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 분석의 기본 그림으로 이해하는 인체 이야기
이시이 신이치로 지음, 김선숙 옮김, 박지혜 감수 / 성안당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표지에도 나오듯, 이 책에서 동작 분석이라 함은, 환자의 동작 패턴을 관찰하여 동작 장해(障害)의 원인을 특정해 가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다시 p26을 보면, 이 책의 제목과 컨셉에 끌려 펼쳐 든 이들 중 상당수는 아마 직업으로써 물리치료사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추측한다는 말도 나옵니다. "동작 분석"이라는 말 안에 이미 "환자"라는 말이 들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책은 물리치료사라는 직업의 전망에 대해, 아주 유망하며 로봇이나 AI에 의해서도 쉽게 대체되기 힘든 분야라며 강력하게 추천하는 쪽입니다. 

그런데 저는, 물리치료사 지망생 외에도, 허리가 아프다거나 자신의 자세 때문에 이런저런 질환이 있던 분들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치료법에 대해 혼자 연구해 보기 위해 이 책을 골라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운동 선수를 지도하는 여러 종목 코치 같은 분들도 이 책에서 참고할 부분이 많겠다고도 싶었습니다. 

이 책은, 동작의 기본단위를 "체절(體節)"로 삼습니다. 뒤집기 동작의 경우, 머리의 움직임을 최초 기본 동작으로 삼아 이뤄진다고 합니다. p43에 뒤집기 동작이라는 게 어떤 순서로 이뤄지는지가 자세하게 나오는데,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어려서부터 해 오던 것이라 무덤덤하게 받아들이지만, 하나하나 차례를 매기고 분석하면 이렇게나 복잡하구나 싶었네요. 이처럼, 체절 단위로 동작을 분석하는 이유는 뭐겠습니까. 어느 단계서 문제가 생기길래 환자가 특정 동작이 안 되는 건지, 원인을 정확히 알아내서 치료에 활용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p50 같은 곳에서부터 이 책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뒤집기 동작이 가능하기 위한 메커니즘이 본격적으로 분석되는 거죠. 두경부를 조금 굽히는 게 공통적인 시작점인데, 견갑대(어깨)와 상지(팔)이 아프면 이 동작이 안 된다고 합니다. 이 부위들의 자그마한 통증, 질환도 뒤집기 동작을 방해한다는 거죠. 또 뒤집기의 중추는 척추의 회전(p54)인데, 골반과 하지(다리)가 이 상부 체절을 떠받치는 무게 중심이라고 합니다. p55에는 외복사근, 내복사근의 자세한 구조가 그림을 통해 설명되는데 "위에서부터 아래 방향으로 뒤틀림이 해소되는 과정"이 이걸로 명쾌하게 납득이 되네요. 

뒤집기를 예로 들면, 맨먼저 머리를 움직인다고 했었습니다(실제로 우리가 해 봐도 그렇게 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몸에 회전력이 부족하면 이렇게 안 된다고 나옵니다. 다른 데에서 동작을 시작하고, 일반인이 보기엔 부자연스럽거나 불필요해 보이는 동작(이런 걸 책에서는 보상 동작이라고 합니다)을 한다고 그러네요. 하긴 우리들도, 몸이 어디가 일시적으로 안 좋다거나 했을 때 이 비슷한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일어나기 동작"은 뒤집기의 발전형이라고 합니다. "정상적으로 일어날 때에는 바닥에 손을 짚고 몸통을 지탱하지 않는다(p74)." 이 설명은 측와위(옆으로 누움)에서 일어날 때를 전제로 할 때입니다. 말로 하면 살짝 헷갈리지만 바로 다음 페이지 하단에 그림과 함께 설명이 나오므로 누구라도 쉽게 이해가 가능합니다. 또 이런 동작은 우리가 살면서 다들 거치는 것이므로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아 그렇겠구나 하고 납득이 되지요. 

