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도 파는 셀러의 기술 - 당장 매출 확 오르는 상품판매 솔루션
박비주.서환희.육은혜 지음 / 청년정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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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다니면서 고달프게 남의 일을 해 주거나 윗사람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 받지 않고 나만의 사업을 한다는 건 분명 하나의 로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좋은 점만 있는 게 아니며, 성공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은 게 자영업입니다. 백종원 씨도 웬만큼 준비를 잘 갖추지 않았다면 창업은 꿈도 꾸지 말라고 했습니다. 창업할 때에는 다들 의지도 목표도 충만하며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열심히들 일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의욕과 부지런함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고 세밀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저자는 p33에서 세일즈와 마케팅은 엄연히 다르다고 강조합니다. 저자의 정의에 따르면, 마케팅은 고객의 관심을 끌어 일단 사람을 모이게 하는 것이라면, 세일즈는 최종적으로 구매결정을 이끌어내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이끄는 걸 가리킨다고 합니다. 유명한 말처럼 "요즘 고객은 필요한 것을 사는 게 아니라, 원하는 걸 사기 마련"입니다. 상대방에게 내 물건을 원하게 만들고, 마침내 사인을 하게 이끌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요. 

전통적으로 셀러의 관점(p39)에서 마케팅 전략의 4P는 product, price, place, promotion을 꼽았고 이는 제롬 매카시 교수가 1960년대에 제안했었습니다. 1990년대에 소비자의 관심에서 새로 4C가 대안으로 제시되었는데 consumer, cost, convenience, communication이라고 합니다. 이는 밥 로터본 교수의 논문에서 주창되었으며, 책에서는 이 네 가지를 매칭시켜 30년만에 마케팅 믹스 패러다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기 쉽게 설명합니다. product와 consumer가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궁금할 수 있는데, 종래의 마케팅이 일단 제품(product)을 만들어 놓고 어떻게 팔지를 고민했다면 현대에는 무조건 소비자를 먼저 상정하고 이 사람이 뭘 원하는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는 뜻입니다. 읽어 보면 다 수긍이 가는 내용들입니다. 

전략적 판매기획 단원에서는 3C, SWOT, PEST 분석 등이 소개됩니다. 특히 PEST는 개인이나 개별 회사가 딱히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시환경에 대한 대처방안(p48)입니다. 책에는 밀키트를 예로 들어 이 분석들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학생 시절에는 개념만 교과서에서 익히고, 회사 다닐 때에는 보고서 작성시에만 외관 확충을 위해 인용했다면, 이제 내 사업을 위해, 내가 죽고사는 심각한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tool을 써 보는 것입니다. SWOT 분석을 꼭 대기업, 중견기업의 시장 전략 수립에만 갖다대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볼 수도 있고, 반밖에 안 남았다며 비관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마케팅은 종전의 뻔한 상황이나 상품도, 소비자에게 그 새로운 의미를 각인시켜 히트 상품으로 바꿔 놓는 기술입니다. 책 p64에서는 종전의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 하나의 날짜를 넘어, 1년 12달이 매번 특별해지게 의미를 부여한 성공 사례를 소개합니다. 물론 어떤 마케팅이 내내 선도를 지킬 수는 없고, 시간이 지나면 식상해지거나 상술에만 치중한다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 감안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가 인기라면, 왜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가격을 높여서 그 구매 열망이 더 간절한 수요자에게 우선 공급하지 않는가. 이런 전략은 해당 상품에 대한 반감을 높여 오랜 생존을 어렵게 만들어 셀러에게 장기적으로 더 손해일 수 있습니다. 책에 나오는 허니버터칩이 그 예인데, 한때 인기를 끌망정 누가 이걸 명품 영역으로 인식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명품이면 그래도 됨). 이런 걸 가리켜 저자는 "득템력 연출 전략"이라고 합니다. 

맥북은 윈도기반 PC처럼 광범위한 소구력을 갖진 않으나 대신 충성스러운 고객층을 수십 년 간 유지했습니다. 책에서는 애플사의 "상품 표현 전략"을 소개합니다. 개성적인 프로필 이미지, 상품명 같은 건 일단 무심히 지나치는 고객의 눈을 확 부여잡는 데에 중요합니다. "호기심과 기대감을 갖게 만들어라." "소통하지 않으면 터진다."(p80) 확실히, 마케팅이란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최고난도의 기술입니다. 

