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 불멸의 인생 멘토 공자, 내 안의 지혜를 깨우다
우간린 지음, 임대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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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같은 조직 안에서 오랜 시간 동안 호흡을 맞춰 온 팀원 사이라고 해도, 회의나 의견 조율을 할 때마다 항상 바람직한 결론을 도출하고 잘 마무리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마무리가 잘 되는 때보다, 그렇지 않고 분위기가 험악해진 채 간신히 봉합되거나, 심지어 회식 자리에서까지 감정의 앙금이 남아 폭발하는 수도 있죠. 원활한 소통은 조직의 작둉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이 이치는 비단 조직(2차 집단)에서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가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사랑과 애정만으로 모든 다툼과 갈등을 해결할 수는 없고, 합리적이고 일관된 방식으로 의사의 교환이 이뤄져야 합니다. 

 

토킹 스틱 하나로 기적이 이뤄질 수 있는가? 그렇지는 않겠죠. 그렇다고 하면 그건 과장입니다. 다만, 다른 사람이 한 마디 하려고 할 때 괜히 끼어들어 그의 심기를 상하게 한다든가, 다른 사람의 말을 곡해하여 차라리 아무 반응도 안 보이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 온다든가, 이런 불미스러운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 보다 바람직한 소통을 이루는 데 성공한다면, 그건 눈에 확 두드러지지는 않으나 작은 기적이라 불러 줘도 될 만큼 가치 있는 일입니다.  

 

이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이 남기신 서평을 찬찬히 훑어 보았습니다. 대체로 토킹 스틱의 효용, 그리고 이 토킹 스틱이 활옹되는 자리에서, 그 분위기 형성의 전제가 되는 "주술적 상징"에 대해 관심을 표현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p48에 보면 "방위의 노래"라고 해서, 우리의 상상이나 선입견을 훨씬 뛰어넘는, 아메리카 토착민들의 관념과 상징 체계가 아주 자세히 도식화되어 있습니다. 대화와 소통을 위한 실용적 메커니즘 문제를 넘어, 인문학적 시야에서도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었습니다.

 

아메리카 토착민이 이 체계를 활용하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백인 못지 않게 호전적이고, 싸움에 일단 임했다 하면 물러설 줄을 모르는 용감한 종족이었죠. 그런데, 이런 그들이 모여 살다 보니, 아무리 넓은 대륙이라고 해도, 또 아무리 교통 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 상황이었다고 해도, 자칫하다간 전쟁으로 절멸할 수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인식을 과연 당사자들이 실제로 가질 만큼 분별이 있느냐인데, 그들은 이런 소통 체계를 실제로 고안해 내었으니 충분히 현명했다고 하겠습니다.

 

제게 큰 인상을 남긴 건 그 중에서도 세 가지 사항이었습니다. 하나는, 대화에 참여하는 성원들이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면, 반드시 그 자리가 상징하는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규칙입니다. 그 사람이 평소에 어떤 성향이며, 어떤 처지이냐에 무관하게, 그 사람이 현재 맡은 자리에서 해야만 하는 의무로서 이 과업은 그에게 부과됩니다. 공(公)과 사(私)를 준별하는, 대단히 엄중한 룰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차지하는 자리는 다음 순번에는 반드시 바뀐다는 사실입니다. 문자 그대로 역지사지의 원칙 구현이며, 이번에는 타인의 입장에서 열심히 그 입장을 대변해야 하니, 그 사고와 태도가 더욱 성숙해지는 계기가 마련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스틱을 넘겨 받은 사람은, 바로 앞 사람의 발언에서 나온 표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받아서 반복한 다음, 자기의 말을 해야 한다는 조항입니다. 이때 괜히 다른 말로 대체한다거나(paraphrasing), 더 강한 의미로 강조, 과장하면 그건 규칙 위반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시대가 거의 천 년 가까이 흐른 지금에 통용되는 토론, 토의 규칙을 오히려 앞서 나가는 면마저 있습니다.  

