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오페라 - 아름다운 사랑과 전율의 배신, 운명적 서사 25편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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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십여 년 전부터 오페라에 관심 있는 분들이 한국에도 부쩍 늘어서 관련된 책들이 많이 나왔었지만 어떤 책은 정보가 빈약하고, 어떤 책은 너무 무게 잡고 만들어서 일반 독자가 부담 덜고 접근한다는 게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이 책은 분량도 300페이지쯤이고 (따라서 무게도 가벼운데다) 내용도 쉽게 이야기책처럼 쓰여서 책 읽는 노력 대비 얻는 정보의 가성비가 무척 좋았습니다. 사실 가성비 따지는 게 미안할 만큼, 책에는 버릴 부분 없이 어디서나 즉시 써 먹을 이야깃거리가 가득해서 이 분야 다른 책과 비교할 레벨이 아닙니다. 

다섯 파트에 다섯 편씩의 고전이 설명되어 모두 스물 다섯 작품을 공부...라기보다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오페라 실 감상시에는 무대의 화려함, 성악가들의 압도적 가창력과 성량, 객석의 분위기(?) 등에 떠밀리기 때문에 뭐 그럴 일이 없지만, 만약 메가박스 상영관이나 혼자 집에서 TV를 통해 실황 녹화 컨텐츠를 보거나 할 때에는, 언어(이탈리아어나 프랑스어)의 장벽이나 배경 지식 부재로 인해 슬슬 눈꺼풀이 닫힐 위험이 매우 큽니다. 그럴 때에는 배경 지식의 장착만큼 특효약이 또 없습니다. 

한국에서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주세페 베르디는 19세기에 활동한 인물인데, 이 책 p41에 소개된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는 무려 17세기 사람이며 이때에도 이미 형식적으로 오페라 장르가 이 정도나 완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 중 <율리시스의 귀환>이 소개되는데(정확하게는 "고국으로 귀환하는 율리시스"), 베네치아 사람이었으므로 오뒤세우스는 고전 라틴어 울릭세스를 거친 형태인 울리세(Ulisse)로 표기되며, 극화된 내용도 우리가 아는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페라 내용과 형식에 대한 소개와 설명도 좋지만 "(신의 장난에 놀아나는) 인간은 약해도 사랑은 강하다"는 주제를 이끌어내는 저자의 건강한 세계관도 독자를 참 편하게 해 줍니다. Omnia vincit amor! 

다섯 파트 모두 각각의 주제에 의해 작품을 뽑아 설명하는데 파트 1(그 무엇보다 "용감한")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오페라는 바로 베토벤의 <피델리오>입니다. 레오노레 서곡은 엄밀히 말하면 피델리오에서 여러 번 개작을 거쳐 밀려났다고 봐야 하므로 독립된 부수음악(말이 모순되지만 여튼)이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에그먼트 서곡도 소속 작품 없이 독자적인 형식이므로 <피델리오>가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입니다. 이 책에는 (리텍컨텐츠의 다른 책도 그렇지만) 소개된 대표 아리아들의 가사들 원문(제목만), 해석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원문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이 작품은 독일어로 쓰인, 당시로서는 꽤 드문 예이기도 합니다. 

p87에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 설명됩니다. "Non so piu, cosa son cosa facio"가 역시 이탈리아어 원문 가사와 함께 소개됩니다. <마술피리(이 책에서는 p148)>는 독일어로 쓰였지만 이 작품은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잘 모르지만, 이 곡은 1972년작 코폴라의 영화 <대부>에서 코니의 결혼식장 어느 여성 성악가의 초청 공연 장면 중 "논 쏘 퓨"라는 그 소절이 불리기도 했습니다. 

주세페 베르디의 <나부코>가 p99에 소개됩니다. 한국인들은 <나부코>는 몰라도 아마 작중 아리아인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겠습니다. p109에 나오는 대로 이 곡은 <나부코>를 넘어 베르디 작품 세계 전체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책은 각 오페라 작품 중 메인 아리아들의 리스트를 25개 꼭지들 끝에 매번 따로 정리해 줍니다. 그런데 유독 "Va pensiero"만 가사 소개가 빠져서 좀 아쉬웠습니다. 일본이나 한국에서만 이 곡 제목을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번역하며 유럽에서는 그냥 "가라, 생각이여"라고 할 뿐입니다. 

