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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의 선행 작업들과 중국의 국가 전략- 동북아시민사회포럼총서 02
우실하 지음 / 울력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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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수 분화의 세계관- 동북아 모태문화 유라시아 모태문화
우실하 지음 / 소나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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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국 일본과 몽골- 한.중.일의 초원을 향한 꿈
박원길 외 지음 / 소나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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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문명 총서 1~6 세트 - 전6권
신용하 외 지음 / 지식산업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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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2천 년의 비밀 롯데학술총서 3
이덕일 지음 / 만권당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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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기史記를 포함한 중국 역사책의 기록을 통해 삼황오제로부터 하은주 삼대에 걸친 고대 왕조의 민족귀속성을 추적한 책이다.

전한시대 태사공 사마천의 기전체 역사서 <사기史記>에 대한 악평은 익히 들어서 알고있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악평은 내용 짜집기, 끼워맞추기와 선후가 전혀 맞지않는 정합성의 오류를 주로 지적하는 것이었다. 이런 이전 악평들에 더해 이번엔 "하화夏華역사 창작"이라는 내용을 하나 더해야겠다. 특히 동이東夷의 역사를 이용해 하화夏華를 창조해냈다는 것인데 예전에 없던 하화를 새로 만들면서 동이를 애써 지우고 가감과 윤색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기史記가 현재 중국의 역사공정에서 주재료로 이용되고 있다는 르뽀이다.


35p. 양계초는 사마천을 "사학계의 조물주"라고 불렀다. ...... 사마천이 '조물주'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진정한 이유는 ...... 그야말로 실체가 없었던 한족族을 만들고 그 한족들의 중국사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든 한족들의 천하사가 바로 <사기>다.


73p. 현재 중국은 중국공산당이 직접 주도하는 국가 차원의 여러 역사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그 핵심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내에서 발생했던 모든 역사는 하화족의 역사'라는 것이다.


80p. 중국은 최근 산동반도를 중심으로 중원의 고고유적들이 대부분 동이문화임을 인정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동이문화는 후대에 하화문화로 편입되어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하화문화가 언제 시작하는지 즉, 하화족夏華族이 언제 시작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 역사공정의 가장 큰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164p. 사마천은 황제도 신농도 치우도 모두 동이족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황제보다 유명한 동이족은 신농과 치우였고, 특히 치우는 유명한 동이족 군주였다. 그래서 사마천은 동이족 군주임이 명백한 신농, 특히 치우와 싸운 황제를 하화족의 시조로 설정해 중국사의 계통을 세우려 했던 것이다. 사마천이 중국과 만이蠻夷를 구분하는 '화이관華夷觀'을 갖고 있었음은 앞서 인용한 "효무본기"의 중국과 만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다.

   유학자들은 화이관을 하화족의 중요한 사상의 하나로 만드는데, 사마천은 제후가 아니었던 공자를 제후들의 사적인 <세가>에 편입시킬 정도로 유학에 깊이 경도되었던 인물이었다. 공자와 사마천에 의해서 '화이관華夷觀'이 동아시아 유학 사회의 기본 관념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마천은 비록 때로는 유학의 틀에서 벗어난 <화식열전>이나 <유협열전> 등도 서술해 비판도 받았지만 그 근본은 유학적 화이관을 갖고 있었다.


166p. 사마천은 그래서 황제부터 시작하는 중국사의 계통을 만들어 유방이 만든 한漢나라를 화이관 계승자로 만들 수 있었고, 이후 중원을 차지한 여러 왕조들이 이 화이관을 바탕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다른 이夷들을 방위개념의 동이, 서융, 남만, 북적으로 비칭卑稱하면서 화이관은 중국인의 세계관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하화족 자체가 만들어진 민족개념에 불과하기 때문에 화이관 자체가 공상의 개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72p. 중국은 현재 자신들을 한족漢族, 또는 하화족夏華族 이라고 부르는데 누구도 그 뿌리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무리가 아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현재 중국에서 전해지는 고대 사료를 통해 하화족의 실체를 밝혀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이족族의 역사가 드러날 뿐 하화족의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227p. 하화夏華와 사이四夷 개념은 사마천의 <사기> 이후에 뚜렷해지는데, 후대에 만들어진 이런 개념을 앞 시대에 적용해서 상고시대부터 하화와 사이의 개념이 있었던 것처럼 호도된 것이다. 고사변학파가 말한 것처럼 중국상고사는 뒤로 갈수록 시대는 올라가며, 뒤로 갈수록 상고시대의 내용이 풍부해지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사이四夷의 개념 역시 후대에 만든 것을 앞 시대로 소급시켜 마치 옛날부터 그랬던 것처럼 '만든역사'이다.


