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도 모르는 치매 케어 비법 - 개별적 특성을 존중하는 테일러드 케어
황이선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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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가 칠십 줄에 접어들면 치매라는 단어는 더 이상 남의 집 이야기가 아니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우스갯소리로 건망증을 한탄하다가도, 어느 순간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낀다. 노년의 삶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육체의 쇠락보다 라는 정체성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접하게 된 황이선 저자의 <AI도 모르는 치매 케어 비법>은 막연한 공포에 사로잡힌 나 같은 노년층에게,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걷는 가족들에게 실질적인 등불이 되어주는 책이다.

 

이 책은 단순히 치매 증상을 설명하는 의학 서적이나 간병인의 수기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저자는 왜 테일러드 케어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인공지능이 만사를 해결해줄 것 같은 시대라지만, 치매 환자의 불규칙하고 복합적인 감정과 행동을 기계적인 알고리즘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살아온 궤적이 다르고 성격이 다른데, 어떻게 천편일률적인 돌봄이 가능하겠는가. 저자가 제시하는 4단계 케어 프로세스개별 특성 분석, 케어 준비, 이상행동 관찰 및 기록, 응급상황 대처는 치매 돌봄을 하나의 전문적인 서비스 시스템으로 정립하려는 의지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치매 어르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44가지 방법이다. 우리 세대는 흔히 치매를 정신이 나간 병으로 치부하며 환자를 수동적인 관리 대상으로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책은 그들의 이상행동 뒤에 숨겨진 말하지 못한 욕구불안을 읽어내라고 조언한다. 환자의 과거 직업, 취향, 습관을 분석해 맞춤형 대응을 하는 것은 결국 그분을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이는 내가 평소 가져왔던 노인 요양 시설의 전문화와 존엄성 유지라는 문제의식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저자는 치매 케어를 개인의 희생이나 기술의 영역을 넘어 시스템적 협업의 문제로 확장한다. 이 지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흔히 치매 환자가 발생하면 그 가족은 죄책감과 피로감에 짓눌려 공멸의 길로 치닫곤 한다.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치매는 개인이 떠안아야 할 문제가 아니라고. 어르신 당사자와 보호자, 현장의 요양보호사, 그리고 운영 기관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비로소 제대로 된 돌봄이 완성된다는 논리는 매우 현실적이고도 타당하다.

 

책에서 제시하는 36가지 소통법과 30가지 케어 기술은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예컨대 이상행동이 나타났을 때 무조건 제지하기보다 그 원인을 기록하고 예방하는 방식은 보호자와 요양보호사 모두에게 실무적인 지침이 된다. 이는 치매를 앓는 노인이 단순히 '돌봄을 받는 객체'가 아니라, 여전히 삶의 주체로서 대우받아야 한다는 철학적 기초 위에 세워져 있다.

 

70대의 눈으로 본 이 책은 단순한 실용서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제언서로 읽힌다. 우리 사회는 고령화 시대를 넘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제는 치매 케어를 개인과 가족의 불운으로 치부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기관과 사회,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AI도 모르는 치매 케어 비법>은 그 거대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벽돌 한 장과 같다.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나 혹은 내 주변의 누군가에게 이 불청객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우리를 이해하려는 이런 세밀한 노력과 체계적인 시스템이 뒷받침된다면 노년의 품격을 잃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치매라는 깊은 안개 속에서도 인간의 온기를 잃지 않게 해주는 지침서를 만난 것은 큰 다행이다. 돌봄의 현장에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노후를 준비하는 우리 세대 모두가 한 번쯤 정독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고민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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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쓰는 독립의 역사, 영웅
서경덕 지음, 김주용 감수 / 허들링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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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 나이 일흔을 넘기면서 세상의 소음보다는 고요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많아졌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고 남은 날들을 어떻게 단단하게 채워갈지 고민하던 중, 서경덕 교수가 엮은 <손으로 쓰는 독립의 역사, 영웅>이라는 책을 만났다. 이 책은 단순히 눈으로 읽고 머리로 외우는 역사서가 아니다.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냈던 이들이 남긴 말과 글, 시와 편지를 손으로 직접 따라 적으며 그들의 숨결을 느껴보는 필사집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세대는 독립운동의 시대를 직접 겪지는 못했으나, 그 암흑 같던 시절을 버텨낸 부모 세대의 헌신과 눈물을 먹고 자랐다. 그렇기에 책장을 넘기며 마주한 이름과 문장들은 남들보다 조금 더 무겁고 뜨겁게 다가왔다. 책은 을미의병부터 3·1운동, 그리고 무장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안중근, 윤봉길, 김구처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영웅들뿐만 아니라 박차정, 김상옥, 남자현 등 그동안 내 무지(無知) 속에 가려져 있던 독립운동가들의 삶까지 고루 담아낸 점이 참으로 귀하고 반가웠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자결로써 저항의 불씨를 지폈던 분들의 기록을 필사했다. 나라를 잃은 슬픔과 분노를 목숨으로 증명했던 그 결연함 앞에서, 만년필을 쥔 손끝이 가볍게 떨렸다. 뒤이어 2부의 3·1운동 기록을 따라 쓸 때는 뭉클한 감정이 차올랐다. 저항의 방식은 각기 달랐지만, 독립이라는 단 하나의 염원을 품고 광장으로, 거리로 나섰던 평범한 사람들의 외침이 종이 위로 생생하게 살아나는 듯했다.