 

저자의 주장에 다 동조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절차와 체제를 갖추고 있던 그들은, 왜 백인의 손에 망하고 말았을까요? 단지 백인이 악하고 비도덕적이었다는 설명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뭔가 그들의 문화에 자체 결함이 있었기 때문에 패배를 겪은 것입니다. 저자가 설명하는 것처럼 그들의 문화와 상징, 신념, 가치 체계가 완벽했다고는 생각이 안 됩니다. 미국 헌법 제정과 독립 당시, 건국 선조(파운딩 파더)들이, 이 토착민들에게서 강한 영감과 영향을 받은 건 사실입니다. 아마도, 그들이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을 유럽 문화권에 대한, 일종의 과시적 선언 의도로서 이를 끼워 넣은 것도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토착인들이 완전히 축출된 건 미국 독립 후 거의 반 세기가 지나서의 일입니다. 조지 워싱턴 시절의 미국 백인 문명은, 원주민을 완전히 몰아낼 만큼 위력과 성숙함을 갖추지 못한 처지였습니다. 

 

아무튼 제가 그간 읽었던 미국 건국 초기(혹은 그 이전의) 문헌에서. 왜 그토록 "이로쿼이" 등 특정 토착 부족에 관한 언급이 잦으며, 또 좀 별다르다 싶은 외경심이 살짝 입혀진 말투로 언급되고 있었는지, 이 책을 읽고 더 깊은 이해를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고, "토킹스틱 회의, 소통"을 자기 일상이나 업무에서 실천해 보고 싶은 분이 있을까요? 전 좀 쑥스러울 것 같군요. 그러나 그들의 대화 정신만은, 앞으로도 회의할 때나 각종 모임의 절차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좀처럼 잊혀지지 않고 인상 깊은 지침으로 계속 남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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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장腸 여행 - 제2의 뇌, 장에 관한 놀라운 지식 프로젝트 매력적인 여행
기울리아 엔더스 지음, 배명자 옮김, 질 엔더스 삽화 / 와이즈베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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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우리의 소화를 담당하며 모든 양분의 소화와 이를 통한 공급의 중추적 기능을 맡아 하는 기관은, 근래의 연구에 따르면 제 2의 뇌라고까지 평가된다고 합니다. 제 2의 뇌라는 평가는, 비유적인 의미에서도, 그리고 기술적인 차원에서도 공히 타당합니다. 이미 여러 분야의 전문가, 또 저술가들이 입을 모아 내어 놓는 평가이므로, 심지어 자계서 최신간 여럿만 읽은 독자라고 해도 그 대략의 내용에는 익숙할 정도 아닐까 짐작합니다.

 

1980년대부터 유독 한국인은 국민 소득 수준이나 식생활 패턴과도 무관하게, 장 관련 질환을 자주, 그리고 일찍이도 앓아 왔음이 통계에서 드러납니다. 대단히 흔한 과민성 장 증상부터 해서, 보유자의 물리적 생존을 위협하는 대장암까지의 다양한 고통과 질병들이, 촘촘한 스펙트럼을 그리며 우리의 일상에 (불쾌하고 불길한 의미로) 가까이도 둥지를 틀고 있었습니다. 국가나 개인이나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리며 성취해 온 물질적 자산의 축적 경과는 누가 봐도 놀랍지만, 그 과정에서 경제 활동 인구 개개인이 자신의 육체와 정신(특히) 양면에 쌓아 온 스트레스가 엄청났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왜 머리가 고생하는데 장이 아픈 것일까?" 같은 소박한 의문을  의학 전문가 아닌 문외한 수준에서 이미 제기해 왔다고 봐도 됩니다. 이에 대한 어느 정도 정리된 답이 최근에서야 쉬운 포맷으로 대중에게 전달되는 셈이겠구요. 그런데, 아무리 의료인의 수준에서 명료해 보이는 답도, 일반인이 쉬이 이해한다는 건 좀 무리한 기대에 가깝습니다. 이 일을, 놀랍게도 아직 20대 중반의 나이인 어느 전문가(라고는 하나 통념으로는 그저 의대생 취급이나 받으면 충분한 이)가 시도하여 세상에 내어 놓았네요. 그게 바로 이 책입니다.

