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회계 실무 가이드북 : 실전 편 - 일반인부터 CEO까지 알아야 할 회계와 재무제표에 관한 모든 것, 개정판
신방수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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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회계사나 관련 직종에만 회계 지식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일반 사무직도 회계의 최소 소양이 있어야 자기에게 주어진 업무도 더 충실하게 완수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란 나라가 워낙 경쟁이 치열하고 사람을 쪼아대는 나라이다 보니 만능이 되어야 하는 압박이 있습니다만, 기왕 일하는 것 더 깔끔하고 빈틈없이 해 내는 게 직업인으로서 자부심도 더하고 더 당당해지는 길 아니겠나 싶습니다. 그렇다고 학부 때 보던 중급회계 원가회계 두꺼운 교과서를 다시 꺼내들자니 부담스럽기도 하고, 나의 회사 업무에 필요한 지식만 딱 추려서 쉽고 요령 있게 간추린 책이 있다면 내가 참조, 활용하기에 정말 편할 듯합니다. 또 혹 주식 투자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우리 개미 투자자가 상장사의 펀더멘털 분석, 밸류에이션에 직접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보로서 회계 공시자료만한 게 또 어디 있겠습니까. 

p63을 보면 현금흐름표 보는 법이 나옵니다. 설명이 참 깔끔하고 쉽습니다. 우리가 학부 때 배웠던 교과서들도 말의 거품을 좀 빼고 이렇게 솔직하게 가르쳐 주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기업의 활동은 크게 영업활동, 투자활동, 재무활동이 있습니다. 활동의 비중에 따라 모두 여섯 가지 상황이 제시됩니다. 그런데 p65를 보면 제7의 상황으로 영업(+), 투자(+), 재무(-)인 경우가 던져지며, 독자들더러 이게 어떤 상황인지 분석해 보라고 합니다. 답은, 투자자산을 팔아 재무활동(=부채상환)에 나서니 이건 구조조정이라고 합니다. 2의 세제곱이니 모두 8가지 상황이 상정 가능하며, 이 페이지에 안 나온 건, 영(-), 투(+), 재(+)뿐입니다. 이건 어떤 상황이겠는지 독자 스스로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습니다. 

거래의 8요소라는 게 있습니다. 이것은 상경계라면 학부 신입생 1학기 때에도 베우는 내용이지만, 정작 뭔지 설명해 보라고 하면 다들 버벅거립니다. 이 8대 요소가 좌우로 항상 균형을 맞추는 게 아니고, 실제 거래 현상은 더 자주 일어나는 유형이 따로 있습니다. p89를 보면 그림에 저 8대 요소가 어떻게 매칭이 되는지가 나오는데, 빈도가 높은 것은 검은 실선으로, 낮은 거래 사건은 점선으로 표기되었습니다. 비용의 발생과 수익의 발생도 우리 상식으로는 안 일어날 것 같지만, 예외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는 거죠. 차변과 대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줍니다. 인건비 지출, 기계 장비 취득, 부채 조달 세 가지 예입니다. 가장 전형적인 기업 활동이라고 할 수 있죠. 

p99에 보면 K기업이란 곳이 타 업체에서 제시한 공사입찰에 과연 응해야 하는지 사례를 통해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업체의 재무상태표(구 대차대조표)를 보니, 유동비율과 당좌비율이 양호한 반면, 미수금 자산 비중이 큽니다. 또 단기 부채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입찰에 성공해서 공사를 진행하더라도, 대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단지 사장 단에서만 이런 판단을 하는 게 아니라 대리라고 해도 이런 취지의 보고서를 올려야 할 때가 많습니다. 회계 지식이 왜 필요한지 실감이 나는 대목이죠. 

이 책의 최고 장점 중 하나는, 우리가 회사 다니면서 마주칠 수 있는 사례가 자주 많이 나와서 응용의 범위가 넓다는 점입니다. p127에 보면 경기도 일산에 소지했다는 J 기업(물론 가공일 수 있습니다)의 재무상태표와 손익계산서가 제시되는데, 개발비 지출을 어떻게 장부상으로 처리하는지가 이슈입니다. 보통 인건비는 비용 처리하는 게 상식 같습니다만, 이 책에서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를 지적합니다. 즉, 개발비에 해당하는 인건비는, 무형자산으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비(費)" 자가 붙었다고 다 비용 항목이 아니라 이렇게 자산으로 처리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 자산이기 때문에 감가상각 과정도 거칩니다. 

