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딸아이가 아침 식탁에서 혼잣말처럼 불쑥 말했습니다.

 

“24일 저녁에 알바 가야 하는데·······”

 

저는 그 말을 받아 무심히 답했습니다.

 

“아빠도 상담치료 예약돼 있어.”

 

딸아이가 어릴 때에는 기독교 신앙과 무관하게 어린 딸의 즐거움을 위해 이른바 ‘크리스마스이브’에 케이크를 사놓고 조촐하게 ‘예수님 생신축하파티’를 하곤 했습니다. 사실 기독교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예수 탄신을 축하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시류에 무심코 합류하는 축하라면 쓸데없는 향락일 뿐이고, 유심히 정색하여 하는 축하라면 기독교 신앙 아니라도, 아니 아닐수록 거룩할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견지에서 예수 신앙은 구원의 문제이므로 신앙 밖 일을 거룩하다 할 수 없겠지만 이치상 예수는 기독교만의 전유 대상이어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 특히 개신교가 지금처럼 예수를 교회에 가두면 가둘수록 자신들이 말하는 ‘하나님나라’는 요원한 것입니다. 자기들만의 천국을 구가하면서 스스로를 기만하기 때문에 ‘하나님나라’가 세속 권력과 자본의 통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는 한, 저들에게 구원은 없습니다.

 

 

침 치료 받으러 오신 어르신 한 분이 연민과 독선 사이에서 흔들리는 눈빛으로 제게 묻습니다.

 

“원장선생, 예수 믿으시오?”

 

저는 활짝 웃으며 대답해드렸습니다.

 

“어르신께선 예수 믿으시는군요. 저는 예수 살고 있습니다.”

 

부디 오늘 하루만이라도, 예수 나심을 기리는 사람, 특히 기독교인, 더 특히 개신교인은 “교회 밖에서” 그 분을 만나보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거기서 그 분을 뵐 수 없다면 이른바 신앙이란 다만 삿된 탐욕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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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거대종교는 예외 없이 광활한 대지, 높은 산, 큰 강, 황량한 사막에서 태어났다. 이런 조건이 종교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종교는 근본적으로 휴먼스케일을 벗어난 내러티브를 골간으로 삼는다. 영원. 극락. 천국. 해탈. 구원. 너무 멀고, 너무 높고, 너무 깊고, 너무 넓다. 아득하다 못해 가뭇없이 사라진다. 종교가 일상의 삶 문제, 그러니까 정치경제 문제에 무력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니까 종교 아니냐고 할 것인가. 여기서 무력함이란 해결을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권력과 자본의 주구 노릇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게 종교라면 그게 왜 필요한가.

 

 

진정한 종교에서라면 지금이 영원이어야 한다. 진정한 종교에서라면 여기가 극락이며 천국이어야 한다. 진정한 종교에서라면 자본의 수탈에서 놓여나게 하는 것이 해탈이어야 한다. 진정한 종교에서라면 권력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구원이어야 한다. 멀어도 이를 수 있어야 한다. 높아도 오를 수 있어야 한다. 깊어도 닿을 수 있어야 한다. 넓어도 번져갈 수 있어야 한다. 종교가 정녕 인간의 것이려면 시내 하나 품어 인간다운 삶을 키워내는 낮은 산 아래 마을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인간 앞에서 감히 주절거리지 말라. 얼쩡대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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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4-12-23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ow and Here...현현하지.못하는.메시아는 사악한 악마보다 헛되죠. 운주사 가서 자리펴고 누운 와불 보고 쓸쓸했던 기억이.

bari_che 2014-12-23 19:12   좋아요 0 | URL
각자 자기 자신의 메시아로 순간순간을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창근은 지금 76m 쌍용자동자 평택 공장 굴뚝 위에 있습니다. 굴뚝 위로 올라간 남편을 보고 아내 이자영은 5년 전 부당해고를 당했을 때 겪었던 이상한 병을 다시 앓기 시작했습니다. 굴뚝이 흔들린다는 트윗만 봐도 가슴이 벌렁거립니다. 아들 주강이는 아빠가 거기 올라갔다는 사실을 모른 상태에서 몸살을 된통 앓았습니다. 이들을 만나러 평택 와락(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가족을 위한 치유공간)에 갔습니다. 제가 엄마와 상담하고 치료하는 동안 주강이는 밝은 모습으로 아이들과 뛰놀았습니다. 치료가 끝난 뒤 사진을 찍겠다고 하자 아이들이 몰려와 장난스럽게 포즈를 취합니다. 사진 찍는 이 순간처럼만이라도 이들의 삶이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이 이들을 품지 못할 만큼 후진 나라여서가 아니라 한줌밖에 안 되는 매판과두의 부패와 탐욕 때문에 이들의 삶이 아프고 고단한 것입니다. 우리 중 이들의 이웃 아닌 자 과연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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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14-12-22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아이들이 웃음을 잃지 않도록 하는게 우리 어른들의 의무일텐데요.
아이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이런 세상밖에 못만들어서 정말 미안하다.

bari_che 2014-12-22 11:45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정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은 다시 그러겠다는 말이다.˝
참으로 폐부를 찌르는 아픈 말입니다.

작은 시민 한 사람은 그저 미안해할 따름입니다.
그 작은 시민이 옆 사람의 손을 잡으면
미안함의 함정에서 한 걸음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자꾸 손을 잡아야 합니다.
그렇게 함께 아이들을 지켜야 합니다.

_()_

 

집이 불탄다

무섭다

엄마가 아이를 돌려 세워 감싼다

 

집이 불탄다

무섭다

엄마가 아이와 함께 그것을 본다

 

훗날 병든다

마음에

상처받은 아이 둘 중에 누구일까

 

오늘 눈물로

아이를

사랑한다 하는 너 과연 그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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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6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17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본은 음모를 존재문제로 격상시킨다

누구 아들로 태어나느냐도 능력이라니

자본은 음모를 지하실에서 꺼내놓는다

알아차리게 꾸밀수록 더욱 믿어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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