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을 보다 1 - 이미지와 스토리텔링의 조선사 여행, 태조~중종 조선왕조실록을 보다 1
박찬영 지음 / 리베르스쿨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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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학교 다닐 때 학생들을 제일 괴롭게 만드는 과목은 무턱대고 내용과 사항을 외워야 하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저만 해도 학년 첫 국사 시간에 대뜸 외워야 했던 게 구석기 시대 유적지, "함경남도 웅기군 굴포리, 평안남도 상원군 검은모루, ..." 등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어르신들이 왜곡되이 주입받았던 것과 달리, 이 한반도에 그 오랜 예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확인하는 그 순간이 얼마나 감격스러워야 하겠습니까만... 그 자체로야 아무 의미 없을 주소 부호의 더미를 머리에 억지로 집어넣어야 하는 아이들의 고역이란.. 그래서 제 나라의 역사를 배운다는 희열과 감격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점수나 잘 받고 때우자는 지겨움이 들러붙는 게 국사 과목이었을 것 같네요.

 

이 책을 읽은 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바겠지만, "이미지 독서를 통한 스토리텔링 한국사"라는 컨셉에 잘 맞게, 한글을 깨쳤다면 취학 전 아동이라고 해도 페이지가 술술 잘 넘어가게끔 독자 친화적인 편집이 이뤄진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아동 독자에 주안점을 둔 쉬운 스토리텔링 한국사 아이템이 지금껏 없었던 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책들 중 대다수는, 우리가 종래 지겹게 봐 왔던 사항 암기 위주 컨텐츠에, "~는 이었어요. " , "~라는데, ~일까요?" 같은, 경어체 어미와 조사만을 살짝 토달아 놓은, 억지 문장화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대화체라는 옷만 입고 있을 뿐 결국은 내용 암기, 지식 전달이니, 어린 독자들이 딱딱한 교과서와 달리 느낄 바가 없었죠.

 

 

이 책은, 컨셉으로 내세우고 홍보한 바와, 독자가 실제로 책을 펴 읽고 느끼는 바에 별 괴리가 없다는 게 최고 장점입니다. 말 그대로 이미지 독서이며(참신한 도판 풍부), 말 그대로 스토리텔링 국사입니다. 지금껏 앙상하게, 키워드 위주로만 툭툭 던져 놓고 나머지는 교사와 학생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던 한국사가, 이제 발그레한 살색이 되는 피부에, 생기 있는 영혼이 비치는 눈빛을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아니 그게 이런 내용이었어?" 같은 놀라운 느낌, "대하 역사 소설 못지 않게 재미있는 게 조선왕조 오백년사였군!" 같은 희열이, 모든 독자들의 뇌리와 가슴에 스치고 지나갔을 줄 압니다. 저도 정말 좋았습니다. 독서란 활자의 소화, 해독(解讀)이라는 고역이 아니라, 이처럼 읽는 쾌감과 보람이 느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책은 조선의 창건자 이성계의 고조부에 관한 사연부터 시작합니다. "당연하다"는 건, 이 책이 조선사를 다루고 있으니 창업자 태조의 가계부터 훑는 게 자연스럽기도 하고, 이 책이 다룰 내용 중 시간적으로 가장 앞서는 게 이안사의 사연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이 챕터에 이후 이어지는 내용은 공민왕 때의 여러 사실(史實)들입니다. 대개 전주 이씨의 북방(삼척) 이주는 "관기(官妓)를 둘러싸고 벌어진 지방관과의 알력" 때문이라고 간략하게만 짚는 게 보통인데, 이 책은 제법 상세하게 이 웃지 못할 소동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마 사관이 의도한 바는, 세력 다툼에서 부당하게 밀려 대거 사민(使民)을 단행해야 했을 때조차, 따르는 주민이 백여 호, 천여 명에 달했다는 점을 강조하여, 목조 이안사가 덕망 높고 결단력 있는 대토호였음을 암시하려는 데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의방-이인(李麟. 이 책에서는 "이린"으로 씁니다) 이후 벼슬길이 막힌 이들 문중이, 농민 반란 비슷한 걸 일으켰다가 실패한 후 패퇴한 것이라는 추측을 내어 놓습니다(학계에서 널리 통하는 유력설이기도 합니다).  만약 이런 가설이라면, 산성별감이 또다시 삼척으로 부임해 와 2라운드를 이어간 곡절도 보다 매끄럽게 설명이 됩니다. 이 사람은 중앙에서 파견된 일종의 "특임 초토사"였던 셈이라고 말이죠.

 

이 책은 이처럼, 불친절한 사항 나열과 제시만 툭 던져 놓는 식이 아니라, 역사 본연의 속성에 맞아떨어지게,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의 내용을 충실하게, 그리고 친절히, 독자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역사(history)란, 본질적으로 이야기(story)입니다. 프랑스어 어원상으로도 두 단어는 의미의 궤를 같이합니다. 이렇게 역사를 배우면 재미도 있고, 시험에 출제되는 다양한 항목들에 대한 암기도 쉽게 이뤄집니다. "이야기"는 뚝 떨어진 지점과 지점을 잇는 고속도로이며 튿어진 자락을 붙여 주는 무지개실과도 같기 때문이죠.

 

 

"개혁의 아이콘" 신돈이 일선에서 물러난 후 고려의 국운은 돌이킬 수 없이 쇠퇴일로를 겪습니다. 공민왕은 상처(喪妻) 후 이성과 통제력을 잃고 방황하다 죽음을 자초하다시피 했고, 우왕은 요동 정벌을 하라고 보낸 이성계, 조민수에게 배신을 당한 후 최영과 함께 몰락, 최후를 맞죠. 이 대목에서도 저자는 소위 "4불가론"의 논리적 허점,원정군의 진군보다 귀환 속도가 "두 배나 빨랐다"는 사실 등을 들어 위화도회군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시각을 취합니다. 정사 위주의 고정되고 호도적인 관점만 취하는 게 아니라, 어린 독자들에게 어떤 강요된 결론 주입이 아닌, "비판적으로 볼 것"을 은근 권유한다는 면에서 이는 바람직합니다. 다만 1) 기존의 텍스트를 놓고 회의적 의견을 피력할 때에는 문헌적 반대 근거를 충분히 갖추어야 하고, 2) 학계의 권위 있는 전문가들이 이 이슈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를 넉넉히 살펴야 하겠습니다. 이 책에 나온 주장, 견해들은, 저자만의 관점이 아니라, 많은 토론과 논쟁을 거쳐 걸러지고 검증 받은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학부형들은 안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재미있는 점은, 조선 건국 당시 대륙도 원명 교체기였고, 불세출의 인걸이라 할 주원장이 건국의 토대를 놓던 시절이라, 우리 조선 건국의 주역들과 이들 명 조정 핵심 세력 간에 오간 교류, 다툼, 일측족발의 위기가 제법 자세하게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종래 우리 국사 교과서나, 그 주제가 조선사에 한정된 개론서들은, 대명 관계 서술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어, 국내사와 밀접히 얽힌 이 시기 동아시아 국제사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게 하는 데 대단히 미흡한 바가 많았습니다. 정도전의 표전문이 어디가 불손하고 무례해서 명 태조가 그를 압송하게 했는지, 어쩌다가 그런 외교갈등이 유야무야 봉합되었는지, 서술이 소략해서 알 수 없고 따로 논문을 찾아 봐야 했었는데, 이 책은 어린 독자들을 상대로 하고 있음에도 이처럼 명쾌하고 상세하고 가르쳐 주고 있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명 태조에 얽힌 에피소드 중, 자신의 지난 시절을 부끄러워 한 그가 특정 글자(則, 禿 등)을 금지했다는 사실은 유명한데, 정도전의 표전문이 이와 관련있다는 점도 지적하여, 중국사와 한국사의 교점을 매혹적이고 종합적으로 서술상의 구축을 꾀하고 있군요.

