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거짓말 말의 거짓말
남재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간만에 읽는, 머리가 뻐근해지는 인문, 사회, 그리고 정치 분야를 속속 파헤치고 진단해 주는 담론서(에 가까운 저널)을 읽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어떤 사람 혹은 어떤 말을 두고 "거짓"이라고 규정하는 행동이 아주 큰 모욕이고, 공격이 된다고 합니다. 사회에서 오가는 수많은 말들 중에, 상당수가 (어떤 이유에서건, 또 누구로부터건 간에)"거짓"이라고 불린다면, 그런 딱지붙임이 거짓이든 참이든 간에 비극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이 진짜 거짓이 아니라고 해도, "거짓말이야!"를 외친 이는 간절히 거짓이라 믿고 싶었다는 뜻이고, 진짜 거짓에 불과했다면, 그렇게 태연히 거짓이 통용되는 사회는 어딘가 병이 단단히 들었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자 남재일 교수님은, 거짓말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눠서 보고 계신 듯합니다. 첫째는 "사람의 거짓말"이요, 둘째는 "말의 거짓말"입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사람의 거짓말이란 말 그대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거짓말을 의미한다고 이해했습니다. 부당한 잇속을 차리기 위해 하는 거짓말,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당장 면전에서 듣기 좋은 언사를 꾸며 댈 때 동원되는 거짓말,... 여기에는 물론, 정치인들, 자본가들이, 무지한 대중,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향해 교묘한 선동, 상징 조작을 할 때 쓰는 수단도 포함되겠습니다. 이런 거짓말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의 각종 현상이나 사건을 볼 때 표피적 관찰에 머물지 않고, (여러 철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이 꾸려 낸 담론의 도움을 얻어) 그 구조의 허구성을 간파할 줄 알아야 한다는 조언을, 저자는 이 책 전체를 통해 우리 독자에게 일러 주고 계십니다.

 

다만 제가 이 책을 읽으며 내내 시원히 풀지 못할 숙제로 다가 온 건, "말의 거짓말"이 대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우선 저는, 표의자의 진정이 가득 담겨 있는, 그리고 논리적 치밀함도 겸비하고 있는 "말"이긴 하나, 당장 그 말이 표의된 시점에서의 현실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탓에, 현상적 거짓으로 판명되거나, 모순 심화의 하부 도구로밖에 기능하지 못하는 담론을 그리 부르시는 것 아닌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음으로, 그 말을 이해하는 입장에서의, 고의적이든 그렇지 않든 소통 과정에서 발생한 곡해, 오해를 통해, 결과적으로 거짓이 되고 만 말들을 그렇게 부를 수 있지 않을지, 급한 대로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이 주제어들을 두고 과연 어떤 식의 개념정리가 가능할지, 또 정(定)해진 정(正)답이 무엇이든 간에, 저는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그 아름답고 우아하게 빚어진 문장에 대해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아한 문장이 흔히 놓치기 쉬운 미덕이, 명료함과 (많은 경우 진정성까지를 그대로 담고 있는) 직설성입니다만, 남재일 교수님의 이 책은 그런 목표들까지도 전혀 놓치지 않고 계십니다. 우아한 문장은 각 문단의 적절한 길이와 내용적 안배가 이뤄져야 돋보이고, 다양한 개념어들이 각기 정확한 의미로서 인용, 원용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은 분들이라면, 인용은 인용대로, 저자분 고유의 주장은 또 그것대로, 참 아름답고도 명쾌하게 구사된 언어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다는 느낌을 받으셨을 겁니다.

 

그러면서도, 교수님은 분명한 자신의 정치적 주장(그는 누가 뭐래도 이 책에서 정치적입니다)을 전달하는 데에, 조금도 머뭇거리거나 모호해지지 않습니다. 그는 그가 규정하기에 타락한 정치인(여기에는 보수정당은 물론, 현 야당 측의 김광진 의원 같은 이도 포함됩니다)이다 싶은 이들에게, 쓰디쓴 고언을 넘어 준열한 단죄를 서슴지 않습니다(여기에서 그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그 유명한 "애정의 결핍"을 끌어오고 있습니다. 특정 세대에게는 사실 너무도 인기 있던 철학자라서, 모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현재 큰 논란을 빚고 있는 모 사이트의 정치적 활동에 대해서도, 잉여인간의 원한과 좌절을 해소하는 수단으로서 정치적 액션을 취하는 그들에게, 정치적 위상을 부여하지 말자는 의미에서 "경멸과 무시"를 처방합니다(여기에는, 이미 나치 발호 시점부터 그들의 허상과 정체를 꿰뚫어 보았던 라이히 같은 철학자의 담론이 적절히도 원용됩니다).