<포기와 베스>는 "랩소디 인 블루"로 유명한 20세기 작곡가 조지 거스윈의 작품이라서 많은 이들이 오페라가 아닌 뮤지컬로도 오인하지만 책에 가사 소개에서도 알 수 있듯 영어로 쓰인 오페라 형식입니다. 이 작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아리아는 역시 우리 모두가 아는, 캐슬린 배틀이나 엘라 피츠제럴드 버전으로 많이 들은 <써머타임(p113)>입니다. 이 오페라는 듀보제 헤이워드 부부의 희곡 원작이 있죠. 

자코모 푸치니가 <서부의 아가씨>를 작곡했다면 좀 이상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엄연히 이탈리아어로 쓰인 오페라이며 사실 <나비 부인>도 남자 주인공(...) 피커튼 중위가 미국 사람이긴 합니다. 이 작 중 유명한 아리아는 p130에 소개된 <자유의 몸이 되어 떠났다고 믿게 해 주오>이겠는데 루치아노 파바로티 베스트 음반 중 하나인 <에션셜 파바로티> 2집에도 수록되었습니다. "첼라 미 크레다~"로 시작하는 유명한 노래인데 ch'ella mi creda는 "그녀로 하여금 내가 ~하다고 믿게 하라"는 뜻이죠. 푸치니의 다른 오페라 <투란도트(이 책 p269)>의 nessun dorma도 3인칭 명령형("아무도 잠 못 들게 하라")이라서 dorma의 어미가 -a로 끝납니다. 

기독교 신약에 헤로디아의 딸이 살로메라는 기록은 없습니다만 영국인 오스카 와일드가 희곡 제목과 주인공 이름으로 쓰면서 유명해졌습니다. 책 p204에 나오듯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오페라로도 만들었는데 저자께서 아주 직설적으로 신랄하게 평가하셨듯이 작품의 요소들이 정말 충격적이죠. 가사는 당연히 독일어로 쓰였습니다. 이 책에는 독일어 오페라가 좀 많이 소개되는 느낌인데 또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가 빠질 수 없겠습니다. 이렇게 "니벨룽"이 맞는 표기이며 "니벨룽겐"은 예전에 2격 어미변화형을 이름 자체로 오해한 잘못이었죠. 

책 앞에 오페라의 구성에 대한 해설, 간단한 용어 사전이 나와 있어 독자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에필로그에서 다시 한 번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에 대해 강조하는 저자님의 철학에 대해 감탄하게 되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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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트메이커
탬진 머천트 지음, 김래경 옮김 / 위니더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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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에서 사람의 성씨는 그 사람의 직업을 따서 만들어진 게 많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흔한 성씨는 Smith인데 대장장이, 세공인 등의 뜻을 가집니다. 이 작품의 원제는 The Hatmakers인데 문자 그대로 모자 만드는 사람을 뜻하기도 하고, 성씨가 해트메이커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코델리아를 비롯해서 바다에서 실종된 그 부친 프로스페로 씨, 고모 등등 해서 모두 해트메이커들이며, 원제에는 복수 접미사 -s가 붙었으므로 "해트메이커 가문, 해트메이커씨네 사람들"이란 뜻도 됩니다.  

이 가문은 그저 흔한 모자 만드는 사람들이 아니라 왕이 쓰는 특별한 모자를 제작하는, 나라 안에서 대접깨나 받는 장인들입니다(p157을 보면 코델리아에게는 숙녀의 미덕을 가르쳐 주는 가정교사도 있습니다. 그런데 p306을 보면, 이 사람 아주 웃기는 인간이더군요). 그래서, 평민들을 눈 아래로 보통 보곤 하는 궁정의 시종들한테도 코델리아가 매우 당당하게 대하는 장면(p39)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이 소설에서 해트메이커는 그저 고급 의관을 제작하는 이들이 아니라 더 중요한 직분까지를 수행하는 이들인데 더 자세히 말하면 스포일러라서 여기까지만 적겠습니다.(나중에 망또 장인, 장갑 장인, 지팡이[cane] 장인, 신발 장인, 시계 장인 등도 나옵니다) 

