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미 그린 달빛 2 - 달무리
윤이수 지음, 김희경 그림 / 열림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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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나쁜 우두머리 내관 성씨가, 라온을 제대로 골탕먹일 의도로, 궁중에서 찬밥 신세인 박 숙의를 모시는 직분을 맡깁니다. 박 숙의는 임금의 후궁인데(임금은 물론 순조이겠고, 박 숙의 역시 일단은 실존 인물입니다). 정궁 순원왕후의 등쌀 때문에 철저히 소외되고 핍박 받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이런 분을 모시는 내관이라면 그 역시 피곤하고 위태로운 처지로 덩달아 떨어지기 쉬운데(내명부를 대놓고 모욕할 수는 없으니 그 나인이나 내시가 대신 고생을 하는 건 흔히 보는 일), 라온은 "순진해서인지 성실해서인지" 제 몸 힘든 건 아랑곳않고 박 숙의를 받들고 모셔서 그녀로부터 큰 신임을 얻게 됩니다. 박 숙의 본인이 실권이 없는 처지이니 별 도움이 되진 못합니다만.... 이 과정에서 라온은 특유의 지혜를 발휘해 주위를 놀라게 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직접 읽어 보시면 됩니다.

 

명온공주가 상당히 단순한 사람이라는 건, 1) 연서를 주고받다 자신이 버림 받았다는 마음의 상처, 2) 오빠 이영이 라온에 흑심을 품고 곁에 두려 한다는 질투심으로 혼자 끙끙 앓다가, 이를 눈치챈 이영의 간단한 제스처 하나에 마음이 확 풀어지는 태도만 봐도 우리 독자가 알 수 있습니다. 사람 마음을 그렇게 잘 이해하고 시원시원한 처방을 내려주면서 정작 자신에 얽힌 연사(戀事)를 두고는 해결은커녕 얽힌 실타래를 더욱 꼬이게만 만드는 라온의 행동은 사실 노골적으로 독자를 향해 부리는 애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쯤이야 로설 팬들, 아니 로설 팬 아닌 사람들도 다 아는 상식이죠.

 

이 2권에서는 중반 이전에 청나라 사신과 그 수행자들이 대거 입경하는 이벤트가 마련되어, 그 접대와 외교, 정치적 요구를 둘러싸고 상당히 미묘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효과가 생깁니다. 이 과정에서 성내관, 마내관(마종자) 등은 은근 중국 쪽에 다른 줄을 대려는 낌새까지 보이며 독자에게 이중의 배신감과 분노를 부르는데(反라온, 反민족), 그때마다 그들의 추악한 의도는 세자 이영과 그의 "벗" 김병연의 출현에 의해 번번히 좌절됩니다. 세자 이영은 과연 이 나라의 미래를 한 어깨에 짊어진 재목답게, 유씨 성을 가진 중국 상인 하나가 이번 방문단의 대열에 갑자기 낀 걸 두고 어떤 음모가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지 헤아리는, 나이에 전혀 걸맞지 않은 사려 깊은 면을 드러냅니다.

 

세자에게는 외할아버지가 되는 세도가 김조순과 대면하여, 이영은 경전의 그 유명한 구절 "임금이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를 인용하며 노-소, 보-혁의 미묘한 신경전을 펼치는  모습도 보입니다. 부원군의 세력이 사실상 왕실의 그것을 능가하는 형편임을 강조하면서, 2권 처음에 나온 대로 박숙의에 대한 처우에서 임금(순조)이 그처럼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사정이 다 설명되고도 있습니다. 2권 마지막에서 왕이 주최하는 연회에 청 사신, 조선 대신들이 거의 불참한 채 썰렁한 자리가 연출되는 장면은, 세도 정치 하에서 제 위신을 세울 수 없었던 왕가의 딱한 사정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2권의 최대 재미는, 라온-이영-병연을 축으로 전개되는 삼각 애정관계의 발전이 갈수록 흥미진진해져 간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김병연의 손자이자 이영과는 외사촌 관계가 되는 이조참의 김윤성이 따로 등장하여, 성별도 애매하고 신분도 천한 라온 한 명을 둘러싸고 애정사는 더욱 복잡하게 꼬입니다. 김윤성은 원칙적으로 사대부 출신일 뿐이지만, 지금 이 나라에서 사실상 최고 권력을 독점한 외척 가문의 종손이라는 점에서 "준 왕세자 신분"이라 불러 줘도 별로 틀리지 않습니다. 묘하게도, 체제의 모순을 혁파하려는 진보 성향은 세자 이영이 대변하고, 김윤성은 그 반대 입장에 선다는 게 독자에게는 볼거리입니다.

 

