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산 패밀리 1 특서 어린이문학 3
박현숙 지음, 길개 그림 / 특서주니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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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동네 뒷산 같은 곳을 지날 때 조심해야 하는 게, 사람들이 버린 반려견이 들개로 변해(p151, p181)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 가끔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도 그런 버려진 개들을 소재로 삼았는데, 소설 속에서는 마냥 사람의 관점에서 이들을 위험하게만 볼 게 아니라, 그런 처지로 몰아댄 비정한 사람들에 대해 더 생각해 볼 것을 권하는 듯합니다. 

1인칭 화자인 얼룩이는 매사에 원한이 가득합니다. 천개산 산66번지(p22 등)에 모여 사는 개 다섯 마리의 삶은 참 처량한데, 요즘 속어로 일종의 "팸"을 이뤄 살고들 있습니다. 모두가 사람에 의해 학대당하다가 탈출하거나 버려진 애들이라서 가출은 아닙니다만 여튼 공통의 한을 품고 팀을 이뤄 힘든 삶을 꾸려 갑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도 유독 얼룩이가 강경론자 극단론자인데, 너무 고생이 심해서인지 인간미, 아니 생물 공통의 어떤 공감대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아주 삭막한 심성입니다.   

바다는 주인에 의해 버려진 게 아니라 자신의 잘못으로 길을 잘못 들어 미아가 되었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듯합니다. 하긴 그런 식으로 어떤 가상의 사연을 만들면 본인 마음이 덜 불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에 맞아 아프면서도 사실은 별로 안 아프다며 (예상과 달리) 아프지 않은 자신을 확인하는 얼룩이에 대해 조소를 보내기까지 하니 최강의 자기기만 기제입니다. 

미소는 이름만 미소일 뿐 얼굴은 찌그러지고(p61) 험상궂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 나쁜 경험이 있는 데다 사는 게 이렇게나 힘드니 그 외양인들 편하게 변할 리가 만무하죠. 이 와중에도 진돗개라며 출신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번개를 보면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반면 얼룩이는 이름이 없으면서도, 어차피 이름이라는 게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붙여 준 것에 불과하니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항변하는데 일리가 있습니다. 다 버려진 개들에 불과한데 사람에 의해 부여된 서열을 따지며 자부심을 갖는 꼴이니 말입니다. 말콤 X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사랑 받고 귀하게 살았는지 몰라도 결국은 버려진 거야.(p100)" 이것은 나중에 대장과 큰 싸움을 벌이는 번개의 항변입니다. 

규칙을 어기면 대장이라도 쫓겨나야 한다고 외치는 얼룩이의 마음엔 어떤 생각이 깃든 걸까요? 리더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려는 쿠데타 세력의 야심? 그렇다기보다, 과거에 대한 상처가 지나치게 깊은 이들이 종종 보이곤 하는, 혹은 약자 컴플렉스의 발로인, 극단적 원칙론자의 모습이 드러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름도 없이 버려진 개라는 끔찍한 트라우마(p54) 때문에 잠시 심성에 때가 묻었을 뿐 천성은 나쁘지 않으리라는 기대를 독자 모두가 갖습니다. p52을 보면, "마음만 약하지 않으면 최고의 대장"이라는 그의 평가가 나옵니다. p83을 보면 그러나 같은 표현을 쓰면서도 얼룩이는 제법 다른 뉘앙스를 담습니다. 

번개보다 더 격렬히, 조난자, "그 사람"을 경계하고 의심하던 게 얼룩이입니다. 이 얼룩이에게 "들개야"라며 이름(?)을 새로 불러 준 게 조난자입니다. "버림 받은 주제에 왜, 사람을 이해 못 해서 다들 난리들이야?(p143)" 얼룩이가 바다를 찾으러 편의점 근처에 갔다가 만난 "흰 개"는 참 말이 많습니다. 얼룩이는 마을에 내려가서 바다를 찾긴 하지만 뜨거운 튀김을 훔치다 다치기도 하고, 심지어 차에 치이기까지 합니다. 말은 거칠지만 친구를 위해 이렇게 목숨까지 거는 얼룩이를 보며 바다가 우는 장면에서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책 안에 컬러링 카드 다섯 장이 들었습니다. 정성들인 일러스트가 많아서 그래픽 노블을 읽는 느낌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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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독학 이탈리아어 첫걸음 - 발음부터 회화까지 한 달 완성 GO! 독학 시리즈
조성윤 지음, Vincenzo Fraterrigo 감수 / 시원스쿨닷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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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쿨에서 나온 여러 외국어 첫걸음 시리즈를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이탈리아어 첫걸음 교재는 올컬러 배색인데다가 일러스트, 사진도 많이 실려서 공부하려는 의욕이 뿜뿜 생깁니다.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풍광만 봐도, 기본 회화와 문법을 빨리 내 것으로 만들어서 저 나라로 얼렁 놀러 가고 싶다는 마음이 몽실몽실 솟아납니다. 