 

"매력적인 장 여행"이란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는, 그토록 많게, 정체와 기능상의 비밀을 간직하며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우리의 의식을 조종해 온 "장"이라는 녀석이 꽤 매력적이라는 뜻입니다. 뇌 못지 않게 장도 매력적이란 말이야!라고 외치는 저자의 모습이, 책을 읽다 보면 눈 앞에 선히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하나는, "장 속을 여행한다는 그 자체"가 즐겁다는 뜻이겠습니다. 어렵고 낯선 분야를 이해하는 데에, 불친절한 저자가 가이드로 동행한다면 그 여행은 하나도 매력적이지 않고, 여행이라기보다는 고역에 가까울 것입니다. 이 책은, 본래의 목적이자 과제인 여행이 너무도 즐거울 뿐 아니라, 안내를 맡은 가이드가 너무도 매혹적이라, 그 매력이 두 배가 되는 여행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장의 기능과 구조에 대해 그간 여러 준(準) 의학 서적(대중서), 그리고 (위에 적었듯) 심지어 자계서에서조차, 문외한들도 이해 할 수 있는 좋은 설명을 시도하고는 있었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책들은, 그런 시도가 성공하기 위한 첫째 조건인 "눈높이 맞추기"에서 미흡한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이 책이 최적인 이유는 사실 달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저자의 자격과 능력, 그리고 "태도"가 최상의 조건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대단히 총명하고, 허세 없이 우리 독자들의 눈높이에 최대한 그 시선을 맞추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건 바로 그녀의 나이가 아직 어리다는 사실이 크게 한몫하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입니다. 제아무리 우수한 두뇌를 지녔다 해도, 이 분야가 순수 기억력이나 퍼즐 해결 능력, 혹은 자연과학으로서의 화학에 대한 흥미만으로 쉽게 초심자에게 다가올 수 있는 성격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공부하면서 아마 힘들었다 보니, 그 "초심"을 잃지 않고 독자들에게 가식 없이 접근한다는 생각으로 의도를 잡았고, 그 결과물이 이처럼 쉽게 재미있으며, "매력적인" 결과물로 빚어진 것 아니었을지요.

 

책을 다 읽고 실천적으로 정리하고 받아들인 교훈이 많습니다. 나의 체질에 비추어 어떤 음식을 더 가려 먹고 더 챙겨 먹어야 할지, 일상의 자세는 어떻게 잡아야 할지, 막연히 "이게 좋다"는 식이 팁이 아닌, 원리를 알고 이해해야만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고마운 지식들이 많았습니다. 또 하나 배운 점이 있다면, 자신이 다루는 모든 분야에서 이처럼 모종의 "매력"을 찾으려는 마음가짐, 태도가 있어야, 자신의 영역에서 대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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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의 자전거 세계일주 1 : 중국편 - 너와 나, 우린 펑요 찰리의 자전거 세계일주 1
찰리(이찬양) 글.사진 / 이음스토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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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많이 했던 작품입니다. 처음의 제목은 <찰리의 자전거 여행>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받아 본 책(공을 많이 들인 책이라서 그런지, 겉도 속도 참 예쁩니다)의 제목은 <찰리의 자전거 세계 일주>네요. 물론 저자 이찬양씨의 이름이 "찰리"이며, 이 책 제목 그대로 자전거 하나로 세계 일주를 하는 분입니다.

 

우리 인간은 냉정히 말해 환경의 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태어난 환경 그대로에 머무르면, 갖고 자란 기질, 천성의 한계, 그리고 낳아 주신 부모님에게 받을 수 있는 미덕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큰 사람이 되려면, 지금보다 나은 인생으로 거듭나려면, 배우고 익혀서 정신의 눈을 키워야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육체의 성숙, 나아가 타인과의 관계와 소통의 차원까지 높인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며 간접 체험의 폭을 넓히며,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직접 체험의 수단으로 여행을 시도합니다.

 

책은 사람에 따라 그렇게 잘 맞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만약 아니라면, 출판계가 이처럼 불황에 시달려 할 이유가 없을 테죠). 하지만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시간과 돈의 여유가 있어 유람을 자신의 취향에 맞춰 다녀오는 분들도 있을 테고, 저처럼 막 모종의 여정을 일 관련으로 마치고 온 처지도 있을 것입니다. 매번 보고 스치는 것만 접하다, 타지에서 확 다른 풍광을 몸에 끼얹고 돌아 오면 기분전환이 되는 것은 물론, 정신적으로 각성의 느낌을 받습니다. 여행은 그래서 일개 도락이 아닌, 교육의 일환이자 거듭남의 방편입니다.