인사부문이 현금흐름표에 영향을 주는 건 어떤 부문일까요? 책 p135에 보면, 이것은 주로 영업활동으로 인한 게 크다고 합니다. 그런데, 물건 제조 판매에 종사하는 인력에 지급하는 돈은 즉시 유출을 의미하기 때문에 효율적 집행이 무척 중요하다고 합니다. 반면, 상품 매출 대금 같은 것은, 어음으로 결제되는 경우가 많아서 현금 지출이 즉시 이뤄지는 게 아니지요. 

p153을 보면 이자보상비율이 설명됩니다. 아래에는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통계 자료의 일부도 제시됩니다. 이 비율이 1(즉 100%)이 안 될 때에는, 이익이 있어도 이걸 이자 갚는 데 다 쓰인다는 소리이니, 기업의 현재, 미래가 아주 어둡다는 거죠. 기업의 상태를 볼 때 이 사항을 유의깊게 봐야 하는 이유이죠. 또 p195를 보면 주식 투자 분석에 자주 쓰이는 개념들, EPS, PER, PBR, ROE 같은 게 알기 쉽게 설명됩니다. 사실 이거 알고 보면 별것도 아닌데, 대화에 껴서 화제가 안 막히려면 알아는 둬야 합니다. 

부채비율을 갑자기 낮춰야 한다면 어떤 기교가 필요하겠습니까? p203에 보면, 차입금의 일부를 출자로 전환하는 방법(실제로 1998년 외환위기 때 하이닉스가 미아가 되자 노조 측에서 이 방법을 제안했었죠)이 나옵니다. 회계라는 게 어떻게 보면 숫자 장난, 항목 전환을 통한 사술 같지만 때로는 그 안에서 실물의 변화에까지 이르는 지혜가 도출되기도 합니다. 세무와 회계 분야에서 요즘 가장 핫한 작가인 신방수 세무사님 책이라서 더 믿음이 가기도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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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하우스 - 한국 드라마 EP 이야기
김일중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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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p4에 나오듯이 "파워하우스란, 어떤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보유한 개인 또는 기업을 가리키는 말"이며, EP는 그런 파워하우스의 executive producer의 약칭입니다. 책에서 드는 예는 제리 브룩하이머 같은 사람입니다. 한류 열풍이라고 해서 그간 말로만 들었지만 해외에 나가면 그 위력을 더욱 실감합니다. 한국의 컨텐츠가 그렇게나, 다른 나라의 각계 각층에서 큰 인기를 모을 줄은 미처 몰랐지요. 이만큼이나 성장한 대중 문화 강국이니, 한국에도 파워하우스가 당연히 있고 그 파워하우스를 이끄는 EP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성공비결이 무엇이며 남들이 함부로 따라 못 할 그들의 센스와 영감의 원천이 어디 있는지 조금이라도 엿보고 싶었습니다. 책에는 모두 10인의 EP가 소개됩니다. 

처음에 소개되는 분은 윤신애씨인데 저처럼 드라마 잘 안 보는 사람도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제목은 들어 본 적 있을 듯합니다. 전문가들은 그 이후의 한국 컨텐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드라마로 <인간수업>을 꼽는다고 합니다.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책에 나온 몇 줄만 읽어 봐도 엄청난 파격이고 혁신이었던 듯합니다. 이런 컨셉으로 혹시 흥행이 잘못되면 책임자가 얼마나 욕을 들어먹겠습니까. 그저 남들 하는 대로 따라하다 중간만 넘자는 생각이었다면 저런 히트작, 화제작은 아마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엄청 거칠었지만, 캐릭타가 아주 잘 살아 있었어요.(p13)." 대가의 눈에는 이런 게 다 보이나 봅니다. 

EP는 과연 무슨 일을 하는가. p5에서 이동훈 EP는 "작가는 전부 프로듀서다. 작가 겸 총괄 프로듀서가 라이팅 EP이며, 글을 직접 안 쓰는 EP는 논 라이팅 EP"인데, 후자는 바로 자신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회사에도 파운더(founder)가 다 있기 마련인데, 논 라이팅 EP는 그런 설립자와도 같아서 "시스템 안에서 이런 파운딩 멤버는 영원히 간다"고도 합니다. 미국에서 계약은 오퍼, 카운트 오퍼, 다시 카운터 오퍼 하는 식으로 진행되며, 미국 내에서라면 어느 정도 참고 지표라고 할 게 있는데, 한국은 그런 게 없으니 미국 쪽 사람들이 터무니없는 금액을 들고 올 수도 있으며 이때 괜히 흥분하지 말라고도 합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현실적인 충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박인엽 EP는 창작 능력을 기르는 비결에 대해 "그저 많이 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p86)"고도 합니다.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후킹 포인트"라는 게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길게 가는 기획자라면 돈만 밝혀서는 안 된다고도 합니다. 자신은 이 일을 20년 동안 해 왔는데, 재미있는 말이 주변에서 하던 "영화는 대박이 나면 건물도 사지만, 드라마는 잘돼봤자 아파트 평수 좀 늘리는 정도다(p89)"라는 소리에 현타가 오기도 했으나, 결국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한우물을 파다보니 이제는 넷플o스가 주도하는 OTT 세상이 왔고 박 EP 같은 분이 재능과 능력에 맞는 대접을 받게도 된 것입니다. 

