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승생오름, 자연을 걷다
김은미 외 지음, 송유진 그림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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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란, 산을 가리키는 제주 방언이라고 사전에 나옵니다. 어승생은 한자로 御乘生이라 쓰는데, 한자가 표시하는 뜻 그대로 御(어), 임금이, 乘(승), 타는, 生(생), 태어나는, 즉 임금이 타게끔 진상되는 말의 산지라는 의미로 보통은 이해들을 합니다. 그러나 p64에 나오듯, 이는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며 현재의 어승생오름에 정확히 해당하는 지역에서 정말로 어승마가 사육되었다는 증거는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물이 좋다"는 뜻의 어스새이라는 몽골어가 어원이라거나, 적어도 물과 관련된 지명이리라는 추측이 유력합니다. 독자들은 이 책 제목(혹은 어승생이라는 지명)을 처음 접했을 때 이 말이 한자어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처음부터 고유어라고 느낌이 바로 왔을까요? 

책은 거의 신비롭게까지 보이는 제주 현지의 사진으로 가득하며, 한편으로 제주도 특유의 토질, 지형에 대한 과학적이면서도 친절한 설명이 실려, 평소에 왜 제주도만 저렇게 독특한 풍광인지 궁금했던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p18을 보면, 미국의 50번째 주인 하와이와 제주도를 비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둘 다 화산섬인데 규모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으며, 일단 면적만으로도 하와이가 15배 정도 큽니다. 또 하와이는 태평양 한복판에 솟아오른 섬이라서 덩치가 큰 반면, 제주도는 마지막 빙하기인 2만 1천년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와 그대로 연결되어 걸어다닐 수 있었으리라는 게 유력한 학설(p20)입니다. 

어승생오름 정상은 해발고도 1169m라고 합니다(p85). 참고로 도봉산이 740m 정도이며, 북한산은 837m, 남산이 270m, 관악산이 620m쯤 됩니다. 제주도 자체가 화산섬이니 만큼 어승생오름도 마치 오목한 사발 모양의 분화구가 그 본체를 이룬다고 나옵니다. p90에 나오는 그림27을 보면 어승생오름 정상에서 내려다본 Y계곡의 전경이 나오는데 온통 푸르른 색채에다 가운데가 옴폭 패인 기다란 협곡, 그러면서도 그 지세가 험악하지 않고 온건한 모양새라서 역시 한반도의 소속임을 누가 쉽사리 부인할 수 없는 특징이라고 하겠습니다. 

"화산 활동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그냥 지나가는 시간은 없다(p92)." 그렇습니다. 시간은 하릴없이 지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게 곳곳에 그 흔적을 남깁니다.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고도 하지만 아주 미세한 변화가 축적되고 또 축적되어 돌연변이의 동력을 쌓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지형의 풍화에다, 현재의 극히 짧은 시간이 뭔 깊은 영향을 남길까 싶어도, 저자님 말대로 세월은 어떻게든, 바람으로 화산재를 옮기든 물의 흐름에 의해 바위를 깎든, 그렇게 작고 작은 변화가 모이고 모여 오늘의 기이하게 아름다운 풍경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멸종할 때 인류 문명도 타격을 크게 입으리라고 내다본 적 있습니다. 허나 p122에 나오듯 제주도에는 이런 중매쟁이 노릇을 해 줄 매개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얼핏 보아 잡초처럼 별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제주조릿대와 참억새가 곳곳에 자라는데, 이들 역시 제주 생태계에서 고유의 하는 일이 있으므로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다고 나옵니다. 이들 역시 수 만 년 동안 제주 생태 순환의 한 고리를 이루고 한몫을 행해 왔으므로 어찌 감히 짧은 객으로 머무는 인간이 그 쓸모를 논하겠습니까. 