229p.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이들 지역들은 모두 동이족들이 살던 지역이고, 각지에 봉해진 나라들은 모두 동이족 국가들이다. 중원 고대 국가들의 민족귀속성을 살펴보면 이른바 하화족의 국가는 찾을 수 없다. 중국상고사의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공자가 이상사회로 높인 하은주夏殷周 삼대도 모두 동이족 국가이다. 은나라가 동이족 국가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에서 하화족의 나라로 믿어 의심치 않는 주나라도 다름 아닌 사마천이 작성한 계보를 보면 동이족 국가이다. 주나라 시조 후직이 동이족 소호의 손자인 제곡의 아들이자 후직의 어머니 강원이 동이족 유태씨니 부계로 보나 모계로 보나 주나라는 동이족 국가이다. 하화족이라고 볼 수 있는 사료적 근거가 없다. 


331p. 이족의 실체는 중원에 널려 있지만 하족의 실체는 모호하다. 즉 하화족의 중국사는 사마천을 비롯한 여러 역사가들이 만든 개념인데, 이제 그런 만들어진 역사의 실체를 찾는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P.S. 요하와 패수 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중국과 한국의 상고사, 고대사 논쟁에 대해 이덕일님의 <사기, 2천 년의 비밀>은 역사책, 사료를 재료로 민족귀속성 추적(결국 모두 동이東夷족)을 얘기해 나갔다면 , 우실하님의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은 요하遼河 주변 최근 고고학 발굴 결과와 유물, 유적을 중심으로 사료 이전 한국, 중국 두 나라의 상고사 얘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중국의 역사공정 및 동북공정 관련으로 함께 본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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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 이덕일의 한국사 4대 왜곡 바로잡기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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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몇몇 대학들에서 벌어진 어떤 유력인 학위논문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발표를 보는 참담한 기분이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반복된다.

똑같지 않는 분야에서, 그동안 고명과 권위로 군림해온 그들의 민낯이 드러나는 참담한 상황의 무한반복이다.


23p.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를 연구하기에 앞서 우선 역사가를 연구하라고 말했다"라고 언급했다.


25p. 그런데 (식민사학자나 한국 주류사학계의 주장처럼) 어떻게 평양 일대의 소국에 불과한 고조선이 한나라에 불안감을 야기한다는 말인가? 고조선이 평양 일대의 소국이었다면 두 나라가 왜 전쟁을 치렀는지 설명조차 할 수 없다.


60p. 역사학은 사료에 의거해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이 주요 기능이며, 이렇게 재구성한 내용이 타당한지 비평하는 학문이다.


63p. 한국 주류 사학계가 해방 60년이 지난 현재도 일제 식민사학의 왜곡된 논리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주된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스승의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게 하는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학문풍토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당대에 쓴 1차 사료를 직접 검토해가며 자신의 이론을 확립한 것이 아니라 일제 식민사학자들과 그 한국인 제자들의 눈으로 바라본 고대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기 때문이다. 고조선과 한나라 시대로 직접 들어가 그 시대의 사료로 분석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81p. 그뿐만 아니라 만리장성은 벽돌성이고 석성은 돌로 쌓은 우리 전통의 돌성이다. 재료와 축조 방식도 모두 다르다. (이병도처럼) 이 석성을 만리장성의 일부라고 본다면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석성도 만리장성의 일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86p. 거짓말은 하나만 들어보면 진짜 같지만 여러 말을 종합해보면 논리의 모순이 생기게 마련이다.