상품과 서비스를 사게 만들려면 일단 세일즈를 하는 이의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합니다(p94). 사실 세일즈뿐 아니라 뉴스 방송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마다 다 똑같은 톤과 색채(잘 통한다는)로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외모가 풍기는 이미지에 맞게 최적의 보이스를 연출하는 게 관건인데 이걸 스타일링 잡는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잘하는 사람은 무작정 목소리를 깔지도 않고, 억텐으로 부담스러운 발랄함을 발산하지도 않습니다. 표정 연기도 목소리에 맞게 개발해야 하는데 예사롭게 보여도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잘 안 되는 사람은 남이 자기 스타일 잡으려고 노력할 때 혼자 게을렀던 사람입니다. 

성공하는 문구는 예상밖의 한 방을 날리는 의외성(p117)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뻔히 이러리라고 예상했다가 의외의 반응이 나오면 놀라서 다시 뒤를 돌아보게 되어 있습니다. 내 스펙에는 관대한 사람이라도 남의 스펙은 누구라도 까다롭게 따지기 마련이니 팔려는 아이템의 스펙이 한눈에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또 내가 소비자와 공감한다는 걸 보여 주고, 짝퉁이 아니라 오리지널임도 어필해야 합니다. 

물건 하나를 사도 꼼꼼하게 따지고 분석한 후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우리 소비자들 중 그렇게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몇 가지 점만 대략 훑고 빨리 판단을 내리는데 이런 휴리스틱 기제가 대세라면 셀러도 그에 영합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에는 대표성, 가용성, 자기편향 휴리스틱 등 세 유형(p140)이 설명됩니다.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영리하고 더 기민해져야 합니다. 스피치, 전략, 인사이트 등 모든 면에서 기술을 닦고 역량을 키워야 하겠다는 점 실감한 독서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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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너는 자유다
손미나 지음 / 코알라컴퍼니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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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아나운서 시절 다소 갑작스럽게 휴직을 택하고 스페인에 다녀오신 체험을 바탕으로 17년 전 저술했던 책이 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제 출판사를 바꿔 새로 나왔습니다. p9에는 저자의 체험에 따라 재구성된 스페인 지도가 나오는데, 이걸 보고 저도 언젠가는 풍토가 다양하기도 한 저 나라에 가서 이런 나만의 경로와 체류 추억에 기반한 개인 지도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역경을 딛고 자립해 본 사람이라야 돈의 가치를 알고 돈 귀한 줄도 알고 정말 써야 할 때는 척척 쓰기도 하는 것입니다. p30 이하에는 아프리카 서부의 나라 세네갈의 거부(巨富) 미스터 디엥이 큰 돈을 쾌척했던 사연이 나오는데, 꿈을 이루기 위해 올바른 방법으로 분투하는 젊은이의 모습은 그만큼이나 아름답고 남 보기에도 뿌듯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되었습니다. 이래서, 성과가 났건 안 났건 간에 누구나 젊은 시절에 열심히 살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기분을 업시키려고 해도 사람인 이상 축축 처지거나 의욕이 바닥을 칠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이럴 때 찾는 특효약이 있다고 하는데 바로 마드리드에 있는 마요르 광장을 찾는 것입니다. 뜨겁게 살아 온 역사를 가진 나라답게 도시마다 고장마다 뚜렷한 개성을 지닌 명소가 많으며 책에 나오듯이 마요르 광장에도 다양한 맛집, 추억이 생길 만한 예쁜 샵들이 구석구석에 자리했다고 합니다. 이런 데서 스쳐간 사람은 평범한 아저씨라고 해도 여인의 가슴에 오래 남을 만합니다.   