아무리 남쪽이라 해도 제주도의 겨울, 특히 어승생오름에서는 추위가 막심합니다. 세 계절을 제주에서 머무는 굴뚝새도 겨울에는 다른 곳으로 떠나는 듯하다고 책에서는 말합니다(p144). 동물 중에는 오소리가 현지의 명물인데 이 역시 겨울에는 아지트 안에 파묻혀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완전히 동면 상태에 들어가지는 않고 간간이 밖으로 나온다고 하네요. 어승생오름은 열매가 많이 열려 새들의 맛집(p155)이기도 한데 이 중 대표는 직박구리라고 합니다. 같은 페이지 그림 46에 직박구리 일러스트가 나옵니다. 이 책에는 선명한 사진뿐 아니라 미려한 일러스트가 많습니다. p167의 그림49에도 귀여운 청개구리가 나오네요. 

사람은 흔히 사회적 동물이라고도 합니다. 개인이 혼자 힘만으로는 살 수 없고, 서로가 알맞은 역할을 맡아 협력을 해야 생존도 도모하고 풍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제주도의 각 생물은 기묘하게도,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고 과학적 친연도 매우 희박하지만, 서로 이해관계(?)가 얽히고얽혀 치밀한 의존, 공생, 나아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람, 더군다나 근래 외지인이 부쩍 늘어난 구조에서 인간들이란, 공연히 이 조화를 깨뜨리는 불청객 노릇을 하는 듯 보입니다. 이 책을 읽고, 무엇이 우리네 누리에서 자연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갈 길인지 깊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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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래보고서 2024-2034 - 모든 산업을 지배할 인공일반지능이 온다
박영숙.제롬 글렌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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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숙 박사님과 제롬 글렌 대표 공저의 세계미래보고서가 올해에도 나왔습니다. 이 책의 핵심 키워드는 인공일반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이며, 책의 규정(p11)에 따르면 생성형 인공지능의 다음 단계라고 합니다. 저자들은 여태 이 세계미래보고서 시리즈가 다뤄 온 갖가지 신기술들이 결국은 모두 AI로 수렴한다고까지 이 책 서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올해판은 그간 긴 길을 걸어 온 시리즈에서 하나의 소결, 중간정산 역할을 한다고도 평가할 수 있습니다. State of the future가 영어 타이틀인데, 원래 state라는 단어 자체가 따로 수식어가 없어도 첨단이라는 뜻을 품기도 합니다. 

인공지능이 그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자 많은 이들이 우려를 드러냈습니다. 그 근원은, 영화 <터미네이터> 같은 컨텐츠에서 익히 묘사했던 대로, 월등한 기계지능이 많은 허점을 지닌 인간의 지성을 지배하려 들지 않겠냐는 상식적인 공포감이었습니다. 이제 강인공지능(책에 따르면, AGI와 같은 의미)이 발전하니, 많은 이들이 우려 반 호기심 반 갖가지 질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은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질문 30개를 추려 제시하고, 각계 권위자, 전문가들의 답변을 깔끔하게 발췌하여 서문 다음에 정리했습니다. 아마도 일반 독자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이슈까지도 선제적으로 제기하였기에, 그에 따른 답변이 설령 아주 구체적이지는 않더라도 현 단계에서는 상당히 만족할 만한 내용이 서술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p47을 보면 엘리에저 유드코프스키 박사, 통계적 결정이론의 세계적 대가가 아주 솔직하게 자기 의견을 밝힙니다. 가치정렬을 어떻게 달성하겠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모르겠다. 이제 그만둬야 한다"고 다소 무책임하게 들릴 만큼 간단하고 분명한 답을 내놓습니다. 이런 미래 진단류의 서적에서 보통 볼 수 있는 장황하고 현학적인 얼버무림보다는, 이렇게 차라리 모르면 모르겠다고 우리가 솔직하게 현황을 알 수 있는 답변이 낫다는 건 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인공지능에 대해 부정적인 독자라면 이 답변에 환호할 것이고, 긍정적인 독자였다면 현 단계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더 정확하게 이슈 포커싱을 할 수 있어서 좋을 듯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에 나온 전문가들의 답변들은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오히려 더 흥미롭습니다. 판단은 독자의 지성으로 알아서 도출해야 합니다. 

