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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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토착민 식물학자 로빈 월 키머러는 이름은 우리 인간끼리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라고 했다. 따라서 이름 짓는더 정확히 말해 새로 이름 짓는힘은 제국이 훔친 가장 큰 특권 가운데 하나였다. 그 힘이 오늘날 살아 있는 세계를 주도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에 발판을 깔아주었기 때문이다.

  ···장소에 이름 짓은 일은 탐험가나 항해자 몫이었고, 그 밖 다른 모든 이름은···자연철학자(과학자-필자), 예술 권위자, 의사, 유물 수집가들이 잡다하게 섞인 전문가 집단에 맡겨졌다. 이 전문가들이 제국 생태 자산을 범주화하고 분류했으며, 특히 거기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제국 정책 입안자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역사적으로 과학과 제국은 상호 원인이자 결과라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135)

 

  린네 체제가 거의 기적에 가까운 확장성을 지닌 놀라운 분류법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승리한 이유는 그 체제가 자연을 잘 담아냈기 때문이 아니다. 에스파냐 제국 개입이 결정적이었다. 에스파냐 제국은 18세기 중엽에 공통된 용어와 일관된 언어를 가지게 하려고 린네 이명법 체제를 채택하도록 제국 식물 탐험대에 명령했다. 모든 대상을 유용 자원으로 바꾸도록 명명 과정에서 비교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제국이 내린 은총으로 린네 체제는 일찌감치 다른 모든 지식 체제와 그 방법론을 제압하며 진실에 관한 독점권을 주장함으로써 지식 획득 방식에 관한 토대로 자리 잡았다.(137)

 

아미타브 고시는 중요하고 많은 잘못된 기존 지식을 무너뜨린다. 우주과학에 이어 이번에는 생물학이다. 생물학은 린네를 피해 갈 수 없다. 린네는 제국주의를 피해 갈 수 없다. 제국주의를 더더욱 피해 갈 수 없는 중첩 식민지 대한민국 생물학도는 이 진실을 알고 있을까? 나는 지난 3년 동안 비전공자로 식물을 공부하면서 이 진실에 적으나마 가닿을 수 있었다.

  내가 가닿은 진실은 그야말로 피상적이었다. 아미타브 고시가 여기서 밝혀준 진실만으로도 내 애통은 한층 깊어졌다. 차마 그럴 수 없을 듯한 분야까지 속속들이 제국주의 마수가 뻗쳐 있는 풍경을 마주할수록 부역자 각성은 신랄하다 못해 참담해져 간다. 깨침이 요구하는 삶을 살아낼 깜냥이나 될지 의심은 더욱 육중해져 간다. 나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고 무지렁이라고 못 박아도 짐이 쉽게 덜어지지 않는다. 내 문제 너머 공동체 문제여서 그렇다.

 

  정색하고 물어보자. 제국주의가 과학 내용까지 규정할 수 있는가? 통속한 우리 지식으로는 과학에 정치와 문화가 개입하지 못한다. 가령 제국이 명한다고 해서 물이 수소 4개와 산 소 1개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모든 진실이 이런가 묻는 일은 얼마나 순진한가. 이른바 과학은 이런 진실을 쉽게 뭉갠다. 코로나19로 백신 맞은 사람이 문명사회 인구 대다수다. 정색하고 물어보자. 그 백신 과학 진실을 아는가? 아니, 그 백신을 뭐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아는가?

  나는 백신 원리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백신 만드는 초국적 제국 제약회사 상품 백신을 신뢰할 수 없다. 저들이 린네 체제와 다르다는 증거가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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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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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진보가 다른 종들, 그리고 인간 대부분에 대한 말살을 수반한다는 개념은···19세기 말 자유주의 또는 진보 지식인에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특히 어쩌다가 국가 정책을 통해 자기 소신과 이론을 현실 세계에 구현할 수 있는 권력자들에게 해당한다.

