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은 느지막이 도봉산 무수골로 향한다. 다른 계획을 잡기 어려울 때 가곤 하던 곳이다. 지난번 내린 봄비로 무수천 물도 물소리도 깨끔하다. 숲으로 깊이 들어가기 전에 어귀 밤나무집 가서 점심 식사부터 한다. 새콤하니 익은 열무김치 곁들여 잔치국수를 먹는 중에 바깥일 하던 여주인이 들어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뜻밖의 말을 듣는다.

 

여기서 태어나 60년 가까이 살았으나 골짜기 이름을 무수골이라고 부른 적이 없단다. 심지어 보문사 계곡이란 말은 처음 듣는단다. 토박이들은 골 위쪽을 밤나무골이라 부르고 아래쪽을 굿골이라 불렀단다. 물론 밤나무와 무속인이 많아서 생긴 이름이다. 실현 가능성이 작으나 한자로 표기한 관료식 이름을 모두 본디 모습으로 되돌려 놓았으면 좋겠다.

 

도봉산이라는 이름도 마찬가지다. 신라시대 창건된 도봉사라는 절에서 왔다는 설이나 조선 개국과 관련해 도봉산이 됐다는 설은 모두 지배층 중심 사후 서사다. 도봉에서 에서 왔다고 본다. 자운봉을 비롯해 그 주위 암벽들이 지니는 압도적 위상서껀 이어지는 오봉·포대·다락 암릉(巖稜) 길을 가리키는 우리말 이름이 모름지기 엄존했을 테니까.

 

특정 목적에 따라 작위로 지은 이름과 달리 민중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이름은 무작위 소산이다. 인간으로서 산, , 들과 상호작용 하며 살아가는 맥락에 딱 알맞은 표상을 누구랄 수조차 없이, 너나 함께 입에 올려서, 사실상 자연발생 한 이름이다. 이 이름은 시원에 닿은 평등과 자유 팡이시질(networking) 영성을 머금고 있다. 되살려야 할 며리다.

 

길 잃고 헤매기 직전에 담았다고 추정하는 숲 풍경


밤나무골 길을 찾은 뒤 처음 담은 물 풍경 


식사가 끝나갈 무렵 여주인이 허리 아픈 이야기를 한다먹다 말고 나는 침을 꺼내 든다침 치료를 받은 그가 고마움을 표하며 전을 부쳐준다맛나게 먹고 길을 나선다지도에서 확인한바 다른 길과 이어지지 않고 끊어진 비탈길로 들어선다길 잃기로 작정한다마침내 어디선지 알 수 없이 길을 잃고 무작위로 헤맨다숲에 왜 드는지 알고야 말리.


어떻게 해서 밤나무골 길을 찾아 들어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의미 있는 지점을 사진으로 남기지도 않은 걸 보니 넋을 놓은 상태로 떠돌았음에 틀림없다. 정신 차리고 담아 놓은 물 사진이 서른 장 가까이 된다. 밤나무골 물 모심은 제대로 한 듯하다. 새로운, 아니, 본디 이름을 찾아 다시 부를 일 없는 이름 무수골은 이제 어떤 격상을 앞두고 있다.

 

실은 몇 주 전부터 해월(海月) 스승 유택이 있는 원적산을 탐색해 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숲에 드는 게 맞는지 스스로 다시 물었다. 기나긴 여정 뒤라 뜬금없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뭔가 확실히 비어 있다고 느껴서 끈덕지게 물었다. 원적산을 보류하고 위험성이 덜한 밤나무골 어디선가 길 잃기로 돌렸다. 숲이 어떤 슬기를 줄는지 기다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난 5일까지 창덕궁은 <빛, 바람 들이기>라는 이름으로 문과 창문을 열어 놓는 행사를 했다. 본디 의도와는 무관하게 방문객은 그 마주 열리는 문과 창문을 액자 삼아 건너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궁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통 한옥이 품은 이른바 차경(借景) 효과를 누리는 각별한 시공으로 들어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난 3월 청량산 안말골 들어가 길 잃고 헤매다가 손가락 몇 군데 가시에 찔린 적이 있다. 다른 데는 얼마 되지 않아 다 아물었으나 유독 가운뎃손가락 끄트머리 상처가 여태껏 남았었다. 검은색이니 부러진 가시가 박혀 있음이 분명한데 아프지도 성가시지도 않아서 그냥 내버려두었다. 오늘 아침 느닷없이 날카로운 통증이 들이닥치기에 처음으로 자세히 들여다봤다. 신기하게 가시가 염증 없는 상태로 살과 공존(!)하고 있다. 주위 살을 살짝 밀어 올리고 단침(短針)으로 파내주니 작디작은 구멍 하나 남기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손가락 생명체는 무감으로 돌아갔다.