 

특히 내 마음을 오랫동안 붙잡았던 것은 3부의 무장 독립운동가들이 남긴 글이다. “비바람에 흔들릴지언정 뿌리째 뽑히지 않았던 그들처럼, 이 필사의 시간이 당신의 삶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 문장을 필사하는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쳤다. 서경덕 교수의 집필과 김주용 교수의 감수로 다듬어진 역사적 사료들은 현대적인 언어로 재구성되어 있어, 칠십 대인 내가 읽고 쓰기에도 전혀 지루하거나 딱딱하지 않았다. 해설은 친절했고, 문장들은 유려하면서도 단단했다.

 

나이가 들면 삶이 달관의 경지에 이를 줄 알았으나, 여전히 사소한 일에 마음이 흔들리고 몸의 쇠락에 쓸쓸해지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을 펴고 한 자 한 자 영웅들의 글을 필사하는 시간만큼은 나를 둘러싼 모든 불안과 잡념이 사라졌다. 자식들에게, 혹은 조국에 남긴 그들의 마지막 편지를 받아 적으며 과연 나는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기 위한 기록장이 아니다. 시대를 넘어 전해지는 영웅들의 고결한 기운을 빌려, 흔들리는 나의 황혼기를 조용히 붙잡아 주는 강력한 성찰의 도구다. 돋보기를 고쳐 쓰고 책상 앞에 앉아 보낸 그 필사의 시간은 내 삶의 지탱점이 되어주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거친 비바람에도 흔들릴지언정 결코 뽑히지 않는다.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졌던 영웅들의 단단한 영혼을 손끝으로 배우며, 나 역시 남은 생을 더 깊고 의연하게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삶의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동년배들에게, 그리고 오늘을 바쁘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이 묵직한 필사의 여정을 기꺼이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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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한다는 착각 - 멸종에서 살아남은 일곱 동물의 반격
프랑크 베스테르만 지음, 정신재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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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 나이 일흔을 넘기며 살아오니 세상만사를 바라보는 눈에 조급함보다는 일종의 서글픔이 먼저 고인다. 젊은 시절에는 발전과 개발이 곧 인류의 승리이자 축복인 줄 알았다. 산을 깎아 길을 내고, 강을 막아 댐을 세우며 인간이 자연을 정복해 나가는 모습을 진보라고 믿었다. 그러나 황혼의 길목에서 돌아본 지구의 모습은 상처투성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말들이 사방에서 넘쳐나지만, 어쩐지 그 목소리에는 알맹이가 빠져 있는 듯했다. 프랑크 베스테르만의 <공존한다는 착각>은 바로 내가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던 그 찜찜한 의문의 정체를 정확하게 짚어낸 책이다.

 

저자는 16세기 네덜란드 탐험대의 항해일지 속 동물들의 흔적을 따라가며,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철저하게 인간 중심적이었는지를 낱낱이 파헤친다. 이 책은 중세의 동물지형식을 빌려 멸종의 위기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일곱 동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치, 역사, 문화, 과학을 넘나드는 저자의 집요한 추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공존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위선적이었는지 깨닫고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우리는 흔히 자연을 보호하자거나 동물과 공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깨달은 것은, 그 말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지독한 독선이다. 인간은 동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늘 인간의 언어로 오독하고, 인간의 기준에 맞춰 가치를 매긴다. 쓸모가 있으면 보호하고, 인간에게 해가 되거나 불편을 주면 유해 동물이라는 낙인을 찍어 박멸한다.

