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딸아이와 『중용』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촛불 정국과 맞물리며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2010년에 알라딘 서재에 내용을 다시 다듬어 올렸습니다. 그러다가 세월호사건을 맞닥뜨리자 『중용』을 현실 정치의 구체적 콘텍스트에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하여 기본적인 해석은 유지하되 전체 맥락을 세월호사건과 연결하는 것으로 대폭 수정하였습니다. 탈고한 뒤 출판사들과 접촉하였습니다. 책을 내주겠다는 반응은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출간을 포기하고 알라딘 서재에 올리기로 하였습니다. 오늘부터 시작하여 연재가 끝나는 날까지를 제 애도기간으로 삼고자 합니다. 


중용416

-세월호 아이들에게 헌정하다-







차 례


들어가기에 앞서

제1강 들어가며

제2강 제2장-평범함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제3강 제3장-백성은 화산이다

제4강 제4장-특별함이 도를 망친다

제5강 제5장-패도 천하에 중용 설 자리 없다

제6강 제6장-중용은 평등이다

제7강 제7장-중용은 선택의 문제다

제8강 제8장-사소한 것이 위대하다

제9강 제9장-평범해서 어렵다

제10강 제10장-어울리되 휩쓸리지 않는다

제11강 제11장-군자는 스타가 아니다

제12강 제12장-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제13강 제13장-네가 있어 내가 있다

제14강 제14장-내 삶은 내 몫이다

제15강 제15장-강이 되어 흐른다

제16강 제16장-바른 길 가되 자랑하지 않는다

제17강 제20장(1)-생명의 연대 속에 중용이 있다

제18강 제20장(2)-하늘은 그대 안에 있다

제19강 제20장(3)-중용은 영원한 과정이다

제20강 제20장(4)-수신으로 열어 수신으로 닫는다

제21강 제20장(5)-현실에서 통찰한다

제22강 제20장(6)-자신에게 떳떳하면 세상에도 떳떳하다

제23강 제20장(7)-중용은 독한 실천이다

제24강 제21장-참된 인식은 실천을 품고 있다

제25강 제22장-더불어 새로워지고 자란다

제26강 제23장-곡진함이 세상을 바꾼다

제27강 제24장-실천으로 꿰뚫어 본다

제28강 제25장-함께 흘러 생명이 된다

제29강 제26장(1)-온전히 채우면 온전히 비워진다

제30강 제26장(2)-만물은 하나다

제31강 제26장(3)-맑고 순수한 소통이여, 영원하라!

제32강 제27장-성인은 각자 자신의 성인이다

제33강 제28장-오늘은 오늘의 실천을 한다

제34강 제29장-군자는 명예를 백성의 가슴 속에 둔다

제35강 제30장-군자는 백성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

제36강 제31장-군자는 백성과 공경을 주고받는다

제37강 제32장-진실의 전체성을 향해 투명하게 열리다

제38강 제33장-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

제39강 제1장-우리는 우리의 중용을 말한다

제40강 나오며

나온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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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29일은 남은 제 인생의 날들에서 아마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뵙지 못한 지 45년 된 옛 은사에 관한 (것으로 추정되는) 소식의 단서를 찾았습니다. 연락을 넣어놓고 하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분은 제 인생의 행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중학교 국어 선생님이셨습니다. 아기를 낳다 돌아가셨다는 바람결 소리를 듣고 찾기를 40여 년 동안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지만 언제나 가슴 속에 삶 속에 살아계신 분이어서 틈만 나면 이런저런 곳을 기웃거리던 차, 인터넷 검색에서 가능성이 높은 정보를 얻는데 성공했습니다. 만감으로 가슴이 일렁거리던 바로 그 시각,


올해 45살이 된 지인 하나의 부음을 듣습니다. 그는 한의대를 같이 다닌 아우였습니다. 꽤나 오랜 시간 가까이서 애환을 나누었던 사이입니다. 복잡다단한 사연이 얽히면서 소원해졌는데 어느 날 그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끝내 다시 보지 못한 채 영원히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해후와 몌별의 기막힌 교차 때문에 하루 내내 감정의 자맥질이 계속되었습니다. 진료를 끝내고 홀로 동네 술집에 가 앉았습니다. 45년 만에 뵐 수도 있는 은사님에 대한 그리운 생각보다 45살로 생을 마친 아우에 대한 회한의 정념으로 영혼이 적셔졌습니다. 술에 약했지만 그가 즐기던 그 소주,



소주 한 병 시키고 잔 두 개 달라 하니 주모가 갸웃합니다. 남들이야 어찌 보든, 저는 먼저 건너편에 잔을 놓고 가득히 따랐습니다. 제 앞 잔에 가득히 따랐습니다. 그렇게 한 병씩(!) 비우고 그는 떠났습니다. 떠난 뒤에도 오랫동안 그는 제 마음 속에 살아 있을 것입니다. 45년 동안 뵙지 못했지만 은사님이 제 삶의 한가운데 늘 계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모름지기 만남과 헤어짐도 삶과 죽음도 전혀 다른 별개의 사건이 아닌 듯합니다. 울고 웃으며 이렇게 한 생을 살다 보면 울 자리와 웃을 자리가 하나일 수밖에 없지 싶습니다. 아우를 보내며 흘린 눈물이 은사님을 뵐 때도 흐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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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山無人

海無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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