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오카인 운동 - 근육에서 나오는 만병통치 호르몬
박병준 지음 / 헤르몬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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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의대 정원 문제가 논란을 크게 일으키는데 이 책 서문에도 저자의 비슷한 지적이 있습니다. 즉 OECD 가입국 중 한국은 인구 천 명 당 의사 수가 거의 꼴찌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또 항생제 등의 약물 처방 남용에 대해서는 그전부터 우려가 많이 제기되었습니다. 약이란, 이를 잘못 처방하거나 남용하면 반드시 독으로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의 의사들을 무작정 비판하는 내용은 아니며, "지금도 (가뜩이나) 훌륭하지만 더 훌륭한 의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충언으로 수용해 줄 것을 부탁하며, 아울러 독자들에게는 마이오카인 호르몬이라는 게 몸 안에서 자연스럽게 분비되는 운동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특정한 운동을 특정한 방식으로 행하면 이 호르몬이 분비된다는 건데(p48), 이렇게 되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적용하다시피하는 소염제 등은 필요가 없어진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가능하면 인위적인 처방을 쓰지 않고, 몸이 자체 치유를 위해 작동시키는 기제에 의존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p50을 보면 고부하 강화 운동이 원칙적으로 필요하며, 지나치게 저부하만 걸리면 마이오카인이 분비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족저근막염 같은 것은 주로 과사용 때문에 발생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래서 전문가가 세심하게 옆에서 지도하며 운동 강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운동 후에는 신체 방어기전이 진행되는데, 마이오카인은 주로 이것을 이용하여 분비를 유도한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자는 만약 자주 운동을 할 수 없는 처지라면, 하루 40분 주 3~4회 몰아서 해도 무방하다고 합니다. 이 점도, 바쁜 독자에게는 뭔가 마음이 끌리게 하는 포인트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마이오카인 운동이 비록 고강도를 지향한다 해도, 이로 인해 관절이 상해서는 안 되니(고강도라면 그럴 수 있습니다), 이를 지켜 가며 운동하는 방법이 책에 상세히 나옵니다. 

p78을 보면 버피 운동이 설명되는데 보기와는 달리 동작이 꽤 복잡하다고 합니다. 제가 눈으로 보기에는 그렇지 않아서 실제로 따라해보니 어떤 점에서 복잡하다는 것인지 납득이 되었습니다. p82에는 라테럴 잭이 설명되는데 lateral이란 이름이 왜 붙었는지는 역시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p84를 보면 점핑 잭이 나오는데 이 역시 우리가 학창 시절에 한 번 정도는 다 해 본 동작입니다. 이 동작만으로도 한 세트의 마이오카인 운동을 구성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p99를 보면 플랭크 운동이 나오는데 이 역시도 근육, 근육의 힘으로만 버텨야 하는 게 포인트입니다. 많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고, 특별한 동작 고안이 필요 없고 집중적으로 시행해 마이오카인이 나온다는 게 생각할수록 신기했습니다. 마이오카인이 자체 치유 호르몬이라는 점 다시 상기해 보십시오. 

브리지 동작도 여러 변형이 있습니다. p126을 보면 역시 간단해 보이지만, 고강도로 일정 시간 이상 지속한다는 게 쉽지 읺은 운동입니다. 이것도 싱글 레그 번형 동작이 두 개나 되어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습니다. p134에 보면 크런치 응용이 나오는데 이 역시 우리들이 여태 많이 해 오던 것이지만 이걸 마이오카인 식으로 변형하는 게 이처럼 간단한 줄은 또 몰랐네요. 척추관 협착 등으로 고생한다면 p142에 나오는 정중신경 운동이 추천될 만하다고 책에서 말합니다. p151 이하에는 목 통증이 있는 이들이 참조할 수 있게, 무엇이 원인인지 해부학적 도판을 곁들여 자세히 설명합니다. 원인을 정확하게 알아야 증상을 치료할 수 있고, 이 책의 일관된 특징은 바로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세하게 파고들어간다는 점입니다. 

