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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스강의 작은 서점
프리다 쉬베크 지음, 심연희 옮김 / 열림원 / 2023년 10월
평점 :
참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작품의 제재가 자그마한 책방일 때, 어떤 이야기가 대강 펼쳐질지는 우리 모두가 대체로 예상 가능합니다. 시대에 뒤떨어진 서점 하나에, 역시 시대에 뒤떨어진(?) 정 많고 착한 사람들이 목을 매고 있으며 냉철하고 감정이 메마른 상속자(차도남이거나 차도녀)가 찾아와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청산하려 들다가 결국은 본인이 감화되어 "멋이 중한지"를 깨닫게 된다... 대체로 이런 식으로 진행되리라는 게 예상되었지만 그래도 의표를 찌르는 포인트가 몇 있었으며 마지막이 눈물 핑 돌 만큼 감동적이어서 두꺼운 소설을 2주에 걸쳐 읽은 보람이 충분했습니다.
첫 20페이지를 읽었을 때 저는 주인공이 마르티니크일 것으로 예상했으며 이분이 얼마 전에 죽었다는 서점 주인 사라의 친자매인 줄 착각했습니다. 그러니 unfaithful한 백만장자 배우자인 리처드와 갓 이혼한 마샤하고 3자매 관계(마치 에밀리, 샬럿, 앤 브론테처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전혀 아니고 그냥 고용된 점원이더군요. 하지만 고인이 된 사라 뤼도베리와 친자매 이상의 우애를 나눈 분이었으며 따라서 고인의 비밀, 이제 스웨덴에서 런던으로 날아올 상속인에 대한 비밀도 알고 있음이 p130에서 암시됩니다. p157에는 "그앤 이모에 대해 얼마나 알아?"라는 이웃 파넬라의 대사가 나옵니다. p236에서는 "사라가 자신(=마르티니크)에게 맡긴 비밀이란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도 독자를 궁금하게 만들지요.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은 스웨덴 여성 샬로테임이 곧 드러납니다. 그녀의 나이가 정확히 몇 살인지 저는 모르겠던데, p164를 보면 1986년에 이사를 와 사라 이모와 30년 친구였다는 파넬라의 말이 나오고요, p212에 보면 1982년이 샬로테가 태어나기 1년 전이라고도 합니다. 이 소설이 출간된 해 2018년을 소설의 시간적 배경으로 본다면 그녀는 35세입니다. p33에는 스칼렛 요한슨을 닮았다는 말도 있고(그녀는 1984년생입니다), p175에서는 제 이모(즉 사라)처럼 아주 예뻤다고도 하며, p141에서는 아바의 금발 멤버 앙네타(우리가 아그네타로 알고 있던 분)를 닮았다고도 하는데 소설 처음에 나오는 별 능력 없는 심리치료사 이름도 (스웨덴에서는 흔한) 앙네타이긴 했습니다.
샬로테는 아주 머리가 좋고 젊은 나이에 크게 성공한 기업가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암시하기로는, 상대방의 감정을 아주 잘 읽었던 유능한 남편 알렉스의 정반대 성향인 뛰어난 자질이 없었더라면 그만큼 성공하기는 힘들었을 듯합니다. 남편 알렉스는 좋은 사람이었으나 p81 같은 데서 "이상한 사고"로 죽었다고 나오며, p208, p415 같은 데서 커브길 사고 같은 게 언급됩니다. 분명 엄청난 미인이지만 평균 중의 평균인 점원 샘 같은 여자가 이상하게도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것과 대비되게 "매력이 부족"하며, p47에는 "스몰토크가 힘든 사람", p55에는 "친구를 사귀는 게 너무 힘든 사람"이란 말도 나옵니다. 그러나 생전에 남편 알렉스가 "회사의 간판(p39)"이라 점찍고 모델 사진도 찍었을 만큼 미인이죠. p26에서 행인이 지나가면서 풍기는 싸구려 향수에 질겁하는 그녀를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나 그녀가 무슨 사업을 하는지 알고 곧바로 수긍했습니다. p31의 소독제 건도 그랬고요. p17에 자녀 이름을 딴 서가 장면이 제게는 재미있었는데, p165에서 샬로테가 "이런 도서 분류 체계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라고 하는 게 과연 그녀답다 싶었습니다.
이성적 능력을 요하는 업무에 능한 샬로테는 p84, p105에 나오듯, 직접 회사 회계 업무를 맡아 봐 온 사람이며, 사라 이모가 사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걸 서점 장부만 보고 바로 알아볼 정도입니다. p153에서는 사라 이모가 아마 "형편 없는 엄마"가 되어 파산했겠음을 예상하기도 합니다. 알렉스는 생전에 아내를 두고 문제 해결사(p109)라고도 했으며, p208에는 "정서적 안정, 실용적인 태도, 질서 중시"라는 그녀의 가치관이 그대로 서술됩니다. p286에는 "반 고흐는 (결국) 손가락이나 데고 말았군요."라며 기껏 이야기해 준 상대방을 무안하게 하며, p297에서는 경우에 맞지도 않게 리 차일드의 스릴러를 추천합니다.물론 잭 리처가 최고이긴 합니다만 큰 웃음이 나오는 대목이었습니다. p464에서 샘은 그녀에게, "첫 주에는 한 번도 안 웃더니 이제 웃음꽃이 핀다"고도 하네요. 이 과정, 그녀가 변해 가는 과정을 재미있게 읽어 나가는 게 소설의 주된 재미입니다.