  이 개념 밑바탕에는···지구를 인간이 좀 더 높은 단계 존재로 비상하려면 벗어던져야 하는 짐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실제로 이런 관지는 제노사이드나 에코사이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인간과 비인간 생명은 물론 행성 자체 절멸, 그러니까 옴니사이드 가능성마저 상상하고 적극적으로 반긴다.···세계 종말은 인간이 온갖 세속적이고 육체적 속박을 벗어던진 순수 영혼으로서 진정한 자아를 실현하도록 이끄는 멀리서 일어나는사건으로 여겨진다.

  이 개념은 얼핏 정신 나간 듯 보일지도 모르지만,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상상계 필수 기층을 떠받치고 있다.···‘휴거에 대한 기독교 근본주의자 사상에서, 에코파시스트 종말론 비전에서, ‘청소된 세계를 갈망하는 인종주의자 꿈속에서, 그리고 이 거친 대지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못마땅한 거주민에게 넌더리 내고 다른 행성을 테라포밍함으로써 좀 더 나긋나긋한 지구 버전을 구축하고자 혈안이 돼 있는 억만장자 환상 속에서 말이다. 그 꿈은 일견 미래지향적이고 시대를 앞서가는 듯 보이지만 실은 정착형 식민주의 주민이 지구 대부분을 네오 유럽으로 바꿔놓은 테라포밍 과정을 다시 한번 추진하고자 하는 유제(遺制)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118~119)

 

역사에서 가정이란 부질없다고는 하나 이렇게 전복해본다. 가령 아시아 몇 나라가 제국주의 전쟁을 벌여 유럽을 식민지화했다면 그들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인류학이란 학문이 유럽인을 대상으로 펼쳐졌다면 기독교에 휘감긴 그 문화가 얼마나 황당한 미신 덩어리로 치부됐을까? 얼핏 정신 나간 듯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 유럽이 문화적으로 앞서 있어서 서세동점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이 가정은 유럽중심주의 또는 인도유럽어 패권주의 또는 앵글로아메리카 제국, 아니 기독교 일극 집중구조 신화를 깨뜨리는데 유력한 역발상일 수 있다. 찬란한 문명, 위대한 과학이 오직 휴거를 향해 질주해온 유제(遺制) 욕망 차라리 망상이라고.

 

아미타브 고시에 따르면 알프레드 테니슨(1809~1892)<In Memoriam>에서 이렇게 읊었다.

 “한층 높은 종족의 전령···

  짐승을 몰아내고 위쪽으로 움직이라.···

  멀리서 일어나는 성스러운 사건,

  모든 천지 피조물이 그곳으로 이동한다.”

 

지구 밖 저 멀리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고 유럽기독교도는 거기로 올라간다(휴거)는 이야기다. 이 시는 묵시록 비전을 읊은 종교시가 아니다. 당대 탁월한 과학 지성이기 때문에 존경받은 시인이 쓴 과학 시다. 이 시는 과학을 종교 프레임에 융해시킨 일극 집중구조 서사다.

 

단도직입으로 말하면 서구 과학은 기독교 신학 세속 버전 중 하나다. 지구 안에서 펼쳐졌던 제국주의 과학이 지구 밖으로까지 확장되었을 뿐이다. 그 이름이 우주과학일 따름이다. 달과 화성을 탐사하는 이유도 제임스웹 망원경을 만든 이유도 휴거를 통해 신과 하나 되기 위해서다.

 

얼핏 정신 나간 듯 보일지도 모르지만,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상상계 필수 기층을 떠받치고 있다. 누가 이 사실을 부인한단 말인가. 우주과학은 여러 세부 항목에 따른 각기 다른 과학을 포괄하지만, 물리학을 빼놓을 수는 없다. 어떤 천재 물리학자가 우주 구성 원리를 설명하는 단 하나 방정식을 찾기 위해 연구를 멈추지 않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단 하나 방정식을 왜 전제하는지 꼭 물어야 할 이유는 없으리라. 그는 개신교도다.

