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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증폭사회 - 벼랑 끝에 선 한국인의 새로운 희망 찾기
김태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1. 우선 표지 그림이 제 살갗을 날카롭게 찢어놓습니다. 섬뜩하달 수도 있겠고, 보기에 따라서는 어이없달 수도 있겠고....... 비둘기로 보이는 새 한 마리에게, 얼핏 보면 총을 겨눈 것 같지만, 실은 총이 아니라 눈을 겨눈 것 같은....... 아무튼 책의 내용을 짐작하도록 이끄는 그림임에 틀림없습니다.
2. 저자의 인생행로가 고스란히 투영된 관점, 내용을 지닌 책입니다. 심리학을 떠났다가 심리학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진보적 사회운동 경험이 무르녹은 것이지요. 하여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인간심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이 열린 것입니다. 사실 그 동안 거의 모든 심리학 책들이 자연인으로서 개인을 화두로 삼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풍조는 심리학에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서구 전반의 주류적 사유 프레임이지요. 이렇게 보면 결국 심리 문제의 해결 또한 그렇게 자연적 개별화로 흐르게 마련입니다. 일정 부분 맞겠지요. 그러나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부분은 오류입니다. 언제나 열린 지평을 지녀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3. 저자는 IMF 경제위기라는 특정 사건을 논의의 기점으로 삼습니다. 엄청난 사회적 트라우마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보다 더 깊고 내밀한 곡절이 없지 않겠지요. 그러나 IMF 경제위기를 야기시킨 사회체제와 전략, 수습과정에서 드러난 절망적 한계, 이후 펼쳐진 우리사회의 추악한 면면들은 어찌 보면 IMF 경제위기라는 상징을 만들어내기 위한 앞뒤 조건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조건은 우리사회 자체의 특수성이라는 외피 안에 발톱을 숨긴 헤게모니 블록의 탐욕 기제가 작동되어 형성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어쩌다 실수해서 그리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기획된 것이라는 이야깁니다. 이는 음모론의 제기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요즘 들어 저들이 대놓고 도적질하는 꼴을 보면 명약관화하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저자는 헤게모니 블록의 이런 전략이 만들어낸, 불안을 증폭시키는 심리 코드 아홉 개를 제시합니다. 이기심, 고독, 무력감, 의존심, 억압, 자기혐오, 쾌락, 도피, 분노. 이것은 아마도 어떤 연역적 틀이나 패턴을 전제한 연구 결과가 아닐 것입니다. 저자가 자신의 삶이 일구어지는 구체적 현실과 정황에서 일일이 찾아낸 것일 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박하고 거침없는, 일부러 다듬지 않은 거친, 가령 속어적 표현까지도 의도적으로 구사하는, 구어체적 언변으로 우리사회의 어둠을 거의 총망라하여 까밝히고 있읍니다. 기존의 주류 심리학 책들과 전혀 다른, 역동적이고 대승적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습니다.
4. 책을 읽으면서 제가 개인적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던 두 부분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첫째, 점진적 자살 문제. 임상의 실제에서 미처 깊은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그래서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할 기회를 가졌던 부분이었습니다.
둘째, 저자는 미래의 주체들이 형성하는 공동체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공감하고 또 공감하는 바입니다. 저 역시 오래 전부터 궁굴려 온 화두입니다. 때마침 저는 그 화두를 깨치기 위해 제 인생행로를 바꾸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제 삶의 모습이 드러날지 자못 궁금합니다.
5. 21세기 첫 10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이었습니다. 이 사회에 속한 나를 고요히, 그러나 곡진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 이 한 권의 책을 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한국의 (주류) 심리학자들에게 던진 고언(苦言)에 동의 백만 제곱하고 아무쪼록 저자가 바라는 일이 현실로 일어나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아디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