p186을 보면 이 해트메이커 집안이 얼마나 유서 깊은지가 페트로넬라 대고모를 통해 설명됩니다. 튜더의 헨리 8세, 스튜어트 조의 찰스 2세, 반란자인 호국경 올리버 크롬웰 등 뭐 브리튼 섬의 전 역사와 가문의 연혁이 궤를 같이하는데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또 여기서 고전 라틴어 금언 noli nocere(p26)의 또다른 뚯이 밝혀지기도 하네요! 길드 홀(p227). 장인들은 사실 중근세를 통틀어 왕, 귀족, 성직자와 더불어 봉건제 질서를 떠받치는 기둥 중 하나였습니다. 시민 혁명이 발발하며 왕과 귀족, 성직자 계급이 파멸했고, 이어진 산업혁명이 장인층을 날려 버린 건 우연이 아닙니다. 

본문 중에도 역주가 나오지만 이 소설은 어떻게 된 게 등장인물 대부분의 이름이 서양 고전 명작에 나오는 캐릭터들에서 따왔습니다. 그래서 읽어 가며 약간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데, 예를 들면 코델리아는 (역주에 나오듯)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에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그 바른말 잘하는 셋째딸의 이름과 같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프로스페로(<템페스트>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한)의 실종이라면... 아마도 저 먼 바다 어느 섬에서 권토중래의 그날을 기다리며 은둔할 듯한 기대가 드는 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뿐 아니라 이 소설 중에는 명작이나 고사가 자주 레퍼런스되는데 예를 들면 p98 같은 곳에서 역주가 꼼꼼히 달려서 지금 이 서술이 무엇을 염두에 둔 오마주인지 일일이 설명합니다.  

왕(이나 그의 후계자)으로 태어나면 과연 행복한 삶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역사상 왜 그렇게도 많은 군주들이 그렇게나 황음무도한 극단의 쾌락에 빠져 살았을까요? 사직, 나라와 수천 생령의 안위가 자기 손 안에 달렸다고 생각하면 그 중압감이 가히 살인적일 테니, 그런 식으로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물론 국사는 전혀 돌보지 않고 주연에만 몰두한 암군 폭군의 수도 매우 많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조지 왕은 요즘 말로 ADHD인 듯도 보이고, 뭔가 정신없는 위인입니다. 실제로 19세기 초 재위했던 영국의 조지 3세가 말년에 정신이상을 일으켜 섭정(그 아들)이 들어선 적 있습니다.  

은하철도 999에서 테츠로(철이)가 영생을 찾으러 온 우주를 헤매듯이, 혹은 데 아미치스의 쿠오레에서 마르코가 엄마 찾아 대서양을 건너듯이, 코델리아는 아빠 프로스페로 씨를 찾아 바다를 뒤지고 다닙니다. "잃어버린 사람은, 찾을 수도 있다는 뜻이지." 저는 코델리아의 이 대사를 읽고, 마치 TV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고려 태조 등이 말하는 "병이 있는데 왜 약이 없단 말인가? 자네가 그러고도 의원인가?"가 생각났습니다.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지만 말하는 사람의 절박한 마음이 느껴지죠. 하긴 죽은 사람이라면 (시신 말고는) 찾을 길이 없겠으나, 아직 사망이 확정 안 된 사람이라면 그를 찾을 일말의 가능성이 남았다는 뜻도 되긴 하죠. 