모두 6챕터로 구성된 책은 p97에서부터서야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할 만한 번역 이슈는 p131에 나옵니다. 번역기는 1990년대 중반부터 디지털 혁명의 가속화 추세와 함께 많은 이들이 거론하고 시제품이 여럿 나왔으나 그 성능이라는 게 지금 우리가 보는 정도이며 사실 냉정하게 말해 별 발전도 없었습니다. 독일의 딥엘이라는 제품은 확실히 기존의 서비스와 다른 면이 있는 듯하나 그 귀추는 더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에서는 고대어 번역도 논하지만 고대어는 대체로 오래 전에 발전을 멈춘 언어이며 이들은 대등한 언어간의 호환보다는 암호 해석의 관점에서 다루는 게 맞지 않냐는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미 뉴스의 경우 AI "기자"들이 많이들 작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편집, 전달의 기계적인 수행을 두고 과연 뉴스 작성이라고나 부를 수 있겠는지 p170에서 아주 직설적으로 꼬집습니다. 뉴스라는 건 저널리스트가 때로는 목숨을 걸고 현장에 찾아가서 자신의 오감으로 포착한 실황을, 자신의 영혼을 투사하여 시청자와 독자에게 전달하는 결과물입니다. 기계가 만드는 뉴스라니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 아니겠습니까. 앞서 말했듯이 생성형 AI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기계 기자들이 있었는데, 오히려 챗GPT 같은 게 나온 지금, AI 기자는 신뢰도 문제 때문에 그 존립에 대해 더 회의적인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다만 AGI가 워낙 게임체인저이다 보니, 책은 이것의 등장 이후에는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유보적 결론이긴 합니다. 

신약의 발견은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하며 이 과정에 투입되는 인건비까지 감안하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금액이 소요됩니다. p200에는 할리신이라는 신약의 발견 과정을 통해, AI가 이제 신약 개발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독자에게 잘 보여 줍니다. "10년 걸릴 일을 단 며칠로 줄였다." 사실 AI에 대해 터미네이터 등의 스카이넷이 너무 나쁜 이미지를 미리 심어 준 탓에(AI에 대해서는 터미네이터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SF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다뤄 오긴 했는데 항상 나쁜 포지션이었습니다. 2001년의 스필버그 영화는 예외) 우리가 막연한 거부감을 갖습니다만 이처럼 의약학 발전에 기여하는 양상을 보면 생각이 싹 달라지죠. 또 p254에 보면 폐플라스틱 처리에도 AI가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데 이게 무슨 소리냐면 알킬방향족 전환에 필요한 촉매의 산-금속 최적배합비율을 찾는 시간을 그만큼 단축했다는 뜻입니다. 두 사례는 예거(例擧)의 맥락이 같습니다. 

지난세기 질소비료의 발명으로 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난제였던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한 듯 보였습니다. 이후 GMO라는 방식이 또 등정했으나 두 방법 모두 건강에 끼치는 영향이라는 점에서 많은 우려를 낳습니다. p303에서는 동물 면역 체계를 식물에 도입해 그 수확량을 늘린다(병충해를 줄임으로써)는 아이디어가 어떻게 현실화하는지가 재미있게 서술됩니다. 동물도 그렇지만 식물의 진화 역사는 병충해와의 투쟁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인데, 실제로 지금도 각종 식물들이 천적과도 같은 병충해를 만나 멸종의 위기에 몰리기도 합니다. 이 역시도 특정 단백질 구조를 변화시켜 동식물 하이브리드 분자 구조를 만드는 과정에서 AI의 연산 능력이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겁니다.  