 

문장에는 빈틈이 없고(형식, 내용 모든 면에서 그러합니다), 신랄하면서도 때로 유머를 잊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정말 글이란 (혹시 쓰게 된다면)이런 방법으로 써야겠다는 각성과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직정적 표현으로 시원하게 대중을 대변해 주는 이들도 많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답답한 현상을 타개하려 애 쓰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강력한 논리와 화려한 언변으로 무장한 적수를 시원히 논파해 주는 논객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돈되고 정확한 어휘, 문장, 글월로, 복잡다단한 현상을 그 심연까지 파고 들어가서 이처럼 명쾌하게 규정, 해명, 분석해 주는 글은 근래 참 오랜만에 읽어 보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각 글들이, 어떤 일관된 계획 하에 한 권의 책으로 묶이기 위해서 저술된 게 아니라, 매체에 기회 있을 때마다 기고된 글들을 모은 것이라 더욱 감탄을 자아냅니다. 남재일 교수님께서, 이 가망 없고 출구가 닫힌 듯 암울한 세태를, "한 큐에" 꿰고 정리할 수 있는 종합적 담론을 담은 체계서(體系書)도 가까운 시일에 출판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리 감옥 - 생각을 통제하는 거대한 힘
니콜라스 카 지음, 이진원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스마트 기기의 폐해라고 하면, 이를 지적함에 있어서 특별히 인문적 소양이 필요하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쉽게 말해, "아무나 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도 인문적 패러다임을 그 도구로 하여, 남들이 쉬이 보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의 미래 그 구체적인 패턴 변형까지 지적하는 저자가 있습니다. 바로 이 책을 쓴 니콜라스 카가 그 사람입니다. (작성 중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잡코리아에 없는 취업 멘토링 - 취업준비생을 위한 1인 창조 브랜드 마케팅 전략 36가지
오세종 지음 / 미래지식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취업의 문제가 오늘날처럼 청년층을 괴롭히고 있던 시대는 처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탐색층이, 출산율의 뚜렷한 추세적 저하 덕분에 크게 감소하기도 했음에도 불구, 일자리가 워낙 적다 보니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자조적 목소리까지 나오기도 하죠. 책 제목에 쓰인 "잡코리아"라는 사이트도, 예컨대 단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저 같은 사람도 그 이름은 들어 봤을 정도니까요.

 

취업 때문에 좌불안석인 세대라면, 아마 그 사이트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나에게 맞는 어떤 offer가 없을까"하며 주야로 노심초사했을 만하고, 지금도 역시 그러할 것 같습니다. G20국가답게, 한 번 들어 본 적도 없는 기업 이름이 있을 만큼, 대한민국의 기업은 많고도 많습니다. 평소에는 듣보잡 취급 하고 말았을 이런 기업조차 그 입사가 만만치 않으니, 어르신들이 알아 주기라도 하는 대기업이야 지금 처지에선 언감생심일 뿐입니다. 사실 대기업의 offer야 잡코리아에서 보기도 힘들 것입니다(경력직 모집 제외).

 