한석원 대표는 어려서부터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특히 군대에서도 <씨네21>을 구독했었는데 열정이 대단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텍스트로든 영상으로든 꾸준히 정신적 양분을 섭취하는 게, 한 분야를 향한 진지하고 헌신적인 집념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의 인생에서 변곡점이 된 작품은 <태양의 후예>인데, 이때에도 그가 최우선으로 꼽은 동인은 "재미"였습니다. 어느 분야이든,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에 즐기면서 하는 사람을 당해낼 수는 없죠. 다만 현재 잘나가는 인력에게건 유망주에게건 기회가 고르게 가야 하는데 현 OTT 주도의 시장에서는 양극화가 지나친 게 걱정스럽다고 합니다. 후배들이나 잘나가지 못하는 동료들까지 챙기는 한 대표님의 마음씀이 존경스럽네요. 

방송사의 제작 환경이라는 게 기성세대들이 알던, 지상파 방송국이 어떤 프로젝트를 발주하고 외부제작사한테 용역을 주는(그 이전이라면, 거대 방송사가 모든 걸 주도하는) 방식하고는 완전히 달라진 게 현실입니다. p151을 보면 김희열 대표는 "요즘은 방송사도 방영권만 구매해서 방송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도 코스닥 시황에서 보곤 하는 이런저런 미디어 제작사들이, 지상파 방송은 그저 채널로 삼아 배급하고 모든 걸 주도하는 그런 세상이 된 것입니다. 방송사도 그저 하나의 플랫폼 노릇을 하는 구조로 바뀐 거죠. p159를 보면 EP는 머나먼 항해를 떠나는 배의 선장과도 같다는 말이 나옵니다. 한국의 컨텐츠가 이처럼이나 큰 인기를 끌게 된 게, 드라마 안에 한국인 특유의 곱고 착한 마음이 드러나고 그것이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어필하여 이정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 맞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드라마 그 너머를 꿈꾼다는 신인수 대표님은 "여기저기서 거절당하고 일이 안 풀릴 때 난국을 돌파하는 자신만의 킥(kick)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걸 메이드(made)시킬 수 있다는 확신, 자기 확신이 있다면 무슨 반대가 있어도 밀어붙인다"고 대답하십니다. 본인 세대는 이른바 언론고시를 뚫어야 입문할 수 있는 세대였으나 지금은 업계에서 신선한 젊은 피를 언제나 수혈받기를 원하며 "똘기있는" 창의적인 인력에 항상 목말라 있다고 하며, 그런 인재인지 아닌지는 척 봐도 알 수 있다고 하시네요. 젊은이들이 머뭇거리지 말고 젊음의 특권인 패기를 발휘하여 바로 도전해 볼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열린 마인드의 대가들이 성공 모범을 먼저 보여 주신 창조의 필드로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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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전부 - 펩시 CEO 인드라 누이의 일, 가정 그리고 우리의 미래
인드라 누이 지음, 신솔잎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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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시 vs 코크. 아마도 레알마드리드 vs FC 바르셀로나라든가, 마블 대 DC처럼 세대를 초월한 라이벌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메시 vs 호날두, 파퀴아오 vs 메이웨더 정도는 감히 명함도 내밀 수 없습니다. 아직도 탄산음료 점유율이라든가 선호도 면에서는 코카콜라가 펩시콜라를 앞섭니다. 그러나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는 펩시콜라가 더 많이 선택된다는 결과도 있고, 이 책 앞날개에도 나오듯이 펩시코 회사 전체(콜라 단품이 아닌)의 매출액은 이 인드라 누이 CEO 재임기인 2004년에 코카콜라社를 앞질렀으며, 현재도 수치 차이가 엄청나게 납니다. 만년 2인자였던 펩시코가 일부 부문에서나마 코카콜라社를 제칠 수 있었던 건 대개 이 인드라 누이 CEO의 공을 높게 칩니다. 

