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이저가 빌리를 만났을 때 - 자폐증 아이와 길고양이의 특별한 우정
루이스 부스 지음, 김혜원 옮김 / 영림카디널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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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부스, 그리고 루이스 부스는 특별한 데 없는, 평균적인 소시민으로서의 삶을 사는 영국인 부부였습니다. 이 두 분에게 특별한 데가 혹시 있다면,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끔찍히도 사랑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부부가 서로를 넘치도록 사랑하는 게 그다지 당연하게만은 여겨지지 않는, 참 묘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겉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이 부부는 , 그 사실 하나만으로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들 중 한 쌍이었던 셈이었어요.

그러한 사랑의 결실로, 부인 루이스는 어느 날, 한 남자의 아내가 접할 수 있는 가장 기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첫아이의 임신 소식이고, 뱃속의 아이는 아들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아 온 아내였고, 첫 아이를 출산한 후 세상 어느 어머니가 다 그러하듯, 자신이 낳은 아이를 품에 안고 최상의 행복을 누릴 기대에만 부풀어 있던 루이스. 그런데 왠지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달이 차서 산부인과에 입원했지만, 난산도 그런 난산이 없는 것입니다. 사흘이 되어도 쉽게 정상적인 출산(자연 분만)에의 가망이 보이지 않자, 의료진은 루이스에 대해 전신 마취 끝에 제왕절개 시술 쪽으로 결단을 내립니다.

루이스는 기진맥진, 출산 후에도 하루 정도 정신을 차리질 못합니다. 기억과 주변의 증언에 의하면, 마구 웃으며 엉뚱한 말도 했다고 합니다. 갓 세상에 나온 아이는 이 때문에, 엄마가 아닌 간호사의 품에 안겨 며칠을 보내야 했습니다. 루이스가 기력을 회복하고 정상적인 심리를 회복하고 보니, 이번에는 아이가 뭔가 예사롭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울어대는 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당연한 모습이긴 합니다. 그런데 루이스와 남편 크리스 사이에서 난 이 아이(4kg가 넘엇다고 하니 대단한 우량아였죠)는, 그냥 우는 게 아니라 고통 때문에, 불안한 마음 때문에 거의 울부짖는 듯한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엄마가 안아 줘도, 혹은 혼자서 실컷 울다 지쳐서라도, 아이는 울음을 그치는 게 보통인데, 이 아이는 도통 울음, 그것도 아주 성난 듯한 울음을, 그칠 생각을 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아직 젊은 나이인데다 경험도 없고, 주위의 의료진이나 시부모님, 친정 부모님 등도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없었으니, 루이스가 얼마나 불안해했을지는 짐작이 갑니다. 우리는 모든 어머니들이, 처음부터 어머니로 태어난 양 아이를 능숙하게 돌보는 줄만 알지만, 사실은 많은 초보 엄마들이, 다양한 이유에서 그리 매끄러운 육아를 행하지 못합니다. 하물며 루이스처럼 특수한 아이를 맞은 엄마는 말할 것도 없이, 큰 패닉에 빠지게 되죠.

하지만 루이스 부스라는 이 여인, 어머니, 아내의 위대함은 여기서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그녀는 부족한 대로 자신의 힘과 의지, 지력을 총동원하여, 대체 엄마와 친해지려 들지 않고 이처럼 무서워하는(혹은, 그렇게 보이는) 아이의 증상을 먼저 알아 보려 합니다. 아이는, 우리가 흔히 자폐증이라고 알고 있는 정신적 특질을 안고 태어났고, 이 병을 가진 아이가 흔히 그러하듯, 주위 환경에 전혀 적응할 줄을 모르고,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 감정의 격동에만 사로잡혀 있다는 걸, 엄마 루이스는 알게 되었습니다.

루이스가 절망한 건 아이가 장애아라서만은 아닙니다. 내가 내 속으로 낳은 이 아이를 그리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닌가, 결국 엄마로서 자격이 부족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런 엄마에게서 태어난 이 아이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너무도 무서워집니다. 그러나 그녀는, 두려움에 매몰되지 않고, 아이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인간적인 책무와 그를 통한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이 시련에 당당히 맞서고자 합니다.

