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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 인류학적 오답 연구
다크모드 지음 / 모티브 / 2026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생의 황혼녘에 접어드니 세상만사 새롭게 보일 것 하나 없을 줄 알았다. 일흔 해 넘게 풍파를 겪으며 나름의 통찰을 얻었다 자부했건만, 다크모드의 <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을 덮고 나니 뒷덜미가 서늘해진다. 우리가 그토록 숭상하며 자식들에게 가르쳤던 ‘찬란한 인류 문명’이 사실은 거대한 오답 노트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때문이다.
나 같은 세대는 인류의 역사를 ‘진보의 서사’로 배워왔다.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합리적일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믿음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로마의 화려한 석조 건축물 뒤에 숨겨진 기괴한 처벌 의식이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잔혹함을 제도화한 제국들의 행태를 보고 있자면 인간의 이성이란 얼마나 얇은 유리판 같은 것인지 실감하게 된다.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우리가 ‘위대한 결단’이라 칭송했던 역사의 장면들이 사실은 지독한 판단 착오와 이기심의 산물이었다는 폭로다. 70년을 살며 수많은 지도자와 영웅의 부침을 목격해온 입장에서 볼 때, 저자의 시선은 무척이나 날카롭고 현실적이다. 전쟁과 범죄, 심리의 밑바닥을 훑는 다크모드의 서술은 인류가 반복해온 실수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증명해낸다.

책을 읽는 내내 ‘지금은 정말 달라졌는가’라는 저자의 질문이 귓가에 맴돌았다.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손바닥 안의 기계로 온 세상을 보는 시대가 되었지만, 인간 본연의 어리석음은 예나 지금이나 판박이다. 고대 제국이 사소한 오만으로 무너졌듯, 현대 문명 역시 스스로 만든 시스템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꼴을 보면 쓴웃음이 난다.

노년의 눈으로 본 이 책의 미덕은 단순히 ‘지식의 나열’에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진리라고 믿었던 것들을 의심하게 만드는 ‘시선의 전복’에 있다. 로마인들이 잔혹한 처형을 오락으로 즐겼던 것이나, 전쟁의 참화 속에서 드러난 인간의 추악한 본성은 불편하지만 마주해야 할 진실이다.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했을 때 찾아오는 오만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 책은 역사의 증거들을 빌려 경고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책은 인류의 흑역사를 들추면서도 마지막엔 묘한 위안을 건넨다. 천재라 칭송받던 이들도, 세상을 호령하던 제국도 결국은 실수투성이였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완벽하지 못한 나’를 긍정하게 만든다.
“실수는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증거일 뿐이다.”라는 문장을 곱씹으며 지난날 나의 과오들을 떠올려 보았다. 젊은 시절엔 자책하며 잠 못 이루던 실수들이, 이제 보니 거대한 인류사의 흐름 속에서 지극히 ‘인간적인’ 과정이었음을 깨닫는다. 완벽을 강요받는 시대에, 우리가 원래 오류투성이인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만큼 큰 해방감은 없다.
책 제목처럼 정말 ‘잠 못 드는 밤’이었다. 하지만 그 불면은 공포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기준이 뒤흔들린 데서 오는 지적 흥분 때문이었다. 70대라는 나이는 이제 새로운 지식을 채우기보다 낡은 편견을 비워내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 비워냄의 과정에 아주 적절한 자극제가 되어주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도, 낭만적인 서사시도 아니다. 그것은 끝없이 비틀거리고 넘어지면서도 꾸역꾸역 길을 찾아온 못난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 책은 그 자화상을 거울처럼 비춰주며 말한다. “세상을 너무 믿지 마라,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이성을 과신하지 마라”고. 인문학이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라면, 이 책이야말로 가장 날것의 인간을 이해하게 해주는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지침서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