중근세 서유럽은 정복왕 윌리엄이 해협을 건넌 이래 오랜 앙숙이던 영불 양국이 외교적으로 어떻게 평화를 유지하느냐에 따라 그 안녕이 좌우되었습니다. 소설 후반부에는 루이 왕(영국의 조지보다 더 수가 많은)이 등장하여 이 소동의 배후에 과연 어떤 진상이 자리했는지가 서서히 밝혀지는데, 용감한 소녀 코델리아의 의지와 지혜가 이 난국을 수습하는 과정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세상은 과연 모험을 두려워 않는 이들이 만들어가는 듯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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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 편협 - 우리는 필연적인 편협을 깨야 한다
라뮤나 지음 / 나비소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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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류가 문명 비슷한 걸 만들면서 어떤 편익을 누리고 품위와 여유를 갖추게 된 건 기록을 남기고부터이며 그때부터 책을 읽는 사람은 남들보다 앞서가는 어떤 이점을 누리게 되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저자께서는 중학교 때부터 도서부를 하셨고 담임 선생님의 영향으로 책을 가까이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확실히, 인생의 어떤 단계에서 나를 올바로 이끌어 줄 어떤 은인을 만나는 건 큰 행운입니다. 이 책은 그 담긴 모든 문장에서 저자의 책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며, 대체로는 역시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겠기에 아마 책을 읽어 나가며 전폭적으로 공감했을 터입니다. 책을 이처럼이나 찐으로 사랑하는 저자의 책을 읽는다는 자체가 공감의 행복을 선사해 주니 말입니다.   

독자인 저도 그랬지만 이 책은 그 독특한 제목에 끌려 집어든 이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p9를 보면 그에 대한 대략적인 해제가 나옵니다. "사람은, 살아 온 환경에 의해 필연적으로 편협해지기 때문에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만 이해하고 보게 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고 겪는 사람들 중 크건작건 편협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하나같이들 편협한지...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 역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편협한 인간이겠습니까. 그런데 저자에 의하면 사람이 편협해지는 건 어느 정도는 필연이라는 것이니 뭔가 안심이 됩니다. 내가 남한테 편협한 것에 대해서도 덜 미안해지고, 내 주변에 이렇게 편협한 이들이 많았던 것도 나만의 특별한 불행이 아니라는 뜻이니 말입니다. 

편협이 필연이라고 해서 아 그럼 앞으로도 마음놓고 편협해져야겠다, 나의 결론이 뭐 이렇게 나와서는 곤란합니다. 대체로 편협한 사람은, 책에도 그 말이 나왔지만 자신의 그 협소한 바운드리에 갇혀 나오지 못했다는 뜻이니, 편협은 다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해롭습니다. 헤세의 <데미안>에도 그런 말이 있지만 사람은 알의 껍질을 깨고 나와야 비로소 성장이 가능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편협을 깨고 더 큰 세계로 나오려면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합니다. 책을 읽으면 기쁘게 나의 성장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과 인격을 가다듬은 사람은 벌써 대화하기가 편합니다. 조금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발끈해하거나 거칠게 소통의 문을 닫아버리는 사람은, 책을 많이 읽고 수양이 된 사람 중에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과연 진짜인가?(p103)" 몽테뉴는 Que sais-je?(내가 무엇을 안단 말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끊임없이 자성과 정진을 시도했습니다. 내 머리 안에 이미 그 뿌리가 깊은 편협이 도사리고 있으니 이후에 들어온 모든 지식과 관점도 그에 의해 편협해지고 왜곡된 것일 수 있습니다.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은 이렇게 먼저 반성의 초점이 자신을 향할 줄 압니다. 반면, 독서가 부족한 사람은 내 잘못은 생각도 않고 남을 향한 손가락질에만 여념이 없습니다. 저자는 책 속에서 무엇이 본질인지를 가리는 노력의 예로 해방직후의 농지개혁(p105)을 듭니다.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원칙 하에 단행된 농지개혁은 대체로 소작농들애게 만족을 주었으며 아마도 이 덕분에 한국전쟁 시 박헌영의 최초 예측이 빗나가는 결과를 낳았지 싶습니다. 또 저자는 인도처럼 제조업에의 이행이 늦지 않았던 것도 이 영향이 컸다고 말씀하시는데 이 대목에선 개인적으로 살짝 고개가 갸웃해지기도 했네요. 