오랜 시간 동안 이론적 가능성으로만 운위되었을 뿐 현실에서 발견이 되지 못한 게 반물질이라든가 빛의 속도에 근접하는 과제 등입니다. 우리가 <평행우주> 같은 베스트셀러를 통해 잘 아는 미치오 가쿠 교수가 p343에 언급됩니다. 핵융합 램제트 엔진도 그의 아이디어인데, DRACO라 명명된 이 프로젝트에서도 인공지능은 수없이 많이 발생할 시행착오를 획기적으로 줄여 줍니다. 뿐만 아니라 각종 규범의 문제와 웰빙 이슈를 해결함으로써 AI는 인류의 삶의 질마저 개선시키는 순기능이 더 많다는 것이니 두려움 없이 이 뉴 프런티어를 개척하려는 의지와 지혜만이 인류에게 밝은 미래를 담보할 수 있겠습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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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노멀 - 10년 후에도 변하지 않을 글로벌 트렌드 HOT 30
로히트 바르가바.헨리 쿠티뉴-메이슨 지음, 김정혜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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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라는 건 본래 자주 변해서 트렌드입니다. 10년 후에는 한때 아무리 핫했던 트렌드라 해도 촌스럽게 보이거나 아예 잊혀지는 게 보통입니다. 그러나 어떤 흐름은 쉽게 변하지 않고 하나의 새로운 표준을 형성합니다. 새롭게 자리를 잡은 하나의 표준을 "뉴 노멀(p13)"이라 부르는데, 이 책에서는 10년 후의 미래에 도 여전히 사람들을 사로잡을 30대 트렌드에 대해 설명합니다.  

예전에 우리나라 싸o월드 같은 곳에서도 그랬지만 소셜 미디어라는 게 온라인상의 친교라는 본연의 목적을 떠나 과시와 허세의 장이 되곤 하는 게 현대의 큰 병폐입니다. p30에도 나오듯이 해시태그 #blessed는 이제 가상공간에서는 원의를 잃고 비꼬는 의미로 쓰이기 일쑤입니다. p31에는 아예 "온라인 프레즌스"라는 개념이 공식화하다시피 하여, 현대인들이 그것도 인생에서 하나의 낙으로 삼고 가짜 정체성을 열심히 가꿔 나가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프로테우스 효과"라는 용어도 우리 독자들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지식 체계를 배워나갈 때 이걸 공부의 대상으로 삼으면 능률도 안 오르고 그 과정이 무척이나 괴롭습니다. 반면 같은 사항이라 해도 게임이나 놀이의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익히게 하면 아이는 그게 공부인지 뭔지도 모르는 사이에 지식과 원리를 터득하게 됩니다. 책에서는 이처럼 공부를 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는 새 그 성과가 냄새처럼 몸에 배게 되는 효과를 두고 "스텔싱"이라 부르며 그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로블록스 社가 개발한 여러 프로그램을 소개합니다. 

p100에 나오듯이 퓨처 노멀이 되려면 어느 정도는 표준적인 현대인들이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류라야 하겠습니다. 또 "신기술과 기술 혁신의 대부분은, 고가 제품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른바 럭셔리 소비자를 타깃으로 시작하며, 이는 시제품을 개발하는 초창기의 반복(iteration) 과정에 엄청난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이라는 구절에도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건강과 웰빙(well-being)은 아직까지는 삶의 부차적인 가치에 불과하지만, 노령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여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할 미래에는 이 사항이 소비의 으뜸 목표가 될 사정을 염두에 두고 기업들은 장기 플랜을 짤 필요가 있습니다.    