 

이런 논지가 불편한 사람이 분명히 있다. 특히나 사려 깊은 사람에게는 논의 대상을 단순화하고 자신만 복잡한 존재라고 전제라는 짓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짓은 나쁜 짓이 맞다. 그렇다면 문제는 서구 제국주의 정치, 종교, 예술, 과학과 그 상호관계가 참으로 복잡한가, 여부에 달렸다. 제임스웹 망원경으로 해왕성 고리와 위성 7개를 선명하게 포착하는 우수한 과학과 앵글로아메리칸은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는다며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는 우스운 기독교가 공존하는 현상은 얼핏 복잡한 듯 보일지도 모르지만 매우 단순하다. 과학을 신이 내린 은총이라고 생각하는 일과 신앙을 과학적 진리라고 생각하는 일이 어찌 복잡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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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미대륙 토착민은 지구를 풍요롭다고 여겼으므로, 나무를 자르고 영구 정착촌을 건설하고 울타리 두른 인클로저를 짓는 행위를 통해 정착민이 땅과 관계 맺는 방식이 자신들 생활 방식을 생태적으로 방어할 수 없게 만든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정착민이 생태적으로 개입하는 일이 자신들 먹이사슬을 교란하기 시작하고야 비로소 저들을 항구적 불균형을 일으키는 원흉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다양한 비인간이 이런 불균형 상태를 빚어내는 데 톡톡히 한몫했다. 그중 가장 파괴적인 존재가 정착민 소유 반려 종이었다. 울타리와 목초지가 필요하고, 때로 길을 잃은 채 숲속을 떠돌아다니곤 하는 소와 돼지들 말이다. 이 가축이 생태계에 끼친 해악은 실로 광범위했다. 그들을 침식 효과를 악화시켰고 토종 풀을 사라지게 만든 데다 토종 동물군이 의존하는 자원을 먹어 치웠다. 미기후 변화를 촉발했을 뿐 아니라 숲을 짓밟았다. 한마디로 그들은 식민지화 결과로 토착민이 마주한 문제를 한층 더 악화시키는 데 결정적 요소였다.

  영국 출신 정착민에게 가축은 유럽 모델에 따라 토지를 개간하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하지만 초기 북미대륙 생존 조건은 유럽처럼 가축을 돌볼 수 없게 만들었다. 불가피하게 가축을 방목했는데 이는 토착민에게 치명적 결과를 안겨주었다. 소와 돼지가 온 천지를 쏘다니면서 토착민 옥수수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경작지를 뭉개버렸다. 가축이 정착민과 토착민 간에 빚어진 반복적 갈등 원인으로 떠올랐다고 해서 놀랄 일은 전혀 없었다.(94~95)

 

2. 질병, 가축, 토지개간이 미치는 장기적 영향력은 소리 없이, 흔적 없이 드러났다. 그 영향력은 말하자면 비인간 존재와 비인간 물리력을 통해 간접적으로 파괴가 이루어지는 수동 갈등 전선이었다. 이 전선에서 핵심 요소는 부작위였다. 직접적인 표적이 인간 신체가 아니라 그를 지탱해주는 생명 네트워크 주요소라는 점에서는 간접적이지만 이 갈등은 능동적 생태 개입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대평원에서 물소 떼를 몰살하는 전략이었다.···1865~1883년 미국 군인과 사냥꾼들은 물경 1,000~1,500만 마리 물소를 살해했다. 남은 물소는 수백 마리에 지나지 않았다.···토착민 문제는 물소 문제이기도 했으며, 양자는 삶에서도 죽음에서도 깊이 연관돼 있었으므로 비슷한 절멸 과정에 처했다. 한쪽을 파괴하기 위해 다른 한쪽을 파괴했다.···(98)

 

3. 대평원 남부에 남아 있던 토착민 물질적 토대는 테라포밍 과정, 특히 강 흐르는 방향을 바꾸고 댐을 건설함으로써 끊임없이 파괴됐다.···댐 건설은 역사적으로 토착민 공동체에 가장 파괴적인 치명타를 날렸다. 댐에서 비롯한 홍수는 전체 주민 삶터를 빼앗고 어장을 파괴함으로써 기아와 빈곤을 몰고 왔다.···미국이 어떤 다른 종족에게 저지른 짓 가운데 단일 요소로서 가장 파괴적인 행위가 틀림없다.(99~100)

