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이데이 - 어느 정신분석학자의 육아일기
박정수 지음 / 천년의상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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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즈워드의 시 한 구절에 나오는 것처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가 맞나 봅니다. 육아일기라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펼쳐 들었는데, 저자 박정수 선생님이 어린 딸 매이를 아내와 함께 키우는 사연이 적힌 이 책은, 가벼운 어조에 실린 것처럼 들리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담론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아이는 부모인 내가 살아오면서 잊거나 잃고 지나쳐왔던 모든 가능성의 보물창고"라는 저자의 말씀처럼, 아이라는 존재도 그를 지켜보는 어른에게 많은 것을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가르쳐 주는 스승일 뿐 아니라, 아이를 키우면서 사회의 문제, 제도의 모순, 부모로서 동료, 이웃과 설정해 온 관계들에 대한 재검토, 반성을 행하는 계기를 일일이 맞이하게 된다는 걸, 아직 아이를 낳거나 길러 본 적 없는 독자로서도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거 겁이 나서 결혼이나 육아 문제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고 느낀 건 독서의 부작용일까요.



따님의 이름 매이는 한자로 每怡라고 쓴다고 하시네요. 영어로는 May라고 쓸 수도 있겠고, 아니면 현지에서 널리 쓰이는 여성 이름인 Mae로 쓸 수도 있겠습니다. 아이가 커서 어떤 영어 이름이 더 잘 어울릴지, 어떤 개성, 혹은 정치성향을 갖추고 (이름대로) 아름답게 자라나는 영혼이 될지는 이제 두 부모님의 관심사일 뿐 아니라, 이처럼 흥미롭고 교육적인 육아일기를 읽은 우리 독자 모두가 주목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아이 한 명을 바르고 예쁘게 키우는 일은, 어느 부모님에게나 나름 창조주로서 자신만의 작은 코스모스를 가꾸고 성장시키는 숭고한 과업일 터입니다. 하지만 옷을 갈아입히고, 젖을 뗀 후 이유식을 먹이고, 어떤 어린이집을 보내며, 친구나 다른 어른들과 어떤 방법으로 소통하게 할지 일일이 돌보는 일은,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도 어렵고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는 걸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자본주의에서는 투입된 노동량에 비례하여 상품의 가치가 매겨진다. 그러므로 아이의 출산은 약 5분 정도의.. " 사실 이런 말은 누구의 귀에도 그 부당함이 절로 폭로되는 허약한 강변입니다. 요즘 세상에 "밭"의 가치는 무시하고 "씨"의 중요성만 떠올리는 이가 과연 있을까요. 그 반대라면 모르지만. 다만 재밌었던 건 이 화제를 꺼내면서 아빠이신 저자가 "수태, 출산 중인 아내 옆에서 남편이 겪는 콜라보를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아프리카 일부 지방이나 한반도의 서북향에서 남편들이 지붕 위에 올라가 산모의 고통을 "복제"하는 풍습처럼, 인류는 그 태초부터 2세의 탄생과 양육에 대한 공동의 책임, 공동의 환희를 지어 온 전통이 있습니다. 폐습이나 편견이 이런 정직한 인식을 방해할 수 없죠.

다만 좀 이상한 건, 상품의 가치가 그런 식으로 결정된다는 건 오히려 맑시즘의 입장이고, 자본주의 주류 입장은 노동가치설을 부정하죠. 모두가 잘 알듯 한계혁명 이후 "가격은 (아무리 억울해도) 수요와 공급 곡선이 만나는 점에서 결정될 뿐"이라는 게 메인스트림의 교리입니다. 여튼 투입된 노동의 소중함을 인식할 줄 아는 시선만이, 돈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본연의 휴머니티를 다른 어떤 가치와도 타협하지 않은 채 지켜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에일리언>이 관람자들에게 공통으로 남긴 "원형적" 공포는, 여성들에게는 출산의 고통, 남자들에게는 "의사(擬似) 출산을 통해 여성의 지위로 떨어진다는 두려움"을 상기시키는 게 그 본체라는 말씀이, 정말 크게 공감되었습니다. "태아와 모체의 관계는 기생충과 숙주의 관계와 같아서, 임부가 설사 영양실조 상태에 놓여도, 태아는 모태로부터 최대한 필요한 영양분을 다 섭취한다."는 비유는 섬뜩하기까지 하지만, 의학을 전공하신 "매이 어머니"가 직접 하시는 말씀이라, 아빠인 저자분이나 읽는 독자로선 그 쿨하고 냉엄한 진리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더군요.

