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우리 사위가!”

민부인은 여장군에게 짜증을 냈다.

“또 돌아간다지 뭐에요. 기껏 영지 재산권 문제도 해결해놓고 데려다놨더니 한다는 말이 연극을 다시 한다지 뭐에요!”

“…당신도 참.”

여장군은 부인이 그러거나 말거나 한가롭게 여송연을 태우고 있었다. 시길과 경인이가 결혼해서 재산을 받게 되면 자신에게도 어느정도 떨어지리라는 건 알았지만, 그는 사실 미련은 없었다.

“아니, 참이 문제가 아니라!”

“재산문제에 그렇게 열을 올릴 필요는 없소.”

여장군은 뻐끔! 하고 공중에 연기로 도넛을 만들었다.

“아니...당신은 아깝지도 않아요?”

“흠, 그 친구 자유니까.”

여장군은 그러고는 아내에게서 등을 돌렸다.

“애초에 우리한테 재산이 떨어져봤자지…”

“우리 좋다고 그러는 거에요? 경인이가!”

“경인이가 뭐…난 딴따라 따위가 사위가 되는 건 싫어.”

처음으로 장군은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러니까 지 멋대로 하게 내버려두고…사윗감은 더 좋은 사람으로 찾아보는거요.”

“여보!”

“사람들이야 비웃겠지. 장모 사위라고 서로들 부르다가 갑자기 혼사가 깨어지면…그리고 돌아가신 고모님이 화내시겠지. 하지만 어쩌겠소? 하고 넘어가면 그만 아닌가?”

“그 말도 맞는 말이겠지만…”

민부인은 한숨을 푹 쉬었다.

“모레가 상견례라구요…당신한테 오늘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뭐? 왜 나한테 상의도 없이…”

“일가친척들이 다 모이는데…”

“저런, 난 모르는 걸로 하겠소. 그 시간에 나는 다른 곳에 가 있을테니 알아서 수습하구려.”

사실 장군에게는 모든 것이 상관없었다. 
애초에 민시길이 누군가? 아내의 먼 친척이 아닌가? 자신을 멋대로 휘두르는 그녀가 싫어서라도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그를 밀어냈음이 분명했던…
그러나 고모님이 말씀하셨다.

[꼭 그 두 사람을 이어야 한다.]고.

“그 친구는 알고 있소?”

“물론…이죠.”

물론, 당연히 당사자는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 사윗감이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다는 거였다. 거의 일가가 없어지다시피한 마당이니 그에게 똑바른 예의범절을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다. 그랬기에 경인이가 붙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교정하고 있었다.

“볼 만하겠군.”

후우~하고 다시 장군이 연기를 내뿜었다.

“그 친구는 코미디로 전공을 바꾸어야 할게요. 대망신이겠군.”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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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녀전설로 인하여 한 군도에서는 극북의 지방으로 가는 사람은 금기로 다스렸다.
그것은 단 한번, 아비의 약을 구하기 위해서 극북으로 넘어갔던 아이가 돌아오지 않고 약만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 아이가 설녀에게 잡아먹혔다고 생각했다.
그 아비가 그 딸을 찾아 경계선을 넘어간 이후로 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전설이 남았다. 설녀가 된 딸이 아비를 잡아먹고 그 땅에서 계속 살아간다고…

“한빙.”

남해수도는 찔 것처럼 더웠다. 여인은  머리에 괴고 있던 목침을 내려놓고 오라비를 바라보았다.
오라비는 신이 났는지 시장에서 파는 여러가지 과일들을 잔뜩 들고 왔다.
극북 지방에서 살던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오라버니. 또 사조께 하시는 말씀을 안 듣고 나갔군요.”

“…그야, 한 군데에만 앉아 있으면 이처럼 더운 곳에서는 엉덩이에 종기 난다고. 빙이 너도 밖에 나가면…”

“오라버니는…”

그녀는 뭐라고 말하려 했으나 입을 다물었다.
궁에서 알면 궁주가 절대 가만히 있진 않으리라.

“하여간 넓은 세상에 나오면 돌아다니는 게 옳은 것이지. 아, 누이 한 개 먹어봐.”

“궁에서 먹는 것이 더 맛있어요.”

한빙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채를 부쳤다.