저자는 p156 같은 곳에서 현재를 "감정의 시대, 눈물의 시대"라고 규정합니다. 현재는 그저 계층에 불과했던 것이 점점 고착화하면서 계급으로 변해 가고, 이제 어떤 노력도 효과가 없어지는 지경까지 가면서 "피의 시대(타고난 혈통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됨)"가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땀의 시대에는 개인이 자기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성취가 가능했다면 이제는 그 기회의 문이 닫혀간다는 거죠. 더군다나 AI라는 건 한때 대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사람의 정신적 노고를 더 높은 효율로 대신하는 도구이니 이 기회가 줄어드는 게 너무도 당연합니다. 이제 그럼 흙수저는 낙오와 도태의 그늘에 주저앉아 피눈물만 흘려야 할까요?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AI가 어떤 경우에도 흉내내지 못하는 창의성, 비선형(non-linear) 요소는 인간의 감정 안에 농축되었다는 것입니다. 계산적 지성의 정밀성을 다른 차원에서 뛰어넘을 수 있는 이 감정에 주목하는 날, 닫힌 줄만 알았던 기회는 다시 열리고 말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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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을 위한 축구 교실
오수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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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욘 올슨은 참 따분한 인생을 사는 사람 같습니다. p47을 보면 체격도 좋고 잘생긴 편이라고 합니다만 고작 유통기한이 지난 폐기 음식이나 받아서 감지덕지하는 신세(p8)라니 처량할 뿐입니다. 남이사 여자하고 즐기든 말든 뭔 상관인지 공연히 의심이나 해 대는 브루스 워커 같은 사람 눈치나 보는 소심함도 안쓰럽습니다. 이런 올슨에게 무슨 낙이 있다면 낚시하기, TV 보기 등이었는데 그날따라 유독 수상기가 잘 작동하지 않던 건 알고보니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외계인... 언제나 이런 소설에서 우리를 느닷 찾아와 무슨 제안 같은 걸 하는 외계인들은 우리 지구인들보다 우월한 수준의 문명을 가진 이들입니다. 하긴 우리와 비슷하거나 못했다면 여기 지구까지 오지도 못했겠지만 말입니다. 또 이들 외계인들은 우리의 한계나 특성을 손바닥보듯 훤히 파악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이 역시도 우리보다 우월하기에 가능했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지구인의 장점과 개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활동과 문화는 "축구"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에게 축구 시합을 제의합니다. 실력 차이가 너무 날 것을 고려하여, 지구인 시합 신청자들(팀)한테 수준도 맞춰 주겠다고까지 합니다. 

남의 선의를 함부로 의심하는 사람은 대개 꼬였다는 평가를 듣거나, 아니면 마음에 열등감이 자리해서 그러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재미있는 대목은, 외계인들이 저런 제안을 하자 뜻하지 않은 횡재를 할 기회라며 설레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니 이건 뭔가 다른 검은 속이 있을 수 있다며 음모론부터 꺼내드는 이들이 또 나온다는 점입니다. 생김새만큼이나 성격도 인생관도 천차만별인 동물이 바로 인간인데, 한 가지 반응으로 대세가 바로 형성되지 않고 이처럼 중구난방으로 의견이 갈린다는 게 또 흥미롭죠. 하긴 1980년대 TV 드라마 <V>에서도 처음에는 외계인들이 선한 명분을 내걸고 접근하다가 기어이 더러운 본색을 드러내기는 합니다. 

축구는 확실히 팀원들의 한 가지 자질만 뛰어나서는 승리가 어려운 종목이기는 합니다. 일단 남미인들처럼 개인기도 빼어나야 하며, 유럽인들처럼 체력과 체격 면에서도 강점을 갖춰야 합니다. 그러나 단체 경기인 만큼 전술에 대한 이해가 팀원들 사이에 철저히 공유되어야 하며 내가 특정 동작을 할 때 다른 동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해 치밀하게, 신속하게 수시로 판단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래서 강팀은 복합적으로, 총체적으로 강한 것이며 그 강점을 약팀이 쉽게 벤치마킹할 수 없습니다. 외계인들이, 많고 많은 스포츠 종목 중 하필이면 축구를 고른 건 그 나름 탁월한 안목입니다. "저놈들이 축구를 더 잘할지는 모르지만, 축구를 만든 건 우리야. 축구는 우리 거라고.(p245)." 