책읊 읽어 보니 인드라 누이 CEO가 생각보다 나이가 엄청 많은 분이더군요. 이분은 1955년생이며, 인도가 아직 세계 빈국 대열에서 탈피 못 하던 시절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출신 집안은 유복한 명문이었으며, 본인도 자질이 출중했던 덕에 인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예일대에서 박사를 땄습니다. 예일대가 원래 경영 쪽은 그리 역사가 깊은 건 아닌데(p91) 여튼 인드라가 다닐 무렵에는 최고 퀄리티였나 본지 책에서 내내 감탄과 감사를 표합니다. 본문 p27에서 스스로 밝히기를 "부유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그녀의 출신 계급은 인도에서 최상위층인 브라만입니다. 물론 이것이 성장 과정에서 엄청난 이점이었음을 그녀 스스로도 인정합니다. p104에서는 그저 "중산층 출신"이라고도 하네요. 

출신지는 첸나이인데 p26에 나오듯이 원래는 이름이 마드라스였던 것을 1992년에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얼마 전에 인도 총리가 국명 자체를 바꾸려는 듯한 암시를 하기도 했는데... 이 첸나이는 타밀 나두 주의 수도이며, 이 고장은 타밀 족이 다수이고 힌디어가 잘 안 통하기 때문에 인드라 누이의 가문이 완전 주류는 아니었던 셈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p36)"이 집안에서 지상과제였음을 그녀는 고백합니다. 이런 훌륭한 가풍에서 이런 인재가 나오기 마련이죠. p103에 보면 학생 시절 재미있게 본 영화로 두 코미디언이 나온 <실버 스트릭>이 언급되는데 저도 이거 재미있게 봤고 한국에서도 MBC 주말의명화 시간에 틀어 준 적 있습니다.   

공부 자체는 이분보다 언니 찬드리카가 더 잘했나 봅니다. 인드라 누이는 (좀 의외지만) 고급수학에 좀 약했기 때문에(p49) 개인과외가 따로 필요했다고 하네요. 책을 읽어 보면 그 모친께서 의지가 굳세고 치밀한 사고방식을 갖고 가정을 꾸린 분이라서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를 향해 "참된 CEO의 자질을 갖춘 분"이라며 찬사와 고마움을 아끼지 않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런 훌륭하신 부모의 훈육과 가풍 아래에서라야 뛰어난 인재가 나오는 법입니다. "누이(Nooyi)"는 p102에 나오듯, 대학원 다니며 만난 남편(Raj.라지)의 성씨이며 친정의 성씨는 크리슈나무르티입니다. 한국에서 예전에 큰 성공을 거둔 어느 명상가, 저술가의 성씨와도 같죠. p116에 나오듯이 이분도 아내 인드라처럼 그냥 모범생이고 공붓벌레 스타일이었습니다. 의사 집안 청년이고, 부모님들은 일찍이 196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온 분들이었다고 합니다. 먼 태생으로는 인도 서남부의 칸나다 사람들인데 여긴 인드라의 고향인 타밀나두와는 정반대 방향이죠. 누이라는 성씨는 칸나다 주 항구도시인 망갈로르의 작은 마을 이름이라고 p137에 나옵니다. 

"있는 그대로의 네 모습을 보여 주되 주위와 조화롭게 어울려야 한다(p97)." 얼마나 훌륭한 가르침입니까. 부모님의 가르침이 이러니 지역 사회에서도 미국 유학을 가서도 그 딸이 반듯하게 자라는 것입니다. p85를 보면 "나는 아메리칸 드림을 믿는다."는 말이 나오는데 사실 인도인은 영국인에게라면 몰라도 미국인에게 피해의식을 가질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1918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거론하는 바람에 인도 독립 과정(스와라지 운동 등)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줬으면 좋죠. 여튼 미국의 자유분방하면서도 창의적인 교육 풍토가 큰 인재를 낳는 데 일조했음은 p91 같은 데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상상도 못 할, 스승을 아무 거리낌없이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라든가 하는 게 말입니다. 

독립적인 인간이 될 것을 언제나 강조하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맞춰 인드라는 박사 학위 취득 후 미국 굴지의 기업들에서 양질의 커리어를 쌓습니다. p131에 보면 게르하르트 슐마이어라는 인물을 모토롤라에서 만난 걸로 나오는데 이 독일 사람이 이후 인드라 누이의 경력 상당 부분을 이끌어주다시피 하더군요. 사회에서 좋은 사람과 인맥을 만나고 연을 잘 맺는 게 성공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토롤라 같은 큰 기업에서 그 정도로 큰 성과를 내기도 했고, 이사진이 찾아와 만류까지 했는데도 그녀는 술마이어 씨를 따라 ABB로 옮기기로 합니다. 이 새로운 직장에서 그녀 자신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더 큰 그릇으로 성장할 수 있겠다는 확신(p145)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함부로 흉내 못 낼 결단력입니다. 