엄마라고 해서 아이를 당연히 사랑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아무리 충실한 엄마라고 해도, 몇몇 순간에서는 지고지순의 모성애를 높치는 때도 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읽은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에서는, 헤이즐이 극심한 고통(폐암)을 겪을 때, 그 어머니가 이런 대사를 하는 게 나옵니다. "여보, 난 이제 어머니 노릇을 더 이상 못할 것 같아요." 모성애가 위대한 것은, 이런 지극히 인간적인 존재로부터, 가장 신적인 존엄이 도출된다는 점입니다. 평범한 이들이 위대한 일을 하는 게 대단한 것이지, 처음부터 대단한 사람이 그 가치를 발하는 건 사실 칭찬할 일이 못 됩니다. 여성이 위대한 건, 바로 어머니가 됨과 동시에 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로 탈바꿈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 이 프레이저는 어느덧 몸이 훌쩍 자랍니다. 겉으로 봐서는 아역 탤런트를 해도 될 만큼 사랑스러운 외모입니다. 그런데 말만 몇 마디 나눠 보려 하면, 아이는 이상 반응, 부적응 행태를 보인 후,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입니다. 머리 속에 어떤 명철한 사고와 숭고한 감정이 오가는지는 모르지만, 프레이저를 지켜 보는 제 3자는 "아이가 좀 부족하군." 같은 판단을 쉬이 내릴 만큼 표현과 말이 어눌하기 짝이 없습니다. 게다가 프레이저는 근육 발달 장애로 잘 걷거나 서지를 못합니다.

기적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찾아 왔습니다. 부스 부부는 신혼 시절부터 좀 이상한 고양이(먹고 자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를 길러 왔는데, 부모님과도 잘 소통하려 들지 않는 프레이저가 유독 이 고양이와는 친해지려 들더라는 거죠. 다만 이 고양이 녀석이 나이도 많은 데가 성격이 비협조적이어서, 프레이저를 멀리하고, 따라서 프레이저를 도와 줄 유익한 기회를 살리질 못합니다. 루이스와 크리스 부부는, 우연히 고양이(임대 주택에서 유기된) 입양에 관한 소식을 듣고 관계자와 의사 타진을 하기에 이릅니다. 프레이저는 신통하게, 누가 봐도 닮아 보이는 두 고양이 빌리와 베어를, 실물이 아닌 사진만 보고도 귀신 같이 구별해 냅니다. 부부는 이에 큰 희망을 갖고, 두 고양이 중 빌리를 입양하기에 이릅니다.

기적은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빌리와 프레이저는, 종(種)이 다른 두 영혼이 어떻게 이처럼 친밀하게 교감할 수 있을까 싶은 경탄을 자아내며, 둘도 없는 친한 사이로 발전합니다. 프레이저는 본디 고양이라는 동물 전체에 애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이 빌리라는 애가 (고양이의 통성에 반하게도) 프레이저라는 아이한테 각별한 관심을 보인 덕에, 프레이저는 본격적으로 나 아닌 다른 존재와 소통이란 걸 하게 됩니다. 소통이란 첫 걸음이 힘들 뿐, 한번 물꼬가 트이고 나면 다음 단계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닐 수 있습니다.

고양이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 책에서 묘사된 빌리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빌리를 어둠에서 구해 낸 건, 고양이 빌리 외에도, 빌리를 만나기까지 아무와도 교감을 나누지 않던 프레이저를 잘  다독이고 극한 상태에 빠지지 않게 도와 준 여러 은인들의 기여를 빼 놓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간호사 헬렌은, 제 개인적 판단으로는,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프레이저에게 가장 고마운 봉사를 해 준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제 직분을 그저 건성건성, 시간만 때우고 급여만 챙기는 자가 있는가 하면, 직업의 본분에 충실하여 인간으로서 발휘 가능한 최상의 존엄을 실현하는 위대한 이도 있습니다.

