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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옳다는 착각 - 내 편 편향이 초래하는 파국의 심리학
크리스토퍼 J. 퍼거슨 지음, 김희봉 옮김 / 선순환 / 2023년 11월
평점 :
어떤 위기는, 혹 그 결과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파국적이라고 해도, 그리 어렵지 않은 노력을 통해 그 파국적인 결과를 모면할 수도 있습니다. 이 책 p9에 나오는 2009년 에어프랑스 447 추락 사고 같은 게 그런 부류입니다. 조종사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해당 조종사의 능력, 경력을 감안하면 그 상황에서라도 충분히 피해갈 수 있다는 사고였다는 점에서 저자는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거죠. 보냉이라는 이름의 그 조종사뿐 아니라, 평균적인 인간의 인지 능력과 상황 대처 능력이라는 게(대개 조종사의 이런 능력은 평균을 상회함에도 불구하고) 그리 믿을 만한 게 못 된다는 다소 비관적인 전제로부터 이 책은 논의를 시작합니다.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오면 방향을 다른 곳으로 틀어야 합니다. 보통 사람은 지겨워서라도 동일 시도를 반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 중에는 "광기"라는 것도 있어서, 어디 될 때까지 해 보자 같은 이상한 집착을 발동하여 무익한 행동을 반복하기도 하죠. 이게 아주 어리석은 인간만 저지르는 행동이 아니고 평균적인 우리 누구에게라도 가능합니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인내 오류(perseverative error)라고 부른다고 합니다(p14). 심리학에서 무슨 오류 무슨 오류처럼 유형을 나누어 분류하는 건, 그런 오류가 사람의 본성 중 하나이지만 메타인지가 가능한 인간이니 만큼 이를 의식하고 나의 오류를 교정하여 합리성에 최대한 접근하자는 취지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책의 주제의식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차 대전은 원래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전쟁이 일어난 비극이라고 합니다. 물론 최근의 러-우크라이나 전쟁이라든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처럼, 전쟁은 그게 무엇이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들입니다. 그런데 꼭 지금 이 책뿐 아니라 전쟁사의 권위자 존 키건이 쓴 <제1차 세계대전사> 같은 책을 봐도, 1차 대전은 사건이 꼭 그렇게 나쁜 쪽으로만 확 커질 성격이 아니었는데도 그렇게 진행되어버렸다는 점에서 더 큰 비극이라는 뜻입니다. 이 책에 나온 대로, 오스트리아 프란츠 황태자의 죽음은, 이 인물이 그리 자국 대중에 의해 사랑 받던 편이 아니었는데도 기어이 오스트리아, 세르비아 양국 간의 전쟁이 터졌고,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저 두 나라가 주요 교전국도 아닌, 엉뚱하게도 영국, 독일 제2제국, 러시아, 프랑스, 나중에는 미국까지 참전하는 이상한 싸움으로 확전되었습니다. 물론 사라예보 사건은 그저 트리거에 불과했고 그간 곪아왔던 국제 관계 정치, 경제, 민족 모순이 일거에 터진 것이지만, 결국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전쟁으로 귀착했기 때문에, 애초에 피할 수 있는 계기도 많았던 만큼 각국이 조금만 이성적으로 대처했어도 그 지경까지 가지 않았으리라는 아쉬움이 드는 것입니다.
p52에는 "느끼다"라는 단어가 두 번 등장하며 모두 핑크색으로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개념)의 원어는 아마도 perceive일 것인데, 이성적으로 무엇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냥 느낀다는 이유에서 저리 구분하는 것입니다. MBTI의 16개 피라미터 중 하나이기도 하죠. 가용성 폭포 상황이 언제 일어나느냐에 대해 p53에서는 7개의 이유를 제시하는데, 이때 인간은 경험적 데이터를 이용할 생각을 못하고 우왕좌왕 안절부절을 거쳐 비이성적이고 때로 광기어린 판단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결과는 대부분 파국입니다. 책에서는 3년 전 NBA 경기 중단, 화장지 사재기 파동 같은 걸 예로 듭니다. 아니 코로나가 유행히는데 당연히 스포츠 경기를 중단해야 하지 않냐는 반문이 가능한데, 저자는 한 단체(혹은 개인)가 어떤 결정을 내렸다고 나머지도 우루루 휩쓸려 눈사태처럼 상황이 비화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개인 차원보다 집단 광기가 더욱 무서운 법이죠.