 

 

국사(국사 뿐 아니라 모든 역사가 다 그렇지만)는 정치사에 한정된 영역이 아닙니다. 현재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적, 유물이 과거에 어떤 의미와 기능을 지녔는지, 지금과 과거를 유기적으로 소통시키는 것도 그 고유의 목적입니다. 이 책은 정도전의 한양 건설기를 다루면서, 사대문의 원위치와 현 모습, 각각의 쓰임새와 변천사 등을 조목조목 짚어주고 있습니다. "스토리텔링"이란 구성, 체재를 취하면, 정해진 분량 안에 다룰 수 있는 정보가 많지 않다는 게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만, 이 책은 그래픽을 적절히 활용하여, 구구절절한 텍스트보다 더 효과적으로, 필수 정보를 (더 이해하기 쉽게)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왕자의 난을 다룬 대목도 흥미진진합니다. 조선 자체가 쿠데타로 세워진 나라지만, 왕조 초창기가 그토록 골육상잔의 후속 쿠데타로 점철된 나라도 드물 것입니다. 저자는 건조하게 가치중립적 정보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예컨대 정도전은 저서 <불씨잡변>에서 불가적 인과응보를 몹시도 힐난한 바 있었는데, 과연 응보의 원리가 미흡하게 작동해서인지 그가 그토록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며 짧게 평하고 있습니다. 양녕대군에 대해서도, 그가 적장자로서 왕위에서 밀려난 원한을, 세조의 쿠데타와 조카 살해를 지원함으로써 비열하게 풀었다고 저자는 보고 있습니다. 역사의 숨은 컨텍스트와 의미를 애써 발견,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이 책의 본 취지인 "스토리텔링, 살아있는 맥락의 재현"이란 컨셉과 조화를 이룹니다. 이 장을 읽으면서 이성계의 2처 6자 이름과 칭호가 한 번에 정리된 건 가외의 소득입니다.

 

세조에 대한 평가는 몇 차례의 변천을 겪어 왔죠. 물론 우리에게 친숙한 대로, "조카를 죽이고 형을 배신한 패륜의 악당- 사육신에게 혹형을 가해 죽인 폭군"에서, "국가의 펀더멘털을 재정비한 유능한 독재자"로 바뀌었고, 이제는 실록의 완역과 왕성한 연구에 힘입어 "국가 이념인 성리학적 질서를 근본에서 부정했고, 측근과 공신들의 방종, 부패를 조장한 악덕 정치인"으로 다시 바뀌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예전부터 민중들 사이에 인기 있었던 "사육신의 장렬한 최후"를, 야사에 머물지 않고 숨겨지고왜곡, 은폐되었던 진실의 지위로 다시 끌어 올려, 역사의 정(正)과 사(邪), 직(直)과 곡(曲)에 대해 에두르지 않고 서술자의 입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수대비의 시동생인 예종의 죽음에 대해 저자는 독살설을 지지하는 듯합니다. 세조에게 "표빈"이라 불렸던 그녀는 일찌감치 자신의 둘째 아들 자을산군(잘산군)을 보위에 오를 후보로 점찍고 있었으며, 금상의 승하 직후 지체 없이 보위의 승계가 이어진 점이 그리 석연치 않고, 담당 어의가 이후 후한 대우를 받고 신분이 상승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꼽습니다. 독살설은 근래 무분별하게 이곳저곳 추측 적용되는 감이 있어 학자들에게 비판도 받지만, 이처럼 개연성이 충분히 있는 경우에야 제때 제기되어도 무방하겠죠.

 

연산군은 풍운아같은 삶을 살다, 조선 들어 처음으로(그리고 이후로도 단 한 번의 유례만 남길 정도로 드물게), 신하들에 의해 "반정"의 형식으로 쫓겨 난 임금입니다. 출생이나 정통성에 아무 문제가 없었고, 명석한 두뇌와 군주다운 용모를 지녔음에도 그런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저자는 특히 내시 김처선의 일화 소개를 통해, 천한 신분도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직언하다 목숨을 내놓는 장거를 펼칠 수 있음을 예증합니다. 이처럼 이 책은, 건전한 주제의식과 균형잡힌 시각을 제시한다는 점이 매 페이지, 매 챕터에서 돋보입니다. 1권은 중종 때의 혁신가, 유림들의 아이돌이었던 조광조, 그를 숙청한 사장파의 거두 남곤, 심정의 사연으로 마무리됩니다. 죽는 순간 묘비와 문집을 일절 남기지 말라는 그의 유언에서, 요즘의 타락한 정치인들보다 오히려 낫게 볼 구석이 저들 유취만년의 양심 일말에 남아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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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가 기억하는 비범한 여성들
서영 지음 / 책벗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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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저는 막연히 "중국 역사에 이름을 떨친 여걸들"로 선(先) 프레임을 잡고 있었습니다. 15인의 여성 면면을 들여다 보니, 그 중엔 꼭 "여걸"이라고 할 수 없는 위인도 더러 있더군요. 그런 생각이 들고서야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책 표지를 다시 들추니, 책의 제목은 의연히 <중국 역사가 기억하는 비범한 여인들>이라고 적혀 있음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이 책에 실린 15명의 여인은 다들 비범했습니다. 어설픈 과잉자의식이나 근거 없는 사이비여권론이 아닌, 자신의 자아, 개성, 재능과 사회적 직분에 충실하고자 했던 성심(誠心)과 성의(誠意)로 가득한 영혼은, 설사 숨쉴 틈 없이 척박하고 부조리와 모순에 가득 찬 남성 위주 체제 아래에서도, 그  맑은 향취와 찬란한 광채를 이처럼이나 빛내고 있었던 거죠. 그런 여성들이 어디 이 15인뿐이었겠습니까. 세상의 하늘 반은 여성이 떠받치고 있는데, 당대인이 몰랐거나 애써 외면했을 뿐, 혹은 우리가 무지해서 알아 보지 못했을 뿐, 아마 훨씬 많은 수가 음지에서 인류 문화의 발전, 정신의 윤택화에 이바지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후대인들이 제한적으로나마 "기억하는" 여성 15인이라는 의미이겠으며, 앞으로도 역사가 영원히 기억해야 마땅한 인생과 족적이라는 저자의 의도가 담겨 있는 제목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책은 처음 받아들었을 때 독자를 많이 놀라게 하더군요. 표지 디자인이 예쁘고, 그 표지 화면 다소 오른쪽에 치우친 채 정면을 비스듬히,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시선으로 대하는 여성의 자태가 매혹적이기도 하고, 내용을 인쇄한 속지 모두가 초고급 백상지인데다, 천연색 도판이 잔뜩 실려 있다는 점에서였습니다. 내용이 설사 별로라고 해도, 이런 편집이면 독자에게 베푼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시덥잖은 기분으로 책을 읽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내용도 최강레벨이었습니다...


