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의 여인 - 한일 역사기행
곽경 지음 / 어문학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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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한 연령대의 신사 몇 분이, 역사의 비밀을 간직한 이국 땅을 찾아가서 깊은 고찰과 상념에 잠기는데, 마침 현지에 사는 묘령의 여인이 홀연 나타나, 영감과 각성의 계기가 되는 알찬 조언을 베풀어 준다.... 예전 서양 문학 여럿에서 보아 익숙한 설정만 같습니다만, 현역 건축가이신 저자가 일본 오사카를 방문할 때 직접 겪은 바입니다. 물론 그 주제는 중세 유럽 어느 백작의 낭만적 고성(古城)에 얽힌 사연이거나 한 건 아니고, 수 세기에 걸쳐 동아시아 전체에 큰 비극의 역사를 남긴 한-중-일 3국의 근원, 현재, 전망에 얽힌 것입니다. 미래지향 프렌드십을 공동 정책 과제로 삼은 게 불과 십 몇 년 전 일인데, 부분적으로는 일본 우경화 바람, 부분적으로는 중국 패권 행보의 본격화 때문에, 이제 동아시아 3국의 관계는 근 한 세기 들어 최악의 긴장, 대립, 불안 국면으로 가고 있습니다. 당장 내일 조어대에서 어느 나라 군대 사이에 무력 충돌이 빚어진다 해도 아주 많이 놀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시국 때문에, 도대체 수천 년 전 고대에, 특히 한반도와 현해탄, 일본 열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 후손들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긴 모습으로만 보면 특히 서양인들 눈으로는 구분이 안 갈 만큼 닮았는데, 왜 이렇게 서로 못 잡아먹어서 으르렁대고 안달인 걸까요. 특히 열도에 사는 저들 겨레는, 역사를 통틀어 일정 주기를 두고 반도를 향해 탐욕스런 시선을 두며 그 침략의 호기를 수시로 노려 왔습니다. 저자는 이런 역사의 이면에는 일본 열도 안에서, 풍신수길로 대표되는 반(反) 한반도 성향의 세력과,  성숙한 의식으로 국제 평화를 보다 배려해 온 그 반대 진영 간의 역학 관계가 어떤 양상으로 형성되었는지가 크게 작용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당과 연합하여 반도의 패권을 노리고 여, 제 양국을 멸망시킨 게 신라의 소위 삼국 통일인데,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건 백제라는 정치 단위가 산둥 반도 일대, 한반도 남서부, 그리고 규슈, 시코쿠, 간사이 일대에 걸쳐 큰 세력을 형성한 제국이었다는 사실이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열도의 백제 세력은 언제나 반도 일부에 대해 모국 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이런 외교 관계를 기반으로 "내지"로부터 선진 문화의 유입, 이식을 지속적으로 이뤄 왔는데, 그것이 대륙의 이질적 세력과 결탁한 신라 측의 대반격을 통해 최종적으로 파탄이 났다는 거죠. 신라가 통일한 반도는 열도의 백제 세력에게 망국의 한을 심어 준 엄청난 트라우마의 진원으로 인식되었고, 이때로부터 열도의 일부 정치 세력이 항구적으로 반(反) 반도 성향을 띠게 되었다는 겁니다.

 

열도의 주민 구성은 본디 도래인과 피지배 토착인이라는 이원적 성격 뿐 아니라, 그 지배층 내부적으로도 백제계와 신라계라는 서로 대등한 이중의 레이어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 중 후자를 대변하는 도쿠가와(德川) 세력이 최종적으로 열도의 패권을 장악했을 때  동아시아에는 평화가 정착되었고, 한반도에서 파견된 통신사 일행은 장기간에 걸쳐 열도 전역을 순방하며 융숭하고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조선 측에는 "향후 가능할 전쟁 도발 움직임을 미리 시찰하며, 통신사가 받는 대접 자체가 전란에 대한 진사(陳謝)의 표현"이라는 명분이 있었고, 덕천 막부로선 막대한 접대비를 번 측에 부담시킴으로써 반란 예방의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풍신수길이 쌓은 오사카 성 뿐 아니라, 먼 규슈의 변방, 아니 그 어느 다른 지방이라도, 현지에 쌓은 성주의 본성, 외성은 외부로부터의 침략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듯 철옹성의  면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축조된 어느 성곽도 이런 구조가 아니며, 심지어 왕이 거주하는 궁궐도 그저 야트막한 담장을 둘렀을 뿐입니다. 이는 어리숙하고 권위가 부족한 체제의 약점을 상징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안정적 중앙집권 체제를 그 이른 시절부터 구축한 조선만의 장점을 보여 주는 거죠. 반란의 우려가 적을 뿐 아니라, 혹시 누가 무력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에 성공한다 해도 그 행위의 정당성이 확보되기가 어려웠기에, 어차피 투철한 방비를 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겁니다.