147p. 일제 발굴조사보다 26배나 많다는 북한의 발굴 결과는 무조건 부정하면서 일제의 발굴 결과는 경전처럼 떠받드는 것을 학문적 태도라고 볼 수는 없다.


172p. 역사란 일정한 사관으로 서술되어 그 흐름을 이해해야 하는데 한 문단 안에 서로 다른 사관이 충돌하고 있으니 그저 외우는 수밖에 없다. 이해과목이어야 할 국사가 암기과목으로 전락한 근본원인이 여기에 있은 것이다.


323p. 단적으로 말해 노론은 임금에 대한 충성이란 개념이 부족한 반면 개인과 집안, 당파의 이익에는 민감했다. 그러니 왕조 국가에서 나라가 망할 위기에 봉착했을 때 국가에 충성하기보다는 개인과 집안의 이익을 선택했고, 그 결과가 일제 수작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객관적 사실로 나타난 것이다. (전체 76명 중 56명이 노론)


35p. 청동기시대가 되어야(만) 고대 국가가 시작된다는 <국사 교과서>의 공식이 단군조선을 부인하기 위한 의도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처럼 한국에만 있는 현대사 연구 금지 원칙 또한 독립운동사를 말살하기 위한 의도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한참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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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도덕경- 철학으로 다시 읽는 노자
김형효 지음 / 소나무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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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실체- 미 정부 비밀 해제 문건으로 본
황성환 지음 / 소나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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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
우실하 지음 / 소나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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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국민화- 독일 대중은 어떻게 히틀러의 국민이 되었는가?
소나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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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에게 만주국이란 무엇이었는가
강상중.현무암 지음, 이목 옮김 / 책과함께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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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노부스케와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를 통해 둘이 살아온 만주국 - 전후 일본 - 해방후 한국의 연속성에 주목한다.

인간 박정희가 만들어진 배경, 그의 생각이 형성되는 전거와 사실들 그리고 기타 잇키, 기시 노부스케, 전전과 전후 일본과의 결탁 또는 박정희가 보배워 제조해낸 5.16쿠데타와 한국의 국가주도 경제건설 모습을 통해 둘의 인간적 한계와 국가통제 계획경제의 명암을 그린다.

개인적으로 박정희를 생각하면 자꾸 선택을 강요받는 느낌이다.

"굶주린 민주주의냐? 밥먹는 독재냐?"가 그 물음이다.

"사흘 굶어서 남의 담 안 넘는 놈 없다"는 속말처럼 배고픔의 해결은 민주주의를 유보해야 할 만큼 급선무였고, 꼭 유보해야만 달성할 수 있는 제로섬 명제란 말인가?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도 있다.

"사흘 굶어서 남의 담 안 넘는 놈 없다"가 통했다면, 같은 무게로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것은 못 참는다" 또한 감당 해야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좋은 책이다. 강력 추천한다!


187p. (제2차 세계) 전쟁 종결은 전쟁 자체의 종결을 의미하기 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전쟁의 시작을 의미했다. 소 대립이라는 거대한 파워 시프트는 제국의 귀태들이 새로운 승리자’(미국) 아래에서 소생할 무대를 준비했던 것이다. 그것은 오욕으로 뒤범벅이 된 과거의 경력을 지워 없애고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기시 노부스케) 그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부여하는 하늘이 내린 선물처럼 여겨지지 않았을까? ......

구미에서 트루먼 독트린이나 마셜 플랜(유럽부흥계획)이 발표되자 이에 대항해서 코민포름(유럽공산당 정보국)의 설치가 결정된 1947, 기시 노부스케는 옥중에서 호기가 도래할 조짐을 적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옥중일기에는 미소 양국의 냉전열전으로 바뀔지 어떨지, 시기 여하”(하라 요시히사, <기시 노부스케>)에 대한 어렴풋한 기대감이 배어 있다. ......

