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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한다는 착각 - 멸종에서 살아남은 일곱 동물의 반격
프랑크 베스테르만 지음, 정신재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 나이 일흔을 넘기며 살아오니 세상만사를 바라보는 눈에 조급함보다는 일종의 서글픔이 먼저 고인다. 젊은 시절에는 발전과 개발이 곧 인류의 승리이자 축복인 줄 알았다. 산을 깎아 길을 내고, 강을 막아 댐을 세우며 인간이 자연을 정복해 나가는 모습을 진보라고 믿었다. 그러나 황혼의 길목에서 돌아본 지구의 모습은 상처투성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말들이 사방에서 넘쳐나지만, 어쩐지 그 목소리에는 알맹이가 빠져 있는 듯했다. 프랑크 베스테르만의 <공존한다는 착각>은 바로 내가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던 그 찜찜한 의문의 정체를 정확하게 짚어낸 책이다.
저자는 16세기 네덜란드 탐험대의 항해일지 속 동물들의 흔적을 따라가며,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철저하게 ‘인간 중심적’이었는지를 낱낱이 파헤친다. 이 책은 중세의 ‘동물지’ 형식을 빌려 멸종의 위기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일곱 동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치, 역사, 문화, 과학을 넘나드는 저자의 집요한 추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공존’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위선적이었는지 깨닫고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우리는 흔히 “자연을 보호하자”거나 “동물과 공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깨달은 것은, 그 말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지독한 독선이다. 인간은 동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늘 인간의 언어로 오독하고, 인간의 기준에 맞춰 가치를 매긴다. 쓸모가 있으면 보호하고, 인간에게 해가 되거나 불편을 주면 ‘유해 동물’이라는 낙인을 찍어 박멸한다.

“인간 또한 다른 동물들에겐 ‘야생의 존재’일 뿐이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이상하리만큼 잊어버린 채 ‘영원한 포식자’인 척 살아간다.” 책 속의 이 문장은 내 가슴을 깊숙이 찔렀다. 70년 넘는 세월 동안 나 역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자연의 거대한 생태계 안에서 그저 하나의 일원에 불과하다. 호랑이나 사자에게 인간은 그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또 다른 ‘야생의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를 생태계 위에 군림하는 ‘영원한 포식자’로 위치시키고,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이 말하는 공존은 대등한 관계에서의 어울림이 아니다. 인간이 정해놓은 울타리 안에서, 인간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존재하라는 일종의 ‘통제된 공존’이자 ‘가짜 공존’이다. 저자가 엮어내는 일곱 동물의 잔혹하고도 눈물겨운 역사적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공존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어떻게 소유욕과 통제 욕망을 교묘하게 감추어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책의 매력은 단순히 인간의 잔인함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명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날카롭고도 신선한 서사로 풀어낸다는 점에 있다. 이정모 전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이 “그 어떤 말로도 정의 내릴 수 없다”라고 극찬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과학적이면서도 문학적이고, 인문학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이 서사는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나이가 들면 인공적인 것보다 자연적인 것에 더 마음이 가기 마련이다. 화려한 고층 빌딩보다 동네 어귀의 늙은 느티나무가 더 아름다워 보이고, 텔레비전 소리보다 이른 아침 창가에서 지저귀는 새소리가 더 정겹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감상적인 자연 예찬마저도 인간 위주의 이기적인 시선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찬미하는 그 자연이, 실은 인간의 입맛에 맞게 편집되고 가공된 결과물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 책은 단순히 지식을 채우는 책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종(種) 전체의 삶의 방식을 성찰하게 만드는 철학서다. 인생의 황혼기에 이처럼 굳은 머리를 세차게 내리치는 책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다. 남은 생 동안 기회가 닿는 대로 주변의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