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건강 증진을 위한 두뇌 훈련 가을편 2 인지건강 증진을 위한 두뇌 훈련 가을편 2
탑클래스 두뇌발전소.대한치매협회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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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그 비결은 타 동물보다 용량이 크고 기능이 우수한 뇌를 지닌 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신체의 활력이 떨어지듯 뇌 역시도 노화를 겪는 게 필연입니다. 신체 건강을 유지하고 싶을 때 운동을 하듯, 뇌의 선도를 지키려면 그에 알맞은 훈련을 통해 원하던 효과도 거두고, 그 과정에서 쾌감도 느낀다면 일석이조일 것입니다. 이 교재에는 다채롭고도 재미있는 문제가 많이 실려, 아직 두뇌 쇠퇴를 걱정할 필요를 못 느낄 세대도 이런저런 퀴즈를 풀며 어떤 성취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p6 머리말을 보면 대한치매협회 회장 조범훈 박사의 말씀이 나옵니다. 이 시리즈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주제로 맞춰 구성되었기에 앞으로도 나머지 세 시즌 편이 더 발간되겠습니다. ②라고 쓰인 건, 가을 편이 총 세 권으로 짜였는데 그 중 둘째 권이라는 뜻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책은 모두 4주차 내용으로 꾸며졌습니다. 매주마다 15개의 퀴즈가 제시되는데, 저는 이 범주 다른 교재들에서 잘 보지 못했던 내용이 많아서 좀 신기하기도 하고, 과연 나는 뇌에 피로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이 문제들을 얼마나 풀어낼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기도 했습니다. 매주차 맨처음에 나오는 게 지남력 퀴즈인데 일단 지남력이라는 말 자체가 저한테는 생소했습니다. 지남력은 한자로 指南力이라 쓰며, 우리가 지남철이라고 할 때의 그 의미 그대로입니다. 어떤 소녀 캐릭터가 늦가을 패션으로 나타나 "올해는 몇 연도인가요? 당신이 태어난 연도는 언제인가요?"를 묻습니다. 어르신들이 혹시나 해서 병원을 찾아갈 때 의사선생님이 물어보곤 하시는 질문 사항과 같습니다. 저도 작년 여름 무거운 백팩을 메고 어딜 좀 다녀오다 갑자기 "오늘이 무슨 요일이었지?"라며 순간적인 지남력 상실 증상을 겪고 무척 놀랐기에 이 페이지의 체킹사항이 예사롭지만은 않았습니다. 

p11에는 순서맞히기 퀴즈가 나오는데 일단 컬러가 네 개밖에 안 되기 때문에 20초 동안 이걸 외우는 건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제한시간이 있다는 자체가 사실은 누구에게나 조금은 부담입니다. 만약에 교재가 바로 오른쪽에다가 바로 이어서 퀴즈를 내었다면 현저히 긴장감이 떨어졌을 텐데 페이지를 넘겨야만 문제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점도 좋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가 앞 페이지 색 배열을 홀랑 까먹어서 다시 앞을 넘겨 보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제가 다 이런데, 나이 드신 시니어들은 아마도 좀 심각하게 헷갈리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p13의 다른 그림 찾기도, 아홉 개 중에 다른 걸 하나 고르기가 생각만큼 빠르게는 안 나왔습니다. 그러니 시니어들께서도, 혹 퀴즈를 해결 못 하셨다고 해도 너무 좌절하지 마시고, 두뇌에 경각심을 준다는 정도로 받아들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교재는 이 정도의 난이도는 지켜야지, 너무 물에 물 탄 듯 쉬운 문제만 나와도 훈련(?)하는 보람이 없습니다. 

숨은그림찾기가 p17에 나오는데 제목은 저렇지만 왼쪽에 제시된 그림을, 오른쪽 15개나 되는 그림들 중에서 찾아내는 것입니다. 왼쪽 그림은 약간 크기가 크고, 오른쪽의 15개 보기는 그보다는 약간 작습니다. p20, p21에는 모자를 쓰고 두 팔을 벌린 허수아비 그림이 있는데 독자는 두 그림이 서로 다른 부분을 찾아 표시를 해야 합니다(두 군데). 물론 저도 직접 문제를 풀어 보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두 군데를 바로 찾을 수 있었습니다(아마 독자의 90%[비 시니어 포함]은 이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아날로그 시계 보는 법을 학교에서 안 가르쳐서 모르기도 한다는데, p23에는 여러 시계 그림을 제시하고 몇 시인지 맞히기, 왼쪽 그림에서 30분, 45분 등이 지나면 바늘이 어떻게 되어 있을지 그려 넣게 합니다. 30분, 45분처럼 딱딱 떨어지는 시간만 나오며 10분, 20분처럼 바늘의 각도가 정확하게 안 떨어지는 시간대는 묻지 않습니다. 