아이가 다른 친구와 물건을 놓고 다투는 건, "소유욕"이라기보단 "닮은꼴, 거울상에 대한 반응"이란 분석이 흥미로웠습니다. 인간의 근원적 욕구 중에 배타적 소유욕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저자분에게는 중대한 질문이겠습니다. 소유와 타인 배제가 패러다이스를 지옥으로 타락시킨다는 믿음과 신념이, 정작 내 아이에게서 뚜렷이 보이는 징후에 의해 그 뚜렷한 기초를 배반당한다면... 매이 어머님은 부군에게 이런질문을 하는군요. "우리 아이가 커서 파시스트가 되어도 좋아?" 어린이에게 자신이 지닌 영혼 고유의 색채를, 분명하게 아름답게 키워나가게 돕는 일도 중요하고, 한편으로 부모님이 자신들의 양심어 비추어 용납될 수 없는 가치가 아이들에 침투해 들어가는 걸 막는 것도 중요할 겁니다. 이 책은 이런 점에서 참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폭력이나 위험한 접촉으로부터 무조건 아이를 방어할 게 아니라(이는 현실의 부정, 회피에 가깝다는 이유에서), 그런 예측 불가의 소통을 어떻게 순화하고, 건전한 교류로 바꾸어 나가느냐 하는 고민,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 나와 남의 영역을 분명히  구별하고(이는 결국 차별로 이어질 수 있죠), 나와 타인을 선명히 고립화하는 시도는 결국 공동체의 해체를 부를 수 있다는 시사도 무겁게 와 닿았습니다. 이런 각성의 연장에서, 이른바 "중산층의 가식"으로, "먼 곳에서 고생하는 유색인종, 난민의 고통에는 연민을 표하면서 정작 자신의 지척에 있는 노동자의 희생에는 눈을 감는" 미국 리버럴들의 행태에 대해, 슬라보예 지젝이 미국 노동계급이 자본가에 대해서보다 더 적대감을 갖는다고 지적한 것을 떠올립니다. 저자분이 지젝의 저서를 번역한 적도 있어서 이런 인용은 더 실감을 갖는데요, 제가 책장을 찾아 보니 과연 역자 성함이 같았습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이 질문은 유치하긴커녕, 인간 영혼의 본질을 밝혀 줄 수있는 단서일 수 있습니다. 고려가요 <사모곡>에서 "어머님같이 괴실 이 없세라"는 대목이, 능동이 아닌 수동("피동"이라고 적으셨지만 "수동"이 정확하겠죠?)이라고 국문학 전공인 남편께 의문을 제기하는 장면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언제나 두 분이 설전을 벌이면 매이 어머니가 압도적으로 이기는 것 같은데, 아빠를 차별한다면서도 수세에 몰리는 순간 "시끄러워!"를 외쳐 콜드 게임을 만들어 약자를 돕는 게 매이입니다. 사리의 진위, 당부를 가리려면 이런 치열한 논쟁이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해서 동의된 결론에 충실하게 육아를 행하는 작업은 또 다른 단계란 걸 생각하면, 행복한 어느 부부의 육아역정을 그저 구경만 하기도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길에 나가면 발에 채이는 게 사람인데, 어린이 하나를 버젓한 성인으로 길러내기가 이처럼이나 어렵다는 사실은, 숨 쉬고 사는 사소한 동작조차 그것이 생명과 관련되어 있을진대 가벼이 여길 구석이 하나도 없으리라는 아찔함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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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다비도프氏
최우근 지음 / 북극곰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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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쓰인 "다비도프"는 다 아시다시피 향수 브랜드이고, 이 소설에서도 그 의미로 쓰입니다. 물론 "향수"는, 소설의 맥락에서 더 깊은 함의를 지니고 있지만.



사람의 감각 중 우리가 가장 깊숙히 의존하는 건 뭘까요. 누구나 다 시각, 즉 눈으로 보고 받아들이는 감각을, 사고의 기반 그 첫째로 평가할 것 같습니다. "눈에 뵈는 게 없나 보다" 같은 말도 있듯, 시각이 원활히 기능하지 못하면 대상에 대한 온당한 판단을 행하는 게, 주체로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내 시각에 문제가 없더라도, 대상이 시각적 상을 내 망막에 맺지 못한다면(혹은, "않는다면"), 그 대상은 우리가 그를 두고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됩니다. 미지의 상태는 곧 경계와 공포의 심리로 전환됩니다. 무엇인가가 "내가 잘 모르는 것"의 범주로 인식될 때,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그 "모르는 것"을 어떻게 인지적으로 정리하고 내 감정을 추스르냐 하는 문제입니다.

지루하고 비루했던 내 인생이, 한순간에 모두의 주목을 받는 스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그 순간, 내 몸이 갑자기 투명인간으로 바뀌어 버렸다면? 우리의 주인공 "다비도프 씨"는 생애 첫 주연을 맡은 연극 무대에 등장하는 그 순간 겪은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어느 날 일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는 바이런 경처럼 되고 싶었던 그는, 카프카의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처럼, 친구, 여친, 심지어 부모님에게까지 버림 받는 비참한 존재, 아니 "전보다 더 비참해진 존재"로 전락해 버립니다. 모두의 주목을 받아야 할 순간, 이 시간이 지난 후면 이제 모두가 그를 주목하러 극장 앞에 장사진을 치러 오게 될 그 순간, 그는 "존재감 0"의, 종전보다 더 미미한 투명체가 되어 버린 겁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연극이 아니라 희한한 마술 쇼가 되어버린 이 공연이, 주연이었던 자신을 제외하고 관계자 모두가 해피해진 장기상연 아이템이 되었다고 하네요. 정작 히트 상품을 본의 아니게 만든 그만 소외된 채로 말입니다.



이 코믹한 판타지 소설 속에 전개되는 해프닝은 (당연히)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투명인간"이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어서라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투명인간"이라는 게 있다면 현실에서 우리 다비도프 씨처럼 무기력하게 질질 끌려다니고, 소외되고, 공권력의 집중 감시 대상이 되고, ... 이럴 이유가 전혀 없다는 이유에서죠. 현실에 투명인간이 (이 소설에서처럼 여러 명이 아니라- 중반 넘어가면 다들 나옵니다) 단 한 명만 있어도, 그 사람은 다비도피씨처럼 "적응을 못 해서 낑낑거리는" 한심한 인생을 결코 살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기막힌 능력이자 행운"을 이용해, 하고 싶은 것은 모두 다 이루고 살 것이며, 조금 더 영리하다면 "투명하지 못한 모든 열등자"들을 자기 지배 아래에 둘 것입니다. 거리에 유리 조각을 뿌려 두는 정도로는 결코 막지 못 할 (H G 웰즈의 소설에서처럼) 막강한 수완은, 투명인간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권위와 능력의 원천일 테니.

