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도끼를 삼켰다

 

이 수명

 

자신을 찍으려는 도끼가 왔을 때

나무는 도끼를 삼켰다.

도끼로부터 도망가다가 도끼를 삼켰다.

 

폭풍우 몰아치던 밤

나무는 번개를 삼켰다.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더 깊이 찔리는 번개를 삼켰다.

 

 

*       *       *

 

나무가 저를 죽이려는 도끼, 번개를 삼켰다, 할 때 대뜸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삼키다는 말은 두 가지 대칭되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하나는, 억지로 참다.

예컨대 그는 울분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외면과 체념입니다.

 

다른 하나는, 큰 힘으로 쓸어 가거나 없애버리다.

예컨대 거대한 불길이 마을 하나를 송두리째 삼키고 말았다.

직면과 관통입니다.

 

울분을 삼키듯 상처를 삼킨다는 느낌인가요?

불길이 마을을 삼키듯 상처를 삼킨다는 느낌인가요?

 

이 느낌 차이에서 상처는 지속, 증폭되기도 하고 반대로 치유되기도 합니다.

이는 흐느끼면서 우는 것과 엉엉 소리내어 통곡하는 것의 차이와 같습니다.

흐느끼면 슬픔에 휘감깁니다.

통곡하면 슬픔이 뿌려집니다.

 

다시 한 번 위 시를 천천히 읽어보시겠습니까?

 

생떼 같은 세온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상처를 어찌 삼켜야 할까요?

이 슬픔을 어찌 울어야 할까요?

이 차이의 공동체적 함의는 과연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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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태는 이제 정치학이 아니라 정신병리학의 소관처럼 보인다. 이 정권은 환자다. 그들에게는 초자아가 없는가.....없는 것 같다. 그러니 죄의식도 없는 것이다. 이드만 있는 권력이라니.....아직도 사죄하는 사람은 없다. 본래 이드는 사죄하지 않는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5년 전 용산참사 열흘 뒤 쓴 글이다.

마치 오늘 쓴 것 같지 않은가.

우리는 결국 역사를 통해 배우지 않을 경우, 되풀이하는 형벌을 받은 것이다.

어른이 죄 짓고 벌은 아이들에게 뒤집어씌웠으니 겹죄를 지었다.

오늘을 기점으로 혁명의 역사를 쓰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그야말로 끝이다.

고요히 깊은 호흡으로 흰 칼날 파르라니 갈 일이다.

여기서 비로소 참된 치유의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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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열어 말이 죽고

입을 닫아 속이 죽다

어찌 해도 사는 세상

영영 오지 않을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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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남몰래 울던 밤을 기억하라 

 

김 경주

 

 

아마 그는 그 밤에 아무도 몰래 울곤 했을 것이다 

 

어느 시인은 세상에 어느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고 말했지만

세상은 이제 그가 조용히 울던 그 밤을 기억하려 한다 

 

어둠 속에서 조용히 흐느껴본 자들은 안다

자신이 지금 울면서 배웅하고 있는 것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 자신의 울음이라는 사실을 

 

이 울음으로

나는 지금 어딘가에서 내 눈 속을 들여다보는 자들의 밤을

마중 나가고 있다고 

 

그리고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 밤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라고 

 

아마 그는 자신의 그 밤을 떠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끝없는 약속을 하곤 했을 것이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살았다고

세상은 마중과 배웅의 사이에 있는

무수한 주소들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있다고 

 

우리는 그가 조용히 이불을 들추고 일어나

흐느꼈던 그 밤을 기억해야 한다

배웅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선

입을 틀어막고 울어본 자들이

더 많이 필요한 세상에 

 

그 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시간이 올 것이다

 

[# 이 시는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고 노무현 추모시입니다.]

 

*       *       *

 

몇 날 며칠 무능에 빙의되어 허위적대고 있습니다.

아픈 이들 찾아와 절절히 호소해도 허깨비가 그 말을 듣습니다.

그 정도를 가지고 뭐 그리 엄살이냐 싶어 시큰둥해집니다. 

손가락 없어지도록 벽을 긁으며,

손이 으스러지도록 창을 두들기며, 죽어간

아이들 영혼이 톱날 되어 제 심장을 켜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문득 이 시가 떠올랐습니다.

깊은 은유가 일어났습니다.

읽고 또 읽으며 지난 몇 해의 세월, 

거기 떠밀려 생사를 오간 기억들에 잠깁니다.

더는 죽지 못할 그 시각을 향해 내 시간을 뿌리며 살아가기 위해

더는 흘리지 못할 그 눈물을 흘리면서 말입니다.

부디 아이들이, 저 아이들이, 내 아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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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문태준 <가재미> 전문

 

*              *             *

 

마흔 다섯에 한의대에 입학했습니다. 십오 년째 의자(醫者)의 마음을 갈고 닦으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어찌 하면 나를 찾은 아픈 사람들을 잘 치료할 수 있을까, 섬세하게 문진(問診)합니다. 삶의 과정, 현재 주변 상황까지도 챙깁니다. 다른 醫者에 비해 자상하다는 평가에 묻혀 안일하게 지냈습니다. 어느 순간 벼락 같은 음성을 듣습니다.

 

"問診에 앞서 문병(問病)하라."

 

醫者이기에 앞서 인간이니까 말입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 묻기 이전에, 그래 얼마나 아프냐, 물어야 하니까 말입니다. 직업의 함정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아픈 사람 옆에 나란히 누워 눈길을 건네고 아픈 사람이 눈물 쏟아내는 것을 온 영혼으로 받아 안아야 사람이고, 사람인 다음에야 醫者라는 진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아픈 사람이 아픔을 묻는 사람에게 도리어 위로와 치유로 번져온다는 진실. 

 

세월호 참사와  정권의 참람한 행위 때문에 온 백성이 분노, 슬픔, 그리고 우울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醫者로서, 그 이전에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근본 품격을 놓치고 허둥대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참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 반성하는 게 아닙니다. 다시 또 그럴 수 있다는 뜻이므로. 저는 지금 고백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나는 괜찮은 놈이다 라는 자랑질일 수 있으므로. 이 순간 제 삶을 향해 죽비를 내리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맥 잡기 전에 손부터 잡아, 할(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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