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한은 객잔의 3층에서 아무렇게 나무를 깎고 있었다. 벌써 이 객잔에 묵은 지 3일째다. 갈가마귀가 도착한 이후로 사촌 오라비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한 것 같았다. 그녀는 초조해졌다. 황제에게 인가를 받으려면 하루가 다급한 이 시점에 그는 황제조차 무시한 것이었다.

“오라버니.”

“왜.”

설한은 무뚝뚝하다 싶을 만큼 대꾸한 뒤 한빙의 손을 잡았다. 

“어머.”

한빙은 잠시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라버니도 참...제 마음 다 알면서...”

그러면서 그녀는 객잔 1층으로 그를 확 밀어버렸다. 물론 2층, 1층에도 사람들은 많이 있었기에 그 남매의 만행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엎어지고 자빠지고 했다.
설한이 뒤집어지면서 엎은 상에는 다름 아닌 비밀리에 궁에서 나온 사관이 하나 있었다.
그는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식사 중이었는데, 어지간한 미식가인 듯 이 객잔에서 낼 수 있는 모든 음식이 다 차려져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떨어진 설한을 팔을 벌려 받아서 세워놓고는 여전한 얼굴로 식사를 했다.

“이게 무슨 무례한 짓!”

한 무사가 소리를 질렀다.

“객잔에 무림인이 묵고 있다는 걸 안다면 이런 장난질을 치지 못할 텐데. 매운 맛을 볼 겐가?”

“...잠깐.”

모자를 쓴 남자가 그를 제지했다.

“형씨는 뭐요! 날 내버려두셔! 호된 맛을 보게 해 줄 테니! 그러고보니 당랑적파가 객잔에만 들어오면 소란을 피우는 자들을 현상금을 매겼다더니만, 어째 비슷해보이...”

“조심하는데 좋을 게요. 당랑적인지 뭔지 하는 자들도 뭔가 잘못 알고 있군.”

그 얼굴 가린 사나이는 허리에 두 자루의 검을 차고 있었다. 오랫동안 입어 마치 피부같은 느낌을 주는 녹의에 검자루는 하나는 황금, 나머지 하나는 벽옥으로 되어 있었다.

“흥! 보아하니 검 좀 쓰나본데...”

스릉.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는 듯 무사가 검을 뽑아들었다.

“검 쓴다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가 말을 잇기도 전에 얼굴을 가린 무사의 젓가락이 무사의 검을 튕겨냈다. 미처 공격도 하기 전이었다.

“어...”

“아, 당신은...”

설한이 그를 보고 반색했다.

한때 무림을 떠돌면서 무림의 헛됨을 개탄했던 무자무일옹 노유의 수제자 채미홍이었다.
회복 불가능한 부상을 당하고 연인을 잃은 후, 궁으로 옮겨 간 인물 중 하나로...
사실 그 실력보다는 보통 인간의 몸으로 대륙을 극북과 극남, 극동, 극서를 종횡무진했던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황제조차 만나보지 못한 빙궁을 세 번이나 방문하여 알현한 경험도 있었다.

“조용히 하게.”

미홍이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나야 조용히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있...”

젓가락 신공에 잠시 기가 죽었던 무사가 다시 떠들어댔다. 그 통에 1층에서 찻잔을 머리에 뒤집어쓴 사람, 구운 돼지고기를 자르려다 돼지입에 손가락이 들어간 사람 등등.
모두들 소리를 지르면서 3층으로 뛰어들어갔다.

“앗, 안...돼...는데...”

설한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중얼거림이 맞아떨어지게 이내 3층에서 약 7명의 사내가 밖으로 던져졌다.
가슴팍에는 김이 모락모락나는 장이 붉게 맺혀 있었다.

“호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한빙신장인가...”

느긋하기 그지 없는 태도로 미홍이 말했다.

“3번 가봤지만 신장 구경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로군...”

“오라버니! 여기도 글렀어요! 다른 객잔...!아, 미홍이다!”

외치던 그녀는 그대로 1층으로 발을 굴러 미홍을 향해 뛰어내렸다. 그녀의 흰 옷자락이 나비처럼 나풀거렸다.

“저런, 오늘 하루에 공주님 안기를 두번이나 하다니...이 미홍이 운이 좋군.”

“...홍. 전 여자가 아니랍니다.”

설한이 낯뜨거운 얼굴로 손으로 마른 세수를 했다. 열이 가라앉을까 하는 심정에서 한 것이지만, 어설픈 연기로 보일 뿐이었다.
싸늘한 너울로 얼굴을 가린 그녀를 받아낸 미홍이 말했다.

“그래...마침 너희들을 찾고 있는 중이었단다...까마귀는 받았던 것이겠지?”

그날에 설한이 대꾸했다.

“반지를 가지고 왔더군요.”

“역시...너희들 일부러 이러고 다니는 걸 보고서야 감을 잡다니...이 패설사관 자리도 내놓아야 하나 보다.”