이 소설에서 다비도프씨의 투명성은, "차별과 소외의 주홍 글씨"일 뿐입니다. 안나 씨로 대표되는 이웃(연대 의식 결여, 파편화된 개인주의의 쁘띠 부르조아지 상징)은 사사건건 그의 행동을 백안시하며 "이지 빅팀"으로 삼고, 최 형사로 대변되는 공권력은, 소위 말하는 "유주얼 서스펙트"의 명단 최상위에 그를 올려 놓고 건수만 터지면 그를 소환하여 괴롭힙니다. 박 사장으로 체화한 "자본"은, 어떻게 하든 그를 싼 값에 고용, 그의 노동력을 착취하려 듭니다.  우리 시대의 최말단 호구가 된 "88만원 세대"를 포괄 은유하는 "투명인간"은, 마치 우리가 일상에서 업무 무능자, 현실 도피자를 두고 "저 사람은 투명인간 취급해야 돼"라고 할 때, 그 오명으로서의 "투명인간"이지, 영화 <X-MEN>에서처럼 맥락에 따라 자랑스러워질 수 있는 초능력자 같은 게 결코 아닙니다. 초능력자가 될 수 있으면서도 끝까지 찌질하게 기 죽어 사는 투명인간들이라서, 우리는 이 소설을 끝까지 읽는 내내 웃음을 참을 수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철저히 "메타포어로서의 투명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정말 재미있게 이어지는 내러티브로 가득가득 줄기가 둘러지며 꼭꼭 대궁이 채워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처럼 느닷 "투명화의 비극"을 겪으려면, 1) 두 번 정도 여친에게 차이거나, 2) 실직해서 거리를 떠돌거나, 3) 버스만 탔다 하면 맨 뒷 좌석 왼쪽 끄트머리만 골라 앉고, 혹시 거기 누가 앉아 있으면 다른 빈 좌석 놔 두고 내내 서서 가는 사람들이 그 1순위라고 하는군요. 앞으로 버스 탈 일이 있으면, 그 자리를 주시하며 혹시 뜻하지 않게 곤경에 처하는 이웃이 없는지 주시할 일입니다. 만약 이 소설이 외국어로 번역되거나 하면, 해당 나라의 국어로 읽는 독자들이 과연 이 비유가 얼마나 빵터지는 유머인지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비도 프 씨가 최형사에 처음 검거당할 때, 그는 사타구니를 최형사의 "야구글러브 같이 큰 손"에 쥐어 잡힙니다. 최형사 말이, "어, 생각보다 키가 컸군?"입니다. 그 다음  제대로 가늠한 손이 위로 더듬어 올바로 나꿔챈 건, 평소의 버릇처럼 "피의자"의 혁대 버클입니다. 이런 장면은 작가의 예사 위트가 아니고선 지어낼 수 없는 장면이겠습니다. 다비도프 씨는 투명화 직후, 친구들과 모여 앉아 노는 자리에서(친구들은 그저 불행한 교통사고 당한 것처럼 그를 대할 뿐입니다. 어디 가서 뭐 좀 훔쳐 달라느니, 여탕에 가서 몰카 찍어오라는 부탁은 짠 듯이 전혀 안 합니다), "어디서 라디오 틀었냐?""말만 하지 말고 노래도 좀 나오게 해 보지?" 같은 대사도, 진짜 투명인간 친구를 곁에 두어 본 사람이 들려주는 말처럼 "실감"이 나는데, 이게 바로 작가만의 상상력이겠습니다.

투명인간으로서 겪는 해프닝만 나오는 게 아니라, 어떤 점에선 살면서 시트콤을 찍고 있는 21세기 서울 시민들의 황당한 풍속도가 더 비중이 큽니다. 투명한 몸으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흥신소 사무 보조인데(여튼 이 소설에선 그렇답니다), 남편의 불륜을 캐 달라는 어느 주부의 청탁을 받고 일주일을 미행한 결과, 그 남편과 다비도프 씨가 함께 발견한 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아이러니였습니다. 투명인간보다, 그 투명인간을 둘러싼 비투명인(정상인)들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을 만큼, 이 소설은 현실의 적나라한 풍자입니다.