 

저자 이찬양씨가 바로 그런 분이 아닐까 합니다. 약력만 보아도(책을 읽기 전부터 약력을 읽을 수 있었고, 참 대단한 분이다 싶었습니다) 그는 소위 글로벌 마인드를 지닐 수 있는 가정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이더군요. 아마도 그 끼를 주체 하지 못하고, 혹은 배움에의 강렬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그는 자전거 한 대에 몸을 싣고(사진을 보니 확실히, 패셔너블보다는 내구성에 주안을 두는 분이라는 걸 알겠습니다) 세계를 그저 몸뚱아리 하나로 일주하겠다는 포부로 무작정 나섭니다. 대단합니다. 자신의 말대로,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반드시 있기 마련인데도 말입니다. 여행의 기쁨이 있으면, 그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얻을 수 있었던, 혹은 가시적으로 희생한 그 무엇이, 그로서는 작지 않은 것이었을 텐데도, 그는 감연히 여행길에 나섭니다, 대단한 결단입니다.

 

기독교의 성경에서도 왜 "빛과 소금"이라는 말이 나오듯, 소금이란 인간의 삶에 있어 그 부존재를 감당할 수 없는 중요한 물질입니다. 일개 소금장수에 불과했던 황소가, 그를 통해 축적한 부(富)를 기반으로 난을 일으켰고, 그 부 축적 활동 와중에 쌓았던 인간 관계와 나름 터득한 지혜에 기대어 감히 천하를 갈무리하려 했던 그 행적에 비추어서도, 이 소금이라는 물질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찬양씨는 중국 여행(말이 중국이지, 얼마나 광대한 곳인가요! 이 책이 전 중국을 다 커버한 것도 아닌데, 책 두께가 이처럼 두꺼운 걸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더군다나 사진도 많지만, 다른 여행 서적에 비해 텍스트 양이 적지 않은 편인데도요)의 시발점을, 장쑤 성(강소 성)으로 잡고 있습니다. 옌청의 "옌"은 소금 염(鹽) 자입니다. 장쑤 성 밑의 저장 성(절강 성)에, 5대 10국 시절 오월(오와 월의 합칭이 아니라, 그냥 나라 이름이 오월입니다)이라는 나라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 나라를 세운 시조 전류가 바로, 소금 장사로 큰 부를 모은 경우죠.

 

보통 여행 서적을 보면 인문적 통찰이 그리 두드러지지 않은 채, 간단한 느낌이나 흔한 통념만 적고 예쁜 사진만 가득 채우는 일이 많습니다. 사실 우리들도, 어딜 여행 갔다 하면 "남는 게 사진이다"며 이런 태도에서 거의 벗어나질 못합니다. 이 책은 사진도 많지만, (앞서 적은 것처럼) 텍스트가 참 많은 편입니다. 지명을 한자(漢字)로 일일이 같이 적어 주는 태도도 친절하고, 저렇게 "소금 염"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깊이 있게 언급하는 것(그러나 이 서평에서 5대 10국 운운은 제 생각이고 작가분의 언급은 아닙니다)도 돋보였습니다.

 

책에는 무엇보다 "사람"이 넘쳐납니다. 여행길에서 만난 이들, 그 중 며칠을 같이 머무르며 친분을 쌓은 이들, 재래 시장에서 물건을 사며 잠시 스쳐 지나갔을 뿐이지만 그새 깊은 공감을 주고받은 이들... 사진에 잘 담겨진 풍광도 보기 좋지만, 책에서 가장 두드러진 건 못나든 잘났든 구질구질하든 산뜻하든 저마다의 정과 깊이와 색깔을 간직한 사람, 사람,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사진상의 모습으로는 그런 인상을 안 받았는데(죄송합니다 ㅎ) 작가분은 신신실한 기독교 신도이신가 봅니다. 성함이 물론 이찬양이시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속단할 수 없는 문제인데, 작가는 여행 곳곳에서 큐티를 통해 마음을 다잡고 힘을 얻는 모습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결국 작가분이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어느 곳에서나 서로 통하는 바가 있다(예: 재래 시장의 음식은 싸고 맛있다)." "겉으로 모든 걸 판단할 게 아니다. 누가 중국 땅에서 영어로 능숙하게 말을 걸어 오는 노인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겠는가?"

