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내희 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싣는다



제가 지식순환협동조합(지순협)의 수익 사업 일환으로 강좌를 하나 진행합니다. 이전에 지순협의 대안대학에 학장으로 참여한 적이 있는데 최근에 지순협 재정 사정이 좋지 않아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자 재능 기부를 하려는 것입니다. 아래 웹자보 내용을 보시고 관심 있는 페친께서는 수강을 검토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웹자보를 널리 퍼뜨려 주셔도 고맙겠습니다.

이번 강좌의 제목은 '맑스와 셰익스피어--자본주의와 연극'입니다. 제가 이런 강좌를 기획하게 된 것은 원래 르네상스 영문학이 전공이었고, <자본>, <그룬트리세>, <잉여가치학설사>, <독일 이데올로기> 등 맑스의 저작 완독 모임을 지난 7-8년 진행해온 점 때문입니다. 맑스를 꼼꼼히 읽는 동안 그가 셰익스피어를 깊고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두 대가의 연관성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래에 첨부하는 강좌 기획 취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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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와 셰익스피어—자본주의와 연극' 강좌 기획 취지
강사: 강내희 (전 중앙대 영문학과, 대학원 문화연구학과 교수)

맑스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정립한 혁명이론가로 유명하지만, 전형적인 19세기 형 서구 교양인이기도 하다. 맑스가 애호한 작가로는 아이스킬로스, 오비디우스, 셰익스피어, 괴테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셰익스피어에 대한 맑스의 관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깊었다. 부인 예니와 교제할 때부터 그는 장인이 될 루트비히 폰 베스트팔렌의 영향을 받아 셰익스피어에 푹 빠졌다고 알려진다. 폰 베스트팔렌은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의 작품 다수를 암송할 수 있었다고 하고, 맑스의 부인 예니와 막내딸 엘레노어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전문 낭송자, 연구자로 전해지고 있다. 물론 이 강좌가 주목하는 것은 평생 셰익스피어의 희곡 작품을 옆에 두고 읽은 맑스 자신이다. 그는 단순한 애호가 수준을 넘어서 탁월한 셰익스피어 전문가였다. 맑스의 저술을 살펴보면 셰익스피어가 다룬 다양한 주제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관한 자신의 연구와 분석에 심도 있게 활용한 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그가 셰익스피어 애독자가 된 것은 그렇다면 자신이 규명하고자 한 자본주의의 진상을 근대 초기의 사회상을 극화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 공산이 크다. 이 강좌에서 우리는 맑스가 어떻게 셰익스피어를 애호하게 되었고, 그의 셰익스피어 사랑과 지식이 얼마나 깊었으며, 그것이 그가 평생 추구한 정치경제학 비판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두 대가가 제출한 ‘유령학’을 통해 그들이 근대성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등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이 강좌는 아래와 같이 5강으로 구성된다.

제1강. 셰익스피어의 애독자 맑스: 맑스와 셰익스피어의 관계; 맑스의 어린 시절; 부인 예니의 가족; 장인 루트비히 폰 베스트팔렌의 영향; 맑스가 셰익스피어를 탐독한 까닭; 근대 세계 탐구자로서 셰익스피어와 맑스; 맑스의 저작에 나타난 셰익스피어의 흔적; 맑스의 셰익스피어 활용 방식

제2강. ‘문학자’ 맑스와 자본이라는 메두사: 독일 낭만주의의 후예 맑스; 페르세우스가 되어 자본주의 지옥의 탐사에 나선 맑스(“너의 길을 가라”); 메두사의 머리와 맑스가 잡으러 나선 자본이라는 ‘우두머리(Kapital)’; 현상과 본질에 대한 햄릿의 태도(“저는 ‘보인다’는 모릅니다”); 자본주의의 진실 규명을 위한 맑스의 기획(정치경제학 비판)

제3강. 근대 세계의 탐구자 셰익스피어와 맑스. 봉건적 생산양식의 붕괴와 근대적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등장; 르네상스 영국에서 근대적 연극 장르의 출현; 근대적 개인의 자아 형성과 역할 연기; 뒤죽박죽인 세상 또는 상품생산 사회에서 진실 감별; “세상은 무대”―전형적 근대인 햄릿; 근대 세계체계 최고의 비판자 맑스

