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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야 세트 - 전2권
진주 지음 / 신영미디어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수채화 처럼 잔잔하다가 고갱의 그림을 보듯 강렬해지기도 했던 [설야]
눈을 감으면 흑백으로 펼쳐지는 대지에 핏빛으로 물든 기모노를 입고 숨 끊어질듯 서글픈 표정을 한 명이가 보이고, 차가운 금테 안경 뒤에 감정을 알수없는 서늘한 눈매로 세상을 바라보던 류타가 그려진다.
오빠의 죽음에 대한 한으로 밀정을 자처했지만 솟아나는 정에 어설프기만 하던 명.
세상 어디에도 발붙일곳 없이 무감각해져 철벽이 되어버린 가슴에 생기는 자그마한 균열에 스스로도 어쩔줄 몰라하는 류타.
작은 온정이 그리운 이들이 애처롭기만 해서 그들이 나누는 차가운 정사조차 아프기만 하더라.
온전히 명과 류타에만 집중해서 편하게 로맨스만으로 읽어보자 작정했던 [설야]는 어쩔수 없이 우리네 아픈 과거가 함께 하기에 같이 아프고 가슴 찡하게 눈물 참으며 읽을수밖에 없었다.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그들 주위에는 파란약. 빨간약도 있지만, 지독한 악귀도 따라붙기에.
˝너 없는 세상에, 날 내버려 두지마.˝라고 외치는 류타에게 미처 전달되지 못하는 {나, 여기 있어요. 가지 않아요.}라는 명의 속엣말은 아마도 드라마 였다면, 규호가 나오고 그들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끝을 내어도 될 듯 거기까지도 완성도가 높은 글.
그러나, 그렇게 끝을 맺으면 새드엔딩이 되니 맘 착한 작가분이 조금더 내용을 추가해주셨다. 또한, 새로이 정착하여 안정적인 생활을 하며 2세대를 키우는 외전까지 더해졌다. 그래서 류타와 명의 로맨스는 분명 해피엔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야]를 다 읽고 봉투에 곱게 넣어 책장에 꽂아 놓고도, 내내 자리잡고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가슴에 뜨겁게 남아 살아 숨쉬는 조국이지만, 현실은 무너져가고 허술하기만 하던 나라의 미래를 위해 어리디 어린 명을 밀어 넣고 만감이 교차했을 그녀.
그자신이 지나온 길도, 동료로 삼아온 이들의 지나온 길도 결코 허술하지 않음을 알기에 더욱 안타까웠을 최여사의 마음이 보이기도 했다. 명을 구출하러 가서는 그녀의 등을 밀어내며 살아남으라는 말을 하는데 나는 왜 눈물이 나는지.
백화점 앞에서 매맞던 오누이가 명에게 접근하며 했던 행동도, 부암리 아낙네의 염탐도 마냥 욕하면서 볼수만은 없었기에 내게 [설야]는 아픈 소설이다.
아주 멀고 먼 선사시대에도, 과거 영광의 시대에도, 이가 갈리는 치욕스런 일제강점기에도 분명 사람들은 먹고 자고 입고 사랑을 나누며 차세대를 낳고 살아왔다. 그리고, 미래에도 그러할것 이기에 어느 특정한 시대가 배경이라고 소설을 멀리 할 것은 아닌듯하다. 단순히, 시대배경으로 이렇게 멋진 글을 놓쳤다면 나는 분명 뒤늦게 후회했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