재미있게도, 이 교재는 시리즈 다른 책(다른 외국어 교재)과 달리 캐릭터들이 설정되어 등장 인물로 활약합니다. 그래서 각 단원에서 가르치는 문법, 단어, 발음, 구문 패턴에 더 몰입하고 더 기억이 오래 갈 수 있게 돕습니다. 그런데 여러 문법 패러다임이 워낙 이쁘게 편집되어서 구태여 캐릭터들 도움이 필요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여튼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p58에는 라보라레(lavorare) 동사와 fare[파레] 동사가 소개됩니다. lavorare는 그 모습에서도 바로 알 수 있듯이 영어의 labor 같은 것과 어원이 같습니다. b와 v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둘 다 라틴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이탈리아어 fare 동사는 "하다"라는 뜻인데 라틴어 facio의 후신입니다. 영어의 farewell 같은 데 들어 있는 fare[페어] 하고는 모양만 비슷할 뿐 발음도 어원도 (따라서) 의미("가다"라는 뜻)도 모두 다르니 헷갈리면 안 되겠습니다. 

p59에는 이탈리아어 명사의 가장 기본이 되는 형태를 배웁니다. 영어가 좀 특이한 케이스일 뿐, 불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대부분의 유럽어(힌디어도 마찬가지)는 남, 녀, 중성 등 문법 성별(gender)이 있습니다(영어도 아주 없지는 않죠). 기본적으로 남성은 -o, 여성은 -a로 끝나며, 경우에 따라 새겨야 하는 -e도 있습니다. 또 복수형은, -o와 -e로 끝나는 경우 어미(語尾. ending)가 -i인데, 이로써 왜 다빈치(가문이므로 복수형), 파파라치 등이 그렇게 끝나는지 알 수 있고 남자 연주자에게만 "브라보!"라 외치는지도 이해가 되죠. 사실 a+i=e이므로, -a로 끝나는 명사의 복수 어미가 왜 -e인지도 바로 납득이 됩니다. 라틴어 2형 변화 명사가 복수 1격에서 -i를 취하던 패턴의 유산입니다.(p23도 참조) 

이 교재는 문법뿐 아니라, p66 같은 데서 보듯이 회화도 가르칩니다. 이탈리아어는 철자와 발음이 매우 일치하는 편인 언어이기 때문에 따로 원어민의 발음을 들을 게 있을까 싶어도 그게 그렇지가 않죠. 시원스쿨 이탈리아어 조성윤 쌤 홈피에 가서 다운 받을 수 있으므로 꼭 귀로 듣고 따라해 봐야 합니다. 

stasera(오늘저녁) 같은 단어도, [스따세라]처럼(발음은 일일이 교재에 한글 표기가 되어 있어요) 읽히는데 네이티브의 발음을 안 들으면 이게 [스타]인지 [스따]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같은 치음(dental)이라도 우리 귀에는 거센소리와 된소리가 엄연히 다른데 이걸 유럽인들은 구분 못 한다는 게 매번 놀랍습니다. 

stanno 역시, 원어민의 발음을 챙겨 들어 봐야 이게 [스딴노]인지 [스따노]인지(즉, 철자 겹자음이 발음상으로도 geminate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어는 geminate되는 언어이므로 책에 나오듯이 [스딴노]가 맞습니다. 반면 영어, 불어, 독어 등은 이렇지 않습니다. 

