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척학전집 : 싸움의 교양 - 야망은 큰데 왜 맨손인가 세계척학전집 5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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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월을 비축해 70대의 언덕에 올라서서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인생이란 결국 크고 작은 싸움의 연속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는 세상이 정의와 공정이라는 자로 재단되는 줄 알았고, 내 논리가 맞고 열심히 노력만 하면 언제나 승리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삶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정의가 패배하고, 논리가 힘 앞에 무릎 꿇으며, 정당한 노력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불공정한 순간들을 숱하게 목격했다.

 

이 책은 바로 그 불편한 진실, 즉 세상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차가운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시작한다. 나이가 들면서 깨닫게 된 가장 큰 지혜 중 하나는, 갈등과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감정을 앞세우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는 점이다. 청춘의 시절에는 억울함에 치를 떨고 분노를 터뜨리며 맨손으로 바위에 부딪히곤 했다. 그러나 이 책은 갈등을 감정이 아닌 전략구조의 눈으로 바라보라고 나직하게 타이른다. 저자는 손자병법과 마키아벨리, 현대의 게임이론까지 종횡무진하며, 우리가 왜 그토록 노력하고도 정당한 몫을 빼앗겼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를 파헤친다. 그것은 개인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을 읽는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뼈아프면서도 정확하다.

 

내 이익을 지키고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적인 다툼이나 집단 간의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절감하는 것은 정면충돌은 언제나 쌍방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핵심은 단순하면서도 명쾌하다. 단순히 싸워서 이기는 기술을 알려주는 처세술이 아니라, 애초에 나에게 유리한 판을 짜는 법을 가르쳐준다. 힘과 힘이 부딪치는 무모한 싸움 대신, 상대가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영리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한 수를 더 읽으면, 열 수를 덜 싸운다.” 책에 등장하는 이 한 문장은 인생의 노년기에 이른 내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젊은 날의 나는 한 수를 더 읽기보다 눈앞의 싸움에 열 배의 힘을 쏟아붓곤 했다. 혈기왕성하게 부딪치느라 몸과 마음이 상했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구조를 이용하고 판을 짜는 사고는 결코 비열한 꼼수가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소모전을 줄이고, 나와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가장 높은 차원의 교양이자 지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냉혹한 문법 위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말하는 진정한 싸움의 의미다.

 

흥미롭게도 이 책은 거친 전장과 처세의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고, 인간 삶의 가장 깊은 수수께끼인 사랑의 영역으로 시선을 확장한다. 우리는 왜 사랑 앞에서 그토록 반복해서 넘어지고, 왜 어떤 이에게 자석처럼 끌리며, 왜 허망하게 무너지는가. 저자는 사랑을 잘하는 기술적인 방법을 처방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왜 그 관계 안에서 그토록 취약해지는지 구조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인간은 누구나 완벽하지 않다. 70년을 살며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겪었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롭고 결핍된 존재라는 사실만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사랑은 내가 완벽해지거나 상대방을 완벽하게 만들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나도 너도, 그리고 우리가 맺는 이 관계도 결코 완벽할 수 없다는 비극적인 사실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진짜 사랑과 선택이 시작된다.

 

이 책은 더 이상 거친 세상에 맨손으로 나가지 말라고 등을 두드려주는 단단한 지침서다. 무작정 부딪치다 상처 입은 이들에게는 판을 읽는 혜안을 주고, 인간관계의 굴레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는 구조적 이해를 통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삶이라는 치열한 전장에서 상처받지 않고 나만의 중심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차갑고도 다정한 전략서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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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피벗 - AI 시대, 개인과 기업의 생존 공식을 바꾸는 법
최연성 지음 / 터닝페이지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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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경험과 지식이 단단한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굳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70대에 접어든 지금, 뒤를 돌아보면 평생을 바쳐 다듬어온 나만의 직무적 역량과 삶의 노하우가 성벽처럼 굳건히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거대한 벽에 부딪힌 듯한 막막함도 밀려온다. 인공지능(AI)이 코딩과 번역을 하고 문서 작성을 대신하는 시대, 우리가 평생 사람의 영역이라 믿었던 일들이 순식간에 자동화되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내가 쌓아온 전문성은 여전히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은 비단 젊은 세대만의 고민이 아니다. 은퇴 후에도 지역 사회에서 역할을 찾고, 글을 쓰고, 삶의 궤적을 이어가려는 노년에게도 이 질문은 생존과 존엄의 문제로 다가온다.

