조표를 보면 (1975년에는 2.8조 원에 불과하던) 금융자산이 물경 22,899.4조 원으로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는데 놀라운 것은 부채가 그중 21,854.6조 원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지금 여야가 금융투자소득세법을 폐지하겠다는 것은 사람들더러 금융자산 늘리는 일을 계속하라고 부추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1,500만 주식투자자가 금융자산을 늘리는 것은 부채를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부채를 늘리지 않고서는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보면 주식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금융투자소득세법을 폐기하려는 정책은 사람들을 부채의 늪에 빠뜨리려는 심산에서 나온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부채의 늪에 빠져 절망적으로 되면 자살에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가계부채가 급증한 시기에 자살률이 급증했다는 사실이 그 점을 말해준다. 여야는 금융투자소득세법 폐지에 합의하면서 그런 점을 염두에 두기는 했을까. 법의 폐지는 주식투자에 몰입하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고 그들이 운용하는 금융자산의 규모를 키울 공산이 크다. 하지만 그럴수록 금융자산에 포함되는 부채의 규모도 커질 것이요, 갈수록 더 많은 부채를 짊어질 사람의 수도 늘어날 것이다. 부채의 늪에 빠지면 자살의 유혹이 가까워질 수 있다. 금투법을 폐지하자는 정부와 여당, 그리고 야당의 제안은 그렇다면 자살을 권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망할 놈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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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22일 유엔 총회에 참석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제 ‘중동’ 평화의 새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하며 지도를 한 장 펼쳐 보인 적이 있다. 그 지도에는 이스라엘의 영토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 안에는 가자와 웨스크뱅크는 삭제되어 있었다. 네타냐후가 평화를 운위한 것과는 달리 새 중동에 팔레스타인인들이 설 자리는 없었던 셈이다. 


1년 후인 올해 9월 27일 네타냐후는 다시 유엔 총회에 가서 이번에는 지도 두 장 꺼내 들었다. 두 지도에는 각각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 보인다. 하나는 ‘저주’, 다른 하나는 ‘축복’이다. 저주의 지도는 이란, 이라크, 시리아, 예멘을 검게 칠해 놓고, 축복의 지도는 이집트, 수단,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등을 푸른색으로 칠해 놓고 있다. 주목할 점은 축복의 지도에는 이스라엘 영토가 레바논으로 확장되어 있고, 그 안에 레바논과 가자, 웨스트뱅크는 없으며, 시리아와 이란, 이라크는 공백으로 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네타냐후는 이란을 중심으로 한 저항의 축 나라들이 존재하는 서아시아를 저주의 상태로 보고, 이스라엘이 이집트나 수단 등과 동맹을 맺은 가운데 저항의 축 세력을 압도한 상태는 축복으로 보는 것이 분명하다. 


네타냐후가 축복의 상태로 보는 이스라엘은 ‘대이스라엘(Greater Israel)’일 가능성이 크다. ‘대이스라엘’ 발상은 구약성서 앞부분인 토라에 대한 망상적 해석에 근거하여 이집트의 나일강과 시리아와 이라크에 있는 유프라테스강 사이의 영토가 모두 이스라엘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그것은 근대 이스라엘의 건국을 추진한 시온주의자들이 품었던 이스라엘에 대한 상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의회인 크네세트 입구에는 “그리고 주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어 그에게 나일강에서 유프라테스강까지의 성지를 주시니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고 알려진다. 


지금 이스라엘 정권에는 토라의 대이스라엘 신화를 문자 그대로 사실로 믿는 세력이 진출해 있다.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과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이 그들이다. 이스라엘의 현재 정치에서 그들의 입김이 얼마나 센지는 팔레스타인인을 반드시 제거해야 할 아말렉 족속으로 규정해 자행되는 가자 지역에서의 인종청소가 작년 10월 이후 지금도 계속된다는 점이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네타냐후와 함께 ‘대이스라엘’을 현실에서 구현해야 할 사명으로 본다. 이집트의 데일리 뉴스에 실린 한 기고문에 따르면 “최근에 이스라엘의 크네세트는 대이스라엘의 정통 인정을 유대인의 합법적 요구로 주장하는 법안을 통과했다. 더하여 그 의원들은 팔레스타인을 유대인에 대한 실존적 위협으로 간주하며 웨스트뱅크에서 팔레스타인 국가의 수립을 거부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Marwa El-Shinawy, “Netanyahu revives the Greater Israel plan,” Daily News Egypt, 2024.10.15.). 


