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수종 박사의 경제대예측 2024-2028
곽수종 지음 / 메이트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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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중 p16을 보면 신용평가기관인 피치 社가 12년 만에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내린 사실을 저자가 언급합니다. 이 책은 초판이 11월 1일에 발매되었다고 나옵니다만 원고는 그보다 훨씬 앞선 시점에 마무리되었을 것입니다. 이는 지난 8월의 일이었으며, 최근에는 영향력이 더 큰 무디스가 역시 미국 정부의 신용등급을 내렸습니다. 책에도 나오듯이 재정 악화, 국가 채무 부담 증가, 거버넌스 퇴보 등이 주된 원인이며,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과연 2024년 이후의 경기 회복이 가능할지에 대해 우선 물음표를 던집니다. 미국처럼 세계 경제의 운용과 방향성, 트렌드, 동력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나라에서 국가 경영 기조가 저렇게 문란해지면, 과연 생산성이나 경제적 사기, 혁신하려는 의지 등이 앙양될 수 있겠는지에 대해 심각한 회의가 드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유였습니다. 

p56에서 저자는 2022년 8월에 있었던 키신저의 중국 방문 그 의의에 대해 길게 언급합니다. 키신저는 1970년대에 있었던 세계적인 데탕트 기조와 중미 간의 핑퐁 외교를 이끈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반 세기만에(물론 그 사이에도 여러 차례 방중했습니다만) 다시 세계적인 주목이 쏠린 컨택을 중국향으로 시도한 것은 물론 양국 간 고조되는 긴장의 완화가 목적이었습니다. 책에는 바이든 정부의 기후 특사 존 케리도 동행했다고 나오며, 이 사람은 2004년에 미국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나와 부시 2세와 붙었던 인물입니다. 이 화제가 왜 중요한가 하면, 중국 공산당 당국이 대외적으로는 미국 관료에 대해 아주 냉랭한 태도를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파천황의 외교 혁명을 이뤄 냈고, 현재도 올리브 가지를 들고 와 양국 사이의 우호를 설파하는 이 노학자를 이면에서 열렬히 환영하는 데서 중국 고위층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라는 미승인 국가가 있는데 구 소련 구성국이었던 몰도바에서 러시아계 주민, 혹은 친러시아 성향 국민들이 많이 사는 곳입니다. p64를 보면 러시아가 이 지역에 근대를 주둔시켰다고 나오는데, 미국 등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지원을 강화하자 러시아도 장에는 멍 식으로 대응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책에서는 러-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2014년으로까지 거슬러올라가, 전쟁의 파급효과, 그 중에서도 증시 등에 미치는 영향과 국내 또는 세계 물가 앙등에 대해 언급합니다. "경험은 바보의 가장 좋은 학교"라는 말이 있는데, 푸틴의 러시아나 (몇 년 안에 트럼프가 컴백할 가능성이 큰) 미국이나 이 점을 모를 리 없다는 게 저자의 추론입니다. 

현재 미국도 부동산 시장이 큰 위기에 처했다고 하는데, 이 책 p80에도 그런 말이 나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급격히 늘어난 유동성이 아직도 나쁜 영향을 사방에 끼치는 중인데, 특히 인플레이션 효과라는 게 원래는 임대인들의 렌트 상승에 명분을 주었다고 책에서는 말합니다. 그러나, 금리가 빠르게 상승하고 이에 따라 미국 부동산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하락하여(왜냐면, 은행에 예금하는 편이 나았으니까), 앞서의 저런 예상은 빗나가고 거꾸로 렌트 상승이 둔화하는 추세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부동산 임대 시장이 이처럼 별 재미를 못 보겠다는 전망이 강화하자 돈이 이쪽으로 몰리지 않게 되고, 따라서 시장 자체에 심대한 타격이 우려된다는 게 전망의 대세가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금융권에서 이쪽으로 대출을 안 해 주게 됩니다.  

p98에는 1990년도 이후로 중요 사건의 타임라인과 경제성장률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표가 나옵니다. 맞은편 페이지에는 저자의 상세한 주석도 달려 있어서, 시대별로 사건들과 경제 성장 사이에 어떤 영향이 오고갔는지 독자들이 일별할 수 있습니다. 이 각주에는, 해당 연도에 미 의회에서 통과된 중요한 경제, 회계, 세제 관련 법률 개정 내용이 담겨서, 제도의 변혁이 경제 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저자의 관점에서" 일단 고찰할 수 있습니다. 단, 해당 연도의 이벤트에 대해 다른 배경 지식이 있다면 이 책과는 다른 결론의 도출도 가능하겠습니다.  