p138에 보면 이너 싸이(inner thigh) 운동이 나옵니다. 누워서도 간단하게 시행할 수 있다는 게 역시 장점이며, 여기서도 보면 허벅지 안쪽에 근육통이 생길 때까지만 반복하라고 합니다. 책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게 바로 이 포인트이며, 이렇게 특정 단계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치유 호르몬이 분비되는 게 신기합니다. 자연은 이처럼, 어느 한계를 쉽게 넘지만 않는다면 스스로, 부작용도 없이 낫는 기제를 마련한다는 게 놀라운 이치 아닐까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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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브루타 수학 질문수업 - 수학, 풀지 말고 떠들어 봐!
양경윤.김수진.곽초롱 지음 / 비비투(VIVI2)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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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원래 스스로의 리듬과 논리에 맞춰 실력을 키워 나가야 하는 주제이고 공부입니다. 그런데도 학습의 현장에서는 당장의 성과를 위해, 어떤 정해진 경로를 그냥 주입식으로 암기시키는 방법에만 의존합니다. 그래서는 학생의 실력이 오르기도 힘들고(애초에 수학은 암기와 친한 과목이 아닙니다), 괜히 과목에 대한 정만 확 떨어지기 일쑤입니다. 수학은 문제를 맞닥뜨려 주어진 난관을 척척 해결해나가는 엔지니어링일 뿐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다른 부류의 문제 해결에까지 대응 능력을 향상시켜 가는 고차원의 정신 계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머리 있는 사람이 다 수학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수학 잘하는 사람이 일머리까지 발달한 경우는 주변에서 많이 봅니다. p56 같은 곳을 보면 "배움은 놀이처럼"이란 말이 나오는데 수학에 정말 잘 어울리는 구절입니다. 

p47을 보면 셈식 계산을 잘하는 학생들도 문장제를 어려워하는 수가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차라리 번거로운 말이 없고 수와 식만으로 깔끔하게 구성된 건 척척 풀겠는데, 사람이 일상에서 하는 듯한 말이 끼어들면 이걸 어떻게 식으로 구성해야 할지 벌써 뭐가 당황스럽습니다. 사람의 말은 수식과 달리 모호성이 반드시 개입하며, 학생 개개인이 언어 규약(명시적, 암묵적)에 대해 오해한 바가 있으면 문제 자체를 엉뚱하게 해석할 위험도 있고, 이런 실수가 몇 번 반복되면 아예 문장제 영역 전체에 대한 공포까지 생깁니다. 그래서 특정 학년에 접어들면 학생에게 공연한 강박, 공포, 입스 같은 게 안 생기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욜한데, 이 책에서는 일선에서 선생님들께서 시행착오를 통해 체득하신 많은 노하우가 나와서 좋았습니다. 

수학과 짝이동 놀이(짝이동 활동. p99, p166 등)가 무슨 관계일까 싶기도 한데 책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게 다 있었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저희 때에는 짝이 한번 정해지면 한 학기 내내 계속 갔었는데, 짝이 고정되지 않고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바뀐다면 학생은 더 많은 경우를 고려하고 신중하게 선택을 해야 하는 매 순간을 맞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경우의 수도 따지게 되고(순열, 조합), 사회적 지능도 발달하며, 타인을 배려하고 공감도 해 주는 마인드셋도 갖추게 됩니다. 그저 수학 실력만 느는 게 아니라 사람 자체가 공동체에서 환영 받는 인간형으로 성장하거나 거듭나게 되죠. 