딱한 건 남장 차림의 라온이 사실 여성임을,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첫눈에 알아챈 이가 김윤성이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대단히 섬세하고 자상하며 이지적 인물임에는 분명하다는 거죠. 라온은 1권에서 "여자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 헤아려 주는 남자에게 반할 뿐"이란 말을 하는데, 이런 관점에서라면 이영과 김병연은 여인의 심정을 이해하기는커녕 상대의 성별도 모르는 맹인이었다는 점에서 그녀의 사랑을 얻을 자격이 없습니다. 반면 김윤성은 그녀에게 처음으로 여인의 복식을 해 입히고, 타고난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을 시켜 준 "기사, 챔피언적 존재"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2권에선 무서운 복선이 하나 깔리는데, 여성 앞에서는 가장 젠틀하고 선량한 사람인 척 굴다, 그녀의 시선이 닿지 않는 무대에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본성이 나온다는 겁니다. 이 점을 앞으로 지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2권의 관전 포인트는.... 청에서 사신단에 끼어 온 소양 공주가 조선의 세자 이영에게 반해서 들이대는 장면이라든가, 명온공주하고 신경전을 벌이며 누가 더 예쁜지 판정을 받아 보자는 식의, 원형 신화나 로설 아니면 도저히 구경할 수 없는 오글거리는 에피소드 등이겠습니다. 여기에 코믹한 캐릭터도 많이 등장하여 감초 구실을 해 주는데, 1권에서 "손끝 야무진 내관"으로 아주 별명이 붙어 버린 장내관이 이 2권에서도 터무니없는 착각과 실수로 독자를 많이 웃게 해 줍니다. 세자 이영이 여기에 작정하고 호응하는 모습은 더 큰 폭소를 자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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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S 투자 바이블
안훈민 지음 / 참돌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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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가 너무 낮습니다. 고도의 성장기를 질주해 왔던 한국이니만치 두 자리 수가 안 되는 건 이자로 쳐 주지도 않던 감각이 아직 남아 있는 장노년층에서는 1~2%를 운위하는 작금의 실정이 도무지 꿈만 같습니다. 1990년대에 일본은 이미 "제로 금리, 마이너스 금리"를 운위했습니다만 그게 먼 나라의 기이한 변고인 줄로들만 아셨겠죠. 파생상품이다 선물이다 하는 건 단지 남 사정으로만 여겨 왔던 계층, 심지어 은퇴 노인들까지도 요즘은 ELS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지금 수준의 이자 수준으로는 도무지 견딜 수 없기에, 기웃거리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데, 어떤 분들 말을 들어 보면 이게 그렇게 위험하니 절대 하지 말랍니다. 사정은 급하지만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들이킬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누구 말을 들어야 바른 선택일까요.

 

안훈민 선생은 본인 자신이 성공한 투자가로서 남부러울 실적과 이력, 평판을 쌓아 왔고, 현재로선 PB처럼 특정 고객 집단을 상대로 어떤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입장도 아닙니다. 실력과 내공 가득한 분이 어떤 거래상의 제약 때문에 구애 받음 없이 자유롭게 풀어 주는 설명이니, 권위와 신뢰를 동시에 갖춘 주장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전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책-분야 불문하고- 이 이렇게나, '맞는 말'만 골라서 할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에 감탄을 그칠 수 없었습니다. 투자에 크게 성공한 입장이라면 일단 당장의 수익 상황에 연연하고 조바심칠 일이 없기에, 즉 절박한 플레이어가 아니기에, 예컨대 두 세기 전 로스차일드가 그랬던 것처럼 "역정보"를 흘려 경쟁 투자자들에게 집단 빅엿을 먹일 이유가 없죠. 실력 있는 고수는 (자기 입장이 있기에) 바른 판단을 하고서도 일일이 타인에게 정직한 분석과 진단을 내놓지 않고 결정적 사항은 (왜곡하지는 않더라도) 감추는 수가 많은데, 이 책은 ELS에 대해 현 시점에서 투자자들이 알아야 할 거의모든 것을, 정말 필요한 것만 골라, "정확하게" 알려 주고 있었습니다.

 

ELS는 일단 고정된 수익을 보장하여 지급합니다. 언제? 기초자산 가격이 오를 때만입니다. 이를 발행한 금융기관에선, 해당 기초자산의 시세가 아무리 폭등, 속등(續登)한다 해도, 처음에 정한 비율 외에 고객에게 더 주지 않습니다. 이건 주식이 오르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에는 "아 차라리 직접 사 둘 걸"하며 큰 아쉬움이 드는 경우입니다. 반면, 만약 큰 폭으로 가격이 떨어지면, 투자 원금 전부 혹은 일부분을 날리는 게 이 ELS의 특징입니다. 그러니, 이렇게만 설명을 하면, 1) 올라도 약이 오르고(극히 일부밖에는 내 주머니에 들어 오는 게 없음) 2) 일정 가격대 이상으로 떨어지면 돈을 원금까지 날리는 상품이니, 뭐가 되어도 고객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 오는, 천하에 몹쓸 녀석만 같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렇게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유수의 대기업도 재테크 수단으로 고려할 리가 없죠.

 

일단 이론상으로는 지수건 종목이건 개별주식이건 뭘 기초자산으로 해서도 ELS를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상품이라고 해도 마케팅이 잘 안 되면 창고에서 썩어야 하는 냉정한 시장 중심의 체제에서, 경우의 수대로 ELS를 찍어낸다고 해서 그게 소화되라는 보장은 없죠. 지금 한국에서 주류를 이루는, 즉 금융 원리와 투자 요령에 훤한 전문가급 고수가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 선호될 만한 ELS는, 지수형과 적립형 ELS가 대부분입니다. 이 책 서론, 본문, 결론에서 수시로, 그리고 명확하게 제시되는 안훈민 선생의 결론도 "잘 모르겠거든 지수형 적립형만 하라. 그래도 안전할 것이다."입니다. 왜 그런가? 이런 ELS 상품들이 기초자산으로 삼고 있는 코스피는 여태 그처럼 큰 폭으로 떨어진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원금 손실 상환"이 이뤄진 예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거죠. 물론 안 저자는 대단히 신중하고, 또 정확성을 기하는 분이라, "현 시점까지는 그렇다"는 단서를 달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바뀌는 사정이 궁금하다면, 자신이 운영하는 네이버카페에 가입해서 업데이트 사항을 확인하라고 합니다. 한번 찍어낸 책을 통해서는 입장 변경을 다시 할 수 없으므로, 이런 방법으로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겠죠?