 

메이지 유신은 기본적으로 쿠데타였으며, 비현실적 대박을 노리고 무리수를 둔 간사이 세력이 요행히 주류로 재등장한, 일본 현대사 그 비극의 물꼬를 튼 변칙적 사건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묘하게도 백제 왕녀의 현신으로 보이는 이쓰코 여사도 이런 저자의 의견에 흔쾌히 동의합니다(결국 태평양 전쟁 패전으로 완전한 파멸을 맞았기에). 나아가 폐쇄적 성벽을 쌓고 배타적 지역 할거에 몰두하며, 씨족과 주군의 복수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항쟁을 일삼음이 무려 19세기까지 이어지는 일본의 역사를 두고, 저자는 영주마다 마련한 독특한 가문(家紋)까지, "정부와 사회보다 사(私)의 권익을 앞세운 전근대성"의 예증이라며 통박합니다. 오히려 이 점에서 조선이, 유럽과 일본보다 더 근대적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었다는 주장에 이쓰코 씨는 처음에 반발하다, 나중에는 저자의 견해에 설복되고 있습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일본 강점기에 조선 문화에 대한 미학적 연구를 대단히 화려한 문장 속에 담아 발표한 문필가죠. 이 사람은 1980년대 한국 정부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는데, 동대문 남대문 등의 철거를 막아 문화 유적의 보존에 기여했다는 게 그 사유였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저자는 여러 논거를 들며 柳宗悅의 주장이 허구에 가득한 궤변임을 지적합니다. 저자는 건축가로서 지닌 독자적인 관점을 통해, 아마츄어에 가까운 야나기 씨의 억지 논변(조선 건축 곡선의 미라든가 비애의 표현 등)을 논파하고 있습니다.

 

한일 비교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김슬옹 박사의 평처럼, 이 책은 상대 화자를 (백제 왕녀의 화신인) 이쓰코라는 신비의 여인으로 설정하여, 특히 한국 독자에게 흥미진진한 서사 구조를 베풀고 있습니다. 특히 저자는 학생 시절(서울대 건축과) 읽은 <축소 지향의 일본인>을 읽고 큰 영향을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일본에서도 역시 화제작이었으며 처음부터 일어로 쓰여진) 그 책을 이 "오사카의 여인"도 읽었던 터라,  두 사람 간의 대화는 더욱 심도 있게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건조한 문화 논의만 있는 게 아니라 이처럼 흥미로운 배경과 장치가 여럿 깔려 있으므로, 문외한인 독자도 쉽게 책장을 넘기며 몰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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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망가
강상준 지음 / 로그프레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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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목을 처음 접하고 어떤 느낌들 드시던가요? 아직도 "만화"라는 이름에는, 뭔가 그 자체에 하위 문화, 저급 문화라는 (근거 없는) 불편함, 찜찜함, 나아가 죄의식까지 풍기는 게 사실입니다(아닐까요?). "만화"라고 한국식 독음으로 읽으면 그나마 낫습니다. 이걸 일본 원어대로 "망가"라고 읽으면, 이에는 일어 특유의 단모음이 주는 희화성, 본원적 왜색(일어에 왜색이 묻어나는 건 당연할 뿐입니다)까지 겹쳐, 이젠 거의 숭고한 민족주의적 자의식에까지 상처가 입혀지는 듯한 착각마저 끼칩니다. 물론, 다 근거 없는 편견이며, 굴곡 많은 정치, 문화사가 안긴 집단 PTSD의 일종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술은 그저 예술로 받아들이면 그만인 것을 말이죠.