p132를 보면 이끎과정에 대한 설명, 또 벤저민 블룸이 도식화한 사고 과정에 대한 자세한 해설이 있습니다. 이 부분 읽으면서 학생들을 향해 전달되는 가르침이 정말로 이런 신중한 과정을 다 거쳐야 그 어리고 섬세한 정신에 상처가 생기지 않고 자기 것으로 확고하게 자리잡는 게 아닐지,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재능도 있으면서도 마음이 씩씩하기까지 하기에 이런저런 방해물이 있어도 그냥 잘 헤치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어떤 아이는 마음이 약하고 자기 주관이 강해서 그 마음을 잘 북돋워주지 않으면 바로 주저앉거나 성장을 거부하고 다른 방향으로 엇나갑니다. 그래서 어린 정신을 잘 다독이고 교육하는 과정은, 보살피고 감싸주고 돌보는 마음에 더하여 이처럼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방법론이 수반되어야 소정의 성과가 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잘만 다독이면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 어린 인재들을 너무 문제 푸는 기계로만 만드는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물론 주어진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것도 대단한 실력이며, 어린 나이에 출제자의 의도를 바로바로 캐치하여 난제를 해결하는 한국 학생들을 보면 외국에서는 정말로 놀란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여태 없던 새로운 프레임을 짜고 새로운 세계관을 건설하는 유대 식 천재가 나오려면, 문제 풀이 기계보다는 마음껏 사고하는 자유인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풀지 말고 떠들게 하라!"는 이 책의 모토가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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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 아트북 : 크리스토퍼 놀란의 폭발적인 원자력 시대 스릴러
제이다 유안 지음, 김민성 옮김, 크리스토퍼 놀란 서문 / 아르누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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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힌두 경전에 나오는 말을, 과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프로젝트를 완수한 후 탄식처럼 내뱉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죠.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미 2014년에 낭만 가득한 SF영화 <인터스텔라>를 만들어 그의 과학에 대한 소양이 얼마나 깊은지 우리 관객에게 증명한 바 있습니다. 이 영화는 SF는 아니고 아웃사이더 기질이 강했던 한 천재 과학자의 전기인데, 이 아트북을 통해 하나의 걸작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재능과 열정이 바쳐져야 하는지 그 편린이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책의 원제는 "UNLEASHING OPPENHEIMER"인데, 보통 어떤 제품이나 시스템의 완벽한 설명서, 매뉴얼 앞에 UNLEASHED 같은 수식어가 붙는 관행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약간의 유머도 감지되고 뭔가 독자, 관객 앞에 겸손하게 제작 과정을 풀어 놓는 듯 삼가는 마음씀도 와 닿네요.  

킵 손은 이미 <인터스텔라>에서 제작에 깊숙이 관여하여 큰 도움을 줬고 인터스텔라 관련 책도 쓴 적이 있습니다. p100을 보면 이 영화에서 오펜하이머로 扮했던 킬리언 머피가 킵 쏜과 함께 찍은 사진이 나오는데 이제는 많이 늙은 모습이네요. 킬리언 머피는 <배트맨 비긴즈(2005)>에서부터 놀란 감독과 함께 작업했던, 이 감독이 참 아끼는 배우인데 이 작품에서 타이틀 롤을 맡아 설득력 있는 연기력을 보였습니다. p28을 보면 아인슈타인 등과 함께 찍은 오펜하이머의 사진이 나오는데 물론 븐장의 덕이기도 합니다만 제법 닮았습니다. 오펜하이머가 생전에 언제나 염두에 두었던 "현상(오펜하이머가 직접 쓴 말은 아니고 영화 제작진이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도 책에 나오네요. 전자들의 움직임 같은 것)"을, CG를 쓰지 않고 아날로그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웠는지에 대해 놀란 감독이 자세하게 술회합니다. 이 과정에서도 킵 쏜이 조언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CG가 처음 나올 때는 이제 배우, 특수촬영 등 모든 과정과 도구를 XG가 대체할 것이라는 섣부른 예측이 있었습니다만 이제 관객 눈에도 지겹고 놀란 같은 장인한테는 오히려 기피 경로 취급이나 받는 게 현실입니다. 