잡코리아에서 유, 무형으로 배울 수 있는 요령은 다 배운다 쳐도, 남들 역시 그 정도야 다 갖추고 지원하지 않을까 생각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들이 뭔가 빠뜨렸다거나, 어디선가 소홀히한 그 어느 포인트를 치고 들어 가야 취업의 그 좁은 문을 뚫는 데에 성공할 것입니다. 이 책의 제목은, "이것저것 다 갖추고 빈틈 없는 내가, 더 이상 무엇이 또 필요할지를 점검하게 해 주는 가이드"를 기대하고 있던 독자가, 서점에서 고르게 할 만한 그런 문구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펼쳐 보면, 그런 내용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내용도 있습니다. 오늘 여러 포털에서도 관련 기사가 나왔습니다만, 취준생들을 가장 괴롭히는 건 자기소개서의 작성입니다. 저자는 해당 업계에서도, 그리고 자신의 작품인 이 책 속에서도, 막연하고 뭔가 지향점이 없는 미사여구보다는, 분명한 목표(goal)을 갖춘 컨텐츠를, (한정된 지면일) 자소서 면에 채워 넣을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회사 입사 후 무수히 많이 작성해야 할 보고서 역시, 이 자소서가 예고, 예비해 주는 알림장 노릇을 한다고 해도 됩니다. 자소서가 정신 사납고 틀이 갖춰져 있지 못하면, 그 사람이 사원으로서 올릴 보고서 역시 다 그 모양일 거라고 기대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많은 취준생들이 하는 이야기가, "천편일률적인 건 곤란하니 좀 튀어도 되지 않나?"인데, 튀는 거야 물론 좋지만 그게 회사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튀어야 합니다. 아마, 잘 안 맞는다 싶은 자소서를 보면, 담당자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의 보고서는 훌륭합니다. 그러나, 우리 회사가 원하는 방향은 아닙니다."라고요. 실제로 회사에서도, "한 줄 보고서"의 장점과 미덕을 엄청 강조하는 요즘입니다. 자소서는 과연 보고서의 전조에 해당한다고 봐야죠.

 

저자가 강조하는 것도 그 부분입니다. 어느 회사에 들어가고 싶으면, 그 회사를 연구해야 합니다. 회사에서 가장 어려워하고 신경 쓰는 업무가 바로 신입 사원의 교육입니다. 일 모르는 사람 일 가르치는 것만큼 힘든 게 드물고, (그렇지는 않겠으나) 느낌상 "보람 없는 시간 낭비"처럼 여기는 선임자들도 꽤 됩니다. 그래서 HR도 적성이 되는 고참이 맡아야 그 분야가 잘 돌아갑니다. 그런데 어느 신입사원(혹은 지원자)이, 회사를 철저히 연구해서, 내 마음을 미리 다 알고 던지는 질문마다 정곡을 찔러 준다면, 그런 보석 같은 인재는 입사 후에도 아마 업고 다닐 겁니다. 취업은 이처럼, 간신히 문턱이나 통과할 수준으로 준비해선 안 됩니다. 입사 후에 이쁨 받는 대리, 과장, 부장이 된다는 자세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인턴 경력이 그만큼이나 중요해진 것도 다 이 때문입니다.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그 회사 사람이 되어라."

 

이런 말은 사실 누구나 강조하는 대목인데, 이 책에는 그러나 그렇지 않은 주장도 꽤 됩니다. 예를 들면 저자는 어느 고교에 가서 이런 강연을 했다고 합니다. "대학 등록금 낼 돈으로 좋은 책을 사서 읽어라. 4년 동안 책을 읽으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을 테며, 그게 변변찮은 4년제 대학 졸업장보다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아주 곤란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변변치않은 4년제 대학도, "고졸+ 독서의 달인" 브랜드보다는 낫습니다. 4년 동안의 노력으로 "자기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백만 명에 한 명이 채 되지 못하는 비율일 것입니다. 그런 드문 가능성을 노리고, 파격적인 선택을 하기에는 우리 인생이 디딘 기반이 너무 취약하겠죠. "자기 브랜드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취지이지, 이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아주 곤란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과연 "잡코리아가 강조하지 않는 팁"을 가르쳐 주는 면이 있기는 합니다. 다만, 다른 지원자들이 갖춘 모든 준비와 미덕을 다 갖춘 지원자라야, 이 책의 추가 가르침을 넉넉히 받아 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빼 놓지 말아야 할 점, 이 책은 얼핏 보아 아주 "탈세속적인 튀는 가치"만을 강조하는 별난 책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아주 기본적인 걸 가르치는 면도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게 바로 "외모를 깔끔히 하라"는 겁니다. 저자는 거의 연예인 수준의 단정한 외모를 권하고 있는데, 사실 실력이고 뭐고 다 갖춰도 포장이 시원찮으면 바로 탈락하는 게 요즘의 풍토입니다. "외모 지상주의"다 뭐다 핑계를 대려 한다면, 최소한 취업 전선이나 모범적인 직장 생활은 포기하는 게 차라리 낫습니다. 저자는 그래서, 남들 안 하는 말도, 그리고 남들 다 하는 이야기도, 이 책에서 고루 해 주고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여기서 찾아야 하며, 나머지는 읽는 독자의 몫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국, 다음 30년 - 중국의 씽크탱크와 각 분야 세계 최고 전문가가 전하는 미래 중국의 비전
로버트 포겔 외 지음, 김영경 옮김 / 비즈니스맵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과거 20개의 세기(世紀) 중, 중국이 세계 제일의 풍요를 누렸던 기간이 18개 세기에 달한다."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이며, 새삼스러울 게 없습니다. 이 전제로부터 어떤 결론을 이끌어내는가 하는 건, 개인의 세계관과 성향에 따라 다를 뿐, 정답이 따로 정해진 바는 없습니다. 정답이 따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면, 그것부터가 벌써 전체주의적 불길함을 풍기는 언사입니다.