뇌라는 게 참 신기합니다. 보통 뇌의 가소성(可塑性)이라고도 하는데, p30을 보면 우리의 뇌는 정말로 "상상하는 대로 그것을 현실과 구분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생리작용을 낳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앞에서 조범훈 박사의 추천사를 보면 용불용설이라는 말씀도 나왔는데, 머리는 쓰면 쓰는 만큼 그 성능이 좋아진다는 거죠. 이게 특별한 사람에게만 가능한 특별한 기능이 아니라, 우리들 누구에게나 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p51~p52에는 명상법 6단계도 나오는데, 혹 머리를 너무 많이 써서 약간 피로감을 느꼈다면 이 방법을 통해 휴식을 주는 것도 좋겠습니다. 인쇄가 선명하고 독자를 많이 배려하는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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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 - 언제나 내 편인 이 세상 단 한 사람
박애희 지음 / 북파머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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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누구에게나 어머니가 계시고 아마도 그분은 세상 최후에까지 남아 내 편이 되어 줄 분이겠습니다. 박애희 작가님이 쓰신 이 책에는 정말 다양한 이야기, 어머니가 딸을 사랑하는 방식들이 담겨 있어 제3자가 엿보듯 읽어도 흐뭇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사연이 가득합니다. 아마도 이 책에 적힌 사연 중 적어도 몇몇은 우리 독자들이 매우 비슷하게 실제 체험해 본 일들이겠습니다. 혹 아니라고 해도, 사람 사는 세상에 부모와 자녀 간에 온당하게 오가야 할 교감이, 사랑이 이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멋진 교훈으로 가득하다는 점 누구나 동의할 만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사위 사랑은 장모(p58)라는 말이 오래전부터 있었으며 이 말의 뜻이야 누구나 알지만, 책에서는 좀 더 깊이 의미를 파고듭니다. "남편도 나도 철없었을 시절..." 사실 예전에는 남의 댁 따님을 데려갈 때는 사회적, 경제적 기반이 얼추 다 갖춰진 후였을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정말 취업이 힘들고 사회화 기간이 길어졌기에, 나이 서른이 되어도 남자 위상이 뭔가 어설프고 위태로운 걸 많이 봅니다. 그러나 어쨌든 사위는 사위이며 내 딸의 배우자이며 내 딸을 끝까지 지켜 줘야 할 사람입니다. 저자께서는 "내 딸을 사랑해 줄 사람이라서 내 딸에게 보람이 가라고 내가 챙겨 준다"며 어머니의 배려를 해석하시지만, 전 좀 다른 의미도 여기서 읽었습니다. 딸 옆에 새로 둔 아들로까지 여기며, 어찌보면 친아들보다 더 소중한 면도 있다고 그 어머니께서는 생각하시는 거죠. 

박애희님처럼 작가분들이라면 이들이 쓰는 책 한 권 한 권이 다 자녀와 같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지금 이 책 같은 저자의 작품을 가리켜 "손녀딸"이라 부르셨다고 합니다(p124). 읽으면서 촌수가 과연 그렇게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은 과연 한번 세상에 힘들게 태어나 변치 않는 모습으로 그 부모를 대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어떻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관계의 유지와 형성입니다. 회사 등의 2차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관계 그 자체가 목적인 이런저런 친분도 사실 까다롭기가 그지없습니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그를 대하고 이렇게 말하지만 그 상대방은 전혀 다른 해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나의 반응을 접수합니다. 아무리 친구라도 그는 남일 뿐 나의 부모처럼 날 챙기지 않고 그에게 그렇게까지 할 이유도 없습니다. 크게 충돌이 발생하여 파탄이 꼭 나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저런 오해가 쌓이고 쌓이면 슬슬 꼬이던 관계가 흐지부지되며 마침내 쌍방으로부터 잊혀집니다. 그러나 작가님은 그나마 상처를 누구한테 크게 남기지 않은 게 어디냐며, 이왕 상한 관계, 미련 갖지 말고 쿨하게 보내 주자고 합니다. 