여기서도, 예를 들어 편마비 환자(중풍 등)는 과잉 노력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p90). 또 구태여 난간 같은 걸 사용해서 일어나려 든다거나, 균형추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든가 하는 게 다 이런 경우의 두드러진 증상이라고 합니다. 아래쪽 팔로 체중을 지탱하지 못하는 것도 대표적인 예후입니다. p100에는 FIM이라는 지표를 사용하여, 과연 재활이 성공적이었는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삼으라고 합니다. 

의자에서 엉덩이를 잘 못 드는 환자들의 경우(p128), 특히 발관절의 발바닥쪽 굽힘과 근육의 과긴장 상태에 주목하라고 합니다. 특히 이 대목은 뇌졸중 후유증을 겪는 분들이라든가, 간병인들이 특히 유념해서 봐야 할 듯합니다. 이 책의 최고 장점은 거의 매 섹션마다 자세를 표현한 그림들이 많이 삽입되어, 그림만 봐도 이 단원에서 뭘 설명하려는지가 쏙쏙 잘 들어온다는 점입니다. 

p136에는 운동기능이 저하되었을 때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하는지가 잘 설명됩니다. 근육이 줄어들면 예를 들어 앉았다 일어설 때 갑자기 어지러움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근감소증(sarcopenia)에 대해서도, 그리스어 어근 설명과 함께 우리 일반인들이 꼭 알아둬야 할 내용만 요령껏 잘 소개되었네요. 특히 제가 개인적으로 도움을 받은 내용은 제6장 걷기 동작 단원이었는데, 사소해 보여도 어떤 이상 동작이 나타날 때 이 부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 비교적 구체적이라서 자가 점검에 일단 유익했습니다. 물론 건강에 이상이 나타나면 전문가와 우선 상의를 해야 하겠지만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침에 빵을 먹지 마라 - 음식의 노예로 만드는 탄수화물에서 벗어나기
후쿠시마 마사쓰구 지음, 이해란 옮김, 다카스기 호미 외 감수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도한 탄수화물 섭취가 몸에 좋지 않다는 상식은 요즘 많은 한국인들이 공유합니다. 정제백미가 썩 좋지 않다는 점도 알고, 그렇다고 현미와 잡곡 위주로 먹자니 노년층이 소화를 부담스러워하니, 바쁜 아침은 빵으로 간편하게 때우자는 마음이 드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이 책 저자 후쿠시마 마사쓰구 원장님은 그런 습관이 대단히 좋지 않다고, 당장 멈추라고 경고합니다. 물론 탄수화물 일반에 대한 주의도 함께 촉구합니다. 일반론뿐 아니라 저자 자신의 임상 경험까지 담았기 때문에 책은 설득력이 매우 높습니다. 보편적인 상식 외에도, 책에서 추가로 배우고 깊이 새겨야 할 바를 제 주관적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빵은 특히 위장에 좋지 못한데, 이유는 밀을 가열하여 빵으로 만들 때 훨씬 높은 열을 가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나옵니다(p44). 어느 경우와 비교하여? 밥과 비교해서 그렇습니다. 높은 열을 가했는데 그게 왜, 어디가 나쁘다는 걸까요? 높은 열을 가하면 AGE라는 노화물질이 만들어집니다. 이는 단백질 혹은 지질(=지방)과 결합하여 세포를 손상시키고 피부 주름도 증가시킨다고 합니다. 소화나 분해도 잘 안 되고 몸 안에 축적되는 성향이 있다고 합니다. 또, 아침에 먹는 빵은 혈당을 급격히 높이는데,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이 아침에 특히 많이 분비되는 게 그 근거입니다. 저자는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빵"이 아침에 돋우는 식욕이라는 게 얼마나 유혹적이냐고 하시는데, 이 말씀을 읽고 보니 더 빵이 당기는 듯합니다. 우리네 몸은 왜 이렇게 나쁜 습관만 잘 들었을까요. 