ABB에서도 그녀는 좋은 성과를 내었지만 뭔가 여성에게 여전히 한계를 부여하고, 능력에 따른 존중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독자인 제 생각에는, 단순히 어떤 감정상의 문제가 아니라 직장에서 얻을 만큼 경험과 성취감을 얻은 다음에는 나의 성장을 위해 망설임 없이 이직하는 타이밍을 기막히게 잡는 것이 또한 그녀의 능력이자 센스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또 하필이면, 그녀를 계속 이끌어 주던 술마이어 씨가 지멘스 계열사 CEO 자리를 찾아 독일로 떠나버리기도 해서(1993년)이기도 합니다. 10살짜리와 18개월짜리 아이들의 엄마였던 그녀는 이제 드디어 혼자(슐마이어 씨 없이) 펩시코에 입사하여 신화를 쓰기 시작합니다.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미국 대기업이라는 곳이 능력 있는 여성들에게 여전히 많은 한계를 지우는 조직이었음이 p207에서도 확인됩니다. 펩시코만 해도 여성 CEO가 이미 브렌다 반스라는 분이 있었으나 불과 1년을 못 버티고 그만두었다고 이 책에서 그녀는 회고하며, 능력도 출중한 편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책 서드에서도 그녀는 말했지만, 자신은 어디까지나 가정이 최고라는 분위기에서 성장했고 이 신념을 일생 동안 저버린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왜  우리 회사는 "긴급 문화(culture of urgency)"에 이렇게 강박적으로 짓눌려야 하는가? 좀 더 여유를 가지면 안 될까? 아이 엄마이자 가족 지상론였던 그녀는 나중에 회사의 풍조를, 보다 직원들이 자신의 가족에 더 많은 배려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혁합니다. p268도 참고하십시오. 

p213에 보면 드디어 그녀가 펩시코의 사장단이 되던 감격적인 순간이 회고됩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친정 엄마는 냉정하게 말합니다. 항상 사위에게 장모로서의 도리를 다하던 엄마는 인드라에게 "넌 집안에서는 아내이자 엄마일 뿐이다. 오늘부로 사장이든 뭐가 되었건 간에 그 자리는 주차장에 내려놓고, 가정의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 주부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할 뿐 아니겠니?" 참 읽으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자녀라는 작품은 어디까지나 부모라는 예술가가 만드는 것입니다. 

p228을 보면 이래서 워킹맘이 힘들다는 게 실감이 나죠. 부모 피가 어디 안 간다고 아이들도 다 재능 넘치는 학생들이었지만 인드라는 엄마로서 좀 더 세심하게 보살피지 못했는지 언제나 살폈다고 합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p233)." 욱아에 힘쓰는 와중에도 인드라는 펩시코 내에서 갖가지 개혁을 주도합니다. 괜히 故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파괴적 혁신을 논한 게 아니어서, 잘못된 회사는 물론 잘되는 회사까지도 끊임없이 바꾸고 또 바꿔야 합니다. "내 업무는 본질적으로 끝이라는 게 없었다(p233)." p245에서 그녀는 드디어 펩시코의 단독 CEO에 오르는데 앞서 p213에서는 스티브 레인먼드(Reinemund. p197) 씨가 메인 포지션이었고 이제는 그녀가 혼자 펩시코를 이끄는 것입니다. p260을 보면 레인먼드 씨(책에서 인드라는 내내 직장 선배나 전 상사를 퍼스트네임으로 부릅니다)가 그녀에 대해 최고경영자 재목으로 최상의 찬사를 보낸 사실이 나옵니다. 

여성스러움이라는 것도,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각 기업이 제품과 서비스 특성에 담아야 하는 주요 속성 중 하나입니다. p268을 보면 슬로건 중 cherish라는 단어가 너무 여성스럽다며 반대 의견이 있었으나 인드라 CEO가 강력하게 밀어서 결국 채택이 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p272에 보면 "펩시코의 미래를 이끌 단순하지만 세심한 전략이 PwP를 통해 마련되었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 한국어판의 부제이기도 하네요. p288을 보면 이분 재임기에 펩시코의 사업 포트폴리오 자체가 성공적인 인수합병 등을 통해 크게 확장되었다고 나오는데, 이 독후감 초두에도 적었지만 펩시코가 현재까지도 코카콜라社를 매출액 면에서는 크게 앞서는 게 다 이분의 공입니다. p316에도 PwP의 효과가 설명되네요. 

