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에 늦은 때란 없다
표선희 지음 / 나래북.예림북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이를 비꼬아서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때"라고 하기도 합니다. 사실 아무리 늦었다고 해도, 일을 무책임하게 방치하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습니다만, 반대로 이미 데드라인이 지난 것, 괜한 헛수고만 늘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다만 책임 있는 사회인이라면, 손익의 주판알을 경멸스럽게 놀리는 것보다, 당당하게 제 본분을 마치고 심판을 기다리는 게 올바른 자세이겠습니다.

 

하물며 그 "시작"이, 공적인 업무나 타인으로부터의 위임이 아닌,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라면, 이에는 조금의 망설임이 끼어 들 필요가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우리 독자들에게 해 주는 말이, "당신의 꿈 그 실현을 위해, 인생을 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때란 없다."입니다.

 

저자는 독자에게 대단히 큰 의욕을 솟게 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호랑이가 양떼들 사이에 섞여 처음 느끼는 건, "왜 나는 저들과 다르까?" 같은 비애감이라는 거죠. 그런데 호랑이가 이후 옮아가야 할 단계가, 1) "그러니 절망하고 포기하자" 일까요, 아니면 2) "나는 저들과 다르니 다른 삶을, 그것도 지금 당장...!"이어야 할까요? 답은 자명합니다. 저자가 이 책 내내 강조하는 건, "당신은 남과 다르며, 비범하다."입니다.

 

짐 캐리의 유명한 일화가 나옵니다. 아주 보잘것없는 배우 지망생 시절,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거액의 수표를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언젠가 나는 이 수표를 은행에 가서 현금으로 바꿀 것이다." 이처럼, 성공하는 사람은 꿈을 자신의 의식 최전면에 내세우고, 자신의 일상 중 가장 중요한 일부로 만든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나도 믿지 않는 나의 꿈을, 과연 누가 인정해 주길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상상하면... >의 저자 리처드 브랜슨의 일화도 나옵니다. 그는 지금이야 우리가 다 아는 버진 그룹의 회장이지만, 젊어서의 그는 아주 많은 고생을 했고, 그 와중에서도 "내가 손대는 일은 모두 잘 될 것이다."는 불굴의 각오로, 우리 일반인의 시선으로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을 참 많이도 벌였습니다. 그가 설령 실패를 했다 해도, 이는 다음 번에 결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그의 자산, 밑거름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로서 그는 우리에게 "도전의 아이콘"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최고가 되려면 최고에게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은 최고가 아닌 상태에서, 거절과 문전박대의 위험을 무릅쓰고 최고를 찾아간다는 결심 자체가, 하기 쉽지 않은 결단입니다. 저자는 "당신은 최고가 될 수 있다. 이를 의심하지 말고, 최고를 찾아 그 가장 좋은 점을 찾아 배울 용기를 품어라."고 우리에게 주문합니다. 만약 이럴 엄두가 안 나는 사람은, 최고가 될 자신을 스스로도 갖지 못한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준오헤어 강윤선 대표가 비달 사순을 찾아간 배경이었습니다.

 

나는 최고라는 확신은 때때로 스스로에게 강한 회의를 불러일으킵니다. 누구나 다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큰 착각이 아닐까? 그저 제 마음만 당장 편하고 싶은 자기기만과, 성공하기 위한 필수 조건인 자기 확신은, 그가 행동력이 따라 주는 확신을 가졌는지, 그렇지 않고 제한된 자기 패거리의 범주 내에서 영원히 밖으로 나올 줄 모르는지에 의해 갈라진다고 여겨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행동과 실천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황님의 유머 - 그리운 스승 요한 23세의 메시지
요한 23세 지음, 신기라 옮김, 최현식 감수 / 보누스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위대한 인물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언제나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어떤 인물이, 그 업적이나 능력은 출중한데, 일상이나 공식 석상에서 전혀 웃음기를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악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부분의 독재자가 이런 컬러를 띠고 있으며, 그 예로는 나디르 샤, 스탈린 같은 인물을 들 수 있습니다. 유머나 농담은 고사하고, 잔잔한 웃음을 머금는 순간도 찾기 드뭅니다. 살아 온 과정에 상처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자신의 상처도 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주세페 롱칼리(이 책에서는 "론칼리"란 표기를 계속 유지합니다) 신부, 나중의 주교, 나중의 추기경, 그리고 나중의 교황이 된 분은, 농민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이탈리아 농민 특유의 웃음과 소탈한 태도가 언제나 몸에 배인 모습이었습니다. 그 자신이 민중의 간난과 역경을 몸소 체험하며 자란 분이었기에, 고위직에 올라서도 언제나 그는 하층민의 수고와 애환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 실린 일화들은 따라서 의도적으로 창작되거나 윤색된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인간 롱칼리를 대변하는 사연입니다. 전 독일 총리 헬무트 콜의 경우, 그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기믹의 대상이 된 것과는 많이 성격이 다르죠.

