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도 불안할 수 있습니다 - 뇌·마음·영혼을 함께 돌보는 불안 솔루션
이기원 외 지음 / 두란노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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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생의 일곱 번째 십 년을 지나고 나면 세상일에 제법 담대해질 줄 알았다. 거친 풍파는 다 지나갔고, 이제는 잔잔한 호수 같은 평안만 남으리라 막연히 기대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도 삶의 불확실성은 여전하며, 오히려 신체의 쇠약함과 다가올 이별에 대한 염려는 은근한 그림자처럼 마음에 드리우곤 한다. 평생을 신앙 안에서 살려고 애썼지만, 불쑥 찾아오는 불안감 앞에 내가 믿음이 부족한가자책하며 홀로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던 중 이기원, 채규만, 채정호 세 저자가 함께 쓴 <크리스천도 불안할 수 있습니다>라는 책을 만났다. 제목을 마주하는 순간, 마치 오랜 시간 감춰왔던 비밀을 들킨 것 같으면서도 깊은 위로가 밀려왔다. 신앙인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둔 인간적인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아, 이 책의 첫 장을 넘기게 되었다.

 

이 책은 목회자, 임상심리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라는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불안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향해 입을 모은 결과물이다. 저자들은 인간의 영혼과 마음, 그리고 몸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유기적 통일체라고 강조한다.

 

그동안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는 마음의 병이나 불안을 오로지 영적인 문제로만 치부하려는 경향이 짙었다. 기도나 믿음이 부족해서 생긴 결과로 바라보니, 아픈 이들은 교회 안에서조차 죄책감에 시달리며 숨죽여야 했다. 그러나 이 책은 뇌의 작동 원리와 의학적 진단, 그리고 왜곡된 사고방식을 다루는 심리학적 통찰이 모두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보편적인 은혜이자 선물이라고 말한다.

 

정신과 전문의는 뇌 과학의 관점에서 약물치료의 필요성을 담담히 설명하고, 심리사는 불안을 증폭시키는 생각의 오류를 짚어내며, 목회자는 그 모든 과정 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영적 돌봄을 제시한다. 이 세 가지 시선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들어갈 때 비로소 온전한 치유의 여정이 시작된다는 논리는, 노년의 고집스러웠던 편견을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이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도는 단 한 문장이 있다. “불안은 믿음의 부재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유한한 인간이라는 증거다.” 이 한 문장은 내 마음에 얹혀 있던 커다란 돌덩이를 내려놓게 만들었다. 70 평생을 살아오며 불안을 마주할 때마다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는 스스로를 자책하곤 했다. 하지만 불안은 신앙의 결격 사유가 아니라, 피조물인 인간이 마땅히 느낄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성경적 진리와 의학, 심리학은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치유하기 위해 기도라는 영적인 통로뿐만 아니라, 의사의 지혜와 약물, 그리고 심리학적 상담이라는 세상의 도구들도 함께 사용하신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깊이 깨달았다. 기도가 부족해서 불안한 것이 아니며, 약을 먹거나 상담을 받는다고 해서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당연한 이치가 가슴을 울렸다.

 

이 책은 특히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첫째는 나와 같이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해왔음에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의 불안과 우울감을 영적 게으름으로 오해하며 자책하고 있는 시니어 크리스천들이다. 나이가 들어 생기는 신체적 변화와 노인성 불안을 믿음의 잣대로만 평가하지 말고, 의학적·심리학적 도움을 지혜롭게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신앙의 성숙임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둘째는 교회의 지도자들이나 목회자들이다. 성도들의 마음의 고통을 무조건 기도가 부족해서라는 말로 일축하기보다, 보다 통합적이고 다각적인 시선으로 영혼을 돌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추는 데 이 책이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치유는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마법이 아니라, 몸과 마음과 영혼을 두루 살피며 걸어가는 기나긴 여정이다.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율법적인 죄책감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예비하신 다양한 선물들을 누리며 보다 건강하고 깊이 있는 회복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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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만 바꿨을 뿐인데 (10만 부 기념 개정판)
김민성 지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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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만사 뜻대로 되지 않는 것투성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바로 인간관계. 칠십 평생을 살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졌다. 한때는 뜨거웠던 인연이 사소한 말 한마디로 차디차게 식어버리는 것을 보았고, 반대로 기대하지 않았던 따뜻한 말 한마디에 평생의 동반자를 얻기도 했다. 김민성의 <말투만 바꿨을 뿐인데>를 읽으며, 지나온 삶의 궤적 속에서 내가 남긴 말들의 흔적을 가만히 되짚어보게 되었다.

