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성교육을 시작합니다 - 자녀가 건강하고 행복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포괄적 성교육’
류다영 지음 / 모모북스 / 2023년 11월
평점 :
우선 이 책의 최대 미덕은, 저자분이 너무도 솔직하시다는 점이었습니다. "솔직하다"는 건 대체로 두 가지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하나는 "나의 감정상 호불호를 숨기지 않고 마구 표출한다"는 뜻일 수 있고(이 경우는 뭔가 따로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면, 대체로 "솔직하다"보다는 "경솔하다"가 어울리겠죠), 다른 하나는 "치부에 가깝거나 조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실도 격의 없이 털어놓는다"일 수 있습니다. 이봉규 박사님의 개성, 태도는 이 중 후자에 가깝습니다. 연세도 거의 육십을 바라보시는 단계인데, 이처럼 자신의 세계관, 습성, 태도에 대해 아무 가식 없이 털어놓으실 수 있다는 게 저에게는 놀라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렇게 책 속에서 털어놓고 있는 대부분의 사연이나 견해가, 저 개인적으로는 종래 거의 일일이 반감, 혹은 경멸감까지 갖고 있는 터라, 책 읽은 후 다가온 그 정체를 모를 상쾌한 독후 감상이 더욱 신기한 체험이기도 했고요.
"난 본래 그런 사람인걸? 그게 뭐 이상한가?"하는 어조로 들립니다. 그렇다고 애써 ego를 내세우는 분위기냐 하면 오히려 그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허허, 난 본래 이런 걸 어쩌겠어."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이런 한마디로 대변, 요약할 수 있는 분 같습니다. 연령 불문하고 이처럼 인격이나 스타일에 어떤 높다란 장벽을 치지 않고 사람을 대하는 분 주위에 참된 친구와 인맥이 모여들더군요. 말은 쉬워도 "편한 사람 되기"가 사회생활에서 제일 힘든 노릇이니까요.
사람은 비슷한 성향, 개성끼리 어울리는 게 보통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분이 칭찬하고 높이 평가하는 분들도, 일부에서 욕을 먹을지언정 마음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퍼스낼리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실명을 일일이 적진 않겠지만, 제가 막연히 선입견으로 갖고 있던 부정적 인상이, 이 책을 읽고 거둬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보통 와이프와 자식한테 끔찍히 잘하는 남자치고, 겉모습처럼 답없는 마초인 수가 잘 없습니다. 아내, 자녀 자랑하는 팔불출치고 악인이 대개 없습니다. 주위 눈치 보지 않고 그런 감정을 마구 드러내는 장면을 머리에 그리면서, 저 개인적으로 겪어 봤던 "잘 놀면서 술자리 분위기 띄우는 털털한 타입들"이 절로 오버랩되었습니다. 친분에 따라 다소 과장, 왜곡이야 있을 수 있지만, 책에 적혀 있는 진술들은 대체로 진정성을 띠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어 본인은 너무도 스킨십을 원하는데, 남편(이 점만 빼면 경제력으로나 좋은 부모로서나 완벽한 남자)이 한사코 마다는 부인이 있답니다. 손만 슬쩍 잡아도 흠칫 놀라며 물러서고, 그렇다고 외도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때 이봉규 박사님 말은, "그냥 이혼하고 자기를 사랑해 주는 남자와 결합하라."입니다. 이 과격한 조언(?)을 곧이곧대로 따를 분은 없겠지만, "당신의 그런 욕구와 아쉬움에는 정당성이 있다"는 진단에 큰 위안을 얻을 분들은 많을 것입니다.
듣기에 민망하다 싶은, 너무 솔직한 고백도 많았습니다. 만약 자신이 배타적으로 여성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불만을 표현한다면(솔직히 그건 무리죠), 이 정도의 관계도 이어나갈 수 없기에, 만족함을 알고(?) 현실을 인정한다는 겁니다. 매력녀는 본디 누구 하나가 독점할 수 없고, 마치 매력남, 능력남이 여러 여자를 오가는 거나 같은 이치 아니냐는 거죠. 듣기에 따라서 상당히 심각한 논란을 부를 수도 있는 이 같은 주장은, 그러나 저자의 솔직한 어조와 악의 없어 보이는 매너에 많이 중화되어 전달됩니다. 지나치게 괜찮다 싶은 여자가 내게 접근해 오면, 혹시 이거 쉐어링 아닌지 한번은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참 많은데, 서평에 일일이 적을 수 없는 게 안타깝네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성교육 시간에, "지나친 마스터베이션은 이후 이성과 정상적인 관계를 지닐 때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하나의 교조였습니다. 아마 지금 아이들은 꼭 그렇게 배우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성 담론이 많이 오픈되었으므로). 저자분은 여기에 대해, 전혀 반대되는 논리로, 제법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애인과 서로 협조하여 실습하라는 말까지 있는데, 이러면 이미 그 이름을 버려야 하는 단계가 아닐까 합니다. 성행위에서 강조하는 포인트는 "애무, 전희, 후희"입니다. 여기서 진정한 사랑이 싹트거나, 죽은 애정이 소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뒤의 파티 이야기는 모두가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 미국에서 오래 사신 분이라, 이 같은 신조가 자연스럽게 생기신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파티 문화는 또한 나이의 노소를 가릴 필요 없이 수용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건전한 교제입니다(물론 활용하기 나름입니다^^). 얼핏 들으면 거부감이 느껴질 수 있는 민감한 이슈를, 툭 터놓고 논의의 장으로 끄집어 내니 오히려 개운해지는 뒷맛, 이것이 솔직함의 미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