펩시코의 역사를 새로 쓴 인드라가 퇴임할 때에도 큰 화제가 되었는데 여성 CEO가 떠나면 잠시 열렸던 유리천장이 도로 닫힌다는 매스미디어의 우려도 있었고 무엇보다 인드라 자신이 우려하던 바였습니다. 책 후반부에는 젠더 바이어스에 대한 그녀의 긴 지론이 펼쳐지며, 예전 모토롤라에서 허니 어쩌구 하며 무시 받았던 고통스러운 기억이 다시 회고되네요(p341). "리더는 스스로 모범이 되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p352)." 이 "모범" 안에, 차별 금지 등 현대의 모럴이 포함되어야 함은 당연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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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를 놓는 소년 바다로 간 달팽이 24
박세영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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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인데 왜 수를 놓는다는 걸까, 수를 잘 놓기는 할까, 이런 의문은 소설 몇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금세 풀립니다. 그는 장돌뱅이(p92)와 어느 침모의 아들이었고, 아픈 누나를 대신해 수를 놓으며 엄마를 돕다 보니 솜씨가 많이 늘었나 봅니다.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도 있었고, 고달픈 현실을 잊으려 예술혼을 불태운(?) 이유도 있어 보입니다(p47을 보면 누나도 솜씨가 좋았다고 하네요). p36을 보면 심양 시장 선전(線廛)에서 형형색색으로 진열된 실을 보며 "이 정도면 못 놓을 수가 없겠다"며 영감에 젖는 윤승의 모습이 인상적이죠. 마치 국립중앙도서관에 들어선 책을읽고싶은소년과도 비슷합니다. 

p8에서 심양이 청나라의 수도라는 걸 보니 아직 대륙을 정복하기 전인가 봅니다. 윤승이 끌려간 계기였던 병자호란(1636년)이 후방으로부터의 기습을 막는 예방 전쟁 격이었던 점(저 뒤인 p168)을 생각하면 당연합니다. p28에도 아직 대륙의 명이 망하지 않았음이 나옵니다. p18을 보면 윤승은 안주(p205) 출신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평안도 안주인가 봅니다(안주-박천 평야라고 할 때의). 윤승도 노예 상인에게 값을 치르고 환속될 수 있었으나 양반들이 이미 몸값을 너무 올려 놓아(p69) 상민, 천민들은 도저히 풀려날 길이 없습니다. "나라님이라면서 제 나라 하나 지키지 못하고..(p77)" 피로인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릅니다. 

잔인한 감독관 부카(그런데, p194에 반전이 있네요)한테 매를 맞아가며 노동을 하다 보니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통에, 어떤 작은 여자아이가 매를 맞아 죽을 위기에 놓인 걸 보고 윤승은 용기를 내어 자신의 장기를 발휘할 기회를 잡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역경에 몰려도 이처럼 사람다움을 잃지 않아야 기사회생의 행운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진 부인이 윤승에게 p28에서 "힘든 처지에서도 만주어까지 배워 가며 생의 끈을 놓지 않았음"을 칭찬해 줍니다. 아직 어린 윤승이 더럽고 한심한 노파의 음욕에 희생되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병자호란 당시 조선 여인네들이 노예로 만주에 많이 끌려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여진 남성들의 첩 신세로 떨어졌는데, 자신이 원하지 않는 남성의 성노예로 사는 것도 딱하지만 정실 여진 처의 질시와 학대까지 받아야 했다는 게 너무나 비참했죠. 오죽했으면 청 황제가 조선 첩실들을 함부로 죽이거나 학대하지 말라는 특명까지 내렸겠습니까. 이 소설에 나오는 진씨 부인도 태 부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불쌍한 처지입니다. 아 물론, p42에 나오듯이 생짜 노예보다는 진 부인의 처지가 훨씬 나은 건 사실이죠. 

심양 일개 장시(場市)에서도 눈에 띄는(p44) 금사(錦絲)가 왜, 조선에서는 왕실에서나 겨우 쓸 정도로 귀했을까요? 조선은 애초에 고려가 특수 계층 사치 때문에 망했다는 인식 하에, 철저한 억상(抑商) 정책을 펴서 정치적 안정까지 도모했습니다. 민간에서 대자본이 형성되면 그걸 빌미로 권력 사냥이 벌어질 가능성이 다분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관료층의 청빈을 유도하는 효과는 다소 거두었으나 대신 국력 자체가 쇠퇴하여 결국 외침에 매우 취약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19세기에는 명목상의 국가 간판만 간신히 내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무렵의 청나라 역시 만주만 간신히 차지한 상황에서 관민의 사치를 금하던 통에, 윤승이 금사를 지닌 걸 보고 도 어멈이 한바탕 난리를 칩니다. 태 부인의 자비와 현명함을 기대했으나 이 노인은 아주 나쁜 흉계를 꾸미는 데 윤승을 이용할 마음을 먹고 있었으니 윤승의 운명은 갈수록 악화일로입니다. 그런데... 

