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신문에 정희진이 쓴 글로 일어난 논란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글깨나 읽는 사람들에게 정희진은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나는 그가 쓴 <내전과 공존>을 읽기 전 제목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전쟁이라면서 어떻게 공존이란 말을 쓰는가? 읽으면서 또 이상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둘 있다: 정희진이 말하는 공존이 과연 공존인가? 단호하게 대처하는 일과 존재를 존중하는 일이 어떻게 반대 개념인가? 그 글과 강성현이 페이스북에 쓴 글을 함께 올린다.
정희진(여성학자)
지난달 말 윤동주 시인 80주기를 맞아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의 일행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새벽에 공항 가는 택시를 탔는데, 기사분이 느닷없이 된소리로 “쭝국 가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더니,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우리나라 선관위 직원 대부분이 중국 사람”이라는 주장부터 특정 정치인들은 사라져야 한다며 열변을 토했다.
이럴 때 그와 생각이 다른 승객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해야 할까. 무시하며 자는 척해야 할까. 이견을 제시하고 설득해야 할까… 나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고문’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태, 그런 상황을 우리는 폭력이라고 부른다. 나는 폭력 상황에 노출되었고 동시에 공모했다.
12·3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기획이 불과 두세 달 만에 내전(內戰) 상태로 변화했다고 본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한국 사회에 내전은 없다”고 진단한다(경향신문 3월14일자). 아직 30% 이상의 두꺼운 중도층이 있고, 인종적 갈등에 기댄 종족주의형 정체성의 정치가 출현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물리적 폭력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정부의 공공 서비스와 행정의 질이 우수하다는 것이 그의 근거다.
나도 동의하는 바이지만 ‘상부구조’의 측면, 이를테면 반북, 반중, 반여성 이데올로기에다 종교의 감정화 등 정치적 정동(情動·affection)의 면에서, 대한민국은 현재 내전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헌재가 어떤 판단을 내리든 간에 어느 쪽도 승복하지 않으리라는 예상과 염려도 이러한 ‘정서적 내전’ 상태 때문이리라. 모두 헌재의 판단 이후가 더 문제라는 데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전 세계적인 우익의 출현은 후기 식민(냉전) 체제와 신자유주의 통치의 산물이다. 독립을 해도 제국주의 지배의 후과(後果)로 자국민들끼리 이념적으로 혹은 인종적으로 분열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아프리카의 르완다이다. 르완다 내전의 배경은 식민 지배자였던 벨기에의 분할 통치다. 1959년에서 1996년까지 르완다와 부룬디에서 일어난, 다수지만 피지배 계급인 후투족과 소수인 지배 계급 투치족의 부족 간 갈등으로 인한 르완다 내전은 학살, 질병, 기아로 수백만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특히 1994년 4월부터 7월까지 단 100일 만에 50만~80만명이 학살되는 참사가 벌어진 ‘르완다 사태’는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이 역사는 테리 조지 감독의 2006년 영화 <호텔 르완다>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간헐적 충돌과 희생은 많았지만, 한반도는 지난 70여년간 ‘평화로웠다.’ 지금 한반도의 상태도 미·소 냉전 체제의 유산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일명 ‘태극기 부대’인데, 실제로는 태극기만이 아니라 성조기와 영국기와 이스라엘기까지 등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시민운동가인 지인과 현재 한국의 극우 상황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가 그의 말에 놀랐다. 그는 “극우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호한 대처의 구체적 방도’가 있는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대화가 불가능한 상대에 대해 “단호한 대처”라는 발상에 당황했다. 이것은 ‘정말 싸우자’는 이야기다. 그러지 않아도 지금 양쪽은 맨손으로 백병전이라도 할 기세다. 아니, 이미 법원 습격이라는 폭력 사태가 발생했고, 폭력의 연쇄는 앞으로도 예상되는 일이다. ‘그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생각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존재에 대한 ‘우리’의 바람직한 태도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이런 경우 “단호한 대처”는 진짜 내전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폭력의 반대말은,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지금 한국 상황에서 최선은 공존에의 의지라고 생각한다. 공존은 타인에 대한 배려나 공감이 아니다. 스스로 극도의 인내와 긴장을 동반하는 신경증적 상황의 지속이다. ‘나’를 없애겠다는 이들, ‘나’의 죽음을 기도하겠다는 이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들과 같이 살아가겠다는 각오는 평화가 얼마나 지옥 같은 전쟁 상태와 같은 것인가를 일깨워준다.