최근 일본에서 "피크 코리아"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그 나라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하던데, 이 책에는 피크 중국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자나 후자나 모두, 해당 나라가 지금이 최정점이며 이제 꼴아박을 일만 남았다는 주장입니다. 한국은 아직 메모리반도체가 쌩쌩하고, 경기를 많이 타긴 하나 석유화학과 철강, 조선도 의외로 중국에 덜 추격당하여 아직 경쟁력을 유지 중이라서 피크 코리아론은 일본에서만 호응을 얻는 중이긴 합니다. 그런데 중국 경제 위기론은 사방에서 제기되었고 그 주장들이 기반한 근거들도 제법 탄탄한 편입니다. 사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으로 거슬러올라가면 중국이 지금쯤 세계 1위에 올라섰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했었는데 그 결과는 반대로 드러난 셈입니다. 책에서는, 중국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개인의 창의를 보다 넓은 폭으로 허용하고, 이를 통해서만 기업의 혁신이 가능하리라고 내다봅니다. 

몇 년 전에 인터넷에서 떠돌았던 사진이 잘 말해 줬듯 중국의 부동산 산업의 부실상은 진즉부터 매우 심각했습니다. 그리고 2년 전 헝다 사태가 터졌으나 당국이 개입하여 간신히 봉합했고, 얼마 전에는 또 비구이위안(碧桂園. 벽계원)이 물의를 일으켜 위기론을 증폭시켰습니다. 시장에 산업의 수급을 맡기는 건 개인과 기업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기민하게 뛰어다니는 중 자연스럽게 균형이 맞춰지고 혹 결과가 안 좋아도 몇몇 개인이 책임을 지면 그만이기 때문에 효율적입니다. 그러나 국가나 정부가 어떤 계획 하에 산업 전체를 통제하면, 결과가 나쁠 시 자원 배분 비효율에 대한 책임을 전체 국민과 나라가 져야 하므로 문제가 큽니다. p250 이하에는 이른바 LGFV, 지방정부 자금 조달 기금의 문제라는 게 집중 분석됩니다. 

책 p282 이하에서 저자는 러-우크라이나 사태를 포함하여 앞으로 전개 가능한 여덟 가지 시나리오를 검토하여 2024년, 멀게는 2028년까지의 경제 전망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얼마 전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충돌이 확산하며 3차 대전이 터지는 것 아니냐는 호들갑도 일각에서 나왔으나 결과는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라고 이란 등이 결국 말만 내세웠을 뿐 하마스를 돕는 아무런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하마스 수뇌부 소탕 선에서 마무리되어가는 느낌입니다. 책에서도 누누이 강조하듯, 경제의 큰 방향성 전환에는 어떤 시그널 같은 게 분명히 발생하며 이를 조기에 예리하게 캐치하는 게 경제 주체들의 최우선 과제가 아닐까 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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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뉴욕 - 최고의 뉴욕 여행을 위한 한국인 맞춤형 가이드북, 2024~2025년 개정판
이주은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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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미국 제1 도시이며 경제 수도 노릇을 하는 곳입니다. 세계 최강의 소프트파워를 발산하는 나라 답게, 미국 영화에서 자주도 이 도시를 배경으로 삼아 온 탓에 우리 한국인들도 그 랜드마크 곳곳이 눈에 익으며, 꼭 영화 속의 모습들이 아니라 해도 사업상의 출장, 유학, 단순 관광 등의 사유로 이 도시를 자주 방문하기에 (좀 과장하자면) 마치 한국의 대도시처럼 친숙하게 다가옵니다(베트남의 관광지 다낭도 그렇죠). 가면 한국 사람들이 어디 좀 많습니까. 그러나, 워낙 큰 도시이다 보니 보고 또 봐도 캐치 못한 매력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3개월 전(8월달) 리뷰한 <프렌즈 미국 동부>의 필자이기도 한 이주은 씨가 이 개정판에도 여전히 단독 저자 명의입니다. 리뷰는 이 2024년판으로 처음 올리지만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뉴욕 인근 방문 시 이 프렌즈(구판이라도) 뉴욕 편을 반드시 참조하고 갔었기 때문에, 이 신판이 마치 여러 번 읽었던 책처럼 익숙했고, 그러면서도 깔끔하고 유익했습니다. 