 

반면 자신의 지식, 그리고 인식상의 한계를 쉬이 인정하고 반성에 잠기는 모습도 엿보입니다. 지금 이곳은 중국 남부라서, 장쑤 성, 저쟝 성, 그리고 광둥 성까지 죽 내려가다 보면 해협을 사이에 두고 대만이 나오죠. 현지의 지도를 보니 대만은 중국의 성 중 하나로 표시된 걸 보고 놀라는 모습이 나옵니다. 현지인들의 인식 역시 "당연히 중국의 성(省)인 것을 무슨 소리인가?" 같은 반응입니다. 여기서 하는 말이 걸작이죠. "나도 중국에 태어났더라면, 당연히 그렇게만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아는 대로, 대만은 중국의 행정력이 미치지도 못하고, 진입하려면 출입국 절차를 밟아야 하는 별개의 주권 영역입니다. 현실이 그렇습니다.

 

여행은 분명 나의 한계를 깨치고, 더 나은 자아를 구축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 중 하나입니다. 자전거 하나에 몸을 싣고, 나 아닌 다른 사람, 내 겨레가 아닌 이족의 생활과 풍습을 보고 더 나은 미래와 비전을 도모함은, 우리 누구라도 작은 가슴에 품어 온 하나의 소망입니다. 신중하게 쓰여진 이 책(앞부분은 2007년에 쓰여진, 즉 2007년에 답사한 기록이더군요. 그는 장장 7년 동안 자전거 하나에 의지해서 세계 일주를 마치고 이 책을 이제 펴내기 시작한 겁니다.....)을 통해, 우리는 그 대리만족을 충분히 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의 여행을 대신 떠나 주는 이찬양씨의 후속작, 정말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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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말해줘
존 그린 지음, 박산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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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의 최대 미덕은, 물론 감동적인 이야기 구조의 창조에도 있습니다. 아직 한창 나이들이고, 더군다나 학교 최고, 아니 그 지역 일대에서 최고 킹카로 소문난 남자애가, 얼토당토 않게만 느껴지는 암에 걸려서 곧 죽을 운명이라니, 세상에 이처럼 부당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살 만큼 산 늙은이들 중에, 남에게 몹쓸 짓을 한 극악무도한 치들도 많을 텐데 말입니다. 천도(天道)라는 게 있으면 그런 것들을 먼저 데려가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대체 그 생떼같은 소년에게 무슨 죄가 있다는 건지요. 그래서 소설 제목은, "인간에게는 무슨. 잘못은 그저타고난 별자리에나 있었을 뿐인가보지." 같은 냉소적, 체념적 어구를 달았던 것이었습니다.

 

이 소설 <이름을 말해줘> 역시, 존 그린의 진짜 재능이 어디 있었는지를 확연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전작이 이야기상 그 이상으로 비극적일 수 없는, 대단히 부조리한 스토리를 다루고 있었고, 뻔히 예견할 수 있는 주인공의 죽음이란 결말을 영리하게 예비하는 데에 성공했다면, 이 작품은 그 비결을 고스란히 살려 가며, 전작에서 심각하게 상처 받은 마음을 능수능란하게 어루만져 주고 있었습니다. 그 비결이란 바로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존 그린만의 천재적인 말솜씨와 재치입니다.

 

