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독자의 질문>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게는 사이클이 있는 것 같은데요.

말수가 줄고

다른 사람 얘기에 공감이 전혀 안 되고

즐거움, 슬픔도 없고

이런 상태로 좀 오래 가고나면

늘 유쾌하고

자심감 충만한 모두가 호감 가질 수 있는 

내가 되는데

나를 아는 사람들한테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우울 상태서는 사람도 피하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끝이 있다는 것

지나갈 거라는 사실이 위로가 되지만

유쾌한 나를 느끼고 싶은데... (2013. 9. 4.)

 

 

 

 

 

<나의 대답>

 

자본주의가 생산해낸 최고의 히트 상품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자기계발 개념입니다.

이 자기 계발은 여러가지 형태로 우리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여기에 발 담그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지경이지요.

특히 우리사회는 그 정도가 심합니다.

 

이 자기계발의 핵심은 이른바 긍정주의입니다.

부정(적인 것, 무엇보다, 마음)을 몰아내고 긍정으로 채우면 대박난다는 교설이지요.

부정은 악이며 긍정은 선이라는 이분법에 터 잡은 사기술입니다.

 

부정은 어둡지만 어둠이 곧 악은 아닙니다.

긍정은 밝지만 밝음이 곧 선은 아닙니다.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어느 해 자기 콩밭 옆으로 국도가 나면서 가로등이 설치되었습니다.

낮에는 햋빛이 밤에는 전등빛이 콩밭을 비추자 콩잎이 호박잎만큼이나 커졌습니다.

농부는 대풍의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기대의 나날은 흘러갔지만 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꽃이 피지 않으니 열매가 맺힐 리 없습니다.

콩잎 먹자고 콩을 심은 것은 아닙니다.

농부는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가로등을 철거해달라고 말하기 위해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어둠이 없으면 콩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빛만을 생명의 근거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어둠도 생명의 당당한 근거입니다.

사람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밤에 잠을 자지 못 하면 생명은 오래 못 가 스러지고 맙니다.

 

슬픔, 아픔, 두려움, 분노, 절망감, 허무감.......

마음의 어둠 또한 이런 이치 한가운데 있습니다.

겪을 때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질문하면 전혀 달라집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죽었는데 슬픔을 느끼지 못 한다면 어떨까?

무남독녀 외동딸이 깊이 병들어 있는데 아픔을 느끼지 못 한다면 어떨까?

촛불을 들었다고 국가 권력이 사찰을 하고 있는데 두려움을 느끼지 못 한다면 어떨까? 

.......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겠습니다.

삶의 시간이 온통 허무감으로 가득차 있다면 그것을 우리는 우울증이라 합니다.

그럼,

삶의 시간이 온통 환희로 가득차 있다면 그것을 무어라 해야 할까요>

지극히 정상적이고 간절히 바라는 바인가요?

아니!

아닙니다, 절대!

그런 걸 보고 '미쳤다'고 말합니다!

 

세계는 비대칭적인 대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쁨과 슬픔, 그 둘 가운데 어느 하나가 없어서는 당최 사람이 아닙니다.

기쁠 때가 있고 슬플 때가 있는 법입니다.

기쁠 때 기뻐하고 슬플 때 슬퍼하는 것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경우는 정도의 차이입니다.

격정이 개입하면 기쁨도 슬픔도 병이 되지요.

우울장애 아니면 양극성장애(이른바 조울증)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물론 감정 지각이 전혀 안 되는 경우도 격정의 범주에 속합니다.

만일 지금 걱정하시는 것이 이런 상태라면 치료가 필요합니다.

 

치료 문제를 거론하려면 아마 조금 더 깊은 이야기가 필요하지 싶습니다.

우울장애는 미국 중심의 양의학이 말하는 것처럼 단순한 기분장애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우울장애의 밑절미는 있는 그대로 자신을 인정하지 못 하고 업신여기는 마음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그런 마음이 왔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야 나가는 길도 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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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놀이다.

놀이는 몰두다.

몰두는 향유다.

향유는 공유다.

공유는 번진다.

번져서 하나다.

하나로서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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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9-07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왜 사람들은 쉽게 그렇게 살지 못할까...새삼 안타깝습니다.
오늘도 올려주신 이 아름답고 정다운 사진에, 웃음 짓고 안심을 합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bari_che 2013-09-07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탐욕, 공포(불안/염려), 무지(맹목)를 떠받치는 자본주의, 국가권력, 통속종교.
인간을 망치는 이 악마적 삼각동맹 때문이지요.