 

이 책의 원제는 <중국미래 30년>으로, 우리말 번역본의 저 제목은 원제의 느낌을 잘 살려 옮겨졌다는 생각입니다. 말이란 게 언제나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어서, 주어진 선택지 위에 얼마든지 다른 가능성도 있기 마련입니다. 막상 일을 해 보면, 의도에 부합하고 많은 이의 공감을 유도할 수 있는 멋진 안이 도출되기가 그리 쉬운 게 아닙니다.

 

덩샤오핑이 지명한 장쩌민이, 1999년 일본을 방문하여, 땀을 뻘뻘 흘리며 와세다대 학생들의 송곳 같은 질문에 답하느라 곤욕을 치르던 걸 본 기억이 납니다. 불쌍하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한 모습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모습도 다 "도광양회"의 일종이 아니었을까 싶기까지 합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오늘날의 중국을 만들어 낸 가장 직접적 기여자이자, 현재까지도 살아 있는 실세 장쩌민은, 거의 신화적 존재로 회고되고 평가되는 중이라서입니다. 진정 이런 걸 두고 격세지감이라는 표현을 써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든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그것이 어엿한 모습을 형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뭔가 어설프고 마뜩지 않습니다. 다 자라서 세상에 제 활개를 펴는 모습을 볼 때면 그제서야 소급 재평가가 내려지며 "아 본래 될성부른 싹이었어." 같은 아부, 찬양이 이어지는 거죠. 하지만 중국은,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거지 국가, 야만인들"의 평가를 면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18세기가 어쨌다구요? 대륙의 제국은 소수 지배층의 소유였을 뿐, 절대 다수 인민은 그저 농노의 신세를 못 면하는 비참한 반 짐승의 처지나 다름 없었습니다.

 

여튼 중요한 건 현재입니다. 로버트 포겔은 앞으로 10년 후, 중국의 국내 총생산은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 예측합니다(이 책은 2011년에 초판이 나왔습니다. 포겔의 해당 논문은 앞뒤 내용으로 짐작건대 2008년경에 쓰여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구매력 기준 GDP가 미국을 능가했다는 발표가 나온 건, 이 서평을 쓰는 시점 기준으로 바로 그제입니다. 책을 읽는 분들은 참고하십시오). 포겔의 논문은 사실 이 책에 왜 끼었는지 좀 의문입니다. 나머지 글들과 성격도 맞지 않고, 심지어 평소 쓰곤 하는 그의 글들과 비교해서도 스타일이 좀 튀는 편입니다.

 

필자들의 붓 놀리는 모양새란 도도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들이 그처럼 자랑스레 여기는 공맹의 도, 군자의 마음가짐이란 간데 없고(공산 중국의 기초를 놓은 이가, 바로 문화대혁명을 주도하기도 한 마오라고 하죠? 공자고 뭐가 다 때려 없애라고 했던?풋), 그 예전, 조공국에 와서 경복궁을 보고 "삼각산 아래 일개 기와집이구나!"하며 조롱했던 자의 오만함이 가득 배어납니다.