 

최연성의 <전략적 피벗>은 바로 이 지점에서 명쾌한 혜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피벗(Pivot)’을 단순히 하던 일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도망치는 이직이나 전업으로 보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피벗은 농구에서 한쪽 발은 땅에 붙여 축을 유지한 채 다른 발을 움직여 방향을 바꾸는 것처럼, 지금까지 쌓아온 핵심 역량이라는 축은 단단히 굳게 붙잡되 그것이 더 높은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과 맥락으로 옮겨가는 전략적 방향 전환이다. , 전문성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배치하는 것이라는 선언이다. 이 문장은 과거의 영광에 머무르거나 급변하는 세태에 소외감을 느끼던 노년의 가슴에 큰 울림을 준다.

 

책은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붕괴라는 강렬한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22년간 한 직장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쌓았던 인재조차 회사라는 맥락이 사라지자 자신의 경력을 어디에 써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는 일화는 서늘한 경각심을 준다. 이는 오늘날 AI와 인구 구조 변화라는 거대한 파도를 맞이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특정 시스템이나 조직에만 최적화된 전문성은 고인 물처럼 언제든 낡은 자산이 될 수 있다. 평생을 바친 직장에서 물러난 뒤, 혹은 기존의 사회적 역할이 다한 뒤에 찾아오는 상실감은 어쩌면 자신의 역량을 담아낼 새로운 그릇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변화에 떠밀려 허우적거리기 전에, 스스로 작은 실험을 설계하고 실패를 학습으로 전환하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노년의 피벗은 청년들의 그것처럼 저돌적이거나 전면적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평생 축적한 삶의 지혜와 윤리 의식,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이라는 단단한 축이 있기에 더욱 안정적인 피벗이 가능하다. 예컨대 평생 행정이나 경영 일선에서 다진 조직 관리 역량은 은퇴 후 지역 공동체의 갈등을 중재하고 자산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사회적 자산으로 재배치될 수 있다. 서재에 갇혀 혼자 쓰던 글을 사회적 문제를 환기하는 칼럼으로 세상에 내놓는 것 역시 훌륭한 직무적·공간적 피벗이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생존 전략은 무작정 버티는 미련함도, 불안감에 휩쓸려 아무 방향으로나 뛰어드는 무모함도 아니다.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무엇인지 냉정하게 파악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맥락에 맞춰 그 무기의 쓰임새를 유연하게 바꾸는 유연함이다.

 

흔히 노년기를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수동적인 시기로 치부하곤 한다. 그러나 <전략적 피벗>을 덮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70대의 삶 역시 끊임없이 내 역량을 더 가치 있는 곳으로 옮겨 심는 전략적 피벗의 연속이어야 한다. 급변하는 세상 앞에 지레 겁먹고 뒷방 늙은이로 물러설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수십 년간 다듬어온 묵직한 축이 있지 않은가. 이제 필요한 것은 변화를 기회로 바라보는 유연한 시선과, 내 안의 전문성을 세상이 필요한 곳에 다시 배치하겠다는 작은 용기다. 변화가 완성되기 전, 나의 역량을 더 큰 기회로 옮겨 심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실전 가이드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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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도 모르는 치매 케어 비법 - 개별적 특성을 존중하는 테일러드 케어
황이선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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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가 칠십 줄에 접어들면 치매라는 단어는 더 이상 남의 집 이야기가 아니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우스갯소리로 건망증을 한탄하다가도, 어느 순간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낀다. 노년의 삶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육체의 쇠락보다 라는 정체성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접하게 된 황이선 저자의 <AI도 모르는 치매 케어 비법>은 막연한 공포에 사로잡힌 나 같은 노년층에게,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걷는 가족들에게 실질적인 등불이 되어주는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치매 증상을 설명하는 의학 서적이나 간병인의 수기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저자는 왜 테일러드 케어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인공지능이 만사를 해결해줄 것 같은 시대라지만, 치매 환자의 불규칙하고 복합적인 감정과 행동을 기계적인 알고리즘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살아온 궤적이 다르고 성격이 다른데, 어떻게 천편일률적인 돌봄이 가능하겠는가. 저자가 제시하는 4단계 케어 프로세스개별 특성 분석, 케어 준비, 이상행동 관찰 및 기록, 응급상황 대처는 치매 돌봄을 하나의 전문적인 서비스 시스템으로 정립하려는 의지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치매 어르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44가지 방법이다. 우리 세대는 흔히 치매를 정신이 나간 병으로 치부하며 환자를 수동적인 관리 대상으로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책은 그들의 이상행동 뒤에 숨겨진 말하지 못한 욕구불안을 읽어내라고 조언한다. 환자의 과거 직업, 취향, 습관을 분석해 맞춤형 대응을 하는 것은 결국 그분을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이는 내가 평소 가져왔던 노인 요양 시설의 전문화와 존엄성 유지라는 문제의식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저자는 치매 케어를 개인의 희생이나 기술의 영역을 넘어 시스템적 협업의 문제로 확장한다. 이 지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흔히 치매 환자가 발생하면 그 가족은 죄책감과 피로감에 짓눌려 공멸의 길로 치닫곤 한다.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치매는 개인이 떠안아야 할 문제가 아니라고. 어르신 당사자와 보호자, 현장의 요양보호사, 그리고 운영 기관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비로소 제대로 된 돌봄이 완성된다는 논리는 매우 현실적이고도 타당하다.