톨레도를 두고 저자는 하늘과 맞닿은 도시라고 평가합니다. 가톨릭 국가 답게 오랜 세월을 견디며 사람들의 영혼을 어루만져 온 멋진 성당들이 곳곳에 있고, 저자는 특히 톨레도 대성당이 소장한 엘 그레코, 고야, 루벤스, 반 다이크(p59) 등의 명화를 차분하게 감상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역사에 남을 명화는 요즘 같은 세상에 누구나 책에서 인터넷에서 혹은 모사본(사진본), 혹은 진본 일시 대여 전시회 등을 통해 구경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본고장에서 그 작품들의 온전한 기운, 느낌, 소장처와의 조화적 아우라를 느끼며 감상하는 체험이란 또다른 것입니다. p64에서 말하듯 이런 곳에서 현지의 현악 3중주가 들려 주는 음악은 마치 그림들이 직접 부르는 노래를 듣는 느낌 아니었겠습니까. 

마요르카 섬은 당시에나 지금이나 유럽의 부자들이 인생의 말년을 보내는 유명한 휴양지, 또한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으뜸가는 관광지입니다. 여기에 발데모사라는 곳이 있는데, 무려 쇼팽 본인과 조르주 상드가 머물며 항긋한 커피 한 잔을 들이키기도 한, 특별한 자취가 새겨진 마을이라니 눈이 크게 뜨이는 게 당연합니다. 느닷 찾아온 먹구름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도 음악처럼 들리는(p83) 한적한 마을의 카페. 역시 교양 있는 사람이란, 혹은 오랜 문명이란, 짧은 시간에 갑자기 번 돈이나 물질적 여유로 바로 대체나 보충이 안 되는 어떤 품격이란 게 배어나는 겁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한국인들도 대부분 아는, 바르셀로나 지역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며 특정 종교를 떠나 인류사적 의의가 지대한 문화유산(더군다나 현재진행형인)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조각들이라든가 건축 전체의 외관에 대해 아름답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고 솔직히 말하며(p95), 다만 그 장중함이라든가 엄숙한 분위기가 정녕 신의 계시를 받고 이룬 업적 같았다고는 평가합니다. 또, 예컨대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누가 이어서 완성했다는 말은 없지 않냐며, 가우디의 이 건축도 그대로 놔 둬야 하지 않냐는 현지 친구 디자이너 나탈리아의 불만도 함께 소개합니다. 이 대목을 읽고 저는 2019년에 일단 마무리된 백제 미륵사지 석탑 복원 사업이 생각나기도 했네요.  

"¡Qué guay!" 스페인어로 "너무 멋지다!(p152)"라는 뜻입니다. 아무래도 저자께서 당시 이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그냥 놀러가셨던 게 아니기 때문에, 지자체라든가 여러 문화 단체와 협업했던 기록이 책 곳곳에 나옵니다. 사물놀이라는 게 우리만의 독특한 개성을 잘 표현해서인지 우리 못지 않게 외국인들이 매우 좋아하는 걸 자주 보며, 바르셀로나에서의 공연도 성황리에 마쳐지는 과정이 책에 잘 기록됩니다. 저자님도 학교에서 "파모사 미나(p155)"가 됩니다.  

스페인이란 나라는 원체부터 기원과 역사가 판이한 문화권들이 공존 경쟁하다 15세기 들어 아라곤과 카스티야 중심으로 극적 통합을 이룬 터라 이후에도 내부 갈등이 잦았습니다. 위에 나온 카탈루냐도 그렇고 p181 이하에 나오는 바스크 족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20세기 후반까지도 스페인의 저 북부 지역에서는 문명 국가의 사정이라고는 상상이 어려울 만큼 무력 충돌과 사고가 잦았는데, 저자는 현지에서 당시 90세의 마이떼 란딘 여사를 인터뷰하며 지난시대 압정(壓政)이 남긴 깊은 상처를 돌아봅니다(아마 지금은 돌아가셨겠죠?). 이는 다큐 제작의 일환이기도 했는데 p197에서 저자는 당시 동료 학생들에게 한국의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유비적으로 이야기해 주었다고 적습니다. 

지중해 스페인령 발레아레스 제도에 거의 일자로 이비자(이비사), (위에 언급된) 마요르카, 메노르카가 나란히 놓입니다. 메노르카는 카랄루냐와도 가깝고, 그래서 세상의 끝 마을(p250, p253)이라는 "라 피 델 몬"은 그 이름부터가 프랑스어를 슬쩍 닮은 카탈루냐어입니다. 생긴 것만 딱 봐도 스페인어가 아니죠. 경치 자체가 세상에 둘도 없는 곳인데, 알리시아, 조르디, 하비 등의 친구들과 "우리만의 해변"을 갖고 지낸 그 즐거운 추억을 새긴 이야기들을 읽으니 너무도 부러운 느낌이었습니다. 

