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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병 환자들
브라이언 딜런 지음, 이문희 옮김 / 작가정신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는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에 큰 혼란을 겪었다.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와 국민의 예방행동이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경험으로부터 감염을 줄이기 위해 손 씻기가 얼마나 중요한지와 병원에 감염 위험이 있기 때문에 병문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알게 되었다.
우리 한국사회는 광우병이나 조류독감 등이 발병했다는 소식만 들려도 관련 음식점들이 망해나갈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지나친 건강염려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 뿐 아니라 불필요한 행동을 하게하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사람을 여러 질병에 취약하게 만든다.
이 책은 예술문화 계간지 ‘캐비닛’의 영국지부 편집장이자 기고가인 브라이언 딜런이 심기병을 앓았던 대표적 9인의 삶을 심기증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다. 심기증이 이들의 유년 시절, 가족 및 친구 관계, 성격, 행복과 불행, 사회생활, 예술 활동, 나아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다. 그리하여 아홉 사람이 속한 시대, 사회, 문화는 물론 그들의 내밀한 삶을 들여다본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인물은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으로 유명한 다니엘 파울 슈레버부터 제임스 보즈웰, 샬럿 브론테, 앨리스 제임스, 마르셀 프루스트, 글렌 굴드, 앤디 워홀 등 작가나 예술가는 물론 찰스 다윈,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처럼 이외의 인물까지 다양하다.
‘심기병’이란 자신이 중병에 걸린 것처럼 생각하는 일종의 마음의 병이다.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을 지닌 예술가나 작가들에게서 자주 발견되는 병이기도 하다. 현대에서는 ‘건강염려증’으로도 불리며 의미가 좁아지고 단순화했지만 19세기 특히 지식인과 예술인 사이에서 절정에 달한 심기증은 ‘창조적 혹은 지적 노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도 추정된다.
앤디 워홀은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글렌 굴드는 손가락을 다칠까 봐 악수를 거부한 강박증 환자였다. 다니엘 파울 슈레버는 여자가 되고 싶어한 망상증 환자였고, 앨리스 제임스는 육체의 고통이 예술의 일부라 믿은 감각과민증 환자이기도 했다.
저자는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에 대해 ‘희생과 헌신에 중독된 신경쇠약증 환자’였다고 평가했으며,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시드니 허버트는 나이팅게일의 병과 치료법을 언급하면서 “그녀와 같은 정신 구조를 가진 사람에게 모든 적극적 활동을 완전히 접는 온전한 휴식이 과연…매우 제한적이고 적정한 선에서 어느 정도 일하는 삶보다 더 큰 고통이 되지 않을지는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성인기의 대부분을 언제 병상에 누울지 모르는 위기 속에서 살았던 찰스 다윈은 “비록 몸은 아플지라도, 물론 이로 인해 몇 년의 내 삶이 폐기되었지만, 그 덕분에 나는 세상과 쾌락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다”며 <종의 기원>을 완성했다.
책은 우리가 아는 유명인의 이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동시에 그들도 정신과 육체 사이에서 괴로워한,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