제4강. 맑스와 셰익스피어의 유령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유령이 제기하는 문제들; 아버지 유령에 대한 햄릿의 태도; 자본주의 사회의 유령들 또는 판타스마고리아; 『자본』에서 맑스의 물신숭배 비판; 현상과 본질의 관계—셰익스피어와 맑스에게서 진실의 문제; 근대성의 이해와 ‘유령학’의 문제설정

제5강. 자본주의라는 무대. 자본주의 극의 제1막과 제2막—가치의 생산과 실현; 자본주의 무대 위 햄릿으로서의 맑스, 자본주의적 생산 담지자로서 자본가와 노동자 또는 자본주의 극의 등장인물들; 자본주의를 배역으로 등장시킨 무대로서 『자본』 또는 연출가 맑스; 『자본』에 나타난 연극적 요소들과 그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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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과 쉼을 날카롭게 구별하지 않는다. 모든 공휴일, 심지어 설날·한가위에도 한의원을 연다. 일요일엔 닫아 진료는 하지 않지만, 다른 일을 하러 숲이나 물이나 미술관이나 박물관으로 출근한다. 그 다른 곳에서 한의원에서보다 더 열일한다. 이런 진실을 심지어 옆지기도 딸아이도 온새미로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4월 중순쯤 옆지기가 629, 30일로 내 항공권을 예약했다고 알려주었다. ‘당신에게도 이런 쉼이 필요하다.’라면서. “이런이란 말이 특별하다기보다 각별한 까닭은 거기가 하늘을 날아 오가고 올레길이 있으며 4·3과 마주하는 제주여서다; 즐거움과 아픔을 날카로운 동시성으로 전달해 주는 곳이 제주 말고는 없어서다.

 

일요일 아침에 도착해 월요일 아침에 떠나기까지 어디를 거점으로 어떻게 걸을지 틈틈이 톺아본다. 결국 공항 근처에 숙소 잡고 그 앞뒤 올레길 공항 구간과 17구간 걷기로 대강을 잡는다. 17구간은 16구간 경계 직전에서 벗어나 마을 길 걸어 돌아오기로 경로를 짠다. 점심·저녁 먹을 식당과 마무리 산책할 곳도 정한다.

 

이대로 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길든 짧든 여행 본성이 그렇다. 결정 요인은 날씨와 그에 따른 체력 문제다. 초기 예보와 달리 날씨는 청명 고온이다. 아침에 땡볕에 얼마간 노출된 피부가 화상을 입을 정도다. 양산을 쓰고 비 오듯 땀을 흘리며 걷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이 상태로는 안 된다. 여정을 대폭 줄여야겠다.


 

공항에서 출발해 숙소로 가는 올레길을 걸으며 여정은 즉각 바뀐다. 뿐만이 아니다. 검색 땐 365일 영업이라 했던 식당에 자물쇠가 걸려 있다. 되돌아 나와 겨우 백반집 찾아 여기까지 와서 또 백반이구나하며 아침을 먹는다. 섬세하고 친절한 주인 닮은 숙소에 들러 짐을 줄인다. 다음 갈 곳이 유일한 부동 목적지다.



제주북부예비검속희생자 위령비. 이 여행을 준비하면서 예비검속이란 말과 처음 마주쳤다. 6·25 발발 직후 제주 해병대가 불법 계엄으로 4·3 관련 혐의를 뒤집어씌운 사람들을 미리 잡아들여 집단 처형한 사건이었다. 사회 지도층 인사, 청년을 주 대상으로 삼아 기획한 국가 살인 범죄였다. 4·3사건 시즌2인 셈이다.

 

예비검속은 국권 상실기 독립 투사를 잡아 죽이기 위해 왜놈들이 만든 악제다. 미군정이 폐지했는데 이승만 정권이 되살려 천인공노할 범죄 수단으로 써먹었다. 남부는 모슬포 중심으로 북부는 여기 공항을 중심으로 자행되었다. 올해 614일 제주북부예비검속희생자 합동 위령제가 열렸다. 보름 뒤 내가 그 자리에 선다.