빵이라든가, 혈당을 올릴 수 있는 다른 음식을 아침에 먹어도, 이를 상쇄할 수 있게 식이섬유를 섭취하고 운동을 하면 괜찮다고 하는 의견이 있고 우리들도 자주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구태여 빵 같은 걸 아침에 먹어서 그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게 아니라, 아예 아침에 빵을 먹지 않으면 되지 않냐고 합니다. 저도 앞으로는 시리얼이나 식물성 메뉴 위주로 식단을 갖고 가서 저런 위험 자체를 사전에 차단해야 하겠습니다. p50에 나오는, "원래 우리 몸은 외부에서 매일 꼬박꼬박 당을 섭취하지 않아도 일정 혈당은 유지된다"는 말도 유념해야 할 듯합니다(물론, 당뇨병 등 기저질환이 이미 있는 경우라면 별개의 지침에 따라야 하겠지만요). 

혈당이 높아지면 이자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이 이에 브레이크 노릇을 하는데, 자동차도 과속과 급정거를 반복하면 일찍 고장나는 이치와 같습니다. 평소에 인슐린 분비 기제를 마구 쓰지 않았다면 몸에 탈이 나도 늦게 날 것입니다. 이 부분이 고장나면 그게 바로 당뇨병인데, 평소에 절제된 식사를 하지 않은 응보이니, 건강이란 아직 괜찮을 때 잘 지켜야 한다는 이치를 단단히 명심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속이 더부룩하다"는 느낌을 평소에 잘 받은 적이 없어서 저는 잘 모르겠는데 많은 분들이 이 증상을 호소하며 위장약이나 소화제를 찾곤 합니다. 일본 사람들도 우리하고 이 점에서 비슷한가 봅니다. p66에 그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나오는데, 저자의 경우(다분히 개인적인 체험이지만) 아무리 육류를 많이 섭취해도 기분 좋은 포만감이 들었을 뿐, 더부룩한 느낌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탄수화물을 이 "더부룩함"의 주범으로 지목합니다. 

p85에 나오듯 탄수화물, 지질, 단백질은 소화되는 시간이 각각 다릅니다. 이것 때문에 소화 기관의 활동이 교란되고, 각종 질환이 유발된다는 게 저자의 견해입니다. 특히 저자는, 단백질과 다량의 탄수화물을 동시에 섭취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또 우리 상식과는 달리, 지질보다는 탄수화물이 역류성 식도염의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합니다. "탄수화물이 위에서 잘 소화된다"는 상식은 이제 폐기되어야 한다는 게 이 책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주장 중 하나였습니다. 사실 이는 현대인의 생활 패턴이 변하면서, 과거에는 정제백미 식단이 타 메뉴에 비해 소화가 잘 되고 맛도 좋은 편이었던 반면, 현대에는 육류도 비교적 먹기 좋게 잘 조리되어 나오는 이유도 있지 않을까 저 개인적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여튼 책의 소결론은, 지방도 지방 단독으로 먹으면 소화가 딱히 잘 안 될 것도 없다(p95)는 점입니다. 

이상지질혈증, 이것을 예전에는 고지혈증이라고 불렀습니다. 콜레스테롤을 많이 섭취하면 비만, 동맥경화가 생긴다는 게 상식이었습니다. 그런데 LDL이 혈관 벽에 달라붙는 것은, 애초에 혈당이 높아서 그렇고 혈당이 낮으면 애초에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으로 읽힙니다. LDL은 오히려 범인 잡는 경찰인데 범인 누명을 쓴다는 저자의 재치 있는 비유(p142)도 인상적입니다. 