그런데 대이스라엘의 망상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에 미래가 과연 있는 것일까? 이스라엘이 지구상에서 온전한 국가로서 존속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이스라엘은 19세기 이래 시온주의자들이 서방 제국주의 세력의 지원을 받아 폭력적으로 건설된 ‘정착형 식민지’ 국가다. 식민지에는 두 유형이 있다. 정착형은 외부에서 온 식민자들이 원주민을 축출하고 식민지를 장악하는 경우다. 미국이나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이 그런 유형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착취형’이다. 이것은 원주민이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해 식민자들이 수적으로는 압도하지 못해 그들을 모두 제거하는 대신 착취하고 수탈하는 식민지 유형이다. 아시아의 인도나 아프리카의 남아공, 그리고 한국이 착취형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에 속한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서 정착형 식민지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셈이다. 가자 지역에서 인종청소를 자행하는 것은 그 연장선상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한술 더 뜨는 모양새로 보인다. 그동안 팔레스타인 옛 영토에서 추진해온 정착형 식민지 건설 프로젝트에서도 한 발 더 나가려 하는 것이다. 지난 1년 가자 지역을 초토화한 데 이어 최근에는 레바논을 침공했고, 이란까지 공격하고 있다. 점은 이스라엘은 이제 대이스라엘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레바논, 이라크,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에 속하는 거대한 영토를 자국의 영토로 만들어야 한다. 물론 그런 기획은 망상일뿐더러 실현되더라도 이스라엘을 저주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공산이 크다. 실현되더라도 대이스라엘은 아랍인이 절대다수이고 유대인은 소수인 국가가 될 것이고, 과거 소수 백인이 절대다수의 흑인을 지배한 남아공처럼 아파르트헤이트 국가가 된다. 이스라엘이 그런 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용납될 수도 없고 실현될 수도 없다.


사실 이스라엘은 현재 상태의 존립마저 어려워 보인다. 이스라엘을 유엔에서 축출해야 한다는 국제여론이 비등하다. 이유는 자명하다. 지난 1년 가자 지역을 대상으로, 그리고 최근 몇 주는 레바논을 대상으로 이스라엘이 자행한 전쟁범죄의 극악함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지상 최고로 도덕적인 군대’임을 자임하는 이스라엘 방위군의 포악한 반인륜적 행위, 그들의 반국제법적 폭력적 전쟁 수행 행태를 모르는 지구인은 드물다. 이스라엘 군대는 그들의 사악한 행동에 경악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완전히 무시함으로써 그들이 학살하고 고문하는 팔레스타인인, 레바논인만이 아니라 지구인 대다수도 적으로 만든 셈이다. 