 

전지전능한 신을 섬기는 고위 성직자이지만, 아무리 명철하고 사리 분별이 바른 그도, 언제나 "신의 섭리"가 종종 빚는 부조리함, 참상, 어이없는 비극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얕은 지식과 서 푼짜리 학문으로부터 잣대를 애써 빌리기보다, 그는 겸손하고 신중한 자세를 일단 취하였습니다. 그는 종종 개인적으로도, 능숙하고 세련된 처신으로 바로 응대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 경우에, 그가 선택하여 꺼내 든 답은 바로 "유머"였습니다. 이 책은 그의 유머 중, 깊은 교훈을 주거나, 의외로(그는 격의 없고 대중에게 친근한 교황으로 유명했지만, 오래 전 분이니만큼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다 알려진 건 아니었습니다. 요즘이라면 달랐겠죠)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를 담고 있습니다.

 

p94에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이 책의 주인공 요한 23세의 만남을 담은 사진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세계의 상당수 인구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고, 이 사진이 잘 드러내는 것처럼 개성도 서로 많이 닮은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아이크의 경우, 언제나 보기 좋은 파안대소의 모습을 드러낸 건 아닙니다. 예컨대 1952년 공화당 전당 대회에서, 그가 젊은 리쳐드 밀하우스 닉슨(부통령 후보)과 함께 대권 도전권을 따 내었을 때, 그의 미소는 왠지 억지로 웃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반면, 롱칼리 주교, 대주교는, 남아 있는 모습이 언제나 평온하고 진정 어린 심성을 드러내는, 온화하고 착한 웃음을 만면에 머금고 있죠.

 

요한 23세 대에 들어서야, 대중은 교황을 보다 친근하게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파파 지오반니"였습니다. 그의 자연인으로서의 이름은 물론 주세페이지만, "요한"을 이탈리아식으로 부르는 이름이 "지오반니"였기 때문입니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린 건 당연합니다(차라리 "파파 주세페"라고 부르는 게 조금이라도 덜 무례했을 지 모르죠). 여튼 이를 놓고, 주세페(이름) 파파(성)라는 어느 이탈리아 재력가와의 사이에 벌어진 재미있는 일화도 실려 있습니다. 역자 최현식 신부의 정확한 주석을 통해, 유익한 상식을 배울 수 있는 건 덤입니다.

p166을 보면 경호원에게 "간수 양반"이라고 부르는 재미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유머의 첫째 의미는, "백성으로부터 교황을 유리시키는 이가 간수 아니면 뭐겠냐"는 아주 가벼운 항의의 뜻이겠고, 다른 면에서 지난 시절, "아비뇽 유수"처럼 교황이 세속의 물리력에 굴해서 실제로 수인의 처지가 되었던 사실을 살짝 암시하는 의도도 있었겠습니다.

 

p207을 보면 국무성성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빚어진 작은 소동이 소개됩니다. 보수적인 인사들은, 모 추기경을 그 직에 임명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을 그에게 던지는데, 이는 아직 롱칼리 추기경이 콘클라베에서 교황에 선출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는 비록 본의야 이미 정해졌다고 해도, 차기 교황으로서 말은 신중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확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길게 모호한 답을 한 후,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분을 임명할 생각이 있다고 누가 그러던가요?(즉,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어?의 의미겠죠)" 사실 이 일화는 정치적으로 미묘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에피소드인데, 여튼 이런 다소 곤란한 상황에서도 그는 유머와 여유를 잃지 않습니다.

 

p74를 보면, 부하직원이라고 해서 그의 존엄이 무너질 만큼 호되게 야단을 쳐서는 안 된다는, 요한 23세의 너그롭고 온화한 마음이 잘 드러나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래서 고위직에는 평범한 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인사가 취임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대중과 국민의 정서와는 전혀 동떨어진 모습을 노출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서, 우리는 언제쯤 이런 지도자를 갖게 될지 깊은 한숨을 내쉬게도 됩니다. 여러 면에서 이 전설적인 교황과 컬러가 비슷하다는, 현 프란체스코 교황에게도 많은 기대를 가지게 하는 책이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면접의 전설 2014~2015
인앤잡 출판기획팀 엮음 / 인앤잡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구직난이 너무도 심각한 현실입니다. 20대 대부분이 백수라는 "이태백'이라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다 들 치열한 취업 관문을 뚫기 위해, 밤을 새워 가며 책을 파고 있습니다. 스펙도 다들 뛰어나고, 즉석에서 물어 보면 각종 지식도 입에서 술술 나오는 모습입니다. 어디다 내놓아도, 예비 사회인, 직장인으로서 꿀릴 게 없는 모습 같습니다.