우리도 그렇고 일본도 이상적인 한 끼니를 일즙삼채, 즉 국 한 그릇과 반찬류 3종이라고 전통적으로 여겨 왔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것이 그리 건강에 좋지 못한 식단이라고 비판합니다. 흰쌀밥은 밥그릇의 1/3까지만 먹으라고 합니다. 50g이 가장 적당하다고 합니다. 저자는 가급적이면 주식 개념을 없애고, 밥 한 공기를 식단에서 아예 빼자고까지 합니다. 현미 역시 백미에 비해 건강식품이라는 것이지, 그리 좋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제게는 조금 충격이었습니다. 결론은 그냥 반찬만 먹는 게 가장 좋으며, 가열이 필요 없다는 점에서 생선회가 권장할 만하다고 합니다. 지중해 사람들의 습관을 소개하며, 해조류나 조개류를 적극적으로 섭취하면 좋다고도 나옵니다. 

단백질뿐 아니라 지질 역시 뇌의 에너지원이며, 다이어트 중 채소 쥬스를 잘못 섭취하면 고혈당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충고합니다. 우리가 그간 건강에 대해 잘못 알고 있던 바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내용이 많아서 아주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인호의 인생 꽃밭 - 소설가 최인호 10주기 추모 에디션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가 최인호씨는 1970년대에 많은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였으며, 책날개 설명에도 나오듯 서울고 2년 재학 중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을 낸, 비상한 두뇌와 감성을 갖춘 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활동 기간 전체에 걸쳐 엄청난 다작을 한 분인데, 스스로도 어느 인터뷰에서 "제가 원래 괴물이었어요."라고 밝힌 적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랬던 그가 10년 전에 타계했고, 당시 이문열 작가도 아쉬움을 표명한 바 있습니다. 이문열씨와는 불과 세 살 차이인데 최인호 작가가 워낙 이른 시기에 데뷔했고 적어도 양적으로는 이문열 작가를 압도하는 활동상이었으므로 마치 세대 자체가 다른 양 착시를 부르기도 합니다. 저는 여태 책좋사 책프에 그의 작품을 24기 48주차, 25기 14주차, 25기 24주차 등 세 차례에 걸쳐 리뷰하기도 했습니다. 

"누굴 물로 보냐?", "물 먹었다" 같은 말이 있을 만큼, 원래부터 깨끗한 물이 흔했던 한국에서는 알맹이 없고 시장가치도 부족한 걸 두고 "물"이란 보조관념을 자주 씁니다. 아는 사람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하려면 고급 한우 세트나 백화점 상품권 같은, 시중에서 쳐주는 아이템을 흔히 떠올리지만 최인호 작가는 어느 사제로부터 물 한 통을 선물 받았다고 합니다. "냉수 마시고 속 차리라"는 비아냥이 아니라, 수도원 물 맛이 너무 좋아서 들고 왔다는 설명과 함께 말입니다. 최인호 작가는 프랑스 3대 고전주의 희곡 작가 코르네유를 인용하며, "선물은 물건보다 그 방법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상황과 센스에 따라 물 한 병도 훌륭한 선물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다만 이걸 아무나 어설프게 흉내 냈다가는 오히려 욕만 먹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예전에 저는 어느 서양 고전을 읽으면서 "자부심에서 유래한 찌푸린 표정"이란 구절을 읽은 적 있습니다. 스스로가 지성인이므로 주위의 "자신만 못한 사람들과 세태"가 한심하고 못마땅하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그 사람의 자부심과 그런 판단이 객관적으로 옳냐는 건 또 별개 문제입니다). 최 작가의 아드님이 부친더러 "성형수술이라도 해서 미간의 주름을 없애라"고 충고했다는 대목에서, 저는 예전에 읽었던 그 구절의 실제 구현태가 바로 최인호 작가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예전 분이므로 제가 미디어나 실물을 본 적은 없으니). 

물론 그저 지극한 작가적 고민의 흔적일 수도 있고 성격의 자취일 수도 있고 정답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최인호 작가는, 살벌한 자본주의적 생존 경쟁이 전개되는 한국 같은 곳에서 내심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는 자신 같은 경우가 유리할 바는 별로 없었다는 취지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물론 독자가 읽기에 재미있었다는 것이고 작가님 본인은 쓰디쓴 체험의 회고일 수 있습니다. 