과연 생명체에는, 종을 초월하여 오가는 어떤 공통된 영혼의 교류가 존재하는 것인가. 자폐아에 아무 관심도 주지 않고, 한 영혼이 온전한 성장을 하건 말건 방관하는 인간이란, 일개 고양이만도 못한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외모를 가진 아이, 그리고 귀여운 생김 못지 않게 그 마음이 참 예쁜 고양이 빌리를 보며, 약하고 가냘픈 존재가 서로를 돕고 보완해 가며 이 거친 생존의 장을 헤쳐 나가는 모습, 인간과 자연의 섭리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성찰을 하게 되는 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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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에게 길을 묻다 - 실전 사례에서 배우는 리더십 원리
송동근 지음 / 정민미디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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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영어 제목으로 "LEADERS ENQUIRED"라고 되어 있습니다. "WE ASKS THE LEADERS.... " 정도로 바꿔 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모르겠으니, 리더들에게 물어야 궁금증과 불안이 가십니다. 그러나 이 책은, 질문과 그에 대한 해명을 같이 짚어 나가면서, "고민하는 당신이 결국 리더이며, 모두가 리더가 될 때 진짜 문제가 해결된다."는 결론으로 결국 닫고 있습니다. 저자의 많은 고민, 그 자취가 녹아 있는 책이었습니다.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고 해도, 또 제법 규모가 큰 조직이라고 해도, 특별한 리더십 없이 잘 돌아가는 때도 있습니다. 얼핏 사소해 보이는 작은 사건이나 움직임이, 엄청난 파급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진단이 있습니다. 리더는 이처럼, 별 것 아니어 보이는 징조로 미래의 양상을 짚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 유능하지 못한 리더는 조직원을 탓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사려 깊은 리더는, 먼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조작은 결국 리더의 attitude에 의해 건강성과 미래에의 생존 능력이 결정되겠습니다. 어찌 보면 그 유명한 JFK의 명언과 방향이 정반대입니다. "조직성원들에게 조직을 위해 무엇을 했냐고 묻질 말고...."

 