그런데 왜 취업의 관문에서 번번히 고배를 마시는 청년들이 속출할까요? 이는, 객관적인 채용 규모가 적어서인 이유도 있지만, 개인 차원에서 이유를 찾자면, 면접이라는 진짜 관문을 넘지 못하고 다들 넘어지는 데에 이유가 있습니다. 기업의 경우, 학식이나 지식, IQ, 스펙 등에 집착하기보다, "이 지원자가 진짜 우리 회사 편이 될 수 있는 인물이고, 제 능력을 다른 동료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게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보다 초점을 두고 관찰합니다. 떨어진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 막연하고 주관적인 것 아닌가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 자리에서 오랜 실전 경력을 쌓으며, 숱한 사람을 보아 온 인사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척 보기만 해도" 그 사람의 잠재력이나 전망, 우리 회사에 갖다 놓으면 어떤 모습을 보이겠다는 게 눈에 훤히 그려지게 마련입니다. 구직자로서는 따라서, 이런 기업이 어떤 인재상을 요구하는지 미리부터 철저히 대비하여, 자신이 그런 회사가 요구하는 인적 자원으로 먼저 거듭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면접은 어찌 보면, 인재를 평정하는 데에 있어 가장 정확한 방법입니다. 구직자의 입장에서도, 한번 이렇게 처지를 바꿔 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내 누나, 여동생과 결혼하려 든다면, 스펙이나 가문, 학력만 보고 그 결혼 여부를 찬성 혹은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외적 조건이나 경력이 화려하더라도, 인물이 풍기는 분위기나 매너, 행동거지, 혹은 그 자리에서 어떻게 즉석 반응을 무리 없이 보이느냐를 보고, 이 사람을 집안에 들여야겠다 혹은 아니다를 결정하는 게 보통입니다.


기업은 이윤 추구를 위해 시장에서 생사를 건 집단 전투를 벌이는 조직입니다. 어디 가서 비웃음이나 안 당하게 처신이 확실해야 하고, 맡은 바 일은 빈틈 없이 잘 처리해야 하며, 무엇보다 주위와 잘 융화하고 팀과 회사를 위해 딴 마음을 품지 않는 "우리편"이 될 수 있는 인재라야 합니다. 내가 기업의 의사 결정권자라면, 당연히 이런 사람을 신입사원으로 뽑지 않겠습니까?


이 책 1장에는 면접 전략이 나와 있습니다. 이 책 해당 파트에 소개된 전략이란, 사실 대한민국에 근거를 두고 사업을 하는 회사라면, 거의 공통적으로 의지하고 현실에 적용하는 원칙들로 가득합니다. 기업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인사 담당자가 아니라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그 러니, 자신이 지원하려는 회사가 어디이든 무관하게, 이 파트는 정독에 정독을 하며 명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단지 면접을 통과하기 위한 요령이 아니라, 사회 생활의 기본을 가르쳐 주고 있다 해도 틀리지 않는, 금언과 원칙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인성면접의 핵심은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라"입니다. 사실, 조직 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은, 인식과 사고가 파편화되어 있습니다. 자기 딴에는 임기 응변을 한답시고, 앞뒤가 맞지 않는 합리화를 시도하거나, 주변이 공감할 수 없는 무리한 주장을 하기 일쑤입니다. 스토리는 성실성의 표현이며, 표리가 부동한 사람은 스토리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관성과 성실성은 사회 생활, 조직 생활의 가장 기본되는 덕목이기 때문입니다.


토론 면접은 같은 팀 안에서의 조화와 호흡이 중요합니다. 공격적인 태도는 금물이라고 합니다. 공격적이지 말라고 해서, 아무 날카로운 논점 없이 분위기에 영합하는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조 직에서 가장 기피되는 사람은, 바로 무능한 사람입니다. 예리하고 남들이 채 짚지 못 한 포인트를 지적하되, 다른 이들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물론, 무능 열등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이는, 유능한 타인은 그 존재 자체가 자신에겐 무조건 악덕을 의미하므로, 이런 사람까지 감정을 안 상하게 배려할 방법은 없긴 합니다.