삼국연의에 보면 이른바 칠보작시라 하여 형 조비가 동생 조식에게 무리한 미션을 내지만 조식은 오히려 천재적인 시작(詩作) 능력을 발휘하여 위기를 모면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중근세 궁정에서는 마치 오늘날의 힙합 래퍼들처럼 즉흥적으로 라임도 의미도 모두 갖춘 운문을 창작하는 문예인들이 총애를 받았는데, 그런 천재들에게도 쉽지 않을 3초 만의 창작이라는 게 현대의 AI한테는 가능합니다. p124에 그 좋은 예 하나가 소개되는데, 다만 저는 이 예가 진정 생성형 AI의 창작력을 증명하려면, 질문에 버글스의 "비디오 킬 더 레디오 스타"를 언급하지 말고 AI 시대의 위력을 표현하는 lyrics를 만들라"고만 했을 때 저 노래를 모티브로 삼은 저런 답안이 나왔다면 모를까, 이미 힌트를 다 주고서는 그렇게까지 감탄할 내용은 아니라는 생각도 살짝 들었습니다. 

이번 코로나 유행기에도 미국에서는 트럭 운전사가 부족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자율주행이라는 게 물론 공유경제 메가트렌드와 모바일 네트워킹 기술의 혁신 덕분에 가시화한 목표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인력난을 근본적으로 타개하고 순전히 vehicle만 기계적으로 돌려서 자원 운송을 이루려는 보다 낮은 레벨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스웨덴의 스타트업 아인라이드(p139)가 이 자율주행 섹터 중 운송산업의 발달을 상징하는 좋은 사례로 책에 제시됩니다.  

다양성 이니셔티브라는 게 가장 침투하기 어려운 영역 중 하나가 아마도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패션 산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즘은 살찐 모델, 비(非) 백인 들도 런웨이에 자주 서는데 아름다움이라는 게 종전처럼 백인 위주로 짜여진 어떤 고정된 표준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개성, 취향, 배경을 지닌 모든 사람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는 어떤 합의 때문입니다. p166에 나오는 이른바 비콥(B corporation) 인증이라는 시스템도 흥미로웠습니다. 이런 비콥 인증의 핵심적인 기능은, 소비자로 하여금 죄책감을 덜어낸 소비를 가능케 하려는 보다 차원 높은 기업 전략으로도 평가됩니다. 

이제 기업이란, 지역 사회와 상생하며 성장하는 산업 단위로 정착해야 소비자들의 환영을 받을 수 있습니다. NFT라는 것도, 어떤 특별한 이벤트나 사람들이 길이 가슴에 남길 만한 가치와 결합할 때 가치가 급상승할 수 있으며 그 좋은 예가 p222에 나옵니다. 정부라는 걸 무작정 "부르주아들의 위원회"로 보아 불신의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겠으나 굿 거버넌스라는 가치 실현을 통해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의 장으로 재창조할 수도 있습니다. 

질소비료의 발명 이래 인류는 기아의 공포로부터는 해방되었으나 각종 부작용과 유해 물질의 위협으로부터는 아직 자유롭지 못합니다. p269 이하에는 청정농업, 즉 화학비료라든가 GMO 등을 쓰지 않고 소비자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신개념 농업이 소개됩니다. 이들 농업의 특징은 스마트 도시의 순기능들과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비용도 절감하고 시민들과의 정서적 유대까지 증진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미래는 현재와 단절되어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혁신가들, 몽상가들, 이상주의자들이 모여 빚어가는 게 미래이며 또 미래의 새로운 표준입니다. 변치 않는 건 그 가치가 인간 심성의 어떤 깊은 곳에 호소하는 근본의 힘을 지니기 때문이며 그것을 정확히 캐치하는 게 살아남고 번영하는 기업의 인사이트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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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헌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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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태국은 매력적인 관광지로 꼽히는 나라입니다. 불교 문화를 바탕으로 한 오랜 역사를 지닌 왕국이며, 근현대에도 서구 열강에 의해 식민지로 침노된 적이 없고 독립을 유지하면서도 대외 개방을 유지했기에 세련된 관광 인프라도 완비한 나라인데다 기후 조건, 풍광도 독보적이기 때문이겠습니다. 프렌즈 시리즈의 대들보안 안진헌 필자의 노련한 안목과 터치로 짜였기에 이 태국 편은 여행자에게 더욱 큰 도움이 됩니다. 