핵 실험은 그게 어떤 큰 부작용을 가져올지 모르므로 맨해튼 프로젝트 당시 멀리 떨어진 오지였던 뉴멕시코 로스앨러모스에서 실시되었습니다. 제작진은 p124 같은 곳에서 회고하길, 고스트랜치(역시 뉴멕시코 주에 있습니다)에서 상당 분량을 찍되, 실제 그 실험이 이뤄진 로스앨러모스에서 아직도 남아 있는 구조물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어떤 시대물이라도 마찬가지인데, 실제 배경과 그를 그럴싸하게 현대에 재구축한 세트 사이의 배합 비율을 적절히 조절하는 게 참으로 어려운 과제입니다. 세트는 제작진이 가진 해당 주제에 대한 관점을 드러내는, 그저 배경이 아닌 미장센이기 때문에 이 역시도 실물에 마냥 양보를 할 수가 없는 부분입니다. 

영화에서 오펜하이머 주변에서 여러 관계를 형성하던 과학자 무리들도, 당연한 소리지만 누군가의 연기를 통해 영상에서 재현되어야 합니다. 이들에 대한 캐스팅 과정도 매우 흥미로우며, 처음에는 소단락의 제목이 "오펜호미"라고 붙어서 무슨 뜻인지 했는데 p158에 그 철자도  Oppenhomies라고 나옵니다. 또 p168을 보면 제작진이 특히 즐겁게 회고하는 장면이 1943년의 크리스마스 파티인데, 프로덕션 디자이너(=미술감독) 더 용(de Jong)의 멘트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p45를 보면 루이스 스트로스 제독으로 扮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나오는데 저는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는 누군가 했었습니다. 놀란 감독이 감탄하는 대목이 뒤에 나옵니다. 어니스트 로런스 박사 역의 조시 하트넷도 그럴싸합니다. 리처드 파인만 역의 잭 퀘이드, 닐스 보어 역의 케네스 브래너(p78. 이분은 셰익스피어 극 전문 배우죠), 트루먼 대통령 역의 게리 올드먼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부터 놀란 감독은 영화 한 편 찍는 데에 엄청난 인적 자원을 동원하고 컨셉을 살인적으로 디테일하게 설계하는 감독으로 유명합니다. 이 아트북을 통해, 마치 기업 하나를 짓는 듯 장인 정신으로 임하는 미국 영화계의 열정과 체계적 비즈니스 마인드를 엿볼 수 있어서 너무도 유익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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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파우 동물친구들 3 - 귀엽고 독특한 코바늘 손뜨개 인형 캐릭터 20선 피카파우 동물친구들 3
얀 쉔켈 지음, 조진경 옮김, 박상숙 감수 / 참돌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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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작가님 작품은 아니고, 아르헨티나 작가 얀 쉔켈이란 분이 디자인도 하고 손수 집필한 책입니다. 작가님의 프로필 사진을 보니 호리호리한 괴짜 같은 이미지인데, 이런 다양한 캐릭터들을 직접 디자인도 하시고(피키파우 캐릭터들을 모두 손수 만들었습니다), 직접 뜨개질도 하셔서 일일이 바느질 컷을 이렇게 사진으로 찍어서 책 한 권을 만드셨다는 게 놀랍습니다(이름은 얀이지만, 여성입니다). 올해(2023) 4월에도 이 출판사에서 나온 다른 뜨개질 책을 읽고 리뷰를 올린 적 있었는데요. 그 책은 일본에서 나온 책의 번역본이었습니다. 한국도 바느질 문화가 꽤 발달하고, 이를 실생활에서 직접 행하는 주부들이 꽤 많은 편인데 한국 작가분이 쓴 바느질 책도 좀 더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9에서 작가분이 직접 밝히는 대로, 책은 두 파트로 구성되었습니다. 도구, 기본 뜨기법, 기술 들이 먼저 소개되고, 이후에 이런저런 패턴들이 나옵니다. 뜨개질 책은 이처럼, 어느 정도 바느질에 익숙해진 후에는 얼마나 다양한 패턴이 소개되느냐에 따라 책의 재미와 가치가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p16을 보면 실의 여러 종류가, 무게와 두께에 따라 분류됩니다. 실에 다른 팩터가 고려될 건 없으니 두께가 곧 무게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 책에서 제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p19 이하에 잘 나오듯 바느질의 용어들이 잘 정리되었다는 점입니다. 바느질 용어는 외국에서도 용어가 완전히 통일되지는 않아서, 작가마다 다른 말을 쓰기도 하기 때문에 초심자는 약간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사실 좀 진행하다 보면, 아 그 말이 그 말이겠구나 하고 눈치가 오긴 합니다). 이 책은 용어와 함께 그에 해당되는 사진을 따박따박 실었기 때문에, 적어도 책 안에서 용어 사용례가 혼동되지는 않습니다.   