 

저자는 CJ ENM 쇼호스트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현장에서 치열하게 다듬은 소통의 기술을 전한다. 하지만 이 책이 단순히 붉은 입술로 상대를 현혹하는 화술 책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말의 기술보다 마음을 여는 태도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쇼호스트라는 직업은 단지 물건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짧은 시간 안에 타인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 사람이다. 저자가 축적한 말투와 심리의 관계에 대한 통찰은, 은퇴 후 관계의 폭은 좁아졌으나 그 깊이는 더 묵직해진 우리 노년의 삶에도 매섭게 와닿는다.

 

젊은 시절에는 목소리 크고 논리 정연하게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 이기는 대화라고 믿었다. 내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날카로운 말을 무기처럼 휘두르기도 했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러 깨닫는 것은, 백 마디의 유창한 변명보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부드러운 어조 하나가 훨씬 강력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로 소중한 사람을 잃기도 하고, 반대로 짧은 한 문장 덕분에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도 한다.” 이 책의 핵심을 관통하는 이 문장은 내 삶의 목격담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 주변 사람들은 나의 지식이나 사회적 성취보다, 내가 그들을 대하는 말투에서 인품을 읽는다. 묵직하고 권위적인 말투는 주변 사람을 떠나보내지만, 따뜻하고 경청하는 말투는 늘 곁에 좋은 인연이 머물게 한다. 책에 담긴 구체적인 사례들은 내가 무심코 아내에게, 혹은 오랜 친구에게 상처를 주었던 순간들을 거울처럼 비추어주었다.

 

이번 개정판에 추가되었다는 아이의 자존감을 세우는 소통법은 특히 눈길을 사로잡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세대에게 자녀나 손주와의 소통은 새로운 숙제다.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훈계가 아이들과의 벽을 만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입을 열면 잔소리가 먼저 나가곤 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현실적인 소통법은 다음 세대와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깊은 유대감을 쌓는 지혜를 빌려준다. 아이의 기를 죽이는 지적이 아니라, 자존감을 세워주는 격려의 말투야말로 어른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말투를 바꾸는 순간, 관계가 바뀌고 인생의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말을 곱씹어본다. 흔히 70대가 되면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굳어진 습관과 살아온 고집이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인생의 황혼기야말로 나의 분위기를 완성해야 하는 시기다. 거칠고 날 선 말투 대신 편안하고 호감 가는 말투를 연습하는 것은, 내 남은 생을 아름답게 가꾸는 가장 품격 있는 노력이다.

 

이 책은 단순히 젊은이들의 비즈니스 현장만을 위한 지침서가 아니다.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더 깊이 교감하고, 나이 듦의 멋을 언어에 담아내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나이를 불문하고 현실적인 변화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나 역시 오늘부터 곁에 있는 아내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의 온도부터 바꾸어보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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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디지털 능력 - 디지털에 끌려가는 아이에서 디지털을 다루는 아이로 키우는 법
김주희 지음 / 이비락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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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족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저녁 식사를 할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쌉싸름해지는 장면이 있다. 할미, 할아버지가 정성껏 차린 밥상 앞에서 손주 녀석들이 고개를 처박고 스마트폰 화면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모습이다. 수저를 쥐었는지 스마트폰을 쥐었는지 모를 정도로 혼이 쏙 빠져 있는 아이들에게 밥 먹을 때는 스마트폰 좀 내려놓아라하고 잔소리를 해보지만, 그때뿐이다. 아이들의 시선은 자석에 끌리듯 다시 화면으로 향하고, 모처럼의 가족 대화는 뚝 끊겨버린다. 비단 우리 집만의 풍경은 아닐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노년층이 자식들과 손주들을 보며 느끼는 깊은 쓸쓸함이자 안타까움이다.