영미소설의 진짜 매력에 대해 우리 국내 독자들은 간혹 오해하는 바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고급 문예를 이끌어가는 선두 주자이고, 이미 동양의 그것을 역전한 지 오래인 문예, 그 전통의 어드밴티지를 입어 그 깊이와 우열 면에서도 (솔직히) 우리의 것을 넉넉히 앞지릅니다. 그들 역시 그들만의 정서와 느낌에 갇히는 바 없지 않을 텐데도, 이를 달성하고 남은 힘만으로 지구 반대편의 우리들에게까지 이처럼이나 보편적인 공감을 전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존 그린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진짜 강점은 쉴새없이 터져 나오는 고급의 유머와 해학에 있습니다. 물론 이 작품에서 존 그린 특유의 말장난은, 전작에서만큼은 돋보이지 않습니다. 전작의 경우, 감당이 안 되는 최루적 상황이, 현란한 유머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일종의 호조건이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반면, 이 작품 <이름을 말해줘>는 어떨까요? 주인공 소년(결국 전작처럼 초점은 남주에게 놓인다는 것 역시, 아직까지는 눈에 띄는 설정상의 한계이자 여성 독자들의 불만일 것입니다)이 천재형 두뇌를 가진 것으로 나오기에, 또 저들 문화권에서는 재담(才談)의 만발이야말로 정신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하나의 증거로 보기에, 이 소설에서 어느 정도 말의 향연이 펼쳐질 지야 독자들이 그 마음의 준비를 잔뜩 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습니다.

 

냉정히 말해 약간 쉬어가는 작품으로도 보입니다. 존 그린의 작품은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잘 돌아가는 두뇌를 가진 인물을 등장시키는 편을 선호하죠. 전작에서는 비록 조연이나 플롯의 핵심에 기여하는 (노년의) 네덜란드 작가가 나왔었고, 이 작에서는 보시는 대로 (어린) 남주 자신이 그런 인물입니다. 본디 장유유서의 개념이 없는 그들이지만, 여튼 우수한 두뇌의 힘을 빌려서건 (그렇지는 못하나) 순수한 마음의 원활한 작동에 기댄 재치의 발휘이건, 날카롭고 재치있는 언사의 대결 역시, 언제나처럼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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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 레터스
헌터 데이비스 지음, 김경주 옮김 / 북폴리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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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의 발달로 대중의 시대가 본격 개막한 이래, 비틀즈만큼 전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켰던 예인 집단은 아마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밴드를 이룬 4인 중에서도, 특히 사실상의 리더였던 존 레넌은, 뮤지션으로서 이룬 음악적 성취와, 인도주의자, 평화애호가, 그리고 뚜렷한 개성을 지닌 한 인간의 행적, 이 두 가지 면에서 강력한 인상을 당대인, 그리고 후대인에게 남겼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한 정신이상자의 습격을 받아 유명을 달리한 충격적 사건 때문에, 존 레논은 그를 사랑하던 이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그를 딱히 사랑하지 않았거나, 무시로 그가 대중을 향해, 정치인들을 겨냥해, 타락하고 폭력적인 세상을 두고 던지던 메시지 때문에, 그를 꺼리기까지 했던 이들에게조차, 깊은 인상을 주었고 특별한 존재로 남게 되었습니다. 최근의 신해철 씨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아직 때가 아닌데 일찍 갔다"고 여겨지는 이들, 특히 예술인들은, 더 각별한 의미로 동시대의 살아 남은 자들 그 뇌리에 새겨지는 지도 모릅니다. 그 죽음의 과정이 안타까울수록, 혹은 불의스러움이 더 깊이 개입했다고 여겨질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어쩌면 그는 이 충격적인 죽음을 통해, 일종의 신화로 남았는지도 모릅니다. 존 레논은 물론 아름다운 목소리, 그리고 그가 남긴 노래들을 지구촌 곳곳의 누구라도 애송, 애창하는 그 범위와 실태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인류가 배출한 뮤지션 중 단연 첫째, 둘째의 왕좌에 놓여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 음악성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논자에 따라서는, 음악적 역량으로만 따지면 같은 팀의 폴 매카트니에 미치지 못했다고 평하는 이도 있습니다(물론, 예인의 능력치 순위를 매기는 것만큼 미성숙하고 불필요한 소동도 없다는 점에서, 누구 사이의 무슨 우열을 따지는 일은 진정 무의미합니다). 하지만 매카트니의 그것에 비해, 존 레논의 현재 위상이란 단순 비교가 좀 어려울 만치 높아져 있습니다. 그는 거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어떤 위격을 가진 반신(半神)적 존재나 아닐까 때때로 착각될 만큼입니다.