하얀 피부, 탈색이 되어 노란 끼가 도는 머리카락과 눈썹.
눈동자조차 탈색이 된 듯 연한 갈색의 눈동자.
손끝조차 하얀 빛을 내뿜는 듯한 그녀는 그렇다. 설녀였다.
그가 권하고, 그녀가 원하더라도 나갈 수는 없었다. 
설녀는 300년도 전에 극북에 갇혀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다만, 군도의 황제가 바뀔 때마다 인사를 드리러 나올 수 있는 것 뿐이었다.

“왜 그렇게 규칙에 집착하는 거야?”

오라비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오라버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공인을 받고 그저 돌아가기만 하면 될 뿐인 일이에요. 괜히 바깥에 나갔다가 일을 키울 필요는 없잖아요?”

“누이는 쓸데 없는데 마음을 쓰는군.”

설한은 그렇게 말하고 나머지 과일을 다 먹어버렸다. 남해의 진기한 과일들을 그냥 두고보기에는 그의 식욕이 만만찮았다.

“아, 두고 먹을 걸 그랬다.”

다 먹어치우고나서야 설한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너한테 부탁해서 장을 쏘았더라면 신선한 상태로 계속 먹을 수 있었을텐데…”

“…오라버니, 난 얼음보관소가 아니에요…”

설녀는 그렇게 말하곤 뚫린 창문으로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하늘 아래 어딘가에 찾아야 할 무엇인가가 있다.
궁주는 그녀를 만날 때마다 그렇게 말을 하곤 했다.

[한빙, 이제 세상으로 나가면 네가 찾아야 할 것이 꼭 있느니라…나는 알 수 없지만 너는 곧 알게 될 게야. 꼭 찾아서 돌아와야만 한다…너만이 그것을 찾을 수 있단다.]

사조가 무슨 뜻으로 한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빙은 그 말을 마음 속에 두고 새겼다.
다만…밖으로 나가서 찾고 싶진 않았다. 너무 더우면 찾기도 어려우니, 전서구 몇마리와 설호를 우선 풀어놓는 것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빙궁의 차기 계승자는 아름답고 지혜로웠지만 귀찮음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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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미래,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오는가 - "5년 뒤 당신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선대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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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부분보다는 뒷부분에 중심이 가 있는 책이다. 앞부분은 현 사태에 대한 설명이고, 뒷부분은 진짜 일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뒷부분이 굉장히 흥미있었다...다만 읽고 나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가는 개인들의 문제로, 막상 읽고 나니 나도 막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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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길은 뇌전증이 거의 회복되자마자 아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연극 복귀 이야기를 했다. 당연히 왕립 연극단에서 복귀는 희망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응답을 받자마자 시길은 안한다고 단 한마디만 했다.
멍하니 초점 잃은 눈으로 희망도 없고, 절망도 없고 그저 덤덤한 무기물같은 인생처럼 보이는 시길…
경인은 그 덤덤함에는 익숙해져 있었다. 어차피 결혼할 사람이니 미리 익숙해지는 것도 괜찮았다.
하지만 장모 입장에선 곧 장가와야 할 사위가 축 늘어져 있는 건 용납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어느 정도 예측을 했기에 시길이 입원하자마자 경인에게 [그들]에게 전화하려고 닦달질을 했다.
경인이 다희에게 전화하는 것을 미루는데도 말이다.

“어, 오늘은 머리가 바뀌었네요.”

언제 아팠냐는 듯이 욕실에서 머리를 말리고 나온 시길의 말에 경인이 빙긋 웃어보였다.

“며칠 전에는 길었었는데…”

“당신은 참…”

경인이 얼굴을 살짝 아래로 내려뜨리자 공들여한 컷머리가 더욱 청초해보였다.

“그러고보니 내가 신세를 많이 졌네요. 우리 영지에서 구경도 한번 못 시켜주고…하긴 영지 주인인 나도 잘 안 나가니까.”

“…꼭 복귀해야 하나요?”

경인의 말에 시길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건 마음은 정했으되 결론은 내리지 않았을 때 그가 흔히 하는 태도였다.

“왜요…연극배우들이 삶이 싫으신가요?”

“…꼭 해야 할 필욘 없잖아요. 맘대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수 있는 돈이 있는데!”