입국 카드를 아직도 작성해야 하는 나라도 있지만 p50에 나오듯이 태국은 이제 입국 카드를 작성할 필요가 없습니다. p51에 나오듯이 아무래도 스마트폰 심카드는 현지 공항 통신사 데스크 같은 데서 구입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보통은 직항로로 태국에 들어가겠습니다만 간혹 인접국에 머물다가 육로로 입국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주의해야 할 점들을 p53에 잘 정리해 두어서 독자가 참조하기 편합니다. 안진헌 필자가 쓴 책들은 이런 점들이 세심하게 배려되어서 좋았습니다. 

끄룽텝은 현지에서 방콕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책에 설명이 나오지만 이 말 뜻은 "천사의 도시"인데 미국의 LA와도 같습니다. 방콕의 어트랙션이 p69 이하에 잘 소개되는데 제가 올해 2월에 리뷰하기도 한 프렌즈 방콕 편에 이 도시 하나만을 주제로 삼아 자세히 소개가 되었고 같은 안진헌 저자의 작품이니 그 책도 참조하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태국 전체를 여행하려는 이들에게 더 최적화한 편제이니 말입니다.  

방콕은 국제도시이니만큼 쇼핑 섹션도 크게 발달해 있습니다. 프렌즈 방콕 편에서도 상세히 설명되었지만 이 책에도 그랜드 에라완 호텔이 p122에 소개되는데 여기서는 독자 항목은 아니고 에라완 사원(shrine)을 설명하며 잠깐 같이 언급되는 정도입니다. 최근 중국과 태국은 관광 등 전방위적으로 산업적 유대를 늘리며 밀착하는 추세인데, p134에 차이나타운이 소개됩니다. 뭔 태국까지 가서 차이나타운 구경이냐고 할 수 있어도 방콕의 차이나타운은 좀 다른 풍취가 있기 때문에 저는 한번 가 보는 걸 추천합니다. 

p151에 오닉스를 비롯하여 방콕의 이름난 댄스 클럽들이 소개되는데 슬리퍼, 반바지 차림은 입장을 막는다는 정보가 책이 나오는데요. 저 개인적으로는 안 그런 곳도 있었다고 덧붙이고 싶지만 안진헌 저자님의 말씀이 더 정확하겠기에 자제하겠습니다. "어보브 일레븐"이라는 루프탑 레스토랑도 괜찮았던 기억입니다. 방콕에서 북쪽으로 좀 더 가면 아유타야가 나오는데 우리가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서도 배운 게 동남아시아 중세 아유타야 왕국이었습니다. p188에 "마라꺼"라는 가성비 레스토랑이 소개되는데 저 개인적으로 여기도 좋았습니다. 

태국 중부, 동부 해안까지는 프렌즈 방콕 편에서 어느 정도 다뤘지만 p271 이하에는 태국의 북동부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이 태국 편만의 장점이 드러난다고 개인적으로 느꼈습니다. 카오 야이 국립공원은 1962년에 태국에서 최초 지정된 국립공원이라고 책에 나옵니다. 역시 관광대국이다 보니 이런 제도적 뒷받침도 이른 시기부터 이뤄졌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농카이를 다룬 파트가 도움이 많이 되었는데, 인근 라오스로부터 육로로 접근하는 방법도 다루고, 국내 다른 여행책에서 못 본 정보, 사진, 지도가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수코타이 역시 중학교 교과서에 항목이 나왔던 역사적 정치 단위이며 현 지명이기도 합니다. 이 수코타이는 정말로 방콕에서 한참을 가야 나오는 곳인데 역사적으로 점점 남부로 정치적 중심이 이동하는 게 태국 역사의 방향성이 암시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런 고도가 보통 그렇지만 구도심이 있고 신도심이 따로 있는데 p323에도 나오지만 구도심 쪽에는 역사 공원 같은 게 잘 정비되었고, p333 이하에서 설명되는 신도심에는 식당가, 숙박 구역 같은 게 모여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트레킹 등의 목적으로 많이 찾는 치앙마이는 태국 전체에서 아주 북쪽으로 치우친 위치입니다.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여러 숙박 시설이 p407 이하에 소개되는데, 안진헌 씨 저술 여행서에서 가장 좋은 점들 중 하나가 이렇게 가성비 숙소, 무난한 곳, 럭셔리 등으로 잘 구분해서 알려 주기 때문에 예산 걱정을 해야 하는 독자들에게 특히 도움이 된다는 점입니다.    

