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어둠의 천문학
은하른(신박천문연구소) 지음 / 든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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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 일흔을 넘기면 세상만사에 더는 놀랄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산전수전 겪으며 쌓아온 경험치는 웬만한 감정의 파고를 무디게 만들었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소원을 빌거나 시적 영감을 떠올리는 일도 이젠 그저 익숙한 노년의 소일거리였다. 그런데 은하른의 <어둠의 천문학>은 내가 평생 알고 있던 그 익숙한 밤하늘의 따스한 가죽을 단숨에 벗겨버렸다. 이 책은 다정하지 않다. 오히려 지독하리만큼 차갑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찰나의 먼지인지를 물리학적 증거들을 통해 들이밀며 나를 압도한다.

 

우리는 흔히 밤하늘을 보며 낭만을 말한다. 별빛은 누군가의 그리움이고, 은하수는 영원한 생명의 상징처럼 읽히곤 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별빛이 가득한 우주는 위로가 아니라, 인간이 감히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심연이며 코즈믹 호러의 현장이라고 단언한다. 저자가 묘사하는 블랙홀과 우주의 팽창은 교과서 속 지식이 아니라, 한 번 발을 들이면 영원히 소멸해버리는 절대적인 어둠의 공포로 다가온다. 일흔 해를 넘게 살며 나름의 단단한 자아를 구축해왔다고 믿었으나, 광대한 우주의 서늘한 표정 앞에서는 그 세월조차 한 줌의 모래보다 가볍게 느껴졌다.

 

이 책의 백미는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에 있다. 저자 은하른은 어린 시절 겪은 강렬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의 천문학이 놓쳤던 실제적인 감각을 복원해낸다. 그는 논문과 저널을 탐독하며 얻은 차가운 데이터들을 독창적인 해석으로 버무려, 독자가 우주의 심연을 피부로 느끼게 만든다. 특히 우주가 끊임없이 팽창하고 결국 모든 것이 흩어져 암흑만 남게 될 것이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죽음을 목전에 둔 노년의 심경과 묘한 공명이 일어났다. 개인의 소멸이 아닌 우주 전체의 소멸이라는 거시적인 허무 앞에서, 오히려 기이한 해방감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추천사의 경고대로 이 책을 덮고 나면 더 이상 밤하늘을 이전처럼 볼 수 없게 된다. 예전에는 별을 보며 손주들의 앞날을 빌었으나, 이제는 저 별빛이 수억 년 전의 죽은 빛일지도 모른다는 사실과 그 너머에 도사린 무한한 진공의 무게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공포인 동시에, 인간이라는 미약한 존재가 이 거대한 우주의 드라마 속에 잠시나마 머물다 간다는 경외심이기도 하다.

 

이 책은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우주는 아름다운가, 아니면 두려운가. 내가 내린 답은 두렵기에 아름답다는 것이다. 압도적인 어둠이 있기에 그 안에 점 찍힌 미미한 생명의 빛이 역설적으로 소중해 보이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열정과는 또 다른, 생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이 서늘한 진실은 나에게 새로운 겸손을 가르쳐주었다. 밤하늘을 보며 낭만을 찾기엔 이미 너무 늦었거나 혹은 너무 많이 알아버린 우리 세대에게, 이 책은 우주라는 거울을 통해 나 자신의 실존을 직시하게 만드는 가장 지독하고도 매혹적인 안내서다.