물론 미국과 유럽 등 서방에서는 아직도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국가와 정치계급이 존재한다. 서방 지배계급이 계속 이스라엘의 뒷배로 행동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 그들의 프로젝트인 점과 무관하지 않다. 이스라엘 프로젝트는 서방이 근대 초 이후 비서방에 진출해 식민지 특히 정착형 식민지를 건설하며 해온 관행의 꼭 닮은 연속이다. 유럽국가들이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시아 등으로 진출하면서 학살하고 살해하고 고문하고 착취하고 수탈한 인구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유럽과 북미 등 서방 국가 정치계급이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이란, 예멘 등을 폭격하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그들이 원래 해오던 것을 그대로 하고 있고, 그들이 하려는 것을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대이스라엘 프로젝트는 물론이고 이스라엘 프로젝트 자체도 미래가 불확실해 보인다. 이스라엘은 정착형 식민지를 만들어 오며 잔인한 군사 국가의 모습을 견지해왔다. 서아시아에서 이스라엘은 유럽에서 굴러온 돌로 만들어져, 폭력을 통하지 않고서는 존립할 수 없던 나라다. 1948년의 건국은 팔레스타인의 원주민들을 대거 학살하고 전치한 나크바를 통해 이루어졌고, 지금 이스라엘 방위군이 대량 학살하는 가자 주민 대부분이 나크바를 겪은 사람들의 후손들이다.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에도 방위를 내세워 이웃 국가들과의 전쟁을 계속 치러왔다. 건국된 지 75년이 지나며 군사적 우위를 지키지 못했더라면 이스라엘의 존립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1967년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요르단, 시리아를 선제공격하여 대승을 거두며 시나이반도를 정복하고 골란고원을 점령하는 데 6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당시 전쟁이 ‘6일 전쟁’으로 불리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나 2006년에 레바논의 헤즈볼라 세력과 벌인 전쟁에 이르게 되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상대를 압도적으로 제압하는 막강한 전력을 보여주지 못하게 된다. 당시 한 달여 진행된 전쟁의 승리자는 헤즈볼라였다. 


지금은 이스라엘의 무능이 더 명확해 보인다. 지난 1년 미국과 유럽의 지원으로 가자와 레바논에 엄청난 폭격을 일방적으로 가했는데도 이스라엘은 승전을 올리지 못했다. 이스라엘이 능한 것은 딱 한 가지다. 가자에서든 레바논에서든 주요 인사들을 야비하게 암살하고 민간인을 무참히 학살하기로는 누구도 이스라엘을 앞서기 어렵다. 이스라엘의 포악함은 과거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나치가 유대인에게 보여준 잔인함을 능가한다는 평을 받는다. 이스라엘의 정치계급, 상층부 인구만이 잔학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시민 대중도 외부에서 온 구호물자가 가자 지역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나선다. 고통받는 팔레스타인인을 같은 인간으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개돼지로, 죽여 없애야 할 아말렉으로 보기에 그런 행태를 보일 것이다. 도덕적으로도 이스라엘은 국가로서 존립할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9월 말, 10월 초에 5개 사단 이상, 5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레바논을 침공했으나 아직 마을 하나 점령하지 못한 상태다. 국경 안으로 기껏해야 2킬로 정도 진입했다가 헤즈볼라 군의 반격으로 바로 후퇴하는 일이 반복되는 가운데, 10월 말 1주 동안에는 70명 가까운 전사자를 냈다는 소식도 있다. 일방적인 폭격으로 팔레스타인인 4만 3천 명가량 이상이 죽임을 당한 가자에서도 이스라엘은 아직 군사적 승리는 거두지 못한 상태다. 하마스 군이 아직도 건재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10월 26일에 이란에 가한 공습도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서아시아 지역 전문가인 알라스테어 크룩이 유투브 채널 저징 프리덤(Judging Freedom)에 나와서 한 말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그날 3차례의 공습을 계획했던 모양이나 이란의 방공망이 예상외로 막강하여 제1차 공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10월 1일에 이란이 이스라엘의 공군기지 등 전략 자산을 정확하고 위력적으로 공습한 것과는 전혀 딴판의 모습이었던 셈이다. 