진정한 지도자의 자질은 처음부터 정해지는 걸까요. 아니면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향상의 여지가 있는 것일까요. 그에 대한 답을, 저자는 "왜 훌륭한 스타플레이어가 훌륭한 감독까지 되지는 못하는가?"에 대한 설명을 통해 간접적으로 내리려고 합니다. 마라도나와 히딩크는, 선수와 감독으로서의 경력이 서로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경우입니다. 우리는 이들 중, 과연 누구를 더 성공한 인생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요? 이번에 독일 국가대표팀을 피파월드컵 우승까지 이끈 요아힘 뢰브는, 차 감독이 술회하듯 "자신의 백업 선수에 불과했던" 선수로서의 존재감은 거의 없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직에 문제가 생기면 아랫사람을 탓하기보다, 먼저 자신의 문제를 짚을 줄 아는 리더가 될 줄 알았고, 그 결과는 이처럼이나 찬연한 업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책은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기대보다 많았습니다. 잘 알려진 위인이나 기업의 사례보다, 저자분께서 현장에서 직접 겪은 일화 같은 게 많이 소개되어 있더군요. "이 사람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어쩌겠나?(p21)" 같은 건, 비록 길이가 짧지만 반전이 많은, 우리 나라 직장 현장에서 아주 실감 나게 겪곤 하는 전형적 사례입니다. 이런 책을 쓰는 저자분은, 만약 기업 실무에서 잔뼈가 굵은 분(학자, 교수 출신이 아닌)이라면, 대개 엄한 리더형이거나, 면도날 하나 들어갈 구석도 없는 깐깐한 리더형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책 곳곳에서 소개된 (아마도 저자분의 경험담일 것 같은) 에피소드들은, 뭔가 빈 구석이 있으면서도 팀원의 입장을 존중해 주는 넉넉한 마음의 팀장, 관리자의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저자 자신이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부하에게는 너그러운" 리더상을 지지하는 분이어서인지, 읽는 독자에게 대단히 편안하게 와 닿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온화한 서술의 분위기와는 달리, 내용은 대단히 절박합니다. 현장에서 무수히 많은 위기와 도전을 겪은 분답게, 마음가짐을 느슨히할 수 없는 긴급한 메시지도 가득 담겨 있습니다. 조직이 만약 타성에 젖어 있으면, 고의로 위기를 유발해서라도 분위기를 다잡으라는 주문도 있습니다. 주로 일본의 사례를 예로 들고 논증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리더는 부하의 기를 죽이는 역할(요즘 리즈 와이즈먼 때문에 유명해진 신조어로는 "디미니셔"라고 하죠)보다는, 오히려 기를 살리고 활력을 불어넣는 기능을 맡아야 한다고 합니다. 저자의 리더상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능한 대목입니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게 마련입니다. 저자는 타성에 젖은 조직을 "인화"라는 명목으로 오래 방치하는 리더는 무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부 경쟁을 지나친 강도로 유발해서, 오히려 팀웍을 해치게 되는 결과 역시 막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책 전체를 통틀어, "나는 양 극단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다가, 어느 새 요령을 익히게 된 노력형 리더였다"는 회고를 자주 꺼냅니다. 결국 실전에서는 균형 감각, 중용의 미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온 붉은 활자, 푸른 색상으로 강조, 표시된 내용은, 사회 생활을 아직 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두서 없고 요점이 잡히지 않은 이야기쯤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회사에 몸 담고 겪어 본 이들에게는, "이거 완전 내 이야기, 혹은 내 주변의 이야기군." 같은 느낌이 팍팍 올 것입니다. 한국의 직장 생활이란, 이처럼 밑도끝도 없고, 정확한 예측도 불가능하고,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변전이 무쌍합니다. 그래서 외골수 스타일은 생존이 어렵고, A와 B 사이에서 균형 잘 잡고 아집에 사로잡히지 않는 이가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와중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건, 전문성이 부족하면 무조건 지적 받고, 아래에서 가벼이 보고 위로부터 박살 난다는 사실입니다. 늦은 나이에 전혀 기존 경력 무관한 부서로 발령이 나서, 자기 딴에는 기 안 죽으려고 "새로운 일이라서 재미있네?" 같은 기만적 반응도 보이다가, 결국 효용가치가 다했음을 확인한 회사로부터 잘리는 처지. 자신만 모르고 윗선 아랫사람 다 눈치 까고 있던 결과입니다. 이런 처량한 모습이 안 되려면, 자기에게 엄격하고 부단한 계발에 애써야 한다는 게 결론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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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사 사용법 - 상사의 마음을 읽으면 출근이 즐겁다
리처드 마운 지음, 김지원 옮김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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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회적 동물인 이상, 직장을 가지고 조직의 일원으로 경제 활동을 영위하는 게 정상입니다. 회사는, 사회라는 거친 정글과 맞대면을 할 수 없는 개인을 보호해 주는 최소한의 바람막이입니다(자영업이라는 수단을 택해 직접 사회라는 해역을 헤쳐 나가는 이들은, 그만큼 더 큰 위험에 노출되었다고 해야겠죠). 그런데 문제는, 이 고마운 회사라는 틀 안에서, 성질 나쁜 상사와 시기심 가득한 동료들, 이들과 끊임 없이 마찰을 빚는 나의 피곤한 모습을, 출근, 그리고 퇴근할 때마다 곱씹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런 조직 내 대인관계 때문에 오는 스트레스가, 회사 고마운 줄 까맣게 잊게 만든다는 바로 그 점이 문제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상사와의 원만한 관계 형성은,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더 절실하고 더 심각한 문제로 다가옵니다. 부하의 입장에서, 까다로운 상사, 가학적인 상사, 나한테만 못되게 구는 상사 아닌 상사는 발견하기 힘들죠. 어쩌면 모든 상사가, 상사라는 체면과 위신을 유지하기 위해, 위악(僞惡)적인 모습을 애써서 유지하는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당장 내가 그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가 또 문제네요.