p67에 보면 부사 ci로 존재 여부 말하기를 배우는데, 이건 영어의 유도부사 there의 용법과도 닮았습니다. 영어의 there은 be 동사가 반드시 뒤에 따라오는데 이탈리아어의 ci도 비슷합니다. c'è는 ci와 è가 합쳐진 모습입니다. è가 essere(영어의 be 동사와 비슷. 이 교재 p34 참조)의 3인칭 단수 현재형입니다(주어 mela[사과]가 3인칭 단수). sono도 여기서는 essere의 3인칭 복수형이므로 영어의 there is/are 용법과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도메니코 모두뇨가 유러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불러 유명해졌고 딘 마틴 버전으로도 알려진 칸초네 <볼라레>라는 노래가 있습니다(원제는 "볼라레"가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그렇게 통함). 그 동사는 "날다(fly)"란 뜻인데, p103을 보면 그것과 꽤 비슷하게 생긴 volere라는 동사가 나옵니다. 이 동사는 교재에 나오는 대로 "~을 원하다"라는 뜻인데, 조상인 라틴어에도, 서로 비슷하게 생겼고 하는 일도 닮은 velle가 있죠. 특히 1인칭 단수형인 voglio[볼리오]는 발음에 조심해야 하는데, [보글리오]가 아닙니다(p21 참조). 이것 때문에 현 로마 가톨릭 교황의 원 이름 발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인 적이 있죠. 

p27의 산뜻한 지도, 또 교재 곳곳에 나오는 사진을 보니 하루라도 빨리 이탈리아어를 초보 딱지는 뗄 정도로 배우고 나서 이 나라로 여행 가고 싶어집니다. 그런 날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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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의사의 사계절
문푸른 지음 / 모모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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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문푸른 선생님은 어려서 글쓰기와 별보기를 즐기던 꿈 많은 소년이었고, 다른 전공(천문학)을 선택하셨다가 "세상에 더 도움이 되고 싶어" 의사가 되셨다고 책날개에 나오네요. 국문학과 천문학, 의학 모두 어린 시절 누구나 깊이 공부하고 싶어들 하는 학문이고 보면, 문푸른 선생님이야말로 도전을 통해 남들이 선망하는 길을 몇 걸음 몸소 걸어 보셨거나, 손수 완성해 내신, 참으로 축복 받은 인생이 아니실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어 보니... 이 세상 누구라도 그 길에 굴곡과 애환이 있다는 점도 다시 확인하게 되었네요. 

멋진 의사분과 결혼하여 알콩달콩 살아가는 삶은 어떤 여성이라도 선망할 만하지만 p99에 나오듯이 "신혼 1년차 남편을 병원에서 잃어버린 새댁"으로 사는 게 또한 현실입니다. 의사로서 무의촌 중 하나인 섬에서의 근무라는 게 여러 편의 시설이 없는 것만으로도 견다기 힘들겠지만(광주가 마치 뉴욕처럼 보였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지역 특유의 텃세, 정치 구도 등에 휘말려 공연히 의사 선생님을 불편하게 하는 여러 상황이 더 난감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왜 그 이장 모임에는 가고 나한테는 안 오는 거요? 무시하는 거요?(p81, 그리고 p224)" 열악한 환경에서 사람들 도우려 애 쓰시는 분을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걸까요? 읽으면서 너무도 화가 났습니다. p105 이하의 진상 환자 이야기는 더 기가 막혔습니다. 

무의촌 낙도로 발령나는 일은 속마음으로야 어떤 의사라도 "제발 이 쓰디쓴 잔이 나를 비껴갔으면"하고 바랄 만합니다. 900분 중 한 분이라도 먼저 지원하면, 내 확률이 그만큼 줄어들므로(299/899) 깊은 감사를 마음 속으로 표시하기도 합니다. 이 모두가 군의관 시절의 추억 아닌 추억입니다. 입대 전 와인을 사 들고 여자친구의 방을 방문하며 술김에 두 사람이 모두 과감(p48)해지는 건 여느 젊은 커플의 사정과도 비슷합니다. 여자친구분은, 인턴을 저자께서 수료한 날(p34) 특별히 더 가까워진, 그전까지는 책에서 J 간호사라 불리던 분입니다. p260, p264에, 2월 겨울에 그분을 처음 보았다는 말도 있습니다. 통속 드라마 같은 데서 어떻게 묘사되건 무관하게, 의사 간호사 커플은 제3자가 보기에 든든하고 흐뭇합니다. 

