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피어 있으면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다

이리 모여 있으면 누구도 눈밖에 두지 못한다

달개비, 저 푸른 촛불, 꿈 지피는 여름 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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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괴로움(苦)과 아픔(痛)을 한 데 묶어 고통이라 이름 한다.

이는 그 둘이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반영한다.

그러나 아픔이 곧 괴로움은 아니다.

아픔은 생명인 한 피할 수 없는 숙명적 실재다.

괴로움은 그 숙명적 실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마음 상태다.

이 저항과 투쟁에 쏠리는 힘이 삶을 괴로움으로 제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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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일은 그 고통을 없애는 일이 아니다.

고통의 한가운데 앉아 있을 수 있는 마음을 빚어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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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13-08-13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 선생님께서 그러셨다더군요.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고.
이 글을 읽으니 그 말씀이 생각납니다.
_()_

bari_che 2013-08-13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항, 무시, 망각, 그 어느 것도 고통을 대하는 법일 수 없으니
근본적으로 같은 표현이군요.^^
 

 

 

곱고 귀한 사람을 하나 잃었습니다. 열흘이 지났습니다. 그 선한 눈매로 환히 웃으며 당장이라도 제 방문을 열고 들어설 듯합니다. 차마 눈조차 뜨지 못한 채 ‘불쌍해서 어떻게 해요.......’만을 되뇌던 그 아내가 여적 제 앞아 앉아 오열하는 듯합니다.

 

 

삼년 전 쯤 그는 깊은 우울증으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서울과 충청도를 오가며 몇 차례 상담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 상담을 통해 인생의 새로운 지평선이 열리는 걸 경험했다 하였습니다. 그 뒤 가까운 한의원에서 약도 지어먹고 하면서 기운을 되찾아 건강한 삶으로 복귀하였습니다.

 

 

그가 그러는 사이 저는 인생 최대의 시련을 맞아 고전 중에 있었습니다. 한의원이 결딴나 낭인으로 전국을 떠돌았습니다. 그러다 천신만고 끝에 용마산 발치에 조그만 동네 한의원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맨주먹으로 빚 얻어 시작한 터라 초기 함몰비용을 견디지 못해 매순간이 가시방석이었던 나날의 끄트머리에 홀연히 그가 나타났습니다. 농사꾼인 그에게는 물론 제게도 함부로 못할 거금을 하얀 봉투에 넣어서 말입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제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기적이 뭔가를 보여주셨습니다. 이 보잘 것 없는 것이 다른 기적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벼랑 끝에서 저를 구한 그는 표표히 자신의 삶터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의 건강함에 작은 힘이나마 보탠 인연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을 믿었습니다. 그에게 머물던 제 눈길에 한 동안 휴식을 주어도 되겠다며 안심했습니다. 그러던 지난 봄 어느 날 급한 문자 한통이 날아들었습니다. “남편 상태가 심각해요. 선생님께서 전화 한 통 주세요. 그러면 그 사람 움직일 거예요.”

 

 

저는 지체 없이 전화를 했고 그 길로 올라오라 해서 만났습니다. 차를 마시다가 식사로 이어지고 마침내 낮술로 속을 어루만지며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오직 착하고 곧고 맑은 마음으로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진보정치 일선을 지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진보진영의 파쟁을 온 몸으로 겪게 되었습니다. 그가 받은 상처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치명적이었습니다. 그 상처를, 그 억울함을 어디에도 다 털어놓고 말하지 못한 채, 말한 그대로 이해받지 못한 채, 속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울며불며, 가슴을 치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어둠이 푸르게 내려앉을 때까지. 저는 깊이 경청했고 그의 주장을, 그의 깊은 마음을 수용했습니다. 그리고 헤어지면서 그가 이 고통의 강을 또 한 번 잘 건너갈 거라 믿었습니다. 전처럼 신뢰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어리석은 醫者의 믿음은 한낱 안일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아픈 사람에게서 삶의 냄새만 맡고 죽음의 냄새는 짐짓 외면하는 통속한 감수성, 아니 관성이 그 날의 만남을 마지막 만남이 되게 하고 말았습니다. 저 통속한 신뢰의 알량한 봉인을 뜯지 못하고 어영부영 하다 마침내 다시 한 번 급박한 문자 한통으로 제 영혼은 된서리를 맞고 말았습니다. “선생님, 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 둔해빠진 醫者는 또 허접한 후회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날 밤을 함께 새줄 걸, 내려간 뒤 수시로 챙길 걸, 그가 왔듯 내가 갈 걸....... 허접한 후회가 어찌 그리 쓰린지요. 뼈의 마디마디가, 살의 갈피갈피가 쑤시고 또 쑤셨습니다. 그의 선한 얼굴이, 그의 웃음이, 그의 눈물이, 그의 언어가 떠오를 때마다 칼에 베이는 듯 아팠습니다. 그 아내의 오열이 떠오를 때마다 온 몸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도록 부끄러웠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여 찰나마다 숨이 멎곤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오늘 한 깨달음 앞에 무릎 꿇습니다.

 

 

통속한 이 醫者의 죄책감이 이러할진대 연애 오년 동안 사랑의 편지 이천 통을 주고받았던, 부부로 살면서 그 고통의 고비마다 동참했던,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멀쩡했으나 더 이상 온기를 내지 않는 그 뺨을 부비며 울부짖었던, 그 아내의 심경은 오죽할까....... 오히려 내 죄책감 따위는 시건방 떠는 짓 아니겠는가....... 그래, 이 순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내 앞의 아픈 사람 하나하나 제대로 살피는 게 醫者의 애도다. 매일매일 하늘의 애인에게 연애편지를 쓰며 온 영혼으로 견디고 있는 그 아내에게 한약 한 제 정성껏 달여 보내는 게 醫者의 애도다.

 

 

삼가 있는 그대로 그의 삶에 도저한 공감과 지지를 보냅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제가 지니고 있는 마음을 이제는 더 드러내지 않으려 합니다. 자칫 그의 죽음을 욕되게 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막걸리에 감자전 놓고 말할 수 없는 말로 그의 죽음을 이야기할 때가 오겠지요. 그 때 와서 다시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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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29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으며...눈물이 자꾸만 났습니다.
어떻게 아름답고 착한 사람들은 이리도 빨리 떠나는지요..
故人의 명복을 진심으로 머리 숙여 빌며, bari-che님께서도 평화속에서
그분을 기쁘게 다시 뵙기를, 낮은 者의 기도로 대신합니다.

bari_che 2013-07-30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이 분,
醫者의 감수성을 일깨우는 스승으로
제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계실 듯합니다.
 

 

 

선의가 오해받아 악의로 읽히는 일이 드물지 않다.

해명은 변명이 되어 오해를 더욱 깊어지게 만든다.

아픈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 발효하거나 부패한다.

발효는 치유로 부패는 상처로 숙명이 되어 남는다.

완전한 소통은 꿈일 뿐이니 그 숙명만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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