역량 면접과 전문성 면접은, 구직자가 자신이 지원하려는 해당 기업의 정보를 정확히 알고 대처해야 하는 전형입니다. 자신이 평생을 몸담겠다면서, 정작 회사에 대한 정보는 지극히 피상적이거나, 상식 수준에서 넘는 내용이 없다면, 인사 담장자의 입장에서는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이 역시, 구직자로서 최소한의, 정말 최소한의 성실성을, 외부를 향해 증명하는 방법입니다.


이 책의 2부는, 구직자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는, 대기업과 중견 기업의 정보가 거의 빠짐 없이 나와 있습니다. 혹시 아직, 막연하게 취직해야겠다, 백수가 되어서는 곤란하지 같은 바람 외에, 구체적인 비전이 없는 취준생이라면, 이 책에 나와 있는 엄청난 정보를, 찬찬히 읽고 연구해 보십시오, 대한민국에 이렇개나 많은 기업이 있습니다. 이 중에, 내가 몸담고 내가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적합한 곳이 설마 한 군데가 없겠습니까?


정보에 대한 탐색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면, 구체적으로 몇 군데를 정해서, 그 회사가 무엇을 하는 곳이다, 직원에 대한 급여와 복리후생 수준은 어떻다(책에 다 나와 있습니다) 같은 정보를, 머리에 계속 담고 평소에도 그 회사의 조직원이 이미 되어 있는 양, 계속 시뮬레이션을 하고 혼자서라도 진지하게 고민을 해 봐야 합니다. 이 과정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이게 바로 "준비된 (그 회사의) 직원"입니다. 이는 단편적 정보의 암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의 채비입니다.


제일기획의 정보를 보면, 직원 평균 연봉이 5700만원대입니다. 여기 수록되어 있는 유수의 기업 중에서도, 대우가 단연 좋은 편에 속합니다. 한때 대한민국에서 광고회사도 참 많이 생겼지만, 역사와 전통, 그리고 실적까지 구비한 채 지금까지 이렇게 잘나가는 곳은 드뭅니다. 세련된 옷차림과 매끄러운 매너는 기본입니다. 선망의 대상이니만치, 지원자는 마음가짐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삼성물산, 두 말이 필요있을까요? 책에 나온 정보를 보면, 이 회사의 건축 사업 부문 비중이 40%로 나옵니다. 삼성물산은 1990년대 초부터 이 분야에 뛰어 들었는데,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이라서 아파트 브랜드 가치 1위를 다투는 래미안이 바로 이 기업의 산물입니다. 나만의 스토리 정립도 중요하지만, 내가 지원하려는 기업의 지난 이력이 어떤지 아는 자세야말로 기본 중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한은행 파트를 보면, 설립일이 1897년으로 되어 있습니다. 미스프린트가 아닙니다. 신 한은행은 사실 1980년대 초반에 설립된 재일교포 자본 주축의 신설 은행입니다. 연혁이 이렇게 된 이유는, 외환 위기 이후 이 기업이 조흥은행을 인수하고 그 역사까지를 계승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한국의 기업은 그 자본주의 발달의 오랜 역사 만큼이나 나름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의 모습에만 근시안적으로 집착하는 태도는, 자신이 지원하려는 기업에 대한 단편적이고 그릇된 이해에 그치는 결과를 낳고, 이것은 담당자에게 결국 좋지 못한 인상을 주는 결과에까지 귀착합니다. 면접에서 매번 떨어지는 이들은, 외모 단정이나 순발력 외에, 어떤 면에서 자신이 진정 부족한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을 뽑지 않는 기업이 바뀌기를 기다리겠습니까, 아니면 먼저 자신이 변화해야 하겠습니까?


업계 동향 소개도 눈여겨 읽어야 합니다. 지원자가 먼저, 기업 친화적인 태도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마인드세팅을 해야 한다고 말씀 드렸지만, 사 실 기업 좋으라고 취직하는 게 아니라 내 미래의 건설이 더 우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어떤 기업이 뜨고 어떤 업종이 사양길인지는, 큰 그림을 그려 두고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처럼 구직난이 심한 시절에 한가한 고민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정말 현명한 사람은 개별 전투에서도 민첩하게 머리가 돌아갈 뿐 아니라, 큰 전략의 그림도 동시에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작은 책 안에, 한국 경제의 거시와 미시, 그리고 구직자의 비전과 당장의 단기 전술까지 두루 담은, 매우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30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잭 리처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친구들과 함께라고 하네요.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과연 명불허전, 다들 리처만큼이나 범상치 않은 위인들입니다. 일기당천, 역전의 용사들입니다.


그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습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예전 찬란했던 그 팀 중 절반밖에 남지 않은 인원이라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잭과 그 친구들은, 지금 매우 화가 나 있습니다........