 

4. 숱한 다른 개입 조치가 토착민을 그들이 살던 터전에서 내쫓았으며, 합법적 추방을 위한 군사 수단과 행동을 통해 봉쇄지대로 그들을 밀어냈다. 그런 지대조차 결코 안전하지 못했다. 더 많은 개입과 배제 행위가 거듭해서 삶터를 옮기도록 강제하곤 했다.···침략은 사건이 아니라 구조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재정착 장소 가운데 일부는···크게 파괴된 환경에 처하도록 강요받는 희생 지대로 떠올랐다. 가령 1890년 운디드니에서 대학살이 일어난 50년 뒤, 오세티 사코윈 부족은 다시 한번 미군과 마주쳤다. 연방정부가 보호구역 342천 에이커를 몰수해 공군 폭격장으로 바꿔 놓았을 때다. 이제 이 땅은 군수품 쓰레기가 온통 널려 있어 불모지가 됐다.

  ···317개 보호구역은 독성 폐기물에서 개벌(皆伐/clear-cutting: 나무를 수종과 무관하게 모조리 베어버리는 방식-옮긴이)에 이르는 생태적 위험에 직면해 있다.···

  ···이들 희생 지대 상당 부분이 다양한 지구 위기에 유달리 큰 영향을 받아온 일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20207월 코로나19가 한창 맹위를 떨칠 때 산불에 휩싸인 나바호 네이션이 대표적인 예다.(100~101)

 

제국주의가 이렇게 치밀하고도 집요하게 토착민과 생태계 전반을 공격한 사건, 아니 구조를 목격한 뒤에도 음모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일이 지성인이 지켜야 할 도리라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특권층 부역자다. 음모는 악의를 지닌 악인 한 사람 또는 집단이 사전에 꾸미는 협잡 따위가 아니다. 음모는 블랙 네트워킹이다. 네트워킹이어서 네트워킹을 모르는 패거리 인간들이 알리바이를 대기 쉬울 따름이다. 특히 정치, 모든 정치는 음모다. 이 진실에 눈감으면 제국과 부역 지배층이 쳐 놓은 덫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한민국 현실이 꼭 똑 그렇다. 더는 차마 사족 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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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 대부분에서 전쟁은 인간이 만든 무기로 인간 적들 사이에 펼쳐졌다. 하지만 테라포밍에는 환경이 개입하고 비인간 존재가 중요한 구실을 하는 다른 전쟁이 필요했다.···

  ···이러한 전쟁은 군인만이 아니라 전체 인민, 종족, 문화, 세계관, 그리고 생태계가 맞붙었다. ‘전면전총동원은 유럽으로 들어오기 훨씬 전에 북·남미에 존재했다.

  ···환경 무기화가 분쟁 주요소인 생물정치적(biopolitical) 전쟁이었다.

  정착형 식민주의적 전쟁과 유럽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벌인 식민지 전쟁 간 근본적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착형 식민주의 전쟁은 완전히 다른 전쟁이었다. 병원균···식물·동물들이 모두 그 전쟁에서 자기 몫을 지닌 주체였다. 토착민은 이 수많은 비인간 존재들이 관여하는 항구적 전쟁 상태로 내몰렸다.(79~83)

 

생물정치적 전쟁이라는 표현이 정확한지 의문이다. 이 말 자체가 지닌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선 문맥에서 찾아보자. 이 말을 정의하는 일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구절은 이렇다.