주로 중국 저자, 혹은 한국의 신출내기 저자들의 컴필레이션 중 이런 컨셉을 잡은 책을 우리는 자주 봅니다. 그런 책들은 대개 일관된 퍼스펙티브가 없고(혹은 지루한 내용 나열 중 편협한 독단과 아집이 느닷 튀어나온다거나), 여러 원전을 인용한다고는 하지만 내용을 보면 아주 흔한 대중서, 혹은 지나치게 자주 인용되는 고전 두어 권에서 내용을 조금씩 뽑아 이은 게 전부입니다. 그런 책들은 보통 본격 역사 대중서라기보다 자계서의 범주에서 벗어나질 못하는데, 사실 역사의 원전을 충실히 소화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자계서의 기능조차 온전히 수행한다 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은 일단 중국 정사(正史)를 직접 참조한 흔적이 완연합니다. 우리가 권위 있는 개론서를 보더라도, 저자의 명망을 그저 믿고 내용을 섭취할 뿐이지, 그 중 어느 정도나 확고한 문헌적 근거를 지니고 전개되는 주장, 정보인지에 대해서는 사실 눈을 감을 때가 많습니다. 이 책은 기존 개설서에서 무심히 게재되었던 여러 낭설, 혹은 의심스러운 명제 등에 대해, 본 텍스트 외 별개 꼭지나 박스를 마련하고, 교차 검증이나 치밀한 논리를 통해 반박하는 대목이 제법 많습니다. 대중서라고 해도 이 정도의 내용 밀도가 확보되어야, 독자들이 아까운 시간을 내어 책을 읽는 보람이 있을 겁니다. 저자가 자신만의 역사관(아집이나 낭설이 아닌, 문헌적 통찰의 산물)을 가지고 원전을 비평적, 비판적으로 재단, 재구성하는 노력과 내공이 엿보여야 그걸 역사서라 불러 줄 자격을 확보하는 것이겠고 말입니다.



다음으로, 아무리 중화 24사(二十四史)가 권위를 지닌 기록이라고 하나, 현대 사학의 관점에서 무류의 텍스트로 군림하게 할 수야 당연히 없습니다. 이 책은 해당챕터의 주인공으로 대접받는 여인들에 대해, 문집이 남아 있으면 그 기록을 토대로, 또 사인(私人)의 회고가 남아 있으면 그것대로 충실히 검토하여, 이를 균형 감각 있게 조합하여 자신만의 시선이 관통하는 멋진 구축물을 짜내고 있습니다. 대중서 한 권에 이만한 공력이 들어가기가 정말 쉽지 않고, 요즘의 척박하고 개탄스러운 출판 풍토에 공연히 독자 눈높이만 높여 놓은 게 아닌지 하는 우려(?)도 들었습니다. 저자가 잘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은 중국 현지의 지인들과 접촉해서 의문을 해소했다 하니, 작가에게 있어 인적 연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새삼 확인할 수 있었구요.

책의 1장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미녀스파이" 서시입니다. 고사 "효빈"의 모티브, 혹은 중국 3대 미녀니 뭐니 할 때의 그 여인이 맞습니다. 달기, 포사 등과 그녀가 차별되는 점은, 뚜렷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미션을 성취한 최초의 여인이었다는 사실이겠죠. 경국지색의 요녀들로 꼽히는 경우는, 대개 아무 생각 없이 말초적 향락이나 권세욕에 물들어 자신도 망치고 주위도 몰락시킨 "실패자"들이란 점에서, 높이 평가할 여지가 없습니다. 저들이 어디, 폭군을 망하게 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황음을 유도한 "논개적 지사"들이라기라도 하겠습니까? 근거 없이, 맹목적으로, 종래 유교적 윤리관에 의해 "악녀"로 규정된 케이스에 대해 무조건반사적 찬양을 하고 보는 태도 역시, 전근대적 무지의 산물임이야 재삼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책은 그런 관점을 지양하겠다는 듯 첫 챕터의 기수로 이 서시를 등장시켜, 비록 수동적 입장이었을망정 일관성 있는 의지에 의해 대업을 완수한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과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 분이 부정적 요소가 끼지 않은 평판을 유지하는 것도, 그녀가 다만 보기 드문 미인이란 이유에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3장은 한 고제(高帝)의 배우자이자 사실상의 공동 창업자였던 여후를 다룹니다. 이 책의 장점은, 챕터 첫머리에 인물의 최후라든가, 절체절명의 위기라든가 하는 사건을 소설투로 배치하여, 독자의 극적 흥미를 자연스럽게 이끌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시도는 문장이 능란하지 못하면 자칫 유치한 호객행위로 끝날 수도 있는데, 이 책의 저자분은 필력도 참 좋으신 편입니다. 속어나 시쳇말에는 따옴표를 일일이 붙여서, 부득이하게 이런 어휘를 배치할 뿐이라는 의도도 분명히하고 있습니다. 이분은 너무도 유명한 인물이니 어떤 소개도 새삼스러울 뿐이지만, 저자는 척 부인 등 다른 여인들의 관계나 시점을 자주 끌어들여 서술상의 단조로움을 피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이라고 터무니없이 미화한다거나, "그녀 역시 남존여비의 체제에서 일개 희생양일 뿐이었다"는 식의 천편일률 견강부회 합리화 없이, 악행의 응보를 받았다는 취지로 마무리하는 점도 깊은 공감을 자아내었습니다. 다만,.... 저자분은 여치를 두고 "정사에 단독 전기가 실린 유일한 여성"이라고 하시지만, 당장 8장의 주인공 무측천만 해도 <舊당서>에 본기가 따로 편제되어 있습니다. <新당서>의 경우 중종과 합술된 체재라, 아마 작가분이 착오한 것 아닐까 추측합니다.