 

 

우리의 잭 리처는 잘 알려진 대로, 엄청난 덩치를 한 거한입니다. 덩치만 큰 게 아니라,그 큰 체격에 걸맞은 엄청난 완력을 지닌 위인입니다. 덩치가 크다고 꼭 힘이 센  건 아니지만(즉, 피워가 보장되는 건 아니지만), 체격이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이 더 강한 파괴력(주먹이든, 발길질이든, 혹은 그의 필살기인 박치기로든....)을 가질 가능성은 큽니다. 잭은 그러한 정상 범주(?)의 편차에 드는 사람입니다.

 

잭은  덩치가 크고, 완력이 초인적일 뿐 아니라, 위에 설명한 물리적, 수학적, 통계적 인과관계에 대해, 누구보다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으며(꼭 자신과 관계된 사항이 아니라도), 사물의 질서, 그 중에서도 특히 물리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그 모든 것에 대해 감각적인 이해 능력을 지녔고, 그런 운동에 대해 특별한 용어를 쓰지 않고도 남에게 이해를 시킬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물리학자는 아닙니다. 학자는커녕, 변변한 배움의 과정을 채 밟았지도 않아 보이는 인상입니다(실상은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엘리트 장교라죠). 설사 그의 인상이 서류상의 커리어와 일치한다 해도, 그에게는 아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지구 끝에다 갖다 놓아도 살아올 만큼 생존력과 근성, 지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그와 함께 놓인 다른 생물, 그리고 지구 끝에서 극한의 조건을 자랑하는 그 환경의 장래를 걱정하는 게 차라리 옳습니다.

 

그를 건드리지 않으면 아무 일 없습니다. 그는 자기보다 못한 자들의 운명에 대해 괘념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를 귀찮게 했다면...? 답은 이 한 마디로 족합니다.

"그에게는 자비가 없다."

 

아무리 지상 최강의 용사였더라도, 전쟁과 트러블이 없이 제 나름의 질서에 의해 잘 돌아가고 있는 사회 속에서는 맥을 못 추릴 수 있습니다. 잭 리처가 딱 그 처지입니다. 소령 계급으로 군 복무 경력의 마지막을 장식한 후 전역한 그는, 그 행색이나 눈빛(이건 원래부터 그랬을까요?)이나 심적 태도나 옷 차림새나 통장 잔고로 보나, 완전한 거지, 부랑자입니다. 사회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고, 군에서조차 계급 무관하게 대장질만 하던 처지이니(이러니,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윗사람들이 곱게 보겠습니까?), 이윤 추구와 합리성만을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하는 시계태엽장치과도 같은 사회에서 그가 설 땅은 입추의 공간도 마련되지 않습니다. 현재 그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거지"입니다.

 

우리의 잭은 그러나 이 모든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남(그게 아무리, 잭 자신의 가치에 비해 피라미 같은 존재라 할지라도)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또 그게 얼마만큼의 근거를 가 지고나 있는지에 대해, 때로는 관찰자가 민망할 만큼 냉정한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인격 수양이 되었다거나 남다른 교양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는 1%의 오차도 없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객관을 스캔하여 정확한 결론을 도출하는, 기계에 가까운 두뇌, 판단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 거울에 비춰진 자기 모습으로부터라도 달리 허튼, 혹은 편향된 결론이 나올 리가 있겠습니까? 이 덩치는 물리적 조건만 좋은 게 아닙니다. 연산 능력과 판단력이 차라리 그 신체 능력의 상대 레벨을 상회한다고 봐야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역전의 용사들, 쟁쟁한 에이전트들 사이에서조차 그가 대장이었던 이유였습니다. 팀원들은, 국적, 인종, 성격, 피부색, 계급에 무관하게, 그를 존경하고, 마음으로부터 보스로 인정했습니다. 아 마 그가 도움을 요청했다면, 지구 끝에서라도 지구의 거죽을 마구 훼손해 가며 달려 왔을 그들입니다. 물론 그 반대의 명제도 참값을 가집니다. 그와 생사 고락을 같이했던 전우들, 부하들을, 물정 모르는 어느 자가 감히 모욕했다? 그 자는 오늘부로, 외부 세계의 모든 소유물, 내적인 자부심, 그 외에 남은 무엇이 있다면 기꺼이 손에서 털어 내고, 지구의 다른 끝으로 도주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 해도, 과연 그에게 남은 희망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의 팀에 있었던 여성 대원 두 명(그러니 이 여성들은 대체 어떤 능력의 소유자겠습니까?) 중 한 명이, 이런 잭에게 긴급한 호출 메시지를, 그와 그녀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보내 왔습니다. 잭은 잠시 당황했지만, 그다운 정확한 상황 파악 능력으로, 바로 발신자가 누구인지, 나아가 지금 어디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아 냅니다. 전역한 후 의지할 데 없는 떠돌이가 된 지 오래지만, 그리고 예전같지 않은 육체적 능력, 그 감퇴 상황이 시시각각으로 감지되는 그라지만(이것도 주관적 엄살입니다. 잭의 유일한 약점은 이처럼 엄살과 자기 연민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익숙하고도 심각한 상황의 예후는 누구보다 정확히 짚어낼 줄 압니다.