 

여튼 "망가"란 명칭에는 뭔가 우스운 아우라를 기본으로 깔고 있는 면이 있습니다(그게 온당하든 아니든 무관하게). 아니, "漫畫"에서 "漫"이란 글자부터가 우습다는 뜻을 가진 한자입니다. 이런 단어 앞에, "위대한"이란 수식어가 붙었으니, 묘한 형용모순이라는 느낌마저 추가로 안깁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 책 띠지에는 "대단히 매혹적인 만화 가이드"라는 자체 규정(선전?) 문구까지 찍혀져 있습니다. 이런 겉인상만 놓고 보면, 꽤나 유쾌하면서도 가벼운 내용 아닐까 지레 독자는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그 유명한 대중 평론가 로저 에버트의 베스트셀러 <위대한 영화>를 벤치마킹하여(혹은, 제 생각에 "오마쥬하여") 이 책을 구상하고 집필하여 마침내 멋진 한 권으로 출간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벌써 제목부터가 닮은 모습이고, 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예술은 그 태동기부터 대중과 사회의 열띤 호응을 받았고, 문필가나 화가, 사진작가, 그 외 어떤 "고상하고 심각한" 클래스로부터 진지한 접근으로 임해지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반면, 만화는, 오히려 그 원산지(와 인접 소비지)에서의 문화적 맥락을 모르는 저 먼 서양에서나 대접을 받을까, 동아시아 오타쿠(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들이 터잡고 사는 본향에선 합당한 respect를 접수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또 저 에버트의 책이 사실 그리 깊이 있는 내용, 시각을 담고 있지는 않은 대중서라는 점과 대조해서는 더욱, 이 책의 진지한 태도, 품격 있는 문장, 그리고 건전한 지향성이 빛을 발한다 하겠습니다.

 

이 책은 저자의 판단에 의하면 "불후의 명작"이라 여겨져 마땅한 일본 만화의 걸작에 대한 리스팅, 소개, 해제, 평가, 평론을 싣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에버트의 책보다도 오히려 훨씬 격조 놓고 인문적 비평틀을 튼실히 갖춘 글들로 가득합니다. 해서, 독자는 "아니 그 만화들이 그런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단 말?" 같은 각성에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옷매무새를 단정히하며 뭔가 숙연한 마음까지를 들게 만듭니다. 해당 작품을 익히 감상하고 즐긴 마니아들(왠지 "오타쿠"라고 하면 실례인 것 같습니다)에게는 구절구절마다 무릎을 치게 하는 절묘한 진단과 포섭이 있고, 만화 장르를 경시하고 홀대하던 이들에겐 "이 예술 영역에 이런 존엄이 깃들어 있었던가." 같은 겸허의 자세를 갖추게 돕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청출어람이 청어람이라고 에버트의 책보다 낫습니다. 알고 보면 별 미학적 우월성도 지니지 못한 영화가 장르 후광으로 적잖은 버프를 받는다는 점 감안할 때, 이 책은 가난에 찌든 집안을 혼자 힘으로 일으켜 보려는 소년 가장의 대견함까지 갖추었습니다.

 

