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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검색 중 해외토픽 하나가 눈에 띈다. “고래 입에서 살아난 미국인, 20년 전 비행기 추락사고 생존자” 주인공은 미국인 마이클 패커드(2021, 56세). <뉴욕포스트>는 2021년 6월 12일 고래 입에서 탈출한 매사추세츠주에 사는 마이클 기사를 익일 보도했다. 기사는 그가 20년 전 경비행기 사고에서도 생존한 ‘행운(?)의 주인’이라는 데 강조점을 찍었지만, 필자의 관심은 두 번째 위기 그 자체였다. 

바닷가재를 잡으러 물에 들어간 패커드를 고래가 삼켜버렸다. 상어인 줄 알았는데 이빨이 없어서 고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다행히 고래는 30초 정도 뒤에 패커드를 뱉어냈다. 고래 입속이지만 잠수 탱크로 숨은 쉴 수 있었다. 구출되어 검진한 결과 크게 다친 데는 없어서 몇 시간 뒤 퇴원했다는 것. 고래 전문가인 필립 호어 영국 사우샘프턴대 교수는(<가디언> 인터뷰) 당시 그를 삼킨 고래도 ‘패닉’에 빠졌을 것이라며 “통상 고래 식도에는 멜론보다 큰 음식은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는 것. 


[02]현실과 동화는 확실히 다른가 보다. 했는데.. 

그때 필자가 읽고 있던 책 중 하나는 『철학 놀이터』(양문덕 지음, 숲, 2020)였다. “철학과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 철학마을을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사고방식을 귀엽고 상큼하게, 하지만 너무 가볍지 않게 소개하는 책입니다.” ‘여는 글’에 책의 성격이 담겨 있다. 최초 발행은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쯤 독자들에게 철학이란 무엇인지, 필자의 전공 분야인 서양철학을 알기 쉽게 들려주는 식이었다. 이른바 <피노키오의 철학> 시리즈로 상당히 많은 청소년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책이었다. 이번이 세 번째 개정판(출판사)일 듯한데, 이번은 전면 개정판이다. 아마도 고대 서양의 고전들, 특히 플라톤전집을 완역한 천병희 선생의 원전번역서 등을 펴낸 출판사로서는, 서양철학에 관한 안내서가 필요하다, 일종의 독자 서비스 차원에서 펴낸 것처럼 보인다. 

“아이에게 <피노키오>를 읽어주다가 불현듯 어떤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주인공이 인형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진짜 사람 같다고 느껴져서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싶더군요.”(PART1 인간은 무엇인가, 리드문) 피노키오는 인형일 때부터, 사람으로 변한 이후에도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때론 플라톤과 ‘대화편’ 형식으로 등장하는 등 시르즈 전편에 걸쳐 독자들의 감정 이입 대상으로 활약한다. 일종의 ‘캐릭터’가 부여된 주인공인 셈이다. 그런데, 필자는 동화 속 피노키오 이야기와 좀 달라진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피노키오 줄거리로 피오키오를 공유하자고 한다. 

“천사는 피노키오에게 착한 아이가 되면 ‘진짜 소년’이 되게 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원작과 다르지만 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줄거리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더 많이 알고 있는 쪽을 예시로 쓰겠습니다). 피노키오는 우여곡절을 겪다가 고래 배 속에 갇힌 할아버지를 구하고 쓰러집니다. 이 장면에서 천사는 피노키오를 진짜 소년이 되게 하죠.” (41면) 

원작과 가장 다른 부분이 할아버지가 고래에게 먹히고 구출되는 부분이다. 

“말썽꾸러기 피노키오를 찾으러 바다에까지 간 제페토 할아버지는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고래 배 안에 갇히게 되고, 피노키오는 그 소식을 듣습니다. ……피노키오는 앞뒤 재지 않고 그 길로 바다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듭니다. ……피노키오가 꾀를 내어 연기를 피우자 고래가 재채기를 하게 되고, 그사이 고래 배 속에서 빠져나와 피노키오와 할아버지는 허겁지겁 도망치죠.”(48면)

덕분에 나무 인형이던 피노키오가 사람이 되었지만,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은 몸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고 진정한 의미의 사람의 도리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설정으로, 철학을 통해 어엿한 어른이 되어가는 피노키오의 사고의 성장과정을 바탕에 깔고 있다. 


[2]1990년대 초반.. 고래 속을 가다.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83∼1945)

직장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어느 날, 누군가 소개한 책을 대형서점(당시 종로서적)에서 찾던 중이었다. 요즘과 같은 검색의 시대도 아니고, 찾다찾다 매장 직원에게 문의를 해도 그 책을 찾지 못하는 것이었다. 대충 기억으로 찾는 <고래 속을 가다>라는 책은 없었다. 결국 구매할 수도 없었고, 도서관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내 아이가 초등학생일 무렵, 견학 필수코스이던 ‘인체대탐험전’과 같은 것을 떠올렸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고래 속을 가다니.. 서점 언니로서도 좀 황당했을가? 