"스페인, 너는 자유다!" 일상과 일에 찌든 지친 영혼에도 고강도의 자유를 불어넣어 주는 스페인이란 나라가 진정 자유의 여신과도 같게 느껴진 책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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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우울 - 우울한 마음에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다
이묵돌 지음 / 일요일오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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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는 에곤 실레(Schiele) 풍의 그림이 실렸습니다. 여인은 무엇인가를 피해 웅크리는 듯도 보이며, 이 표지에 90도 우회전하여 인쇄된 까닭에 벽 뒤에 숨어 은근 시선에의 노출을 즐기며 누구를 응시하는 듯도 보입니다. 그 표정에는 불안과 두려움, 반대로 기대 같은 것이 은근 섞인, 복잡미묘한 모습입니다. 놀랍게도 약간의 에로틱한 분위기까지 풍깁니다. 누가 봐도 특유의 선과 색이 실레의 것입니다만 구체적으로 그가 남긴 어떤 제목의 작품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우울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으로 치닫는 단방향의 폭주이지만은 않고 복잡한 감정입니다. 물론 우울이 병으로까지 발전하여 당사자가 도저히 감당 못 할 지경이 되면 하루라도 빨리 병원에 가 봐야 하겠습니다만, 어느 정도는 우리 모두가 우울을 달고 삽니다. 책을 읽어 보면 이묵돌 저자께서는 남들보다 혹독한 어떤 체험을 하시고 정말 지독한 우울증을 겪으셨는데, 그 결과물인 깊이 있는 사색이 이 책에 담겼습니다. 19세기 독일의 니체라든가, 이 저자님 같은 분은 남들 몫의 몇 배를 혼자서 우울해하고 그 고통스러운 부산물(그러나 갚진)을 생산해 내는 사람들입니다. 이기적이지만 우리 독자들은 대신 극한체험을 시키고 그 느낌이 어떤지, 생각이라는 게 어느 경지까지 가는지 책을 통해 슬쩍 엿보고 과실을 챙깁니다. 

이게 최선이었어?라고 물을 때는 보통 그게 정말로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묻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불만족스러워서입니다. 뭐 어떻게 보면 최선의 역설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피하거나 없애버리고 싶은데, 그게 불가능하니까 이 정도로 간신히 수습하고, 싸게 막았다고 여기고 참는 것입니다. p19에 보면 "최선을 다해 젖어가기로 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젖어간다는 말은 적응한다는 뜻입니다(독자인 제가 이해하기로는요). 누구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도 하는데, 이건 남의 사정을 모르는 너무도 무책임하고 냉정한 말입니다. 저자님 말대로, 간신히 간신히 젖어가는 게 우리가 도망칠 수 없는 괴로움과 난관을 우리가 견뎌가는 방법입니다.  

p69에 보면 babip 수치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의 세이버메트릭스 혁명 덕분에 국내 야구팬들이 이야깃거리가 늘어서 행복해진 요즘입니다. 배빕이니 WAR이니 wOBA니 하는 말들이 이제 한국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일상용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야구 좋아하시게 보이는 저자께서도 이 개념에 대해 깊이 생각한 흔적을 이 책에 남기셨는데... 우리 인생도 어찌보면 개인의 노력이나 재능 여부와 무관하게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버린 요소가 참 많죠. 그래서 운명론 같은 게 나오는 건데... 

저는 배빕의 경우는 꼭 이게 운명론이라기보다, 어찌보면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갖는 한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무리 잘하는 타자도 타율 4할을 못 넘기듯, 종목의 우연성이 크게 작용해서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결국 그게 그 소리인지도 모르겠지만요) 다만, 배빕 이론은 얼핏 보아 상식에 반하는 결론 같아도, 우리가 알게모르게 의심하던 바를 기어이 통계를 통해 규명한, 학문적 쾌거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불편하긴 해도 내심으로는 수긍하던 바를 수면에 끌어올려 진실로 정립한 거죠. 

p79에 보면 운전면허 연습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차피 안 될 거라면 연습은 뭐하러 했냐는 책망이 친구한테서 나옵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허무하고 무력해 보여도 이게 정답입니다. 최악은 뭐냐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고 넋 놓고 있는 거죠. 설령 이 또한 지나간다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역효과가 안 나는 한에서 발버둥을 쳐 봐야 합니다. 안 그러면 인간은 불안 때문에 제풀에 지쳐 죽습니다. 