작품들은 총 32편이 소개되어 있으며, 연재(발표) 시기(일본 현지 원작 기준)는 1980년대부터 21세기 초엽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입니다. 물론 명작 지면만화는 애니메이션 장르로 파생 창작, 변환이 이뤄지고, "망가" 못지 않게 애니 역시 거대한 독자 영역과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으나, 이 책은 그 제재를 인쇄만화에 한정하여 집필되었다는 점 유의해야겠습니다(그러나 본문 평론 중, 영상물에 대한 언급도 많으며, 오히려 이런 타 장르의 본질, 속성에 대한 새로운 일깨움도 독자에게 많이 제공하는 편이라 하겠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만화 예술이 타 장르가 구현 불가능한 미학적 성과와 위업을 얼마나 많이 이루고 있는지, 새삼 경의를 표하게 될 것입니다. 그를 넘어, 왜 이런 상상력과 통찰은, 아이디어 단계에서나마(즉 아직 작화 단계로 이행 않은 단계에서도), 타 예술, 이를테면 산문 문학에서는 비슷한 발상이라도 찾아 보기가 힘들고, 오로지 망가에서만 이렇게 전위적으로, 또 폭발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도  끊임 없이 일어났습니다. 복잡한 해답을 구태여 찾을 필요 있을까요? "그건 단지 세상에서 망가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 한 마디로 족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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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의 연인 3 - 개정판
유오디아 지음 / 시간여행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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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진짜 악당들은, 겉과 속이 다르고, 상대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연기를 펼치며 기만극을 펼치는 여성들입니다. 2권에서는 인빈 김씨, 그리고 이 3권에서는.. 생각이 깊고 지극히 이성적으로 정국을 보이지 않게 수습하며 힘을 길러 나가던 광해군의 정실 유씨(세자빈)가. 가공할 음모와 술책을 부리며 최종 보스로 마침내 본색을 드러냅니다. 독자에게는 이 점이 충격일 테며, 이 장편 소설이 판타지, 로설, 아니면 본격 역사 소설로서의 면모 외에, 혹시 미스테리물로서의 성격도 겸한다면 바로 이 점에서 그 개성이 두드러집니다. 1,2권에서 부러진 옥패, 수수께끼의 소녀(경민이 아빠에 의해 간신히 목숨을 구한) 등에 얽힌 내막이, 이 3권에서는 완전히 해명되고 정체를 드러냅니다. 책날개에 보면 "모든 세대의 독자들이 두루 읽을 수 있는.... "이란 작가의 포부가 나오는데, 그 말이 처음에는 예사로 여겨졌으나 책을 숙독하면서 진가를 알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 중전의 자리에 오른 유씨는, 부군 광해의 사랑을 독차지한(여성 입장에서 그게 뻔히 보였겠죠) 경민이에 대해, 처음부터 증오나 질투 같은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아주 냉정하고 계산적으로 사태를 주시하고, "이 여인이 내 남편-남편이라기보다 정략 결혼에 의해 연을 맺은 파트너-에게 어떤 쓸모가 있겠구나"하는 판단에서, 일개 나인인 경민에게 후의를 베푸는 게 독자의 인상에 강하게 남았습니다. 어떤 여성적 직감으로 상대의 본심을 척 꿰뚫어 본다든가 하는 능력은, 순진한 경민이에게 그리 넉넉히 갖춰진 편이 아니라서, 2권의 경민이(이때는 그저 나인 김씨. 김상궁이었습니다)는 유씨의 검고 차가우며 무서운 영혼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었습니다. 소설이 철저히 경민이의 시점에서만 서술되기 때문에, 독자 역시 유씨의 무서운 본색에 대해 전혀 감도 못 잡았다가 이 3권에서 반전 비슷한 체험을 하는 것도 괜찮은 기분이더군요.

<계축일기>에 보면 인목대비는 물론 그 밑의 천한 시종들까지도, 광해군(한때 삼천리 강역을 지존의 몸으로 다스린 이인데도)을 두고 아예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표현이 마구 나와 현대의 독자를 당혹하게 하죠. 우리 생각으로 그녀와 광해군은 불구대천의 원수일 것 같은데(<실록>에도 그리 적혀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인목대비와 광해군이야말로 이심전심의 동맹 관계처럼 묘사됩니다. 광해군이 좀 융통성이 부족한 편이라 정치적 성과가 미진했고, 사태를 파국으로 몰고 간 건 중전 유씨가 이 기회에 자신의 친정을 조선 제일의 세도가로 만들어 보려는 헛된 야욕이라고 이 소설은 짚고 있습니다. 그럴듯한 상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튼, 이런 정치적 원모심려가 엉뚱한 희생자만을 낳았으며, 능양군 이종이 주도한 반정군은 기실 "혼군(폭군이 아니라)" 광해가 아닌, 대북파와 유씨 일문의 타도를 도모한 셈입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폐비와 폐세자가 더 참혹한 죽음을 맞고, 광해군은 유배지에서나마 천수를 누린 기이한 사정이 아주 매끄럽게 설명은 됩니다.

2권에서 경민과 광해군은 달기니 주왕이니 하면서 고사를 원용해도 하필 흉칙한 것을 들며 불길한 농담을 주고받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두 남녀는 사실 정치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는, 평범한 남녀로서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고 싶었던 순수한 영혼이고, 괜히 옆에서 애정사의 교통사고를 당한 정원군 역시 순정파 중의 순정파입니다. 역사는 그러나 승자의 기록이라, 이들은 혼군, 탕녀, 파락호의 오명만 쓰고 정작 더 악독한 이들의 모략에 밀려 사라져갔습니다. 여튼 경민이의 지극한 사랑(부친과 연인에 각각 향한 두 갈래의)은, 시간의 진행을 다스리는 물리법칙마저 삐긋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익히 알되 그 속에는 좀 다른 사연을 간직한 슬픈 역사 하나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치밀하면서도 자유롭고, 이지적이면서도 애상적인 멋진 소설이었습니다. 얼마나 연구하고 사색해야 이런 작품이 나오는지 감탄하게 되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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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의 연인 2 - 개정판
유오디아 지음 / 시간여행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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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역사상 어떤 악평과 함께 기록된 이들이라 해도, 한결같이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니, 최소한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고, 혹 누가 좀 표독스럽게 군다 싶어도 그 입장에서 그럴 수도 있겠거니 이해를 할 수 있는, 어떤 스테레오타입에 가까운 악역이었는데요. 이 2권에서는 본격적으로, 악당들이 악당으로서의 제 본색을 드러냅니다. 그 중 한 명이 인빈 김씨, 정원군의 생모이고, 1권에서 "(공빈 김씨를 가리키며) 수랏간에서 이름 없는 나인으로 그냥 묻혀 죽었어야 했거늘.."이라며 수수께끼 같은, 독한 말을 내뱉던 그 사람입니다. 성격이 좀 못된 정도가 아니라, 이 2권 분량에서 주인공 경민이가 겪게 되는 온갖 고초의 원인을 제공하는, 아주 악질적인 음모를 꾸미는 원흉입니다.