 

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어가려 했는데 불쑥 의문이 든다. 어째서 염증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갑자기 달려든 가시를 검문한 결과 지닌 무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적은 아니라고 판단해 일단 내치지 않고 공생(!)을 시도한다. 얼마간 시간을 두고 좀 더 세심히 살핀바 무기만 없는 게 아니라 주고받을 생명 건더기조차 없다. 공생은커녕 공존할 존재도 아니라고 최종 결론 내린다.” 내 상상력은 여기까지다. 공생하는 통 생명체가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인간인 는 무얼 하고 있었는가? ‘아프지도 성가시지도 않아서라는 근거는 얼마나 아둔하고 덜퉁한가?

 

그러하다. ‘라고 뻐기지만 본디 란 존재하지 않는다. 헤아릴 수조차 없는 나들’(김선우) 팡이시질(networking)이 가동하고 있을 따름이다. 여기에 삼가 참여하려면 나들 속 나는 끝 없이 조프린 얼() 눈으로 나들통 생명 사건 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틈에서 빛이 나온다(레너드 코언). 그 틈 빛을 감지하지 못하는 피상성과 진부함, 그리고 엉성함에서 인간 또는 인류가 저지르는 온갖 악이 나온다(한나 아렌트). 찰나마다 깨어서 섬세 치밀하게 감응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련다. 거대 장엄은 얼핏 본 짝퉁이고, 미세 장엄이야말로 촘촘히 본 진품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신라 승 도선이 창건한 불곡사(佛谷寺)에서 이름을 딴 산이 양주 불곡산이다. 물론 거꾸로 된 서사다. 회양목이 무성해서 겨울이면 산 전체가 붉게 물들었으므로 이를 한자로 음차해 절 이름을 지었다. ()이 붙은 까닭은 골짜기가 많아서일 테다. 북서-남동 방향 일직선으로 늘어선 바위 봉우리 셋과 그들을 이으며 늘어선 바위 등성이가 거느린 골짜기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라는 이름까지 있다. 사패산보다 낮은 산인데 지도에 표기된 골짜기 이름만도 3배 이상이다.

 

지난번에 걸은 사패산 인근을 살피다가 불곡산을 재발견했다. 경강(京江) 지천을 걷던 중 중랑천 발원지가 불곡산이라는 사실만 잠시 확인했는데 그땐 이렇게 다시 마주할 줄 몰랐다. 양주역에서 내려 바로 중랑천 산책로로 들어선다. 정북 방향으로 따라가다가 샘내고개 바로 앞에서 서쪽으로 꺾이는 물길로 접어든다. ‘중랑천 발원지 샘내라는 홍보 겸 안내 기둥이 서 있다. 여기서 샘내라고 부르는 물이 흘러 중랑천이 되고 마침내 한강으로 흘러든다. 샘내 샘 찾기 출발이다.