서둘러 지나가는 이 가을에도 늘 청안하시길......._()_
 

 

 

나는 우수에 젖은 인간의

미          소          다

나는 산의 너그러운

미         소         다

나는 영원의 바퀴를

아가게 하는 자의

수수께끼 같은

미소다

 

 

샨사의 「측천무후」(하), 최후 세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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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고통에서 눈길을 돌렸다.

내 눈은 별들을 우러러보고 있다.

 

샨사의 「측천무후」(상), 최후 두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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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깨나 하는 샌님 같은 꼬맹이가 교복 첫 두 단추 풀고 라면집 뒷방에 앉아 고량주를 홀짝거리던 풍경에 대한 기억이 어제 같습니다. 십대 끄트머리에 치기어린 일탈의 한 가락으로 그렇게 시작한 술을 사십년 째 마시고 있네요. 아마 그 동안 마신 술을 다 모으면 풀장 하나는 족히 되지 싶습니다.

 

술 때문에 벌어졌던 이런저런 이야기는 다 젖혀두고 아내와 얽힌 에피소드 하나를 말씀드리면 이 사십 년 세월을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워낙 술을 좋아해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변함이 없자, 하루는 소담한 술상을 봐놓고 몇 잔 따라주더니 정색을 하고 묻습니다.

 

“당신한테 술이란 뭐야?”

 

저는 서슴없이 대답합니다.

 

“엄마지.”

 

단순명쾌무인지경! 단도직입감동무비! 아내가 말했습니다.

 

“모자지간 떼어놓으면 벌 받겠네.......”

 

그 날 이후 아내는 건강 걱정하는 언급 이외에 더는 강력히 만류하지 못했습니다. 입때껏 술이 제 몸에 끼친 해독보다 영혼에 끼친 이득이 더 많다고 생각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술은 모유(에 대한 그리움을 다독)입니다. 모유는 유아에게 곧 엄마입니다.

 

술은 액체자아를 빚어냅니다. 홀로 서지 못하는 아기를 보듬어 세워주는 엄마의 부재를, 술에 취해 휘청거림으로써 애도합니다. 또한 엄마 없이 때 이르게 억지로 홀로 서다가 뻣뻣해진 근육자아를 해방합니다.

 

물론 술에 대한 이런 해석을 일찍이 들어보신 적이 없을 것입니다. 억지라고 여기실 분들이 아마 대부분일 테죠. 그러나 아주 오랜 옛날부터 술에는 제의적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 제의적 의미에는 의학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심신을 치유하는 방편이었다는 말입니다. 온갖 몹쓸 병의 원인이라는, 오늘날 우리가 지니는 상식은 현대의학의 모함일 따름입니다.

 

술의 문제는 그런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술의 애도하는 힘, 해방하는 힘은 그 자체로 완성이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음을 알지 못하고 술에 마냥 기대면 언젠가는 술도 독이 되고 맙니다. 중독 상태가 아니더라도 임계점을 넘어선 음주는 슬픔을 통과하려는 사람의 발목을 잡습니다. 술이 제공하는 애도와 해방이 상처 입은 아이를 건강한 어른으로 되게 하려면 명정(酩酊)의 바다를 건너서 명징(明澄)의 땅에 이르러야만 합니다. 취함의 위안이 맑음의 격려로 바뀌려면, 따스함에 깃든 아이에서 서늘함을 타는 어른으로 자라려면, 타고 온 배를 두고 제 발로 걸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작별은 숙명입니다.

 

인간이라면 그 누구나 자신만의 붓다, 자신만의 그리스도가 될 때를 맞습니다. 작은 자아(小我)를 넘어 큰 자아(大我)로 살아야 할, 오직 그렇게 살아야 할 순간과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이 시점부터 참된 대박인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혼자만을 풍요롭게 할 권력, 돈, 명성을 왕창 쥐는 게 대박이 아닙니다. 바르고 착하고 아름답고 튼튼하고 씩씩한 사람 삶이 공동체 전체로 번져가게 하는 것이 대박입니다. 참된 대박, 그 마지막 대운(大運)을 열기 위해 이제 저는 곡진히 몌별(袂別)을 준비하려 합니다.

 

앞으로도 한 잔 술이 절실한 아픈 이와 마주할 자리가 없지 않겠지요. 무애(無碍)의 땅에 계(戒)를 짓는 것은 부질없을 테니 그런 술이라면 굳이 마달 일은 아닙니다. 그저 표표히 명정의 바다를 건너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따름입니다. 액체 자아, 근육자아를 술로 달래며 살아 온 세월이여, 안녕!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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