 

오랜 동료에게 들은 소식은에 그는 기가 막힙니다. 대원 절반이, 정체 모를 자에 의해 사냥 당하는 중이며,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된 채 발견되거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도 분노지만, 그 팀원들 중 한 사람에게도 아니고, 이처럼 모두를 향해 마수를 뻗을 수 있다니 대체 그 자의 정체가 무엇이며, 어떤 수완으로, 또 무슨 동기에서, 감행하는 일일까요? 

 

이 작은 잭 리처(그리고 그의 창조주 작가 리 차일드)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최상의 수준까지 만족시켜 주는 퍼펙트 액션 스릴러입니다. "컴퓨터 달린 불도저'인 리처는, 그의 장기인 수학적 감각을 십분 발휘하여, 사태의 진행 흔적 곳곳에 남아 있는 암호를 풀어 나갑니다. 그의 추론 능력은 대개 정확한 궤적을 그릴 뿐 아니라, "81은 자릿수를 더해도 여전히 제곱수" 같은, 그에겐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 미신적 감각이나 집착마저 내비치는 컬러를 띱니다. 그는 제 주변의 사람들 성향을 파악함에 있어서도 빈틈이 없고 섬세합니다. "그는 숫자 지향이 아니라 문자 지향이지. 마일즈 데이비스와 쿠팩스를 좋아한 인간이었지." 그런데도 그가 시도하는 암호 입력은 다 틀립니다. 낭은 기회는 한 번이고, 이 시도가 실패하면 파일은 자동으로 파괴될 뿐 아니라, 그 작성자인 전우가 고문을 당하고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비밀을 영원한 암흑 속에 가두는 셈입니다. 과연 무슨 암호였을까요? 저는 이 장면을 읽으면서, 이후에 나온 BBC드라마 <셜록>이, 이 작품의 영향을 아주 깊이 받은 게 아닌가 생각도 들었어요(어느 에피소드에서 USB 메모리 암호를 푸는 장면이 나오죠?).

 

스케일은 상당히 큽니다. 리처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애국심도 투철한 마초지만, 워싱턴의 책상물림들과 영혼 없는 정치인들을 누구보다 혐오하는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를 낀 사기 사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국가 존망의 위기를 부를 만큼 무지하게 덩치가 큰 사연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미국 전역에서 최고 중의 최고들로만 뽑힌 팀 반이 죽어나간 것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소설은 여기서 액션 스릴러의 정해진 궤도를 넘어, 소위 POLITICAL EDGE라는 요소까지 포함하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운전을 잘은 못한다는 잭이지만, 그에게 실수가 있을 리 없고, 우리는 이 정신없는 롤러코스터의 궤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잭은 소설에서 세 번(마지막의 결정적 한 번은 스포일러 요소이니 제외합니다), 상대의 거짓말을 간파해 냅니다. 프란츠의 아내가 보인 사소한 행동(낯선 이들을 집에 들이며, 어린 아들을 시켰다)의 이상함에서 그 숨겨진 속내를 알아차리고, 방산업체 뉴에이지의 "교과서 여인"이 어느 대목에서 허위 진술을 늘어 놓았는지에 대해 정확히 그 허점을 짚으며, 다이애나 본드가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고 들 때 도통 쉴 틈을 주지 않으며 논리적 FLAW를 잡고 몰아붙입니다. 세 번 다 그의 완승이었습니다.

 

제아무리 잭 리처라고 해도, 등 뒤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적을 언제나 성공적으로 상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리법칙이 확고히 지배하는 현실을 전혀 초월하지 않으면서도(혹은, 못하면서도) 전혀 의외의 결과를 결국은 (이 작에서 세 번이나) 빚어 냅니다. 逆轉의 용사이기도 한 셈이죠. 리 차일드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런 순식간에 벌어지는 잭 리처의 육체적 동작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정확하게, 마치 슬로 모션으로 잡아 내듯 특유의 스타일로 독자에게 캐스트하고, 컬러 코멘테이트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한국 관련 코드가 세 번 나옵니다. 자수성가한 한국인 세탁소 주인(스테레오타입 인종 차별이란 오해를 막기 위해 짧지만 세심하게 뭔가로 배려하고 있습니다), 샘소나이트 가방(아마 이게 한국제인 줄 몰랐던 것 아닐까요?), 그리고 대우(과거 한국의 방산 업체를 거느리기도 했었죠. 대재벌이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메이커의 권총이 그것입니다. 한국인으로서 순간 놀라기도 하고, 뭔가 반갑기도 한 장치입니다.  