이 책은 존 레논이, 그의 지인들과 연인, 그리고 다양한 관계자들에게 띄운 서신을 모아 놓고, 이를 비평적으로 분석하거나 회고하는 책입니다. 제목이 저렇게 되어 있어서 정말 편지만 모아 놓은 책인가 보다 하고 잘못 생각했더랬습니다. 존 레논의 노래들을 평소에 흥얼흥얼 읊는 이들이라고 해도, 그가 보인 후년의 다분히 정치적인 행보에 대해서는 불편해할 수 있습니다. 아마 그런 사람이라면, 그가 남긴 편지에 대해서도, "또 무슨 설익은 평화주의자 특유의 몽상적 푸념이나 잔뜩 담겨 있을 듯" 같은 오해나 부르기 쉬울 것 같은 겉모습이었죠.



사진에서 보시듯, 책은 제법 큰 사이즈에 두껍기까지 합니다. 펼쳐 보면, 고급 백상지에 천연색 인쇄더군요. 이런 책치고는 값이 비싸지 않은 편이라(비슷한 사양에 3만원대 후반~ 4만원대 초반까지 매겨지는 경우를 많이 보아서요), 아 내용은 그냥 레논의 편지만 줄창 나오겠구나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저자들의 설명과 분석, 주석, 평가가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네요.




그가 보낸 엽서(위에 적었지만 천연색 인쇄라서, 당시 이런 예쁜 엽서가 발행되었구나 같은 눈호강을 독서에 겸할 수 있습니다. 우표도 아니고 민간에서 자유로이 찍을 수 있는 엽서야 하긴 얼마나 많겠습니까만, 이것이 존 레논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실물이 아니라 책에 인쇄된 모습으로도 참 귀하게 여겨지던데요), 편지 여백에 남긴 재미있는 낙서, 그리고 존 레논과 그 주변 인물들을 담은 다양한 시기의 사진들이 실려 있습니다. 이런 도판의 양이 꽤 많습니다. 거의 두세 쪽을 넘길 때마다 두어 컷은 꼭 나오는 비율입니다. 솔직히 보기 드문 이런 컨텐츠를 구경하기만 해도 책 읽기의 본전은 뽑고도 남는다고 생각이 든다는 점에서, "책값이 싸다"는 생각, 다 읽은 후인 아직도 떨칠 수 없습니다. 흐뭇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참 존 레논에 대해 아는 게 없었구나"하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그가 데뷔하기까지 거쳤던 이런저런 업계의 실력자들, 신인 시절부터 전성기, 그리고 사회활동가로서 사실상 전업하기까지 계약 관계에 있었던 업자들과의 사연은, 다른 책이나 신문 특집 기사에서 피상적으로나마 접해 왔었지만, 이 책에는 그보다 훨씬 풍성하고 심도 있는 에피소드, 아니 역사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들려 주고 있었네요. 그래서 이 책은, 인물 평전이자 한 예인을 통해 바라본 단대사라고까지 여겨졌어요.




번역도 세심합니다. 아시다시피 존 레논은 그 무수한 히트곡(이렇게 부르자니 너무 그를 세속적으로만 평가하는 것 같아 좀 삼가지기까지 합니다. 이제는 일종의 경전이 되기도 한 셈인데요)의 가사를 손수 지은, 시인을 겸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가 남긴 짤막한 글귀, 엽서에 적은 소회 등은, 그가 유명인(셀러브리티)이라서 값지기만 한 게 아니라, 어떤 문학적 가치까지를 부여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책에서 알 수 있듯, 그는 간단한 느낌을 친우들과 나눌 때도 예사롭지 않은 감각으로 어휘를 골라 썼습니다. 쓰는 말이 어렵다는 게 아니라. 그 단어를 이런 문장과 맥락에 사용하는구나 하는 생경함, 그리고 감동 같은 느낌이 들게 말입니다. 1960년대 극심한 인종 차별과 사회적 갈등 때문에 사분오열된 미국을 두고(오죽했으면 1968년 대통령 선거에 나선 공화당의 닉슨이 "TO BRING US TOGETHER"를 모토로 내걸었을까요), the disunited states라고 비꼰 대목이 있습니다. 물론 미국의 정식 국호인 the United States를 뒤튼 것입니다. 이 문구를 역자는 "비(非)합중국"이라 옮기고 있습니다.  흐뭇한 웃음이 나왔고, 책 한 권을 꾸려내는 출판사의 성의와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네요. 독자로서는 고마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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