p458에는 매싸롱이 소개되는데 책에도 나오지만 이곳은 태국이라기보다, 풍광이나 사람들 사는 모습이 거의 중국 남부 시골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입니다. 사실 태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인종적, 문화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은 나라이기도 합니다(역사적, 정치적 컨택은 적었을지 모르지만). 이런 곳에도 부티크 호텔이 있긴 한데 p470의 싸이롬쩌이가 소개되며 저자의 평가에 의하면 주인 부부께서 매우 친절하시다고 합니다. 

p495 이하에는 태국 남부의 여러 명소가 소개됩니다. 태국 남부는 본토 해안도 아름다운 곳이 많고, 요즘 한국인들도 부쩍 많이 찾는 여러 멋진 섬들이 역시 최고의 관광지 아니겠나 싶습니다. p512를 보면 꼬 팡안이 소개되는데 p516에 나오듯이 이곳 하면 사람들이 대뜸 떠올리는 게 핫린(Hat Rin)이며 이 책에도 사진과 지도가 요모조모 많이 실려서 그냥 읽기만 해도 눈이 즐거운 파트입니다. 

프렌즈 시리즈가 다 그렇듯이 책 말미에 해당 나라의 간단한 역사, 회화 표현, 경제 사정과 여행객이 주의해야 할 점 등이 알뜰하게 정리되었습니다. 이래서 프렌즈 시리즈는 그저 여행책이 아니라 인문교양서로도 읽힐 수 있는, 여행자의 멋진 컴패니언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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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트렌드 인사이트 - 일본에서 찾은 소비 비즈니스 트렌드 5
정희선 지음 / 원앤원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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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자 합의의 어두운 이면이 "잃어버린 30년"이란 암울한 결과로 나타났던 일본에서는 심지어 가성비란 뜻을 가진 "코스파"라는 유행어도 우리보다 훨씬 앞서 쓰였다(p15)고 합니다. 불황과 침체에 일찍부터 익숙해진 일본인들의 행보를 보면, 앞으로 우리도 어떻게 미래를 대비해야 할지, 개인이나 (그런 개인들의 의사 결정, 취향 변화들을 예측하고 상품, 서비스를 내놓아야 할) 기업들이 많이 참고해야 할 바가 보이겠습니다. 또 일본은 예전같지는 않다 해도 세계 유행의 한 축을 끌고 가는 트렌드 세터 포지션이기는 하므로 그들을 향한 트렌드 분석은 여전히 유익한 작업이기는 합니다. 코스파의 어원이 된 cost perfomance라는 개념 자체는 원래부터 미국에서 쓰이긴 했습니다. 코스파 뿐 아니라 타이파, 스페파 등 시간과 공간의 가성비를 따지는 개념들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합니다. 