거의 초법적으로 건국되어 75년 이상 이웃 국가들과 평화를 추구하는 대신 패악질만 부려온 나라가 계속 존립할 가치가 있을까? 이스라엘은 지금 서방, 특히 미국의 막강한 지원을 받으며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이라크, 시리아, 그리고 이란에 대해 적대적 행위를 하고 있지만, 미국도 제국으로서는 전성기를 넘긴 상태다. 미국의 뒷배가 사라지거나 약해지면 이스라엘은 구명정 없이 서아시아 대해에 빠진 생쥐가 된다. 이전에는 이런 전망이 언어도단처럼 여겨졌을는지 모르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6일 만에 이집트와 시리아 등에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1967년은 너무 먼 과거가 되었다. 2020년대의 서아시아는 이제 전혀 다른 지정학적 구도를 형성했고,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미국 등 서방의 군사외교적 위력은 대폭 감소한 상태다. 현실이 그렇게 변했는데 반인륜적이고 반국제법적인 침략행위를 계속하고, 더군다나 지구인 전체가 보고 있는데도 그것을 무시하고 버젓이 사악하고 잔혹한 학살행위, 인종청소 행위를 하는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그런 나라에 미래가 있겠는가? 있어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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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가지 떨어지듯 가을이 들이닥칠 때 내 마음에도 냉기가 세차게 밀려왔다. 환자 예닐곱이 잇달아, 온다고 한 또는 와야 할 날을 넘기고도 일절 소식이 없다. 이 사건이 몰아치는 힘으로 마음에 큰 금을 내선지 여간 신산하지 않다.

 

의료인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는 치료( 효과)와 관련해 보이는 환자 반응이다. 대놓고 항의하면 차라리 낫다. 답변할 기회가 있으니 말이다. 잘 오다가 아무 말 없이 발길을 끊으면 오만 상상을 다 하게 된다. 왜 오지 않느냐 물어보기도,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두기도 뭣하다. 우울증 병력을 지닌 나 같은 사람은 수치심이 쉽게 도진다.

 

미처 손쓸 새도 없이 어? 하고 보면 이미 넘어져 있다. 물론 한창 아플 때처럼 속수무책 당하지는 않지만, 곧장 일어서려면 정색하고 마주해야 한다. 다른 사람, 인간 사회, , 그리고 물에 주의하느라 소홀했던 내 마음에 빙의해야 한다.

 

내 마음에 빙의하는 일은 내 마음을 극진히, 그러니까 거룩하게 모셔 부둥키는 일이다; 큰 눈길로 곱촘히 들여다보는 일이다; 적요로운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아파서 싱그러운 냄새를 맡는 일이다. 다디단 쓴맛에 혀를 적시는 일이다; 바깥 발을 거두지 않은 채 안에 지긋이 서는 일이다. 이 일 뺀 살가움을 희생이라 한다.

 

건강하고 당당한 희생은 장엄을 모시는 숭고지만, 여기 내 마음 빙의를 봉인한 희생은 희생양일 뿐이다. 남남 사이, 연인 사이, 가족 사이, 이웃 사이, 시민과 국가 사이에도 희생양은 언제나 존재한다. 희생양을 없애는 과정이 팡이실이다.

 

글 읽기와 쓰기를 모두 중단한 채 내 마음에 빙의하기로 한 달 여를 산다.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야 있으랴만, 뭔 일 있나, 궁금해할 사람을 위해 잠시 끼적인다. 바깥 향한 문을 죄다 걸어 잠그고 내 마음에 빙의하는 일도 독이기는 마찬가지여서다. 가장 좋아하는 9, 이어 오는 10월 상달을 이렇게 보내기는 또 생전 처음이다.

 

 

<2>

 

내가 어렸을 때 가장 두려워한 일은 다른 사람 집 대문 두드리기였다. 그 두려움은 60년 지난 오늘까지 이어져 다른 사람에게 전화하기가 그렇게 망설여질 수가 없다. 대체 이 병적 심리는 어떤 본성을 지닐까, 늘 궁금했지만 여태까지는 잠깐씩 들여다보다가 그만두곤 했다. 아마도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듯하다. 최근 연이어 겪은 사건 따라 내 마음에 빙의하다가 홀연히 이 기억과 마주쳤다. 필경 분명한 연관이 있을 터, 되작거리기로 했다.