p74에는 뉴욕을 대표하는 음식들이 나옵니다. 최상단에 위치한 건 마치 순두부찌개처럼 보이지만, 뉴욕 정통 피자를 찍은 사진입니다. 피자는 이미 한국에 들어와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크게 변형되었지만, 이탈리아인들이 100년 전부터 본격 유입되어 널리 활동한 뉴욕에서 정통으로 여겨지는 (약간 짠, 페퍼로니가 많이 들어간) 피자는 이런 모습입니다. 예쁘게 하트 모양, 혹은 은행잎을 닮은 커피 블룸 사진이 p75 최하단에 나오는데, 스페셜티 커피라고 이름이 붙었네요. 

미국 거의 어디라도 그렇지만 중국인들이 매우 많이 살며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이민의 역사도 오래되었습니다. p150을 보면 1~2월에 음력설 신년 축제가 열린다고 나오는데, 미국에서 동아시아의 음력설을 Chinese New Year이라 부르는 건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또 이탈리아인 못지 않게 아일랜드인 이민자 수도 무척 많은데, 그래서 3월 17일 성 패트릭 영명 축일도 이 성인이 아일랜드 수호 성인인 만큼 무척 성대한 축제가 열립니다. 11월 넷째 목요일 추수감사절이 기려지는 건 미국 어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세시 풍속이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 열리는 게 다소 이상하게도 보이지만 살벌하고 세련된 업무지구만 있는 게 아니고 이곳 역시도 사람 사는 도시인 이유이겠습니다.  

팁 문화는 거의 미국에만 있다시피한데 서버들의 서비스 정신을 고취하고 샵 오너에의 종속도를 완화하여 본인 역량에 따른 페이를 챙겨가게 하려는 오랜 문화의 유산이겠습니다. 책 p95에는 특히 뉴욕이 미국 중에서도 팁이 비싼 편이라고 알려 주며, 간혹 팁이 이미 bill에 포함된 경우도 있으므로 꼼꼼히 살피라고 알려 줍니다. 또 표준적인 레스토랑에서의 테이블 어레인지 다이어그램도 나오는데 이런 건 좀 살펴 놓고 가면 현지에서 덜 당황하긴 하죠. 그런데 요즘은 서울에서도 이런 배치를 그대로 따라하므로 뭐 별반 낯설 것도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웬만하면 크고작은 녹지들이 부심, 교외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뉴욕도 이런 도시 조경의 아주 오랜 모범이라 할 만한데, 루스벨트 아일랜드(현지 발음은 로스벨트이겠습니다만)라든가 포트 트라이언 파크 같은 곳이 대표적인 녹지 공원(p66)입니다. 이 네 곳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본문 후반부 뉴욕 각 구역에서 명소를 소개할 때 다시 상세하게 그 정보가 나옵니다. 

뉴욕 하면 대번에 떠오르는 게 자유의 여신상인데 영어로는 Statue of Liberty라고 하죠. 저 영어 표현에는 무슨 goddess 같은 단어가 안 들어가는데, 이는 영어의 추상명사에 그 자체로 "~의 여신"이란 뜻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또 성(性. gender)은 따로 표시하지 않아도 역시 그 안에 포함된 걸로 봐서 역시 워딩에 드러나지 않죠. 워낙 대표적으로 뉴욕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보니 책 p124 이하에 그 연혁이라든가, 접근하는 방법, 관광 명소로서의 포인트 등 다양한 정보가 나오네요. 

맨해튼 애버뉴B에 소재한 클린턴 스트리트 베이커 컴퍼니가 p242에 소개됩니다. 책 본문에 나오듯이 브런치 "식당"으로 유명합니다. 리먼이라는 창업자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유대인이 만든 맛집이며 클린턴이란 오랜 아일랜드(이 계통은 미국 건국 초창기부터 있었습니다. 감자 기근보다 훨씬 전이죠)식 성씨는 이 가게와 별 관련 없고 애버뉴B의 일부 구칭 중 하나에서 유래했습니다. 따라서 오바마 시절 여성 미 국무 장관(혹은 그의 남편 빌)과 아무 관계 없습니다. 물론 그녀는 뉴욕 주에서 연방 상원의원을 역임하긴 했습니다. 