향수는 투명인간을 식별하는 신분증과 같습니다(소설에 나오는 표현 그대로입니다). 다른 투명인간들의 눈에도 투명인간이 안 보이니(심지어 자기 몸도 안 보입니다), 개개인 고유의 향수를 배정하여 신원을 확인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남의 신원을 사칭, 조작하여 불법한 이익을 취하는 자가 많듯, 향수가 고작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유일한 수단이라니 악용의 소지가 얼마나 많겠습니까만, 이 역시 어느 단계까지는 잘 지켜지는 모습도 큰 웃음을 자아냅니다. 우리의 눈을 믿을 수 없는 그 순간, 영혼의 개성을 숨김 없이 드러내는 고유의 "냄새"로 정직한 소통을 이루자는 은근한 메시지는, 마치 쥐스킨트의 <향수>에서 천민 그루누이가 "모두의 냄새 중 가장 좋은 것만 골라 뽑은 냄새"가 세상을 구원한다는 자못 웅대한 주제를 떠올리게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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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김진섭 지음 / 용감한책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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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은, 그 상상의 실현 난도에 비례하여, 품기에는 더 달콤해집니다. 쉽게 이룰 수 있는, 혹은 조금만 노력하면 안 될 것도 없겠다 싶은 꿈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주인공 L는 삼십대 중반에 접어든 노총각입니다. 지방대를 다니며 ROTC 복무로 남들보다 더 늦게 사회로 귀환한 그는, 일단 전역장교가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일자리인 보험 영업직을 선택합니다. 학벌도 능력도 특출한 바 없는 그였지만, 한 번 정도는 전성기가 찾아오는 이 업종의 특성상, 정말 한 때 연봉 8천에 이르는 성과도 낸 바 있습니다. 그 후로는 슬럼프라 과거 실적에 의거한 수당과 약간의 실적만으로 간신히 수입을 채우는 그인데, 솔직히 보험영업이란 게 다 그렇겠죠. 처음에야 있는 인맥 없는 연줄 다 그러모아서 잘나갈 것처럼 보이지만,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소설의 "상상", 혹은 주된 줄거리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여성 U, 학교도 자신보다 나은 수도권 상위대를 나왔고(알 수 없습니다. 자신이 보기엔 그렇다는 의미겠죠), 키도 크고 예쁜(...) 편인데다, 나이도 어린지라(이 비서직은 알바일 뿐입니다. 곧 정식 취업을 할 것으로 기대 중이죠), 사실 자기 깜냥으로 넘볼 수 없는 상대입니다. 본인 눈에도 그렇고, 제3자 눈엔 더욱 그렇습니다. 다만 U는 성격이 착하고 사회의 때가 덜 묻어서, 한때나마 잘 나갔고 뭔가 듬직하고 진실해 보이는 L을, 같은 사무실 안에서 줄곧 얼굴을 마주대하는 그 정(情)으로, 남친 비슷한 사이까지 진행시킬 수 있는 그런 여성입니다. 결국 그 비슷한 사이까지 가서, 카톡의 상태 메시지와 프로필 사진을 매일 저녁 L이 혼자 훔쳐 보는 장면은, "서로 하는 짝사랑(책에 나오는 표현입니다)"이란 이상한 상황에 빠져 본 이들은 공감할 수도 있겠습니다.

주인공 L의 꿈, 상상은, U를 향한 연정 외에 더 큰 게 있다면, "작가가 되고 싶은 꿈"입니다. 보험 영업직이 흔히 그렇듯, 사무실에 출근만 하고 혹 일이 없으면 그냥 시간을 때웁니다. 이것 비슷한 게 금융사 채권 추심 업무죠. 이분들도 참, 남들 보기엔 편한 팔자라고 볼 수도 있는데, 자신들은 바늘방석에 앉은 듯 안절부절입니다. 사기나 의욕은 더 이상 바닥을 칠 수 없을 만큼 가라앉아 있죠. 그러나 L은 그렇게, 남은 시간을 모두 "집필 작업"에 바칩니다. 그에게는 오직 달콤한 꿈이 있기에, 타자 치는 시간이 즐거운가 봅니다. 늙수구레한 중노년 작가 지망생이, 혹시 출판사의 눈에 띄지나 않을까 하는 길거리 캐스팅을 바라는 요행심리로 하루 종일 집필 아닌 집필에만 목을 매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소름끼치지만, 자신은 그것과는 다르다며 당당히 투고를 출판사에 대고 시도합니다. "제 이야기를 한번 읽어 보시고 출판을 검토해 주십시오."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습니다. "주신 원고는 잘 읽었으나 저희 출판사의 방향과는 잘 맞지 않는 듯합니다." 심지어 어떤 담당자는 "작가님, 작가님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독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라는 말까지 합니다. L에게는 비수와도 같은 상처를 남기지만, 솔직히 읽는 저로서도 "이보다 더 정확한 말은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내 친한 친구가 자기 사연을 구구절절 끄집어내어도 그거 들어 주는 게 고역입니다. 하물며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설사 유명인사라고 해도 그렇습니다), 자기 이야기를 돈까지 받아가며 듣기(=읽기)를 청한다면, 시간과 돈이 아깝다 이전에 그저 피곤해서라도 그 시간에 잠을 청하고 싶은 게, 회사 다니는 이라면 다 공통된 마음일 것입니다. 그 작가를 폄하해서가 아닙니다. 직장인이라면 누굴 폄하하고 낮춰 볼 여유도 차라리 사치에 가깝습니다. 그럴 시간에 일하거나 쉬거나 해야죠.



어려서부터 작가가 되기를 꿈꾸는 인생이, 요즘 대한민국에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머리도 총명하고, 책을 많이 읽어서 글도 잘 쓰고 지식도 많고, 상상력도 풍부한지라 작가로서 자질이 충분해도, 그 성공의 가망이라는 게 지극히 희박하며 거의 운에 좌우된다는 걸 알기에, 설사 그런 재목이라도 인생의 이른 단계에서부터 다른 꿈을 꾸는 게 대부분일 겁니다. L은 아직 젊은 편이라고나 하지만, 그리고 영화산업 쪽에서 시나리오를 받아 줄 인맥이나 있다고 하지만(영화 산업도 어차피 모험 투기성이 강한 건 마찬가집니다. 레귤러 플레이어도 한순간에 망하는 게 보통인데 하물며), 작가를 꿈꾸는 많은 이들 중에는, 이처럼 영업의 남는 시간에 혹시나 하는 희망으로 길거리 캐스팅을 바라며 타자를 치는 강태공들이 제법 많을 것입니다.