 

책에서 제시하는 36가지 소통법과 30가지 케어 기술은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예컨대 이상행동이 나타났을 때 무조건 제지하기보다 그 원인을 기록하고 예방하는 방식은 보호자와 요양보호사 모두에게 실무적인 지침이 된다. 이는 치매를 앓는 노인이 단순히 '돌봄을 받는 객체'가 아니라, 여전히 삶의 주체로서 대우받아야 한다는 철학적 기초 위에 세워져 있다.

 

70대의 눈으로 본 이 책은 단순한 실용서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제언서로 읽힌다. 우리 사회는 고령화 시대를 넘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제는 치매 케어를 개인과 가족의 불운으로 치부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기관과 사회,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AI도 모르는 치매 케어 비법>은 그 거대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벽돌 한 장과 같다.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나 혹은 내 주변의 누군가에게 이 불청객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우리를 이해하려는 이런 세밀한 노력과 체계적인 시스템이 뒷받침된다면 노년의 품격을 잃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치매라는 깊은 안개 속에서도 인간의 온기를 잃지 않게 해주는 지침서를 만난 것은 큰 다행이다. 돌봄의 현장에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노후를 준비하는 우리 세대 모두가 한 번쯤 정독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고민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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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쓰는 독립의 역사, 영웅
서경덕 지음, 김주용 감수 / 허들링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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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 나이 일흔을 넘기면서 세상의 소음보다는 고요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많아졌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고 남은 날들을 어떻게 단단하게 채워갈지 고민하던 중, 서경덕 교수가 엮은 <손으로 쓰는 독립의 역사, 영웅>이라는 책을 만났다. 이 책은 단순히 눈으로 읽고 머리로 외우는 역사서가 아니다.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냈던 이들이 남긴 말과 글, 시와 편지를 손으로 직접 따라 적으며 그들의 숨결을 느껴보는 필사집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세대는 독립운동의 시대를 직접 겪지는 못했으나, 그 암흑 같던 시절을 버텨낸 부모 세대의 헌신과 눈물을 먹고 자랐다. 그렇기에 책장을 넘기며 마주한 이름과 문장들은 남들보다 조금 더 무겁고 뜨겁게 다가왔다. 책은 을미의병부터 3·1운동, 그리고 무장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안중근, 윤봉길, 김구처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영웅들뿐만 아니라 박차정, 김상옥, 남자현 등 그동안 내 무지(無知) 속에 가려져 있던 독립운동가들의 삶까지 고루 담아낸 점이 참으로 귀하고 반가웠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자결로써 저항의 불씨를 지폈던 분들의 기록을 필사했다. 나라를 잃은 슬픔과 분노를 목숨으로 증명했던 그 결연함 앞에서, 만년필을 쥔 손끝이 가볍게 떨렸다. 뒤이어 2부의 3·1운동 기록을 따라 쓸 때는 뭉클한 감정이 차올랐다. 저항의 방식은 각기 달랐지만, 독립이라는 단 하나의 염원을 품고 광장으로, 거리로 나섰던 평범한 사람들의 외침이 종이 위로 생생하게 살아나는 듯했다.

 

특히 내 마음을 오랫동안 붙잡았던 것은 3부의 무장 독립운동가들이 남긴 글이다. “비바람에 흔들릴지언정 뿌리째 뽑히지 않았던 그들처럼, 이 필사의 시간이 당신의 삶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 문장을 필사하는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쳤다. 서경덕 교수의 집필과 김주용 교수의 감수로 다듬어진 역사적 사료들은 현대적인 언어로 재구성되어 있어, 칠십 대인 내가 읽고 쓰기에도 전혀 지루하거나 딱딱하지 않았다. 해설은 친절했고, 문장들은 유려하면서도 단단했다.