 

원제는 <Bad Luck and Trouble>입니다. 미국에서는 2007년에 발표되었고, 우리 한국 독자들에게 번역된 건 이처럼 다소 늦었습니다. 번 역자의 솜씨가 아주 매끄럽기 때문에, 독자는 소설이 아니라 영화를 보고 있는 느낌입니다. 아니, 어느 액션 영화가 이처럼 재미있게 제 스텝을 거침 없이 밟아 나갈 수 있었나요? 개인적으로 미스캐스팅이라고 여기는 2012년작 탐 크루즈 주연의 <잭 리처>는 이 서평에서 언급하지 않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약성경을 보다 - 그리스.로마 신화보다 재미있는 성경 이야기 성경을 보다
찰스 F. 켄트 지음, 장병걸 옮김, 우수호 감수 / 리베르스쿨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제목이 <신약성경을 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사실 매우 어려운 책입니다. 일반인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도 대단히 어려운 텍스트입니다. 글자 한 자 한 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어떤 해석을 통해야 하는지가 너무도 어려운 과제입니다.

(예 를 들면, 너무나도 쉽고 친절하게 쓰여진 이 책에서도,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표현을 두고 저자분이 고민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학교에서 지리, 과학 시간에 "지구가 둥글다"는 걸 배우는 어린 학생들은, "둥근 지구에 끝이 어디 있을까?'로 고민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교양과 신앙의 인식 사이에서 어린 독자들이 고민하지 않게, 이 책 p253에서 합리적이고 공평한 설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 무수히 많은 교파가 나뉘어 실재하는 것도, 이 해석을 놓고 어느 쪽을 따를 것이냐로 입장이 서로 다른 이유가 크게 작용하기도 합니다.


설사, 같은 입장을 유지하는 교파 안에서라고 해도, 구체적인 구절을 두고 어떤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는 의견이 일치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어린 독자(신도이든 아니든)들은, 성경도 텍스트인 이상 스스로 지니고 있는 내러티브, 스토리가 대체 뭔지 대강이라도 파악해야 하는데, 원전은 그런 접근조차 쉽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죠.


저자 찰스 켄트 박사의 백 년 전 고민은 두 가지였습니다. 1) 모근 기독교인들이 동의할 수 있는 최대공약수 격 스토리라인은 어디에서 어디까지인가. 2) 그것을 어떻게, 어린 독자에게 쉽게 전달할 것인가.


켄트 박사의 접근은, 일단 "성경"이 아닌, "성경 이야기"를 아동 문학처럼 구성하여, 이야기로서의 "예수, 그리고 그의 제자들의 사연"을 구성해 뵤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여기에다가, 중세 이후 유럽의 쟁쟁한 화가들이 남긴 불후의 걸작 중 신약 성경 관련 작품들을, 헤당되는 "장면"에 적절히 배치하여 이해를 돕는 것(그리고, 경우에 따라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것)을 그 편집 의도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고 그가 배출한 사도들이, 팩트상으로 어떤 행적을 남겼는지에 대해 아주 쉽게 아웃라인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구요. 또.... 그런 목적이 꼭 아니라도, 이렇게나 유명한 화가들이 제작한 명작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호강하는 기분이었습니다. 화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참 우리가 익히 아는 화가들이, 이런 그림도 남겼었구나 하는 걸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화가란 단지 붓과 물감, 캔버스를 다루는 테크닉이 대단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니었어요. 종교를 떠나서, 이처럼 구상(具像)의 창조로 인간 영혼을 깨우고 감정의 가장 고상한 부분을 격동, 고양시키는 마법, 그것이 화가의 본분이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히로니뮈스 보스(히에로니무스 보슈)는 최근 우리 나라 독서인들에게 워낙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만 각인되어서(정통 미학서에서건 스릴러에서건), 지극히 평온하거나 그저 온건한 기적의 경이를 표현한 작품에서조차 뭔가 아주 살짝은 괴기스러움이 묻어 나옵니다. p43의 <가나의 혼인 잔치>를 보십시오. 한쪽 구석에서는 경사에 이은 기적(물이 포도주로 변함)을 맞이한 이 순간에서도, 뭔가 다음에 좌중을 어수선하게 할 트러블이 닥칠 것만 같은 기운이 느껴지고, 다른 구석에서는 물동이에서 부대로 옮기는 남자의 표정이 그저 침착하기만 합니다. 세상은 본디 아우성과 정적이 공존하는 곳이고, 그 한가운데에 첫 기적을 행한 인자(人子)가 좌정(坐定)해 있습니다.