 

이제 나는 다시 밤하늘을 본다. 그곳에는 낭만 대신 정적과 심연이 가득하지만, 나는 비로소 우주의 진짜 얼굴을 마주한 기분이다. 은하른이 안내한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평온을 찾았다. 세상의 모든 소란이 잠드는 밤, 홀로 우주의 고독을 마주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다만, 당신이 알던 따뜻한 별밤을 잃어버릴 각오는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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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작은 섬 알래스카에서
박은애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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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알래스카는 우리가 흔히 매체에서 보던 찬란한 오로라와 설산의 낭만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거칠고 습하며, 때로는 지독하게 고독한 현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 고립된 시간 속에서 오히려 가족의 의미를 더 깊게 길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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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작은 섬 알래스카에서
박은애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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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칠십 평생을 살다 보니 이제는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무딘 마음이 생긴 줄 알았다. 익숙한 동네, 수십 년 된 인연들, 그리고 정해진 일과 속에서 평온을 찾는 것이 노년의 미덕이라 여겼다. 그런데 여기, 모든 것을 정리하고 단 열두 개의 가방만 든 채 알래스카의 작은 섬 캐치캔으로 떠난 한 가족의 이야기가 내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박은애 저자의 세상 끝 작은 섬, 알래스카에서는 단순히 낯선 땅으로의 이주 기록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용기에 관한 보고서다.

 

70대의 시선으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떠남의 무게였다. 젊은 날의 떠남은 기회와 정복의 의미가 강하지만, 중년 이후의 떠남은 버림비움의 과정이다. 저자는 한국에서의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신앙과 신념을 따라 알래스카라는 마지막 개척지를 선택했다. 1년에 300일 이상 비가 내리고, 길 위에서 곰을 마주치는 그 낯선 풍경 속에서 저자가 겪었을 당혹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 역시 은퇴 후 조용한 시골이나 낯선 환경에서의 삶을 꿈꿔본 적이 있지만, 언어의 장벽과 고립감을 견디며 정착한다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고행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책 속의 알래스카는 우리가 흔히 매체에서 보던 찬란한 오로라와 설산의 낭만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거칠고 습하며, 때로는 지독하게 고독한 현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 고립된 시간 속에서 오히려 가족의 의미를 더 깊게 길어 올린다. 곰과 이웃이 되는 법을 배우고, 쏟아지는 비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마치 우리가 노년에 접어들며 신체의 노쇠함이나 사회적 역할의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닮아 있다. 저항할 수 없는 환경 앞에서 자신을 깎아내고 적응해가는 그 겸손한 태도는, 삶을 관조하는 노년의 자세와 맞닿아 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대목은 연어에 대한 성찰이다.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삶을 통해 저자는 흔들리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운다. 우리 세대는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정작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잊고 살 때가 많았다. 저자가 알래스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발견한 것은 결국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충분히 용감하다는 자기 긍정이다. 이는 비단 낯선 땅으로 떠난 이들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어 변화된 환경과 관계 속에서 낯선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 노년 세대에게도 절실한 위로가 된다.

 

노년이 되면 누구나 자신만의 작은 섬에 갇히기 쉽다. 자녀들은 장성해 떠나고, 사회적 유대감은 헐거워지며, 익숙했던 세상은 빠르게 변해간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말해주는 듯하다. 고립은 외로움이 아니라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축복의 시간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저자가 낯선 알래스카에서 가족과 함께 오로라를 바라보며 느꼈을 그 경외감은, 우리가 매일 아침 맞이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충분히 발견될 수 있는 가치들이다.

 

문장은 담백하고 따뜻하다. 고난을 과장하지도, 성취를 뽐내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고, 비를 맞으며 걷고, 이웃과 마음을 나누는 사소한 순간들을 기록했다. 그 진솔함이 70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선 이들에게 이 책은 새로운 도전을 부추기기보다, 지금껏 걸어온 그 길 자체가 하나의 개척이었음을, 그리고 앞으로 맞이할 낯선 시간들 또한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임을 나직이 속삭여준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내가 사는 이 익숙한 동네를 다시 바라본다. 알래스카의 캐치캔만큼이나 이곳도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자 신비로운 개척지일지 모른다. 저자가 건넨 따뜻한 위로 덕분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걸음에도 조금 더 힘이 실린다. 삶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알래스카를 지나고 있는 연어들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용감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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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 다시 이름을 찾다
추성은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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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 다 키워 보내고,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병마와 싸우며 우리 노년 세대는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 혹은 ‘잊혀진 사람’으로 규정하기 쉽다. 하지만 성경은 나오미의 실패한 인생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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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 다시 이름을 찾다
추성은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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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칠십 평생을 살다 보니 인생은 결국 상실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젊을 적엔 무언가를 얻고 채우는 것에 혈안이 되어 살았지만, 이제는 곁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내 몸의 기운도 예전 같지 않음을 매일같이 확인하며 산다. 그런 내게 추성은의 <나오미, 다시 이름을 찾다>는 단순한 성경 해석서를 넘어, 내 지난 세월의 상처를 가만히 어루만져 주는 손길 같았다.