"신문을 보지 않으니 세상 살기가 편해졌다." 사실 이 구절은, 1970~80년대 내내 어느 신문이건 문화면 연재소설란을 독점하다시피했던 최인호 작가님의 말씀이라 생각하면 정말 역설적입니다. 글을 읽어 보면 무슨 말씀인지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최 작가님도 어렸을 때는 세상을 읽고 받아들이는 유일한 창이 신문이었을 테고 신문에 기고하는 작가나 저널리스트가 스승 격 아니었겠습니까. 그런 분이 신문을 끊는다는 게 어떤 뜻인지는 독자가 새겨서 읽어야겠죠. 

그런데, 좀 죄송한 말씀이지만 미디어를 통해 들려오는 모든 소식들이 이 정도로 불편해진다면 사실 세상에의 적응이 힘들어진다는 위험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방금 전 정운경 화백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는데, 그분도 대략 비슷한 시기(20년 전)에 중앙일보의 <왈순아지매> 연재를 중단했었지요. 트렌드가 내게 유쾌하건 불쾌하건 이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므로 도태되지 않으려면 정면으로 대하고 싸우든지 얹혀가든지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로들은 몰라도 젊은 세대라면 대응 방식이 이래서는 곤란하겠습니다. 

애써서 집안을 꾸미는 건 가정주부의 큰 낙 중 하나이며 어쩌면 의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은 밖에서 일하고 돌아오면 깨끗하게 정리된 집안을 보고 큰 위안을 얻습니다. 작가님의 사모님(황정숙 여사. p197)께서는 한국에서도 손 꼽는 살림꾼이셨는데(원로배우 안성기씨 사모님도 인정하셨다고 작가님 며느님이 증언하십니다) 어느때부터인가 방치하시는 걸로 스타일이 바뀌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작가님이 옮아가는 화제가 기가 막힙니다. 그는 고골리(19세기 작가 니콜라이 고골)와 한용운을 인용하며 하늘이야말로 꾸미지 않아도 최고의 경관과 아름다움을 선사하지 않냐며, 치장과 정돈에의 강박 역시 인간의 부질없는 발버둥에 지나지 않는다며 달관의 경지를 드러냅니다.    

음식은 꾸준하게, 음미해 가며 섭취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게 인생의 여유와 낙을 알아보는 소치이기도 하고 건강에도 이롭습니다. 그런데 최인호 작가님께서는 그런 습관이 안 드신 자신을 자책하시는 듯한 대목이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확실히 작가님이나 동시대 어르신들이나 너무나도 바쁜 세상을 살아오셨습니다. 어디 작가님뿐이겠습니까. 작가님의 아드님 세대에 이르러서는, 좋은 음식의 웅숭깊은 맛을 지긋이 음미하며 살아가는 여유가 한국인 다들 몸에 밸 수 있을까요. 언제쯤이나 속전속결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중립의 초례청에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신동엽 시인 <껍데기는 가라>의 한 구절입니다. 최인호 작가는 이 시구(詩句)를 인용하며, 역사의 큰 흐름을 보고 모든 소아적 갈등과 비생산적 감정을 대승적 민족애로 승화하여 보다 큰 대의를 바라보자고 역설합니다. 책 전체에는 품격 있고 우아한, 인생의 소소하다면 소소한 측면에 대한 성찰이 두드러졌는데 이런 큰 스케일의 교훈을 캐치하고 잠시 숙연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문장이 무슨 한국어의 교과서처럼 정확하고 아름답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 이거 너 다 가져 - 까꿍이가 전하는 행복박스
나인 지음 / 자유로운상상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감정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미워한다. 창의력을 준 동시에 사회적 약체로 만들었고,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느끼게 해 준 결정체(結晶體)이기 때문이다.(p4)" 만약 우리에게 감정이 없었다면, 출세나 경제적 이익 획득을 위한 이런저런 결정(決定)이 훨씬 쉬웠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속적 쾌락이나 물질적 풍요가 행복의 전부가 아님을 잘 알고, 우리가 순간순간 느끼는 이런저런 감정의 총체가 곧 "나"를 만든다는 사실에도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감정이 일절 배제되는 나의 자아라면 아마 삶이 무척 공허해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말합니다. "감정은 행복의 지도를 그려 나가는 종이이고 물감이며, 연필이고 곧 자화상이다.(p6)" 