 

김주희의 <우리 아이 디지털 능력>은 바로 그 밥상머리 위의 쓸쓸한 풍경이 아이들의 사고력과 감정, 나아가 미래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교육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책이다. 오랜 세월 교단에서 아이들을 관찰해 온 저자는 스마트폰을 쥐여주는 부모의 익숙하고 편한 선택들이 아이의 성장을 방해하는 결정적 신호라고 경고한다. 70대의 눈으로 이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혀를 차며 걱정만 하던 내 모습에서 벗어나 요즘 아이들이 살아가는 디지털 세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우리 세대는 자식들을 키울 때 컴퓨터나 텔레비전을 그저 못 보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공부에 방해되니 거실에서 치워버리거나 엄하게 꾸짖어 차단하는 것이 최고의 훈육이라 믿었다. 그래서 지금도 손주들이 스마트폰에 빠져 있으면 저 못된 물건을 당장 뺏어라하고 자식 놈들을 타박하곤 했다. 하지만 책은 단호하게 말한다. 디지털 기기를 단순히 안 보여주는 차단이나,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 두는 허용의 수준으로는 이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 없다고 말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핵심 개념은 바로 디지털 능력이다. 이는 단순히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잘하거나 유튜브 영상을 빠르게 찾아내는 기술을 말하는 게 아니다. 수많은 디지털 정보 속에서 나에게 필요한 진짜 지식을 분별해 내고, 기계의 유혹에 휘둘리지 않으며, 스스로 제어하고 활용할 줄 아는 일종의 정신적 체력이자 기획력이다. 스마트폰이라는 도구를 부모가 억지로 감춘다고 해서 해결될 세상이 아니다. 이미 아이들의 세상은 온통 디지털로 도배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그 거대한 파도를 탈 줄 아는 능력을 길러주는 일이다.

 

평생을 살아가며 터득한 진리 중 하나는, 아무리 좋은 도구라도 쓰는 사람의 인성과 안목이 갖춰지지 않으면 결국 독이 된다는 사실이다. 요즘 아이들은 한글을 떼기도 전에 유튜브 검색법부터 배운다고 한다. 손가락 하나로 세상 모든 정보를 다 찾아내니 겉보기엔 우리 세대보다 훨씬 똑똑하고 영악해 보인다. 하지만 학교 현장의 실상은 달랐다. 스마트폰 화면의 짧고 자극적인 영상에만 길들여진 아이들은 단 몇 줄짜리 교과서 문장조차 읽고 이해하지 못해 쩔쩔맨다. 타인의 감정을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해 교실 안에서 잦은 갈등을 빚고, 진득하게 앉아 무언가를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렸다.

 

저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모가 먼저 디지털을 바라보는 눈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던져주고 방치하는 것은 편리한 포기일 뿐이다. 책이 제시하는 구체적인 실전 지침들을 읽다 보면, 디지털 능력을 기르는 출발점은 거창한 컴퓨터 교육이 아니라 결국 가정에서의 따뜻한 대화와 올바른 관계 맺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마트폰 화면 속 가상 세계에 갇힌 아이들을 다시 현실로 불러내어, 자연을 느끼게 하고, 부모와 눈을 맞추며 대화하게 하는 것. 그것이 역설적이게도 디지털 능력을 키우는 가장 단단한 주춧돌이 된다는 대목에서 무릎을 쳤다.

 

흔히 나이가 들면 요즘 세상은 너무 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뒷방 늙은이처럼 물러서기 쉽다. 손주 교육은 그저 자식들의 몫이라 선을 긋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노년의 우리에게도 새로운 역할이 있음을 일깨워준다. 디지털 기기는 빛의 속도로 변하지만, 그 기기를 다루는 인간의 마음과 도덕성, 생각의 깊이를 길러주는 것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고전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순히 부모들을 위한 육아 지침서에 그치지 않는다. 디지털이라는 거대한 혼돈 속에서 자라나는 다음 세대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도와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회적 나침반이다. 자식들이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 미처 챙기지 못하는 아이들의 정서적 빈틈을, 우리 노년층의 넉넉한 품과 삶의 지혜로 채워줄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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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 - 고통 없이, 내 뜻대로, 존엄하게 죽는 일은 가능한가
박혜윤.신성준.최은경 지음 / 아몬드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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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불확실한 미래를 앞둔 노년층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자 실천적 지침서다. 나이가 들어 체력은 떨어졌을지언정, 삶의 굴곡을 거치며 쌓아온 연륜은 우리에게 현상을 다각도로 뜯어볼 줄 아는 지혜를 주었다. 죽음을 그저 개인의 깔끔한 뒤처리 문제로 축소해 버리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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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 - 고통 없이, 내 뜻대로, 존엄하게 죽는 일은 가능한가
박혜윤.신성준.최은경 지음 / 아몬드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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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 나이 일흔을 넘기면서 주변의 부고 소식이 눈에 띄게 잦아졌다. 젊은 시절의 죽음이 어쩌다 마주하는 비극이었다면, 지금의 죽음은 언제든 내 차례가 될 수 있는 서늘한 일상이다. 친구들과 모이면 자연스럽게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보다 어떻게 품위 있게 죽을 것인가를 논하게 된다. 조력임종 찬성 여론이 80%에 육박하고, ‘조력존엄사법이 발의되었다는 뉴스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차디찬 병원 침대에서 인공호흡기에 매달려 고통을 연장하느니 내 손으로 깔끔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 서구식 존엄이자 깨끗한 죽음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 명의 의료·윤리 전문가가 함께 쓴 <깨끗한 죽음이라는 환상>을 덮으며, 내가 가졌던 생각이 얼마나 얄팍하고 낭만적인 환상이었는지 깨닫고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 책은 죽음을 미화하거나 감상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대신 암 병동의 정신과 박혜윤 의사, 연명의료를 연구하는 신장내과 신성준 의사, 의료인문학 최은경 교수의 냉철하고도 입체적인 시선을 통해,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대한민국 죽음의 민낯을 가차 없이 들추어낸다.

