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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감에 대하여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ㅣ 철학자의 돌 1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11월
평점 :
·······늙어가는 사람에게 세상이 등을 돌린다는 우리의 말은 진실이다.(74쪽)
비교적 가깝게 지내는 40대 중반 후배와 최근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새로 구상한 사회적 시도에 관해 언급했더니 그는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이, 형님! 지금 연세가 얼마신데······.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요. 전면에 나서지 마시고 뒤에서 지도만 하세요.”
취중이긴 했지만 그의 말은 분명히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잠깐 서늘한 생각에 잠길 즈음, 음식점 대형 TV 화면은 노래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운 지절거림과 춤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운 우줄거림을 장착한 아이돌그룹으로 어지러이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저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판 과두寡頭 ‘근본 있는’ 늙은이들-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늙은이가 아니다-과 그 떨거지의 관음증을 만족시키기 위해 대중문화 전반이 기획 작품인 젊은, 아니 어린 기능인들의 학예회 판으로 변한 이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늙어가는 ‘근본 없는’ 것들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늙어가는 ‘근본 없는’ 것들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늙은이에게만 있을 수 있는 지혜·기품은 “개나 주어버려”야 할 것이 된지 오래입니다. 늙은이에 대한 존경이 사라진 세상에서 멘토는 그저 대박의 과외교사로 고용됩니다. 늙은이의 따끔한 꾸짖음에 “헐~”로 대응하는 세상에서 힐링은 그냥 “네가 최고다”를 되뇌는 아첨의 기술입니다. 늙은이는 경로석으로 격리됩니다. 늙은이는 달랑 1500원 들고 한의원 가면 풀코스(!) 치료 받는 박리다매 상품으로 처리됩니다. 급기야 대학에서 문과가 폐지되듯 늙은이는 세상에서 폐지됩니다.
세상에서 폐지된 늙은이는 자신을 폐지한 세상에 도착적으로 매달립니다. 자신을 폐지한 세상이 자신을 지켜왔고, 지키고 있으며, 지켜갈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이 뒤집힌 신앙은 정치폭력집단을 형성합니다. 자신이 늙어가는 과정을 훼절하고 기만하며 수탈하는 불의한 매판독재세력의 주구 노릇을 자청합니다. 늙은이는 이렇게 자신의 늙어감에 예의를 표하고 품위를 지켜줄 인간다운 세상 만드는 일에서 등을 돌립니다. 마침내 늙은이는 스스로에게서 등을 돌립니다. 불치병으로서 늙어감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적어도 이것은 대한민국에서 현재 분명히 일어나고 있는 잔혹사건입니다. 늙어가는 사람에게서 세상이 등을 돌리는 것이 보편적 진실인 그 이상으로 대한민국에서는 늙어가는 사람이 세상에서 등을 돌립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등을 돌리는 늙어가는 사람이 늙어감에 대한 장 아메리의 말을 알아들을 리 만무합니다. 정녕 등을 돌리는 대한민국을 똑바로 보는 늙어가는 사람만이 그 뼈 시림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결국 늙어감이란 시간 경과에 따른 생물학적 사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직면하고야 맙니다. 늙어감은 정치경제학적 공간 사건이기도 합니다. 아니 그 의미가 더 중요하거나 본질적입니다. 매판독재분단세력이 자행하는 억압과 착취의 대상이면 그것이 바로 늙어가는 사람입니다. 졸지에 올라버린 담뱃값에 스트레스 받는 노동자면 25세라도 늙은이입니다. 세금 면제로 부를 더 축적한 재벌총수면 75세라도 젊은이입니다.
이제 모두에 말씀드린 제 후배의 말은 이렇게 고쳐야 합니다.
“어이쿠, 형님! 지금 때가 어느 땐데요······. 아무도 나서지 않아요. 전면에 대의 내걸지 마시고 뒤에다 슬쩍 장식만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