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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감에 대하여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ㅣ 철학자의 돌 1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11월
평점 :
30년 동안 정신적으로 깨어 있는 삶을 살려 시도해왔다. 오늘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30년 동안 그저 이런저런 착각에만 빠져 살았다.(163쪽)
현대사회는 중독사회입니다. 중독사회는 자본주의의 요람입니다. 자본주의는 중독에 ‘빠져 있는’ 영혼을 빨아먹고 자라 리바이어던이 됩니다. 리바이어던은 결국 인간사회를 파멸시킬 것입니다. 파멸을 향해 질주하는 현대사회에서 ‘깨어 있는’ 인간이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중독 문제를 깊이 말씀드리면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중독이라 하면 대뜸 알코올이나 마약 같은 물질을 떠올리고 거기에 ‘빠져 있는’ 상황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독의 핵심은 다른 데 있습니다. 핵심은 대상 물질이 아닙니다. 습관도 아닙니다. 고통을 줄이고 즐거움을 찾는 과정에서 있는 그대로의 몸 감각을 떠나 격정상태를 만족시키는 보상으로 나아가는 병리적 반응운동 과정이 중독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성에 상처를 입은 사람은 그 부분에 대해 격정emotionalism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격정은 본디상태의 감성이 왜곡되어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둔한 반응reaction을 하는 것입니다. 예민함은 능동적으로, 둔함은 수동적으로 본디상태의 몸과 함께 외부 자극에 감응response하는 것을 회피하는 격정 방어 작용입니다. 격정 방어 작용은 쌍방향으로 흐릅니다. 고통에서 도망치는 쪽이 그 하나입니다. 여기서는 거짓pseudo 안도감을 보상으로 받습니다. 즐거움을 좇는 쪽이 다른 하나입니다. 여기서는 거짓pseudo 행복감을 보상으로 받습니다.
이 과정을 알코올, 그러니까 술을 예로 들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술 중독은 대부분 모성애 결핍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술은 인간 시생대의 젖을 은유합니다. 술은 안도감과 행복감을 준다는 점에서 젖과 같습니다. 실제로 적정량의 술은 뇌의 GABA신경계를 활성화하여 불안을 제거하고 긴장을 완화해줍니다. 그러나 두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술은 본디상태의 몸 감각을 왜곡하기 때문에 적절하게 조절이 안 된다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젖은 아기로 하여금 맛있게 먹고 그 감각에서 스스로 멈춘 다음 질 높은 수면을 취하게 합니다. 술은 중독자로 하여금 어느 순간부터는 맛을 느끼지 못한 채 마시는 행위에 집착해 조절 능력을 잃고 계속하다가 질 낮은 수면에 떨어지게 합니다. 술이 중독자에게 가져다주는 안도감과 행복감의 끝은 허망감이라는 것이 다른 하나입니다. 하여 술은 중독자의 불안과 우울을 가중시킵니다. 거짓pseudo이라 표현한 소이가 여기 있습니다.
젖과 술 문제를 이제 다시 너른 지평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기가 젖을 먹는 행위는 몸 감각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집니다. 맛을 못 느끼는데도, 배가 부른데도 한사코 집착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중독자가 술을 마시는 행위는 몸 감각이 죽어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집니다. 맛을 못 느끼는데도, 배가 부른데도 한사코 집착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니까 거짓pseudo 행위 자체에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바로 이런 것을 장 아메리는 “착각에만 빠져 살았다.”고 묘사하였습니다. 장 아메리의 고백이 겸양만은 아닐 것입니다. 아픕니다. 이 아픔은 오늘 여기 우리의 아픔입니다. 우리의 착각, 우리의 중독은 무엇입니까?
일제의 패망으로 35년에 걸친 종살이에서 놓여났지만 군정부터 시작된 자주독립과 민주주의, 그리고 민족통일의 왜곡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런저런 착각”의 무더기를 쌓아올렸습니다. 반공, 한미혈맹, 근대화, 선진조국 창조, 안보애국, 새마을, 유신, 국론통일, 한국식민주주의, 국가보위, 민영화, 국민행복, 창조경제.......모두 다 우리에게 거짓pseudo안도감과 행복감을 심어준 중독의 도구들이었습니다. 70년 동안 이 중독에 빠져 있었음에도 각성하지 못한 우리에게 밀어닥친 참담한 결과가 세월호사건, 바로 이것입니다.
이제 여기서 우리 각자가 중독이 주는 허망감을 벗어나 스스로 치유하고, 나아가 ‘깨어 있는’ 상태를 복원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딱.
“오늘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