참, 여자친구 한 명과 소중 하게 연을 가꿔 나가는 일은 의사 선생님한테도 쉽지 않습니다. 원래 발레리나였던 분이 부상 때문에 간호사가 되셨다고 책에 나오는데 간호사 일이 어디 좀 힘듭니까. 게다가 직장 내 갈등(p117), 이른바 태움 등 고유의 고충이 있다고 일반인들도 다 알 정도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은 직전 여자친구 P라는 분이 저자께 원래 있었다는 점입니다. 마냥 순하실 것 같은데 "아니, 이번에 광주에 온 김에 확실하게 만나서 끝내야겠어(p97)."라든가, 헤어지고 더 잘된 모습을 반드시 보여주고 만다는 말씀(p101)에는 약간 무서워지기도 했네요. 

그런데 이렇게 단호해진 건, 과거를 단호하게 정리하고 현재의 J님께 더 당당한 연인이 되고 말겠다는 동기가 더 강했던 게 아닐까 싶어서 좀 멋있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남자라면 이래야죠. p154에 보면 J님한테 무릎을 꿇고, 그녀는 인턴 때 날 찼던 여자이며 아무 관계도 현재는 아니라고 밝히는 대목도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을 때 독자로서 섬마을 의사 선생님의 희생과 고충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데 속물처럼 연애 스토리만 쫓아가는 제 자신이 한심하게도 느껴졌으나 뭐 재미있는데 어쩌겠습니까. 

섬에는 섬 사람들만 사는 게 아니라 관광객들도 옵니다. 의사들은 이 사람들도 진료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 참 별 희한한 일을 다 겪으십니다. 책을 읽으며 우리 나라에는 도시건 시골이건 성격이 특이한 사람들이 많기도 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p193을 보면 J님을 치료하며(간호사도 누군가의 간호를 받아야 합니다) 아플 때 왜 얼굴이 창백해지는지를 후방에 군대가 모두 내려가 있는 상황에 비유하는 대목이 있는데 역시 군의관 출신 다우시다 싶었습니다. 같이 근무한 치과의사분과 한의사분에 대해 저자가 술회하는 대목(p204)에서도 독자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물론 다 그러신 건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섬에서 공중보건의로 지내다 보니 섬 사람이 다 되었고 그래서 섬 사람들과, 특히 닥터 S 님과 헤어지는 게 무척 아쉬웠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을 진짜 아프게 한 건 그 헤어짐뿐이 아니라... 특이하게 J님의 시선에서 쓰는 짧은 문단도 있는데 이 때문에 문학 작품 같은 느낌도 받았습니다(문학 맞지만). 후편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네요.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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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잇다 : 전쟁, 무기, 전략 안내서 - 국제 정세부터 무기 체계, 전술까지 최신 군사 기술 트렌드의 모든 것
최현호 지음 / 타인의사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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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전쟁을 소재로 삼은 게임도 많고, 남성 대부분이 군필자인 한국의 현실에서 게임의 영향이 꼭 아니라도 전쟁이나 무기류에 대한 관심은 그전부터 높았던 게 사실입니다. 대중이 전쟁사에 대해 관심을 높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치사, 경제사, 문화사 등 다른 흐름과 영역에까지도 초점을 옮겨가며 전체적으로 역사에 대한 소양이 함께 높아지는 좋은 효과도 있는 듯합니다.   

이 책은 특히, 실제 인류의 역사 흐름을 바꿔 놓은 현대의 전쟁에서 어떤 천재적이고 기발한 전술, 전략이 쓰였는지, 또 무기류는 어떤 게 언제 처음 쓰였고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명쾌하게 알려 줍니다. 많은 책을 읽어도 구체적인 질문에 대해 답이 분명하게는 제시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오랜 (개인적인) 궁금증이 시원하게 해결된 게 많아서 좋았습니다. 아마 많은 밀리터리 마니아분들이, 이 책을 읽고 헷갈리던 사항이 정리되거나, 저자의 시원시원한 분석을 읽고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을 받을 듯합니다. 분량도 그리 부담되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정말 전차 무용론이 나왔었고 이런저런 커뮤에서 지지를 받았었습니다. 1억짜리 재블린이 40억짜리 T-80BW를 박살내는 걸 보면 그런 말들이 나올 법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돞나오듯이, 전선이 여기저기 분산되고 그를 이용하여 우크라이나가 유격전(언제나, 전력이 열세이면 이 전법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을 펼치는 통에 동부전선으로 양측이 집결했고, 이제 정규군으로 일전을 겨뤄야 할 판이니 우크라이나 역시 전차 등이 필요해졌죠(p51).  