2장에 실린 대사업가 과부 청(淸)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아내었을 줄 압니다. "그런 사람이 다 있었어?"라 할 수 있으나, <사기> 화식열전에 엄연히 나와 있으니 대중적으로 낯선 인물도 아닙니다. 물산이 풍부하고 비교적 남녀 평등 기조가 살아 있는 내륙의 파(巴) 지방에서 나온 인물이라, 사실 우리 선입견마냥 무슨 기적 같은 존재이기만 한 건 아닙니다. 어떤 분은 "요즘도 이런 여걸은 찾기 힘들다."고도 하시는데, 우리 나라만 해도 입이 딱 벌어지는 불굴의 의지, 불세출의 재능과 수완을 지닌 여성 사업가들, 제법 많습니다. 우리 시대의 청 부인이 혹시 누가 있을지, 먼저 현대의 한국부터 둘러 보게 해 주는 아주 유익한 내용이었고, 더불어 시황 영정이 모성에 대한 배반, 상실감에 의한 보상심리로 어머니뻘 그녀를 각별히 대접했다는, 여성 저자 특유의 시선, 해석도 제게는 흥미로웠습니다(개인적으로는 반대합니다만).



5장의 반소는, 여성의 손으로 쓰여지는 역사서가 다루는 여성 사학자라는 점에서 이 책에선 각별한 의미, 자기지시, 나아가 책의 요체와 주제를 함축하는 의의를 지니겠습니다. 흔히, 공(功)은 군주나 가장(家長), 무리의 수뇌에 대표로 돌리고 마는 동양 특유의 악습 때문에 최초 단대사(斷代史) <한서>의 저술을 반고의 업적으로 치부하고 말지만, 보기 드문 탤런트였던 그녀가 이 대사업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는 이미 종래의 개설서들에도 인색하게나마 크레딧을 해 주고 있었습니다. 6장의 채문희와 더불어, 여성이라도 특별한 두뇌와 소양, 능력을 지닌 이라면, 특히 남성 군주가 자신 역시 특별한 자질을 지닌 조건이라 성별 불문 재능의 소중함을 알아볼 자질이 있을 때, 언제라도 특채되어 제 기량을 발휘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조맹덕 역시 수백 권의 문헌을 선 채로 암기하는 문희를 보고 얼마나 대견하게 여겼을지, 그 흐뭇해하는 미소가 지면 너머에서 선히 전해지는 듯만 합니다.



8, 9장의 주인공은 무측천과 상관완아입니다. 무측천 역시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라 이 챕터에 실린 내용이 그리 새롭게 와 닿는 독자는 많지 않을 겁니다. 대신 그녀의 치세 한 귀퉁이를 든든한 들보로서 떠받든 명리(名吏) 상관완아는, 이런 책의 한 장(章)의 주인공 노릇이 따로 맡겨질 만한 자격이 충분하죠. 어떤 이는 사서에서 자주 만났으면서도 그가 여성인 줄도 모르더군요. 중국 역사상 빼어난 행정능력과 기민한 정치력을 지닌 여성 인재가 어디 그녀뿐이었겠습니까만, 이처럼 "여인천하"의 무대가 마음껏 펼쳐질 수 있는 호풍(胡風) 완연한 세상이라야 두각을 나타낸 이름이 한둘 거명되는 게, 얼마나 큰 역사의 손실이었는지 새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두 챕터에 곁가지로 나오는 위황후니 태평공주니 하는 이들도 보통이 넘는 수완이었겠으니, 가히 이 시대야말로 여인들이 규중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한껏 켜던 드문 황금기라 하겠습니다

"여류 문인"이란 말은 부당한 편견이 잔뜩 서린 지난 시대의 용어입니다. 섬세한 감성과 미묘한 포착력으로 별천지의 심상을 제시함은 본디 여성 본연의 영역이니, 주객이 전도된 비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현기, 이사사, 이청조 등은, 여성의 문재가 어느 경지, 어떤 성취를 보여 줄 수 있는지를 증명한 일류 문인들이라 할 수 있스습니다. p196에 보면 청대의 그림을 소개하며, 어현기의 이름이 "원기"로 적힌 것에 대해, 강희제의 본명인 "현엽"에 대한 피휘 목적이라고까지 친절한 해설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분 역시 당나라 때 인사라는 게 못내 아쉬운 점입니다. 이후 송대, 명청대라고 해서 이만한 여성 문인의 재목이 일정 비율로 세상에 탄생하지 않았겠습니까? 도교가 성행한 왕조답게, 어현기 역사 도사 신분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점입니다.

저 위 상관완아와 비슷한 처지(그러나 상관씨는 재상 취급을 해 줘야 할 관직을 보유했다는 게 다르죠)로, 북제의 여관 육영훤이 소개됩니다. 역시 국내 독자들은 잘 모르는 이가 많을 것 같은데요. "태후로 사는 것보다 장안 기생 노릇이 더 즐겁다."고 했던 호황후 시절 내관이라고 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겠죠. 제가 이 책 읽으면서 특히 즐거웠던 건, 저런 인기있는 에피소드에 대해, "정사에 근거가 없으니 야사일 수 있다"고 분명히, 일일이, 선을 긋는 저자의 태도였습니다.

심지어 14장을 보면 "내조의 여왕 마황후"라고 해서, 발 크기로 소문난 마황후 이야기뿐 아니라, 그 부군 주원장에 대한 정확한 이해까지 돕고 있습니다. 사실 주원장이야 그 흉칙한 외모, 불우한 성장 과정 탓에, 세상 누구보다 외로운 인간이었을 텝니다. 이런 그에게, 성격상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루는 마황후야말로, 필생의 동반자요 요철의 궁합 아니었을까요. 책 중에는 주원장 본인의 회고를 인용, 화적 시절이나 탁발승 처지에서 천자의 자리까지 오른 자긍과 호연지기를 마음껏 표현하는 문장이 남아 있는데,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특정 한자를 금칙어로 만들었다는 건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까지 주장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놀랐는데, 제가 아는 바와 크게 달라 주말에 국회도서관에 가서 확인을 해 볼 생각입니다.

권말에 참고문헌 목록이 없는 건 아쉽지만, 대신 본문에 일일이 인용 문헌 제목을 대고 있으므로 흠잡을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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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정리력 - 1주일 만에 수익 2배 올리는
공민선 지음 / 라온북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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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개 점포이든, 소규모 기업이든 그 이상의 중견 업체든 간에, 사장으로서 기업을 운영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배짱도 좋아야 하고, 순간적인 판단력이 빼어나야 하며, 요즘 같은 세상에선 해당 분야 기술에 정통하기까지 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만능인이 되어야 하는 게 요새 사장님들의 사정입니다.

 



보통 사업의 판세를 보는 전체적 안목이 없으면 경영주가 되기 힘들다고 합니다. 행동경제학(행태경제학)의 태두인 카너먼이 쓴 표현을 빌리면, 자기 사업의 매 단계 결정에 있어 "fast thinking"이 가능한 사람이라야, 크리티컬 모먼트마다 기민한(그리고 유리한) 결단을 내리는 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능력이 있기에 지금까지 성공을 거두었겠고, 그래서 이런 분들은 매사를 이런 방식, 즉 "척 보고 감으로 바로 처리하는" 방식에 의존합니다. 이 책 pp. 86~88에는 사장의 유형을, 사업가형/관리자형/기술자형으로 삼대별하는데, 가장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타입은 아마 이런 "사업가형"이지 싶습니다.