JP 모건은 지금도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 중 한 곳에 그 이름을 남겼습니다만 19세기 말 미국 고도 성장기 이른바 robber baron의 한 사람이기도 하죠. 여튼 그의 대저택은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현재까지 관광객들을 맞는 뉴욕의 명소가 되었으니 사후에 사회 기여로 크게 방향을 튼(?) 그의 정신 행로에서 약간의 아이러니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p280에 컬러 사진과 함께 자세한 정보가 제시됩니다. 또 맞은편 페이지에는 뉴욕 아르데코 양식의 대표라 할 크라이슬러 빌딩이 나오는데 한때 미 3대 자동차 메이커였던 이 회사도 알고보면 그 운명이 기구합니다. 

뉴욕은 p9의 깔끔한 지도에도 나오듯 다섯 개 구역으로 나뉩니다. 스테이튼 아일랜드, 브루클린, 퀸스, 브롱크스, 그리고 맨해튼인데, 이 책의 편제는 그보다 더 자세하게, 관광의 편의를 위해 유기적이고 입체적으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로어 맨해튼, 소호, 그리니치빌리지, 허드슨야즈앤첼시, 5번가(핍스애버뉴), 브루클린, 퀸스, 그리고 인근의 뉴저지(좌측), 워싱턴DC 등입니다. 간단히 이동할 수 있는 이웃의 명소를 살짝 곁들여 추천하는 건 프렌즈 시리즈의 오랜 전통 중 하나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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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로 만든 세계
마이클 울드리지 지음, 김의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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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프로그래머들이 하던 일은 비교적 명확했습니다. 정확한 연산 규칙을 주고 이에 따라 컴퓨터가 빠르고 충실하게 작업을 행하게만 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AI는 머신 러닝을 통해 규칙을 스스로 추출하고, 어느 정도는 스스로의 판단을 통해 의사 결정 같은 것을 이루므로 과거의 EDPS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p31을 보면 "인공지능은 왜 어려운가?"라는 질문을 앞세우고, 이러이러한 난관이 있었기에 발전이 더뎠다는 설명을 내놓습니다. 

"이론적으로, 어떠한 알고리즘을 통해 문제 해결이 가능한지는 이미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을 현실화하는 데 소요되는 컴퓨팅 자원이 너무도 막대하기 때문에, 현실성이 없다.(p34)" 이 답은 과거에 100% 유효했고, 지금은 네트워킹 기술이나 칩의 성능이 획기적으로 진화, 향상되었기에 어느 정도까지만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AI의 발달사가 비교적 오래전으로까지 올라가 잡히고 서술되는 거죠. 앨런 튜링 같은 이가 이미 자신만의 기준을 내세워 "무엇이 인공지능이고 무엇이 아닌지"에 대해 논한 게 반 세기를 훌쩍 넘을 정도입니다. 2015년 알파고의 놀라운 퍼포먼스가 세계를 향해 공개되었을 때에도 일각에서 이런 비판이 있었기에, 이후에 구글은 새 버전은 전기(전력량)를 적게 먹는다는 등 IR 차원에서 여러 해명을 내놓기도 했었습니다.  

요즘 개발자들에게는 낯설 수 있지만 과거에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LISP라는 게 널리 쓰였다고 합니다. 책에서는 역주를 통해 저 약어를 "리습"이라 읽는다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달아 놓았습니다. 이 책(한국어판)의 제목이 "괄호로 만든 세계"인데, 저 리습에 괄호가 너무 많이 쓰인다는 이유로 "서로 상관도 없고 어리석게 보이는 수많은 괄호(lots of irrelevant silly parentheses)의 약자가 바로 LISP"라는 아주 재미있는 농담이 p62에 나옵니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고, 리습의 의의는 결코 가볍게 폄하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리습을 발명한 이는 존 매커시인데 미국에는 매커시라는 아일랜드계 성씨를 쓴 유명 인물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은 매우 유머러스한 필치로 쓰였으며, p63에는 이 존 매커시가 불멸의 업적을 남긴 다트머스 대학의 "그 여름학교"에 대해 독자에게 마치 엽편 소설을 들려 주듯 재미있게 서술했습니다. 물론 그해 여름의 특별한 세션이 아니었다 해도 나올 발명품은 나오고야 말았겠습니다만, 이처럼 재미있는 배경 설명이 곁들여짐에 따라 독자들은 리습 탄생의 필연성과 그 기여에 대해 더 깊은 성찰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략 고2 정도의 수학 과정에서 콤비네이션, 즉 조합이라는 개념을 배워 경우의 수 구하기의 아주 요긴한 도구로 쓰게 됩니다. p87을 보면 탐색나무의 크기가 상상도 할 수 없이 커지는 단계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이를 가리켜 조합적 폭발(combinational explosion)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데미스 하사비스(p214)가 2015년 알파고의 연산능력에 대해 홍보하면서 바둑에서 가능한 경우의 수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원자의 수보다 많다고 한 적 있는데, 이 역시도 조합적 폭발의 한 예가 되겠습니다. 이런 연산을, 기존의 컴퓨터로는 도무지 행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는데, 이 역시도 최근에 들어 관련 기술의 발전에 따라 AI라는 도구를 통해 그 실현 가능성을 비로소 꿈이라도 꿔 보게 되었죠. 