 

인간 또한 다른 동물들에겐 야생의 존재일 뿐이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이상하리만큼 잊어버린 채 영원한 포식자인 척 살아간다.” 책 속의 이 문장은 내 가슴을 깊숙이 찔렀다. 70년 넘는 세월 동안 나 역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아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자연의 거대한 생태계 안에서 그저 하나의 일원에 불과하다. 호랑이나 사자에게 인간은 그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또 다른 야생의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를 생태계 위에 군림하는 영원한 포식자로 위치시키고,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이 말하는 공존은 대등한 관계에서의 어울림이 아니다. 인간이 정해놓은 울타리 안에서, 인간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존재하라는 일종의 통제된 공존이자 가짜 공존이다. 저자가 엮어내는 일곱 동물의 잔혹하고도 눈물겨운 역사적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공존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어떻게 소유욕과 통제 욕망을 교묘하게 감추어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책의 매력은 단순히 인간의 잔인함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명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날카롭고도 신선한 서사로 풀어낸다는 점에 있다. 이정모 전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이 그 어떤 말로도 정의 내릴 수 없다라고 극찬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과학적이면서도 문학적이고, 인문학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이 서사는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나이가 들면 인공적인 것보다 자연적인 것에 더 마음이 가기 마련이다. 화려한 고층 빌딩보다 동네 어귀의 늙은 느티나무가 더 아름다워 보이고, 텔레비전 소리보다 이른 아침 창가에서 지저귀는 새소리가 더 정겹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감상적인 자연 예찬마저도 인간 위주의 이기적인 시선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찬미하는 그 자연이, 실은 인간의 입맛에 맞게 편집되고 가공된 결과물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 책은 단순히 지식을 채우는 책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종() 전체의 삶의 방식을 성찰하게 만드는 철학서다. 인생의 황혼기에 이처럼 굳은 머리를 세차게 내리치는 책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다. 남은 생 동안 기회가 닿는 대로 주변의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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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품위 있게 이혼할 수 있습니다 - 천 번의 이별을 지켜본 변호사가 꼭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
박상희 지음 / 나비의활주로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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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흔을 넘긴 나이가 되면 주변에서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 세대에게 이혼이란 평생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할 거대한 허물이자, 인생 전체의 실패를 뜻하는 낙인이었다. “참는 것이 미덕이라며 참고 살았던 세월이 미련이었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머리에 희끗희끗한 서리가 내린 뒤인 경우가 많다.

 

박상희 저자의 <당신도 품위 있게 이혼할 수 있습니다>를 읽으며, 나는 비로소 우리 세대가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잔인한 진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이혼을 부추기는 책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가장 어두운 벼랑 끝에서 어떻게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품격과 존엄을 지켜낼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한 생존 지침서다.

 

한국 사회, 특히 노년층에게 이혼은 여전히 숨겨야 할 치부다. 자식들 혼사에 해가 될까 봐, 혹은 이 나이에 무슨 유세를 떨겠냐며 불행한 결혼 생활을 억지로 이어가는 동년배들을 자주 본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이별은 평생을 일궈온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젊은 날의 이혼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진통이라면, 황혼의 이혼은 생존 그 자체와 직결되는 현실이다. 제대로 된 법률적 대비 없이 감정에 치우쳐 재판장에 서는 것은, 평생을 바쳐 가꾼 가정을 허무하게 연기 속으로 날려버리는 것과 같다. 수천 건의 이별을 목격한 가사 전문 변호사의 조언이 노년의 눈에도 서슬 퍼렇게 와 닿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위자료와 재산 분할, 양육권이라는 냉혹한 법적 현실을 가감 없이 들추어낸다. 특히 인상 깊었던 대목은 평생을 가정주부로 살아온 이들의 가사 노동 가치를 법적으로 증명해내는 지점이다. 우리 세대의 수많은 여성들은 밖에서 돈을 벌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정 내에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주눅 들어 살았다. 책은 그 세월이 결코 무가치한 것이 아니며, 법적으로 엄연히 인정받아야 할 삶의 지분임을 명확히 짚어준다. 이는 단순히 돈 몇 푼을 더 받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한 인간이 살아온 역사와 노동의 가치를 국가의 법 테두리 안에서 당당하게 복원해내는 과정이다.

 