p32에 나오듯이 원형뜨기를 할 때 빼뜨기로 마무리하면 뭔가 투박한 티가 나서 약간 난감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때를 대비해서 작가분은 다른 아이디어를 제시합니다. 원형단을 그렇게 일일이 연결할 게 아니라 나선형뜨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 책에는 "적극 추천"하는 여러 테크닉들이 나와서, 이 방식들만 정말 곧이곧대로 따라하면 (다른 뜨개질 책과 달리) 작가님만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 완성됩니다. 

p60을 보면 (캐릭터가 입는) 속바지 뜨는 법이 나오는데 사실 몸에 타이트하게 붙어서 속바지라는 것일 뿐 아니라 그 레이스(속바지 특유의) 부분까지 세심히 표현하기 때문에 작가님의 디테일 구현 솜씨에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앞에 삐죽 나온 홀 부분은 꼬리를 밖으로 빼는 목적이니 다른 오해는 없어야 하겠습니다. p75에 나오는 머플러 같은 것도, 저렇게 작은 공간에서 어떻게 저처럼 섬세하게 구현이 가능할까 싶어서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다양한 패턴도 패턴이지만 이 책은 캐릭터 바느질이므로 캐릭터 하나하나가 또 다 패턴이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p89에 나오는 여우원숭이 티나를 보십시오. 날렵한 몸매를 보니 과연 여우원숭이이긴 한데 뭔가 짓궂은 일을 꾸미려고 털퍽 앉은 폼에 장난기가 가득하여 마치 작가님 본인이 모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p114를 보면 고슴도치 메이블에 입힐 겉옷 도면이 나오는데 마치 십자말풀이 퀴즈처럼도 보입니다. 중요한 건 단마다 매겨진 번호에 따라, 정확하게 책의 지시에 맞춰 뜨개질을 해야 한다는 점이겠습니다. p132에도 도면이 나오는데 아스트리드(타조)의 머리, 목 부분입니다. 설명도 진짜 자세해서 뜨개에 아직 서툰 독자라고 해도 그저 따라만 하면 충분합니다. 다만 저는 어설프게 저 혼자 생각으로 막 하다가 결국 망쳤는데, 어디까지나 책의 지시에만! 충실하면 결코 그런 일이 없겠습니다 ㅠ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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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종이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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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아무래도 짧은 시간 안에 급속히 성장한 나라이다 보니 천민자본주의가 극성을 부리는 게 특징입니다. p18에 나오는 박경숙씨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박경숙 정도 되는 사람이면 사회적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이런 행동을 하지 않을 듯한데, 그런 건 조선시대나 다른 나라의 사정일 뿐이고 한국에서는 중산층이 구멍가게에서 콩나물 값을 깎는 게 관행이자 차라리 미덕(!)입니다. 물론 자신보다 잘사는 사람 앞에서는 비굴할 만큼 철저하게 체면을 지키는 게 또 보편적 룰이겠습니다. 조정래 작가님도 예전에 남천삼익비치에 사셨으므로 이 점을 매우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ㅋ). 