인빈 김씨는 말 그대로 교언영색, 상황에 따른 연기와 변신에 능한 악귀 같은 인간형입니다. 선조는 좀 멍청한 인물로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데, 그는 죽을 때까지 이 후처의 본색을 눈치채지 못하고, 궁정 안의 난맥상을 더욱 악화시키는 무능한 모습을 보입니다. 영리하고 유능하다곤 하나 광해군 역시, 이런 아버지의 속마음에 대해 끝내 오판한 걸로 보아, 약한 마음의 줏대가 결국 그 지혜를 가린 비극적인 인물로 설정된 것 같습니다. 광해군은 게다가, 결국 이명의 출생 사연에 대해 정확한 진상을 알지 못하고, 경민이의 (두 차례에 걸친)설명을 듣고 난 후에서야 전모를 파악하게 됩니다. 한 번에 알았으면 그나마 정원군을 역모로 모는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테며, 뜻하지 않게 자신의 귀한 아들을 잃는 참척도 겪지 않았을 것이고, 결정적으로 어린 이종(능양군이며 나중의 인조)에게 깊은 원한을 품게 하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광해군은, 부친에게서 버림 받았다는 그 마음의 상처가 너무도 커서, 이후 명민한 판단력을 유지하는 데에 지속적으로 장애를 겪은 걸로 나오고 있습니다.

1권에서도, 웹소설의 주인공 답지 않게, 아버지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2년이라는 긴 세월을, 험한 과거에서 버티고 참고 인내하는 경민이의 행적을 보며 조금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현대에서 비교적 넉넉한 가정 형편에다 안락하고 즐거운 것만 찾아다니던 10대가, 아무 편의가 갖추어져 있지 않고 비인간적인 법도가 일상 구석구석을 속박하는데다, 겉만 아름답게 꾸몄을 뿐 속은 짐승 같은 탐욕과 간계가 지배하는 오백 년 전 궁중 생활을, 두 달도 아니고 2년을 버틴다는 게 가능할 법하지가 않다고 생각했었습니다(딴 걸 다 떠나서 먹는 것부터가 변변치 못하겠고, 병이라도 걸리면- 실제 병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1권에서 - 어떻게 살아남겠습니까? 그런 걱정 때문에라도 편히 못 지낼 것 같네요). 헌데 이 2권에서는, 인빈 김씨에게 매를 맞고, 턱없는 누명을 쓰고 고문을 당하거나(더군다나 애를 밴 몸으로) 죽기 직전까지 가질 않나, 천리 밖 제주도에까지 귀양을 가서 험한 생활을 5년이나 겪지 않나... 이 정도면 고대 소설의 전형적 평면적 캐릭터들이 겪던 고초 그대로입니다. 톡톡 튀는 매력으로 두 왕자를 사로잡은 자유로운 영혼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건.