사업의 규모가 작을 때에는 이처럼 감에 의존하는 방식이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분이 지속적으로 성공을 거둬, 종전보다 큰 규모로 불려나가면서부터는, "기업의 내실을 다지고, 어디선가 모르게 줄줄 새는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각성을 하게 됩니다. 이런 걸 두고 이 책의 저자는 "기업 정리"라고 부르는데, 이런 정리의 요령과 기술은 "fast thinking"으로 수행할 수 없습니다. 주먹구구나 막연한 감 같은 것으로 대신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창업/수성의 이분법을 따르자면, "기업정리"는 "수성(守城)"에 해당하는 셈입니다.

 



만약 "관리자형 사장"이라면, 이 책을 보지 않아도 이미 잘 하고 있을 것입니다. 저자가 다소 우려스런 눈으로 보시는 "기술자형 사장님" 역시, 이 책을 읽는다면 대번에 경각심이 들어, "우리 회사가 뭐가 문제인지" 점검하려 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업가형 사장님들이라면 어떨까요?

"사업가형 사장님"들은, 지금까지 자신이 해 온 방식에 대해 큰 긍지와 자신감으로 무장해 있기 때문에, 기업 내부의 관리 문제, 회계 문제에 대해서는 그저 아랫사람, 담당자들에 맡기고 마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직원들은 그저 자신의 입장과 한계에서 일을 처리할 뿐, 회사 일을 그 주인인 사장 본인처럼 절박히 여기고 추진하지는 않습니다. 사장인 나 아닌 다른 이들에게 일을 전적으로 맡기는 건 그만큼 위험한 일입니다. 이 책 pp.116~119에 나오는 것처럼, 예컨대 회계 업무를 이중 체크 시스템으로 관리하지 않고 일개인에게 맡긴다면, 회사 자금 80%가 증발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는 거죠. 저자는 이런 경우, 그렇게 허술한 방법으로 자금을 관리한 사장 자신도 잘못이라고 지적합니다. 냉혹한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무능과 경솔, 부주의야말로 최대의 악덕이라는 관점이겠죠.


이 책은 따라서,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내용을 지금껏 대수롭지 않게 여겨 온 사업가형 사장님"들이, 자신의 기업을 다음 단계로 도약시키기 위해, 어떤 점에 주목하고 보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내용, 주로 이것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 역시 이런 "사업가형 사장님"을, 기업가로서 가장 이상적인 유형으로 꼽고 있는 듯합니다. 이런 분이 앞으론 어떻게 해서 "관리자형의 미덕"까지 겸한, 다른 차원의 CEO로 거듭날 수 있는지 진지한 코칭을 행해 주는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저자 공민선씨는 삼성에 재직하다가 퇴사한 분으로, 프랜차이즈 점포, 개인 매장 등 다양한 실전 경험을 쌓다, 현재 컨설팅과 교육 업무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분입니다. 컨설팅은 보통 회계사 자격을 가진 분들이 수행하는데, 공 소장님은 그런 것보다 현장에서 몸소 체험하고 터득한 실전 노하우 위주로 무장한 분 같습니다. 대신 이분은 한국 최고의 회계법인이라 할 수 있는 삼일의 창업자 서태식 회장님을 사사하기도 한, 웬만한 경력자가 쌓기 어려운 귀한 커리어까지 지닌 분인 걸로 책에 나옵니다. 대가로부터 직접 교훈을 받는 일은, 여간한 자질과 열성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겪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이 책 중에, 저자께서 직접 "어린 사장님"으로 매장 관리를 하고, 직원들을 통솔하고, 현장에서 수시로 부딪히는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는지를 두고 풀어 주는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나이가 어려서(그리고 이런 능력자분들, 성공한 커리어우먼들은, 좀처럼 자기 입으로는 이야기 안 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깔보는 거래 상대들을 두고, 어떻게 구스르고 설득하고 요리해 나갔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저자 개인의 체험이 녹아든 팁을 알려 줄 때가, 독자나 청중으로서는 실감과 교감치가 최대로 올라갈 때죠. 저자는 업무 매뉴얼을, 어느 부서의 어떤 팀장이나 반드시 작성해 놓을 것을 충고합니다. 실제로 저자는 삼성에 근무할 시 업무 인수인계를 맡을 때, 전임자가 잘 짜 놓은 매뉴얼 덕에 덩달아 칭찬을 받을 수 있었고, 무신경한 전임자가 부실하게 해 놓고 간 인계 때문에 (직급이 낮은) 자신이 대신 욕을 먹은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직원이야 오너한테(혹은 상급자에게) 혼만 나면 그만이지만, 그 때문에 빚어진 업무 차질은 누구의 손해겠습니까? 바로 사장의 몫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주문은, 직원이 아니라 사장한테 하는 말입니다. "직원들에게 매 단계, 업무의 연속성이 보장되도록 매뉴얼을 필히 작성하게 하라." 사장 자신 역시 (특히 규모가 작을수록) 반복되는 일은 매뉴얼화해 놓는 게 시간과 정력을 절약하는 길입니다.

이 책에는 특히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사업자로 전환"하려는 기업(업주)의 사례가 많이 나옵니다. 저자 본인이 그런 케이스를 많이 다루고 컨설팅하셨기 때문이겠지만, "기업정리"를 해야겠다는 자각이 드는 대부분의 사장님들이 현재 보편적으로 겪고 있는 고민이기도 할 겁니다. 그런 경우에 특히 유의해야 할 바를 공 소장님은 여러 군데에서 알려 주고 있습니다.

p59에 보면, 이제 법인사업자로 전환은 했으나, 막상 사장으로서 업무에 임하려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 지 몰라. 교육받는다는 명목으로 2년 동안 외부에서만 돈 어느 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읽으면서 저도 와, 이런 경우도 있구나 싶어서 좀 놀랐습니다. 사실 이런 케이스는 다른 것보다 심적인 자신감 회복이 중요할 것 같은데요. 공 소장은 먼저 회사 내 공간정리부터 시켰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회사의 "정리"인 셈입니다. 사실 이 책의 주제인 "회사 정리" 역시, 구조와 시스템에서 낭비적 요인, 비합리적 요소를 말끔히 제거하고, 슬림한 몸으로 레이스에 나서자는 건데요. 그 출발은 물리적 공간의 정리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하려는 일도, 이런 집안, 건물 청소와 다를 바 없습니다." 확실히 이런 세심한 독려와 동기 부여는, 여성만이 착안하고 실행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p111을 보십시오. 개인이 법인사업자로 전환할 때 얼마나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아주 극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이거 읽으면서 내용이 잘 이해 안 되는 분도 있을 건데, 쉽게 말하면 이런 겁니다. 자기 소유 건물에서 사업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진 개인사업자였다가, 이제는 법인사업자로 바뀝니다. 이때, 사장 A라는 사람은 그대로 있고, B라는 법인이 하나 더 생긴 겁니다. B의 대표이사는 여전히 A라는 사람이지만, B는 A와는 별개 존재이기에, A 소유의 건물 일부(상가 점포)를 세내어 쓰는 계약을 새로 맺은 겁니다(밖에서 보기엔, 임대인과 임차인이 같은 기묘한 풍경이죠).