극우와의 공존은 그들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방의 ‘존재’를 존중한다는 의미다.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며 그들의 생각이 어떻든 간에 존재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1992~2018)라는 시민단체에서 오랫동안 일한 지인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많은 이가 우리 단체 이름을 ‘미군근절운동본부’라고 불러요. 어떻게 살아 있는 사람을 근절합니까. 미군은 철수해야 할 대상이고, 우리가 근절하려는 것은 미군이 저지르는 범죄지요.” 그는 “미군 근절”이라는 말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여성주의도 마찬가지다. 여성과 남성 모두 가부장제 사회 밖에서 살 수 없다. 삶은 가부장제와 협상과 저항을 반복하며 종속적인 주체(subject)로 살아가는, 구조와 개인이 모두 조금씩 변형되는 일이다. “가부장제 타파, 근절” 구호는, 구호일 뿐 실현할 수 없는 관념이다. 우리는 평소 ‘근절’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지만, 근절되는 세상사는 없다. 나쁜 통치는 형식을 달리할 뿐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매번 달라지는 그 통치 형식(항시적 비상사태)을 이해하는 것이다.
언젠가 류승완 영화감독은 유명한 만화 <톰과 제리>가 주는 공포와 긴장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이 애니메이션은 우둔한 고양이 ‘톰’과 영리한 쥐 ‘제리’의 공존에 관한 이야기다. 이러한 상황이 실제라면, 제리의 삶은 공포와 견딤 그 자체다. 대개 생태계를 ‘먹고 먹히는 관계’로만 이해하지만, 공존의 관계도 있고 천적과의 균형도 중요한 요소다. 문제는 그리고 우리의 고민은, 공존과 균형이 약자의 몫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운동은 공존을 위한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 생각하는 사람인 호모 사피엔스가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해치고(극우), “단호히 대처”(진보)하고자 한다면 대립은 영원할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극우 현상을 분석한 2025년 3월3~9일 ‘주간경향’ 1618호의 표제는 “극우가 됐다. 저쪽이 싫어서”이다. 이 커버 스토리는 우리 사회의 극우가 ‘진보의 다른 모습’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극우가 된 이유가 그만큼 민주당, 진보 진영 등 범야권에 대한 기대의 반증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극우가 진보의 안티테제로 등장했다면, 결국 누가 ‘잘해야 할까.’ 나는 다른 나라 극우의 인종주의적 성향과 달리, 이러한 상황이 다소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범야권의 발상의 전환과 각성에 따라 변화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극우에 “단호히 대처”해서는 안 된다. 상호 인정, 공존만이 모두가 살 길이다. 당연히 극우는 공존을 수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극우다. 극우가 공존을 수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가 극우처럼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진보)는 양보했는데, 상대(극우)는 그렇지 않다는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다.
역설적이지만, 공존은 한쪽의 의지만으로도 가능하다. 어차피 극우의 사고는 누군가의 설득으로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가 한 대 때리면 나는 두 대 때린다. 혹은 상대가 먼저 때릴 것 ‘같으므로’ 내가 먼저 공격한다”는 선제타격론을 논리적으로 반박한다고 설복되겠는가? 극우는 설득 대상도 투쟁의 대상도, 더구나 사라져야 할 이들도 아니다. 사람의 생각은 비판해도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
*
강성현(성공회대 교수)
왜 "단호한 대처"를 폭력적으로, 물리적인 것으로 상상할까?
왜 '공존'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 '상호인정'이라는 것을 전제해야 할까?
과거 나는 잘 알고 지냈던 일부 '역사수정주의자'들과 토론을 시도하며, 서로 인정하고 거리를 좁혀보려 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후 뉴라이트와 극우 비판 때문에 종종 표적이 되어 마음고생을 했고, 공포감을 느끼던 시간도 있었다.
지금 나는 그들과 직접적으로 논쟁하지 않는다. 논리나 방법으로 대화하며 공통의 감각을 형성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접었다. 만약 말과 글로 논쟁이 벌어진다면, 난 단호하게 대처하고 대응한다. 논문과 책을 쓰고, 페북이나 유튜브 등 뉴미디어를 활용하며, 필요하면 방송과 신문 미디어에 기획을 제안하거나 인터뷰를 하는 방식으로 나름의 각오를 하고 대응한다. 악의를 가진 혐오 집단과 마주할 때, "단호하게"라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그들이 쏟아내는 폭력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 대응의 대상은 뉴라이트나 극우가 아니라, 그들과의 충돌을 지켜보는 토론 가능한 사람들이다. 나는 이 분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싸운다.나는 뉴라이트나 극우를 물리적으로 공격하거나 또 다른 혐오, 증오 발화로 대응할 생각이 없다. 그들의 폭언과 위협 속에서도, 폭력을 감당하고 있는 피해자들의 자리에서, 또는 그 옆자리에서 주눅들지 않고 적극적으로 싸우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뉴라이트나 극우들을 변화시키려 하지는 않는다. 그들과의 논쟁에서 이길 수 있다거나 설득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무기는 정신승리이고, 그들에게 하는 어떠한 말글의 논리도 무화되기 때문이다.