저자님의 이야기들은 상당히 논리적이고 체계적입니다. 용어 사용도 굉장히 정확성을 기하는 스타일입니다. 미셀러니보다는 에세이에 가깝다고 할까요. 소확행에 대한 지론(p98 이하)도 독자 개인적으로 동의 반대 여부를 떠나 깊이 생각해 볼 대목이 많았습니다. p105 이하에 나오는, 에리히 프롬의 고전에 대한 해석도 시원시원했습니다. 그시절(도스토옙스키가 활동하던 시대)만 원고료를 단어 수로 책정(p125)하던 게 아니라 지금도 스크립터(그리고 상당수의 작가)는 미국에서 그런 식으로 페이를 받습니다. 우습긴 하지만요. 

우울은 과연 질병과도 같아서 타인에게 전염이 될까요?(p182) 저는 무조건이라고 봅니다. 어떤 감정도 인간들 사이에서는 전염이 잘 되는데, 우울감처럼 뭔가 인간 정신의 본체 비슷한 요소는, 기다렸다는 듯 화선지가 벼루에서 먹을 빨아들이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면 이런 감정을 잘 다루시는 전문가에게 내 몫의 짐까지 떠넘기고 싶고, 이런 좋은 책을 읽으면서 대보름날 내 더위 사가라는 양 헛스윙 크게 휘두르고도 싶습니다. 남이 크게 우울한 걸 보면 내 우울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값싸게 안도하는 내 모습이 지극히 이기적이지만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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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독학 스페인어 첫걸음 - 발음부터 회화까지 한 달 완성 GO! 독학 시리즈
Juan Cho 지음, Raimon Blancafort Lopez 감수 / 시원스쿨닷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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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 중 하나가 스페인어입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는 강사분들이, 배워 두면 라틴 아메리카 여성들을 꼬시기 좋다며 (남)학생들에게 수강 신청을 권하기도 했는데 뭐 아주 틀린 말도 아닙니다. 해외에 가서 어느 정도라도 의사가 통한다면 현지인들에게 (꼭 연애 관련이 아니라도) 호감을 얻는 게 쉽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감과 친밀을 다지는 데 언어 소통만한 것도 드물겠으므로, 해외 출장이나 파견 근무 시에도 쓰임새가 높을 스페인어는 배워 두면 가성비가 잘 빠지는 외국어입니다. 

시원스쿨 교재답게 편집도 깔끔하고 설명이 매우 쉽게 잘 되어 있습니다. p12 이하에는 스페인더 알파벳이 표로 잘 정리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여태 공부하던 책 중 눈에 가장 잘 들어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올컬러 편집의 힘이 큰 듯도 하고, 학습자가 잘 틀리곤 하는 대목에 대해 보충 설명도 잘 되어 있어 뭔가 지금까지 곧잘 헷갈리던 사항이 더 잘 정리되는 것 같았습니다. 

강세 규칙도 여러 교재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치는데(결론은 같지만), 이 책은 더 간단하게 설명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모음(과 n, s)로 끝나는 단어는 끝에서 두번째(penult) 모음에 강세가 있다, 나머지는 모두 마지막 모음에 강세가 있다, 이런 식입니다. 라틴어의 후손격 언어들 강세는 penult 강세라는 도그마가 있는데, 이 교재는 그에 집착하지 않고 수험생의 이해 위주로 실용적인 접근을 하는 것입니다. 

