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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뒤뜰을 거닐다 - 전호림 산문집
전호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5년 3월
평점 :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경상도 산골짜기 작은 동네에서 자랐다. 동네라고 해봤자 여기 한집 저기 한집 떨어져 있는 작은 동네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로 내려가 중학교에 다니면서 버스도 타보고 기차도 타봤다. 어린 나이에 대구에서 자취생활을 하면서 밤마다 집 생각이 나고 어머니가 보고 싶어 밤마다 달을 쳐다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 때로부터 도시에서 살다가 보니 지금도 고향이 그리워질 때면 한복남의 ‘꿈에 본 내 고향’을 부른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차마 못 잊어/ 고향을 떠나 온지 몇몇 해련가/ 타관 땅 돌고 돌아 헤메는 이몸/ 내 부모 내 형제를 그 언제나 만나리/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그동안 많은 책을 읽었다. 하지만 마음에 위로가 되고 힐링이 되는 책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중에 전호림 산문집 <시간의 뒤뜰을 거닐다>를 읽게 되었다. 그 동안 인터넷을 통해서 주옥같은 칼럼을 읽으면서 언젠가 책으로 나오면 책꽂이에 꽂아두고 자주 자주 읽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야 읽게 되었다.
이 책은 한국외대와 일본 히토츠바시대에서 수학한 후 매일경제신문사 국제부·산업부·사회부를 거쳐 도쿄 특파원을 지냈으며, 매경이코노미 국장을 역임하고, 현재 매경출판 대표로 재직 중인 저자 전호림이 「매경이코노미」에 국장으로 3년 반 동안 재직하면서 매주 쓴 ‘전호림 칼럼’ 중 호평 받은 작품만을 모아 놓은 산문집이다.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칼럼을 쓰는 원칙으로 “경제 주간지의 딱딱함과 시사 글의 무미건조함을 피해 말랑말랑한 얘기를 쓰려고 한번은 ‘칼럼’으로 한번은 ‘에세이’로 썼다고 말했다.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젊은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책이라면, 전호림의 칼럼은 한강의 기적을 통해 대한민국 경제를 일으켜 세운 베이비붐 세대를 위로하는 책이다. 보릿고개 시절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렸지만 마음만은 행복했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는 장면부터 기업·국가에 고(告)하는 제언까지 책의 모든 내용이 1970~1980년대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앞만 보고 살아온 이 땅의 아버지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듯하다.
이 책은 모두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아름다운 시절에’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추억했다. 설 명절이면 장터에서 뻥튀기 장수의 ‘꽝’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몰려들어 바깥으로 튀어나온 것을 주워 먹던 이야기, 사람이 많으면 물을 많이 붓고 양을 늘렸던 어머니의 손국수(늘인국) 이야기를 읽노라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
2장 ‘사람 사는 풍경’에서는 각계각층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게 된다. 특히 납량특집 ‘본인장례식’을 읽으면서 수의에 주머니가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3장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는 세상사 단면을 통해 우리가 나아갈 길을 조망한다. 옛날 애인, 자본주의의 추상화, 폭탄주, 사과꽃, 치매, 박사 값 추락의 속사정을 통해서 삶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
4장 ‘기업, 나라의 살림밑천’에서는 도전 정신이 부족한 기업, 오만하고 부패한 기업, 비정규직, 층간소음의 면면을 낱낱이 파헤쳤다. 퍼주기 식 복지 포퓰리즘과 단기의 이익만 바라보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다가는 결국 국가 경제가 파탄 날 것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운다.
5장 ‘국가란 모름지기…’에서는 도로명 주소가 고유문화를 말살한다며 옛 주소 복원을 외치고, 비정규직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 대해선 사회와 국가를 배반하는 행위라고 주장하며, 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교육 현장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한다.
요즘 들어 ‘힐링’이 유행이다. 나 역시 이와 관련된 책을 찾아서 읽어보고 시간 날 때 마다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려 하는데 이 책은 글귀나 내용이 무겁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마음에 와 닿은 문장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읽는 동안만큼은 삶에 지친 나를 위로하고 기운을 북돋아 준다. 이 책을 삶에 지친 현대인들과 직장인들에게 꼭 읽으라고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