이 때 임대차 계약을 잘못 작성한 거죠(책에는 분명히 안 나와 있으나, 담당 세무사의 과실로 보입니다). 실제로는 계약금 수수가 없었는데(자기가 자기하고 맺는 계약이니까), 서류상으로는 8천-40이라고 적혀 있으니, 이제 "법인 B"에게 (받은 적도 없는데) 돌려 줘야 할 부채가 8천이나 생긴 거죠. 이때 공 소장은, 3천-150의 상가 임대차 계약을 새로 맺으라고(계약 갱신) A 사장님에게 권합니다. 그러면 법인 B에게 5천까지만 돌려 줘도 되고(세무 처리상 이 부채 반환을 미루거나 불이행 할 수 없습니다), 빌린 5천은 앞으로 들어올 월 임대료 150으로 천천히 갚을 수 있다는 게 공 소장의 조언이었습니다. 책에는 이처럼 사실 관계만 간단히 적고 마셨지만(너무 간단해서 이해가 어려웠던 독자도 있었을 겁니다), 이 과정에서 여성이고 나이도 어린 편이었을 공 소장이, 클라이언트가 내 말을 안 받아들이면 어쩌나 하고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눈에 선히 그려지는 것 같았습니다. 삼성 퇴직 후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 저렇게 많은 지식을 (해당 업무와 큰 연관도 없으셨을 텐데) 빨리도 배우셔서 자기 것으로 소화하셨다 싶어서 감탄이 나왔습니다.

이 책에서 아주 자주 강조되는 내용, 즉, 많이 팔면 다 메꿔지겠거니 해결되겠거니 하는 안이한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자영업 사장님들은 깊이 마음에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잘못된 가격 책정과 허술한 판매 계획 설계 때문에, 그렇게 고생해서 매상을 올려 놓고도, 팔면 팔수록 손해가 커지는 어이없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진다느 것입니다. 이나모리 가즈오 전 교세라 회장의 말처럼, "더 올리면 거래가 안 이뤄지는 그 상한선까지 가격을 올려서 받지 않을 바엔 사업을 하지 말라"는 원칙, 어느 상황에서도 잊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공 소장은 대형 요식업매장을 운영하던 시절, 불시에 관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때 예컨대 유통기한이 지난 식자재 비치 같은 것이 발견되면 바로 영업정지 처분(15일)을 받는데, 이는 거의 폐업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죠. 평소에 직원 교육, 관리를 확실히 해 놓았기에, 단 한 명이라도 제 할 일을 하지 않았을 경우 벌어질 치명적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직원은 사장이 키우는 것이라는 말도 귀 기울일 가치가 있습니다. 마윈의 예를 들어, 외부 영입 인사는 결국 회사 성장 과정에서 다 떨어져 나갔는데(여러 이유겠죠. 능력 부족 실적 부진 부적응 등등), 살아남아 이사직까지 남아 있는 건 마윈이 처음부터 데리고 있던, "재목이 아니라고 봤던" 평범한 직원들이었다는 겁니다. 능력보다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한 덕목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게 공 소장의 결론입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자산입니다. 공 소장은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변환할 수 있는 시간정리에서, 모든 기업 정리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같은 공간을 써도 효율적으로 정리하고 쓸모를 최대화하는 주부와 그렇지 못한 주부가 따로 있듯, 사장님들도 호쾌한 외부 확장에만 주력할 게 아니라, 먼저 기업 내부에서 비합리적 낭비적 요소를 제거하고, 말쑥하게 기업을 "정리"하는 게, 성공과 도약을 위한 첫걸음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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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에 사는 남자
피터 S. 비글 지음, 정윤조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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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묘지란, 죽은 이들을 위한 장소이지 산 사람이 거기서 터잡고 의지할 데가 당연히 못 됩니다. 죽은 뒤 한 줌 흙으로 변할 육신에, 따로 그를 뉘일 장소가 필요한 것도 아니니, 엄밀히 말해 죽은 이들을 위한 곳이라기보다 그를 먼저 떠나 보내고 남아 있는 이들의 마음을 위한 장소가 묘지일 뿐입니다. 설사 망자와 각별한 사연, 연고가 있는 이라 해도 묘지에서 숙식, 기거를 할 수는 없습니다. 과거 유교 문화권의 경우 "시묘살이"라는 미풍이 권장되기도 했으나 이는 극히 예외적 상황입니다.

 

산 사람이, 그곳에 딱히 연고를 가진 이의 유해가 안장된 것도 아닌데 묘지에서 내내 생활한다면, 그리고 그곳의 유령들, 그곳을 자주 찾는 금수들과 대화를 즐겨 나눈다면 이는 분명 정상이 아니고, 아마 사회로부터 (정신 병원 입원 등) 특별한 조치를 받기에 충분한 "질환"을 지닌 걸로 판정받을 수 있습니다. 조너선 리벡은 초로에 접어든 남성인데, 놀랍게도 그는 19년째 지역의 공동묘지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관리측으로부터 들키지 않고 이어 온 기인입니다. 예전, 한국의 국가대표 양궁팀 코치진이 담력 강화 훈련의 일환으로 선수들에게 밤중에 묘지 일주를 시키곤 했다는데, 이 리벡이란 분은 묘지 안이 아니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고 하니, 그가 자발적으로 세상을 거부해서 묘지에 정착했다고는 하나, 세상 역시 설령 그가 묘지 밖으로 나오겠다고 해도 그의 정신 건강을 의심해 모처에 격리할 만도 하겠습니다.