얼마 후에야 그 책을 소개한 친구 얘기를 들으니 ‘고래’가 아니라 <고뇌 속을 가다>(1986년 한국어판 출간)였다는 것. 그러나 동일 제목의 책은 결국 찾지 못하였고, 이후 번역된 한국어판 소설의 제목은 『고난의 길』(전4권, 3부작, 동광출판사)이었다. 작가는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83∼1945) 20세기 러시아 문학사에서 장편소설뿐 아니라 수많은 단편과 중편·역사소설·희곡 등을 남겼고, 특히 러시아인의 독특한 기질과 성격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평론가로도 널리 알려져 사람. 〈전쟁과 평화〉·〈안나 카레니나〉로 유명한 레프 톨스토이(1829~1910)라는 대문호의 유명세에 묻히는 바람에 또 한 사람의 러시아 문학의 거장이면서도 덜 알려진 사례다.  

"당신은 제가 괴테 다음으로 좋아하는 문학의 거인입니다. 내가 반하고, 또한 작가로서의 내가 그 누구보다 은혜를 입은 작가지요. 당신이야말로 러시아 문학 전통이 지닌 모든 위대함을 반영하는 러시아적 작가입니다.“  

20세기 독일 문학의 거장 토마스 만(1875-1955)이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에게 쓴 편지(1943.5.8.)의 일부다. 최고의 찬사다. 『고난의 길』 제1권(제1부)은 ‘두 자매’다. 제2권(제2부)은 ‘1918년’ 제3부 ‘음산한 아침’은 상하권으로 발행되었다.(1990, 이상 동광출판사 전4권) 


[3]그 톨스토이 말고 이 톨스토이의 『고난의 길』

얼마 전 대대적인 이사를 하면서 책들을 상당수 버렸는데, 대략 펼쳐놓은 책장에서는 이 소설집을 찾을 수가 없다. 이곳 중고서점에는 재고가 있긴 한데, 전4권이 10만원이다. 단지 오래된 책이라고만 할 수는 없지만 소위 386, 486, 586로 불리는 세대가 대학시절 ‘커리큘럼’에 따라 읽었던 일명 ‘사회과학’ 서적들이 거의 작은 도서관 수준으로 모여 있는 저수지가 하나 있는데, 이 책을 찾기 위해 한 차례 들러야 할 것 같다.


”열아홉 살의 다샤는 페테르스부르그 법대에 갓 입학한 재능 있고 매력적인 처녀다. 다샤는 품위 있고 아름답지만 남들과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텔레긴을 향한 사람의 감정에 눈뜨면서 다샤는 새롭고 성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해간다. 한편 명성 높은 변호사 니콜라이의 아내인 다샤의 언니 카챠는 아름다운 외모와 세련된 취미, 능숙한 사교술을 겸비했다. 카챠는 사교계의 모임에서 언제나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카챠는 행복하지 못하다. 퇴폐적인 생활을 슬퍼한다. 천박한 성격을 지닌 남편에 대한 애정도 식어버리자 연약하고 섬세한 카챠는 파리로 떠난다. 크림반도의 아름다운 여름과 하늘빛으로 반짝이는 바다와 포도주를 즐기며 그것을 행복으로 느끼는 사람들, 그들에게 1917년의 페테르부르그를 움직이는 혁명의 거대한 소용돌이는 술과 사랑과 권태로 흐려진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 속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다샤와 카챠 자매의 삶은 이제 어떻게 달라질까?“(제1부 ‘두 자매’ 개요)

   

”그들에게 1917년의 페테르부르그를 움직이는 혁명의 거대한 소용돌이는 술과 사랑과 권태로 흐려진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 작품 속 시간 배경은 1921~1941. 아, 여기서 고뇌 속을 가다가 나왔구나. 고래 속을 가다. 고뇌 속을 가다. 고난의 길. 언젠가 책을 찾는다면, 제대로 된 리뷰를 써볼 생각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그 누구나 고난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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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road 2022-02-10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선정 축하드리려 왔더니 새 글.. 잘 읽고 가요..

초란공 2022-02-10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두 톨스토이를 혼동한 적이 있어요.ㅋㅋ 조지 오웰의 에세이에 나왔던 것 같은데 어떤 ‘눈 밝으신 분‘이 지적해주신 기억이 납니다.^^;

Meta4 2022-02-19 10:42   좋아요 0 | URL
늦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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