주인공이 이처럼 모진 고난을 겪고도 독자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는 건, 경민이의 내러티브가 로설 주인공답게 시종일관 밝다는 그 이유 하나뿐입니다. 1권에서 겪은 고생만으로도, 육체적 상해가 아니라 정신이 입은 내상, 그 스트레스 때문이라도, 평균적인 현대인이라면 몇 달을 못 버티고 죽을 것입니다. 이 2권에서 문자 그대로 온갖 개고생을 하는 경민이, 이해가 안 갈 만큼 힘을 못 쓰고 상황에 끌려 다니는 광해군. 이 두 남녀 주인공을 보고 있자니 속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광해군이 저처럼 무기력한 채로 남아 있는 걸 납득시켜 주는 건, 다름 아닌 소설의 치밀한 배경 세팅입니다. 이 16세기 말 궁중에선, 대체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인지 구분이 안 가고, 어떤 이가 강자였다가 한순간에 약자의 음모에 넘어가 숙청을 당할지 내다볼 수 없는 혼전의 연속입니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는, 광해군 아니라 누구라도 혼이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는 게 작가의 지긋한 암시 같습니다.

1권 리뷰에서도 지적했지만, 유일하게 기사도 정신(?)에 빛나며 영혼의 순정을 지키는 사람은 정원군입니다. 그는 몸을 던져 정인(情人)의 안위를 지키고, 생모의 더러운 흉계가 효과를 못 보게 저지합니다. "이게 다 누구 좋으라고 하는 짓인데...." 땅을 치고 통탄하지만 분에 넘치게 훌륭한 아들을 둔 덕에 인빈 김씨의 포부는 날개가 꺾입니다. 여주를 더 많이 사랑하는 남성이 대개 인격적 가치도 비례해서 높기 마련이니, 소설에서 더 큰 비중에 값해야 마땅할 것 같지만, 정원군의 행보는 이에서 더 벗어나질 못합니다. 경민이는 결국 이런 그의 연정을 모른 체하며 제 갈 길만 가는 걸까요? 겉으로는 영악하고 당차 보이며, 본색이 현대인이니 당연히 또 그리 굴어야 합니다만, 광해군 못지 않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게 경민이란 여성이더군요(이제 나이가 제법 들어 여자애가 아닌 성인여성입니다. 애도 낳고 산전수전 다 겪은 처지입니다). 이 2권에서는 드디어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경민이네 집안 내력인 시간여행자를 구속하는 규칙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오니, 3권의 재미를 충분히 캐내기 위해선 유심히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평행우주 관점을 전면 부정, 배제하며, "시간 여행자와 시간의 투쟁"이란 관점을 도입한 게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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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 개자식 뷰티풀 시리즈
크리스티나 로런 지음, 김지현 옮김 / 르누아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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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날개의 소개에도 나와 있듯, 크리스티나 로런이라는 단일 필명을 쓰는 두 여성 작가의 "Beautiful~" 시리즈 중 첫째 권입니다(지금까지 여섯 편이 출간되었습니다). 남주 베넷 라이언을 가리키는 게 분명한 저 별명 "잘생긴 개자식"은, 이 장편의 제목으로 쓰였을 뿐 아니라 소설 중에서도 이 베넷을 가리키는 통칭으로, 캐릭터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립니다.

 

로설의 설정이 흔히 그렇듯, 남자주인공이 대단히 재수없는 타입입니다. 성격이 그저 까칠할 뿐인 spoiled kid라면 그건 그냥 여성 입장에서 무시하면 그만입니다("버르장머리 없이 키워져서 사회성이 부족하군, 불쌍한 놈."). 그런데 베넷은 명문가의 둘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나, 완벽한 학벌과 초기 사회 경력을 쌓아 왔으며, 집안의 후광을 입어 낙하산으로 꽃혀 기업의 중역을 맡은 케이스가 아니라, 그저 자신이 유능한 인재일 뿐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이런 사람이 그렇게나 성격이 까칠하고 오만불손하니, 일 못하고 집안 변변찮고 직급도 낮으며 올라가야 할 계층 사다리가 까마득히 높게만 솟은 그저그런 부하직원(특히 여성)들은, 회사에서 그에게 깨질 때마다 속에서 마그마가 치밀이 오릅니다. 분노가 가라앉고 난 후에는 자괴감과 열등감의 두번째 파고에 신음하며 사직을 고민하는 게 공식이 되다시피 했죠. 이 베넷 라이언은 이 바닥에서 이런 쪽으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베넷 라이언을 두고 사내에선 그런 추측도 일었습니다. "너무 미모가 빼어나서 누가 섣불리 그의 능력을 의심할까봐, 저렇게 가시를 곤두세우고 사는 거다." 회사에서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완벽한 직장인의 모습만 노출하는 그의 동선을 본 사람이라면, 이런 평가를 두고 "괜한 질시, 못난 중상모략"으로 한칼에 후려칠 만합니다. 그만큼 일을 잘하는 사람이고, 부친과 친형의 회사("라이언 미디어")에 입사하기 전 프랑스 로레알(이렇게 실명이 나오더군요. 회사 입장에선 픽션 출현으로 간접 홍보가 되므로 마다지는 않겠지만)에서 훌륭한 실적을 쌓은 것이 그의 능력을 입증합니다.

