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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철학의 선구적 사상가 원효 ㅣ 살림지식총서 327
김원명 지음 / 살림 / 2008년 5월
평점 :
1. 채 100쪽도 되지 않는 소책자입니다. 당최 여기서 무슨 큰 지식이나 정보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국 연구자들에게서 뭐 더 나올 것도 없으니까요. 다만 이 책은 원효 사상이 우리 상고시대 정치철학에 젖줄을 대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어?, 이거 봐라! 하고 집어든 것입니다.
2. 저자는 원효철학의 추측적 기원이라는 장에서 실증주의적 접근이 어렵고, 불교계는 아예 무관심이긴 하나, 당대의 역사의식과 문제의식 속에서 추측적 기원을 생각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대승불교적 전통을 신라에서 원효가 고유하게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을 이해하고 꽃피울 수 있는 한국 고유의 지혜 전통 속에 원효가 있었기 때문이다. 혜공이나 대안, 혜숙과 같은 인물들은 바로 토속적인 벌거숭이 승려였다. 원효의 후반기는 이들과의 교유 영향이 컸다......."(27쪽)
사실 원효 당시 상황을 보면 토착사상을 불교가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대당 유학승 집단을 중심으로 한 왕실 주변의 주류 기득권 세력과 원효를 위시한 "토속적 벌거숭이 승려"들이 맞서고 있었습니다. 한승원의 소설 <원효>의 해석에 따르면 전자의 근거지는 황룡사요, 후자의 근거지는 바로 분황사였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바, 원효의 법호가 바로 분황이라는 사실에 터 잡는다면 이런 추정적 정황이 타당성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감안해 볼 때, 원효가 당(唐) 유학을 두 번 시도했다가 결국은 그 뜻을 접고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이른바 자주불교의 웅대한 나래를 펼쳐 나아간 것은 명백히 사회정치적인 의미를 지닌 일대사건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민중의 삶 그 한가운데서 솟아오르는 생명 감각과 이치 직관으로 외부에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사상들을 걸러내고 넘어서는 작업은 그 자체로 외래 사상을 자신의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삼고 있는 세력의 심장을 정조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긴장 요소를 이 책의 저자는 간과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단군조선의 의사결정 전통인 대감굿, 화백(和白)에서 원효사상의 토착적 근거를 찾습니다. 그러나 신라 화백회의가 여기서 온 것이고, 그렇다면 왜 다른 승려들, 특히 왕실비호 세력인 정치 승려 집단의 사상은 여기에서 발원했다고 하지 않는지 궁금해집니다. 누구보다 화백회의 한가운데서 놀았던 자들인데 왜 그들은 당나라에서 수입한 외래품 불교를 가감없이 숭상했을까요?
원효사상의 젖줄을 단순하게 이런 식으로 찾아서는 안 됩니다. 경주 김씨 세습으로 굳어진 이후 신라 왕조의 아이덴티티를 냉철하게 살펴보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김씨 신라는 그 기원이 김일제라는 흉노족 수장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흉노 일족을 거느리고 한(漢)의 건국을 도왔던 자입니다. 왕망의 난이 일어나 입지가 흔들리자 자기 세력을 이끌고 한반도 동남부로 들어왔습니다. 그가 바로 김알지입니다.
김씨 신라는 이렇듯 동이족의 단군조선과는 전혀 다른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습니다. 김씨 신라가 당을 끌어들여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것도 이런 반(反), 적어도 비(非) 동이적 아이덴티티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아무 생각 없이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런 진실을 안다면 통일신라 라는 말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조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프게 깨달아야만 합니다.
왕씨 고려는 동이적 아이덴티티를 지닌 집단이 건국했습니다. 그러나 김부식으로 상징되는 이른바 신라계 귀족들이 고려사회를 실질적으로 접수하고 그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중국에 대한 굴종 자세를 보면 신라적 아이덴티티가 부활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이씨 조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송시열로 상징되는 서인 노론 집단의 아이덴티티는 김부식의 그것과 다름 없습니다. 그들이 결국 이씨 조선을 일본에 팔아 넘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기득권, 이른바 주류성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 정권의 아이덴티티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모골이 송연해질 것입니다.
요컨대, 원효 사상이 동이족의 단군조선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말하려면 이것을 순진하게 바로 신라와 연속시켜서는 안 됩니다. 신라 내부의 정치경제학적 긴장과 모순을 날카롭게 들여다 보아야합니다. 그 결과 나타나는 불연속성에 주의하면서 원효사상의 위치를 설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효를 반민족적 매판사상가, 반민중적 국론통일주의자로 몰아버리게 됩니다.
원효의 일심화쟁(一心和諍)은 결코 북한을 무력으로 쳐서 하든, 붕괴를 기다려서 하든, 흡수통일하는 논거로 이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배집단이 입만 열면 떠드는 국론통일의 수호신으로 원효를 들먹이면 안 됩니다. 원효의 통불교는 제식훈련 하는 군대 같은 개념이 아닙니다. 그러나 현실은 원효를 왜곡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왜곡한 원효는 의상과 다름 없습니다. 의상은 왕실불교 수호자입니다. 김씨 신라의 아이덴티티에 입각한 화엄세계를 꿈꾼 자입니다. 그는 토속적인 벌거숭이 승려들과 전혀 관계 없는 자입니다. 원효를 이런 의상과 한 무덤에 끌어 묻으려 하는 자들이 의도하는 바가 과연 무엇인지 알아차리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저자의 전망은 이 함정을 어느 만큼 피해갑니다.
".......화쟁을 국민총화와 남북통일 원리라 해석한 것이 주로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라면 2000년대의 오늘날은 남북의 조화로운 공존의 원리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은 원효의 논리로 볼 때, 둘이라 하기에 우리는 한 민족이자 한 나라다. 또 하나라고 하기에는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상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한 마음에 기초해 평화로운 공존을 이루면서 궁극적으로는 한 마음의 본원의 바다에 돌아가지만 둘 중 어느 하나가 승리하는 방식은 아니다......."(85쪽)
구체성이 드러나지 않는 선문답식 나가는 말 때문에 다시 멍해지기는 했지만 가까스로 중심은 잡은 것 같습니다.
3. 저자에 따르면 <판비량론>을 포함한 다수의 원효 저작이 중국과 일본, 그리고 심지어 인도에까지 전해지고 번역되어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무려 천 년 이전의 일입니다. 그 사이 우리는 원효의 그 엄청난 저작들 가운데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니 어쩌면 저 김부식과 같은 무리들이 일부러 폐기시켰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원효를 거의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변죽만 울리는 떠듦으로 시간을 또 다시 잃고 있습니다. 불자들 조차 '영혼의 은사' 원효는 모른 채 혜능을 읊조리고, 초기불교를 주려끼고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과연 어떤 아이덴티티를 지닌 사람들일까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사무치는 마음으로 21세기의 원효를 기다립니다. 아니 각자 영역에서 자기 자신의 원효이기를 간절히 빕니다.
4. 책 자체는 skimming 하듯 읽고 치워도 크게 실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이 책에서 암시 받은 문제의식이 묵직하게 자리 잡아서인지 책을 자꾸 만지작거리게 됩니다. 그렇다고 뭐 더 읽을 일은 아닌 것이 그 미련이란 게 결국 원효가 던지는 질문 때문일 테니까요. 오늘 여기 원효가 섰다면 과연 뭐라 했을까? 어찌 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