윈도처럼 컴퓨터에 아무 소양이 없어도 일상에서 바로 쓸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 있고, 전문가들을 위한 시스템이 따로 있습니다. 책 p114에는 에드워드 파이겐바움 교수가 고안한 덴드랄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 R1/XCON의 예도 나오는데, 이는 DEC社가 개발한 시스템입니다. 이 도구들의 두드러진 특성은, 그것을 이용해서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경제학 교수들이 즐겨 쓰는, 나스닥이나 뉴욕증시 데이터를 이용하여 수익률과 각종 파라미터 간의 회귀분석을 행하는 tool들이 현실에서 돈을 버는 데 거의 아무 쓸모가 없는 점과 대조된다고 하겠네요. 사실 지금처럼 많은 기업들과 자본이 AI에 달려드는 이유도, 여기에서 엄청난 수익이 창출되리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같은 페이지에는 리습(LISP) 전용 컴퓨터도 한때 사용되다가 윈도 탑재 PC가 대중화하며 사라진 사실에 대한 언급도 나옵니다.  

언어가 순전히 논리적 의사 표명의 집합구조라면 아마 적어도 30년 전에 이미 번역기가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는 정보 전달 외에도 감정의 표현이라든가 서사의 효과적인 전승 등 다양한 기능이 있고, 때로는 논리에 완전히 반하는 속성마저 가지므로, 논리 구조에 반하면 자폭(다운됨. crash)을 택하는 컴퓨터가 이를 온전히 해 낼 리 없습니다. p140 이하에는 재미있는 논리학 이슈를 이용한 농담 여럿이 등장하는데, 얼마나 인간의 언어(사실은 인간의 정신 자체)가 모순에 가득찼는지 확인 가능한 예이기도 합니다. 과연 앞으로 탄생할 본격(强) 인공지능이 이를 사람처럼 매끄럽게 다룰 수 있을까요? 

p176에는 인공지능이 과연 잘 이해하고 처리할 수 있을지 기대되는 과제 중 베이지안 추론(Bayesian inference)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베이지언 확률 역시 한국에서는 고 2 수학 중에 배우는 내용이며, 내가 수학에 과연 적성이 있는지 어떤지 테스트할 수 있는 좋은 기준 중 하나입니다. 이게 직관적으로 이해되면 수학을 잘하는 천성이 갖춰진 것이며, 아니라면 노력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야 합니다. 어떤 조건이 붙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특정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매우 크게 달라집니다. 많은 이들이 이 차이를 이해 못하고 같은 결론을 내리기 때문에 오류를 범하곤 하는데, 직관이 논리를 배반하는 가장 뚜렷한 예 중의 하나입니다. 계산 잘하는 AI에게 이게 무슨 문제냐고 할 수 있으나, 확률은 본래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나마 가능성이 어떤 형태로 분포하는지를 알아내는 이론 도구입니다. AI도, 그게 정말 지능이라면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거다 저거다 결정을 내려야 하겠으므로, 이 이슈가 중요합니다. 

인공지능이 가장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도윰을 줄 수 있는 분야 중 하나가 의학입니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한국의 가천의대 같은 곳이 진단과 수술에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도입했으며, 이 책에도 p246 이하에서 그저 수술 같은 기계적 작업뿐 아니라 진단에도 널리 AI가 활용되고 있으며 또 그 범위가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서술됩니다. 이 책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회사가, 알파벳의 자회사 중 하나인 딥마인드인데 여기서도 그 성과가 두드러지게 강조되네요. 