양주에서 처음 마주한 중랑천

 


지도에 청량골이라고 되어 있는 부근에서 왼쪽으로 틀어 물소리를 들으며 더듬어간다. 자료에 따라서는 청량골 또는 청엽굴 고개를 발원지라 한 것이 있으나 확증 없이 쓴 듯하다. 내가 물 따라 들어가고 있는 이 골짜기는 임꺽정봉과 상투봉 사이 골짜기다. 이게 청량골인지, 청엽굴은 어딘지 확인이 안 된다. 나는 내 식으로 샘내골이라 부르기로 한다. 샘내골 물방울 처음 맺는 곳이 중랑천 발원지임은 분명하다. 이 깊은 골 끝에 닿을 때까지 나는 아무도 만나지 못한다.


샘내골 가장 높은 곳에서 본 물

 

등성이에 닿아 임꺽정봉을 향해 난 험한 길을 오른다. 정상 직전에서 멈춘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 한 나는 산 정상을 밟지 않는다. 등정(登頂) 또는 등반(登攀)은 정복자 위상 은유인 제국주의 alpinism에 복종하는 식민지 행태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 역사로 보아도 오늘날 무심코 즐기는 통속한 등산은 일제가 만들어낸 짝퉁 제국주의에 무릎 꿇는 부역 행위다. 나는 이내 되돌아와 지도에 없는 골짜기 길로 들어선다. 샘내골과 더불어 고개 이룬 여기 이름은 원심이골이다.


임꺽정봉 오르기를 멈추고 돌아본 능선

 

원심이골도 인기 좋은 경로는 아니다. 인적이 바래져 길이 설다. 물 말린 긴 너덜겅 멈춘 곳에 임꺽정 생가터 가는 자락 길 안내판이 서 있다. 이리 반가울 수가! 자락 길 걸어 골짜기 둘을 가로지르니 임꺽정 생가() 보존비가 나타난다. 알다시피 임꺽정은 명종조에 뜨르르했던 백정 출신 의적이다. 지배자에게는 한낱 도적일 뿐이나 피지배자에게는 보존비 표현대로 민중의 횃불로 기억되는 영웅이다. 어쩌면 불곡산 붉은빛이란 임꺽정 횃불 빛을 가리키는지도 모른다.

 

임꺽정 관련 자료를 읽다가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백정은 직업에 따라 분류된 단순 천민 계층이 아니다. 고려시대 중앙아시아에서 흘러든 튀르키예 계통 유목민 타타르-달단 또는 달달-족이다. 세종조에 농경 생활로 이끌려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는 기록이 있다. 유목 생활을 고수하며 점차 고립되는 과정에서 불가촉천민 집단으로 내몰렸지, 싶다. 신분제 혁파로 역사에서 사라졌으나 그렇게 뿔뿔이 흩어지고 알알이 박혀 오늘 K-민주주의 불씨가 되지 않았을까.


임꺽정 생가터 보존비


높지는 않으나 언틀먼틀한 골산인 불곡산

 

불곡산은 이렇게 해서 내게 지우지 못할 기억을 남긴다. 섬세하게 따지면 중랑천과 내가 맺은 인연은 60년도 넘었다. 1965년 서울로 와 중랑천 지천 성북천을 건너다니며 20년간 살았다. 2011년 다시 중랑천 3백여m 거리에 진료소를 차려 돌아와 16년째 살고 있다. 20231월 중랑천 지천 회룡천에서 마침내 생애 정점에 달하는 깨달음을 얻고 그 연장선에서 반제국주의 전사로 살아가다가 민중의 횃불 임꺽정을 중랑천 발원지 불곡산에서 기린다. 억지 서사일 수 없다.

 

지난 5년 동안 서울 안팎 해발 200m급 이상 산 30개를 걸었다. 히말라야는 언감생심이고 백두대간만 보더라도 내가 걸은 산들은 낮다. 등산이 아니니 욕심도 자부도 없다. 평일에 출퇴근하는 옷차림으로 보호 장구는 물론 상비약조차 없이 홀로 걷는다. 이렇게 하는 까닭은 내 걷기 자체가 반제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게 내 운명이기 때문이다. 운명을 천명으로 만들어주는 존재가 숲이고 물이고 땅이고 바람이고 볕이다. 연거푸 320km 이상 걸었으니 좀 줄여도 될 테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