 

그러니 위에 적은 2), 즉 가격 폭락시 원금을 다 날리는 악몽은, 현실적으로 그리 발생 가능성이 높지 않으니 일단 큰 신경은 쓰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그럼 1)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는 그 기회 비용을 "직접 투자한 상황"에 기초하여 매기지 말고, 은행 정기예금 따위에 넣고 미미한 저수익을 올릴 경우와 대조하면 그게 정답이라는 겁니다(책에 이런 말은 없습니다만 책을 읽고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게 정리해도 되겠다는 거죠). ELS가 뜨는 근본 이유는, 종래 제도권 표준 금융상품의 메리트가 너무 줄어들었다는 그 상황에 기인합니다. 그리고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이미 선진국이라서" 더 이상 고도성장의 호시절이 다시 찾아 오기 힘든 한국에서는, 이제 다른 기대를 가질 수도 없는 겁니다.

 

ELS가 그렇게 좋은 거라면, 금융기관은 국민에게 봉사를 하기 위해 이 상품을 만든 건가? 물론 그렇지는 않죠. ELS를 찍을 때 해당 기관은 일단 가격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전망 하에 설계를 합니다. 투자한 고객에게는 일부만 떼어줘도 자기들에게 남는 게 있을 만큼요. 발행기관이 진짜 노리는 건, 기초자산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졌을 때, 이 위험을 투자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는 그  헷징의 이익을 보기 위함이죠. 저자도 책 내내 강조하고 있지만, 국내 사정이 열악하다 보니 머리를 짜내고 짜낸 결과가 이 ELS의 발달입니다. 기본적으로 기관의 헷징이 주된 동기이며, 이런 기법은 이후 중국에 수출해도 될 만큼이라는 게 저자의 평가입니다.

 

물론 부작용도 있습니다. 첫째 코스피가 변동성이 떨어지고 "박스피"라는 오명을 쓰는 건, 상승요인이 좀 생길라치면 이 ELS로 자금이 흘러들어가니 추가탄력을 못 받는다는 거죠. 반대로, 하락의 국면에서도 ELS에서 빠진 자금이 유입되니, 시장에 불안요인이 있어도 제때 제대로 반영이 안 된다는 겁니다(저자는 이 위험을 "안 좋을 때 집중적으로 펀치를 맞고 바로 쓰러질 수 있다. 평소에 조금씩 맞아두는 것만도 못함"이라고 아주 적절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자본시장의 체질 건전화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게 ELS"라는 거창한 언사도 등장하는 거겠구요.

 