 

p145에 보스(보슈)의 그림이 또 나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입니다. 오른쪽 상단의 어느 구경꾼의 표정이란 너무도 사악하고 흉칙하여, 마치 이 순간 사탄이 그에게 들러 쓰이지 않았나 생각이 될 정도입니다. 2003년작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역시, 구경꾼 중에 자리한 악마의 얼굴을 장면에 꾸려 넣을 때, 이 보슈의 작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는 어려서부터 총명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학자들과 벌인 토론이 바로 그 천재성(?)을 잘 드러내는 일화죠. 성경 텍스트에는 한결같이 그 어린 지성(과 영성)의 완숙함에 감탄하는 모습이지만, 뭔가 불안한 이미지의 조성으로 어디 가서 안 뒤처지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그림 속(이 책 p26)에서는, 어린 예수를 둘러싼 자들의 표정이 각양 각색입니다. 어떤 자는 경탄하고(영어 성경에 "marvel"이라는 표현으로 잘 나오는), 어떤 자는 시샘 가득한 표정의로 회의(懷疑)하며, 어떤 자는 이로부터 삼십 년 후 광장에서 소리 높여 "십자가에 못박으시오!"를 외칠 준비라도 하듯 벌써부터 목청을 가다듬는 품이며, 어떤 자는 마치 광야에서 세 가지 질문으로 성자를 유혹하는 예행 연습이라도 하듯 그윽한(?) 표정을 곁에서 짓고 있습니다. 참고로 반 천 년 전의 이 작품 속에 나온 얼굴(아마 모델이 있었겠죠?)과 우리 동시대 모 배우의 모습이 서로 얼마나 닮았는지 비교해 보십시오.



예수는 주로 우화를 통해 대중을 깨우치려 했습니다. 그 중, 신의 공평하고 제한 없는 무조건의 사랑을 표현라는 에피소드로, "돌아온 탕아(Prodigal Son)"의 이야기가 있죠. 이 이야기는 단지,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배덕의 시절을 보낸, 그리고 염치 없게도 다시 돌아오기까지 한 아들을, 아무 책망도 없이 용서하고 안아 주는 아버지의 부성애만 표현한 게 아닙니다. "성실한 장자의 불평"이 곧이어 제기되고, 그런 큰아들에게 "나의 것은 이미 다 너의 것이거늘 무엇이 서운할 게 있겠느냐?"며 다독이는 아버지의 태도에서 한 번의 추가 감동을 더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 곱이 결국 완전한 화해를 이루지 못하고, 그 아버지 이삭은 기만을 당한 채 숨을 거둔 구약의 마무리와 비교하면, 이 신약은 확실히 포용적이고 건설적이며 보다 보편적인 지향점을 마련합니다. 책에는 렘브란트와 무리요의 그림이 나와 있으나(pp93~94), 저는 탕자가 보다 잘 놀고 보다 더 회개 안 하게 생긴 리오넬로 스파다의 그림을 여기 옮겨 보겠습니다. 



이 책은 예수의 가르침이, 유대 종족 안에서만의 편협한 율법과 선민 사상에 머무르지 않고, 신의 고귀한 형상을 본받아 창조된 모든 인간에게 공히 희망과 죄사함을 약속하는 범인류적인 것이었음을 역설합니다. p273을 보면, 유대인 특유의 선민의식에서 벗어나, 이방인(Gentile)을 차별하 지 않고 널리 공동체에 맞이할 것을 권한 그의 정신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제 2부 이하에서 나오는 사도들, 그 중에서도 바울의 행적, 지중해 동안과 로마를 왕복하며 "기쁜 소식"을 민족과 언어에 관계 없이 두루 전하는 그의 모습에서 잘 구현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 바로 이 바울이라고  평가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예수는 지중해 세계에서, 이전에 없던 방식으로, 도덕과 윤리, 내세에의 희망, 속죄와 거듭남의 비의를 민중에게 가르쳤습니다. 탄생의 순간에서부터 별을 좊아 그를 발견한 동방박사들의 각별한 축복과 경배가 있었고, 스스로 자처하여 십자가에 달려 폭압적 정치 권력과 잔혹한 무력 통치를 가장 초연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무력화한 그는, 그를 신으로 고백하는 이에게건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건, 전 인류를 위한 영원한 슈퍼스타로 남을 것입니다. 꼭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츤데레한 신앙 고백 형식이 아니어도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