 

"린 씽킹"은 슬림하고 agile한 조직을 지향하는 경영혁신론입니다. 저자로서, 그리고 컨설턴트로서 리처드 마운은 이 "린 씽킹"을 신조로 가지는 쪽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이런 경영상의 전제를 출발점으로 해서, 부하직원은 상사의 특성(강점, 약점)을 정확히 파악해서, 그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기회, 그가 나에게 끼칠 수 있는 위협 요인을 미리 가늠한 후, 상사를 중심 축으로 한 환경의 변화에 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론을 자세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결국, "상사"는 하나의 핑계이자 도구에 불과할 뿐, 책이 진짜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직장이란 작은 정글에서 성공적으로 살아 남아, 사회라는 큰 정글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정도로 요약이 가능합니다.

 

장황하고 방대한 내용이 담겼다기보다, 이름난 강사이기도 한 저자의 재미있는 내러티브가 독자를 웃기기도 하고, 요리조리 잘 리드해 나간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한국어 번역자도 "울트라킹왕짱" 같은 시쳇말을 구석구석 넣으면서, 저자가 주장하고 풀어내는 이야기의 분위기를 잘 살리려 애쓰고 있습니다(독자에 따라서는 약간 경망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불이 났을 때 살기 위해, 가장 아끼던 물건이자 고가품인 그랜드피아노를 짊어지고 대피할 것인가? 생존을 위해서는 최소의 키트만 챙겨야 한다!" 이것이 저자가 바라보는, 당신이 회사에서 처한 상황 인식 출발점입니다.

 

이 책의 핵심은 상사 유형 분류론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직장인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타입 구분이 인기를 끌며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는데, 저자의 시도 역시 대단히 재미있습니다. 아래 뒤표지의 사진을 보십시오.

 