 

인구 전체가 대규모 생물학적 생태 파괴를 포함한 폭력 형태에 시달리는···전쟁”(80)

 

생물(bio)’이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 전체를 의미한다면, 인구 전체가 주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생물정치적 전쟁이 아니더라도 대규모 전쟁이 일어난 장소에서 폭력에 시달리지 않는 인구가 존재할 수는 없다. 전쟁 와중에 인간이 만든 무기가 인간 이외 생물이나 생태를 파괴하지 않을 수도 없다. 이런 일이 광범위하게 일어난다고 해서 생물정치적이라 한다면 테라포밍 전쟁을 다른 전쟁과 구별하는 일은 거의 무의미하다.

 

생물정치적이라 할 때 필수적인 사항은 기존 전쟁 개념을 벗어난 행위 주체와 방법이 직접 전쟁 당사자로 세워진다는 점이다. 기존 전쟁 목표가 절멸이 아니기 때문에 동원하지 않았던 비인간 존재들을 총체적으로 전선에 세웠으므로 전면전이며 총동원이라 했기에 말이다. 정착형 식민주의 정복전이 지닌 전방위·전천후, 그 절대적 잔혹성을 드러내기에 그리 적합해 보이지 않는 생물정치적이라는 말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아미타브 고시가 새로 만든 말이 아니라면, 미셸 푸코에서 조르조 아감벤, 안토니오 네그리, 미카엘 하르트를 거쳐 토마스 렘케까지 이르는 생물(보통은 생명이라 번역함-필자)정치논의를 따랐을 가능성이 크다. 이 생물정치는 19세기 이후 전개된 서구 통제 정치 국면으로 생명을 생산·보호는 물론 폐기되도록 방치 또는 환경 조건을 개입시키는 데까지 권력이 관리·규율하는 구조다.

 

폐기되도록 방치 또는 환경 조건을 개입시키는 일은 미셸 푸코 표현대로 죽게 내버려 두는일이다. 대상은 체제 외부다. 체제의 외부는 배제된 자, 추방된 자, 열외자, 생명만 유지되는 자, 곧 조르조 아감벤이 말하는 호모사케르’(Homo Sacer). 호모사케르 연장선에 제삼세계 민중, 소수자, 비인간 생명(식물·동물·미생물), 자연(·바다·)이 있다.

 

죽게 내버려 두는 일은 부작위, 그러니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고의로 하지 않음으로써 살해하는 행위다. 예컨대 전염병에 걸려 죽을 수밖에 없도록 영양실조, 열악한 위생, 심리적 불안들을 개선하지 않는 행위다. 적극적 살해행위와 본질에서 전혀 다르지 않다. 왜 이런 전략을 쓰는가? 손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생물·식물·동물··숲이 개입해 일어나는 일은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고, 따라서 거기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생물정치적 전쟁···은 전혀 전쟁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다른 어떤 독립적 자연 질서로 분류된다. 따라서 자연에 대한 기계론적 서구 관념은 생물정치적 전쟁이 지닌 진정한 특성을 폭로함과 동시에 은폐하는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메아리를 아직도 들을 수 있다. 미국 기후 위기 부인론자들이 기후 변동은 자연 현상이며 따라서 인간 개입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주장할 때 말이다.”(84)

 

아미타브 고시는 어떻게 생물정치 개념으로 정착형 식민주의 말살 전쟁을 해석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이 질문은 잘못됐다. 일은 거꾸로 진행됐다. 이 책이 여러 번 이런 진실을 설파했듯 생물정치 개념도 정착형 식민주의 말살 전쟁 경험에서 나왔다. 미셸 푸코도 조르조 아감벤도 이 진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들 관지가 유럽, 더군다나 거기 인간이라는 사실이 그 증거다. 내가 뜨르르한 제국 천재들을 근원에서 인정하지 않는 이유다.