16년 전 레이 커즈와일의 베스트셀러 <특이점이 온다>가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일부에서 황당하다는 비판도 들었지만 그 책에서 다룬 비전과 인사이트가 무척 원대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책 p266에서도 특이점에 대한 커즈와일의 해석(특이점 자체는 아주 예전부터 있던 개념이죠)이 다시 저자의 관점에서 분석되고 해설되는데, 결론은 현재의 각종 기술 발전이 특이점 도래의 (아주 느슨한) 필요조건은 될 수 있지만 충분조건은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범용 지능을 빠르게 발전시키지 못하는 것처럼, 이제 어느 인공지능(아직 만족스러울 만큼 발전하지 못한)이 개발되어 정말로 획기적인 인공지능(범용이든 혹은 그를 능가하는 무엇이든 간에)을 개발한다는 보장이 있는가? 저자의 대답은 부정적입니다. 

인공지능의 활용에 대해 또 중요하게 숙고되어야 할 이슈가 규범과 법규 문제입니다. 인간 게놈 지도가 20여년 전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은 줄기세포 연구 등을 활용하여 유전공학이 각종 질병 치료에 획기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일반인이 체감할 만한 발전은 찾아보기 힘들며, 과감한 시도를 하기에는 도덕과 실정법의 강력한 규제가 현실의 장벽으로 작용합니다. p281 이하에서 인공지능과 윤리의 문제가 심도 있게 다뤄집니다. 

이처럼 고도로 발달한 AI가 나온다면 과연 그에게 "의식(p336)"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의식이란 게 어차피 인간의 속성이므로, 무엇의 정신 구조를 그리 부를지 아닐지는 인간의 특권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태 없던 것이 지상에 새로 나와 의미 있는 활동, 동작을 행한다면, 그것의 행동을 사전적으로 결정하는 내면의 그 무엇은 인간의 의식과는 사뭇 다른, 그야말로 낯선 미지의 무엇이겠으며 의식을 넘어선 원리와 구조를 갖췄을 수 있겠습니다. 

p368 이하에 용어 사전이 실려서, 읽다가 모르는 말이 나올 때 수시로 참조할 수 있습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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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ian 데미안 세트 - 전2권 - 영문판 + 한글판
헤르만 헤세 지음 / 반석출판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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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 세트 구성이며, 한국어 번역본은 207페이지, 영어 번역본은 224페이지 정도의 분량입니다. <데미안>은 대중적으로 매우 잘 알려진 고전이지만 사실 막상 읽어 보면, 특히 독서가 권장되곤 하는 연령대인 중학생들이 읽기엔 쉽지 않은 텍스트입니다. 일단 한국어본이 무척 읽기 쉽게,  잘 읽히는 문장으로 된 점이 좋습니다. 

어느 어린이이든 가정 안에서 통용되던 질서가, 첫번째로 만나는 사회일 학교(유치원 포함)의 그것과 다소 다르다는 걸 느낄 때 혼란스러워합니다. p25에 나오는 "진흙 묻은 장화"는, 이 두 세계의 가치와 이상이 서로 어긋남을 상징합니다. 아버지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가치를 지키지 못한 게 부끄럽고, 어린 싱클레어에게는 마치 악마와도 같은 크로머를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굴종해야 함을 또 부끄러워합니다. 소년이 속한 두 개의 공동체 어느 편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서지 못하는 싱클레어의 자괴감에 대해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겠고 이 고전의 생명력은 이런 성장과정에서의 보편적 갈등을 예리하게, 또 첫학적으로 짚어낸 데에도 있습니다.  