"알코올은 싫지만 맥주는 마시고 싶어." 얼핏 들으면 모순이지만 높은 도수 주류를 꺼리고 다만 취하는 분위기 자체는 즐기고 싶은 일본 젊은 세대의 취향이라고 합니다. 책 p28을 보면 무알코올 맥주, 하이볼 등을 원래부터 대체품으로 소비하는 풍조가 있긴 했으나 최근에는 무알코올 류가 소비의 아예 메인으로 부상했다고 나옵니다. 여기에, 뱃살을 줄여 주고 기억력을 향상시킨다는 등 기능성까지 어필한 상품 라인업이 새로 등장하여, 알코올 섭취 같은 무익한, 해로운(?) 활동이 부르는 자책감도 줄이고 뭔가 생산적인 알을 했다는 만족감도 부여한다는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그전부터 공간활용은 사람들의 관심사이긴 했습니다만 요즘은 높아진 렌트, 갈수록 심해지는 도시 공간 효율화의 압박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이 투여되고 아이디어도 속출합니다. 이른바 공간의 가성비(p65)인데, 낭비되는 부분 없이 공간이 알토란 같이 쓰이면 같은 비용을 쓰고도 더 큰 만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협소 주택, 미니멀리즘 등의 키워드가 연결되는 대목에서 책에 빨려들어가듯 읽었습니다. 특히 여행가방 정도의 크기로 접을 수 있는 오토바이라면, 주차 공간 때문에 고민인 젊은 라이더(배달원)들에게 대단히 매력적이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겉멋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안 통할 수 있겠지만요. 

소통과 교유(交遊)에 있어서도 양보다는 질을 중시하는 일본의 젊은 세대는 그닥 친하지도 않은 인맥과 만나 공연히 돈과 시간을 쓰는 걸 꺼립니다. p105에는 도조라는 서비스가 소개되는데, 개별 단품이 아니라 테마를 중심으로 고르는 선물이라는 게 특이합니다. 이처럼 선물을 대신 골라 주는 서비스는 그 사회적 센스가 정말 중요할 것 같은데 개인의 맞춤형 감각 발휘도 아니고 시스템에 의해 이게 가능해진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이 선물을 고르는 과정이 그저 선택-결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고르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고 타 유저들과 소통하는 등 어떤 체험의 장, 문화 공간으로까지 발전한다는 것도 탁월했습니다. 

경기도에서 "노인"이라는 용어 대신 "선배 시민"이란 말을 쓰기로 했다는데, 고령인구가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대표적인 나라인 일본(p171)에서 이런 시니어들을 위해 어떤 상품이 나오고 서비스가 행해지는지는 우리 한국에서도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죠. 우리 나라에서도 고령 운전자들이 엑셀과 브레이크 페달을 헷갈려 교통사고를 내는 일이 잦은데, 그렇다고 "면허 반납이 답"이라며 이들을 몰아세우기만 하면 시니어들의 삶의 질이 저하돤다는 문제가 또 있습니다. 일본의 민과 관에서 시행하는 다양한 움직임, 즉 두뇌 운동을 통해 "운전 수명을 늘리는" 여러 시도들은 확실히 한국의 지자체나 회사에서 참고할 대목이 많겠습니다. 

요즘은 어느 산업, 어느 섹터나 AI의 도입과 활용이 대세입니다. 본래 미각이나 후각 관련 상품 개발에는 사람의 참여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제는 이 과정도 일일이 사람이 판정하는 게 아니라 AI가 들어가서 그 시간과 프로세스를 대폭 줄인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건 p212에 나오는 예들인데, 삿포로 社가 개발하는 츄하이(酎[희석식]+highball[칵테일])는 아예 개인의 취향까지 분석하여 맞춤형 음료 출시를 지향한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이제는 한국 식당 곳곳에서도 볼 수 있지만 로봇 서빙도 갈수록 대세가 되어가는데 일본에서는 아예 로봇이 모든 운영을 떠맡은 식당도 성업 중이라고 합니다. 한국도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만을 취급하는 무인점포가 수도권 곳곳에 늘었는데, 이게 다 로봇 운영 점포로 가는 중간단계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남겨진 음식을 효과적으로 업사이클링하는 산업들도, 비용 절감과 환경 보호라는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지향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어떤 일시적이고 변덕스러운 유행을 넘어서, 절약과 친환경이라는 시대정신을 잘 구현하는 모범적인 산업 트렌드를 관찰한 듯해서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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