기초를 배우고 나면 문법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문법 패러다임을 가르칠 때 표가 올컬러로 배색되었을 뿐 아니라, 편집도 매우 재치있게 이뤄져서 뭔가 학습자가 보기가 편합니다. 또 아무래도 유럽의 언어들은 재귀동사(p24)가 독특하게 발전했기 때문에, 이런 개념이 없는 한국어 사용자로서는 매우 낯선 게 사실입니다(영어는 재귀대명사가 있긴 하나 동사 자체에서 재귀형을 취하는 게 매우 드물고, 재귀대명사라 해도 문법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스페인어는 이름 소개 할 때 필수로 쓰는 llamarse부터가 재귀동사이니 말 다했죠. 불어도 appeler 동사를 써서 스페인어 비슷하게 표현합니다. 반면 영어는 My name is.. 라든가 They call me.. 하는 식이라서 재귀동사가 안 쓰이죠. p188의 수동의 se, 무인칭의 se도 참조하십시오. 

어학 공부 내용만 담은 게 아니라, 스페인어 공부 의욕과 동기를 북돋우기 위해 스페인에 대한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컬러 사진과 함께 실은 점도 눈에 띕니다. 낮잠(시에스타)을 좋아하고 약속 시간에 종종 늦는 스페인 사람들의 기질과는 대조적으로, 카탈루냐 사람들은 저자께서 겪어 보기로는 "열심히 일하고 경쟁심이 강하며 시간 약속도 철저히 지키는(p47)" 편이라고 합니다. 꼭 지난 역사에 대한 이해가 없더라도, 축구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샤가 치열한 라이벌리 관계란 점만 알아도 책에서 지적하는 이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오겠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의 게으른(?) 기질에 대해서는 p171을 참조하십시오. 

hablar 동사(p64)도 우리가 지금 외국어를 공부하는 마당에 반드시 그 용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페이지에는, -ar 어미(ending)을 가진 동사로서 cantar, bailar, preguntar, buscar, organizar 등을 함께 표를 통해 가르치기 때문에 효율적인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er 어미를 갖는 동사가 바로 다음 페이지에 나와서 앞 유형과 바로 대조할 수 있게 합니다. 세번째 유형 -ir 동사는 보통 다른 책에서도 vivir를 예로 듭니다. 라틴어 vivere의 후손답게 뭐 모양도 거의 똑같습니다. 발음은, 스페인어에는 원칙적으로 [v]가 없어서 v도 [b] 발음을 합니다. 

어느 나라 언어에서도 "가다"라는 동사가 중요한데, 영어도 go가 시제변화할 때 완전한 불규칙입니다. p132에서 보듯 스페인어는 현재 직설법에서조차 원형과 전혀 모습이 다른 불규칙입니다. voy, vas, va처럼... 노래 가사나 영화, 드라마 대사에서 자주 들은 대로, si는 영어의 if와 같은 기능을 하는 접속사입니다. 다만 p133에 나오는 예문들은 모두 직설법입니다. 영어에서도 if 뒤에 직설법이 올 수 있습니다. 

러시아어에도 이 비슷한 게 있는데, 외국인이 보기에 마치 주어와 목적어가 바뀐 듯한 게 역구조 동사입니다. p146에 나오듯 gustar는 "A가 B에게 기쁨을 주다"라는 뜻으로, Me gusta bailar.처럼 쓰입니다. 해석하면 "춤추는 게 나에게 기쁨을 줘."인데 쉽게 말해 "난 춤추는 게 좋아."입니다. 어순에도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아픔을 주다"라는 doler도 있는데 dol-이 슬픔이란 뜻의 어근으로 많이 쓰이므로 외우기가 쉽습니다. 

p228에는 불완료 과거 시제가 나오는데 이 역시 프랑스어나 스페인어처럼 로망스어계에 그대로 살아 있는 문법 요소입니다. 영어나 독일어에는 이런 게 없죠. p231에 단순과거와 불완료과거의 차이가 잘 설명됩니다. 