 

초등학교 4학년쯤 일이다. 민 아무개라는 벗 집에 놀러 가기로 약속하고 일요일 아침 동소문동 산동네를 출발해 걸어서 삼양동 산동네 그의 집에 도착했다. 문제는 대문 두드리기였다. 물론 소리쳐 부르는 일은 더욱 어려웠다. 두 시간 이상 주위를 서성거리기만 했다. 속은 타들어 가고 그럴수록 오줌은 마렵고 마침내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몰리자 나는 울면서 뛰어 내려왔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 기억이 없다. 물론 이런 일은 한두 번에 끝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올라갔을 무렵이었다. 중학교 입시 문제를 상담하러 아버지는 전문가(?)였던 친구댁으로 나를 보냈다. 나는 역시 대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조바심만 내며 동동거렸다. 결국 기다리다 지친 아버지 친구분이 외출하러 나서다가 나를 발견하셨다. 나는 이제 막 도착했다고 둘러댔다. 친구분은 내일 저녁 일찍 다시 오라 하시곤 이내 갈 길을 가셨다. 나는 아버지께 해야 할 말을 찾으려 낑낑대면서 어둠 쌓여 가는 산동네 골목길을 돌고 또 돌았다.

 

중학교 1학년 때 무슨 이유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담임 선생님과 함께 급우네 집 가정 방문하기로 돼있었다. 선생님 댁에 들러서 모시고 가야 하는데 댁 앞에서 역시 대문을 두드리지 못했다. 똥 마려운 강아지 모양 뺑뺑 돌기만 했다. 결국 기다리다 지친 선생님이 혼자라도 가실 요량을 나오시다 나를 발견하셨다. 나는 배가 아파서 그랬다고 둘러댔다. 맙소사! 선생님께서는 집에서 활명수 한 병을 가지고 나오셨다. 나는 애먼 활명수나 들이켰다.

 

이런 일은 고등학교 때도 일어났고, 대학 때도 일어났고, 사회생활 할 때도 일어났다. 그러려니 하면서 살다가 어느 순간 감히, 능히, 차마 그럴 수 없는 상황과 맞닥뜨리고 말았다.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한의학 공부하겠다며 수능 준비할 때였다. 벌어 놓은 돈이 있을 리 없었던 나는 새벽에 우유배달 해서 생계비를 벌기로 했다. 아파트 단지 하나를 통째로 맡았다. 월말이면 수금에 나섰다. 수백 집 대문을 두드려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 일을 어쩌면 좋누.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진리가 아닐 수 없다. 처음 몇 번은 쭈뼛쭈뼛 망설였지만, 어린 딸 눈망울을 떠올리는 찰나, 감정보다 먼저 손이 움직였다. 그렇게 1년 반을 살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에 그 모질고 끈질겼던 병리 증상이 사라졌다. 물론 잠복이었다. 모름지기 죽어서도 근절되지는 않으리라. 곰곰 생각해 본다: 이 압도적인 망설임 밑바닥에는 대체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 분명히 단순한결정 장애는 아니다. 수치심과 공포가 작동하고 있을 테다.

 

수치심은 뭔가 잘못을 저지른 뒤 느끼는 떳떳지 못함 따위가 아니다. 윤리 넘어 존재에 가 닿는 정서다; 자기 존재를 부끄러워하는 자기부정 증후군 핵심 정서다. 대개 시생대 버림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방어기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자신을 버림받을 만한 존재로 규정해, 버린 자를 정당화해야 그에 기대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수치심은 이래서 요구도 거절도 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 집 대문 두드리기, 이 얼마나 주제넘은 요구인가.

 

요구하지 못하는 또 다른 며리가 있다. 그 요구가 버림받았을 때 휘말렸던 공포를 환기하는 뇌관이기 때문이다. 이치로 따지면 수치심은 이해와 수용이고, 공포는 즉각적 정서 반응이니 공포가 먼저다. 무서워서 얼어붙으니, 손을 들어 대문 두드리는 일일랑은 당최 불가다. 공포는 두려움으로, 두려움은 예기 불안으로, 예기 불안은 범() 불안으로 번져 삶 전체를 집어삼킨다. 이 과정을 거쳐 대문 두드리지 못하던 아이는 어른이 돼서도 전화를 잘 하지 못한다.

