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평점 :
인류가 벼랑 끝으로 내몰린 까닭은 전 세계가 식민지적 착취와 소비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엄청난 가속도가 붙었기 때문이다.
비인간도 과거와 달리 더는 침묵하지 않음을 명확히 해준 계기가 이 같은 기간 압축이다. 다른 존재와 힘-박테리아, 바이러스, 빙하, 숲, 제트기류-역시 이제 침묵을 깨고 더없이 화급하게 눈길을 사로잡고 있어서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을 비활성 지구 부품으로 취급하거나 백안시하기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272쪽)
단일 종이라는 개념은 오류다. 이제 인체에 다양한 미생물이 대거 공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바다. 생물학자들은 인체 90%가 인간 세포가 아니라 박테리아로 이루어져 있다고 추정한다. 어떤 미생물학자는 ‘인체를 현미경으로 보면 온갖 생명체가 더불어 살아가는 산호초처럼 보인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미생물은 인간 추론 능력, 감정, 기분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다른 종들이 존재해야 인간 언어 능력과 사유 능력을 실현한다면, 그런 능력이 인간에게 귀속된다는 생각은 오류가 틀림없다.(275쪽)
비인간 목소리를 그 본디 장소에 되돌려 놓아야 한다면, 그 일은 무엇보다도 우리 야생 자아에 남겨진 가장 중요한 유산인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
···우리에게는 상상력을 발휘해서 비인간 목소리와 행위 주체성을 회복시키는 과업이 주어졌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예술적 노력이 그랬듯, 이 또한 미학적임과 동시에 정치적인 과업이다. 그리고 지구를 괴롭히는 위기 규모가 워낙 방대한 까닭에 오늘날 그 과제에 더없이 절박한 도덕적 긴박성마저 더해지고 있다.(283쪽)
최근 10년가량 내가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온 바는 죽은 존재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 일, 비인간 존재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 일, 결국 이 둘이 하나라는 진실을 몸으로 알아차리는 일이었다. 416 아이들을 매일 대면하고, 식물·지의류·균류·조류·세균·바이러스를 공부해 숲으로 들어가고, 이들 무고한 생명과 생태를 살해한 제국주의와 후기식민주의를 해부하는 모든 일이 모여들어 이제 어떤 근원적 향기를 풍긴다. 우리 이야기가 분명히 지성소 가까이 다가왔다는 증거다. 그 증거가 오늘 아침 출근길에서 소식으로 전해졌다.
출근할 때 30여 분 숲길을 걷는다. 여느 사람처럼 내 건강을 위해 걷기운동을 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나는 human-biont인 나 홀로 고립되어 존재하는 생명체가 아니므로 나는 내 건강을 위해 걷는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다양한 미생물이 대거 공생하고 있는 공동체다; 90%가 인간 세포 아닌 박테리아로 이루어져 있는 복합 생명체다; 현미경으로 보면 온갖 생명체가 더불어 살아가는 산호초처럼 보이는 희한한 생명 공간이다; 나와 공생하는 미생물은 내 추론 능력, 감정, 기분에 영향을 미친다. “나”들은 “우리” 건강을 위해 걷는다고 말해야 한다.
왜 숲인가? 목소리와 행위 주체성을 회복시켜야 하는 비인간 당사자임과 동시에 다른 모든 비인간 공동체 본진이 숲이기 때문이다. 숲에서 나는 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어차피 내 귀로는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 몸과 공생하는 모든 미소 생명들이 숲과 대화한다는 진실에 나를 맡길 따름이다. 그들이 숲에서 들은 이야기를 인간 언어로 번역해줄 테고, 추론 능력으로 나타낼 테고, 감정과 기분으로 발양시킬 테니 나는 그 변화를 통해 숲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행위 주체로서 행동하는지 안다. 이로써 “나”들은, “우리”는 숲과 네트워킹한다.
이 과정이 다름 아닌 우리 야생 자아에 남겨진 가장 중요한 유산인 스토리텔링이다. 스토리텔링에는 제국 과학이 가닿을 수 없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예술만이 수행할 수 있는 미학적임과 동시에 정치적인 과업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숭고한 영, 그러니까 제국주의가 부존재 처리한 존재들이 더불어 부르는 장엄한 노래다. 이 장엄한 노래를 나는 오늘 아침 숲 한복판에서 들었다. 차마 감동과 전율이 범접할 수 없는 절대 고요에 안겨 안개 흐르듯 지나왔다. 이 소식을 가장 먼저 그대에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