p55에는 포탄의 구경(口經)이 아니라 길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대해 프랑스군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사례가 소개됩니다. 관통력도 희생하지 않고, 적재 공간도 아끼기 위해 탄두, 관통자를 탄피에 넣어 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입니다. 이걸 탄두 내장형이라고 하는데(CTA, cased telescoped armament. 약어의 뜻에 대해서는 권말 부록에 따로 glossary가 달렸습니다. p328 등), 인간이 그 생존을 위해 발휘하는 지혜와 재치에는 끝이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포탄의 원리 중, 발사 후 일정 시간이 지난 후 회전에 의한 안정화라는 게 있습니다. 이 원리를 알기까지 16세기 이후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p66을 보면 현대의 활공탄에 대한 설명이 나오며, 이게 일정 고도에서 포탄에 자체 날개가 펴지며 목표 지점으로 날아가는 방식입니다. 당연히, 이런 포탄은 회전에 의해 안정화를 찾는 과정이 없고 책에 나오듯이 별개의 유도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사거리와 정확도가 동시에 향상되는 혁신입니다. 이 활공탄에 대해서는 아마 주식 투자에 관심 있는 분들도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텐데 한국의 방산 업체들도 이걸 개발한다는 뉴스가 있었고 그에 따라 특정 업체의 주가가 들썩였기 때문입니다.      

p113 이하에는 핵추진 잠수함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다 위를 적은 연료(바다에서 채취 합성)만 싣고 장구히도 항해하는 잠수함 노틸러스는 작가 쥘 베른이 19세기에 상상해 내었고, 20세기 중반 들어 핵연료로 구동되는 실제 잠수함이 출현했습니다. 방금 전 뉴스를 들으니 푸틴이 핵으로 추진되는 순항 미사일을 새로 개발했다고 발표하는데, 아무튼 이 핵이라는 게 지극히 적은 비용으로 엄청난 동력을 생산해 낸다는 점에서는 정말 경이로운 에너지원입니다. 핵추진 잠수함은 그 자체도 놀랍지만 그에 탑재된, 핵잠에 최적화한 형태로 새로 만들어진 무기들도 놀랍습니다. 

드론이라는 게 영화, 게임에서나 시제품 혹은 공상의 산물로 등장하는 건 줄 알았는데 오늘도 시리아에서 이를 이용한 테러가 발생해 무고한 이들이 많이 죽거나 다쳤다고 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이미 실전 무기화한 지 오래입니다. 어떤 이는 북한의 전력이 이미 미국과 대등해졌다고 하며 드론으로 핵을 날리면 그만이지 (미국처럼) 막대한 비용을 들여 항모를 운용할 필요가 뭐가 있냐고도 하던데, 일리가 아주 없지는 않으나 그게 현실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중간단계를 거쳐야 하는지를 무시한 주장입니다. 당장 김정은도 러시아한테 미사일 기술을 받으려 애 쓰는 이유는 그럼 뭐겠습니까.   

무적의 창이 있으면 이를 막는 방패도 강구되듯이 드론 막는 무기도 나옵니다. p169 이하에는 대(對)드론 방어 시스템이 설명되는데 이 역시도 아직은 초기 단계입니다만 조만간 완성도를 갖추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이나 예전부터 활동했던 미사일 요격 미사일 미제 패트리엇 같은 것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으나 이제는 그 성능을 세계를 향해 입증해 보였지요.  