그녀의 말에 순간적으로 시길의 얼굴이 부분별로 굳어졌다.

“돈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나요? 당신은?”

“하지만!”

“내겐 연기라는 것은…”

시길이 조용히 읊조렸다. 마치 여기가 병원이 아니고, 여기가 도시가 아니고, 낙엽송이 가득한 울긋불긋한 산에 있는 것처럼, 마치 산책하는 것처럼, 그것도 개나 고양이를 동반한 다소 부산스런 산책이 아니라…
혼자서…그러니까 혼자서 오롯이 보온병에 차나 커피를 담아와 마시는 것과 같은…

“태어나면서부터, 걷기 시작할 때부터, 거울을 볼 떄부터…였어요. 그건 [나]에요. 그리고 그건 혼자서 할 수 없는 거에요. 거울이 필요해요.”

“거울 갖다줄게요. 열, 백, 천, 만 전부 다!”

“왜 그렇게 싫어하죠?”

시길은 나른한 표정으로 경인을 내려다보았다. 키 큰 아가씨보다 조금 더 큰 그는 조심스럽게 예비 신부의 이마를 쓸어내렸다.

“당신을 그 여자한테 빼앗기고 싶지…않아요…”

“…하지만 난…”

그녀를 그에게 뺴앗기고 난 후에 어리석게 구하는 걸까.

아니면 일부러 그 사람들 사이를 훼방을 놓는 것일까…
하지만 한가지만큼은 분명했던 것.

[그대가 없으면 내게 거울을 비춰줄 사람이 없으니까. 당신은 나의 거울…]

“약속할게요.”

시길이 그녀에게 말했다.

“난 그녀를 예전에 사랑했던 것처럼 사랑하지 않아요. 난 당신을 사랑하니까 당신을 떠나지 않을 거에요. 그러니까…극단에 올라가 있는 동안만큼은 그저 잊고, 극단 밖의 나만 잊지 말고 사랑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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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조심스레 여인의 머리카락과 두상을 더듬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뭐…야. 몇…시?”

그녀는 귀찮다는 듯이 몸을 뒤척였다. 그는 약간 그 반응이 신경쓰이긴 했지만 계속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그녀는 그의 갈라테이아였다.

“변태같이 머리 그만 만지고 나 좀 놔줘.”

이내 또렷한 목소리가 달리고 그녀가 그의 손을 한쪽으로 치웠다.

“너무 벌써 일어났…”

그의 말에 그녀가 천천히 대꾸했다.

“월드스타 만들어준다며? 그래서 일찍 일어났는데…”

“…그래도.”

그녀의 말에 그가 빙긋 웃었다.

“우리끼리 즐기는 시간도 있어야지.”

“흐음. 그거 사심낀 발언이야.”

그녀가 그래도 사랑스럽게 그를 인정하려는 순간,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경인씨? 아…잘 지내고…아, 뭐라고?”

그 다음 순간 핸드폰을 내동댕이치고 다희가 침대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왜 그래?”

“시길…시길이가…”

여기까지 와서도 시길이 타령인가? 그는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여기까지 와서 왜 그 놈 이야기를 하는 거야. 이젠 같은 단원도 아니잖아.”

그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이번에는 그의 핸드폰에 경인의 번호가 떴다.

“네. 경인양.이게 어찌된 소란…”

경인은 급박하게 시길의 상태를 전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구진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정도 상황이라면…

“알겠습니다…저희 둘 다 가보도록 하지요.”

그는 짜증을 내면서 핸드폰을 박력있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금 투덜거렸다.

“손 진짜 많이 가는 놈.”

“어때, 원하는대로 해줄 거야?”

눈치보면서 말하는 자신의 여신에게 구진이 약하게 투덜거렸다.

“난 어떻게 된 게 너희 둘한테 계속 휘둘린다는 느낌이야. 그 놈이 그렇게 연기가 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면 극단을 그만두지 말았어야지…”

“날 계속 상대역으로 생각한다니 정말 로맨틱해~!”

그녀를 째려보고는 구진이 말했다.

“그건 생각만 해. 말로 뱉지마. 질투나니까.”



#배우의옆얼굴 #창작 #불펌금지 #오마쥬 #도스토옙스키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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