 

여튼 그는 (묘지 관리 당국을 포함하여) 세상에 들키지 않고, 19년이란 긴 세월을 버텨 왔습니다.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는가, 본디 망자들과 친한 걸로 여겨져 온(그래서 인간들에 의해 불길하게 취급받아 온) 동물 중에 까마귀가 있지요. 까마귀 중 별난 놈 한 마리가 이 리벡 씨와 친합니다. 이 까마귀가 매번 어디서 훔쳐 오는 음식에 의지해서 리벡 씨는 살아왔습니다. 리벡 씨는, 이 지능 높고 시니컬하며 의리 있는 까마귀와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리벡 씨가 신통하다기보다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신문까지 읽을 줄 아는(작품 중간쯤에 나옵니다) 이 까마귀의 능력이 더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벗으로 사귀어 왔건만 리벡 씨는 까마귀에게 이름을 붙여 부르지 않고, 까마귀도 자신이 종(種)을 대표한다고 여기는지 아무개라 불러달라는 요구를 (리벡 씨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하지 않는군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나 둘리틀 박사도 아니면서 리벡 씨는 이 까마귀와 의사 소통이 가능하지만, 그 외에도 조너선 리벡은 망자의 혼령들과 대화가 가능하고 혼백들의 형체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혼백들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걸로 나오는데, 리벡은 그들에게 자신들의 현재 꼴을 묘사해 줄 수 있으니, 유령을 보고 까무라치지 않는 것만 신통한 게 아니라 분명 오랜 묘지 거주 생활 동안 모종의 능력자가 된 겁니다. 리벡의 신통력은 아닌 것이.. 소설 중반 쯤에 이런 능력자 한 명이 더 등장합니다. 리벡은 그리 긴 시간을 공동묘지에 살았으면서 "그"도 그런 능력을 지니게 된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능력자(?)라곤 하나, 다 자란 성인으로서 경제할동에 참여하지 않고, 모든 (살아 있는)이들이 기피하는 장소로 숨어들었다면, 그런 사람은 무능력자로 취급 받아 할 말이 없을 건데요. 사실 그는 약제사라는 버젓한 직업을 갖고 있었으며, (소설 후반에 나오듯) 직업인으로서 그리 지식과 기능이 뒤떨어지지도 않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전문직종 종사를 통해 부를 쌓고 성공을 누리는 길을 거부하고 가장 침침한 응달로 퇴장한 건, 어떤 사연과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작품을 직접 읽어 보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소설을 처음 읽어나가는 이들에게 가장 흥미로운 서술은, 사람이 죽고 나서 그 영혼이 과연 어떤 상태에 처하게 되는지,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실감(?)나게 써 놓은 첫 오십 페이지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신체가 없어도, 마치 불구가 된 이가 아직도 팔다리가 그 자리에 놓인 걸로, 아픔도 느끼고 거동도 가능한 듯 착각을 하는 것처럼(이런 걸 유령감각이라고 하죠), 죽은 지 얼마 안 된 혼백들은 생전의 신체 감각을 유지하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감각이니 감각에 대한 기억이니 하는 게 죽은 자신과 무관한 사정이라는 걸 깨닫고 다 잊기 시작합니다. 추억은 신체의 작동과 딱히 관련이 없지만, 죽은 자에게는 시간(과거-현재-미래) 개념도 없으니 결국 자신이 누구였는지, 누구를 사랑하고 미워헸으며 어떤 취향과 세계관을 갖고 살아 왔는지 차츰 잊어갑니다. 이렇게 모든 기억을 잊으면, 그 영혼은 비로소 "무(無), 부존재"의 상태로 변한다는 게, 리벡 씨가 신참 유령들에게 들려 주는 진실입니다.

 

이 대목을 읽을 때 솔직히 재미있다기보단 마음이 슬퍼지더군요. 사람은 돈보다, 명예보다, 자신이 순간순간 살아오며 쌓아올린 기억과 추억이 가장 소중한 건데, 육신을 잃고 마침내 정신까지 잃어가는 그 사후의 과정.... 그래서 리벡 씨와 막 친해진(죽은 지 얼마 안 된) 마이클 모건은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있지도 않은 팔다리를 놀리고 기지개를 켜고 정신을 집중하여 사멸해 가는 기억을 되살리려는 듯 온갖 애를 씁니다. 생에 대한 집착이 강한 자신과는 달리, 무기력 속에 사실상 자살을 택한 로라(의 유령)를 맞이한 그는, "죽지 말고(?) 자신처럼 유령으로서 깨어 있으라"며 격려도 하고 자극도 주고 아주 열심입니다. 살아도 산 게 아닌 리벡 씨는 이 젊은 유령들의 이상한 교제를, 다소 시큰둥한 태도로 바라봅니다.

 

리벡 씨는 새 친구가 생기는데, 망자는 아니고 미망인(....)입니다. 부인의 행색이나 망자를 위해 조성한 묘역(영묘)의 규모를 봐선 대단히 부유한 계층 같습니다. 죽은 남편 모리스를 몹시도 그리워하던 거트루드 클래퍼 부인은, 이 리벡 씨를 우연히 발견(그는 숨어 사는 처지입니다)하고, 자신보다 좀 더 나이 든 초로의 그에게서 죽은 남편의 모습을 찾고는 그에게 갑자기 친밀감을 느낍니다. 물론 묘지에 숨어 사는 괴짜, 정신이상(으로 오인되기 충분한) 노인이라고는 생각지 못하구요.

 

리벡 씨가 19년 동안 묘지에 숨어 살았다고는 하나, 그는 속마음으로 누군가에게 들키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을 지 모릅니다. 특히 소설 2/3 정도가 지난 후, 그가 "누구"와 주고받는 희극적 대화 속에는, 아예 "은둔의 발각"을 바라고 있는 그의 속내가 드러나다피합니다. 리벡 씨는 자신이, 자신 아닌 다른 사람의 대체물이 되는 걸 극력 기피하는 마음이었는데, "누구"를 만나고부터는 그런 부담을 마음에서 씻어 버리고, 자신을 향한 "누구"의 진심을 확인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는 결단을 내리죠.

 

작품에는 두 번의 반전(...)이 있습니다. 마이클이 젊은 나이에 이 묘지에 묻히게 된 건 그의 아내로부터 독살을 당해서라는 게 그의 설명인데(초반에 이 대목으로 끝나는 챕터까지 읽고 독자들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이후 마이클의 부인 샌드라 모건은 남편을 독살했다는 혐의로 사법기관에 의해 기소됩니다. 소설은 까마귀가 신문 보도를 통해 알려주는 재판의 경과 소식으로 이 사연의 꼭지를 한편에서 이어가고 있으며,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독자는 이 흐름으로부터도 관심을 놓지 않습니다.

 

나머지 한 번의 반전은... 이게 이 소설의 백미입니다. 어느 작품이건 결말에선 그간 꼬이고 악화되어 왔던 인물들 간의 대립과 갈등이, 모럴의 고양과 보통 함께 해소됨을 추구하죠. 이 소설은 리벡 노인이 "누군가"의 쿨한 훈계를 듣고 마음을 다잡으며, 로라 역시 "누군가"의 실제 사연이 듣던 바와 다르다는 걸 알고 마음을 놓은 후 리벡 등 "산 자들"에게 어떤 부탁을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야 우습기 짝이 없는 소동인데, 사건 전개를 지켜 봐 온 독자들은 마음이 짠해지는 내막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어느 커플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해로를 하게 되고, 다른 커플(?)은 죽음도 갈라 놓지 못할 결합을 이룹니다. 환상과 위트가 가득한 속에, 우리들도 과연 존재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미워한다는 그 숭고한 감정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 유쾌하고 재미있는 내러티브와의 만남 후 깊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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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 소나무 신부와 함께하는 마음의 산책
김대열 지음 / 푸른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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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영혼은 저속하고 품위 없습니다. 좋아하는 이의 행복을 빌어 주는 영혼은, 딱히 훌륭하다 칭찬을 해 줄 필요까지는 없다 해도, 아마 선하고 무해한 존재일 것입니다. 나의 구애를 거절한 이의 행복을 끝까지 빌어주는 영혼은, 타인이 보기에는 안타까워도, 증오와 원한의 마음가짐을 끝까지 물리치고 멀리했다는 점에서 아름답고 가상합니다. 육신과 영혼을 가진 모든 인간을 위해 그 행복을 기원하는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종교적 성자입니다.