"나를 믿으면 내가 곧 존재하게 되는 것 같아(p41)." 정말 궁금한 건, 내 안에는 과연 어떤 내가 살고 있으며, 어떤 생각을 품는 중일까 하는 점입니다. 내 마음은 분명 내 마음인데 뭔 느낌이고 생각인지는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는 게 신기합니다. 저자는 몇 개 국어를 하는 것보다, 내 마음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나의 욕심, 나의 욕구는 매우 중요하게 여기면서도(그렇기 때문에 식탐을 못 끊고 치정에 빠집니다), 정작 내 마음의 소리에는 귀를 안 기울인다는 게 어리석습니다. 내가 품는 욕구 중에는 끝내 달성하지 못할 뿐 아니라 달성해 봐야 내게 해로운 게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나를 잘 달래어서 진정한 나를 찾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게 훨씬 중요한데, 그 간단해 보이는 게 이렇게나 힘드니 말입니다. 저자는 "아플수록 나를 위로하는 방법을 배웠으면 좋겠다(p49)"고도 하는데, 많은 경우 우리는 아픈 나를 더 아프게 하고 힘들게 몰고 갑니다. 

"마음에 내키지 않은 사람이, 일이, 나를 끌고 갈 때, 그땐 몸을 멈추고 마음에게 물어봐. '나 괜찮아?'라고(p77)" 우리는 회사에서 사회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어떤 상황에 끌려가는 일이 무척 잦습니다. 대개 이런 경우 우리는 "뭐,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없잖아?"라며 억지로 맞추려들 듭니다. 그러나 나의 감정을 부인하며 상황에 과잉적응하는 게 과연 언제나 현명한 선택일까요? 결국 상처 입은 나의 마음은 그 작은 아픔이 쌓이고 쌓여 나중에 큰 탈이 나고 맙니다. 저자는 "좋은 것과 나쁜 걸 처음에 나누지 말라"고도 합니다. 며칠 전에 읽은 김세중 著 <무소유>에서 읽은, 성철스님이 했던 말씀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연극 무대 위에서 배우 없이는 역할이라는 게 존재하지 못하듯,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내가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읺기 때문에 내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p111)." 셰익스피어의 <좋으실 대로>의 어느 대사가 떠오릅니다. 아무 해석이라는 게 없이 그저 대본만 암기하여 목청만 높여 떠든다면 그 누구도 그 사람을 훌륭한 배우라고 생각지 않을 것입니다. 해석이란, 혹은 자신만의 관점이란 그렇게나 중요하며, 한 번 사는 세상에서 남의 관점에만 맞춰 살다가 허깨비처럼 가는 인생이라면, "누구나 갖고 태어난 행복의 무게를 스스로 떨어뜨리고 놓아 버리는(p110)"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할 뿐입니다. 