음악도 그 시대를 대표하는 곡들이 언급되는데 비지스의 명곡 두 곡, 티나 터너의 <심플리 더 베스트(p103)> 등이 일정한 암시 속에 등장하네요. 티나 터나는 중년 여성들에게 나 아직 죽지 않았다는 용기를 북돋우는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죠. 샬로테의 친구 헨리크는 p29에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광팬이라 나오는데 p113에 그 성향이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또 이 소설은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의 불행한 역사를 여러 곳에서 환기하는데, p192, p394 등에서 "아일랜드인이면 다 IRA냐?"라고 하는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 말("아일랜드 공화국군"의 약자)이 싹 없어지고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IRA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죠. 저는 대니얼이 중반쯤에서 참 한심하다고 생각했는데, p254에서 대니얼을 향한 크리스티나의 감정이 싹트는 장면, p293에서 키스하는 장면, p428에서 드디어 관계를 갖는 장면에서 참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p571에서 대니얼이 "자신의 아버지 같은 인간이 되지 않겠다"라고 다짐하는 장면에서 사람이 달리 보였고, 그다음에서... 아... 참 슬퍼지더군요(스포).
이 대니얼-크리스티나 씬과, 30여년 후 샬로테-윌리엄 씬이 서로 대칭관계입니다. p352의 "윌리엄(엘튼 존을 닮았다는! p489)을 보자 다시 가슴이 뛰었다"라든가, p379의 터치 장면, p415의 "그런 키스는 처음이었다"라는 샬로테의 말, p443에서 "이런 감정은 샬로테가 오래 전에 잃어버린 것이었다"라는 문장 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책방 이야기이다 보니 예전과 요즘의 온갖 명작들이 작중 곳곳에서 언급되는 게 또 즐겁습니다. p241에서는 윌리엄이 <죄와 벌>에 깔려 죽는 사고라는 말을 하는데 물론 말도안되는 소리입니다. p301에서는 저 두꺼운 <죄와 벌>이 아주 우스운 목적을 위해 다시 언급되는데 여기서도 독자는 웃게 됩니다. p579에서는 한국에서도 많이 읽히는 작가 줌파 라히리가 잠시 입에 오르내립니다. p85에는 <가아프가 본 세상(존 어빙 作)>도 언급되는데 로빈 윌리엄스 주연 영화로도 만들어졌죠. p145에는 아직 사라-크리스티나 자매가 서로 틀어지기 전, 언니가 동생한테 <오만과 편견>을 읽어 보라고 권하며 대니얼이 빙리일까 다아시에 가까울까 논하는 대목이 재미있습니다.
서점은 그저 낭만적인 향수만 자극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전달하는 소재인데, p18에서 "이제 시대가 변했다"는 말은 연대의식이 사라진 세상을 비판하는 의도로 읽힙니다. p390의 "서점은 아주 중요한 곳이었지"라든가, "서로를 돕는 우리 모두는 가족(p391)"에서는 동화 브레멘 음악대가 생각나기도 했네요. "우리 서점은 이 지역에 필요합니다(p534)"는 이 소설의 주제를 압축한다 할 만합니다.
이 소설은 런던을 배경으로 삼습니다. 런던 땅값이 요즘 특히 얼마나 올랐는지는 해외 토픽이 될 정도입니다. p43, p345에서는 대형마트인 테스코가 언급되는데 한국의 홈o러스 초창기 대주주이기도 했던 회사입니다. p78의 "런던 같은 대도시에는 일자리가 많으니까요"라는 쿡 변호사의 대사는, 뒤 p191의 "벨파스트에는 일자리가 없어서"라는 대니얼의 말이라든가, p15의 "중년의 문학사 학위 보유자", p100의 "서점 일말고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는" 운운하는 마르티니크의 말과 아주 좋은 대조를 이루죠. 런던에 대해서는 p112의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도시", p275의 "변화무쌍한 도시", p430에서의 "제대로된 악천후" 등의 구절이 눈에 띕니다. 영국 음식은 맛 없기로 악명 높은데, p189의 피시앤칩스, p365의 뱅어앤매시, p382 마마이트 등이 재미있게 쓰입니다. 그리고 우리 서점의 운명을 바꿔 놓을 조앤 머리 작가님(누구일까요?)을 결정적으로 끌어들이는 건, p512의 스웨덴 식 기막힌 맛의 시나몬롤, 그리고 p418에 나온 "엄청난 해리포터 재고"였습니다(스포라서 여기까지만 언급하겠습니다). p382에는 프랑스의 예 라 벨르 오르탕스가 언급되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