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물깨나 밴 사람들이 나이 들면서 하기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가 남이 쓴 책을 읽는 것이다. 몇 줄 눈으로 훑으면 대강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짐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앞 부분만 들추어보고는 밀어둔 책이 책상 위에 쌓이기 마련이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 마지못해 집어 읽어보면, 어허! 하는 구석이 나온다. 인사동 어느 뒷골목 어느 건물 뒷벽에 널린 시래기를 문득 발견하듯. 더 큰 진실도 그렇지 않은가.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고 비아냥거렸던 나사렛에서 예수가 나셨으니 말이다. 오늘 성탄 전야. 예수를 궁금해 하며 나사렛으로 가는 이에게 축복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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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하나 읽는데 

눈물이 떨어진다.

시 둘 읽는데

눈물이 번져간다.


시집을 덮는다.


얼마나 울면

몇 번이나 덮으면

이 시들을 다

읽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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昏庸無道拒宇宙

春秋詖聲絶氣運

蜜寐否之迷昧魂

子酉地天離戀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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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마음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기 훨씬 전부터 저는 다양한 인연의 결을 따라 상담자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30년 이상 이런 경험이 쌓이는 동안 크게 3단계로 상담은 숙성되었습니다.

 

 

1. 상담, 평범한 일방성으로서

 

이것은 평범하고 통속한 바로 그 상담입니다. 누구나 접하고 누구나 할 법한 그런 상담입니다. 이 단계에서 상담자는 스스로 주도적으로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치유한다는 의식을 지닙니다. 아무리 내담자가 많은 발을 하더라도 치유의 이니셔티브는 상담자가 쥐고 있습니다. 진실 여부와 무관함은 물론입니다. 여기서 나누는 이야기는 정신의학이나 임상심리학의 내용이 압도적 우위를 점합니다.

 

 

2. 숙담, 평범한 쌍방성으로서

 

이것은 평범하지만 통속하지 않은 상담입니다. 이 단계에서 상담자는 내담자를 더 이상 객체로 다루지 않습니다. 동등한 서로 주체로 대합니다. 내담자도 치유의 주체임을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이야기 속으로 정신의학이나 임상심리학 이외의 내용이 들어옵니다. 이를테면 인문상담의 성격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지요. 함께 마음병과 그 조건인 일상을 가로지르며 폭넓은 치유연대를 형성합니다. 

 

 

3. 숙론, 비범한 쌍방성으로서

 

이것은 비범한 상담입니다. 아니 상담을 넘어선 무엇입니다. 치유 너머의 땅에 발을 내디디는 숭고한 작업입니다. 정신의학, 임상심리학, 그리고 인문학의 영역이 융해됩니다. 상담의 두 당사자가 함께 삶을 깊이 의논합니다. 더불어 새로운 삶을  빚어가는 창조연대를 형성합니다. 그 창조는 기품 있는 양육행위입니다. 인간은 끊임없는 상호 양육으로 공공선을 이룹니다. 그것만이 지복입니다.

 

 

0. 사람들이 묻습니다. 허구한날 아픈 사람들하고 사는데 아프지 않은가? 아픕니다, 심하게. 어찌 사는가? 아픈 사람들과 새로운 삶을 깊이 의논하며 삽니다. 거기 경이가 깃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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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힐링일 수 있는 것은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 온전히 하나가 아닌 한 그 힐링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사회정치적 트라우마에는 사회정치적 힐링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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