ELS에 대한 오해나 유언비어도 있습니다. 사실 이런 오해도 어느 정도 이 상품의 구조에 대해 알아야 할 수 있긴 하겠습니다만... 오르지도 못하고 적당히만 내린 상태에서 기준가격(이걸 knock-in이라고 합니다. 이 "낙-인"이하로 떨어지면 원금 일부 혹은 전부를 날리는 거죠) 위에서 알짱알짱대면(확 떨어지든지 하지는 않고), 기관은 고의로 매도함으로써 가격 속락을 유발, 결국 투자자가 원금을 잃게 조작한다는 겁니다(그래야 기관이 이익). 이게 경제학 이론에서 말하는 "모럴 해저드"의 아주 전형적 예입니다. 모럴 해저드의 속성상 이를 방지할 방법은 "일일이 캐고 적발"하는 수동식 노가다 말고는 없죠. 이러니 대중의 오해에도 일단 어느 정도 타당성과 근거는 있는 셈입니다. 배임의 유인은 충분합니다.  다만 안 저자는, 한국의 현실(금융당국의 감시나 일반 소비자의 회의 어린 주시 등)상 기관이 ELS에서 조작을 할 여지나 조건이 잘 생성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책 서두에 소개된 어느 기관 솜씨의 홍보 문구 "성적이 85점 이하로 떨어지면 용돈을 줄이고... " 어쩌구 비유는 진짜 엉터리 같은 소리죠. 발행기관과 고객은 다소 이해상충의 여지가 있습니다(소위 에이전트 이슈). 반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면, 아이가 시험 잘치는 게 어디 남 좋으라고 시간 내어 고생하는 거겠습니까? 일반의 이해를 돕기는커녕 정반대로 왜곡하는 셈이죠. 안 저자는 점잖게 돌려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이런 사례는 해당 직종 종사자조차 ELS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책은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세계 정세는 이런 투자전문가에게 들어야, 어떤 어설픈 이념상 왜곡이나 현실에 맞지도 않는 인문 담론의 엉터리 개입을 피하고 거를 수 있습니다. ELS에 관심 없는 분도, 이 책에서 국제 원자재나 소재 가격의 전망을 담은 파트만이라도 한번 읽어 보십시오. 왜 이렇게 유가가 곤두박질치는지, 사우디 등 중동국가와 미국 사이는 왜 긴장이 높아지면서도 바로 파탄에 이르지 않는지, 속이 시원할 만큼 설명이 잘 되어 있습니다. 화폐와 실물, 또는 금, 은 따위와의 상관 관계 역시, 간단한 몇 마디로 그 본질을 꿰뚫어 주고 있습니다. 역사 공부하면서 금본위제 부분이 잘 이해가 안 되면, 역사책 몇 권 몇 챕터가 구구절절하게 빙빙 돌려 늘어놓는 설명보다, 이 책 불과 몇 문장이 더 칼날같이 맥을 잘 짚어 주고 있으니 참고할 일입니다. "보험은 은행에서 가입하고, 그보다 더 나은 건 인터넷이다" 등 당연한 상식인데도 일반인이 아직도 낯설어하는 팁을, 근본원리에 대한 명쾌한 해설로 해결하는 것도 이 저자만의 장기입니다. 버릴 게 없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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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메이드
아이린 크로닌 지음, 김성희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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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에 나와 있는 것처럼, 아일린 크로닌은 작품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는 50대 초반의 여성  현직 작가입니다. 그러나 전 미국에 그녀의 이름을 알린 건 바로 이 자전적 에세이, <머메이드>입니다. 한 다리가 불구인 채 태어났고, 다른 한 다리는 유아기 침대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부러졌습니다. 손가락 역시 온전치 못한 합지증을 앓고 있었는데, 이는 의사의 조치로 간신히 바른 모양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는 임산부가 회임기간 중 "탈리도마이드"란 약품을 복용했을 때 공통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증상으로, 1960년대 초 기형아의 대거 출산으로 엄청난 사회 문제가 발생한 적도 있습니다. 다만 아일린의 어머니 조이 크로닌(조이 팽어)은 이 사실(자신이 해당 약품을 섭취)을 부정하는데, 책을 통해서는 분명하게 진위가 드러나진 않습니다. 죄책감 때문에 인지부조화를 보이는 것일 수 있고, 조이 크로닌 여사는 여러 이유로 중년에 조울증 증상이 심해져 정신병원에 수용되기도 했으니 진술을 다 믿을 건 못 되는 형편이기도 합니다. 여튼 "태어나고 보니 내 몸은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달랐다"는 충격적 깨달음은, 어린 생명이 건강하고 행복한 성장을 이루는 데에 얼마나 큰 방해가 되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아일린 크로닌은 이 책에서 10대 초반~ 대학생 시절까지의 청춘기를 회상, 토로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 어느어느 시기에 무슨 사건이 있었다 정도는, 작가나 특별한 정신적 능력이 없더라도 대개는 기억하고 삽니다. 이 책의 특이한 점은, 그런 이벤트, 사건, 추억, 악몽 속에 깃든 자신의 "그 당시 느낌"을, 생생하고 창의적인 언어로 적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내가 중학생 때 학업 최우수상을 탔다, 친구와 대판 싸웠다, 선생님께 심한 꾸지람을 들었다, 같은 건, 언제나 느낌과 함께 기억이 되기 마련이죠. 하지만 어머니, 아버지, 동생, 언니와 어떤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반응이나 소통에 무슨 감정이 느껴졌다, 혹은 12살경 친구들과 동네에서 무슨 놀이를 했고 그때의 느낌이 어떠했다 같은 건, 당시 본인이 적은 "그림일기" 따위를 찾아보지 않고선 기억이 나지 않는 게 보통일 겁니다. 사건은 기억해도, 그에 접착된 "당시의 느낌"은 웬만해서는 떠올리기 어렵습니다. 이 책은 사전 정보 없이 읽어나갈 때, 다리가 불구이지만 "현재" 그 역경을 딛고 발랄하게, 다른 "정상인"처럼 살아가는 어린 아가씨의 재기 넘치는 미셀러니처럼 착각될 수 있습니다. 물론 엄마가 1960년대에 초에 자신을 낳았다든가, 신시내티 레즈의 조 넉스홀(책에는 "눅스홀"로 적혀 있더군요)이 활약했다든가 하는 말이 나오기 때문에, 저자분이 지금은 나이를 꽤 드셨겠구나 하는 추측은 곧 할 수 있습니다.

 

내러티브는 정말 10대 소녀의 조잘거림처럼, 제법 두꺼운 책 분량 내내 경쾌하게 울려 퍼집니다.  이것은 화자가 생의 어느 순간에도, 삶에 대한 낙관과 희망을 놓지 않았다는 확증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신체 장애를 생각하면 즐거운 기분도 한순간에 꺼질 수 있을 텐데(어린 소녀임을 감안하면 더욱), 아일린은 때론 자신의 곤경을 농담의 소재로도 삼고, 마치 어른들이 집 밖에 나왔다가 지갑을 잃은 것처럼 일시적인 난처함을 현실로 인정한 후 대책을 찾는 태연함과 침착함을 가지듯, 자신의 장애에 대해 대체로 "쿨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어린 여성이 이 정도 의연함을 보이는 건 실로 대단한 일입니다. 이런 사정은, "어려서부터 죽 익숙해 왔다"는 사정으로 정서적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변수가 결코 아니겠기 때문이죠.

 

아일린 크로닌은 범상치 않은 가문에서 나고 자란 여성입니다. "나의 출생, 나의 존재는 한때 우리 집안에서 입에 올리는 게 금기였다"는 문장에서 다소는 짐작할 수 있듯, 그녀의 가정은 제법 부(富)와 명성을 지역에서 누리는 편이었습니다. 그녀의 조부가 자수성가로 큰 재산을 일군 인사이고, 아버지 역시 괜찮은 수완을 발휘하여 명사로서 행세하는 쪽입니다. 한편 어머니 조이 팽어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가난한 집 출신이며, 친부(즉 아일린의 외할아버지)가 알콜 중독과 도박 등의 습벽으로 가출(조이 팽어의 회고에 따르면 "축출")한, 결손 가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녀(조이 팽어)의 성격이 정상이 아닌 건 유전적 요소보다 이같은 후천적 환경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책에는 아일린 크로닌의 부모가 "독일계, 아일랜드계"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크로닌(아일랜드계)+팽어(독일계)"라는 건지, 아니면 양친 모두 "저먼 아이리쉬"라는 건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책 전체 맥락으로 봐서는 후자인 것 같은데요.