뻔히 사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우리가 사기꾼한테 속는 건, "내 욕심이 사기꾼의 말에 멋지게 포장지를 씌워서(p145)"라고 합니다. 나를 파멸로 몰고가는 건 남의 교묘한 속임수가 아니라 바로 나의 헛된 욕심입니다. 배가 고프면 모든 음식이 다 산해진미로 보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다름 아닌 나 자신과 가끔은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눠 줄 것을 권합니다. 함께 느껴 주는 것만으로도 "차갑게 굳어 있던 마음이 촛농처럼 녹아내린다(p150)"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해주고 신경 써서 배려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임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세상을 그저 내 마음 내키는 대로만 살 수는 없습니다. 힘 있는 이들에게 기분을 맞춰 줘야 하고, 이익이 되는 길이면 적성에 맞지 않더라도 과감히 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매번 그렇게만 살면 어느새 내 삶은 빈껍데기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저자는 "발길 닿는 대로 눈길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보고 싶은 게 인생이잖아?(p166)"라고 우리들에게 묻습니다. 이때 지나치게 물욕, 성욕에만 따르면 그 역시도 후회만 가득 남을 삶이 됩니다. 앞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수시로 내게 물으라고 했던 저자의 말씀이 다시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지나치게 조심만 하고 남 눈치만 보면 결국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너무 잘하지 않아도 돼. 기회는 또 오니까.(p213)" 삶에는 이런 대범한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소홀히하면 곤란하고, 적절히 거리를 두되 존중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비워진 자리를 인정한다면, 너와 나, 서로가 왜 필요한지 알게 될 거야.(p225)" 이런 남을 사랑하는 데에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내가 나를 사랑하는 데에는 조건이 필요 없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내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입니까. 이걸 확인만 해도 벌써 나는 행복해집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즈니스 리프레임 - 불확실성의 시대, 기업과 브랜드의 효율적인 혁신 전략!
이연주 지음 / 라온북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문에 나오는 저자님의 말씀이 의미심장합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우리 밖 세계에서 이미 설정한 규칙과 틀에 따라 잘 적응하여 비즈니스를 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좁아터진 땅에 부존 자원은 하나도 없고 수출 촉진만이 살 길이었기에 해외 소비자들의 기호 사항을 잘 맞추고, 섹터별로 이미 구획된 산업의 특성에 수동적으로 맞춰서 성실히 기존의 룰을 준수하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중진국의 수동성을 탈피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영리한 패스트 팔로워 노릇에서 벗어나 우리가 틀을 만들고 룰을 세워서 퍼스트 무버의 이점을 누릴 정도가 되어야만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또 중진국 대열에 머무르면 그 자리라도 계속 지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밀려 더 밑으로 떨어질 위험이 큽니다. 반대로, 과감히 앞으로 돌진하면 그에 알맞게 종전에는 못 누리던 선착자만의 특권이 우리 것이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시대가 나눠 뒀던 비즈니스의 틀을 깨부수고 창의와 혁신을 통해 우리가 시장과 섹터를 손수 만들어 나갈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세계를 우리가 따라가는 게 아니라, 세계가 우리를 따라오게 해야 합니다. 이미 밖에서도, 우리를 그 정도로 존중하여 보고 있습니다. 

"상품을 팔지 말고, 상품 외의 것을 팔아라(p64)." 저자는 특히, 상품 자체만의 판매 경쟁에 집착하면, 결국는 가격 경쟁으로 수렴한다고 지적합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알듯 제살깎아먹기 블루오션이며 모두가 망하는 걸로 끝납니다. 이래서는 자기 사업을 하는 이유가 없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유형(有形)의 그 무엇에 집착하지 말라. 결국 그 장점은 경쟁자가 따라한다. 나중에 가서 아무 차별점이 없어진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나만의 장점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처음에 아이폰의 무서운 경쟁자였던 갤럭시가 왜 이렇게 한참 뒤떨어진 2인자, 아니 그 이하의 위상이 되었는지가 의아했는데, 첫째는 삼전 이재용 회장의 혁신 실패이며, 두번째는 지속적으로 아이폰에 품질 이상의 어떤 가치 후광을 불어넣은 애플(과 고 잡스)의 전략이 먹혀서라고 생각하게 되었네요. 