그리고 저자는, 자신이 직접 겪거나 지인이 겪은 상사와의 경험담을, 이 4가지 유형 속에 넣어 재미있게, 우습게 이야기해 주기도 합니다. 어느 부하직원에게나 열심히 씹혀야 하는 게 그들의 운명이기라도 한지, 또 서로 전혀 모를 그들끼리 이상할 만큼 서로 닮아 있는 게 차라리 사회의 법칙이기라도 한지, 읽다 보면 완전 내 얘기다 싶은 분들이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제가 하나 느낀 건, 저자는 이 대목에서 정밀하게 유형 분류를 시도했다기보다, 독자의 카타르시스를 위해 해학적인 묘사를 하고, 이를 통해 독자의 공감을 유도한 것 아니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재미는 있는데, 왠지 저는 악어형과 사자형이(저자에 따르면 차이는 비호전적이냐 호전적이냐에 있다는데요) 잘 구별이 되지 않았습니다. 선하게 보이지만 "고자질" 등으로 나에게 적잖은 위험을 주는 미어캣 형은 그나마 확실하게 모습이 그려지지만, 저자가 예를 들고 있는 실화에서는 정작 4분류론이 분석적으로 잘 통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재미는 있습니다. 그리고 각 유형에 따른 대처 방법도, 어느 정도는 우리들이 실전에서 이미 채용하고 있는 터라, 공감도 많이 갔습니다. 중요한 건, 상사, 혹은 상사로 대변, 대표되는 조직에,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로 적응은 하되, 조직에 전적으로 매몰되는 식으로 나를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똘똘하게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진화하는 나(저자는 "진화"에 독특한 의미를 이 책 내내 부여하고 있습니다)"의 참된 의미입니다. 인생이란 결코 따분한 게 아닌데, 바로 이처럼 매순간이 생존을 위한 게임이라는 점에서입니다. 혹 실직을 하더라도, "직업을 잃었다"처럼 자기에게 책임을 과하게 돌리는 표현을 쓰지 마십시오. 당신은 "직업을 그들에게 빼앗겼을" 뿐입니다. 이렇게 생각해야만, 어느 역경에서도 굴하지 않는 파닥파닥 뛰는 심장을, 당신은 일생을 통해 간직하고 자연이 순리에 의해 당신의 활력을 거두어 가는 그 순간까지 즐거운 생을 영위핳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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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그건!
이시하라 아키라 지음, 황세정 옮김 / 책이있는풍경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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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에 매몰된 인생에겐 발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발상을 혁신적으로 바꾸어 볼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무조건 기존의 생각 틀만 뒤집는다고 난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이래서 사람의 일이, 가정이건 회사에서건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기계적인 절차와 공식에만 의존한다고 해결이 바로 도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생만사 새옹지마입니다. 한때 끔찍한 불운으로만 여겨졌던 것이 반전을 거듭하여 행운의 단초가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과정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현재 우리가 믿고 있는 많은 원칙, 받침대들이, 언제까지나 우리에게 과거처럼 성공을 보장해 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역으로, 지금까지는 지극히 불리한 비능률 요소였던 것이, 앞으로는 절묘한 호기를 나에게 마련해 줄 수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 모든 것은 그저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자 이사하라 아키라 씨는 경영 컨설턴트라고 합니다. 아마 그는 지긋한 나이의 경영자나 중진급보다는, 젊은이들에게 더 큰 인기를 누릴 것 같습니다.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역발상의 아이디어들을, 이 노란 표지의 예쁘고 작은 책에서 잔뜩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건 우리 나라에서건, 어느 특정한 사람을 따돌리고 배제하는 행태는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이라면, 인위적으로 전체 분위기에 화합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요에 가까운 주문이, 개개인의 뇌리를 강하게 짓누르기도 하죠. 이런 사회에서, 따돌림이란 극심한 공포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저자는 반대로, "남을 왕따시키려는 사람의 일차 동기는 시샘과 질투이다. 당신이 얼마나 특출하면, 남들이 그처럼 시기와 모해를 일삼겠는가? 나도 왕따를 당하고 싶다!"라고 하는군요. 근데 사실 왕따도 왕따 나름이고, 정말 능력이 없고 가정 교육을 잘못 받아서(아니면 결손  가정 출신) 사회에 적응을 못 하는 경우는, 이런 생각을 하기 좀 힘들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겉모습이 전부는 아니다. 글쎄요, 이 역시 한국도 일본도 거의 같은 결론이 나올 수 있는 문제입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게 외모의 단정한 관리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외모가 깔끔하게 관리되지 않은 사람은, 자기 관리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간주하는 게 보통입니다. 성형 수술까지는 필요 없지만, 자기 외모가 관리될 수 있는 최대한까지 일단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100% 동의합니다.

 

인터넷이면 다인가? 확실히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입니다. 이런 사이트가 있었구나, 내가 이런 좋은 정보를 모르고 지나칠 뻔했구나. 어떤 때는, 좋은 사이트에서 충분한 정보와 지식을 얻지 못하고, 피로해진 머리를 누이고 일찍 잠들어 버리면 약간의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하면, "실제로 만나는 (오프라인의) 사람들이야말로 최상의 정보 소스"라는 거죠. 사실입니다. 인터넷의 정보는 보다 보편적이고 넓은 범위에서 통할 수 있지만,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직간접으로 주는 정보는 나의 실생활과 밥벌이에 바로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 만날 모니터 앞에서만 승부를 보려는 인간은 크게 성공하기 힘든 겁니다. 사람을 만나고 다녀야 합니다. 약간 불쾌하거나 불리한 정보, 자각도, 결국 나에게 언젠가는 현실로 다가올 문제 아니겠습니까. 현실은 많이 부대끼면 부대낄수록 나에게 이익이 됩니다.