L이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첫째 정직하게 살아 온 사람이다. 둘째 글을 쓸 때 꾸밈없이 담백하게 쓴다(비록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자주 틀릴망정). 셋째 U같이 괜찮은 여자하고 제법 진도도 많이 나갈 만큼 그 인간성만큼은 진국이다. 넷째 부모님께 어떤 경우에도 손 안 벌릴 만큼 최소한의 도리는 지키는 사람이다. 다섯째 사기꾼 선배한테 돈을 떼일지언정 못된 소리는 안 늘어놓는 신사다. 뭐 이 정도입니다. 그는 소설을 마무리하면서, "나의 부족한 점은 내 스스로 잘 알고 있으나, 나는 나의 진정성만은 누구에게도 안 밀린다고 생각하며, 세상이 나의 진정성을 알아 봐 주기만을 기대한다"는 소박한 희망을 밝히고 있습니다. 베스트셀러 출판을 금전적 대박으로 속되게 연결시키지 않고, 사랑하는 여성을 외적 스펙으로 평가하는 가식이 끼지 않은 그 "진정성"은, 언젠가 세상 모두가 그 가치를 알아 줄 것입니다. 세상 모두가 겉꾸밈이 아닌, 오직 "진정성"만으로 소통하는 그날이 빨리 오길 기대해 봅니다.

책 디자인이 예쁘고, 장정이 참 튼튼하게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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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아 리더십을 잡아라 - 조직과 나를 이끄는 6가지 리더십의 힘
우상규 외 지음 / 출판이안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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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나 리더십이 강조되는 요즘입니다. "리더"란, 거창한 개념도 아니고,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그 자리에 서서 솜씨를 발휘할 필요가 있는 직분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저 목에 힘 주고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위세를 부리는 게 리더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그런 리더 아닌 리더에게 휘둘리다가 아까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며, 자기 역량을 제대로 발휘 못 한 채 시들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직장에서 올바로 선 리더의 자격을 갖춘다면, 그 사람은 상사에게 올바른 리더십을 요구할 자격도 생기는 것입니다.

어려운 건, 나에게 잘 어울리는 리더십, 혹은 내가 내 직장에서 맡고 있는 기능에 잘 부합하는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알고, 빨리 내 몸에 체질화시키는 단계입니다. 현대 사회는 실로 복잡다기한 업종과 시스템을 발전시켜 왔고, A라는 직장에서 통하던 매너와 기능이 B에서 통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직장과 공동체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리더십이 요구되고 존재하는 요즘이라서, 개개인은 직무 수행 능력 외에도 무엇이 내 몸에 잘 맞는 옷과 같은 리더십인지 빨리 알아내어 맞춤화하는 게 중요합니다.

사회가 빠르게 발전하다 보니 배워야 할 지식, 공부해야 할 노하우는 변화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여 증가하는 것 같습니다. 직장이라는 한정된 공간뿐 아니라 거래처의 파트너들, 경쟁사의 적대적 인사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얻는 스트레스란, 열정으로 가득찬 마음도 피로와 회의에 잠식당하게 만듭니다. 어느 직장에서건 명강사, 동기 부여 전문가들을 향한 수요는 그래서 증가하게 마련이며, 이 책은 그런 우리 시대 일류 강사 여섯 분이 각각 생각하는 참된 리더십의 개념, 실천, 효과, 비결에 대해, 어조와 감성이 생생히 실린 내러티브로 독자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확연히 빼어난 건, 전해 들은 걸 가공하거나 편협한 개인의 일시적 감상 같은 것을 과장되이 설파하는 게 아니라(그런 사람들은 아집만 있을 뿐 자기 확신이 없습니다), 스스로 겪고 깨달은 바를 자연스럽게, 그리고 진실되이 청중과 교감한다는 데에 있더군요. 어설픈 쇼맨십과, 내면으로부터 무르익어 바깥으로 배어나는 설득력은, 그래서 크게 차이나는 거죠.

"진짜 군인이셨나요?" 우상규 선생님은 예비역 해군 대령 출신의 명강사입니다. 예나지금이나 군인이 진급하기란 매 순간이 별 달기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초급 장교나 부사관들이 상급자로부터 가장 모욕적으로 듣는 말이 "너 사회에 나가면.... "입니다. 그만큼 군대란 여느 조직체와는 대단히 다른 규율과 논리에 의해 움직이며, 군에서 제 능력을 발휘한 사람이건 아니건 일단 전역하면 사회에 적응하는 데에 큰 애로를 겪습니다. 대한민국 건강한 남성이라면 현역병 복무를 안 거친 이가 거의 없기에, "군 출신 인사"라고 하면 대단히 권위적이고 융통성 없고 친화력 부족한 퍼스낼리티를 떠올리기 십상이죠. 그러나 우상규 선생님은 이런 어설픈 선입견을 정면으로 비웃기라도 하듯, 일류 대기업에서 수십 년 근무한 분처럼 온화한 매너와 격의 없는 소통능력으로 주위를 놀라게 합니다. 이분 강연을 제가 두 차례 들은 적도 있습니다.