 

민주주의가 아닌 민본이랍니다. 이 민본은 서구에서 배워 온 게 아니라, (편리할 때만 또 등장하는) 맹자의 가르침이 그 연원이라는 거죠(그렇게 민본을 잘 베풀어서 수천 년 동안 농민반란이 쉴 틈도 없이 일어났었는지). 다수결의 원리는 이익 집단의 권력 투쟁 유발 원인에 지나지 않는답니다. 진정한 공동체의 조화는, 지금 공산당이 행하는 것처럼 "집정 집단"에 의한 과두적 통치가 바람직하다는 거죠. 분권 역시 엘리트 지배의 기만적 담보 장치에 지나지 않으므로, 권력이 집중되되 소관 업무가 나뉠 뿐인 "분권"이 바람직하답니다.

 

현재 중국이 고전 중이면 씨도 안 먹힐 선전인데, 잘나가고 있는 중이니 이런 말도 태연하게 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의 수준을 고려할 때, (대만처럼) 소모적 정쟁에 빠져들기라도 하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정치적 논쟁에는 가급적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자국 인민의 성숙함을 (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믿지 않는다는 뜻이며, 국호인 "인민공화국"이 무색한 자가당착의 결론입니다.  손문(쑨원) 선생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과연 뭐라고 했을까요?

 

패권국이란 타의 모범이 될 장점을 많이 갖추어야 합니다. 막고, 가리고, 가두고, 조작하고, 억누르는 정치 체제가 아무리 국부를 많이 축적한다 한들, 그로부터 이웃 나라가 뭘 배울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30년은 그들이 말하는 한 갑자(甲子)의 절반인데, 수천 년이 지나도 미신적 수비(數秘)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깝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합니다. 하긴 남을 탓할 때가 아니죠. 지금 우리의 모습은? 솔직히, 30년은커녕 당장 3년 뒤 어떤 꼴이 되어 있을지가 아찔할 정도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우중과의 대화 -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신장섭 지음 / 북스코프(아카넷)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치인과 경제인(사업가)란 언제나 악마적 공생 관계를 이룹니다. 중국도 고대 이래 언제나 상(商)인은 권귀(權貴)에 편의를 제공하면서, 많은 화폐적 혜택을 입어 왔습니다(화폐의 발행이 지배 세력의 독점 권한이었으므로). 권력은 또한 무력과 권위로서,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고, 이런 기회를 두고, 자신이 애호하는 상인에게 미리 중요 정보를 귀띰하거나, 혹은 칙령, 사실상 압력에 의해 독점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습니다. 사업가는 그래서 언제나 권력자의 주변에서 그 비위를 맞추어야 했고, 권력자는 다양한 편의와 사치를 제공 받아 왔습니다.

놀라운 것은,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 등을 거쳐 현재 자본주의에까지 이행해 오면서도, 이 패턴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청렴 결백한 관료의 미덕이란 교과서나 유교 사서를 벗어나면 현실에서 찾아 볼 길이 거의 없습니다. 최고 권력자는 그 임기가 몇 년이든 간에 언제나 부패했고, 제 분야에서 제 할 일만 성실히 수행하는 사업가란 (어찌 보면) 책에서조차 찾기 힘듭니다. 정(政)과 경(經)은 거의 언제나 유착 관계에 있었으며, 이 책의 주인공인 김우중 창업주의 경우,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그리고 김대중 정부 초기에 이르기까지 한 차례도 남한 수뇌부와 모종의 연이 끊어진 적이 없습니다. 책을 읽지 않아도 여기까지는 다들 아는 내용입니다. 아무리 시사에 둔감한 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이 책이 가르쳐 주는 내용 중 좀 충격적이다 싶은 건 다음의 두 가지일 것입니다.
1. 김우중 회장은 이미 전두환 정부 후기 무렵부터 북 정권과 매우 긴밀한 연락과 친분을 유지했다.
2. 김 회장이 성취하고 잘 홍보했던 업적 중 소위 "세계 경영"이라는 것의 실체가, 생각보다 규모가 큰 것이었다.

좀 부수적이다 싶은 내용 중에서 약간의 놀라움을 안겨 주는 건 "노무현 대통령과 김 회장 간의 관계가 생각보다 돈독했다" 정도 아닐까 싶습니다.