 

일본이나 우리나 다 제조업 성공으로 오늘날의 풍요를 빚은 나라입니다. 끝도 없는 광대한 국토에 넘쳐 나는 천연 자원을 가지고도, 10년 사이에 두 번이나 부도를 선언한 어느 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면 앞으로 한, 일 두 나라는 어떻게 미래를 헤쳐 나가야 할까요. 저자가 제시하는 건 "국민의 창의력"입니다. 창의력이 살아 있는 한, 먹고 살 거리는 뭐가 생겨도 생긴다는 게 결론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창의력마저 고갈되는 그 날, 두 나라의 미래는 진정한 위기가 닥친다고도 하겠습니다.

 

출점이 중요합니다. 신규 점포부터 늘리세요. 바로 이것이 1990년대 우리 나라, 특히 은행가를 휩쓸던 경박한 풍조였습니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그간 무서운 줄도 모르고 점포만 확장하고 보던 은행들은, 바로 생존의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명퇴에 감원에... 경영진의 판단 착오나 직무 유기가 부른 사태를, 일선 직원들이 고스란히 책임지고 수습해야 했죠. 저자는 바로 이런 안일한 자세를 경계합니다. 점유율 상승만을 바라고 무조건 확장 정책을 펴는 일부 제조업 섹터도 마찬가지입니다. 규모보다는 내실이 중요합니다.

 

해외로 진출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만약 그렇게 한다 해도, 성공이 보장된 건 아닙니다. 이미 국내에서 검증된 방식을 또 되풀이하는 건, 창의력이 부족한 루틴의 반복일 수 있습니다. 차라리 국내에서 더 개량된 방법으로 성장을 도모하는 게 안전하기도 하고 일의 보람도 있습니다. 이것이 저자의 주장이나, 저는 이 대목에서는 좀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해외로 나간다고 해도 국내에서와 완전히 똑같은 방식이 통하지는 않습니다. 현지화 과정에서 많은 노력과 적응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한, 성장의 기회는 (일본이나 우리나) 제한된 영토와 인구의 국내보다, 글로벌 시장에서 더 자주 만나게 되는 건 당연합니다. 오히려, 현실에 안주하려는 그런 자세가 현재의 일본처럼 침체된 상황을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나더군요.

 

중요한 건,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자재의 발상과 도전입니다. 이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건 간에, 고인 물은 반드시 썩게 되어 있습니다. 주위에서 뭐라고 하건, 과거의 성공 사례가 어떤 결론을 알려 주건, 나 앞에 대기하고 있는 현실은 언제나 살아 숨쉬고 예측을 거부하는 럭비공입니다. 이시하라 씨의 패기 있는 "나라면 그건?"을, 오늘 내 자신의 업무 환경에도 한번 대입해 보는 겁니다. 구체적인 성과는 안 나와도, 당장 기분 전환의 효과 정도는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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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집 이야기 땅콩집 이야기
강성률 지음 / 작가와비평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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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집안의 지원,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의 건실하고 피나는 노력으로 사회에서 성공을 거둔 후, 그 시절을 느긋하고 아련한 시선으로 돌아보는 것만큼 흐뭇한 일도 없습니다. 요즘은 이런 분들이, "창작 소설"의 형식을 빌려 책을 내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가벼운 회고담, 혹은 "그땐 그랬었단다." 같은 친근한 형식일 수도 있고, 그 내용 중에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의 오폭"이라든가, "치열한 좌우 대립 와중 소중한 인명의 살상" 같은 대단히 무거운 주제가 끼어드는 수도 있습니다. 어느 편이건 간에, 그 나이 또래의 독자에게는 잦은 공감과 진한 회한, 감회를 유발할 것이며, 그보다 어린 독자에게는 "아, 어르신들이 그런 신산한 세월을 살기도 하셨구나." 같은 깨달음을 갖게도 할 것 같습니다.