욘 올슨은 장래가 촉망되던 선수였으나 무릎 부상 때문에 꿈을 접은 아픔이 있습니다. 몇 년 전 SBS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도 백승수(남궁민 扮)의 동생 백영수가, 구타로 취약해진 허리를 경기 중 다치는 바람에 하반신 마비가 되고 이후 뛰어난 통계학 실력을 바탕으로 야구단 전력분석원이 된다는 설정이 있었습니다. 또 1984년 로버트 래드퍼드 주연 영화 <내츄럴>에도 젊은시절 불의의 사고로 운동을 접었다가 늙은 나이에 다시 그라운드에 선다는 내용이 전개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욘 올슨, 가끔 자기 이름을 욜 온슨으로 잘못 발음하기도 하는(스누퍼리즘?) 약간 빈 데가 있어 보이는 이는 부상 후유증 때문에 무릎이 아파 이제는 일반인 수준으로 뛰기조차 힘든 형편입니다. 외계인 덕분에 축구로 갑자기 팔자를 고칠 기회가 열린 지구촌 분위기에 자극된 그는, 선수가 아니라면 코치로 제2의 인생을 열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습니다. 전단지를 돌려 축구 교실을 연 그에게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찾아오고(예를 들면 재클린은 딸을 찾는 게 목적입니다. p298), 마치 <외인구단>의 손병호 감독처럼 올슨은 그들에게 축구로 새 활력을 여는 보람찬 작업에 열중합니다. 은수, 재클린, 라마 등의 여성 수강생들이 소통하는 장면에서는 1992년 영화 <그들만의 리그>가 떠오르기도 했네요. 

어떤 팀이든 아무리 실력 좋은 소수를 확보했다 해도 부상 등 돌발변수에 대비하여 후보가 어느 정도로는 받쳐 줘야 합니다. 과거 한국 프로야구 출범 초창기에는 해태 타이거즈가 아슬아슬하게 엘리트 선발 멤버로만 팀을 꾸려갔다고는 하나 이는 예외적 현상일 뿐이죠. p170을 보면 올슨 코치의 팀(?)은 확실히 뎁스(depth)라는 게 부족합니다. 그렇다고 실력이 좋기나 하냐면 그것도 전혀 아니고, 돈이 없어 변변한 훈련장도 마련 못 한 채 고작 버려진 뱀밭에서나 뛰어다니는 판이니 이 사람들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어떤 기적이 필요한 판입니다. 올슨의 무릎이 갑자기 씻은 듯 낫는다든가 말이죠. 

공은 둥급니다. 베켄바워는 강한 팀이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팀이 강팀이라고 했습니다. 축구에서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룰이 오프사이드 규칙입니다. 우연과 우연이 겹치고 쌓이면 팀 올슨에 어떤 기적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일은 기적 그 다음에 당사자들이 순수했던 초심을 유지하느냐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건 돈이나 권력이나 부질없는 명예 같은 게 아니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본연의 착한 영혼일 테니 말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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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쿨 중국어 말하기 핵심패턴 301 - 회화 패턴 301句만 알면 입이 저절로 트인다!, 개정판
윤주희.시원스쿨 중국어연구소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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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도 그렇고 단시간에 해당 언어의 네이티브와 어느 정도 능숙하게 대화하고 싶으면 패턴을 내 몸에 배게 하는 방법이 그나마 가장 효과적인 듯합니다. 영어도 대략 고1, 2학기 정도부터 문형이라는 걸 집중적으로 학습하며, 이 기본 얼개가 습관화하면 거거에다가 단어만 모듈식으로 바꿔 끼우면 되므로 아주 편합니다. 이 책에서는 301구(句)의 핵심 유형이 소개되는데 음원도 따로 제공되고 편집도 깔끔해서 공부가 잘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중국어는 적어도 회화에서는, 한국어와는 달리 조사(토씨)가 거의 없고, 영어의 be 동사처럼 계사의 쓰임도 드뭅니다(있긴 하지만). p33을 보면 pattern012로 (A) 多 가 제시되는데, "(A)가 많아"라는 뜻이 간단하게 나옵니다. 이, 가 따위가 없고, is, are 같은 것도 번거롭게 붙지 않아 좋습니다. 고립어의 특징이기도 하고, 외국인 입장에서는 직관적이라서 너무 좋습니다. 