일부러...인가?
설한이 휙 하고 한빙을 쳐다보자, 한빙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고 그랬을 확률이 높았다. 한빙은 무림에 나온 적이 한번도 없으니까...
하지만 채미홍은 ‘일부러’ 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채미홍이 그나마 빙궁이 가까운 곳에서 그들의 흔적을 따라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까마귀 이야기도 뭔가 불길했다. 그들이 모르는 불길한 뭔가가 있는 듯 했다.

“미홍, 혹시...”

그렇게 설한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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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이소라님이 활동하시는 지 잘 모르겠는데 10년전에 이소라씨 음악방송을 자주 들었었다.
차분하게 잘 깔리는 목소리에 폭발적인 가창력.
물론 내 취향은 좀 더 조용한쪽이긴 했지만...
아, 아직도 생각난다. 김장훈씨하고 친한 편이어서, 이소라씨가 가끔 가벼운 우울증으로 밖으로 못 나온다고 하면 김장훈씨가 대신 디제이 보던 그때 그 시절.
바람이 분다도 그때 자주 들었었는데...(물론 원곡은 다른 사람작품이지만.)
오늘 같이 날씨 쨍한 날에 들으라고 추천하면 좀 그렇겠지만...지금 나는 이소라씨 음원에 취해 있다.
아, 좋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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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0-20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엇, 그래요?
이소라 씨 얼마 전 TV 나왔던 것 같던데...
그렇지 않아도 저도 가끔 궁금하더라구요.
예전에 방송활동 많이 했는데
머리 짧게 깍은 후론 좀 조용한 것 같더라구요.

태인 2017-10-20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요즘도 나오시는군요.그 조용하고 담담하게 깔리는 목소리와 진행이 참 좋았더랬죠...보고 싶군요...자주 활동을 안 하니...
 

구진이 다시 계약 건으로 집을 비우자 정신 차린 다희가 가정부에게 물었다.

“누구 찾아온 사람 있어?”

“아까 전에 주인님이 잠깐...”

가정부의 말에 다희는 한숨을 쉬었다. 

“뭐래?”

“푹 쉬시라고...”

“그 남잔...”

그녀는 한숨인지 아니면 울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뱉고는 가정부에게 말했다.

“민시길 백작에게 전화해줘.”

“예?”

“정신 없이 울고 나니 생각나네.꼭 오라고 전화 좀 해줘.”

민시길은 그때 경인의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나랑 결혼해주는 겁니까?”

“당신은...꼭 그걸 말로 해야 아시는 거에요? 부끄럽게...”

흰 백합이 가득한 방에서 그녀는 그에게 살짝 입을 맞추었다.

“꼭 약속해줘요. 나만 사랑하겠다고...”

그때 시길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시길은 침대에 앉아있는 경인의 옆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네...”

“백작님. 꼭 와주셔야겠어요. 마님이...마님이...”

“아, 저기 제가 지금 바로 갈 수 가 없어서...”

시길은 그렇게 말한 후 다시 경인의 곁에 앉았다. 경인의 결 좋은 흑발머리에 입을 맞추고 귀에 손을 갖다댔다.
그리고 그 순간, 다희는 채찍에 맞은 고통에 울면서 턱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녀는 1분도 기다릴 수 없어 가정부에게 외쳤다.

“왜 안 온대!”

“마님, 이제 전화했는데...”

“온대?”

“그게 바쁘다고...”

“그 핸드폰 나한테 줘!”

가정부에게서 핸드폰을 뺏은 그녀는 다시 시길에게 전화를 걸었다.

때리리리리~


“전화...”

경인은 시길의 품에 안겨 부드럽게 말했다.

“저 전화 안 받아도 되요?”

“꼭 받아야 합니까...난 당신이...”

“그래도 급한 전화인지 모르잖아요?”

경인은 내심 그가 전화를 받지 않길 기대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시길은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인간이라 곧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전화 화면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심드렁함에서 경악으로 바뀌는 걸 보는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네...누님?”

“시길...나...지금 굉장히 아파...제발 나 좀 살려줘...꼭 날 보러 와줘....너없으면...나는...”

그 말에 시길은 벗었던 윗옷을 다 챙겨 입고 철저하게 재킷까지 차려 입은 후 경인에게 이별을 고했다.

“경인씨. 시간 나는 대로 바로 오겠습니다. 지금은 좀 안되겠네요...고맙습니다.”

“...시길씨!”

“미안합니다...좋은 분위기였는데...”

그 말을 하지 않았으면 경인은 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민시길이라는 남자는 그녀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냈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말하는 수 밖에 없었다.

“좋아요! 맘대로 해요! 어쩌겠어요. 아프다는데.”

“고맙습니다. 경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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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주는 조심스럽게 치마를 들어올린 후 자리에 앉았다. 
그렇지 않아도 창백한 얼굴에 피로한 기색이 감지되었다.

“괜찮을까요?궁주님?”