꿈과 현실은, 특히 꿈 부분이 생생할 때 분간이 어려워집니다. 물론 건강한 정신을 지닌 사람은 아무리 피곤한 상태에서도 꿈과 현실이 혼동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주 어려서 겪은 일에 대한 회고라면 어떨까요? 내가 어린이일 때 체험한 일과, 그 무렵에 꾼 꿈에 대한 기억이라면 이를 쉽게 가르기가 무척 힘들 것입니다. 또, 어려서는 이겨내기가 몹시도 버거운 일을 겪으면, 이를 깊은 수면을 통해 이겨내려 하기도 합니다. p44에서 싱클레어는 이처럼 꿈과 현실을 동시에 되짚으며, 이미 어른이 되어 과거를 기억하는 자신에게 좀처럼 구별이 어려운 "그 시절의 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제3장의 제목은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들 중에"입니다. 앞에서도 나왔지만 크로머라는 불량청소년의 강요에 의해 싱클레어는 도둑질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도둑질 자체가 사회의 기본 규범에 반하는 수치인데, 이를 타인의 강요, 더군다나 원시적 폭력 말고는 아무런 권위도 갖지 못한 불량배에 의해 강요된 행위라는 게 싱클레어의 모멸감을 가중합니다. 

데미안은 매우 반사회적인 면까지 갖춘 매혹적인 독재자입니다. 그는 신부의 강론에 나오는 "두 도둑 이야기(물론 신약 본문에도 나옵니다)"를 자신의 버전으로 싱클레어에게 다시 들려 주며, 어정쩡한 개과천선 중인 도적과 달리, 그나마 기개와 지조(?)를 가지고 끝까지 예수에게 불손한 언사를 퍼부은 도적은 누가 배울 점이 조금이라도 있는 인물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p77). 이 대목을 읽으며, 저는 작중 싱클레어와 비슷한 나이일 때 처음 접했던 (역시 작중 캐릭터인) 데미안이, 싱클레어의 눈에 비춰지듯 신적인 존재가 전혀 아니라, 어쩜 이리도 유치한 소릴 할까 싶은 흔해 빠진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이 읽혀져서 잠시 당혹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저 역시도 초등학생 시절에 겪은, 동네 중2병에 걸린 개똥철학자 형과 다를 바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어렸을 때 우상인 줄 알았던 그 누군가의 한심한 구석이 눈에 띄는 건,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이 확인하게 되는 나 자신의 성장 그 흔적이라고 해야겠죠. 

한국은 자연이 오랜 세월 동안 침식을 받아 산수가 오묘하고 완만하게 형성된 지형에 속합니다. 그 자연은 때로 매우 조화롭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때로 기괴할 만큼 부자연스러움의 극치를 보이기도 합니다. p131에서 싱클레어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지가 않고) 매우 부자연스럽게 지어진 자연물을 응시하는 버릇이 있었다고 회상합니다. 독일의 산천이 어떠한지 제가 직접 가서 본 적이 없어 모르겠지만, 자연이 자연답지 않고 기괴하다 여기는 건 그 역시 인간의 독단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가장 조화롭게 구성되어야 할 음악의 세계를 구현하는 자 피스토리우스의 (그에 어울리지 않는) 기괴한 외모, 기이한 삶을 보고 싱클레어가 느꼈을 당혹감을 잘 상징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크나우어는 싱클레어의 친구들 중 우리 독자들이 잊기 쉬운 인물들 중 하나입니다. 마치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가 잠시 옆동네 놀러온 것 아닐까 싶게 작은 체격에 나약한 심성을 지닌 그는 p150에 나오듯 싱클레어가 때맞춰 그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자살을 감행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 짧은 시간 동안 싱클레어는 크나우어에게 마치 데미안 노릇을 해 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역본은 마치 펭귄이나 옥스퍼드 고전처럼 반듯반듯한 폰트로 큼직큼직하게 인쇄되었습니다. 대체로 "막스"라는 데미안의 크리스천 네임이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듯했고, 어떤 대목에서는 영역본이 한국어역본보다 더 쉽게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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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이란 무엇인가 - 우리 시대 공정성에 대한 모든 궁극적 질문의 해답
벤 펜턴 지음, 박정은 옮김 / 아이콤마(주)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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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이란 무엇인가?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이 질문에 대해 답을 내려고 고민해 왔습니다. 많은 현인들이 이 질문애 대해 다양한 답을 제시했으나 모두를 만족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합당한 답이 나오는 그날, 아마도 소모적이며 비생산적인 모든 분쟁들 중 상당수는 중단되고 개인들은 마음의 평화를 찾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공정"의 이슈는 인간의 문명과 사회가 중시했었고 지금도 그 해결에 많은 공을 들이는 오랜 난제라고 하겠습니다.  