 

여주 클로에 밀스의 표현을 빌리면, "이 베넷은 그의 아버지, 그의 형과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인간"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는 두 명에 대한 한없는 존경, 찬사이자, 자신의 직속 상사인 베넷에 대한 폄하의 의도였습니다. 클로에 밀스는 학부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주위의 기대를 한몸에 모은 재원이었는데, 지금 라이언 미디어에서 인턴십을 병행하는 조건으로 MBA 장학금을 받으며 이제 학위 최종 취득까지 3개월을 남기고 있습니다. 마지막 관문만 잘 넘으면, 그녀는 학장으로부터 "최우수 CEO 추천장"을 졸업장과 함께 받게 됩니다. 인재 보는 눈이 누구보다도 탁월한 엘리엇 라이언은, 이 클로에 밀스를 지속적으로 후원해 왔습니다(말 그대로 후원일 뿐 다른 불결한 연상은 불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엘리엇 라이언 회장과 개인적 친분까지 쌓게 된 밀스는, 그의 둘째 아들인 베넷 이사의 어시스턴트로 채용되어, 이 파란만장하고 시끄러우며 다분히 폭력적인(?) 데다 닭살 제대로 돋는 로맨스를 펼쳐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 잠깐 적었듯, 필요 없이 까칠하게 구는 베넷의 심리 이면에는, 모종의 강박이 자리했던 것 같습니다. 클로에 밀스와의 관계(베넷 개인과, 라이언 미디어 회사와의 관계 모두)가 파탄에 이르자, 부친과 형은 그를 질책합니다. 왜 공과 사를 구별 못해서 회사 분위기에 지장을 초래하고, 앞날 창창한 여성의 커리어에 중대한 흠집을 남길 수 있는 위험을 초래하느냐는 거죠. 물론 우리 예전 신파 드라마마냥, "물정 모르는 남의 집 귀한 딸을 농락하여 몸을 망치게 했다" 운운은 아닙니다(세팅만 보면 딱 그런 오해를 받기에 좋습니다만). 여튼 이때 베넷의 입에서 나온 대답이 걸작입니다. "두 분 다 아시다시피 내가 좀 멍청하잖습니까." 사실 그렇게 학벌, 경력이 좋은 남성이 "통상의 의미에서" 멍청할 리는 없고, 단지 부친과 형이 너무 뛰어난 인재들일 뿐입니다. 능력도 탁월할 뿐 아니라, 감정의 조절과 모럴의 "유지, 보수"에도 도무지 패착이란 보이지 않는, 직무와 사회성 공히 달인의 경지에 이른 진성 엘리트들이기 때문이죠. 이런 압도적으로 뛰어난 혈육들 밑에서, 베넷은 적잖이 주눅든 성장 과정을 거쳤을 법합니다. "아버지만큼 뛰어난 사람이 되는 건 포기한다손 쳐도, 내가 형의 반만큼이라도 할 수 있을까?"

 

여튼 이런 건 그 집안의 내밀한 속사정이고, 바깥에서 보기엔 셋 모두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반신반인의 경지일 뿐이죠. 부친 엘리엇과 형 헨리는 그럼 외모가 좀 처지는 편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클로에 밀스의 말을 빌리면, "나이가 들고 머리가 희끗희끗하다 뿐 내가 본 중 가장 잘생긴 남성"이, 이 라이언 미디어의 수장이자 휘황찬란한 엘리트 가문의 어른 엘리엇이라고 하네요. 아마도 이런 이끌림에는, 그런 남성적 외형의 완성도뿐 아니라, 내면의 자상함과 완비된 인격의 힘이 강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클로에는, 이런 두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부류"인 베넷과, 소설 초장부터 위험천만한 불장난에 빠진 걸까요? 클로에가 대단히 침착하고 지능이 높은 데다 절제력, 감정 조절 능력이 대단히 뛰어난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참 의외입니다. 클로에와 베넷이 그것도 회사 집무실, 복도, 기타 그닥 안전하다 편하다 여길 수 없는 여러 장소에서 무차별 정사 행각을 벌이는 장면 묘사를 읽기 위해, 여러 페이지를 읽어 나갈 수고와 인내를 독자는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몇 장 안 넘겨서 바로 시작이고, 이 소설은 성애 묘사와 그 다음 묘사 사이에 과연 몇 페이지의 간격이 필요한지 고민을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땀흘리고 애쓰는 캐릭터들(둘 다 파워풀 플레이어들입니다)보다 독자가 더 빨리 지칠 지경입니다.