이 책에 고견을 실으신 여섯 분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점이기도 한데, 인기강사 명강사면 준 연예인 신분처럼 대단한 고소득자에 근심 걱정 없는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더군요. 우상규 선생님만 해도 투병 중이신 부인을 두셨는데, 저는 이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가까운 가족 중에 아픈 사람 없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감사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긴 그런 시련이랄까 아픔이 어느 한 구석에 있기에, 영혼에 거품이 끼지 않은 채 많은 이들과 진정성 있는 소통이 가능하기도 하겠구요. 요즘 세상에, 누가 가식이다 일시적으로 허세를 부린다 싶으면 사람들이 대번에 눈치를 채죠. 오랜 인기와 호응을 받는 분들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우상규 선생님이 내세우시는 바는 DU 리더십입니다. 여러 번 강연에서 말씀하시는 걸 봐서 저도 개념은 잡고 있는데, down&up의 약어입니다. 나를 낮추고(down) 상대를 높이라(up)는 거죠. "군대에 오래 있어 본 사람이면 안다. 부하들은 권위적이고 일방소통적인 상관보다, 자신에게 진정성 있는 이해와 소통을 시도하는 상관을 더 잘 따른다는 것을." 군대가 이 정도면, 사회의 다른 조직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소신 없는 무골호인이나 가식으로 순간만 모면하려 드는 건성 매너의 좀비가 되라는 게 결코 아닙니다. "OO님, 다른 건 몰라도 사람 하나는 좋지." 직장인에게 이런 평판보다 더 모욕적인 말은 없다는 걸 분명히 자각하라는 게 선생님의 따끔한 충고입니다.

홍문숙 선생님은 "무브먼트 리더십"을 강조합니디.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가 안 되어 찬찬히 읽어 보니, 우리가 흔히 빠지기 쉬운 오류를 역설적으로, 통렬하게 지적, 요약하는 개념이었습니다. 사실 이 경우는 "개념"이라 잠정 규정하는 것도 모순일 것 같은데요. "무브먼트 리더십"은 1) 먼저 행동, 2) 생각 바꾸기, 3) 감정 다스리기 라는 순서를 밟아서 나를 변혁시키라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쉽고 행동이 어렵다는 게 우리가 보통 내리는 판단입니다. 그런데 홍 선생님은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결의를 단단히 가지고(혹은, 혼자서 그렇게 착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려면 그게 쉽더냐는 거죠. 이 당연하고 보편적인 체험을, 우리는 그저 "생각"만으로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한 걸음 내디디고 나서 그 다음에 생각해야, 여태 지독하게 안 바뀌던 내 자신이 바뀔 수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참 맞는 말씀입니다.

책을 펴낸 이인환 대표의 권두언에 의하면, 홍 선생님은 무용을 전공하신 분답게, 옆에 있기만 해도 우아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그런 분이라고 합니다. 홍 강사님은 "교학 상장"이라는 말씀도 하십니다. 배우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가르치는 활동에까지 이어져야 그게 진정한 체득인데, 이 역시 생각과 행동이 혼연일체가 된 경지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의식은 우리 자신까지 기만하는 수가 많지만, 몸은 거의 언제나 정직합니다. "몸이 아프면 간혹 마음까지 닫히곤 하더라."는 게 홍 선생님의 술회입니다. 몸에 쌓인 긴장은 결국 의식의 수축에까지 이어집니다. 답답한 마음에 쌓인 울화는 근육의 이완으로 풀어주는 게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일 수 있다고 조언하십니다. 이분 저서나 강연 자료가 있으면 찾아 보고 더 심화된 내용을 배우고 싶어졌습니다.

이름난 산업강사님들을 보면 화려하고 세련됨 못지 않게, 소박하고 꾸밈 없는 스타일을 지닌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은 실제 살아 온 이력도, 위화감 없이 서민적인 경로를 차분히 거쳤기가 또 빈번하죠. 박미영 강사님은 "통통 리더십"을 표어로 내세우시는데, 말 뜻은 통(通)하고 또 통(通)하라는, 공감과 소통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말씀하신 내용 중에 제 마음에 특히 와 닿았던 건, "고생이다 싶어도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단순해 보이면서도 실천에 옮기기는 실로 어려운 가르침이었는데요. 동대문 시장에 새벽부터 "물건하러" 방문해서, 쉽지 않은 흥정과 운반 과정을 거치는 게 대단히 고되었음을 그녀는 털어 놓고 있습니다. 그때 그녀가 떠올린 건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 하는 아이들 노래의 가사였습니다.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건 놀이하는 거라고 마음을 바꿔 먹는 순간, 어려움은 그저 마음가짐의 문제였을 뿐임을 알게 된다는 것. 그래서 저는 이 파트를 다 읽은 후, 통통리더십이란 말이, "고통(痛)"을 통과(通)해서, 사리에 통달(通達)하게 하는 과정이라고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그러기 위한 필수 단계가 "세상과의 소통"임은 말할 것도 없겠고 말입니다.

이 책의 여섯 분 저자 중에 네 분이 벌써 여성이시지만, 박미영 강사님은 특히 여성 리더십이란 개념에 자신의 체험을 결부시켜 풍성한 내용을 만들어내신 분입니다. 치과위생사로 시작하여 연세대 치의학박사학위까지 따 낸 대단한 열성파로 이미 명성이 자자하죠. 여성의 사회 진출과 그 과정에서 겪는 숱한 곤란, 여성직장인만이 겪을 수 있는 육아 관련 경력 단절 등 민감하고 난감한 이슈에 대해, 자신이 그 구체적 트러블을 다  체험하고 돌파한 분이다 보니 풀어 놓을 이야기보따리와 현실감 가득한 팁, 조언이 큰 볼륨을 가질 수밖에 없죠. 일단 이니셔티브를 취하고, 여성만이 감당하고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점차 늘어나는 대세를 직시하면 자신감이 안 붙을 수 없고, 이 자신감이야말로 성공의 첫걸음이라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성 독자-직장인들이 읽고 더 큰 공감을 이룰 수 있을 파트였습니다.

