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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조차 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세상의 프레임에 휘둘리지 않고 나를 지키는 판단력 수업
구리야마 나오코 지음, 지소연 옮김 / 웨일북 / 2026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 일흔을 넘기고 보니, 세상이 변해도 너무 빨리 변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하나에 온 세상의 소식이 실시간으로 쏟아지고, 인공지능(AI)이라는 신통방통한 기술이 묻는 말마다 막힘없이 답을 내놓는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눈만 뜨면 밀려드는 자극적인 뉴스들, 내가 한 번 검색한 것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비슷한 것만 골라 보여주는 알고리즘의 홍수 속에서, 과연 지금 내가 하는 생각이 진짜 ‘내 생각’인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구리야마 나오코의 <AI조차 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혼란의 실체를 정확히 짚어내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정보에 쉽게 휘둘리고 선택의 주도권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의 뇌는 애초에 객관적인 ‘사실’보다 익숙하고 구미에 맞는 ‘편향(편견)’에 이끌리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심지어 인간이 만든 데이터의 결정체인 AI마저도 그 편향의 늪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고백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의 “정보가 풍요로워질수록 주의력은 빈곤해진다”라는 경고는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젊은 날에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성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고 자부했다. 배울 만큼 배웠고, 산전수전 겪으며 쌓은 연륜이 있으니 내 판단은 언제나 옳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착각이었는지 깨닫는다. 하버드와 스탠퍼드 같은 세계 최고의 명문대생들이 ‘인지 편향’을 필수 교양으로 배우는 이유는 명확하다.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 합리적 이성이 아니라, 대중이 가진 심리적 취약점, 즉 ‘편향’에 있기 때문이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2년간 당첨되지 않은 번호에 전 재산을 걸었던 이탈리아의 복권 사건이나, 상위 0.1%의 성공 신화만 보고 섣불리 뛰어드는 대중의 맹신은 인지 편향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확증 편향, 손실 혐오, 가용성 휴리스틱 같은 복잡한 학술 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누군가 치밀하게 설계해 놓은 프레임 속에서 놀아나고 있었던 셈이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 믿었던 지난날의 고집들이 스쳐 지나가며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특히 노년의 삶에서 인지 편향은 더욱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능력이 청년 시절보다 떨어지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내가 살아온 경험과 과거의 지식에 의존하게 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고집은 결국 자신만의 폐쇄적인 성을 쌓는 결과를 낳는다.

오늘날의 알고리즘은 이러한 노년의 취약성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유튜브나 카카오톡을 통해 전파되는 자극적인 가짜 뉴스와 편향된 정보들은 노년층의 감정적 편향을 자극하고 극단적인 확신을 심어준다. AI가 제시하는 매끄럽고 기울어진 정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맹목적인 군중 심리에 휩쓸려 스스로 판단할 능력을 잃어버린 ‘생각의 노예’가 되고 만다. 이 책은 노년의 연륜이 결코 편향의 방패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더 쉽게 속아 넘어가는 핑계가 될 수 있음을 따끔하게 경고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편향을 무조건 없애야 한다는 불가능한 목표를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편향에 취약한 존재임을 순순히 인정하고, 그것이 어떻게 무기로 휘둘러지는지 눈을 부릅뜨고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보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달콤한 정답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 책을 덮으며 오늘부터라도 작은 실천을 해보리라 다짐한다. 스마트폰 화면에 뜨는 자극적인 제목에 마음이 쏠릴 때마다 ‘이것이 나를 낚으려는 프레임은 아닐까’ 한 번 더 의심해 보는 것, AI나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편리한 정답을 받아들기 전에 ‘반대의 의견은 무엇일까’ 스스로 질문해 보는 것이다.
백 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육체의 건강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정신의 자립이다. <AI조차 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범람하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내 생각의 키를 단단히 쥐고 존엄한 개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지침서다. 나이를 불문하고,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