 

우리는 그동안 룻기를 보아스와 룻의 로맨스, 혹은 다윗 가문의 족보 이야기로만 소비해 왔다. 하지만 이 책은 그 화려한 결과물 뒤에 가려진 한 여인, ‘나오미의 심연을 파고든다. 남편과 두 아들을 타지에서 잃고 빈손으로 돌아와 나를 나오미(기쁨)라 부르지 말고 마라(쓴맛)라 부르라고 일갈하던 그녀의 외침이 내 가슴을 쳤다.

 

나 역시 살면서 이름 대신 직함이나 역할로 불리며 살았다.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버지, 혹은 어느 교회의 목사로. 그러다 그 역할들이 하나씩 수명을 다해 떨어져 나갈 때, 나 또한 스스로를 쓴맛이라 규정하며 골방으로 숨어들고 싶었던 적이 왜 없었겠는가. 자신의 고통을 정직하게 대면하고 이름을 바꿔 부를 수밖에 없었던 나오미의 처절함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년의 고독과 묘하게 닮아 있다.

 

저자는 고대 이스라엘의 고엘제도나 수혼제도를 딱딱한 법률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 메마른 제도 안에서 어떻게 헤세드(변함없는 사랑)’가 발현되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이방 여인 룻의 헌신과 보아스의 책임감은 단순히 도덕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너진 한 인간, 즉 나오미의 존재를 다시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세밀한 연출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깨달은 것은, 회복이란 결코 혼자서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룻이라는 며느리가 곁을 지켰고, 보아스라는 인물이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었듯, 우리 삶에도 보이지 않는 헤세드가 작동하고 있었음을 돌아보게 된다. 지난 세월 내가 겪은 수많은 상실 속에서도 오늘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묵묵한 희생과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이 있었기 때문임을 70이 되어서야 비로소 겸허히 고백하게 된다.

 

이 책의 중반부에서 저자는 묻는다. “지금 어떤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고 있는가? 아직도 마라인가?” 이 질문은 내게 서늘한 각성을 주었다. 자식들 다 키워 보내고,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병마와 싸우며 우리 노년 세대는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혹은 잊혀진 사람으로 규정하기 쉽다. 하지만 성경은 나오미의 실패한 인생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셨다.

 

나오미가 다시 기쁨을 회복했을 때, 그녀는 단순히 손주를 얻은 할머니로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다윗의 계보를 잇는 거대한 구속사의 당당한 주역이 되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의 상황이 당신의 이름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를 포기한 그 마라의 자리에서도 여전히 우리를 나오미로 부르고 계신다고 말이다.

 

이 책은 유려한 문장 뒤에 단단한 용기를 숨기고 있다. 룻기를 여성의 시선으로, 특히 고통받는 단독자의 시선으로 읽어낸 저자의 통찰은 탁월하다. 70대의 눈으로 본 이 책은 단순한 종교 서적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존재 회복의 보고서.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마라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비록 육신은 쇠잔해지고 손에 쥔 것은 줄어들었을지언정, 내 존재의 근원은 여전히 기쁨안에 있음을 이 책을 통해 확인했기 때문이다. 상처 입은 과거로 자신을 정의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리고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잃은 모든 나오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당신은 여전히 귀하고, 당신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노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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