역시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태 부인의 매질에 못이겨 윤승이 진 부인에게 불리한 거짓 진술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윤승의 은인인 진 부인이 억울하게 신세를 망침은 물론, 결국 윤승도 후환을 우려한 태 부인에 의해 쥐도새도 모르게 죽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선인은 하늘이 돕는다고, 처음에는 강 대인이 현명한 처결을 했고(ooo마마도 성이 강씨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서로 아무 관계 없습니다. 강 대인은 여진족이기도 하고), 나중에는 ooo이 (사정을 몰랐겠지만) 그를 도우시는 바람에 기어이 진 부인과도 반갑게 해후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소현세자 일가를 인질로 잡아간 청은 의외로 그들을 후대했습니다.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가며 적절히 잘 구사했다 할까, 장기적으로는 조선과 진정어린 유대를 맺고 보다 덜 비용이 드는 평화를 굳히려 했던 그들의 행보를 보면 단수가 참 높았다는 생각이 듭니다(p178에는, 청나라 관료들은 바보가 아니라는 말도 있습니다. 또, p201에서는 명나라 황실에 부패한 관리도 있다고 합니다). p91을 보면 ooo과 진 부인도 이런 판세를 정확히 꿰뚫고 있습니다. oooo와 ooo 마마가 심양에서 지내는 동안 뛰어난 상업 수완을 발휘(p125)했다는 기록은 정사(正史)에도 나옵니다. 역시 ooo 마마는 판단력이 영민하셔서 의주 부윤에게 기별을 넣는다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려 듭니다(p142). 멋집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 바느질 장인인 서 사부는 윤승에게 화두 하나를 던져 줍니다.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모른다면 평생 남의 도구로밖에 살아갈 수 없다(p119, p167)고 가르칩니다. 이 말을 듣고 윤승은 또 깊은 반성을 합니다만, 독자인 저의 생각은 다릅니다. 어린 윤승이 의식을 했건 못 했건 간에 그는 인간의 양심을 언제나 잃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가 순간순간 잔머리를 굴리려 들었다면 훨씬 힘 센 사람들이 그의 속셈을 알아채고 이용만 해 먹은 후 벌써 폐기처분했을 것입니다. 그가 원칙대로 살았고 자신에게 잘해준 이들의 은혜를 잊지 않았기에 여기까지나 올 수라도 있었죠. 아마 그는 강을 건너 자신의 길을 바르게 잘 헤쳐나갈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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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네가 있어준다면 - 시간을 건너는 집 2 특서 청소년문학 34
김하연 지음 / 특별한서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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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3년 전에 발표된 김하연 작가님 作 <시간을 건너는 집>의 2편입니다. 누군가 범상치 않은 사람이 나타나 내 소원을 들어 준다는 건 무척 매혹적인 제안입니다. 물론 많은 제약 조건이 따르지만(서양 동화에서도, "소원은 신중하게 빌 것![Be careful what you wish for]"을 언제나 강조하죠), 무슨 횡재까지를 기대한 게 아니라(p31), 이를 통해 나는 누구이며 내 주변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 어린 주인공이 다시 생각하게 되고 더욱 성숙해지는 과정이 감동적인 1편이었죠. 당시 제가 남긴 리뷰도 있습니다. 

세계관은 그대로지만 이야기가 이어지는 건 아닌 이 2편에서는 친구들에 비해 가정 형편이 어려운 신민아가 새로운 주인공입니다. 소셜 믹스라고 해서, 고급 아파트 옆에도 정책적으로 임대동을 두어 계층 간 위화감을 감소시켜 보자는 게 이 정책의 취지인데 현실에서는 이 소설에 나오는 대로 여러 부작용이 있다고 합니다. p89를 보면, 친구 최아영 엄마가 민아한테 대놓고 싫은 티를 내는 대목도 있습니다(물론 민아의 자격지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p93, 아영이도 실토를 하네요). 구김없이 성장해야 할 나이의 민아이지만 이런 사정 때문에 고민이 많은데, 1권에서처럼 갑자기 어떤 이상한 할머니가 갑자기 나타나 신비로운 미소를 보이며 민아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넵니다. "널 안단다. 네가 이 집의 첫번째 멤버거든.(p12)" 1권에서의 바로 그 할머니이신지 대사도 똑같네요. 1권에 나왔었던 이수의 이름이 p130에 잠시 언급됩니다. 

