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도끼를 삼켰다
이 수명
자신을 찍으려는 도끼가 왔을 때
나무는 도끼를 삼켰다.
도끼로부터 도망가다가 도끼를 삼켰다.
폭풍우 몰아치던 밤
나무는 번개를 삼켰다.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더 깊이 찔리는 번개를 삼켰다.
* * *
나무가 저를 죽이려는 도끼, 번개를 삼켰다, 할 때 대뜸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삼키다는 말은 두 가지 대칭되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하나는, 억지로 참다.
예컨대 그는 울분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외면과 체념입니다.
다른 하나는, 큰 힘으로 쓸어 가거나 없애버리다.
예컨대 거대한 불길이 마을 하나를 송두리째 삼키고 말았다.
직면과 관통입니다.
울분을 삼키듯 상처를 삼킨다는 느낌인가요?
불길이 마을을 삼키듯 상처를 삼킨다는 느낌인가요?
이 느낌 차이에서 상처는 지속, 증폭되기도 하고 반대로 치유되기도 합니다.
이는 흐느끼면서 우는 것과 엉엉 소리내어 통곡하는 것의 차이와 같습니다.
흐느끼면 슬픔에 휘감깁니다.
통곡하면 슬픔이 뿌려집니다.
다시 한 번 위 시를 천천히 읽어보시겠습니까?
생떼 같은 세온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상처를 어찌 삼켜야 할까요?
이 슬픔을 어찌 울어야 할까요?
이 차이의 공동체적 함의는 과연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