p192 이하에는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이 소개됩니다. 사실 이 역시도 대단히 혁신적이고 기발한 전략인 것은 맞습니다. 이미 호주, 캐나다, 독일 등 전통적인 중국 세력권하고는 아주 거리가 먼 나라들에서조차 큰 효과를 낸 바 있습니다. 전쟁에서 수단과 방법이 어디 있으며 목적을 달성만 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16세기에 명의 척계광이 절강병법을 개발하여 왜구에 대처했는데 이 역시도 모양새는 상당히 빠지는 대응이지만 여튼 "중국의 현실과 특징을 고려한 대처 방안"인 것만큼은 틀림 없었지요. 미국과 서유럽은 중국의 그런 의도를 알고, 자국민을 설득하여 총력으로 대응하며, 그런 침투를 막아내는 대응 방법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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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양장) - 무소유 삶을 살다 가신 성철·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메시지
김세중 지음 / 스타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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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이 열반에 드신지 30년이 지났습니다. 이 책은 수 년 전에 김세중 저자에 의해 이미 독자들을 만난 책이지만, 30주기를 맞아 새로 나온 판입니다. 책은 성철 스님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13년 전에 입적하신 법정 스님에 대한 내용도 함께 담았습니다. 책 표지를 보면 왼쪽에 성철 스님이 특유의 기운 장삼을 입으시고, 그 옆에 법정 스님이 매우 젊은 얼굴을 하시고 가부좌를 트신 사진이 있습니다. 법정 스님이 20년 정도 더 젊으신 분입니다.    

성철 스님은 생전부터 타 종교에 대해 몹시도 열린 태도를 견지하셨습니다. p28을 보면 "종교(불교) 자체보다는 진리가 더 우선"이라고 생전에 하신 말씀이 인용됩니다. 물론 참된 불교의 도를 끝까지 추구하면 그게 곧 진리이니 불교와 진리가 둘이 아닙니다만, 구태여 선후를 매기자면 진리가 더 우선이라는 말씀 앞에 숙연해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2)."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애초에 궁극의 도를 바라보시는 분이, 이름이 불교가 되었든 기독교가 되었든 심지어 사탄이 되었든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p89를 보면 부처와 악마가 한몸이라는 성철 스님의 말씀도 있습니다. 

"늦은 변화를 생멸이라고 하며, 빠른 변화를 윤회라고 한다(p80)." 책에서는 육도윤회에 대해서도 설명하는데, 이처럼 불교에서는 고정된 실체가 없고 모든 것이 돌고돌며 변화한다고 가르칩니다. 세상에 고정된 실체가 없고, 심지어 나 자신도 내가 아니며 자아라는 게 성장 과정에서 편의로 잡아 둔 허상에 불과한데, 무엇 때문에 나의 생각 나의 욕구 나의 고집이라는 걸 우기겠습니까? 그 과정에서 괜히 업이나 지으면 다음 생에서 축생으로 태어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모든 것이 고정된 실체가 없는데 하물며 선과 악인들 구분이 있겠습니까? p92에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대한 해석이 나옵니다. 노인은 갖은 고생을 하며 자이언트 말린을 낚았지만, 귀항할 때에는 빈 뼈다귀만을 거두었을 뿐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말린과 노인 자신이 결국은 한몸과도 같았으며 노인은 궁극적으로 이 점을 깨닫고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고도 결론 내립니다.  

p110을 보면 오히려 선과 악을 구별하는 건 사물에 대한 공허한 집착이 그 주된 이유일 뿐이라고 합니다. 선(善)과 악을 지나치게 따지고 드는 게, 실상은 그 마음이 전혀 선하지 않아서라는 지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선과 악을 지나치게 가리는 사람은 아마 극락과 지옥도 엄청나게 분별해 댈 것입니다. 그런데 성철 스님은 심지어 "마음의 눈을 뜨면 우리 사는 이 세상이 곧 극락(p121)"이라고까지 했습니다. 부처님은 세상이 더럽다 하지 않으시고 이 예토에서 마음껏 진리를 설파하시다 가셨습니다. 마음의 눈을 뜨는 그 한 단계가 우리들 중생에게는 이리도 힘듭니다. 

성철 스님은 자신을 만나려면 삼천 배(拜)를 할 것을 먼저 요구했습니다. 자신을 높이려는 게 아니라 삼천 배를 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이 전과는 달리 많은 생각과 성찰을 해 볼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선(禪)의 기본은 자신의 마음을 닦는 일입니다. 몸이 전과 달리 아파 오면, 사람은 고집을 버리고 먼 곳을 응시할 여유를 찾습니다. 마음에 독을 품는 자는 그 독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게 법정 스님의 가르침 중 하나입니 다. 마음 속에 달빛 어린 정원(p247)을 만드는 게 우리들 유한자의 올바른 자세임을, 무소유를 설파한 법정 스님의 뒤안을 살피며 우리 독자들이 깨닫는 바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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