흰 운동화를 각각의 이유에서 신게 된 다른 두 "멤버"가 이상한 집에 모이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정아린, 최무견이 나중에 합류합니다. 파란머리 소년 최무견은 원래 여기 낄 멤버가 아니었으나 우연히 흰 운동화를 신게 되어 아린과 민아와 같은 배, 아니 같은 집에서 운명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규칙은 1권에서와 대개 같습니다. 할머니도 그렇고 미키마우스 티셔츠를 입은 아저씨도 그렇고 어떤... 절대자 같은 초월적 존재일까요? p82에는 이 시리즈 처음으로 그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이 두 분도 뚜렷한 한계가 있고 주어진 룰에 따라 일만 할 뿐 그 근본 원리를 다 아는 건 아닙니다.  

이 집은 그저 요행수 같은 소원 성취를 위한 곳이 아닙니다. p27에서 할머니가 말씀하시듯, 세상으로부터 큰 상처를 받고 어쩌면 버림받다시피한 아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집이죠. 남이 잃어버린 운동화를 우연히 주운 무견이라고 해도 그렇게 이 운동화를 신게 되었다는 게 벌써 우연만은 아니라는 게 할머니의 생각입니다. 새로운 기회(another chance)라는 게, 설령 어떤 큰 실수를 한 아이에게라고 해도 반드시 주어져야 한다는 할머니의 주장을 듣고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네요. 민아, 아린이한테는 큰 문제가 없는 듯하고, 아마 인성이 좋지 않아 보이는 저 파란머리 무견이한테 주로 해당되는 사항이겠습니다. p104를 보면 무견이 아빠가 누군인지 나오는데 그 직업이 참 아이러니입니다. 

민아는 한부모 가정의 혜택으로 간신히 임대아파트를 분양받았으나 소외감을 느끼는 건 이사한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파트에만 살면 괜찮겠거니 싶어도 그게 그렇지가 않죠. o오동에는 안o에서도 알아 주는 일류 학원들이 있다고 나오는데(p8), 동네 사는 독자로서 그런 얘기는 진심 처음 듣습니다. 혹시 민아가 고o동하고 착각한 건 아닐까요?ㅋ 좋은 학원 가려면 더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충고를 덧붙이며... 뭐 여튼 민아와는 달리 정아린은 정반대 환경, 강남구 청담동 사는 축복 받은 인생입니다(학군 때문에 급하게 이사 옴). 변호사 아빠(정상규씨)의 DNA를 물려받아 공부를 잘했으나 어느새 중압감 때문에 정신이 영 망가지고 말았습니다(공황장애. p59). 딸을 너무 몰아붙인 아빠 잘못이 적지 않아요. p52를 보면 친구(?) 황변호사도 좀 악질입니다. 

p118을 보면, 역시 사람은 do the right thing이 중요합니다. 올바른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으나 이렇게 하면 내 신상에 이롭지 않다 싶어 좋지 못한 길로 빠지는 것이고, 무견이는 이미 몇 번 실수를 했습니다(119를 보니 그런데 그럴 만한 사정이 있더군요!). 그러나 p118에서 무견이는 비로소 바른 결정을 내렸으며 설령 이것 때문에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기회를 날렸지만(과연?), 앞으로 별 후회가 없을 겁니다. 아빠의 피가 무견이한테 과연 흐른다면 얘도 착한 애일 테니 말입니다. 

1권에서도 그랬고 아무리 초현실적인 일이 일어나는 집이라고 해도 규칙이라는 게 있으며, 할머니나 미키마우스 아저씨라고 해도 이 규칙을 함부로 깨지 못합니다. 그 중 하나가 죽은(죽어가는) 사람 못 살리는 것이고(민아 관련) 이 2권에서는 무견이가 다른 규칙을 이미 어겼습니다. 그러나 과연 피도 눈물도 없이 규칙이 최우선으로만 내세워져야 할까요? 고객과 수임인으로 밖에서 연이 생긴 정oo씨와 신설희씨(p121)의 자녀들이 "그 집" 안에서 그런 연이 또 생기다니 세상이 참 좁은 걸까요? 그게 우리 눈에는 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시간을 건너는 어떤 섭리를 놓고 보면 다 필연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응보가 반드시 따르는 게 세상의 이치이니. 

*출판사에서 제공한 청소년용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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