 

 

이 책은 오늘날 한국인 75% 이상이 집이 아닌 병원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는 현실을 짚어낸다. 뉴스를 장식하는 간병 살인이나 간병 파산이라는 단어는 우리 세대에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처럼, 내가 아파 누웠을 때 가족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많은 이들이 돈만 있으면 스위스에 가서 품위 있게 가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저자들은 그 외침이 진정으로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의지라기보다는,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지금의 한국식 말기 돌봄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절망의 웅변이라고 진단한다.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정말 약물을 먹고 스스로 숨을 끊는 행위 자체일까, 아니면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며 따뜻한 돌봄을 받는 환경일까. 단연 후자다. 결국 조력임종을 향한 뜨거운 찬성 열풍은, 제대로 된 호스피스나 말기 돌봄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사회가 개인에게 밀어붙인 막다른 골목에서의 비명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흔히 내 목숨은 내 것이니 언제 죽을지도 내가 결정하겠다는 자기결정권을 절대적인 권리로 여긴다. 나 역시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매끄러운 마무리가 가장 이성적인 선택이라 여겼다. 그러나 책은 그 자기결정권의 이면에 숨은 서늘한 음모를 포착해 낸다.

 

네덜란드, 캐나다, 미국, 스위스 등 전 세계의 실제 사례를 촘촘히 분석한 저자들은 조력임종이 법제화된 사회에서 죽음의 선택이 어떻게 변질되는지 보여준다. 사회적 돌봄이 부족하고 간병비 부담이 치솟는 환경에서, 노인과 환자들은 점차 살아남아 사회와 가족에게 짐이 되는 죄책감을 학습하게 된다. “내가 빨리 죽어주는 것이 모두를 위한 길이라는 무언의 압박 속에서 내려진 결정이 과연 온전한 자기결정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퇴장이다. ‘깨끗한 죽음이라는 그럴듯한 이름 뒤에는, 효율성과 경제 논리로 취약한 인간을 솎아내려는 현대 사회의 비정함이 숨어 있었다.

 

이 책이 지닌 독보적인 가치는 단순히 조력임종을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의 유치한 이분법적 논쟁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저자들은 제도의 도입 여부를 넘어, 우리가 어떤 공동체에서 살다가 어떤 모습으로 떠나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70대의 눈으로 바라본 이 책은 불확실한 미래를 앞둔 노년층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자 실천적 지침서다. 나이가 들어 체력은 떨어졌을지언정, 삶의 굴곡을 거치며 쌓아온 연륜은 우리에게 현상을 다각도로 뜯어볼 줄 아는 지혜를 주었다. 죽음을 그저 개인의 깔끔한 뒤처리 문제로 축소해 버리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진짜 존엄한 죽음은 약물 한 알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한 인간의 삶을 온전히 품어주는 사회적 연대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초고령화 사회의 문턱을 넘은 대한민국에서 이 책은 거센 파도 속의 단단한 나침반 역할을 해준다. 내 인생의 종착지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고민하는 동년배 노인들은 물론, 부모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자식 세대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죽음을 직시할 때 비로소 남은 삶의 의미가 선명해진다는 진리를, 이 책은 묵직하게 증명해 내고 있다. 위안을 주는 달콤한 거짓말보다, 뼈아픈 진실을 마주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최고의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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