부모님 세대는 자신의 몸 돌봄에 매우 소홀한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예외적인 분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집안 살림 알뜰하게 챙기느라 자녀분들 더 돌보느라 몸에 어디가 탈이 나도 그냥 무심히들 넘깁니다. 그러니 자녀분들이 어느 순간 부모님 몸에 탈이 난 걸 발견하고 속이 상하는(p177) 게 당연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무방비상태로 태어났을 때 몸 안 상하도록 세심하게 돌봐 준 분들이 부모님입니다. 그런 부모님도 그저 인간일 뿐이라서, 나이 드시면 서서히 무기력한 존재로 늙어갑니다. 성장 과정에서의 보은을 위해서라도 그때부터는 우리가 거꾸로 부모님을 지켜 드려야 합니다. p191을 보면 작가님이 "다음 세상에는 어머니가 제 딸로 태어나게 해 주세요"라고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들도, 지금 당장이라도 부모님께 잘하면 구태여 다음 세상을 기약할 필요도 없습니다. 

남녀 관계도 잘 들여다보면 어느 한쪽이 다른 쪽보다 사랑이 더 강합니다. 고르게 사랑하면 좋을 텐데 그게 아니라서 때로는 누가 바람이 나기도 합니다. 둘다 사랑이 시들해지면 쿨하게 갈라서면 되는데 이런 경우는 그게 아니라서 더 심각합니다. 그러나 천륜으로 맺어진 부모자식 사이는 그렇지가 않죠. 다만 치사랑은 내리사랑보다 훨씬 못한 경우가 많아서 세상에는 불효자가 사방에 밟힙니다. p220을 보면 엄마를 내가 더 사랑한다고 과감히 저자가 선언하시지만, 마치 거북이를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아킬레스처럼 자식의 사랑은 결국 어머니의 그것보다 한 발 더 뒤떨어집니다. 남자들이 결코 속속들이 이해한다고 감히 말할 수 없는 게 출산의 고통입니다. p276을 보면 여성들은 이 순간 그 누구보다 어머니를 찾게 된다고 합니다. 아들도 엄마 아빠를 애틋이 그릴 수 있지만, 그 애절함이 결코 딸을 따라갈 수 없지 않나, 그래서 요즘 젊은 부모들이 아들보다 딸을 더 선호하지 않나, 이런 생각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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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 캡슐 텔레포터
이재은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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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배경인 비주얼 시티는 어쩌면 우리가 사는 현실의 서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상대의 내면과 교감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겉모습만으로 모든 것을 재단해 버립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용한 의사와 시설을 찾아 외모를 아예 바꿀 생각마저 품고 실행에 옮기는데, 그 결과 거리에는 내가 아닌 남의 가면을 쓰다시피한 그로테스크한 풍경이 넘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소설에는 비주얼의 변형을 금지하라며 시위를 벌이는 대중도 등장하는데, 물론 우리의 현실에서 그런 이유로 집회를 열기까지 하는 이들은 없거나 극히 보기 힘들지만,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자신의 참모습을 감추려는 시도에 대해 곧잘 무시와 경멸감을 과장되이 표현하곤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표현과 자기신체 처분의 자유가 누구에게도 있으므로 성형 정도야 뭐 큰 문제삼을 게 있을까 싶지만, 때로 큰 배신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나 봅니다. 한국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플라스틱 서저리가 발전한 나라도 드물겠으므로, 과연 이 소설 같은 기발한 픽션이 나올 만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뭐 아줌마? 내가 어딜 봐서 아줌마로 보여? 어디 아줌만지 할머닌지 너도 한번 그 비주얼템을 벗어봐!(p18)" 이미 디지털 트윈이라는 게 개인의 생활 영역에서는 거의 구현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카카오페이지든 인스타든 유저는 자신의 계정에다 진짜 모습을 올릴 생각을 아예 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필터를 사용하고, 동영상에까지 보정을 가하여 배경의 시공간을 왜곡시키는(?) 우스꽝스러운 효과가 속출합니다. 소설에서 사람들은 비주얼템이라는 걸 착용해 꿈 같은 외모를 하고 돌아다니는데, 이게 우리들이 가상 공간에서 온갖 허위의 치장을 하고 방문자들을 기만하는 행태와 대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런 것도 마스컬레이드 본능이라며 너그럽게 이해해 줘야 할지, 아니면 본격적인 존재의 타락 단계로 접어드는 시그널이라며 단호하게 제재를 내려야 하는지는 정말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떤 육감, 혹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느낌이라는 게 있어서, 아무리 먼 거리에서 누군가가 잔뜩 치장을 하고 다녀도 우리는 아 저 사람이 실제로는 나이가 많이 들었겠구나, 혹은 차마 감당 못할 무슨 힘든 일이 있나 보다, 이렇게 제법 확신을 갖고 판단합니다. 소설 p35를 보면, 비주얼템을 착용했음에도 선생님 눈에 빤하게 보이는 어떤 근심, 힘듦이 도은한테서 바로 풍긴다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실 성형수술이든 진한 화장이든, 이 픽션 속의 비주얼템이든 간에, 진짜 문제는 진실을 가리고 왜곡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로 결정적인 진실을 가려 주지 못하고 결정적으로 노출시킨다는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진실은 그만큼이나 힘이 세며, 우리들도 예상외로 다들 현명하기에 그 진실을 잘도 캐치합니다.  