‘공존’이란 무엇인가? 나는 극우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과의 공존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어쩌면 앞으로도 처한 상황인 것이고, 그렇다고 공존을 위해서 상호 인정까지 할 생각은 없다. 현재 극우가 표적집단에게 저지르는 부정과 타자화, 비인간화는 자칫하면 끔찍한 물리적, 사회적 파괴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1.19 서부지법 폭동에서 그런 에너지를 느꼈다. 여기에서 나는, 우리는 대응, 아니 저항해야 한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얼마 전 KKK집단과 대화하며 친구가 되었다는 사례들을 접했다. 흥미로운 경험이지만, 나는 그것이 특수한 경우라고 본다. 그런 사례들을 통해 어디까지 성찰할 수 있을지 누군가는 극한에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도 한다. 우리는 어디까지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상대와의 대화를 지속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느 한계까지 지속해야 그들에게 나와 우리를 이해시키고 공존할 수 있을까? 만약 극우가 변화한다면, 그 때 비로소 대화할 여지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극우 관련 조사와 분석에서 나는 현재 극우 대중의 절반 정도만이 극단적인 의미에서 우파라고 분석한 걸 읽었다.
나는 극우를 단순히 '급진적인(radical)' 우파 사상과 생각을 가진 집단으로 보지 않는다. 급진적 우파는 특정 집단을 혐오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 그리고 피해자들에게 그 폭력을 정당화하는 논리와 수법을 퍼뜨리고 행하는 이들이다. 나의 대응은 그들의 존재 자체를 내 눈 앞에서 물리적으로 치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논리와 수법이 왜곡과 사기로 점철되어 있음을 폭로하는 데 있다.
그러나 '극단적인(extreme)' 우파는 다르게 보아야한다. 그들은 혐오를 넘어 타자를 비인간화하고, 린치하며, 굴복시키려 한다. 심지어 죽이겠다는 위협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공존'과 '상호인정'이 과연 가능한가? 타자화되고 폭력에 스러져간 집단은 살아 있다면, 그냥 숨쉬고 사는 것이다. "살다 보면 그냥 살아진다"라는 말이 난 너무 싫었다. 제주 출신 연구자로서 나는 국가폭력과 극우 집단의 폭력이 결합하는 지점을 연구해왔다. 현재 극우 집단이 사용하는 언어와 상징, 그리고 물리적인 폭력도 불사하는 모습은 역사 속 가해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 그들은 반공청년단, 백골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그게 힘이 세 보이고 쿨하다고 생각해 과거 가해자 집단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나는 극우의 폭력에 단호하게 대처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현재로선 요건과 절차에 따라서 형식적으로, 때로는 기층 사회적 약자 집단의 누군가에게 폭력적으로 자행되기도 했던 ‘법’에 그 역할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법기술자들의 ‘법률전쟁’이 극우들을 돕는 이 상황에서 헌법과 법률, 그리고 이의 요건과 절차에 따른 형사절차에 기댄다는 것은 어쩌면 무기력해보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법치주의 앞에 ‘민주적’이라는 말을 붙여 민주적 헌정질서를 존중하고 그 취지에 따른 법 집행을 더 강조할 수밖에 없는 궁색한 상황이다. 동시에 현재로선 그게 나의 단호한 대응의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게 형사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그게 전부는 아니기에 언어의 내란 시대에 정치적, 사회적으로 담론 투쟁을 해야 한다. 나는 법적인 진실 규명과 이에 따른 법적 해결이 전부라고 생각해 본적 없다. 역사적, 사회적 진실의 차원은 더 입체적이고, 극우의 폭력의 메커니즘에 관심을 갖고, 이에 맞서 어떻게 대처하고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극우의 얼굴은 특정 극우 목사, 유튜버, 정치인 등의 얼굴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극우는 '왜'가 아니라 '어떻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고민해온 분들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
극단의 시대 속에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나는 앞서 말한 차원에서 단호한 대처와 대응을 할 것이다. 폭력적인 방식의 맞다툼이 아닌 채 얼마든지 단호하고 조직적인 대응을 할 수 있고, 그렇게 극우의 확산을 막고 고립되게 할 것이다. 그 때 비로소 휘말려 들어갔지만 이탈하는 그 누군가를 대면하고 상호 인정하기 위해 공존을 다른 의미로 확장시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단호한 대응은 단순한 논쟁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갈 새로운 사회, 공동체를 만들어갈 때 필요한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