 

조이 팽어 여사가 딸 아일린 앞에서 "너의 외할머니는 교황이 인정한 성자(성녀)란다."라고 말하는 것도, 그저 주관적으로 그렇게 평가한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아이다 부르헬 팽어라는 이름은 가톨릭 성인 명단에서 제가 못 찾았기 때문에, 이는 그저 본인의 주장인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대단히 아름답기는 하나(솜털 하나도 내가 본받아야 할 혈통의 증거였다, 라는 말까지 딸 입에서 나옵니다), 성격이 정상이 안 되었던 어머니 때문에, 이 대가족은 많은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물론 조울증을 빼면 조이는 착하고 다정하며 순진한 편에 속하는 여성이었습니다. 참고로 아일린의 양친은 아일린 외에도 슬하에 열 명이 넘는 자녀를 둘 정도로 금슬이 좋은 사이로 나옵니다. 1960년대라고는 하나 미국에서 이는 대단히 드문 풍경입니다.

 

아일린과 언니들은 나이 차가 제법 나서, 그녀가 고등학생일 때 이미 언니 브리짓은 결혼도 했습니다. 보통 같은 민족끼리 맺어지는 게 당시의 관습이었을 텐데, 브리짓은 무려(아일린의 표현입니다), 무려, 이탈리아인 남성과 결혼합니다. 책에는 "언니는 점점 다이앤 키튼을 닮아가고 있었다"라고 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는 해당 배우가 영화 <대부>에서 앵글로색슨 혈통으로 마피아 가문의 며느리가 된 케이 역을 맡은 걸 두고 꺼낸 비유입니다. 왜 하필 다이앤 키튼인지는 이런 배경 지식이 있어야 그녀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아일린 자신도 첫사랑을 무려 쿠바계 백인인 제임스 카브레라와 어설프게나마 시도합니다. 장애인의 육체적 욕망이 어떻게 외적으로 나타나는지는 이 책 13장의 그 소동 묘사가 잘 보여줍니다. 이런 대목이 이 책의 가장 뚜렷한 매력인 "가감없는 솔직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녀의 정신적 첫사랑은 프랭크 오빠라고 볼 수 있는데, 작품 후반에 나오듯 그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고 말죠. 그녀를 "인어(머메이드)"라고 처음 언급하는 장면에서, 아일린은 "아, 그 탐 행크스가 나오는 영화에서처럼?"이라고 대꾸하는데,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대릴 해너 주연의 그 영화입니다. 1960년대 초반 생이니 그녀가 대학생 때 개봉한 영화가 거론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좀 더 나가면 바버라 부시도 이름이 나오는데, 사적인 성장 스토리만 말하는 것 같지만 이처럼 세심하게 그 시대의 특징적 코드를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자신의 또래들과 구체적인 시대를 호흡하며 열심히 살아왔다는 걸 은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출판사 책이 대부분 그렇듯 장정이 예쁘고 읽기가 참 편합니다. 역주가 많아서 아일린 크로닌 본인의 개성과 어조가 그대로 살아나는(의역이 최소화한) 체제가 돋보입니다. 의욕이 안 생기고 정신적 슬럼프다 싶을 때 읽어 보면 좋은 자극이 되겠습니다. 한 번에 읽는 것보다 하루에 한 챕터씩 마치면서, 작가가 사실 이 장에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생각해 보는 것도 효과적인 독서가 될 것 같습니다. 문장 스타일은 현재 트렌드를 대표할 만큼 감각적이고 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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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남자 2
전경일 지음 / 다빈치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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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뒤의 지도에 잘 나온 것처럼, 이 소설은 중국 남단 복건성에서 유구(류큐, 오늘날의 일본 영토 오키나와입니다)를 거쳐 조와(자와 혹은 자바)를 지나 지구 반대편의 네덜란드 제일란트(책에는 "젤란트"라고 표기됩니다)까지 흘러들어가 실로 파란만장한 삶을 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양 회화 낭만주의 사조의 대표적 거장이었던 루벤스의  어느 그림에까지 모델로 등장한 걸로 여겨지는 "조선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실존 인물은 아니고 작가님의 기발한 상상이 치밀한 연구와 기획에 의해 장편 소설로 옮겨진 중에 등장하는 캐릭터입니다. 지도와 연표, 그리고 소설의 사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설명은 이 2권의 부록으로 실려 있으니, 1권만 보신 분들은 1권 내용의 충분한 감상과 이해를 위해서라도 이 2권까지 같이 구해서 읽으셔야겠습니다.

"조선 남자"는 이 소설(특히 이 2권) 속에서 자신의 본향을 딛고 누비는 모습은 거의 없고, 원양의 거친 물결을 헤쳐 가는 배 위에서의 활약, 그리고 네덜란드 젤란트에서의 눈부신 족적과..... 비장하다 못해 참담한 운명을 맞이하는 행보만 독자에게 보여 줍니다. 이국에서야 현지인들이 당연히 그를 "조선 남자"라고 부르겠지만, 설사 조선 땅 안에서라 한들 그 누구도 그가 전형적인 "조선 남자"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여성에게 다정하고, 같은 민족, 동포가 부당한 처우를 입으면 내 일처럼 나서서 한풀이를 해 줘야 직성이 풀리고, (이게 중요한데요) 흑인이건 미개한 남방인이건 약자가 강자에게 잔혹한 대접을 받으면 그냥 넘기지 못하는 비분강개 열혈지사입니다. 우리 한국 남자들도 다 이렇지 않습니까?(아닐까요...) 주인공 "조선 남자"는 그래서 루벤스의 그림 속에 생소한 변칙 복식을 하고 있는 이유에서만 조선 남자가 아니라,. 개성과 용모, 정신적 지향, 가치관 등 모든 면에서 "조선 선비"를 대표할 만한 인물이란 이유에서 "조선 남자"입니다. 생김새도 준수하고 태도에 기품이 있을 뿐 아니라, 의로운 정신으로 세상사를 다루는 인격이 누구 눈에도 뚜렷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국 땅에서 만나는 여성들마다 이 "조선 남자"에게 반하고, 그에게 정조를 아끼지 않으며,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해로하길 원했는지도 모릅니다. 1권의 유구 여성 고미가 그러했고, 2권에서는 다나가 자신의 절박한 처지를 의탁하여 도움을 받는 것 외에도 그에게 남성으로 끌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젤란트의 어느 노부인은 그의 손을 잡으며 "젊은이, 내 아들이 인도에 있는데 조선과는 거리가 먼가?"라며 묻는 장면도 나옵니다. 워낙 질 나쁜 악다구니들이 많이 나와서 그렇지, 품격 있는 평균적 시민들에게였다면 이 서양 땅에서도 존경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을 겁니다.