의븟자식을 인사시킨다(p70)라... 뭐 돈 앞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이고 체면이고 다 내팽개치는 게 이 사회의 노멀입니다. 이것 말고도 뜬금없이 바깥에서 양자를 들인다든가 하는 게 무슨 인도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나중에 상속분 주장을 하기 위해 허수아비 하나를 세우는 수작이죠. 세상에는 남의 돈을 먹기 위해 참으로 가증스러운 온갖 술수가 펼쳐지며 의붓자식 이런 건 양반입니다. 의붓자식이야 자신의 법정상속분으로 참여하는 건데 뭘 탓하겠습니까. 단지 그 안에 숨은 갖가지 검은 술수, 나쁜 속셈이 기가 막힌다는 거죠. 

p109에 나오듯이 민노진 기자처럼, 한눈에 척 보고 모든 진상을 알아차리는 날카로운 두뇌가 세상에는 있습니다. 세상의 온갖 악덕 사업가, 타락한 정치인, 위선자, 전관법조인, 그 외 이도저도 아니면서 한심한 수작을 부리는 모든 사악한 영혼들이 그나마 맘판으로 설치지 못하는 게, 어떤 착한 사람 눈이 무서워라기보다(그런 건 신경도 안 씁니다), 이런 날카로운 정신이 눈 부릅뜨고 감시를 하고 있기 때문이죠.  

한국사회에서 비교적 최근에 생긴 관행 중 하나가 변호사 등의 경우 풀 네임을 다 부르지 않고 성씨만 따서 김변, 박변 하는 식인데... 예를 들어 이 책(2권) p119 같은 데를 보면 "손 변"이라고 띄어쓰기까지 정확하게 표기하고 있습니다. p126을 보면 이태하에게 한지섭이 보내는 편지가 나오는데 그 말투도 그렇고 구구절절에 담긴 지극한 마음 같은 게 느껴져서 이 장편 소설 중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대목이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콜린 매컬로의 <로마의 일인자>에서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가 가이우스 마리우스에게 보내는 서한을 다시 읽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p140에 나오듯 ktx 같은 자기부상식 고속열차가 나오면서 산업구조라든가 인구분포에까지 영향을 크게 준 바가 있습니다. 고속버스나 시외버스 같은 게 요즘은 운행이 크게 줄어들었고 그 회사들도 원가가 오르다 보니 티켓값도 덩달아 올라서 이제 요금이건 시간이건 철도에 상대가 안 됩니다. 1990년대에 많은 논란을 딛고 이를 도입한 것은 확실히 혜안이었고 앞을 내다본 결단이었습니다. 영어 간판이 지나치게 난립하는 "천박한" 현상을 개탄하며 중국 동북 3성 등에서 한자와 한글을 병기하는 예를 드시는데, 사실 수원이나 안산 등을 다녀 보면 여기가 중국인지 한국인지를 알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現壓冷麵이라고 쓰면 무슨 뜻인지 한국인이 바로 알아보겠습니까? (글자는 서평란에 간체자가 깨질 때가 많아서 편의상 윈도가 잘 구현하는 번체자로 했습니다)    

p171을 보면 포항제철, 현 포스코의 창업자 격인 박태준씨에 대해 극찬에 가까운 평가가 나오는데 조정래 작가님은 예전부터 이런 스탠스였기 때문에 그렇게 놀랍지는 않습니다. p178을 보면 캐릭나 한지섭의 능력, 즉 특수작물 하나도 잘 키워나가며 상업적 재배에 성공시키는 재주에 대한 칭송이 있는데 저는 이 대목에서 정치적으로 일시 패배한 후 하방(下方)하여 그곳에서도 열악한 환경에서 성공한 덩사오핑의 예가 생각났습니다. 1250년이 걸려야 얻을 수 있는 거액을 한순간에 챙길 꿈에 부푼 전진혜(p221) 같은 인간도 천민자본주의의 음습한 그늘에서 자라나는 게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조정래 선생의 소설은 언제나 이런 씁쓸하고도 한심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마치 심우도처럼 날카롭고도 심오하게 포착하여 독자와 소통하는 게 최고의 매력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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