 

답은 클로에와 베넷 모두 아는 것처럼, "이성이 거부해도 몸이 끌리는 걸 어쩔 수 없다"입니다. 베넷이 더 적극적이고, 사회적으로 우위의 신분이니만치 행동의 재량이 더 폭넓습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이 31세의 청년이 진성 bastard는 아니기 때문에, (전혀 안 그럴 것 같아도) 여자에게 함부로 하는 타입이 아닙니다(만약 그랬다면 아버지와 형이 그를 가만 두질 않았을 겁니다. 가정 교육과 가풍이란 이래서 중요한 거죠). 그렇다고 해도, 여성이고 하급자인데다 아직 학생이기까지 한 클로에는 분별 없이 굴 수 없습니다. 베넷은 집안 배경이 있으니, 설사 큰 실수를 해도 어디 다른 데서 커리어를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하지만 일개 시골 치과의사의 딸인 그녀는, 한번 평판이 망가지면 재기가 불가능하죠.

 

클로에는 괜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 베넷은 알고보니 진짜 순둥이 타입이었고(따라서 까칠함은 모두 가면), 자기 친구이자 또 한 명의 엄친아이며 역시 부친과 형이 대단히 아끼는 인재인 조엘 치뇰리가 그녀에게 접근하자 "저놈 내 것에 접근하다니, 어디 조용히 묻어버려야겠군." 같은 생각을 품기까지(물론 농담이고 베넷이 그런 치정에 빠질 사람이 아닌데다 둘은 오랜 절친이죠) 합니다. 냉혹하고 까칠한 사람이면 절대 이런 젤러스한 감정을, 그 무엇 그 누구에 대해서도 품지 않습니다. 지켜낼 게 있으면 그저 책략과 계산으로 해 내면 되니까요. 근데 베넷은 정말 클로에에게 홀딱 빠져, 여태 성실히(?) 얼굴에 착용하고 다니던 페르소나의 끈이 끊어져 쌩얼이 드러나고, 일자로 언제나 곧게 굳게 닫혀 있던 입가에선 (클로에에 대한 상사병 때문에) 침이 질질 흐르는 것도 이제는 의식하지 못할 지경이 된 겁니다. 이 소설은 이런 이유에서, "잘생긴 개자식(은 어쩌다 폐인으로 떨어졌나)"라는 제목을 달고 있게 되었습니다.

 

이건 클로에 밀스가 남자 다루는 요령이 좋아서일까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사실 아주 속된 관점에서 보면, 팔자를 고칠 남자 하나가 지금 제발로 굴러 들어와 한입에 먹어달라고 조르는 격인데, 밀당이고 뭐고 다 번거로운 소모전 중간 과정일 뿐이죠. 게다가 남자 집안에서 반대라도 하면 모를까, 그렇기는커녕 겉으로 봐서는 어른 두 명이 자식보다 더 호의적입니다(클로에는 회장 사모님인 수전 라이언과도 친한 사이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여주인공은, 예사로운 된장이라면 태생 소경 상태에서 눈이 번쩍 뜨이기라도 할 이 블리스포인트에 머무르지 않고, 전혀 다른 선택을 하고 맙니다(뭔지는 스포일러라 적을 수 없습니다). 거 참 이상합니다.

 

근데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게 없습니다. 이게 나름 작전이라든가 밀당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커리어우먼으로서 가야 할 길이 있는데 청춘사업에 재미들려 시간을 낭비하고 원칙을 훼손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이런 자각과 신념이 워낙 강한 겁니다, 밀스라는 처녀 자체가요. 어찌 보면 클로에 밀스가 딱히 외모가 출중하고 섹시한 매력이 넘쳐서라기보다, 베넷, 그의 부친, 모친, 형 모두가 그녀의 이런 내면을 제대로 꿰뚫었기에 그녀에게 모두 (각각 다른 방식으로) 반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운이 좋은 베넷이, 그녀의 성적(性的)인 면모에 정통으로 꽂혔을 뿐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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