많 은 이들은 대북 사업에서 가장 앞서 갔던 기업으로, 1989년 방북해서 김일성을 만났던 사실 때문에 아마 고 정주영 창업주의 현대를 꼽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도 인용되어 있듯, 이건희 회장은 1994년 당시 "매출액에서는 현대에 뒤지고, 가전에서는 엘지에 뒤지고, 대북 사업에서는 대우에 뒤진다"며 임직원을 질책한 적이 있죠. 이 책에서 저자 신 교수에게 자랑스럽게 털어 놓듯, 그 경색된 상황에서도 결국 최고지도자를 끼고 가장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던 이는 김 회장이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 김 회장 자신이 강조하는 건 "직언"입니다. 최고 권력자, 특히 독재자 주위에는 직언자가 드문 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입니다. 아무리 영리하고 냉철한 인간이라도, 측근자는 언제나 도전자로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몇 전 직언을 용납하다 보면 권위의 실추를 겪게 되고, 감정상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 정치의 문제로서 이런 측근을 경계해야만 하죠. 김일성, 김정일 뿐 아니라 리비아의 카다피 역시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김 회장은 최고 지도자의 은전에 목을 매어야 하는 처지가 아니므로, 독재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와 판단을 비교적 자유로운 위치에서 제공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일단 실용적인 정보와 조언부터가 아무나 제공할 수 없는 희귀한 자원이지만, 김 회장의 경우 그를 넘어 최고 지도자들의 기분과 눈치를 잘 파악하는 탁월한 재주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 대해 김 회장은 아무 언급이 없지만, 그것이야말로 사업가의 밑천이자 승승장구의 비결이요, 어쩌면 자신의 치부와 직결되어 있는 사항인데, 하물며 책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 공개할 리가 만무합니다. 여튼 책을 통해 김 회장이 계속 강조하는 비결은, "눈치 보지 않는 직언"입니다. 이것만으로 독재자로부터 그만큼이나 큰 환심을 샀다는 뜻입니다. 읽는 이들은 고성능 필터를 동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관점에서만 볼 것도 아닙니다. 여튼 그는 갓 개방이 시작될 무렵의 동유럽에서, "대우"라는 브랜드를 어린아이들에게조차 익숙한 브랜드로 만들었습니다. 기업의 마케팅 역량이 전례 없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그 광대한 미개척의 시장, 언어와 인종, 문화가 판이하게 다른 시장에서 그만한 성과를 냈다는 건, 거의 경이에 가깝습니다. 초인이라야 해 낼 수 있는 성과를 그는 그토록 광범위하게 이뤄 내었던 거죠. 지금도 최소한 이머징 마켓 중 베트남에서 이뤄 낸 업적은 저 과거의 성취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문제는 무엇인가. 사업이란 어느 정도의 성과가 나오면, 주주와 투자자에게 공정히 배분하는 절차가 있어야 합니다. 성과란, 가시적이고 손에 쥘 수 있는 달러 뭉텅이가 일단 사업가 본인의 손에 들어 오고, 그 다음으로 돈을 댄 물주들에게 서운치 않은 나눔이 이뤄져야 하죠. 김 회장의 경우, 그가 이룬 놀라운 성과와 빼어난 수완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 성과가 끊임 없는 외적 팽창에 투입되기만 했을 뿐, 그가 빌려 간 그 막대한 자본이 원 주인에게 회수되는 일이 매우, 매우 드물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선단식 경영, 차입 경영은 대우만의 문제가 아니었지만, 대우의 경우는 대체 무엇을 위한 세계 경영이었는지가 의심될 만큼, 내실과 중간 정산을 외면한 사업 확장에 집착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이미 대우는 1991년에 조선發 부도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전혀 사업의 방향을 전환하지 않은 채 기존의 패턴만 일관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황제식 경영의 폐단은 대우에서 아주 집약적으로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그는 자신의 장점에만 나르시스적으로 빠져 있을 뿐, 일단 큰 문제를 일으킨 단점에 대해 전혀 돌아보지를 않았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또 나오는 그의 말은 "GM이니 뭐니 하는 미국 굴지의 대기업도, 실제 경영하는 모습을 보면 허술한 구석이 많이 보였다."입니다. 그런데, 시스템에만 의존하는 행태도 물론 문제지만, 대우처럼 한 천재적 개인이 전사적으로 간여하고, 회장 한 사람이 빠지면 되는 일이 없는 기업도 문제입니다. 둘 중 굳이 택일을 해야 한다면, 당연히 안정적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쪽을 골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일성 부자와의 에피소드도, 그처럼 잦은 방북(정주영 씨의 경우, 국가 보안법 위반 여부가 문제되자- 당시에는 아직 교류 기본법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정부에서는 "통치행위"라는 궁색한 구실을 내걸기도 했습니다)이 있었으면 그것만으로도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만큼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책에 소개된 건 딱 하나입니다. "김 회장이 체제 상호 보장을 거론하자, 김정일이 '남쪽의 보장이 없으면 우리가 존속할 수 없기라도 하단 말인가'며 고성을 내었다. 밖에서 듣던 이들은 '이제 김우중은 남으로 귀환 못한다'며 술렁였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김 회장 자신은 결코 저자세로 대북 사업에 임하지 않았고, 당당한 태도를 견지했다는 메시지를 애써 전달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요? 진실은 현장에 있었던 이들이나 알 수 있겠죠.