다만 우리의 "조선 남자"는 너무도 힘이 없습니다. 육체적 완력은 "양귀"나 "흑귀"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오랜 세월 공을 들여 익힌 해동의 무예에 통달한 그이기에, 덩치 크고 힘깨나 쓰는 자들이 설사 흉기까지 들고 덤벼도 퍽퍽 나가떨어집니다. 지옥과도 같은 세계 일주길에 자기 몸 하나 건사하는 데에는 아무 어려움이 없는 장부입니다. 문제는, 이 주인공이 너무 정보가 부족하고, 개인 차원에서의 의협심만 갖고 서양에서 "무구의 본(총기류나 화포의 도면, 시방서를 말합니다)"을 가져 오겠답시고 아무 권한 위임도 못 받은 채 조국을 뜬 터라, 바다 위, 혹은 정박 항구에서 어느 천한 불한당들에게 개죽음을 해도 따질 곳 하나 없는 처지입니다. 게다가 사람을 너무 잘 믿고, 자신이 선하니 남도 내 맘만 같을 줄 압니다. 이런 주인공이 만약 통쾌한 미션 완수를 해 내는 결말이라면 그게 오히려 개연성 부족이었을 겁니다.

특히 이 2권은, 사악하기 그지없는 야심가 "카피탄(그냥 캡틴의 와전입니다)", 신흥 부호들에게 기득권을 빼앗길까 노심초사하는 공작, 이익을 추구한다기보다 배신 그 자체를 즐기는 악종 중 악종인 경리관, 구세주의 가르침을 실천하기보다 세상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표출하는 데에 온 정력을 다 바치다시피하는 늙은 목사 등의 속고 속이는 음모와 모략이 주축인 전개라서, 주인공이 "조선 남자"라는 생각도 잘 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저들이 주인공으로서 존재감이 드러나냐면 그런 것도 아니고,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이라기보다 게임 속에 나오는 악당 캐릭터처럼, 패악질 자체가 존재의 목적인 양 이를 갈고 날을 세우는 비인격체만 같습니다. 그래서 특히 이 2권은, 사람이 아니라 "지옥"이 주인공을 겸하는 배경 요소입니다. 조와(자바), 젤란트, 넓고 넓은 공해,.. 어디 가릴 것도 없이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고 죽이고 기뻐 날뛰는 모든 곳이 다 지옥입니다.  이런 지옥에서 주인공 혼자 공맹의 도(道)와 조선 고유의 풍류 정신을 실천하는 선인(善人)이니 무슨 재주로 제 의지를 관철하며 목숨인들 부지하겠습니까.



어쩌면, 넓은 세상에 만연한 악(惡)과 만행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삼천리 금수강산에서 자기들끼리 예를 갖추고 염치를 지키며 안온하게 살던 우리 겨레가, 외방과 교류를 트고 못된 재주는 충분히 배우고 익혀 이웃의 허술한 태세를 용케도 알아차리고 탐욕을 채우려 쳐들어온 왜놈들에게 짓밟힌 건 역사의 필연이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험한 세상에서, 약(弱)한 것이야말로 악(惡)한 것이다, 약하면 제 아내와 노부모, 어린 자식도 지키지 못하고 몹쓸 욕을 보는 꼴을 지켜 봐야 한다... 조선 남자는 외방을 떠돌며 비로소 그가 고이 배우고 지켜 온 유림의 도가 현실에서 아무 쓸모 없다는 걸 깨달았을 터입니다. 설사 그가 제 소임을 완수하고 돌아왔다 한들, 1권에서 "뱃놈"이 조소한 대로, 허락도 없이 밖을 다니다 왔으니 손에 뭘 쥐고 있건 그 자체로 죽은 목숨일 지도 모릅니다. 시스템이 이 모양인데 개인이 아무리 잘한들 무슨 소용이었겠습니까.



2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사실 다 비극적이고 끔찍하고 슬픈 장면밖에 없어서 말하기가좀 그렇지만, 첫째 동생 자라가, 조선 남자는 물론이고 두 누나와 자신의 정체성까지 재판관 앞에서 모조리 부정하는 장면입니다. 누나인 다나는 그가 어린 동생이니까 "저것이 얼마나 살고 싶으면 저럴까"하고 다 이해를 하지만, 읽는 독자는 인간으로서 마지막 존엄까지 팽개친 그 적나라한 몸부림에 그저 전율할 뿐입니다. "조선 남자"가 등가죽이 벗겨지도록 채찍질을 당하는 선고도 소름끼치는데, 자라는 "등뼈가 드러나도록 태형을 당하게 하라"는 판결을 받는 대목에선 정말.... 두번째로는 젤란트로 오는 도중에서, 노예선의 혹사를 당하는 흑인들의 참상을 묘사한 부분입니다, 눈 한쪽에 구더기가 끓는 소년의 넋나간 모습... 이런 걸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자라가 아마 그런 최후의 발악을 시도한 거겠죠. 세번째로는 혼령으로 바다 위를 떠도는 OOO이, 자신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다나의 모습을 멀리서 내려다보는 장면입니다.