이처럼 패전과 해방을 거쳐 도래한 새로운 전쟁 시대(냉전&열전, 중국국공내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중소분쟁)는 기시와 박정희에게 재생을 향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

이렇듯 기시와 박정희의 경우, 패전과 해방이라는 단절을 거치면서 그 사상적 핵심에 자리 잡은 것은 통주저음처럼 그 후로도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국을 왕도낙토를 실현하려 했던 미완의 프로젝트로 여기고 강한 반소반공의식 하에 군국주의적 국가개조와 계획적 통제경제를 단행하고 조국의 근대화를 완수한다는 강렬한 내셔널리즘의 고무 등에서, 기시와 박정희의 내면에 자리 잡은 사상의 핵은 전전과 전후에 걸쳐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게다가 두 사람은 국가라는 관제(官制)장치를 통한 강력한 정치력의 결집과 그것을 위한 지도() 원리의 도입이라는 점에서도 공통되었다.

다만 박정희와 기시는 그러한 사상적 핵심의 일관성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기회주의적인 전향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변모를 거듭하면서 그때그때 권력의 원천의 차이에 부응하며 자신의 태도를 바꿔가게 된다. 그토록 재빠른 변신, 그리고 권력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려내는 본능적 후가각의 예민함. 두 사람이 권력의 정점에 기어코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자질에 힘입은 것이었다. 박정희와 기시 모두 그러한 자질의 원형을 만주국이라는 아수라장을 거침으로써 획득했던 것이다.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가 그렇게 만난 뒤로 간담상조(肝膽相照,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인다는 뜻. 친구 사이의 眞正(진정)한 우정. 서로 속마음을 터놓고 가까이 지냄.)하는 사이가 되엇던 것도 이러한 두 사람의 공통점을 서로가 인정했기 때문은 아닐까? 제국의 귀태는 패전과 해방 후의 누란의 위기에서 소생하여 장차 한국과 일본에 그런 각인을 남기에 되었던 것이다.


(※ 트루먼 독트린(영어: Truman Doctrine)19473월 미국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이 의회에서 선언한 미국 외교정책에 관한 원칙으로서 그 내용은 공산주의 확대를 저지하기 위하여 자유와 독립의 유지에 노력하며, 소수의 정부지배를 거부하는 의사를 가진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하여 군사적·경제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당시 이 원칙에 따라 그리스와 터키의 반공 정부에 미국이 군사적, 경제적으로 원조를 했다.)


(※ 한일협정(1965) 체결 과정에는 정일권의 드러나지 않은 숨은 공로가 있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일본측 최대의 연결점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1896.11.13. ~ 1987.08.07.) 전수상 이었다. 그는 만주국 시절 산업부 차장과 총무처 차장을 거쳐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1884.12.30. ~ 1948.12.23.) 내각의 군수차관과 상공대신을 지낸 사실상 만주국의 실권자였으며, 명실공히 한일 인맥의 정점에 선 인물이었다. 종전 후 A급 전범자로 복역하다가 석방된 뒤 그는 자민당 전신인 자유당의 창당에 참여, 자민당 간사장, 고문, 총재를 거쳐 1957년에 수상이 되었다. 이복동생인 사토 에이사쿠( 佐藤榮作, 1901.03.27.~1975.06.03.) 에게 수상직을 물려 준 후로는 만주 관련단체의 총본산인 국제선린협회 회장직을 맡아 왔고, 한일협력위원회의 일본측 회장도 겸임하였다. 이러한 기시와 정일권과의 뜻하지 않은만남이 1965130일 처칠(Churchill, W. 1874.11.30. ~ 1965.01.24.) 장례식에서 우연히 옆 자리에 앉은 인연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여기서 정일권은 한일문제 타개에 대한 박정희의 결심을 기시에게 분명히 전달, 기시의 주선으로 그의 이복동생인 사토 수상과 19652월 초 동경회담이 성사되었다. 이 일로 그동안 한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박정희의 의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사토의 불만은 회담 직후 말끔히 사라졌으며, 넉 달 뒤인 622일 한일협정이 정식 조인되기에 이른 것이다. (한국 국회의 동의 절차는) 그해 814일 야당 의원의 불참 속에서 비준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14년 동안 끌던 한일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졌다.
_청산하지 못한 역사1, 정일권, 15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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