p96에서 저자는 핵심 드라이버라는 개념을 강조합니다. "고객의 행태, 라이프스타일, 가치관을 바꿔 놓아 변화를 일으키는 동인." 이것이 책에 나온 정의입니다. 고객을 먼저 구분하고 들어가면 그건 그냥 기존 시장에 적응하겠다는 소리밖에 안 됩니다(그러다가 블루오션행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먼저 트렌드를 읽으라고 합니다. 트렌드가 지금 이렇게 흘러가니, 기존의 레저 산업은 더 이상 레저산업이 아니며, 인구 구조의 변화나 "소셜라이징 방식(p97)"이 크게 바뀜에 따라, 레저는 패션 산업, 외식 산업, 상조 산업(금융), 교육, 의료 산업과도 융화할 수 있습니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는 중입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어딘가를 가려 할 때, 어떻게 하면 인스oo램 같은 소셜미디어에 예쁘게 올릴 배경이 될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이런 장소의 특징을 가리켜 "인스oo래머블하다"는 신조어도 나왔다고 합니다(p133). 그렇다면 자영업자들은 자신의 샵을 인oo용으로 나오게끔 세팅하려는 노력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호주의 프랜차이즈 이솝을 예로 들며, 그 이상의 무엇을 독자들에게 가르칩니다. 딱히 광고도 없이 사람들을 자발적인 홍보대사로 만드는 이 브랜드의 비결은 무엇일까. 매장이든 홈페이지에든 다양한 컨텐츠를 심어 두는 게 이 기업의 전략입니다. 사람들은 매장을 방문하며 "사진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을 모으게 된다"고 합니다. 브랜드와 함께 사람들은 개성과 추억을 축적하며 공감하고 일체화하게 됩니다. 그냥 로열한다는 말로는 부족하죠. 

예전에 어떤 드라마 때문에 "엣지있게"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에지(edgy)라는 모서리, 뾰족하다는 뜻인데, 특징이라든가 개성하고는 또다른 의미입니다. 개성에다가 페르소나와 체험 요소를 더하는 건데, 대표적인 게 곰표 밀가루가 요즘 행하는 마케팅입니다. 이 이상한(?) 유행은 요즘 편의점에 들르면 코너 곳곳에서 눈에 띄므로 관심 없던 사람들도 알게 되는데, 곰표는 원래 나이 든 세대에서나 인지도가 있던 브랜드이므로 이런 마케팅은 MZ 사이에서 해당 브랜드의 인식을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미국 연준이 현재 금리 인상 기조라서 시장은 언제 피보팅(pivoting)을 할지에 관심이 쏠려 있었습니다. 경제환경이 수시로 급변하는 작금은 기업도 트렌드를 잘 살피며 피보팅(사업 방향 전환)을 언제든지 단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p172). 그러기 위해서는 "혁신 어항'이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제안입니다. p165에 그 자세한 뜻이 나오는데, 사업하는 사람은 현재의 어항, 또 혁신의 어항, 이 두 개를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환경이 바뀔 때 이리저리 피보팅하면서 대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외부 센싱(sensing), 비즈니스 현 상황 인지, 혁신 프로젝트 발굴 및 수행(p169)." 이것이 바로 혁신 어항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책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리프레임을 위해서, 사업가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저자는 두 가지로 요약하는데(저자분의 주전문 업무가 이쪽입니다), 디자인 사고와 다차원적 사고가 그것입니다. 디자인 씽킹은 요즘 책들에서 자주 언급되기도 하고 이 점만을 주제로 내세운 책도 있으므로 귀에 익을 것 같습니다. p177에 그 핵심이 잘 도식화되었는데 간단히 말하면 "고객 중심의 사고"라고 합니다. 다차원 사고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보기, 숲도 보고 나무도 보기, 이렇게 해서 사물과 현상에 대해 살아 움직이고 꿈틀거리는 변화상을 모두 관찰하고 장악하려는 태도입니다.  

비즈니스에서 영원하고 고정된 건 없습니다. 어차피 바뀔 것이라면 내가 먼저 선수를 쳐서 내게 유리하게 판을 바꿔 놓고 내가 주도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의 트렌드를 쉬지 않고 면밀히 관찰하고 통찰해야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