트로이에서 귀환하는 오디세우스는 객관적으로 성공적인 귀향을 할 가망이 없는 처지였습니다. 트로이의 원혼들이 끈질기게 그의 운명에 저주를 내린 탓인지, 바다의 괴물과 몹쓸 귀신들은 모조리 그의 항햇길에 들러붙어 영웅의 금의환향, 개선을 방해하고 있고, 설사 이타카로 돌아온다 한들 성질 사납고 불의한 토족들의 손에 그는 무사하지 못할 공산이 컸습니다. 신들의 가호로 그는 목숨을 건지고, 악한들을 토멸하는 데에 성공하지만, 기독교의 신은 편의를 위해 개종한 "조선남자"는 마뜩지 않게 보았는지, 도와줄 듯 말듯 하다 결국 무참히 운명의 바닥으로 내던져 버립니다. 하지만 조선 남자는 그 모든 것을 예상하고도 감연히 의(義)를 위해 목숨을 걸었기에, 그의 모험과 절조, 의기는 오디세우스의 그것보다 더 거룩한 면마저 풍기기도 합니다.

책 뒤의 연표를 보면 이미 작가님이 조선 남자와 다나 사이에 생긴 아이가 커서 루벤스를 만나는 장면 등을 구상하고 계신 듯합니다. 제가 기대하는 건, 유구의 고미(덕천 막부군이 침략한 와중에 죽지 않았다면)가 낳은 아들, 그리고 조선 고국에서 노모가 키운 본처 소생 아들, 이 셋이 힘을 합쳐 죽은 부친의 원수를 풀고 오대양에 정의가 회복되는 활약을 해 주었으면 하는 겁니다. 현실에서 역사가 그린 궤적이 엄연히 있기에 너무 무리를 하실 수는 없겠지만, 이로부터 백 년 안짝이면 영국이 공식적으로 노예 무역을 정부 차원에서 불법화합니다. 그 이면에 이 배다른 3형제의 숨은 활약이 있었다고 하면 흥미진진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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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남자 1
전경일 지음 / 다빈치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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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조상님께 물려 받은 강토에서 침략자들을 완전히 내몰았다고는 하나 마음의 상처는 씻을 길이 없습니다. 죽은 가족과 잃은 재산은 회복할 길이 없고, 잡혀 간 포로들도 몸값을 주고 찾아와야 한다니 그걸 두고 이긴 전쟁이라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뼈대 있는 집안에서 올곧은 가르침을 받고 자란 주인공 "나"는 의분을 가눌 수 없습니다. 복수를 해서 저 무도한 왜국들에게 올바른 인간의 길이 뭔지 깨우쳐 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정벌은 의기나 선의만으로 이뤄질 수 없습니다. 실력이 있고 도구가 완비되어야 합니다. 저들 왜구는 대량의 조총으로 조선 민, 군의 혼을 빼놓았습니다. 먼 서방 땅에서 양귀들이 개발한 것을 들여 왔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 무기들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설욕과 창의(倡義)를 못 할 바 없을 것 같습니다. 조정에서 그러나 딱히 의욕하는 바 보이지 않기에, "나"는 개인자격으로도 혈혈단신 서양에 건너 가, 왜구들에게 인류의 도를 깨닫게 해 줄 수단을 강구하고 싶습니다. 독자로서 이 주인공에 대해 거의 무조건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2권 중반에 접어들면서 크게 후회하게 될망정)



그는 마침, 유구의 군주와 관리들이 명(明) 황실로부터 밀조를 받은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반도에 침입하여 멀리서나마 중원의 평화를 위협하려 들었던 왜구는 어렵사리 격퇴했으나, 그 허를 틈타 이번에는 오랜 세월 동안 골칫거리였던 야인들이 발호하는 기운이 엿보입니다. 무용이 뛰어나다고는 하나 엄청난 화력을 지닌 대포 앞에 일개 기병들이 힘을 쓸 수는 없습니다. "홍이포"란 별칭을 지닌 이 가공할 신무기를 유럽의 양귀들에게서 입수해 오라는 게 대국의 뜻입니다. 좁은 섬나라지만 총관, 수관(이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들은 요량하는 바도 비상하고, 인물이 인물을 알아본다고 "조선 남자"의 국량을 크게 평가하여, 험난하고 먼 해로를 통해 중임을 완수하는 데에 동행시킵니다. 조선 남자는 자신의 평생 숙원을 이룰 유일한 기회다 싶어 그들의 배에 동승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같은 조선인인 "뱃놈(역시 이름은 없습니다)"에게 아주 악질적인 배신을 당하는 곤란을 겪습니다. 제가 인상 깊게 본 건, 주인공인 "나"가 결국 이 배신자를 너그럽게 용서하여, 악귀의 소굴과도 같은 유구의 사창가에서 그의 누이를 속량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평소 "조선 남자"를 높이 평가하여 갖은 호의를 베풀던 수관은, 거친 흥정을 통해 어렵사리 챙긴 매매대금 중 큰 몫을 떼어 몸값으로 선뜻 내어놓기까지 합니다. 같은 조선인이라는 사실 말고는 아무 유대를 가질 이유가 없으며, 인간적으로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배신행위까지 겪은 "조선남자"로서는 도움은커녕 해코지를 해도 시원찮은 판국인데, 양반으로서, 그리고 공맹의 도를 배우고 실천해야 할 의무를 지닌 엘리트로서, "양반이 나라를 잘못 다스려 착한 백성이 화를 입다 보니 저렇게까지 타락한 것"이라 받아들인 그는, 약간의 양식을 주어 두 오누이를 배편으로 고국에 돌아가게 배려합니다. 하지만 "뱃놈"의 누이는 이미 회복이 불가능할 만큼 몸이 망가진데다. 고향에서 다시 받을 천시와 냉대를 감당할 생각이 없습니다. 결국....