문법뿐 아니라 현지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회화와 표현이 많이 나와서 유익하며, 하나, 후안, 마리아 등의 귀여운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집중이 더 잘되는 것도 장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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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 어린이해방선언 100주년 기념 동요그림집
윤석중 외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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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우리가 불러 오던 아름다운 동요들. 그저 목청껏 불러 스트레스 해소만 도와 줬던 게 아니라, 평화로운 곡조와 차분한 노랫말 들이 우리의 심성을 착하게 지켜 준 고마움도 매우 큽니다. 그래서 아무리 나이가 든 후라 해도, 어려서 부르던 그 노래들을 힘차게 부르면, 그 시절의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르며 순수했던 처음의 뜻도 다시 새겨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주 즐겨 부르던 노래인데도 정작 그 작사 작곡을 하신 선생님들은 누구셨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죠. <어머님 은혜>는 윤춘병 작시, 박재훈 작곡이라고 p45에 나옵니다. "높고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낳으시고 기르신 어머님 은혜를 모르는 건 인간이 아닌 짐승이라고 해야겠죠. 어찌 하늘 따위에 비기겠습니까. 우리 모두 말로만 이러지 말고 오늘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반드시 효도합시다. 지금 당장 폰을 열고 안부 전화 드립시다. 그런데 책에 의하면 이 노래가 무려 1948년에 나왔다니 그 점도 놀랍습니다. 

요즘도 이 노래가 교과서에 나오는지는 모르겠는데,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라는 가사의 노래를 어려서 불렀던 기억이 일정 연령층 이상에게는 있을 수 있습니다. 곡조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가사도 우리말 특유의 음운적 묘미와 리듬이 잘 드러난, 어린이들이 입으로 따라부르기에 참 좋은 명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음 페이지에는 윤극영 곡 윤석중 시, <어린이날 노래>가 나오는데 이 두 분은 아동문학, 동요 창작에 있어서 거대한 산과도 같은 분들이죠. 이 곡 역시 1948년 발표라고 합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 일찍부터 어린이 운동을 펴셨기에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시점이기도 하지만, 해방 직후의 끝없는 희망과 폭발적인 환희가 이렇게도 표현된 게 아닌가 생각도 해 봅니다. 

청마 유치환 선생은 경남 통영이 낳은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가였습니다. p67에는 <메아리>라는 노래가 소개되는데, 이분이 작사하셨고 곡은 김대현 선생이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식목 사업이 한창 진행된 후라서 가사에 나오듯이 "벌거숭이 붉은 산"이 없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김동인의 <붉은 산>이라는 작품이 있었을 만큼 한국의 녹화 상태가 매우 나빴습니다(물론 기후 온난화 때문에 최근에 산불 피해가 잦긴 했지만 녹화가 다시 완성된 한참 후의 일이죠). 더군다나 1953년이면 한국전쟁 직후이니 얼마나 상태가 나빴겠습니까. 나무가 없는 산에는 메아리도 없고 인간의 호소를 받아줄 자연도 없고 미래도 없다는 매우 심각한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금강산은 한국의 대표적인 명산이지만 지금은 분단 때문에 찾아가볼 수가 없습니다. 동요 <금강산>도 1953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일만 이천봉이라는 그 특유의 구조도 신비로우며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물든 모습이 그렇게나 절경이라는데 온 겨레를 넘어 세계 사람들의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노래가 만들어진 게 1953년, 한국전 직후라는 점도 눈에 띕니다. 물론 전쟁 전에도 금강산은 38선 이북이었으며 왕래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동요도 소개됩니다. 1984년에 발표된 <노을>은 가사도 그렇고 곡조도 전형적인 한국 동요풍입니다. 오히려 1950년대에 만들어진 곡들이 더 창의적이고 자유분방한 느낌이 듭니다. 물론 <노을>은 MBC 제1회 창작동요제 대상을 받았을 만큼 명곡입니다. <올챙이와 개구리(이른바 개구리 송)> 같은, 현대의 히트 동요(?)도 포함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습니다. 

p116 이하에는 아동문학평론가 김용희의 해설이 실렸습니다. 이 글이 대단히 유익하며, 책에서 어떤 교훈이나 정보를 찾으려는 분들은 이 멋진 평론 한 편만으로도 건질 걸 다 건졌다고 여길 수 있겠습니다. 책에는 작품 하나하나에마다 멋진 그림 한 폭이 함께 실려 마치 시화전(詩畵殿)을 보는 듯합니다. 책은 이처럼 꼭 활자를 통해 지식만 얻는 게 아니라 예쁜 추억의 기념품 노릇도 하는 것입니다. 시대별 구분 편제라서 노래로 돌아보는 현대사 노릇도 겸할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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