주인공 이태민은 소설의 시작부터 국민학교 5학년의 모습으로 나옵니다. 아주 재미있는 아이입니다. 우선 아주 개구장이이고, 한시도 가만 앉아 있지 못하는 활기 넘치는 소년이지만, 은근 속이 깊고 타인을 배려하고 싶어하는 성격입니다. 실제로 학급에서 반장에도 여러 번 선출되는 걸로 나오는데(이 소설의 끝은 그가 대학 입시를 치르고 진학에 성공하는 장면입니다), 애들 앞에 막 나서길 좋아하고 독선적인 모습이라기보다, 뭔가 수줍어하며 자주 양심에 (괜히) 찔리기도 하는 은근 내성적인 캐릭터입니다.

태민이가 이렇게 구김 없으면서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성격으로 자라난 건, 그의 부모님의 영향이 아주 큽니다. 굴비로 유명한 전남 영광군 바다에 면한 칠산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가문에서 대대로 종묘와 선산을 관리하던 전주 이씨의 뼈대 있는 집안입니다. 유복한데다 학식도 제법 갖춘 집안 분위기였고, 아버지는 엄청 자상하고 능력도 있으며, 부부 간의 금슬도 중히 여기는 분이지만, 때로는 어머니와 싸움도 하는 혈기가 있습니다. 엄마가 아빠와 싸울 때마다 태민이는 엄마의 역성을 듭니다. "저런 사람하고 엄마는 뭐하러 사는겨?(참 철없는 투정입니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그런 소리 마라. 네 아버지 같은 사람도 어디 있는 줄 아냐? 인물 좋지 집안 좋지, 사람 믿음직하지..." 태민이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엄마 말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하는 말이고, 엄마 역시 번듯한 가문 출신이란 긍지를 몽매에도 안 잊고 사는 분이라서죠.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태민이는, 엄마의 눈에나 아버지가 보기로나, 혹은 무관한 제3자의 평가로나, 아버지를 쏙 빼어닮은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그걸 인정하고 싶건 아니건 말입니다. 그러나, 태민이는 이거 하나만큼은 마음 깊이 다짐합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절대 손을 대는 일은 없을 거야!" 실제로 이 소설은, 정말 다양한, 웃기고도 슬픈 여러 촌극과 실화가 소개되는 중, 주인공인 소년 태민이 "진짜 사랑"을 찾아나가는 스토리로 볼 수도 있습니다.

태민은 유쾌하지만 진지한 면도 있는 소년입니다. 이런 그도 어느덧 사춘기를 거쳐 왕성한 성적 호기심에 눈 뜨는데, ... 경숙, 은경, 점순 같은 여성이 이 소설 후반부에서 그와 잠시, 혹은 길게, 모종의 교감을 나누거나 액션이 돌입하는 이들입니다. 태민에게 큰 기대를 가졌던 담임 선생님 중에 심영진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이분은 대단히 엄격하고 추진력 강한 인사로 별명이 "호랑이"입니다. 어느 날 흥식이라는 학생이  방과 후 귀가 하지 않고, 우연히 빈 교실 밖에 있다가, 심 선생과 여교사 진 선생의 노골적인 정사를 구경하게 되고, 이를 들킨 뒤 심선생에게 아주 호되게 잡도리를 당합니다(그 반대가 아니고요). 이로 인해 흥식은 시름시름 앓게 되는데, ..... 이 소설에는 이처럼 그 작은 시골 마을에서 성(性)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갖은 해프닝이 다 소개됩니다.

성이 주는 쾌감과 일시적 육욕 만족에 휘둘리면 그러나 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탱민은 비록 진학 과정에서 우여 곡절을 겪었지만, 자신의 미래에 대해 큰 희망을 품고 사는, 기본이 바로 박힌 아이입니다. 그는 결국 해냅니다. 이로서 그의 미래는, 작은 고향 마을을 넘어, 호남 전역, 그리고 대한민국을 아우르는 데까지 시야가 넓어집니다. 소년은 주변으로부터 여러 영향을 입지만, 그의 심중에 끝까지 남은 건 긍정적이고 통합적이며 건설적인 마음가짐입니다. 소설 중간중간에 한국 현대사의 큼직한 사건들이 곧잘 스쳐가는 건 이를 암시함입니다. 이어지는 책이 과연 나올까요?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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