이 수필집은 일본에서 가톨릭 사제로 봉직하고 있는 50대 초반의 어느 신부님의 여러 단상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일본은 인구가 우리 남한의 두 배를 넘지만, 천주교 신자의 수는 매우매우 적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 이 종교가 전래되고 유력 영주들도 개종한 바 있는데도 사정이 그러합니다. 신도 수에 비례해서 사제 지망생이 나오는 게 아니라, 평신도가 일정 규모 이하이면 아예 인적 자원이 없다시피한 게 그 실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독자인 제가 모르긴 해도 아마 그런 이유로, 저자 김대열 신부님이 그곳에서 긴 기간 사목 활동을 하고 계신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본이건 어느 나라건, 천주교 신자이건 아니건,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끼리 부대끼며 겪는 갈등이나 애정사는 서로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가톨릭 사제, 프로테스탄트 목사님들, 불교의 스님들이 맡아야 할 중요한 직분 중 하나는, 그런 상처입고 혹은 방황하는 남녀노소 영혼들을 잘 인도하고 어루만지며, 바람직한 관계와 소통의 형성에 기여하는 일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이 책, 장정이 예쁘고 볼륨이 생각보단 두꺼우며, 본문이 깔끔하게 편집-배치된 이 수상록은, 우아한 외관만큼이나 안온하고 속이 꽉찬 언어를 가득 담아, 읽어내려가는 중 마음의 평화가 절로 찾아지는, 담담하고 사려 깊은 고백과 술회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얕은 지식으로 교만하게 굴지 말며, 더 근본적이고 넓디넓은 지혜의 바다 앞에 겸손할 줄 알자- 이는 각자 믿는 종교를 떠나서, 인지(人智)와 상식의 한계를 경험한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르침이 아닐지요. 예수를 배반한 제자 유다는, 처음부터 인간이 악종이라든가, 혹은 물질 만능의 사고에 젖은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애초에 제자로 들이지도 않았겠거니와... 기록에 남은 그의 자취를 봐도 오히려 다른 11인보다 더 교육 수준도 높고 유대 지방에서의 평판이나 지위도 높은 편에 속하는 인물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그가 왜 패륜을 저지르고, 누천 년에 걸친 악명을 쓴 존재로 전락했는가. 그는 나름대로 투철한 지성과 의기에 의해 행동하는 열심당원(젤럿)이었으며, 큰 기대를 품고 모신 스승이, 그가 처음에 상정했던 가르침과 동떨어진 이야기만 했기에, 배신감과 상처를 다스리려는 의도로 그런 선택을 한 것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악하지 않은 동기가, 어설픈 지성과 판단과 결합"했을 때, 어떤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유다는 우리가 속단하듯, 그리 타락하거나 멍청한 위인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유다보다 더 똑똑하다고 결코 말할 수 없는 우리가, 우리 자신만의 지성과 요량을 믿고 경솔하게 나선다면, 그 결과는 얼마나 더 파멸적일 수 있을까요? 모골이 송연해지는 일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한 신심 깊은 어른, 스승, 성직자가 꼬마에게 얼마나 큰, 바람직한 영향을 그 성장 과정에 끼칠 수 있는지 털어 놓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신약 성서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너무도 유명해서, 심지어 어느 베스트셀러 경제대중서의 제목까지 이 어구를 살짝 비틀어 채택했을 정도죠.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이 이야기를 주제로 어린이 연극을 꾸미는데, 목사님이 천주교 신자인 김대열 소년을 "착한 사마리아인 역에 캐스팅"한 것입니다. 소속 교파나 믿는 종교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 나를 사랑하고 좋아해주는 이웃이면 누구나 나의 형제라는 가르침을, 이처럼 명실상부하게 보여 주는 예가 또 있겠는가. 저자의 회고가 이렇습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반목이, 근현대의 신구교 갈등에 비기기 딱 좋은 소재죠. 마치 2천 년 전의 그분이, 이후 이런 상황을 미리 다 내다보고 그런 말씀을 하신 거나 아닌지, 거 참 읽으면 읽을수록 상황 부합이 신통했습니다. "누가 나의 형제이며, 부모이고, 이웃이더냐?"

저자가 일본에서 사역을 하다 보니, 이 책에는 그가 그간 만나 온 다양한 처지의 일본인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 중에는 의지할 데 없는 노인, 가난한 계층, 장애인이나 중병 난치병 환자들이 많습니다. 이들의 사연은, 거의 한결같이 삶의 극한 상황에 몰려, 가장 사랑하고 가까이할 소수의 친우, 가족들과의 소통 안에서만 실낱 같은 희망을 이어간다는 점입니다. 가끔은 기적이 일어납니다. 본디 중증의 장애가 있었던 데다, 뇌질환 등 신경계에서의 추가 발병 때문에, 거동은커녕 의식의 최소한 회복도 불가능할 만큼 상태가 나빠지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의료진도 손을 놓은 환자가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을 알아 보고, 입을 떼어 간단한 말이라도 하는 순간, 지인들과 주변의 분위기는 감동과 환희로 가득 물듭니다. 그저 숨쉬고 거동하고 감각하고 누군가와 함께라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로 가득한 상태인지, 이 책에 실린 여러 일화들은 감동적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깨달은 바가 있다면, 이는 즉시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각성이나 지혜가심심산중에 머무르지 않고, 탐욕과 악행, 기만과 증오로 가득한 풍진의 누리에서 실천의 기능으로 쓰이지 못한다면, 이는 돼지나 아Q의 눈멂, 사악함과 다를 바 없는, 극한 절망의 지옥에서 사탄의 졸개가 휘두르는 삼지창의 파편에 비겨 마땅합니다. 행동이 없는 지식, 나눔이 없는 사랑은 더 이상 아무 미덕이 아니며, 가축이나 사기꾼의 과장되고 헛된 요설만큼이나 해악 가득한 추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는, "가장 낮은 이에게 베푼 것이, 곧 내게 해 준 것"이라는, 이천 년 전 그분의 명징하면서도 준엄한 가르침을, 나와 이웃의 생활 속에 드러나게 하는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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