"니가 차도은이라고 지금 광고하고 다니는 거야?(p50)" 정상적이고 당당한 정신이라면 차도은, 선예, 혜선, 모현이라고 나를 내세우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나 차도은 여기 있다며 광고할 만한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게 인생의 목적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이 픽션 속이건, 21세기의 현실이건 이제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게 오히려 금기 사항 중 하나가 되어 버렸습니다. 비주얼 시티에서는 누가 자신을 최대한 과장하고 미화하는 게 능력의 척도이기까지 합니다. 인플루언서의 파워(p58)는 얼마나 이 은폐 도구를 잘 활용하는지로 측정됩니다. 

소설에는 초반부터 저 비주얼템과 함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도구로 등장하는 게 여덟 자리의 커넥트키입니다. 도은이의 경우 엄마아빠, 학교출결시스템 등이 고작입니다(p50). 이건 우리의 현실에서라면 인친이나 팔로잉 시스템과 유사합니다. 넷상의 소셜 미디어처럼 unsocial한 공간도 없는데, 소설 속의 커넥트키도 사실은 진정한 세상으로부터의 디스커넥트 키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비주얼 시티가 익숙한 사람들은 다른 세상이 있는 걸 모르더라고(p62)." 이 말에 송모현은 벌써 시무룩해지는데 그나마 모현이 정도면 양반입니다. 인터넷에만 파묻혀 열심히 역할 놀이만 하느라 자신이 진짜 누구였는지 잊은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는 수두룩합니다. "그 주제에 뭘 믿고 리얼리티에 가입한다는 거야?(p107)" 아니, 내가 내 자신을 과감히 믿고 현실로 복귀하지 않으면 대체 누가 내 손을 잡아 주겠습니까? 망상과 허위의식에서 벗어나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길만이 유일한 구원의 통로임을 이 소설은 우리에게 깨우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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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감에 압도될 때, 지혜문학 - 무의미한 고통에 맞서는 3,000년의 성서 수업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24
김학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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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입니다. 도전(혹은 응전)이 성공하려면 그저 뚝심이나 용기만으로는 부족하고, 최소 자원의 소비로 최대 성과를 도모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또, 아무리 힘을 써도 원하던 결과가 달성되지 않을 때, 공연히 멘탈 나가지 말고 자신을 잘 추스려 탄력적으로 회복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이때에도 우리는 성숙한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기독교의 성경에는, 삶의 고비마다 우리의 마음을 따듯이 보듬으며,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조용히 격려하는 지혜의 말씀이 담겨 있기에, 신앙이나 종교를 초월하여 많은 독자를 아직도 유지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인간이 흙과 먼지로부터 탄생했다는 발상은 언뜻 잘 납득이 되지 않기도 합니다. 피와 근육으로 이뤄진 신체에, 주변 환경을 평가하고 쉼 없이 작동하는 두뇌가 결합한 인간의 육신, 정신이 얼마나 생기 있고 경이로운 존재인데 고작 흙, 먼지에서 유래했다니! 그러나 현대과학은 코아세르베이트 등 물컹물컹한 단백질로부터 원시 생명체가 비롯했다고 하니, 이런 표현이 어떻게 보면 진실을 제대로 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사람이 죽고 나면 ashes, dust로 화한다는 건 누구라도 수긍하겠지만 말입니다. 이러한 흙과먼지에, 신이 고맙게도 자신의 형상을 담아 빚었다는 내력이 구약 창세기의 핵심을 이룹니다. 저자께서는 p51 이하에서, 존귀존엄하여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신과 하잘것없는 인간이 많은 점에서 닮았다는 구약의 발상이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이었다고 지적합니다. 