이 책의 핵심은 아무래도 외환위기 당시 "대우 자산의 헐값 매각"과 "정치적 외압    " 여부입니다. 그럭저럭 잘 굴러갈 수 있는 기업집단을 공중 분해시켜, 국부의 유출과 손실을 공연히 입었다는 주장입니다. 이 점에 대해 저자 신 교수는, 이헌재 전 부총리의 주장과 김 전 회장의 주장이 어디서 어디가 다른지를, 상세한 표와 함께 정리하여 책에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사건 당사자의 일방적 주장 정도를 넘어서는 건 이 점에서 분명합니다.

과연 대우는 당시의 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기업이었나. 대우만큼 오너 한 사람의 역량에 많은 걸 기대는 기업이 없었으므로, 기업의 역량 평가는 이 경우 결국 김우중이 과연 빚을 갚을 만한 사람이었냐로 바꿔 물을 수 있습니다. 빚을 갚을 능력이 되는데도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당시의 정부가 중대한 판단 착오 혹은 부조리를 저지른 것으로도 볼 수 있겠죠.

하지만 대우는 이보다 훨씬 이른 시점부터, 유동성 경색의 위기에 몰린 적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특혜 시비를 유발했고, 청구 유예는 물론 추가 자금 지원까지 챙기곤 했죠. 1999년에도 같은 방법으로 당시 정부가 대처했다면, 아마 엄청난 정경 의혹 유착이 일었을 겁니다. 당시의 취약한 기반으로는, 정권이 그 의심의 식선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으라는 것도 짐작이 됩니다. 책에서도 김 전 회장의 "투정"은 주로 이헌재 등 실무자 선을 올라가지 않습니다. 독자가 기대한 건, 당시 정부에 뭔가 밉뵈어 (예컨대 전두환 시절의 국제그룹처럼) 부당한 운명을 맞이했다는 "뭔가 한 방" 같은 거였겠지만, 그런 건 유감스럽게도 없습니다.

김 회장은 막판까지 승지원에서 이건희 회장과 소위 "빅딜"을 두고 심야 담판을 시도하는 등 필사적이었습니다(대우의 가전을 주고 대신 삼성자동차를 받는). 우리가 다 알다시피 이 협상은 무산되었고(일부 신문에서는 일이 성사된 것처럼 오보를 내기도 했죠), 그 결과는 대우의 공중분해였습니다. 증권 등 일부 업종에서 여전히 대우라는 브랜드가 시장 인지도면에서 퇴색하지 않는 걸 보면, 김 전 회장이 이뤄 놓은 업적의 무게가 만만치 않음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공은 공대로 인정하면서도, 이미 한계 상황에 달했던 부실 경영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단군 이래 추징금 규모로 능가할 자가 없는 특등 경제사범이 된 김 회장은, "중복 계산에 징벌적 의도로 이처럼 고액이 매겨진 건 부당하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며, 저자 신 교수가 (자신의 전공과는 무관하게) 법리적 관점에서 이를 다시 가다듬어 주고 있습니다.

확실히, 벌금도 아니고 추징금에서 "징벌적" 추산을 행한 건, 영미법이 아닌 독법계를 따르는 우리 법제상 무리한 처사입니다. 아마도 저는, 형벌인 "벌금"으로 처리할 경우 "사면"의 형식으로 유야무야될 수 있기에, 부가형인 추징금으로 이의 감면을 어렵게 한 숙려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법리적으로는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연 어떨까요? 이에 대한 판단 역시 독자가 해야 할 몫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