그렇다고, 일상에서의 대화가 모두 이런 단순한 패턴에 따르기만 하는 건 아니고, 페이지 아래 02 미니 회화 연습을 보면 我们班也多라는 예문도 나옵니다. 们은 한국식(혹은 정체자라면) (门, 門 계열이 다 그렇지만) 們이라고 씁니다. 也가 여기서는 우리말의 조사 비슷한 구실을 하는데, 정확하게는 들어가도 안 들어가도 그만인, 어기(語氣)를 나타내는 보조사이므로 역시 좀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저 문장의 뜻은 "우리 반도 많아."이며, 그 발음도 교재에 병음으로 일일이 나옵니다. 물론 제대로된 학습을 위해, 시원 홈피에서 음원을 다운받아 듣고 따라해 봐야 합니다. 

p85를 보면 (A) 希望~ 이라는 pattern059가 나옵니다. A가 ~하기를 바란다는 뜻인데, 어순에 특히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A는 여기에서 무엇을 직접 희망하는 주체이며, 희망의 대상이 되는 동작의 주어(즉 의미상의 목적어)는 따로 있습니다. 같은 페이지의 예문을 보면, 我希望你来가 나오며 그 뜻은 "나는 네가 오길 바라."입니다. 2인칭 단수 대명사 你는, 한국식 고전 한문에서는 爾(이)라고 썼죠. 문장 전체 주어가 생략될 때에는, 맥락에 비추어 쉽게 짐작할 수 있거나 1인칭 나(我)인 경우입니다. 아래 미니회화연습에서는 我也很希望去韩国이란 문장이 나오는데 여기서도 也는 어기를 나타내는(동일) 보조사이며("나도") 이럴 때에는 주어가 생략되기 힘듭니다. 

p121을 보면 值得~이라는 패턴091이 나옵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이 패턴 뒤에는 반드시 동사가 나온다는 점이며, 그 뜻은 "~할 가치가 있다"입니다. 值는 정체자로는 價(가)와 같습니다. 미니회화연습에서는 这部电影值得看吗라는 문장이 제시됩니다. 这는, 중국어 발음으로는 [저]에 가깝지만 뜻은 "이(this)"입니다. 部는 量詞(양사)이며, 영화나 서적 뒤에 단위 비슷하게 붙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냥 这电影이라고 한국식으로 말하면 바람직하지 않죠. 电影이 "영화"입니다. 

p188, p189을 보면 이른바 복합(2형식) 방향보어가 설명됩니다. 동사+上来, 동사+下来인데, 그 뜻은 "~으로 올라와, ~으로 내려와"입니다. 방향의 목적이 되는 명사가 上(또는 下)과 来 사이에 온다는 점도 특이합니다. 예를 보면 上舞台来에서, 上과 来 사이에 舞台(무대)가 들어가는 식입니다. 물론 뜻은 "무대로 올라와!"가 되죠. 붙여쓰기도 얼마든지 가능해서 p189를 보면 櫻花落下来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p261을 보면 pattern201로 从(A)到(B)가 나옵니다. 뜻은 "A부터 B까지 ~하다"라고 교재에 나옵니다. 从는 우리 한국인들 눈에 익은 정자체로 쓰면 從(종)입니다. 책에는 从今天到后天我会在中国이라는 예문이 나오는데, 패턴만 눈에 익으면 뜻이 바로 이해되는 아주 평이한 글입니다. 중국어에는 띄어쓰기가 없으므로 그 점만 유의하면 되겠습니다. 

책이 아주 쉽게 서술되었으므로 초심자가 따라하기에 부담이 없습니다. 정 어려운 분들은 저자 직강도 무료로 제공되므로 도움을 받으면 되겠습니다. 

*시원스쿨에서 제공한 교재를 공부하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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