실존주의는 20세기 들어 하이데거, 사르트르 등에 의해 성숙한 꼴을 갖췄지만, 이 책 p47에도 나오듯이, 그로부터 수백 년 전 파스칼이 이미 "왜 거기가 아닌 여기, 저때가 아닌 이때 내가 존재하는지, 생각해 보면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실존에의 자각은 적어도 이미 이때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광활한 우주의 신비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신비의 아름다움을 찬양할 줄 알고 자연스럽게 압도될 줄도 압니다. 이래서 한낱 흙과 먼지에서 빚어진 인간이 미약하게나마 신성을 공유한다고도 보는 것인데, 이처럼 탐구욕이 왕성하고 지적인 존재라서 그 모든 지혜의 궁극인 야웨를 숭배하는 법이라고 저자께서는 말합니다. 

허무감에 압도되거나 거대한 시련이 기어이 우리 무릎을 꿇리려 들 때 가장 애독되는 글월이 아마도 구약의 욥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욥은 평생을 근면성실하게 살았으나 어느날갑자기 아무 잘못도 없이 모든 걸 잃고 심지어 건강에까지 치명적 타격을 입습니다. 그러나 욥은 처음부터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시련이든 죽음이나 치욕이든 모두가 신의 섭리라며 군말없이 순응합니다. 그에게 닥친 모든 불운과 곤경이란, 책을 읽는 독자가 다 분하고 치가 떨릴 정도인데 정작 당사자는 담담하기만 합니다. 이런 겸허함과 절제, 극기의 철학은 스토이시즘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저자는 p121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인용하며 평가합니다. 

주어진 운명이 있으니 무조건 순응하겠다는 생각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상충하며, 전근대적이고 퇴행적인 생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욥기에서 강조하는 정신은 그런 게 아니라, 세상의 이치는 인간의 얕은 지혜를 아득히 초월하며, 그 광대한 신비 앞에 우리는 겸손해질 필요도 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런 기술이 그저 신의 압도적인 힘이 인간을 깔아뭉개야 마땅하다는 취지가 아니며, 오히려 욥이 보여 준 품위와 떳떳함에 주목하라고 합니다. 대체 원치도 않던 나를 누가 태어나게 했나며 징징거리지 않고,고난은 고난대로 치욕은 치욕대로 의연하게 대처하는 욥의 저 쿨함 때문에 현대인들이 여전히 그를 지지하고 지혜의 원천으로 삼는 것 아니겠냐고 주장합니다. 

가벼운 말 몇 마디가 신세를 망친다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공감을 얻어 왔습니다. "빨리 듣되, 말은 천천히 하라"는 야고보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야고보의 authorship에 대해서는 저자께서 현대 신학의 성과를 인용하여 간결하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이 가르침을 모르지 않지만, 인간의 타고난 천한 본성이 이를 실천 면에서 쉽게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 가벼운 말은 대부분 분노, 격정 같은 거친 감정과 연결되며, 우리의 앞날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죠. 알고보면 모든 지혜는 우리의 마음 속에 있으며, 겸허함과 진실됨이 그 지혜를 일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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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후에 오는 것들 세트 - 전2권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개정판)
공지영.츠지 히토나리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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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종종 잊지만 공지영 작가는 본래 달달한 로맨스도 잘 쓰는 분입니다. 공지영 작가가 이처럼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게 된 처음의 비결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공 작가가 츠지 히토나리와 함께 시점만 달리한 채 같은 사연을 소재삼아 이 멋지고 근사한 기획을 실현한 게 벌써 14년 전입니다. 요즘 나오는 소설들을 보면 챕터마다 번갈아가며 남녀 주인공 시점이 교차하게 하는 기교를 쓰곤 하는데, 독립된 두 개 작품 포맷이긴 하지만 벌써 14년 전에 이 두 분 작가가 시도했었다는 점도 이 작품을 다시 보게 하는 요소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멋진 작품의 사연은 진즉에 영상물로 옮겨졌어야 했는데 이제서야 OTT 쿠팡플레이가 과감하게 투자하여 드라마가 나왔다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9월 27일 금요일에 드디어 1회가 방영되었는데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던 분들은 반드시 봐야 할 명작의 스멜이 벌써부터 풍깁니다. 쿠팡이라는 기업의 구조를 생각해 볼 때, 이 회사가 추진력있게 기획을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과연 드라마가 이렇게 론칭되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いつかこの恋を思い出してきっと泣いてしまう>는, 우리말로 옮기면 "언젠가 이 사랑을 떠올리면 분명 울어버릴 것 같아" 정도가 됩니다. 이 드라마는 지니TV에서 서비스하며 이미 본 분들도 많을 텐데, 여기에 사카구치 켄타로가 조연 나카조 역으로 나왔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부쩍 주연을 자주 맡는 이  사카구치 겐타로가 바로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서 바로 아오키 준고 역을 맡는다고 발표되었을 때 그것참 잘 어울리겠다 싶었습니다. 또 최홍 역은 발랄한 이미지의 이세영이 캐스팅되었는데 이 역시도 그럴싸합니다. 