빙궁의 사무를 보는 집사 조항아가 물었다.

“무엇이 걱정되느냐?”

“…빙이 아가씨가…”

“강호를 두루 밟은 설한이가 있지 아니하냐.”

궁주는 하나하나 씹듯이 말을 했다. 그것은 자신이 하는 말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는 듯한 태도였다.

“네가 설한이를 자주 궁밖으로 보낸 것을 알고 있노라.”

그녀의 말에 조항아가 고개를 수그렸다.

“왜 그리 했느냐?”

“……”

“차기 궁주는 아니지만, 한이는 중요한 아이다. 인가를 받을 때까지는 어쨌든 위험한 상황에 빠져서는 아니 되는데…”

“그러면 지금도…”

항아의 항의에 궁주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네가 하는 일에 내가 잘못되었다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 자주 나갔기에 이번 일도 할 수 있는 것이겠지. 네가 잘 한 일이었다.”

“그럼…빙이 아가씨는…”

“그 아이는…”

궁주는 조용히 말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개입이 안되면 안될수록 좋은 게지.”

“…그렇다는 말씀은?”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려무나…”

궁주는 눈을 감았다. 이제 궁주가 된 지 겨우 3개월…그럼에도 불구하고, 궁주는 나날이 병색이 짙어져가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무공이 그리 강하지 않은 조항아라도 마음을 먹고 그녀를 암살하려 든다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궁주의 무공은 고강했으나, 내공이 갈수록 줄어들었다고 있었다.

“그럼…다 알고 계셨군요.”

항아의 말에 궁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옥반지가 없어진것만으로도 다 알고 있었단다. 무얼 하느냐?”

궁주의 물음에 조항아가 단검을 꺼내들었다. 궁주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항아가 그대로 검을 궁주의 가슴팍쪽으로 밀어내듯 찔렀다.
피가 쏟아져나왔고, 빙궁주의 몸이 허물어지듯 빙궁좌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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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비는 아직도 냉궁에 있습니까?”

태후의 말에 황제는 처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참담하달까…
냉궁에서 머리를 늘어뜨린 채 한없이 울기만 하는 여자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그는 몰랐다.

“아직도 아이 이름을 부릅니다.”

황후는 따로 있지만 그가 마음에 두고 연모하는 이는 연비였다. 하지만 연비는 궁으로 들어오기 전 약혼자와 정을 통해 아이를 가지고 억지로 궁에 들어왔다.
그녀는 황후의 엄한 명을 받고 냉궁에 유폐되었다. 
이것만큼은 왕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인의 일은 여인에게 맡겨두라는 말에 맡겼지만 어느 순간 아이는 사라져버렸고, 연비는 정신을 잃고 있다가 최근 회복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애 이름이 무엇인지 폐하는 아십니까?”

딴 남자의 아이다. 자신의 씨가 아니니 상관없다 싶었던 황제도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참 귀여워했었다.
꼬물꼬물 움직이는 손 발이 어찌나 귀엽던지.

“한이.”

“이제 나이가 한 열여덟 정도 되었겠지요?”

“네…”

황제는 삶의 의지인 아들을 잃고 정신조차 잃은 연비가 가엾었다. 억지로 데려온 것이 문제였을까?
하지만 그대로 놔두었다면 황제의 정신이 나가버렸을 것이다. 그에게는 그를 붙잡아 줄 여자가 필요했다.
그때의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빙궁에서 아이가 나올 때가 되면 연락 준다 하였는데…얼마 전 빙궁주가 보낸 까마귀 발톱에 이런 것이 있더군요.”

태후가 침울한 황제를 달래면서 얇고 긴 비단 천을 건넸다.

“새로운 빙궁주를 인사보내오니 부디 인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연비도 좋아할 것입니다.”

“……”

황제가 한숨을 푹 쉬었다.

“빙궁…이라고 하면 연비는 더 싫어할 겝니다. 연비의 오라비와 약혼자가 빙궁의 반란을 제압하기 위해서 떠났다가 전사했지 않습니까…”

“아니, 아이가 나올 때가 되니 연락온 게 아니겠습니까?”

“어머님은 모를 말씀 하십니다.”

황제가 말했다.

“천하에 황제가 못 가는 곳이 없어, 이때껏 연비를 위해서 강호 대지를 두루 밟았는데…빙궁따위에서 아이를 길렀을리가요…보통 아기라면 거기서 다 죽어나온답니다…설녀는 아이를 키우지 않습니다.”

“하지만…”

태후가 말을 더 이으려는 순간, 태후궁에 요란한 소리가 들리다니 이내 황후가 들어와 두 사람에게 예를 올렸다.

“어서 오오. 황후.”

황제와 태후의 인사에 황후는 참으로 단정하고도 절제된 태도로 황제에게 옥반지 하나를 바치었다.

“그것은 무엇이오?”

황제와 황후는 서로를 바라보았다.그러다가 한참만에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리높여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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