1권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구성인데요. 한편으로는 이미 화란 젤란트에 도착해 있는 "조선 남자"의 사정이 나오고, 다음 장에서는 젤란트에 도착하기까지 온갖 곡절을 겪는 조선남자와 유구 상인들의 사연이 교대로 나오는 식입니다. 젤란트에 여장을 풀고 "무구의 본"을 구하려 드는 그는 여기서 우연히, 화형으로 죽을 위기에 몰린 처녀 로라와 그 동생들의 딱한 사정을 접하게 됩니다. 로라의 죄목은 "이단을 신봉했다"는 건데, 알고 보면 네덜란드에서 수백 년 간 믿어오던 가톨릭 신앙을, 세상이 신교도 천지가 되고 보니 하루아침에 버릴 것을 강요받은 데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국 음모와 모략을 통해 재산을 뺏고 정치권력을 재편하려는 쪽의 허울 좋은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비슷한 느낌이겠지만, 로라가 거의 발가벗겨진 채 입에다가는 끓는 쇳물이 억지로 부어넣어지고, 형체도 망그러져가는 몸은 십자가에 대못으로 박히고(일본에서 천주교 박해가 있을 때에도 실제 못을 박기까지는 잘 이르지 않았습니다. 매달고 창으로 찌르는 식이었을 뿐) 마지막으로 불에 태워 죽임을 당하는 등 사람의 머리로 상상 가능한 최악의 혹형을 어린 여성에게 가하는 그 장면이.... 인상깊다기보다는 솔직히 트라우마로 남는군요. 아, 멋도 모르고 읽었다가 지금까지 정신적 대미지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세번째로 인상에 남는 장면은 루벤스, 아직 자리를 잡기 전 자신의 재능을 활용하여 궁정화가로서 출세의 발판을 마련하려 동분서주하는 젊은 루벤스가 "조선남자"와 대화를 나누는 대목입니다. 물론 조선남자는 예수라는 존재에 대해 아무 이해가 없습니다. 조선남자의 인식 수준으로는, 종교로 갈려 피터지게 싸우는 저들 양귀들이, 신부가 이끄는 구교는 "죄인과 더불어 그 모친과 다른 훌륭한 사람까지 같이 믿자는 입장"이고, 목사가 이끄는 신교는 "그저 죄인만 믿자는 입장"일 뿐입니다. 공권력에 의해 죄인으로 판정되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이를 왜 신봉하는 건지부터가 그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사정입니다. 게다가 신부가 이끄는 무리는, 지난 왜란 때 왜장 소서(고니시)에 조력하여 금수강산을 짓밟은 자들이기도 하니... 그로선 왜 인류를 구원하려든다는 무리들이 조선인들을 못살게 구는 행렬에 동참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조선남자를 두고, 화가로서의 야심과 재능으로 똘똘 뭉친 루벤스는, 이처럼 기막힌 분위기를 풍기는 모델로서 도무지 그냥 놓쳐 보낼 수가 없습니다. 그저 기술적 도구의 일종인 "좋은 모델"로만 그를 보았던 루벤스는, 나중(2권에 나옵니다)에서야 어떤 기독교의 성인 못지 않게 위대한 품성을 지닌 "조선남자"에게 감복하여, 다른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이 소설에는 신앙의 성질을 둘러싸고 남북으로 갈려 일종의 동족 상잔을 벌이는 네덜란드인들의 처참한 사정이 나옵니다. 아마도 작가님은 이 배경을 통해 역시 남북으로 분단되어 소모적인 대결을 벌이는 한반도의 정세를 환기하려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은 보-혁 대결 양상이 위험 수위에 다다른 우리 남한의 자화상을 묘파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목표지의 살벌한 형편이야 아랑곳하지 않고, 조국의 위신과 정의의 회복을 위해 "무구의 본"을 찾아 떠나는 "조선 남자"의 모습은, 목적의 달성 뿐 아니라 여행의 험로를 겪음으로써 종전의 자신보다 더 큰 인간이 되려하는, 금양모피(fleece)를 찾아떠나는 그리스 신화의 이아손과도 닮아 있습니다. "이아손"의 이름은  "치유하는 자"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먼저 자신과 동족이 입은 정신적 상흔을 달래고, 힘이 자라는 바 세계 만방에 공통의 정의가 있음을 상기시켜, 병든 인간의 혼을 치유하려는 꿈도 있습니다. 유구의 수관에게 "아랫사람은 인의의 도로 다스려야 한다"는 말을 건네자 수관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다 이 취지에 동감해서일 겁니다. (그런데 이 작자가 2권에선.....)

유구는 이 소설에서 조선과 같은 편을 먹는 거의 유일한 나라입니다. 아름다운 고미는 "조선 남자"의 늠름한 풍채와 인격에 반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다시피하는데.... 결국 2권까지 가서도 이 처연한 여인은 다시 등장하지 않습니다. 후속편이 이어진다면 세월이 흘러 제법 나이가 들었을 이 고미의 후일담이 좀 자세히 나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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