전 남성 독자인데도 개인적으로는 공지영판 최홍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최홍은 출판사 직원인데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는 못배기겠다는 듯 그저 지켜보기만 해도 즐거운 기운이 우리에게 옮는 에너자이저입니다. 반면 최홍이 바라보는 준고는 약간 "다큐"인 진지충입니다. 본래 남녀는 자신과 상당히 다른 이성에게 끌리는 법이라서인지, 최홍 시선에서 보는 이야기에서는 저 축 늘어지는 준고에게 먼저 최홍이 빨려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젊은이가 무서운 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무엇이 되어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는데, 준고는 정말로 7년만에 작가가 되어 한국의 최홍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의 컬러는 바뀌지 않아서 과거처럼 진지하고 또 무거운 분위기야 예전 그대로입니다. 

남녀 사이에 친구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 있을 수야 있으나, 여기서 김민준과 최홍 사이를 보면 그 유지가 참 힘들다는 생각입니다. 최홍은 아무리 애를 써도 민준이 남자로 보이지 않는데, 민준은 홍이를 기어이 자기 여자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홍이 성향을 고려할 때 이 결합은 참 이뤄지기가 힘들다는 점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안타까운 게 민준이었습니다. 

홍이 성격을 보면 어디서 이런 통통 튀는 기질이 나왔을지 살짝 궁금해지기도 했는데, 다니는 출판사 대표님인 아버지도, 또 그 점잖으신 어머님도 홍이의 저 못 말리는 스타일하고는 상당히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 동생인 록(綠)이는 홍이보다 더 현실적이고 계산적이면서도 더 성숙한 유형이며 이 사연에서 홍-준고 관계가 발전하는 데 만만치 않은 걸림돌입니다. 이 록이 캐릭터는 정말로 그 아빠 그 엄마 딸이라 할 만큼 성격의 일부씩을 잘 물려받았습니다. 공지영판에서 가장 생생하게 잡힌 인물이며, 순전히 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츠지 히토나리 판보다 공지영 판이 더 메인이 아닌가 싶었던 게, 이 록이 캐릭터가 주는 강렬한 존재감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준고의 성격에 그늘이 드리운 건, 냉정하고 다소 이기적인 어머니로부터 상처를 받아서도 있을 것입니다. 츠지 히토나리 판에서는 저런 섬세한 남성의 내면이 치밀하게 그려지며, 왠지 최홍의 가족들이 각기 자기만의 방식으로 한국인의 역사의식을 대변한다고 느껴진 반면, 준고의 가족들은 미국 백인이나 유럽인들처럼 철저한 개인들이기만 합니다. 이는 공지영과 츠지 히토나리의 작가 성향이 다른 데에서도 기인하는 결과이겠습니다. 

츠지 히토나리 판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가족들에게서 미처 받지 못한 관심이나 애정을, 준고는 이들 고맙고 다정한 주변 인물들로부터 하나하나 챙기려는 듯, 혹은 (서로끼리는 잘 모르는) 이들 인물들이 열심히 위대한 작가 한 사람을 만들어 내려는 듯 주변을 공전하며 각각의 따스한 파장을 준고의 주파수가 잘 접수하도록 뿜어냅니다. 다시 봐도 참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이 두 작품은 요철을 절묘하게 맞추면서 멋진 이중 우주를 형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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