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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평점 :
긍정사회는 부정적 감정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괴로움과 고통을 대하는 법, 그러한 감정을 형식에 담는 법을 잊어버린다. 니체에 따르면 인간 영혼의 깊이, 위대함, 강인함은 바로 부정적인 것에 머무름으로써 나온다. 인간 정신도 산고의 결과이다.·······고뇌와 정열은 부정성의 형상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부정성 없는 향락에 밀려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진, 피로, 우울과 같이 긍정성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심리적 장애에 의해 대체된다.(21-22쪽)
현대문명의 특징은 아픔과 괴로움에 대한 혐오, 그러니까 무통無痛과 향락으로 요약이 가능합니다. 무통無痛과 향락 자체가 나쁠 리 없겠지만 문제는 이것만을 가치로 삼는 데 있습니다.
우선, 무통 현실. 서구의학의 본질이 진통鎭痛임은 익히 경험한 바와 같습니다. 어디가 되었든 아프면 일단 약국이나 양방의원 가서 진통제부터 처방 받는 게 최근 몇 십 년 동안 형성된 우리의 사회습관입니다. 이제는 산통을 겪기 싫어 무통주사를 맞거나 제왕절개를 하는 경우가 상식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미국의 경우 치료 효과에 매료되어 침은 맞고 싶은데 아픈 게 싫어서 부분 마취 후에 자침刺針하기를 원하는 환자도 드물지 않다고 합니다.
그 다음, 향락 현실. 자본주의 행복은 관능적 쾌락 주변에서만 어슬렁거립니다. 우리나라 TV 켜면 백발백중 다음 셋 가운데 하나가 나옵니다. 연예 이야기, 먹는 이야기, 돈 이야기. 이 세 이야기의 기축이 연예인, 그 중에서도 부박한 캐릭터임은 물론입니다. ‘벌든 빌든 돈 많이 가지고 맛있는 것 먹으며 부박하게 즐기자.’가 우리시대의 슬로건입니다. 여기에 정치와 종교가 두텁게 백업해주고 있으니 승승장구할 따름입니다. 향락 만만세!
더 이상 인간에게 “부정성의 형상”인 “고뇌와 정열”은 필요 없습니다. 하여 더 이상 인간에게 “부정적인 것에 머무름으로써 나온다.”는 “영혼의 깊이, 위대함, 강인함”은 없습니다. 오직 얄팍하고, 사소하고, 연약한, 그래서 향락에 나긋나긋 젖어드는 긍정인만 남습니다. 과하게 즐기다가 “소진, 피로, 우울”에 빠지면 진통제 톡 털어 넣고 다음을 기약하면 그만입니다.
구태여 니체를 인용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향해 가야 하는 저 기품, 그 그윽한 향은 어두움, 그러니까 부정성의 담금질을 통해서만 빚어진다는 사실 말입니다.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피하지 않아야 할 우리의 운명입니다.
극심한 불안과 거기 버금가는 우울로 심리치료가 불가피한 젊은 여성이 찾아왔습니다. 본디 목적은 지루성피부염 치료였습니다. 심리치료를 못내 망설여하기에 사흘 말미를 주어 돌려보냈습니다. 다시 와서 그가 말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긍정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들어와 있는 부정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