 

나는 unwanted baby였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내가 태어나기를 바라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는 일찌감치 떠났고, 아버지는 10년을 거부하다가 10년만 같이 살고는 떠났다. 내 수치심과 공포는 여기서 발원했다. 이를 일러 크리스티안 노스럽은 존재론적 우울이라 했다. 내일모레 일흔인데 아직도 나는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병을 안고 살아간다고 해야 맞다. 최근, 이 진실을 일깨운 사건들과 마주치면서 나는 다시 한번 내 마음에 빙의한다. ()!

 

 

<3>

 

쾅쾅쾅! 대문 두드리는 소리를 내지 못하는 수치심 이전 공포와는 또 다른 방어기제가 하나 있다. 두드림 당하는 사람 정서를 극단으로 끌어들이는 투사다. 사실은 내 두려움인데 그걸 상대방에게 씌워주고 그런 상대방을 배려한다고 서사화함으로써 실은 내 두려움에서 도망치는 위장 논리다. 상대방이 실제 그런지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렇다 하더라도 그건 상대방 몫이라는 진실보다 내 두려움에 대한 병적 반응이 먼저 작동한다. 공포(무서움)는 인지하지 못하는 몸-반응이라 가능하지 않지만, 두려움은 인지하는 마음-반응이라 다른 병적 대응이 가능하므로 겹이 다르다. 공포가 쌓아 올린 여러 겹 불안이 우울과 결합하면 난공불락이다.

 

, 봉인되었던 60여 년 전 기억이 틈 아닌 틈을 비집고 튀어나온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일일까, 아슴아슴한데 어느날 땅거미가 내려앉을 즈음 시골집 나무 대문이 쾅쾅쾅! 요란한 소리를 낸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그러니까 가족이거나 마을 사람 아닌 외지인 손길이 빚어내는 낯선 소리였다. 나는 아연 두려움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이어서 덜컹덜컹! 한참이나 계속되는 문 흔드는 소리에 맞춰 심장도 덜컹거렸다. 며칠 뒤, 그가 간첩이었으며 읍내에서 잡혔다는 맹랑하고 기괴한 소문이 돌았다. 먼 훗날, 그가 박정희 쿠데타에 반대하다 빨갱이로 몰려 도망 다니던 민주인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병이 이미 내 몸에 각인된 다음이었다.

 

쾅쾅쾅! 대문 두드리는 소리와 어쩌면 정반대 소리라고 할 수 있는, 거칠고 세차게 문 닫히는, ! 소리 또한 내가 정말 정말 무서워해 온 대상이다. 그 즉시 땅이 꺼지고 내 몸이 빠져 내릴 것 같은 찰나적 파국 풍경이 가슴을 관통한다. 닫힌 문 안에 갇히든, 밖에 내동댕이쳐지든, 버려지긴 마찬가지인 상황에 대한 극한 공포다. 아버지와 열 계모가 수없이 내게 자행한 폭력이었다. 백미는 이랬다: 초등학교 3학년 혹한인 어느 밤이다. 라디오 드라마 듣던 중 웃음보가 터진 아들을 제지하다가 격분한 아버지가 아들을 발가벗겨 밖으로 내쫓는다. 방문이 쾅! 닫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떨던 나는 어느 한순간 의식이 휘리릭 사라지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대문 두드리기를 하지 못하는 일과 거세게 문 닫히는 소리를 무서워하는 일은 한 사건이 지닌 두 측면 진실을 반영한다. 열고자 내는 소리에 닫힌 반응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마음 실재하고, 닫으며 내는 소리에 열고 싶은 비원이 얼어붙는 마음 실재가 어찌 본성상 따로일 수 있겠는가. 불면에 대한 특정 공포를 지닌 사람 침상을 지키는 동안, 의자로서 마주친 수치심과 공포를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여기까지 왔다. 여기서 나는 내가 아니라 나를 여기로 데려다준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지금 모습이 어떻든, 그가 빚어낼 삶은 옹글고 향 맑으리라는 축원을 띄운다. 나는 기적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가 기적을 일상으로 만들 터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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