존 로크는 2권 분립론의 창시자이며 <시민정부론>이란 명저를 통해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초석을 놓은 이론가입니다. 책 p52에 나오는 1689년은 (본문에 나오는 대로) 권리장전이 제정된 해이며, 그 직전해인 1688년에는 명예혁명이 일어나 제임스 2세의 폭정이 멈춰졌습니다. 이 사건은 세계 민주주의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의미가 깊으며, 이로써 중의(衆義)를 모으지 않고 개인이나 소수의 뜻에 의해 정치가 전단되는 시스템은 부도덕, 불의, 불공정한 체제로 당연하게 단죄되기 시작했습니다. 독재는 불공정하고, 민주주의는 정의롭고 공정한 시스템입니다. 

언어라는 것은 그저 정보를 전달하는 부호, 도구가 아니라 그 안에 생각과 가치를 표현하는 오랜 지혜가 담긴, 하나의 집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의 원제 일부이기도 한) fair라는 단어에 대한 의미를 먼저 탐구합니다. "공정"이라는 영단어는 disinterested, impartial, just, neutral 등이 있겠으나, fair는 저런 것들과는 좀 다른 기원을 갖습니다. 책에도 이 단어의 다양한 용례가 나옵니다만, 호주라는 나라의 국가(國歌. national anthem) 제목부터가 벌써 Australia fair입니다. 아름답다고 번역해도 되지만 그 외에 뭔가 순결하다, 신성하다, 감히 범접하지 못하겠다 등 다른 의미도 풍깁니다. 그러니 영어 화자의 먼 조상들은 "공정"에 어떤 심미적인 뜻을 부여했나 보다 하는 저자의 의견에도 우리 독자들이 끌릴 만한 것입니다.         

우리가 공정하다, 불공정하다를 거론할 때에는 아마도 거래, 나 아닌 다른 사람과 무엇을 거래(p108)할 때에 가장 자주 떠올릴 만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컨대 fair enough라고 하면, 이게 겉으로 드러난 의미외는 달리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어쩌겠어" 같은, 그럭저럭 타협하겠다는 감정을 나타냅니다. p132에 보면 아무리 일부 현자들이 고대에 "공정"이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해도, 아테네나 로마는 노예 없이 운용이 불가능한 경제 체제였고 거주자의 태반이 노예였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 드러난다고 나옵니다. 

애덤 스미스(p161)는 경제학의 개조로 불립니다만 피도 눈물도 없는 합리성만을 추구했던 이가 절대 아니었고, 그의 저서 <도덕감정론>을 봐도 알 수 있듯 적어도 한 시대의 시민들이 모두 공감할 만한 공정과 정의의 개념이 무엇인지에 대해 무척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드러납니다. 흔히, "신분에서 계약으로"라는 말이 표현하듯, 어떤 봉건적 굴레에 의해 작동하던 경제 활동의 구조나 패턴 같은 것이, 이제 형식적으로는 대등한 당사자 간의 계약에 의해 운용되기 시작하면서 더 고도의 효율이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공정이라는 것은 이처럼, 인류가 어떤 체제 하에서 살고 거래하고 활동했건 간에 단 한 번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본 적이 없던 가치였습니다. 

대체로 자본주의라는 건, 공정의 가치와는 상당히 먼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이끌려 온 면이 있습니다. p254를 보면, 존 피어먼트 모건이나 록펠러 같은 사람들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이 사람들이야말로 robber baron, 자본주의의 첨단에서 가장 살벌한 형태로 과실을 취해 온, 범죄와 합법의 경계선상에서 곡예를 펼쳐 온 이들이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이들에 의해 쓰였지만 사람들은 결코 그들을 "성공한 사람들"이라며 찬양하지만은 않았습니다. p255에는 저자의 "자본주의는 철학이 아니라 힘이다"라는 명언(?)이 나옵니다. 

현대는 레거시 미디어의 힘이 점차 감소하는 추세이지만 특히 20세기에 매스 미디어라 불렸던 TV나 라디오, 거대 신문의 영향력은 무척 강했습니다. p284에는 모한다스 간디 등이 말한, 미디어의 위력에 대한 냉소적인 명언들이 소개되는데 한때 진실 자체를 호도하고 은폐할 만큼 무소볼위였던 언론에 대한 그그들의 생각이 어떠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미디어의 권력은 요즘 일부 인플루언서들에 옮아올 만큼 급격한 변모를 겪는데, 공정이란 가치는 특히 미디어가 사실과 사람들을 다룰 때 부각된다고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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