 

미셸 푸코, 조르조 아감벤이 모르는 진실을 아미타브 고시가 안다면 아미타브 고시가 모르는 진실을 나는 알아야 한다. 나는 앵글로아메리카 제국 짝퉁이자 사실상 그 식민지인 일본 제국 후기 식민지에서 태어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문부성 국비 장학생 1호 아들이 대통령 놀이하면서 공식적으로 부역하는 풍경 한가운데 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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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포밍(terraforming)’···테라포밍만들기또는 형성하기를 합성한 조어다. 따라서 땅 만들기’ ‘땅 형성하기로 해석할 수 있다.···

  ···웰스가 쓴 우주 전쟁은 테라포밍 개념을 전제로 한다. 이 소설은 잘 알려진 식민지 시대 말살 전쟁가운데 하나, 즉 영국이 태즈메이니아섬을 식민지로 만든 뒤 그곳 토착민을 절멸시킨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테라포밍 서사는 제국주의 수사와 이미지에 크게 기댐으로써 우주를 정복하고 식민지화해야 할 미개척 영역으로 삼는다. 이 개념이 정착형 식민주의(국가 주도로 일부 국민이 나라 밖 지역으로 이주해 새로운 정착지를 개척하는 식민주의-옮긴이) 경험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는 사실은 왜 그것이 영어권 세계에서 공상과학소설 팬에게뿐 아니라 테크놀로지 억만장자, 기업인, 엔지니어에게도 폭넓은 호소력을 지니는지 설명해준다. 다른 인간은 물론 지구생태계까지 식민화하고 예속시킨 역사적 경험을 재현하려는, 거의 간절하다고 할 만한 욕망을 시사한다.(77~78)

 

우리는 겉만 훑어보면서 다고 생각한다.···섬세함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망원렌즈를 능가할 수 있다.”(23)

 

이끼와 함께에서 로빈 월 키머러가 한 말이다. 이 말을 문득 떠올린 까닭은 제국주의와 부역 문제에 대해 내가 여태껏 겉만 훑어보면서 본다고 생각한 바로 그 착각을 오랫동안 범해왔다는 뼈아픈 각성이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사실 이 땅 지식인 거의 모두가 나와 마찬가지지 싶다. 여기 번역자도 비슷하다.

 

공상과학소설이라는 말은 Science Fiction에서 유래했다. Science가 왜 공상과학이 되었을까? 본디 일본이 1950년대 Fantasy & Science Fiction을 두루뭉술하게 공상과학소설이라고 오역했는데, 한국이 1960년대 사전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사어가 됐는데도 한국은 여전히 이 잘못된 번역어를 사전에 등재해 놓고 있다. 사전 만드는 사람이 누구보다 섬세해야 하지 않나. 번역하는 사람도 그에 못지않게 섬세해야 하지 않나.

 

따지고 보면 이 문제는 너나없이 맹렬하게 톺아야 한다. 사소한 듯 보이지만 바로 이런 풍경이 식민지 지식인이 공유하는 조야함을 대표한다. 섬세히 들여다보면 식민지 사회에는 결결이 겹겹이 이런 누더기가 널려 있다. 무자각 특권층 부역자는 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각성한 부역자도 광범위하게 깨알처럼 박힌 식민지 파편을 걸러내기란 쉽지 않다. 하다못해 최고 헌법기관인 대통령이란 말도 일본이 번역한 president에서 왔다니 기도 안 찬다. 용어 하나가 이럴진대 과학소설에 얽혀 있는 제국주의 서사는 얼마나 더 큰 우리 무지를 쟁여두고 있겠나.

 

지구 테라포밍이 시스템적으로 완결성을 확보해가는 과정에 충실히 부역했던 문학은 지구 밖으로 제국 시민 눈길을 돌린다. 더는 절멸시킬 땅도 사람도 없으니 상상력으로 미개척 영역을 만들고 과학을 끌어들여 판타지 누명을 벗겨낸다. 이렇게 본성을 교묘하게 감추자 폭넓은 설득력이 보장된다. 영화와도 손잡으면서 대세를 굳힌다.

 

서구 제국이 천문학적 돈을 쏟아부으면서까지 우주과학, 그 기술, 그 산업을 전진시키는 일은 단순 토건이 아니다. 영원한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그 프로젝트에 걸린 프로모션 서사로 과학소설은 복무하고 있다. 명백한 포르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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