 

나이가 들면 삶이 달관의 경지에 이를 줄 알았으나, 여전히 사소한 일에 마음이 흔들리고 몸의 쇠락에 쓸쓸해지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을 펴고 한 자 한 자 영웅들의 글을 필사하는 시간만큼은 나를 둘러싼 모든 불안과 잡념이 사라졌다. 자식들에게, 혹은 조국에 남긴 그들의 마지막 편지를 받아 적으며 과연 나는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기 위한 기록장이 아니다. 시대를 넘어 전해지는 영웅들의 고결한 기운을 빌려, 흔들리는 나의 황혼기를 조용히 붙잡아 주는 강력한 성찰의 도구다. 돋보기를 고쳐 쓰고 책상 앞에 앉아 보낸 그 필사의 시간은 내 삶의 지탱점이 되어주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거친 비바람에도 흔들릴지언정 결코 뽑히지 않는다.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졌던 영웅들의 단단한 영혼을 손끝으로 배우며, 나 역시 남은 생을 더 깊고 의연하게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삶의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동년배들에게, 그리고 오늘을 바쁘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이 묵직한 필사의 여정을 기꺼이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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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한다는 착각 - 멸종에서 살아남은 일곱 동물의 반격
프랑크 베스테르만 지음, 정신재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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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 나이 일흔을 넘기며 살아오니 세상만사를 바라보는 눈에 조급함보다는 일종의 서글픔이 먼저 고인다. 젊은 시절에는 발전과 개발이 곧 인류의 승리이자 축복인 줄 알았다. 산을 깎아 길을 내고, 강을 막아 댐을 세우며 인간이 자연을 정복해 나가는 모습을 진보라고 믿었다. 그러나 황혼의 길목에서 돌아본 지구의 모습은 상처투성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말들이 사방에서 넘쳐나지만, 어쩐지 그 목소리에는 알맹이가 빠져 있는 듯했다. 프랑크 베스테르만의 <공존한다는 착각>은 바로 내가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던 그 찜찜한 의문의 정체를 정확하게 짚어낸 책이다.

 

저자는 16세기 네덜란드 탐험대의 항해일지 속 동물들의 흔적을 따라가며,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철저하게 인간 중심적이었는지를 낱낱이 파헤친다. 이 책은 중세의 동물지형식을 빌려 멸종의 위기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일곱 동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치, 역사, 문화, 과학을 넘나드는 저자의 집요한 추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공존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위선적이었는지 깨닫고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우리는 흔히 자연을 보호하자거나 동물과 공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깨달은 것은, 그 말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지독한 독선이다. 인간은 동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늘 인간의 언어로 오독하고, 인간의 기준에 맞춰 가치를 매긴다. 쓸모가 있으면 보호하고, 인간에게 해가 되거나 불편을 주면 유해 동물이라는 낙인을 찍어 박멸한다.

 

인간 또한 다른 동물들에겐 야생의 존재일 뿐이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이상하리만큼 잊어버린 채 영원한 포식자인 척 살아간다.” 책 속의 이 문장은 내 가슴을 깊숙이 찔렀다. 70년 넘는 세월 동안 나 역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자연의 거대한 생태계 안에서 그저 하나의 일원에 불과하다. 호랑이나 사자에게 인간은 그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또 다른 야생의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를 생태계 위에 군림하는 영원한 포식자로 위치시키고,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이 말하는 공존은 대등한 관계에서의 어울림이 아니다. 인간이 정해놓은 울타리 안에서, 인간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존재하라는 일종의 통제된 공존이자 가짜 공존이다. 저자가 엮어내는 일곱 동물의 잔혹하고도 눈물겨운 역사적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공존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어떻게 소유욕과 통제 욕망을 교묘하게 감추어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책의 매력은 단순히 인간의 잔인함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명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날카롭고도 신선한 서사로 풀어낸다는 점에 있다. 이정모 전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이 그 어떤 말로도 정의 내릴 수 없다라고 극찬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과학적이면서도 문학적이고, 인문학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이 서사는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나이가 들면 인공적인 것보다 자연적인 것에 더 마음이 가기 마련이다. 화려한 고층 빌딩보다 동네 어귀의 늙은 느티나무가 더 아름다워 보이고, 텔레비전 소리보다 이른 아침 창가에서 지저귀는 새소리가 더 정겹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감상적인 자연 예찬마저도 인간 위주의 이기적인 시선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찬미하는 그 자연이, 실은 인간의 입맛에 맞게 편집되고 가공된 결과물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 책은 단순히 지식을 채우는 책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종() 전체의 삶의 방식을 성찰하게 만드는 철학서다. 인생의 황혼기에 이처럼 굳은 머리를 세차게 내리치는 책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다. 남은 생 동안 기회가 닿는 대로 주변의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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