인간이란 결국 감정에서 시작, 감정으로 일관하다, 감정으로 마무리되는 존재입니다. 유리한 조건을 내걸고 상대를 설득해도, 그의 감정을 다치게 하면 지금껏 애쓴 노력이 다 무위로 돌아갑니다. 인센티브보다는 리스펙트라고, 요즘 경영일선에서 다들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위키노믹스>란 책을 보면, 물질적 효익이 전혀 없는 노동에 유저들이 왜 그렇게 매달려서 성과물을 구축하려 들고, 이것을 기반으로 파생적 업적이 꼬리를 물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잘 분석하고 있습니다. 감정, 자긍심, 쾌감, 성취감은 때로 돈보다 더 중요합니다. 제가 주변을 잘 살펴 보니, 결국 머리 좋은 사람보다 감정 조절 잘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이다 싶기도 하더군요. 긍정적인 기분, 느낌에서 우월한 성과가 나온다는 결론이, 박우진 강사님이 말씀하시는 "감정 리더십"인 걸로 이해했습니다.

소리향기 리더십 역시 주변에서 흔히 듣는 말은 아닙니다. 손미혜 선생님은 재미있는 일화로 이 강의의 서두를 잡으시는데, 나이 든 세대가 즐겨 부르는 곡 중에 "광화문 연가"가 있죠. 모임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어느 여성분이 있었는데, 참석한 다른 분들이나 보컬 트레이닝 원장인 손 강사님 듣기에나 그리 잘하는 노래솜씨는 아니더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현장의 모든 이들은, 그 노래가 그렇게나 듣기 좋았고 부르는 분의 감성,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었다는 거죠. 분명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여쭤 보니, 대중가요를 자신만의 해석으로 물들일 만한 스토리가 과연 충분히 추억으로  간직된 분이었습니다.

효과적인 소통은 이처럼, 좌뇌가 아닌 우뇌, 이성이나 딱딱한 논리보다 감성과 교감에 의한 것이라야 한다는 게 손 선생님의 주장입니다. 그게 설사 노래라고 해도, 음정과 박자가 기교적으로 꼭 맞아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진정과 진심이 묻어나는 창법이 최고이듯, 인간사의 소통도 결국은 감성의 효과적 전달에 성공하는 이가 승자가 된다는 게 결론이었어요. 왜 불통인가? 직장이나 가정에서 이런 문제로 고민인 분은, "권위를 벗어던지고 직원들 앞에서 말춤을 추는 사장님의 자세로" 타인과 동료, 심지어 라이벌들을 대해 보라는 겁니다. 우뇌 위주의 소통은 결국 청각과 후각을 통한 교감에서 그 진면목을 드러낸다는 말씀, 깊이 새겨 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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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중문화 표류기
김봉석 지음 / 북극곰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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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많은 상품들을 만들어 내는데, 상품은 팔려야만 자기 직분을 다하는 것이죠. 안 팔리는 상품도 팔리게 하는 게 개인을 체제가 평가하는 능력이며, 이 과정에서  시장에는 온갖 불량품이 다 쏟아져 나옵니다. 그 중에는 아이들이 소비하라고 만들어서 파는 것도 있고, 이들 중 어떤 것은 범주적으로 "불량품"이라며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힙니다. 그러면 그런 낙인을 찍는 권위 있는 당국에서 아예 제조, 판매를 금지하면 될 텐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학교에서의 열렬한 계도에 그치고 맙니다. 학교만 나오면 그런 불량품들의 유혹은 이곳저곳에서 아이들을 유혹하는데, 상품이 갖는 자체의 매력에다, 아이들을 꼬시는 장사치들의 호객은 "여엿한 어른 대접"을 포함하기에, 아이들은 쾌락의 충족+존중감의 취득이라는 두 효과를 누리러 이런 불량품을 열심히, 충성스럽게 소비합니다.



요즘 아이들의 세계는 어떤지 모르지만, 저희 때, 그리고 한두 세대 앞에 속하신 김봉석 선생님 때는 분명히 저랬습니다. 학교 안에서 강요하는 의제된 정의와 도덕, 학교 밖에서 요지경처럼 펼쳐지는 명백한 불의와 타락상 사이에서, 가장 민감한 시절 10대를 보내는 아이들은 갈등과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죠. 이때 이 취약한 소비자를 집중적으로 노리고 들어오는 게 (당시로선 저급하다고 제도권에서 위선적으로 규정했던) 대중문화 상품이었습니다. 대본소 만화, 불법 비디오 대여점, 동시상영관,.. 이런 데 지나치게 빠져 살면서 시간을 낭비한 아이에겐 진학 좌절, 취업 불이익을 거쳐 삼류 인생 진입이라는 빠져 나올 수 없는 어두운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테고, 그렇지 않고 야무지게 학업에 전념하여 좋은 학교 간판을 따면 적절한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윤택을 누릴 수 있는 성인으로서의 대접이 보상으로 주어졌겠죠.