 

나는 준비해 간 정수로 예를 갖추고 묵념 올린다. 깊이 머리 숙여 사죄한다. 예비검속을 벌인 떼거리와 똑같은 무리가 지금도 준동하고 있는 현실을 사뢴다. 김명신 일당을 준엄하게 심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 염치없이 삼가 청한다. 일부러 찾지 않는 한, 눈에 띌 리 없는 후미진 이곳이 못내 송구스럽다. 목이 멘다.

 

무거운 발길을 땡볕에 그을리며 올레길 17구간으로 들어선다. 올레길 17구간은 제주 원도심에서 광령리까지 이어진다. 광령리 동쪽 경계는 광령천으로 형성된다. 광령천은 주민 대부분이 무수천(無愁川)이라 부른다. 일단 무수천까지 가보기로 한다. 내가 좋아하는 서울 도봉산 무수천과 같은 이름이라서 여정에 포함했다.

 

17구간은 거의 모든 구간이 해안도로를 따라가므로 바다 풍경을 한껏 누릴 수 있다. 일망무제 수평선이 가슴 경계를 지운다. 두 겹 수평선 같은 전라남도 땅, 세 겹 수평선 같은 보라색 구름 띠가 신비감을 자아낸다. 여러 결을 이루는 비췻빛 바닷물이 단연 매혹이다. 바닷가 풀밭에 난대 식물이 피운 들꽃들도 눈부시다.


 

이런저런 탐색에 빠져 걷다 보니 시간은 후딱후딱 지나가고 공간은 시적시적 다가온다. 점심 먹을 시각에야 겨우 무수천과 바다가 만나는 두물머리에 닿는다. 원계획대로 무수천 따라 중산간으로 들어가는 일은 무리다. 시간도 그렇지만 불볕 아래 탕진되는 체력이 문제다. 두물머리 풍경을 찬찬히 살핀 뒤 다시 결정한다.

 

무수천은 한라산 정상 가까운 곳에서 발원해 25km를 흘러간다. 제주 하천 가운데 가장 길다. 왜 무수천이라 불러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신산한 삶에서 우러나온 비원을 담은 듯하다. 적당한 지점에 바닷물이 역류하지 못하게 턱을 지워 천연 담수 수영장을 만들었다. 무수천 이름에 걸맞은 여름 풍경이다.


 

한참을 돌아보면서 새 경로를 짠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문 연 식당을 어렵사리 찾아낸다. 밥 먹고 마을 길을 잠시 걸어, 왔던 길로 되돌아온다. 어지럽게 난개발된 도시 외곽 골목길을 걷느니 봤던 바다를 다시 보면서 걷기로 한다. 오른쪽으로 고개 돌려서 봤던 바다를 왼쪽으로 고개 돌려서 보니, 사뭇 다르다. 잘했다.


 

사실은 시선 차이보다도 시간에 따른 대기와 광선 차이가 새로운 바다를 빚어냈다고 해야 정확할 테다. 어찌 됐든 뜻밖에 경험을 만끽하면서, 왔던 길 되돌아갈 때 느끼는 아뜩함을 잊는다. 여섯 시간을 꼬박 걸어 숙소에 다시 다다른다. 잠시 땀을 들인 뒤 여행 마무리를 생각한다: 맛있는 저녁 식사와 일몰 풍경 보기.

 

숙소 주인이 추천한 식당이 여럿 있었으나 마지막에 딱 한 곳으로 간다. 음식도 주인도 기대 이상이다. 먹고 난 뒤 서쪽 하늘 아래 바닷가로 나간다. 장엄하지 않아서 감동이다. 고요한 일상에 배어드는 붉은 빛이 얼마나 다정하던지.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각 직전까지 다감 속에 깃들다가 돌아간다. 별것 없어 별난 여행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잠에서 깬다. 전혀 피곤하지 않다. 기상정보를 확인하고 건강 앱을 열어보니 숲과 물을 걸었던 최근 4년 중 가장 많이 걸었다고 나온다: 26.3km. 해가 더 뜨거운 각도로 올라오기 전에 출발한다. 다시 올레길 걸어 공항에 도착한 뒤 숙소 주인에게 인사를 남긴다. 그에게서 온 답글이 가히 화룡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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