유전자 변형 식품은 물론 경계해야 합니다.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이 끝나지 않은 만큼, 어떤 위험이 그 안에 도사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GMO의 위험을 경계하는 신중한 태도와는 별개로, GMO의 범위를 어디까지 잡을지에 대해서는 더 이성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 중 순수하게 아무 변형도 가해지지 않은 건 거의 없으며, 모든 인공(artificial)에 거부감을 보인다면 현대인의 삶이라는 게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신중하고 지혜로운 소비와, 패닉은 서로 구분되어야 합니다.
"우리 신념이라는 건 많은 경우 감정과 결부되었기 때문에, 눈앞에 그게 아니라는 증거가 훤히 펼쳐져 있는 상황에서도 보란 듯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곤 한다(p122)." 하물며 더 많은 경우, 최대한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려 들어도 긴가민가라면, 우리는 그냥 자신의 신념에 따라 버리는 게 보통일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결정한다는 건 누구한테나 그만큼 어려운 일이며 감정을 절제하는 게 그만큼이나 절실한 과제이죠.
위기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감정을 마땅히 절제해야 하지만, 모두를 구할 특별한 능력이 있는 예외적인 사람이라면 대처 방법이 달라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러니컬하지만 너무나도 위기 상황이 잦아지면 사람들은 일일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데 지쳐 좀비처럼 무감각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이를 p163에서는 둔감화(desensitization)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게 반드시 해로운 건 아니고 예외적으로는 이롭기도 합니다. 특별한 능력과 루틴이 몸에 배어 있기만 하다면 말입니다. 예를 들어 (매우 이기적이긴 하지만) 경찰관이나 소방관 분들에게 우리는 위험에 무감각해지기를 은근 바라기도 하는 것입니다.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일도 공포감 등에 지배되면 사람이 제 능력 발휘가 안 되는 법이니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미국도 지금 좌우가 대립하여 미친 듯 정쟁을 벌입니다. 책 저자도 곳곳에서 때로는 풍자로, 때로는 우려와 걱정의 표현으로 이를 언급하는데, 독자 중에는 좌파도 우파도 다 있기 마련이므로 유머러스하게 양쪽을 배려하는 태도가 여기저기서 드러나서 독자를 웃게 합니다. 물론 자신의 신념은 그것대로 소중히 간직할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지만, 올바른 신념도 아닌 가짜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몇몇 때문에 모두가 파국으로 몰리는 결말만은 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나라건 피부색과 인종, 민족에 무관하게 새로운 인력(육체노동, 기술 인력 등)을 받아들여야 생산력과 사회적 건강이 유지됩니다. p271에서 저자는 "국가 질서보다 출신 종족에 더 충성하는 야만 게르만 족을 받아들였기에 (서)로마가 망했다는 교과서에서의 가르침을 상기합니다. 물론 그는 이에 대한 비판을 꺼내들기 위해 이 화제를 언급했지만, 교과서에서 이렇게 배우셨다는 게(현재 미국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 말입니다) 저자님의 연세를 생각하면 그럴 법하다 싶기도 했습니다. 이 섹션에서 저자는 보통 좌파 우파가 이민 정책의 효과, 부작용에 대해 착각하는 바를 팩트 분석을 통해 신랄하게 지적하며, 공동체 전체의 사활이 걸린 문제인 만큼 온갖 심리적 오류에서 가능하면 벗어나 보자는 노력을 독자에게 촉구합니다.
개인으로서 우리는 남의 말을 경청하고, 주장보다는 데이터에 더 의존해야 하며, 사회적으로는 각종 학술 단체의 정치적 파당적 성격을 개혁하며, 메타 인지 능력을 계발(개인이건 사회건 간에)하는 방법으로 파국을 피해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게 이 책의 결론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