이 자전적 에세이를 읽고 알 수 있었던 건, 김봉석 선생님은 "기묘한 주변인"의 스탠스로, 대한민국 그 또래들이 제법 힘들여 넘겨야만 했던 고비나 험로를 지나 온 분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다부진 의욕을 갖고 자신을 부정해 가며 공부를 해야 갈 수 있는 대학(세칭 명문대이며, 책 뒤에 소개된 약력으로는 무려 "고려대"입니다)에 재수라는 시련 한 번 없이 입학하셨고, 그 이후에도 그 또래분들이 평균적으로 거치던 달갑잖은 코스와는 달리, (책 전체를 통해 강조하시듯) 8학기만에 학사 학위를 취득하기까지 하셨으니, 10대와 20대 내내 설렁설렁, 대충대충, 삐딱삐딱으로 남들에게 보일 태도와 방법으로 사신 분치고는 너무 많은 걸 손쉽게 이뤄내신 셈입니다.



중학교 때 연합고사 커트라인 통과- 고교 진학이 걱정되는 수준의 학업 성취였으나, "그저 고등학교라도 졸업하자"는 생각으로 파고 든 공부 끝에 시험을 치고 보니 너무 높은 점수가 나와서 놀랐고, 고1,. 고2 시절을 다방에서 비디오만 보며 "킬링 타임"에 전념(?)하다, 고3때 바짝 집중한 것만으로 명문대에 입학한 소년. "세상을 이기는 법은 알 것 같은데, 그거 이겨서 뭐하겠느냐"는 회의 때문에 영혼의 방황을 겪던 그는, 그 황금 같은 시간을 저급한 대중 문화의 소비에 모두 투자해 버립니다. 거짓으로 꾸며진 의미와 질서의 독소에 질려 버린 소년은, 아예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자신 내면의 텅빈 공간을 반(反)의미로 채우고 신나게 모독해버리겠다는 결의(?)를 다집니다.

그의 인생은 그가 보고 느끼고 소비하고 소화하고 저장한 컨텐츠의 리스트로 요약가능한 차림표였습니다. 그를 키운 건 십 할, 십일 할이 대중문화였습니다. 이때 무차별로 투입한 자본이, 이후 그를 문화평론가로 먹고 살게 해 준 평생의 자양이 되지 않았을지. 그는 적극적인 반항아도 아니었고, 오히려 이유 없는 루저의식, 언젠가 병들거나 쇠약해져 남들보다 빨리 세상을 등질 것 같다는 공포감에 시달리던 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마음이 통하는 선배, 친구, 후배 등과의 소통은 언제나 가느다란 끈이라도 유지하는 편이었는데(보통은 그 이상), 그의 말에 따르면 "그 시절에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이유 뿐"이라곤 하나, 역시 그의 "성공"은 이런 인맥의 타산적이지 않은 보존 노력에 힘입은 바 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사람 없이는 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진리는 여기서도 확인 가능합니다.

취하는 소재와 정치성향에 그토록 공감하면서도, 표현보다는 "설명(저는 설교라고 말하고 싶던데요)"에 치중하는 스타일은 도무지 감당불가라며 X표시를 치켜 드는 입장에, 독자인 저도 많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섹스 중독, (젊은 시절) 마약 중독을 별 부끄러움 없이 입에 올리는 올리버 스톤은 팬들에게 양가적 감정을 유발하는 작가입니다. 다만 <도어즈>가 그토록 공감을 주었던 건, 약물상용자가 아니면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몇몇 장면이 뿜어대는 진한 감성 때문이었을 것 같다고 말씀하시네요.

김봉석 선생님이 그토록 높이 평가하시는 이장호의 <바보선언>도, 사실 저는 후반의 몇몇 씬은 뭔가 약물 흡입으로만 체험가능한 몽환상태를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였데, 당국과 영화사의 제작 압박으로 일정에 쫓겨 급히 만들어낸 중에 천재 특유의 임프로바이즈가 행해졌음을 보고 그리 감탄을 하셨다니, 시간 있을 때 다시 보고 저도 생각해 보고 싶더군요. 읽으면서 시대상이 느껴지는 대목이 많았는데, "베타 방식(VHS와 기술 표준을 한때 다툰 방식)의 비디오재생"이 무슨 역사책 속이 아니라, 소니의 상품으로 현물 체험이 가능했던 시기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교복자율화"가 이뤄졌다(교복 부활도 아닌 교복 자율화!)는 대목에서 어느 시절 분이신지 새삼 느낌이 오더군요. 물론 광주"사태(당시 명칭)", 박정희의 죽음 등 직접 서술이라 할 대목도 많았습니다만.

자전 에세이라는 느낌이 잘 안 들 만큼, 책은 자신이 어느 시절 소화한 문화 아이템들이 무엇무엇이었고, 그것들의 당시 느낌, 영향, 그리고 지금 수정해서 갖는 인상 등을 상세하면서도 "어려운 말 전혀 없이" 옆집 아저씨가 구수하게 읊어주듯 들려 주고 계십니다. 상처를 입은 조개가 진주를 품듯, 만약 "국민학교" 4학년 때 빈촌(책에 동네 이름이 나오지만 여기 적지 않겠습니다)으로 이사가야만 했던 그런 아픔이 없었으면, 우리는 대중문화평론가 한 사람을 잃고 그저 대기업 어딘가에 유능한 임원 한 사람을 추가시키고 말았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작은 책 한 권 안에 작은 우주가 들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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