또한 소송 과정에서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는 전략을 다룬 부분은 무릎을 치게 만든다. 법정 다툼이 시작되면 오랜 시간 부부였던 이들이 서로를 향해 가장 추악한 칼날을 겨누기 마련이다. 저자는 그 진흙탕 싸움 속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법률적, 심리적 기준점을 제시한다. 평생을 살아오며 느낀 점이 있다면, 어떤 싸움이든 끝이 좋아야 그 사람의 인품이 증명된다는 사실이다.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품격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나 자신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저자의 메시지는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불행에 무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은 시간이 적기에 그 불행은 더 뼈아프게 다가온다. 이혼 판결문은 인생 실패의 성적표가 아니라, 남은 삶이라도 온전히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용기 내어 쟁취한 독립 선언서라는 저자의 말은 마음에 묵직한 울림을 준다. 겨울이 지나면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봄이 오듯, 불행한 관계의 종말 뒤에는 반드시 자신만의 봄날이 기다리고 있다는 위로는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이 책은 단순히 갈라설 결심을 한 이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황혼을 바라보는 나이에 내 가정이 과연 건강한지, 서로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기도 하다. 백세 시대라고 하는 요즘, 남은 수십 년의 세월을 고통 속에서 방치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직무유기다. 관계의 끝자락에서 홀로 속앓이를 하고 있는 동년배들이 있다면, 그리고 그들의 아픔을 지켜보는 자녀들이 있다면 이 책을 조용히 건네고 싶다. 당당하게 이별을 준비하는 일은, 결국 내 삶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가장 고결한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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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강박과 살아갑니다 - 이상한 생각에 자꾸 휘둘리는 당신을 위한 치유의 심리학
신재현 지음 / 시그마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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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삶의 무게중심을 완벽이라는 환상에서 인정이라는 현실로 옮겨오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젊은 날에는 모든 것을 내 통제 하에 두고, 생각한 대로 삶을 이끌어가야만 직성이 풀렸다. 사소한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못했고, 마음속에 떠오르는 불안이나 부정적인 생각들을 어떻게든 찍어 누르려 애썼다. 그러나 일흔을 넘긴 지금 돌이켜보면, 인생은 결코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나는 신재현 전문의의 <오늘도 강박과 살아갑니다>를 읽으며 내가 지나온 세월의 수많은 밤과, 여전히 내 안에서 고개를 드는 불안의 실체를 담담히 마주하게 되었다.

 

이 책은 강박의 본질을 날카로우면서도 다정하게 짚어낸다. 저자는 강박의 핵심이 이상한 생각이 떠오른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고 말한다. 생각은 길가의 잡초처럼 누구나, 언제든 피어오를 수 있는 불청객이다. 진짜 문제는 그 생각을 지나치게 위험한 신호로 과해석하고, 그 불안을 지우기 위해 특정한 행동을 반복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뇌가 스스로 만들어버린 잘못된 공식에 갇히는 순간,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가혹한 감옥을 짓고 살아가게 된다. 뇌과학과 인지심리, 행동치료의 관점을 빌려 이를 설명하는 저자의 시선은 차갑지 않다. 오히려 홀로 외로운 사투를 벌이며 자책하고 있을 이들을 향한 깊은 연민과 다정함이 묻어난다.

 

특히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 것은 강박을 완전히 없애야만 정상이라는 강박적 기준을 과감히 버리라는 대목이다. 우리는 흔히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그것의 완벽한 박멸을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마음의 영역은 다르다. 불안과 강박을 내 삶에서 영원히 추방하겠다는 다짐 자체가 또 다른 강박이 되어 자신을 옥죄기 마련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회복의 목표는 명쾌하다. 불안이 문득 찾아오더라도 삶이 통째로 무너지지 않는 것, 내 안의 불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유연하게 다루며 살아가는 삶이다.

 

이러한 태도는 내가 오랜 세월을 살며 몸소 배운 삶의 지혜와도 맥을 같이 한다. 살다 보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이웃과의 갈등, 공동체의 문제, 혹은 개인적인 상실감 등 수많은 불청객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때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자책하거나 이를 완벽하게 되돌리려 발버둥 치면 마음의 병만 깊어질 뿐이다. 나이가 주신 가장 큰 선물은 그럴 수도 있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여유다. 내 안의 원치 않는 생각과 불안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억지로 쫓아내려 하기보다 또 왔구나하고 곁을 내어주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강박과 불안을 자신의 나약함이나 잘못으로 돌리며 조용히 인내한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듯 강박은 생각보다 훨씬 우리 가까이에 있으며, 인간이라는 유약한 존재가 삶을 살아내며 마주하는 자연스러운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황혼녘에 서서 이 책을 덮으며, 지금도 밤잠을 설치며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을 젊은 세대들과 여전히 마음의 통제권을 내려놓지 못해 힘들어하는 동년배들에게 전하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인생은 그 자체로 존엄하고 아름답다. 불청객 같은 불안과 강박이 삶의 문을 두드릴 때, 그것과 싸워 이기려 힘을 빼기보다 그저 조용히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남은 생을 더욱 단단하고 평온하게 지켜낼 진짜 회복의 시작이다. 이 다정한 심리서는 뇌의 공식을 바꾸는 치료법을 넘어, 삶을 대하는 유연한 태도를 일깨워주는 따뜻한 인생의 지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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